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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 이면을 바라보는 것에는 미숙하다. 이 책이 말하는 동물의 너머도 그렇다. 동물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지만, 동물의 너머엔 실은 인간이 꾸리는 집단의 발자취가 남아 있었다.
근래 들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더 인간에게 가까운 대상으로 좁아졌고, 동물에 대한 담론은 기존의 이야기에서 좀 더 인간의 제도에 어울리는 식으로 꾸며졌다. 일부 사람들이 동물권이라는 말에 적대감을 들어내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 바탕을 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세워져 있다고 여기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는 동물의 존재를 인간과 가까이 두며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우리는 동물에게 더 이상 '짐승'이라 표현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이것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미디어의 영향이 가장 크게 드러난다. 미디어는 근 십여 년간 쉴 새 없이 '반려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조명하며, 동물을 반려 주체로서 거듭 상기시킨다. 이는 다시 수많은 채널로 확산되어 결국에 하나의 분위기를 창조해낸다. 미디어의 파급력과 확산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 범주에 대해서 동물을 포함해 생각해보니 다른 감정이 들었다. 동물 보호의 필요성과 몰입의 욕구에 대해, 이것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을 떠나 어째서 이런 생각을 품었을까라고 의문을 그린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저자는 동물이 처한 현실에 빗대어 인간의 면모를 비판적인 관점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우리가 동물을 좀 더 인간답게 대할수록 우리의 모습은 더욱 '인간적'이게 물들어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통에 더할 나위 없이 취약하다. 그런 반면에 약자에 대한 폭력에서는 무심결에 자행하기도 한다. 우리는 동물 이면의 놓인 인간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다른 대상에게서 찾은 모습인 것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동물원을 탈출한 퓨마의 이야기였다. 평소 유튜브에서 야생동물과 인간의 '우정' 따위를 그려낸 영상을 어쩌다 보니 알고리즘을 따라 자주 시청하곤 하는데,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야생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에 왜 불편함을 느껴왔는지를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동물 보호에 대한 움직임은 더욱 커지고 있고,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최근 큰 논란이 된 경기도 한 지역의 고양이 학살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의 처벌에 대한 논의와 충격받은 민심에 주목하고 싶다. 어째서 우리는 이 같은 인간을 극악무도하다며 비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저런 인간은 고양이로 시작하여 결국 주변의 약한 '인간'을 살해하고 말 것이라고 두려움과 경악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자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책정하는 것에 있어서 앞으로의 법과 제도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표현하게 만들기도 하는, 고통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 안식과 평온을 이루게 하기 위해 어떤 것부터 바라보아야 할지 이 너머가 고민된다.
동물에 대한 보호와 권리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한결 가벼운 내용일까 싶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진지한 담론이 형성되어 있어 공감과 고민을 함께 안겨주는 책이었다. 물음으로 끝나는 문장들은 하나같이 사유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이 화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이 담론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싶어졌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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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언어로 '펫'을 설명한다. 이분법에 예민하면서도 생각보다 본인도 여러 이분법적 생각을 갖고 있는듯하고 심지어 때로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동물 학대자들이 쓰는 논리를 지지하는 데 쓰이는 말까지 상대주의의 뒤에 숨어 거침없이 쓴다. 몇가지 주제는 정말 현장의 삶을 모르는순진한 학자의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비판해야할 문제엔 관대하고 자신이 잘 모르는듯한 문제에 대해서는 까다롭게 비판하여 결국 무게추가 이상한쪽으로 쏠려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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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인 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후 미국 코넬대학교 아시아학과에서 네팔의 반인신매매 활동 단체들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인류학과에서 한국의 이주·다문화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유기 동물보호 현장에서 일어나는 종간(interspecies) 연민 그리고 난민 담론의 인종·젠더 정치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저자가 쓴 <동물 너머>를 보겠습니다.
