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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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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 _김광기 / 김영사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원주민들을 위협하는 폭력적이고 악질적인 이주민도 연상되지만, 시야를 좁히면 귀농한 이주민들과 원주민들(또는 토박이)이 연상됩니다.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이 못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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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

_김광기 / 김영사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원주민들을 위협하는 폭력적이고 악질적인 이주민도 연상되지만, 시야를 좁히면 귀농한 이주민들과 원주민들(또는 토박이)이 연상됩니다.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이 못마땅합니다. 이주민의 일거수일투족은 원주민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사건건 간섭하려 듭니다. (사견에 치우친)옳고 그름을 따집니다. 내 지인 중 정년퇴직 후 서울 아파트 생활을 마감하고, 처형이 살고 있는 마을의 시골집을 구입하고 수리해서 산지가 20년이 되었는데, 그 부부는 여전히 타지사람입니다. 그곳 이장까지 지냈는데도 주민들과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지라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귀농촌(귀농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가서 놀다가 온답니다.

 

 

이 책의 키워드 중 키워드가 이방인입니다. 내 주변에서 이방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보니 원주민, 이주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책의 저자 김광기 교수는 사회학자입니다.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란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해주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방인을 두려워하지 말자입니다. 이방인에겐 몸과 영혼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이방인이 되라고 권유합니다. 따돌림 받는다고 화내거나 낙심하지 말자고 합니다. 멋진 아싸가 되어서 인싸들에게 크게 한 방 날려주자고 합니다.

 

 

이방인이라는 주제는 사회학자들에게 관심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관심을 보인 것은 두 명의 사회학자뿐입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게오르그 짐멜과 미국의 알프레드 슈츠입니다. 짐멜은 이방인을 잠재적 방랑자로서 오늘 왔다가 내일 떠나가는 의미의 방랑자가 아닌 오늘 왔다가 내일도 머물 사람으로 정의했습니다. 유대인인 그의 정체성이 반영된 듯합니다. 사회학자, 철학자인 오스트리아 태생의 알프레드 슈츠(역시 유대인)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나치를 피해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어쩌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방인으로 머무르다 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저자는 위 두 사람의 학자보다 한발 더 나아갑니다. 저자가 정의하는 이방인은 떠나는 자입니다. 다른 세상을 접하는 모든 초짜를 의미합니다. 떠난다는 것은 물리적 장소를 벗어나는 것과 인지적으로 떠나는 것 모두입니다. “이방인은 각각의 공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자연적 태도와 문화적 유형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않고 그것들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부유하는 모험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환경과 공간 그리고 맥락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여정에서 한없이 위축되는 한편 무한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자이기도 하다. 들뜬 기대로 새롭고 낯선 세상(각각의 다른 맥락과 환경 그리고 시공간)에 겁 없이 온 몸을 던지지만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날선 긴장감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이다.”

 

많은 이야기 중 시류 또는 시대정신이라는 부분에 특히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당대에 팽배한 지배적인 정신을 의미하지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헤르더가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쓸 때는, ‘지배적인 정신과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런 말을 남겼다 합니다. “만일 당신이 시대정신과 결혼하면 바로 미망인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한국 사회에서는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대정신에 부합해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말이 주로 무식한 정치인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고 합니다.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러는지도 모르지요. ‘지배적인 정신과 장단을 맞추며 살아라. 입 다물고 따라와라 하는 마음으로 정치인들이 시대정신 어쩌고 하는 듯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회에 존재감을 인식시켜주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 홀로서기를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 고독을 느끼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건강한 이방인으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내편이없는자

#이방인을위한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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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쎄인트의책이야기2022

 

 


 

이달의 사락 s******5 2022.03.2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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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나를 찾기 위한 낯선 존재 되기의 필요성
"순수한 나를 찾기 위한 낯선 존재 되기의 필요성" 내용보기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당신이 다수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언제나 잠시 멈추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군중의 열기와 선전 속에서 나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면서 이방인이길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고찰해보는 이 책은 김영
"순수한 나를 찾기 위한 낯선 존재 되기의 필요성" 내용보기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당신이 다수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언제나 잠시 멈추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군중의 열기와 선전 속에서 나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면서 이방인이길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고찰해보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난민이나 이민자들의 얘기가 아닐까 싶었다. 먼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이방인. 고립되어 있는 사회에 무턱대고 나타난 사람들만이 꼭 이방인일까 라는 질문으로 책은 시작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이방인이 아닌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떠난다. 결국은 사회는 이방인들의 만남으로 이뤄져 있다. 그 만남의 시간이 길고 짧음만으로 이방인을 구분 짓고 있다.

