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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미국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출간되었을 때 《윌스트리트저널》은 '『율리시스』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20세기 문학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작품의 영역본이 드디어, 마침내 나왔다'라고 할 정도로 높은 찬사를 받았다. 이 소설은 각각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 소설'이며, 작중 인물의 사고(思考)를 바탕으로 관념적 대화와 철학적 사유가 주를 이루는 '사유 소설' 또는 '관념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총 5권으로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자랑하는 소설이며, 1권은 2부까지의 내용만 다루고 있다.
『특성 없는 남자』, 로베르트 무질 저: 신지영 역/ (주) 나남, 2022년 3월 5일 로베르트 무질(1880~1942)은 오스트리아의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고,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군사학교와 공과대학을 거쳐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슈투트가르트 공대 재학 중 집필한 자전적 소설 《생도 퇴얼레스의 혼란, 1906》이 성공을 거두어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5년간의 제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1920년대 초 《특성 없는 남자》집필을 시작한다. 1930년 제 1권, 1932년 제 2권이 출간되지만 이후 경제적 어려움, 건강 악화, 1938년 나치의 오스트리아 병합, 망명 등으로 인해 소설의 마무리 작업은 진척을 보지 못하고 결국 1942년 무질이 망명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뇌졸증으로 급작스레 사망함으로써 이 대작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책날개 발췌)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13년 8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상류층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속도와 소음으로 가득찬 대로를 걸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트럭에 치인 부상자는 구급차에 실려간다. 1장의 이야기는 여기서 막을 내린다. 아무런 후속 이야기도 없이 말이다. 사람의 감정은 무시되고 점점 더 기계화 되고 있는 문명의 시대를 작가는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운 흰색 건물의 창이 열리면 사면 벽이 책으로 가득한 방이 보인다. 이 방은 특성 없는 남자의 것이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울리히이다. 청소년 시기에 그는 애국심 고취를 과제로 한 작문을 완성했는데,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조국이 최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는 얼토당토 않을 글을 썼다가 명문학교였던 김나지움에서 재적당할 뻔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울리히는 벨기에의 작은 사립학교로 보내졌다. 졸업 후 울리히는 군인, 공학자의 길을 거쳐 수학자가 되었고, 32세인 지금 수학자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가 머무를 작은 성을 살 수 있도록 그의 아버지에게 자금을 부탁했다. 그리고 울리히는 여름별장을 얻어 비싼대금을 들어 수리한 탓에 그의 아버지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다.그렇게 울리히는 세상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한편 울리히의 아버지는 예순 아홉의 노인으로 젊은 시절부터 백작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경험을 쌓아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귀족들과의 친분으로 봉건귀족의 법률 고문까지 맡게 되었으며, 마침내 세습귀족이란 신분을 얻게 되었다. 울리히의 아버지는 특성있는 남자로서 현실감각을 중요시 여겼다. 따라서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은 특성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울리히는 작은 바리에테에서 가수로 일하는 레오티네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날씬한 큰 키에 풍만하며 활기가 없는 여자로 울리히는 그녀를 레오나라고 불렀다. 가난한 어린 시절 굶주림에 시달린 그녀는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엄청난 대식가였다. 점점 더 증가하는 과학적 지식과 더불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질서 잡힌 세상에서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것, 즉 감정과 체험은 점점 설 곳을 잃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로 작가는 레오나와 보나데아, 그리고 모스부르거와 디오티마를 상징적 비유로 그들의 설 곳 없는 감정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표출하고 있음을 책에서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 밤 세 명의 부랑자한테 심하게 구타를 당한 울리히는 아름다운 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서른 살쯤 된 귀부인을 그는 보나데아라고 불렀다. 그녀는 명망있는 법률가의 아내였고, 두 아들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만나는 남자들마다 거짓된 가정사를 동화처럼 슬프게 꾸며 의미심장하게 들려주었는데, 울리히한테도 역시 그랬다. 어느 날 울리히는 보나데아에게 모스부르거의 범죄를 옹호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연쇄살인마를 어떻게 이해하냐며 따졌다. 그는 보나데아에게 모스브루거의 범죄의 정당성을 이해 못한다면, 그녀의 간통도 정당하지 못한 거라며 말했다. 그녀는 울리히가 고의로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오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심을 알았지만 이를 막지 않았다.