2018년 1월 신문 경제 섹션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 명을 넘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17년 2조 원 대에서 2018년 3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사는 유아용품 시장과 대조하면서 저출산으로 타격을 입은 유아복 업체들이 이제 강아지 옷을 포함한 반려동물 사업에 진출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아이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프레임은 반려문화의 성장을 저출산, 소비문화의 발달, 유동 인구의 증가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는 연구에서도 발견됩니다. 여기서 반려동물은 어린아이에 대한 감정적 대체물로서 '사람 아이'보다 금전이 덜 요구되며 양육이 쉬운, 그러면서도 감정적 보상을 제공해 주는 존재로 간주됩니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에 따르면 애정은 지배의 반대가 아니라 부드러운 지배,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지배일 뿐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인류학자 카오루 후쿠다는 1990년대 영국의 시골에서 행해지던 야생동물 사냥을 잔인한 전통으로 간주하고 사라져야 할 악습으로 바라보는 도시민들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중성화 수술, 미용 등 도시의 반려동물에게 일반적으로 가해지는 인위적 개입은 잔인함과는 거리가 먼 애정과 돌봄 행위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잔인함에 대한 정의가 얼마나 상대적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밥을 주고 돌봐주던 사람들이 떠난 후 완전히 철거되어 재건축·재개발이 예정된 공간에 여전히 살아가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사회적 이슈로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1992년 기사에서 길고양이가 캠퍼스 미화 차원에서 제거해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였다면, 2013년 기사에서는 죽게 내버려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존재이자 연민의 대상입니다. 20여 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반려동물의 급증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의 등장, 동물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급성장이 인간-동물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각종 미디어의 길고양이는 돌봄과 구조, 관리의 대상이며, 길고양이 학대 사건들은 뉴스에서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이제 행정적인 차원에서 도시를 돌보는 일에 길고양이에 대한 돌봄도 포함되기 시작했으며, 이 일은 비단 길고양이를 위한 일일뿐 아니라 도시 공간의 위생과 안전, 주민들의 쾌적한 삶을 돕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아시아의 '식용견'을 북반구의 가정으로 입양시키는 동물단체들의 활동은 동물의 '살 권리'라는 문제에 부응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인 개들을 비위생적으로 도살하고 잡아먹는 아시아의 잔혹한 전통문화라는 오리엔탈리즘적·인종주의적·식민주의적 시선도 불가피하게 재생산합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내 동물의 도축 및 거래, 원주민들의 고래 사냥, 히스패닉 이민자들의 투계, 흑인 남성들의 투견을 둘러싼 논쟁이 동물보호와 환경보호 문제뿐만 아니라 비백인 이민자와 인종적 소수자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사회적 차이에 관한 인종적 담론으로 발전했습니다. 결국 순수하게 동물만의 문제, 순수하게 인간만의 문제는 없습니다.
이 책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경향신문"에 '전의령의 동물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에서 시작했습니다. 인간-동물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재하는지를 탐구했고, 동물의 고통이 중요한 사회적·윤리적 문제가 되면서 어떤 움직임이 등장했는지를 알아봅니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동물 관계는 동시에 인간-인간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동물 너머>는 '인간 너머'의 담론과 동물권 담론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인간 얼굴의 단일화 그리고 비인간 동물에 대한 강조 속에서 가려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재발굴함으로 동물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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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평하면서 굉장히 인상깊었던 점은 출판사가 돋보기를 넣어주신 점인데... 굉장히 센스있어서 놀랐음... 맞아 받는 사람이 늘 최상의 눈상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난 책갈피로 썼지만 섬세해서 너무나 좋았다... 책은 조그맣고 보드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 나쁘지 않았고 굉장히 잘 읽혔음... 뒤쪽에 되게 많은 분량으로 참고서적 논문같은게 쭉 적혀있는데 여기 적힌 출전글들만 다 봐도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