  이방인의 반대되는 의미로 토박이가 있다. 토박이는 자연적 태도에 절어 있는 상태다. 자연적인 태도는 안전감을 주기 때문이다. 사회에 동화되어 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과도 같다. 익명성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그것은 '의심하지 말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우리 몸에 습관이 되고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의심을 더 빨리 사라지게 하고 의심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해 버린다. 담배 피우는 것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는 그 의심을 접어두게 된다.

  이방인은 호기심의 사람이고 모험의 사람이다. 변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신체와 정신 모두가 역동적인 사람이다. 얻어터지고 깨어지더라도 살아 있음을 느끼려면 이방인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신념의 가축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낯섦을 마주해야 한다. 

  영어의 Person은 페르소나에서 나왔다. 즉 인간은 가면인 셈이다. 수많은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아버지이며, 가장이며, 남편이며, 누구의 친구 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 역할에서 나오는 가면들 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역할을 편하게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많은 철학자는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 역할 놀이만 하다가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고독과 외로움은 혼자됨을 나타내지만 다른 의미가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은 "홀로 있음의 고통", 고독은 "홀로 있음의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토박이에게 혼자됨은 외로움일 테고 이방인에게 혼자됨은 고독일 것이다. 이방인에게 홀로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거나 회피하고픈 것이 아닌 반드시 있어야만 할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그 나라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라는 궁금증이 드는 때가 있다. 자연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드는 행동이다. 그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 자신의 행동을 그곳에 억지로 맞추다 보니 어색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어서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보면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조롱받거나 핍박받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이끌었던 천재들은 모두 괴짜였다. 그들은 주류 문화에서 벗어난 이방인들이었다. 모두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하던 시절에도 생명은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던 시절에도 의심을 품고 이방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세상을 바꿨다.

  익숙한 세계에 몸을 던진 채 흘러가듯 살아갈 것인지 들판에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낯선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속의 이방인을 찾아보자.

s*******9 2022.03.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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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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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완전히 낯선 곳이 돼버린 느낌이다. 타인과 접촉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협처럼 느껴지는 요즘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착용해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지구상의 모든 이를 이방인으로 느끼게 했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에게도 이방인이 되는 특별한 상황을 만들었다. 인문학책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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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완전히 낯선 곳이 돼버린 느낌이다. 타인과 접촉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협처럼 느껴지는 요즘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착용해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지구상의 모든 이를 이방인으로 느끼게 했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에게도 이방인이 되는 특별한 상황을 만들었다. 인문학책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은 이방인에 관한 이야기다. 이방인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더욱 확장시키는 책이다. 이방인이 되어본 사람만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익숙한 세계를 의심하고 낯설게 바라보기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으로 해보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말해서 토박이는 자연적 태도에 절어 있다. 마치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토박이의 정신과 몸은 자연적 태도로 절어 있다. 토박이가 자연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간해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자연적 태도 속에서 삶을 같이하는 이들은 자연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리 있다고 칭송하고 변치 않아 좋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살아 있다는 것은 한곳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진전이 없는 생은 사실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평생을 한 가지 생각과 태도에 빠져있다가 다른 세상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p.28


이방인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미 자의든 타의든 그런 것을 내려놓고 떠남을 강행하는 이방인은 떠남의 정점에서 자기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 자기를 비울 수 있는 이방인만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제야 자기 자신에 대해 명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떠날 수 있어야 하며 이방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책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에서 모든 인간이 이방인임을 선포한다. 이방인은 낯익은 곳과 사람을 떠나 낯선 곳을 방랑하는 사람이며, 낯익은 곳에서도 낯섦을 간파해 내는 사람이다.(p.8)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이방인이 돼야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익숙한 세계의 일상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굴해낼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보면 현상 이면에, 일상의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깨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방인의 반대말인 토박이는 자신의 세계에서 지배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이상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방인은 토박이와 다르다. 이방인의 눈에는 그가 바라보는 토박이의 세계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부자연스럽다. 토박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의 눈으로는 결코 깨치지 못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이방인의 눈에는 부자연스러운 이 세계가 과연 토박이의 눈에는 자연스러운가? 자연스럽다고 믿고 싶은 것은 아닌가?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시 한번 의문을 제기한다. 이 세계가 자연스럽지 않음에도 자연스럽다고 인식하는 것이 토박이의 착란 증세인지, 아니면 이 세계 자체가 이상한 것인지 말이다. 