귀향 이후 울리히는 몇 번이나 발터와 클라리세를 찾아갔다. 3년 전 그의 친구와 결혼한 클라리세는 스물두 살이었고, 울리히는 니체의 책을 결혼 선물로 주었다. 클라리세와 울리히는 발터만 남겨두고 산책을 하면서 니체의 철학을 논하다. 그리고 그녀는 발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른 네살의 발터는 예술관청에서 일하고 있다. 발터는 예술을 즐기는 취미 애호가인'딜레탕티슴'의 경향을 두고 있다. 늘 천재하고만 결혼할 꿈을 가졌던 그녀는 열다섯 살 때부터 발터를 천재라고 여겼는데, 그의 여러 번의 궤적의 삶으로 그녀는 실망을 했고, 발터에게 저항했다. 울리히가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발터는 창가로 다가갔다. 질투심이 그를 괴롭협다. 발터의 감정 표출은 어디로 향할지 향후가 궁금하다.
이 시기 모스브루거 사건이 세기의 관심을 끌었다. 모스브루거가 여자 한 명을, 가장 천한 창녀 한 명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이다. 울리히는 이 사건을 기사로 접하게 되었고, 그를 직접 본 것은 마지막 재판정에서였다. 그는 처음부터 그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재판장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울리히는 왜 그런 잔인한 연쇄살인마를 변호하며, 관심을 갖는 것인지 읽으면서도 이해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울리히는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오스트리아 황제 재위 축하 기념식을 위해 울리히가 슈탈부르크 백작을 찾아가면 한 자리를 줄거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황실 외무국장의 집안인 투치 가와의 교제를 더 이상 미루지말고, 곧장 투치 부인을 찾아가라는 당부의 내용이었다. 울리히는 아버지의 당부 대로 슈탈부르크 백작을 만나게 되고, 첫 대면에 모스부르거를 변호하는 이야기를 하다니...조금은 사차원적인 구석이 있는 울리히가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백작은 당황했지만 약속한대로 소개서를 작성하여 그에게 건네주었다. 평행운동의 창시자인 라인스도르프 백작에게 보내는 울리히에 대한 추천서인 셈이다. 평행운동이란 독일의 빌헬름 2세 재위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소식을 듣고 카카니아(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도 황제의 재위 7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에 맞서 애국운동을 펼치자는 애국운동이다. 이 운동의 준비를 위한 창립 위원회가 구성되는 과정과 인물들로 2부의 내용은 펼쳐지고 있다. 카카니아는 특성없는 나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 제국은 1867년에 생긴 다민족 국가다. 이처럼 소설에서 파편화된 민족주의에 시달리는 카카니아는 근대 이후 합리화되어 가는 세계이며 전통적인 단일 종교의 세계상을 붕괴시켰지만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 못하는 시대에 대한 비유이며, 카카니아인은 실존의 충분한 근거를 갖지 못한 근대인에 대한 비유와 상징인 것이다.