서문부터 굉장히 날카롭게 현상과 동물과 인간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나는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셔서 굉장히 놀란 부분이 있다. 이게... 한국에서는 동물이라고 했을때 대다수가 개이고 이제는 전과는 달리 동물권에 대해 사람들이 매우 민감한데 그런 한편으로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 동물권은 약자들의 인권과 닿아있는 것 등.... 그렇다고 해서 내부 내용에서 개와 인간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은 아니고 정말 수많은 동물들이 나오는데, 동물의 죽음에 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동물의 죽음에 너무 냉혹한 사람들도 있어서 읽는 내내 되게 마음이 답답했다.. 특히 인상깊었던건 안락사 시켜야만 하는 동물들한테 그렇게 잘해주다가도.. 안락사 시킨다음에는 그걸 못견뎌서 그 약물로 자기도 자살해버린 사람에 대한 얘기였는데.. 삶과 죽음 그리고 동물에 관한 것은 정말 너무 복잡한 문제인 것 같다...마음이 너무너무 안 좋았어... 서문에 보니 이게 인간 너머? 던가 그 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던데 기후문제도 그렇고 동물 문제도 그렇고 볼 수록 마음 답답해지고 슬픈 이야기지만 외면하지 않고 하나씩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음... 이 책은 무언가에 대한 표현이 정착한 유래에 대해서나 현상황에 대해서 제법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주위에도 좀 더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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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영위하며 뭐라고 딱 찝어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묘하게 불쾌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너무나 큰 마당을 가진 한 기관에서 거주하는 길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는 10여년 동안 이 기관의 구성원들로부터 사랑과 미움을 받아 왔다. 사랑을 하는 입장에서, 미움을 넘어 혐오하는 입장에서 그 10여년은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레이어를 가져 왔을 테다. '그' 길고양이를 계속 두느냐? '그' 길고양이를 계속 키우느냐? '그' 길고양이를 계속 길에 두느냐? '그' 길고양이를 누구에게 주느냐? '그' 길고양이를 '누구'에게 주느냐? ....등의 수많은 질문들이 왔다 갔다 하여 현상을 유지하고 있음에 지끈지끈 머리가 아팠던 경험을 했다면, 혹은 동물이 아니더라도 묘한 구조 속에 틈새들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펴고 한 장, 한 장을 살펴 본다면 좋겠다. 동물권을 바탕으로 하여 뻗어나가는 생각들이 쏠쏠하게 재미있고 생각보다 무겁다. 확실히 이 책이랑 비슷한 다음을 찾게 된다.
_애 옷 대신 개 옷 p.16 여기서 반려동물은 어린아이에 대한 감정적 대체물로서 ‘사람 아이’보다 금전이 덜 요구되며 양육이 쉬운, 그러면서도 감정적 보상을 제공해주는 존재로 간주된다. 하지만 ‘유연한 존재’나 ‘감정적 소비재’가 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반려동물이 쉽게 ‘탈가족화’된다는 점도 지적되는데, 이는 한국에서 반려동물과 유기동물이 동시에 증가하는 현실과 공명한다.
_지배와 애정의 조합물 p.19 우리는 잔인함에 대한 정의가 얼마나 상대적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야생동물의 사냥과 도시의 펫들에게 일상화된 신체적 개입 중 어느 것이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지 또는 펫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애정의 소산이고 무엇이 지배욕의 소산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_‘아이 대신 반려동물’이 의미하는 것 p.25 바로 이 맥락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돌볼 것인가’는 윤리적 질문인 동시에 경제적 질문이 된다. 펫과 우리의 관계는 다른 무수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윤리적·의료기술적 실천인 만큼이나 경제적 실천인 것이다.
_개는 개 p.36 이는 반려 경험을 공동 구성하는 비인간 존재로서 반려동물이 본질적으로 자본과 무관하게 존재하기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자본에 의해 언제나 설명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_‘하루살이 도시’속 공동의 것 p.64 이들은 어쩌면 자본에 의한 창조적 파괴의 현장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새로운 삶과 관계들을 촉발하고 매개하는 송이버섯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럼으로써 곧 더 큰 이윤을 생산해낼 새 건축물들 사이로 여전히 그 흐름과 무관하거나 거스르는 또 다른 흐름을 사람들과 함께 공동구성해내고 있지 않을까
_순수한 희생양에 대한 연민 p.138 틱틴이 지적하듯이, 순수한 희생양에 대한 이 시대의 집착은 현실의 복잡성과 불평등의 역사구조를 비가시화하고 고통과 희생을 차등화한다.
_단순화된 교차성 속에서 탈각되는 것들 p.150 아무리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라 할지라도 그 나름의 행위자로 존재한다는 점이 추가돼야 한다. 다시 말해, 가부장제와 인종주의 속에서 여성과 유색인이 열등한 존재로 대상화됐다고 해서 그들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존재라는 점이 부정되어선 안 된다.
코로나19, 어떤 위기 p.165 억압자 인간과 희생양 동물이라는 상상력은 동물에 대한 연민과 특정 집단에 대한 인종적 혐오를 부추기고, 늘 그렇듯 인종적 혐오는 우리로 하여금 자본의 작동방식을 망각하게 한다. p.165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시선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투기적 이윤추구가 지속시키는 창조적 파괴의 현실로 이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 현실 속에서 변이 바이러스라는 인간-비인간 다종조합은 공동의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인류가 아닌 자본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