애초에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 세계와 불화를 일으키자. 이 세계의 모든 형식과 우리에게 요구하는 규격을 거부하자.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후에 세계를 다시 보자. 그 어느 때보다 이방인의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r****2 2022.03.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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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둘러싸여 낯설게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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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데면데면한 척 밤이면 경기보다 잠에 집중했지만, 도로에 나선 적잖은 이들을 난 알고 있다. 붉은 티를 챙겨 입은 그들은 한날한시 한 공간에서 같은 구호를 외쳤다. 골이 들어갈 때면 서로를 얼싸안았고,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될 때마다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경기가 종료되면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흩어졌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해산은 비현실적으로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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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데면데면한 척 밤이면 경기보다 잠에 집중했지만, 도로에 나선 적잖은 이들을 난 알고 있다. 붉은 티를 챙겨 입은 그들은 한날한시 한 공간에서 같은 구호를 외쳤다. 골이 들어갈 때면 서로를 얼싸안았고,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될 때마다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경기가 종료되면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흩어졌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해산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16강 경기까지 내리 네 차례 이와 같은 경험이 이어졌고, 누군가의 강요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국가대표팀 경기이므로 그저 응원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찰나의 관계망 형성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점, 드넓고도 얕은 관계가 그토록 쉬이 해체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주목한 이는 별로 없었지 싶다.

예전에는 지역 공동체가 견고하고도 활발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대다수의 것들을 그 안에서 얻을 수 있었고, 한 아이의 성장을 위해 마을은 기꺼이 힘을 쏟았다. 아이가 지나가면 어른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자연스레 그 아이의 부모를 떠올렸다. 배를 곯지는 않았는지를 물었으며, 거리낌 없이 제 집에 들여 한 끼를 챙겨주기도 하였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정체성은 제각각이어서 어느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요원했다. 무엇보다도 다들 제 살길 강구하느라 바빠 바로 이웃집에 거주하는 이의 얼굴조차 알아채질 못할 때가 잦았다. 목례가 어마어마한 선의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과거가 그립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예전과 꼭 같아질 수는 없음을 잘 안다. 변한 패러다임에 적응해야만 하는 게 현대인의 숙명이다. 살아남을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이 묵직한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해 보인다.

저자가 주목한 건 코로나19.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다룬 책은 시중에 널렸다. 이미 3년째 지속되고 있는 현상인 만큼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불이 꺼질 줄 모르던 서울에서 8시반, 9시만 되어도 분주히 셔터를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줄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다. 한산까지는 아니어도 확실히 사람들은 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가급적 모임을 자제하고, 붐빈다 싶은 장소는 굳이 가려들지 않았다. 이는 얼마 전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참사를 겪으며 더욱 심화됐다. 만남이 어려워진 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어떠한 정체성을 갖게 될까.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얼룩졌다고는 해도 화성으로의 이주를 감행한 것처럼 모든 게 낯설지는 않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익숙한 제 집에서 격리생활을 했다. 행동반경이 좁아짐에 따라 늘 보아오던 동네 골목으로 동선의 제약이 이루어졌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삶은 익숙한 세계에 보다 유착된 형태로 변화했다. 그런데 왜 이 시대가 이리도 낯선 것일까. 심경에 변화라도 겪은 것일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설명은 더 이상의 분석을 어렵게 만든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무슨 이유에선가 변했다는데, 거기에 잣대를 어찌 들이댈 수 있단 말인지. 그보다는 서로에 대한 인식에 예전과 차이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전에는 만남 그 자체가 중했다. 내가 얻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이 누군지를 따지는데 에너지를 집중했다. 최근으로 오면서 보다 많은 변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해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의 증가는 물론 아니나,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상대가 바이러스의 보균자인지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는 타자에만 적용된 게 아니었다. 유독 한국 사람들은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형국이었다.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전에도 존재했다. 그 수준으로부터 벗어났음은 물론이다. 자신이 확진자인지 아닌지, 지금 이 순간 안전하다는 확신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외쳤다. 나도 나를 못 믿는다고. 의도적으로 익숙한 세계에 머물렀지만, 그 행동의 주체는 지독하리만치 낯설었다. 나 자신조차도 내 편이 아닌 사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절대고독이려나?