울리히는 바로 그의 사촌인 디오티마를 만나러 갔다. 그녀의 남편은 투치 국장으로 시민계급 출신 공무원에서 진보적 성향이 있는 장관을 모신 덕분에 황실 외무부에 요직을 맡을 수 있었다. 디오티마는 '평행 운동'의 중요성과 중요한 기회라는 사실을 알리며, 창립 위원회를 발족시킬 것이라고 울리히에게 말했다. 한편 디오티마를 찾아온 파울 아른하임 박사는 독일의 가장 막강한 지배자였고, 대부호였다. 투치 국장은 아른하임이 제국의 장관직까지 대비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인물임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여러 번 아른하임은 디오티마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고, 차츰 그녀는 그에게 애정을 쏟게 된다. 이 평행운동은 디오티마와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합작품으로 여길 정도로 그들의 관계는 매우 두터웠다. 그러나 백작은 감시하기가 쉽지 않은 혁신운동에 자신의 궁전을 개방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겼기에 디오티마의 집을 이용한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평행운동, 즉 애국운동에 가담한 사람들로는 로이드 은행의 레오 페셀 지점장과 오스트리아 연방은행 총재를 비롯한 전직 장관 홀츠코프와 비스니에츠키 남작과 울리히, 그리고 파울 아른하임을 포함한 창립 위원회를 발족하게 되면서 1권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과연 평행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 책 『특성 없는 남자』를 읽으면서, 생각과 관념에만 사로잡혀서 정작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울리히 때문에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아무리 심각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웃음코드가 빠지면 재미가 없는 것처럼 무질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울리히를 웃음 코드로 이용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원래 나는 개그맨들의 억지 웃음과 연기를 싫어하다보니, 잘 보지도 않고, 그닥 웃지도 않는다. 그러나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경우 섬광처럼 빛나는 웃음코드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땐 어찌나 웃기던지 사뭇 심각한 내용의 스토리도 한 줄기 희망으로 내용을 전환시켜주는 유머와 위트를 만났을 때처럼 내게는 울리히가 그랬다. 이 소설이 사색과 사유를 전제로 하는 소설이기에 작중 인물들의 대화도 거의 관념적인 대화들로 정신을 못차리면 무슨 뜻인지 이야기의 맥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나는 철학적 사유가 녹아있는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마치 소설책이 아닌 철학책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줄거리가 그닥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줄거리를 파악해야 작가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으며, 상징과 비유를 통해 이 책을 서사했기 때문에 의미 파악이 용이할 수 있다는 점은 독자들도 다 잘 알것이다. 이 책 속에 많은 삶의 지혜와 철학들이 뭉뚱그려 녹아 있음을 무질의 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라면 관심을 가져 볼 일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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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 중 이제 5분의 1인 1권만을 읽은 입장에서 감상평을 남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눈 가리고 손으로 코끼리 코 만지면서 억측하는것과 다르지 않은 측면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기에 신나게 과대망상식의 억측도 즐겁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은 1913년 8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수도 빈에서 시작한다. 이를 소개하는 첫 장이 상당히 인상깊은데, 짧은 단편으로 작가가 앞으로 전개할 소설의 배경과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를 담은 듯 보였다. 과학적 수치와 단어들로 객관화된 설명 속에 배경이 되는 1913년 8월임을 밝히고 이어지는 수도 빈의 묘사와 함께 상류층 등장인물 두명이 걸어가던 도중 트럭 사고로 행인 한명이 치이는 것을 목격한다.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해보려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전문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등장인물 여성이 연민 등의 감정으로 괴로워하자 남성 등장인물이 "이 차의 제동거리가 너무 깁니다" 라고 하고 부인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로써 이 끔찍한 사고가 어떤 질서 속에 편입되고 더이상 그녀와 직접 관계가 없는 기술적 문제가 된 것으로 충분했다` 이후 구급차와 전문가들이 와서 청결하고 규정을 잘 지킨 차량 내부로 죽은 것 처럼 보이는 부상자를 옮겼고 작가는 `사람들은 합법적이고 질서에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당한 인상마저 받고 자리를 떴다`고 묘사한다. 이후 아른하임같은 남성은 미국의 통계를 인용하며 해마다 19만명이 사망하고 45만명이 다친다고 하자, 부인은 `여전히 특별한 것을 체험했다는 부당한 감정을 갖고` 그가 죽었냐고 물으며 마무리된다.
