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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마밭(반전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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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8월, 세계 최강의 기병을 거느린 몽골이 고려 영토를 침공했다. 1231년 인주 일대의 방어 책임자였던 홍대순과 홍복원 부자는 몽골군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1,500호의 백성들을 이끌고 항복을 했다. 홍복원은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을 따라다니며 개경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고 고려 조정에 항복을 종용하는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나중에는 몽골로부터 벼슬을 받아서 몽골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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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년 8월, 세계 최강의 기병을 거느린 몽골이 고려 영토를 침공했다. 1231년 인주 일대의 방어 책임자였던 홍대순과 홍복원 부자는 몽골군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1,500호의 백성들을 이끌고 항복을 했다. 홍복원은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을 따라다니며 개경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고 고려 조정에 항복을 종용하는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나중에는 몽골로부터 벼슬을 받아서 몽골군이 점령한 북방의 40여 성을 지키는 일도 했다. 몽골의 2차 침입 과정에서 몽골군의 총사령관인 살리타가 김윤후 승려의 화살에 맞아 죽는 일을 당하자 몽골군은 일시적으로 본국에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때 홍복원의 아버지 홍대순, 처자, 동생 홍백수가 모두 사로잡혔다. 홍씨 일가의 기반은 완전히 사라졌고 홍복원은 구사일생으로 몽골로 도망쳤다. 몽골은 홍복원과 그가 이끌고 온 주민들, 전쟁 중에 몽골로 끌고온 고려인들을 요양과 심양 지역에 정착시켰다. 그리고 홍복원을 지역 책임자로 임명해 고려 주민의 통치와 지역 개발을 담당하게 했다. 홍복원은 고려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향후 몽골이 고려를 다시 침공하거나 외교 협상을 할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복원은 가족을 모두 붙잡아 간 고려에 대한 원한으로 몽골을 향해 절대적인 충성을 했다. 홍복원의 이용 가치를 파악한 몽골은 1250년 3월, 고려로 사신을 보내 구금 상태에 있던 홍복원의 가족들을 모두 몽골로 보낼 것을 명령했다. 몽골 황제의 배려로 아버지와 재회한 홍복원은 그렇게 몽골 황제의 충직한 개가 되어 고려 원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군대를 이끌고 고려 곳곳을 약탈하여 수많은 전리품을 챙겼고 다수의 고려 주민을 학살하거나 생포해 몽골로 잡아갔다. 그 후 홍복원이 죽자 홍복원의 아들인 홍차구에게 삼별초 진압 임무가 주어졌다. 이는 황제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홍차구는 동족에 대한 연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 냉혈한이었다. 삼별초의 진압 과정에서 진도와 제주도 내의 무고한 주민들까지 닥치는 대로 포로로 삼았다. 진도에서 붙잡힌 주민만 1만 명이 넘었을 정도였으니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원종은 다급하게 쿠빌라이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몽골 조정은 무고한 고려인을 놓아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홍차구는 여전히 고려인을 포로로 잡아 몽골군 진영에서 부리거나 몽골로 보내 노비로 팔았다. 이러한 횡포에도 불구하고 원종은 이들을 제어할 힘이 없었다. 원종은 결단을 내려야했다. 이미 온 세상이 몽골제국의 천하가 된 상황이었다. 고려 왕실의 권위만으로는 몽골 황제의 지위를 등에 업은 홍차구를 절대 제어할 수 없었다. 절대적 권력을 가진 몽골 황실의 가족이 되는 것만이 홍차구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극약 처방이었다. 우리는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고 국왕이 대대로 몽골 황실의 사위가 된 일에 대해 국가의 자주성이 침해받고 독립적인 지위를 상실한 치욕적인 역사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원 간섭기를 외면하는 대신 공민왕의 반원 개혁과 몽골에 적대적인 정책으로 돌아서는 시기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도 있다. 13세기 이래 동아시아의 거대한 지각변동은 고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세계 제국 몽골이 등장하고 그 치하에서 고려의 국가적 존립을 위협하는 여러 세력들이 나타났을 때 고려 왕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당시 고려 왕실이 택했던 극적인 선택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종종 힘든 선택을 강요받거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우리의 현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 간섭기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내고 이 시기를 다시금 조명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j*****1 2023.04.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