모든 게 무의미로 점철되는 모양새다. 너무도 당연한 일상을 회복하는 일마저도 이토록 더디게 전개되는데, 원대한 꿈을 꿔도 이를 이루기가 요원한 건 누구나 짐작 가능한 바다.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길 자처한 이들은 그렇다면 선견지명이 뛰어났던 걸까. 삶은 죽음이 있어 더욱 빛난다. 결국에는 끝나고야 말 시간들을 기어코 살아내는 존재인 우리에게 익숙함은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 삶을 받아들이든, 우리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탈을 벗어던질 수 없는 존재라고 하여도 괜찮다. 아플 걸 알면서도 한 걸음씩 서로에게 다가서는 고슴도치의 심정으로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어리석으면서 동시에 숭고하다.

이달의 사락 q*****2 2022.1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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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존재로 살아가기를 선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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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을 우연히 읽고, 이방인과 소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래 전에 생각해본 주제이지만 당시에는 논문만 읽고 토론만 한 기분이다. 그런 경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구체적인 스토리와 일상이 없어 지금도 텍스트 정보로만 떠오른다.   개념 설명은 여러 개일 수 있으나, 내게 가장 포괄적이자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소외’란 낯설지 않아야 하는 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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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을 우연히 읽고이방인과 소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오래 전에 생각해본 주제이지만 당시에는 논문만 읽고 토론만 한 기분이다그런 경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구체적인 스토리와 일상이 없어 지금도 텍스트 정보로만 떠오른다.

 

개념 설명은 여러 개일 수 있으나내게 가장 포괄적이자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소외란 낯설지 않아야 하는 대상이나 환경에서 낯설게 느끼거나 낯선 존재로 취급 받는 것이란 정의이다주객전도로 거칠게 바꿔볼 수도 있겠다.

 

이 설명을 이해하고 현상을 보면 당혹스럽고 황당한 많은 것들이 왜 그런지 부분적으로 설명이 된다근현대를 살면서 인간은 주체에서 밀려나 자신이 상상하고 물질화시킨 많은 체제 속에서 객체대상소모되는 노동력으로 소외되어왔다정교하고 비싼 멍청함이라고 해야 하나.

 

한편인간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낯선 환경에 데려다 놓는 선택을 한다여행이다이사도 유사하겠다따져보면 이는 특별하고 간헐적인 일이 아니다인간은 평생을 이방인이었다 토착민이 되는 과정을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다.

 

태어날 때는 모두가 이방인처음 자신이 사는 동네에 나갔을 때도 이방인유치원이나 학교에 처음 갔을 때도 이방인...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역시 어떤 의미로는 낯선 세계에 진입하는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경험이다.

 

수많은 가면을 썼다 벗으면서 사는 게 인간이고 그렇게 만든 게 세상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모든 오늘이 처음 맞는 새 날이라 낯설지만요즘처럼 낯설어서 알고 싶지도 않은 시절을 사는 것은 처음인 듯 힘이 든다코로나 판데믹도, 21세기의 침공 전쟁도뭐 하나 달라진 것 없는 참상과 폭력과 유희적 살해도국가체로서 멀쩡할 것인지 염려되는 대한민국도.

 

여기저기 흠집이 생기고 금이 가다가열도 받고 압박도 받아결국엔 한쪽 유리창이 팍삭 깨진 듯 망가진 기분이 든다생명체는 파괴를 회피하거나 복원하거나 하는 특징이 기본인데그런 걸 하고 사는 지 잘 모르겠다귀찮음과 무기력이 대세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별로 없다열심히 찾아보자면젊을 적에는 상상력이 활발해서 실체보다 더 두려워했던 텍스트들이 술렁술렁 읽히고 이해가 된다는 점이랄까이 책에도 등장하는 푸코데리다라캉... 번역도 큰 몫을 했지만 문해력의 바탕이 될 삶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지금은 그들의 어떤 문장들을 만나면,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하고 이해되기도 한다예전처럼 순수 이성과 지성이 벼린 날카롭고 깊고 선명한 학술적 주장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한편 좋지만 초월이라 없는 세상살이가 한편 쓸쓸하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수학 언어에 익숙하다는 것이 나도 모를 사회적 안정망에 속하게 해주었다는 것도 배운다운이 좋았다우리 모두가 이방인이고제 자신도 때론 낯설고오래 알던 사람도 낯설고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도 모르겠고묘한 관계성이다.

 

그렇다면 이방인이 되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이방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 

자연스러울 정도로 어떤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

 

푸코의 주장처럼 위해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생각’ 품은 것만으로 인간은 상대를 모멸하고 배제하고 차별하고 언어적으로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고 살인을 저지른다그런 행위를 인지의 기본 단계부터 설명해 주어 덕분에 사유의 길을 걸어 보았다.

 

같은 사람을 어떻게 저런 취급을 하는가는 의문은 바로 그 같은 점이 있는 존재라서 그럴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고찰을 배운다외계인을 차별하고 소외시키기란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상대의 미묘한 차이를 표적화하여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건 늘 끔찍하다.

 

자신으로부터서로에게서 한순간 낯설어지는 모두가 당면하는 관계성과 사회적 우연성을 잘 인지하자우리 모두를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갖는 이방인이 되자그물을 넓히려는 찢고 도망가려는 이들은 대체로 부지런하다.

 




 

 

k****k 2022.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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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이방인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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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위대한 문학은 두 가지 이야기 중 하나다. 여행을 떠나는 인간, 혹은 어떤 마을에 들어온 이방인의 이야기. by 레프 톨스토이 최근 인상깊게 본 기사를 공유해볼까 한다. 음악 아티스트 박재범이 자신이 빈 손으로 세워 일군 회사를 빈 손으로나오고, 거대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는 뉴스였다. 자신의 소속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는 잘 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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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위대한 문학은 두 가지 이야기 중 하나다. 여행을 떠나는 인간, 혹은 어떤 마을에 들어온 이방인의 이야기. by 레프 톨스토이

최근 인상깊게 본 기사를 공유해볼까 한다. 음악 아티스트 박재범이 자신이 빈 손으로 세워 일군 회사를 빈 손으로나오고, 거대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는 뉴스였다. 자신의 소속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는 잘 안다. 그것도 내가 만든 소속이거나 오랜 시간 함께 한 곳이라면 더더욱. 박재범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길을 떠났다. 

꼭 ‘떠남’이 필요할까? 원래 둥지를 떠나 낯선 곳을 부유한다는 것이 타자가 볼 땐 그 결정이 너무 아깝고 헛고생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 책은 삶의 진실을 찾기 위해선 이방인이 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방인’이란 무엇인가. 

 

결국 이방인은 사람 그 자체다. 아무리 한 곳에 안주하는 사람이더라도 한번쯤은 떠남을 겪는다. 이 부분에서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에서 읽은 ‘호모 비야토르’가 생각났다. 농경사회가 오기 전에는 생존을 위해 이동해야만했고 그때의 유전자가 새겨져 인간은 본능적으로 떠남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길 위에서 나를 찾는 것이 이방인의 숙명이자 사람의 목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푸코가 성주에게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필요는 없어요. 삶과 일에서 중요한 것은 이전의 자기였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요.” (p.49)

 

이방인은 주인이 아닌 손님, 자신 밖에 서있는 자, 프로그램되지 않은 사람, 마치 흐르는 물이다. 이방인의 절대적인 개념은 없으며, 그렇기에 그 기준조차 있을 수 없다. 

이방인은 곧 나이고, 우리 모두이기에 사전적 정의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철학적이고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가 진실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애초에 진실조차도 상대적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내가 놓쳤던 타자로서의 나를만나 나의 불온함을 느껴볼 수 있었다.

- 인생은 비정상과 정상의 두 마리 말이 끄는 쌍두마차가 되어야 한다. (..) 양쪽이 있을 때만이 인생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p.116)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k*****a 2022.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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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의 즐거움.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의 즐거움." 내용보기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_ 김광기 _ 김영사   노란 빛을 띄는 톤 다운된 갈색 색지. 따뜻하지만 어딘가 적적한 색을 넘기면 이방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쓸쓸히 떠나지만 헤메는 발걸음에 이유가 있는 이방인들을 격려하는 이 책에서는 우리가 왜 끊임없이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또 그래야 하는지 담담히 설명한다. 모든 인간은 평생 서툴게 살아간다. 실수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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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_ 김광기 _ 김영사

 

노란 빛을 띄는 톤 다운된 갈색 색지. 따뜻하지만 어딘가 적적한 색을 넘기면 이방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쓸쓸히 떠나지만 헤메는 발걸음에 이유가 있는 이방인들을 격려하는 이 책에서는 우리가 왜 끊임없이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또 그래야 하는지 담담히 설명한다.

모든 인간은 평생 서툴게 살아간다. 실수를 하고 다시 배운다. 우리는 그 여정을 걸어가며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된다. 저자는 현자가 될 수 없으나 그와 가까워지려 걸어가는 수 많은 인간을 이방인으로 칭한다. 삶을 여행에 많이 비유들 하나, 책을 읽을수록 고행을 이어가는 순례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서툰 삶 사이에서 많은 것들을 쌓아가며 보람있는 것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인간. 저자가 설명하는 현자는 모든 이방인들이 그리는 미래의 자신이자 삶의 목표다.

저자의 글이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철학을 기반으로 사회학을 설명한다.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의 의견은 책장을 넘길수록 또렷해진다. 토박이와 이방인. 안주하는 삶과 나아가는 삶을 가진 이들을 비유함이 아닐까.

우리는 왜 떠나야 하는가. 끊임 없이 나아가야하는가. 살아가면서 당연하다고 맞닥뜨리고 안주하는 모습을 자연적 태도에 편승하는 토박이로 묘사한다. 당연한 삶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적 태도를 거스르기 시작하는 첫 번째 계단이다. 이는 현실에 안주함으로써 편안함을 얻는 것과 대비된다. 새로움, 변화는 어쩌면 토박이에게 불안감을 심어 줄 수도 있다. 드물게 환영을 받을 수도 있으나 저자는 가뭄에 콩나듯환영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방인은 알 수 없는 미래를 가져오는 존재다. 그 미래를 가져오는 것을 넘어 뛰어드는 당사자다. 이 책에서 이방인은 어떠한 학문을 처음 접하는 학도나, 스마트폰을 처음 배우는 노인 등 넓게 확대하여 말한다. 더 넓게, 저자는 인간 그 자체가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한동안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말이 사회 전반에 떠돌았다. 누군가는 그를 지향하고, 누군가는 조롱했다. 저자는 인간 그 자체가 이방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모든 인간이 모든 순간 이방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 안의 존재.’ 저자가 말하는 개념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한마디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생각난다. 다만 비판의 용도가 아니라 깨우침의 용도다. 우리는 우물안의 개구리로 태어나서 이 곳이 우물 안이라고 직시 할 수 있는가.

처음에는 냉소적인 문체라고 느꼈던 글들이 이어질수록 격려로 읽혔다. 문제를 인식한 인간, 우물 속에 들어 있음을 깨닫고 밖으로 나가려는 개구리. 우물 밖을 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안주한 개구리들을 불안하게 하고 우물 속을 극찬하며 정당화하는 개구리들에게 조롱을 듣기도 한다. 균열을 일으키는 외곽의 인간. 안주하는 삶에서 탈주하는 인간. 그래서 사람들에게 환대 받지 못하는 깨어있는 인간.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우리는 또 편안함을 버리고 미래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난다.

대부분의 삶을 이방인으로 보낸 것이 아닐까. 책을 펼 때에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한 나는 서서히 이방인으로 살아온 나의 삶이 벅차고 기특했다. 앞으로도 계숙 두려움이 일겠지만, 불안과 변화를 가져오는 이방인으로 한 치 앞을 먼저 걸어가자는 다짐이 이어진다. 어떤 삶에도 익숙해지지 않겠다는 결연함을 이끌어주는 김광기 교수의 말들은, 그 자체로 용감한 이들에게 힘이 된다.

책 속의 구절을 인용하며 이방인들을 함께 응원한다.

 

이방인은 무엇보다 내면이 강한 자다. 모든 시련이 그의 내면을 강하게 만든다. 그의 외부가 바뀌고 깨질수록 그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진다. 이방인의 눈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고정되지 않는다. 그는 비록 그의 겉과 외부가 깨어져도 여전히 단단한 외부를 갈망하는 자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d****8 2022.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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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 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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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서늘하고 고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방인'이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박혀 있었고,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먹구름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이방인, 주된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 무리와 섞이지 않는 사람은 무리에서 뒤쳐진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생각으로 자신만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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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서늘하고 고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방인'이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박혀 있었고,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먹구름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이방인, 주된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 무리와 섞이지 않는 사람은 무리에서 뒤쳐진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생각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28p. 자연적 태도 속에서 삶을 같이하는 이들은 자연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리 있다고 칭송하고 변치 않아 좋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살아 있다는 것은 한 곳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진전이 없는 생은 사실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평생을 한 가지 생각과 태도에 빠져 있다가 다른 세상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49p. 무엇이 되기 위해 우리는 떠나야 한다. 어느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무리와 섞여 있으면 무리가 가는 방향대로 따라갈 뿐, 무리 안에서 맴도는 것 뿐이다. 무리라는 알을 깨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가 이방인이 될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이방인을 자처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있고 사회의 무리 속에 속해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이방인의 의미는 단순하게 물리적인 이방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고의 전환. 이방인처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개성을 갈고 닦는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 될 만한 자질이 있는가.

용기있는 이방인을 위해 계속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책장을 덮으며 깨달았다.

이방인이 되자. 나를 깨트릴 수 있는.

235-236p. 저항은 파열을 전제로 한다. 특히 저항하는 자 자신의 파열이다.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저항은 그 세상을 깨부술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파괴한다. 그것은 그 세상에 물들었던 '나'다. 그것이 깨어지지 않고서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방인은 자신이 먼저 깨진 자다. 과거의 자기를 깨고 과거에 자신이 몸담았던 세상을 깬 자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g*****9 2022.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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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이방인이고, 이방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고, 이방인이어야 한다." 내용보기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당신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연스럽게, "이방인?", "이방인이 뭐지?", "어떤 사람이 이방인이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이방인'이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를 질문하고 싶다. 낯선 환경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외부인, 이상한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람, 유명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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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당신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연스럽게, "이방인?", "이방인이 뭐지?", "어떤 사람이 이방인이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이방인'이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를 질문하고 싶다. 낯선 환경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외부인, 이상한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람, 유명 고전문학 중 하나인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 등이 떠오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꼼꼼하게, 차분하게 하나씩 대답해주는 책이다. '사회학'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을 보고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전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왠만한 에세이보다도 더 잘 읽혔다. 마치 교양 강의를 듣고, '이방인'을 주제로 저자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물씬 들었던 책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방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이며, 이 사회에서 '이방인'이란 무엇인지를 계속 쫓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사회학에 문외한일지라도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이다.

'이방인'이란 어떤 사람이며, 이방인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하며 결국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고, 이방인이어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방인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고향이 아닌 '낯선 환경' 속 '외부인'만이 이방인인 것은 아니다. 일반 사람과 비슷한 물리적 공간에서 살아갈 지라도 익숙한 것,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정상이라 여겨지는 것에 질문을 던져 혼란스럽게 만들고, 끊임없이 낯섦과 의심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방인이다.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어야한다는 생각은 결국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낯선 사람, 이방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저자의 에피소드로 시작한 이 책은 결국 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물음으로써 끝이 난다. 마침 이 책을 읽기 전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었던 터라 이 두 권의 여운이 겹쳐져 삶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매력적인 소제목들이다. '떠남', '상처', '거리', '각성'이라는, 이방인의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를 제목으로 하여 이방인과 이방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인생은 영화가 시작된 후 늦게 들어간 영화관', '우리 모두는 통역자, 그런데 부실한', '잠자지 않을 테야'와 같은 제목들을 보고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고, 재치있다 싶다가도 내용을 읽고보면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회 현실과 아주 딱 들어맞는, 내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의 책이다. 익숙한 사고방식과 환경에 머무르며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방인이라는 존재는 적이자 괴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익숙함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즉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더욱 똘똘 뭉쳐 이방인을 '비정상'이라 낙인찍고, 증오한다. 증오의 화살은 결국 '비정상'인 이방인에서 시작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낯섦을 추구하고,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파고 들며 의심하고, 질문하는 '이방인'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각종 뉴스 기사들 혹은 살아가며 마주한 사건들에서 무언가 불편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한 번쯤 의문을 품게 된다면 '이방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으로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더욱 더 '이방인'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 기억하고 싶은 문장

"이방인은 각각의 공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자연적 태도와 문화적 유형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않고 그것들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부유하는 모험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환경과 공간 그리고 맥락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여정에서 한없이 위축되는 한편 무한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자이기도 하다. 들뜬 기대로 새롭고 낯선 세상에 겁 없이 온몸을 던지지만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날선 긴장감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이다." (52쪽)

"이른바 비정상을 이상한 것으로 간주하며 밀어낸 결과로 우리네 삶이 예술품이 안 되는 것이다. 인생은 비정상과 정상의 두 마리 말이 끄는 쌍두마차가 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할 수가 없다. 양쪽이 있을 때만이 인생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을 멀리 배척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16쪽)

k****1 2022.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회는 종종 범죄자를 용서해준다. 그러나 몽상가에게는 국물도 없다.-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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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종종 범죄자를 용서해준다. 그러나 몽상가에게는 국물도 없다.-오스카 와일드   광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머물지 않고 나아가려고 애쓰는 마음. 사실은 수없이 무너지면서도 부단히 일어나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마음. 자신이 걸려 넘어진 돌을 다시금 줍고. 씩씩하게 일어나 자신의 단단한 성을 쌓아 올리는 마음들. 이 책은 바로 그런 광야를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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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종종 범죄자를 용서해준다. 그러나 몽상가에게는 국물도 없다.-오스카 와일드

 

광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머물지 않고 나아가려고 애쓰는 마음. 사실은 수없이 무너지면서도 부단히 일어나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마음. 자신이 걸려 넘어진 돌을 다시금 줍고. 씩씩하게 일어나 자신의 단단한 성을 쌓아 올리는 마음들.

이 책은 바로 그런 광야를 살아가는 모든 이방인들을 위한 책이다. 한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자신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분명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중간 중간에 나오는 철학자들과 시인, 사회학자들의 말들도 좋고, 책 또한 가볍게 읽힌다. 사회학 책이 지루한 경우도 많은데 이번 책은 특히나 작가분께서 대중을 타겟으로 쉽게 쓴 책이라 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쓴 일기와 책의 내용이 많이 맞닿아있어서 놀랐다.

 

 

 

 

1.무너져 내려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도량이 넓고 크다. 자신이 깨진 만큼, 그리고 허물어진 만큼 그 속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무너져 내려본 사람이 바로 이방인이다. (…)

깨진 인간, 무너져 내린 인간, 정신이 피투성이가 된 인간. 그래서 맷집이 단단해진 인간만이 그렇지 않은 인간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 가능성이 커진다.

p. 135

 

외국을 나가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될 감정은 소외감이다. 자국민의 견고한 바운더리에는 어쩐지 내가 함부로 끼어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방인은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고. 철저히 소수인 위치에 속하게 되고, 비주류가 된다. 아마 정신을 해방시키려 노력하는 자들도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주류라고 외치는 사회 속에서 나혼자 아니라고 외치는 것만큼 외로운 일도 없지. 하지만 그만큼 무너지고, 허물어진 만큼. 깨진 만큼 더욱 꼼꼼하게 속을 채워낼 수 있다. 바다를 말하지 않아도 바다가 되고 싶다는 말. 바다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 오염됨이 없어도 오염원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이..

 

 

 

2.

슬픈 것은. 우리는 삶의 진부함을 바꾸기 위해 이것 저것을 시도하지만 (화려한 옷을 입기, 독특한 영화를 보기, 특별한 노래를 듣기) 인생에 있어서는 결코 함부로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획일성과 단일성 속에서. 사물에는 낯섦을 통크게 허용하지만 실제 사람과 관련된 생활에서는 일말의 낯섦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과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밀어내려고 한다.

3.

공항에서 아이패드를 잃어버렸고, 한국에 들어와 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찾을 수 없어진 뒤였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커다란 상심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사람도, 물건도. 결국은 소유할 수 있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에게는 비밀로 한 뒤 조용히 아이패드를 떠나보냈다. 엄마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 더 싫다.

어쩌면 삶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만큼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가, 쉽게 버리고, 쉽게 얻기가. 쉽다. 어차피 0의 상태임을 인정하기. 아무것도 온전히 가질 수 없다.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도, 어떤 물건도. 수없이 떠나 보내고 잃어 버리며 알아낸 진리다. 모든 게 0이라고 생각하면 훌훌 털고 떠나는 것도 쉬워 진다. 영혼을 한없이 가볍게 유지하는 것만큼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없다.

4.

타인을 향한 증오는 결국 다시 자신에 대한 증오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부메랑이 되어 결국은 자신 혐오로 끝나게 된다.

 

 

 

 

 

 

“낯섦없이 절묘한 미는 없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 나는 내 삶이 언제나 낯설었으면 한다. 낯익은 것이 아닌 낯선 것들. 언제나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는 분수의 총집합. 낯선 꽃, 낯선 날씨, 낯선 공기, 낯선 고양이. 낯선 것들을 친숙하게 만들고, 다시금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어쩌면 모든 이방인은, 권태를 견딜 수 없는자들일지도 모른다. 토마스 칼라일의 말처럼. “권태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무슨 일이든 벌이다가 소진해서 죽을 것”이러는 그 말에 공감을 한다.

아무튼 어느 곳이든 편안함이 아닌 낯섦을 추구하는 자가 되기. 매일을 방문객인 것처럼 살고 싶다. 어디든 속하지 않은 것처럼. 허위와 주류의 시대에서 벗어나고. 끊임없이 온전한 자유에 이르도록 노력하고 싶다.

 

광야는 괴로움을 통해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니체의 말처럼 모든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에 빠져드는 것은 분명 좋은 경험이다. 고독을 광야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사람이 좋다. 우리는 이방인이 됨으로써 진정 성장할 수 있다.

*이 서평은 김영사 서포터즈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q*****6 2022.03.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