주인공 울리히는 특성없는 남자라고 호명된다. 작가 무질의 학업 과정과 거의 비슷한 과정을 밟는데 군사학교-공학자-수학자 의 과정이다. 울리히는 수학자로서 적잖은 성과를 올린후 다시 한번 성찰을 통해 수학자로서의 정체성 또한 벗어버리려한다. `그는 시대가 선호하는 모든 능력과 특성을 자신 안에서 놀랍도록 선명하게 보았지만 이것을 사용할 가능성이 없어졌다. 축구선수와 말 조차 천재성이 있다면, 결국 천재성을 사용하는 것만이 자신의 고유성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적절히 사용할 곳을 찾기 위해 1년간 삶에서 휴가를 내기로 결심했다`
여기까지의 서술만으로도 느껴지는 것은 이 소설이 시대상과 그안에 속한 자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과 투쟁이 모든 순간과 장면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존재론적 사유와 입장에서 각각의 인물들은 당연히 모두 다른 각자의 태도를 취하며 이를 대하는 울리히 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점점 더 정체성을 드러내게 되고 또한 서사의 요소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1권이다 보니 서사에 대한 진행은 사실 많지 않다. 인물들의 소개, 배경이 되는 카카니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황 묘사 이후 조금 베일을 벗는 주서사는 울리히가 카카니아의 평행운동 준비위원회에 소속된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황제 빌헬름2세가 계획한 1918년 독일정부 30주년 기념행사에 대응하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가 추진하던 오스트리아 70주년 기념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라인스도르프 백작과 디오티마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평행운동 준비는 뜬구름 잡는 느낌이다. 거창하고 성대한 상징적인 민족적 국가적 정신의 이념을 찾아서 담아내려는 의도는 결국 뜬구름 잡으며 산으로 가는 인상만을 준다. 더군다나 이 행사가 열리는 1918년 벌어지는 파국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후권으로 진행될 평행운동의 서사가 어떤걸 담아내게 될지 궁금하다. 민족주의를 통한 배타성의 함양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이미 분열되어 국가적 정체성이 모호한 상태의 카카니아로 대표되는 당시 시대상을 통해 다른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여튼 평행운동의 주서사가 진행되는 도중 인물들과 작은 사건들을 통해 울리히는 끝없이 성찰하고 작용한다. 그가 성찰하며 변화한다기 보다는 대화나 전지적 시점을 통해 그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가끔은 배경적 묘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특성 없는 남자로 호명된 울리히와 반대로 그의 아버지는 특성 `있는` 남자로 명해진다. 그는 현 사회구조에 순응하며 유용한 특성을 발굴해 소유하고 이를 이용해 높은 지위를 획득한 인물이고, 울리히는 영웅적 위대함을 꿈꾸며 도전했지만 매 과정에서 어떤 계기들을 통해 성찰하게 되고 성공적 성취나 과정에 있다가도 자신의 선택으로 이를 버려버렸다. 울리히는 주어진 현실세계의 강요를 견뎌내고 대신 자아의 체험과 직관을 통한 성찰의 과정을 통해 가능세계를 추구한다. 근대의 과학적 합리성으로 개인적 체험과 내적 직관은 배제되고 단지 수치와 통계, 과학적 데이터로 낱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정신의 위기와 몰락을 겪는 듯 보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방황하고 저항하기도 하고 순응하기도 하며 자신의 실존적 이정표를 보여준다. yes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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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평을 쓰기 전에 밝혀둘 게 있다. 책을 받은지가 좀 되어 서둘러 쓸 겸, 기존에 읽고 있는 책과 분위기가 다른 책으로 전환도 할 겸 <특성 없는 남자>를 손에 들게 되었다.
우선 무질- 언어가 다른 세계의 비문학인인 내가 듣기에도 무질,이란 이름은 깊이가 있다. 이런 끌림도 피상적이지만 만남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작가를 소개하는 짧은 기록을 맨 앞에서 읽었다. 오스트리아, 군인 생도, 철학 박사, 작가의 길로 입문, 1차세계 대전 참전, 동일명 해당소설 1,2권 출간, 이후 미완으로 망명지 스위스에서 사망. 단편집으로 세 여인, 몽상가들, 생전 유고 등이 있음.
이상과 같이 작가 무질에 대한 정보를 기본적으로 습득하고,
책 맨 뒷표지로 돌아가, 사실 처음에 제목 본 다음 이 부분을 보았다. 보았다고 하는 것은 읽었으나, 책에 대한 조족지혈 압축일 것이므로 쉬이 이해가 안갔을 게 너무나 당연하고. 그러나, 이해가 안된 본 글에서조차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나란히 하는 20세기 문학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작품"이라는 월스트리트 저널지의 한줄 소개, 독일어소설이며 밀란 쿤데라 등에 영감을 준 근대 고전이라는 점, 근대에서 현대로 옮겨가는 구심점을 잃은 시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져 분열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다시 공간으로서 카카니아를 통일시키는 이념을 찾으려는 '평행운동'
여기까지를 , 한번 읽고, 이 시대와 공간을 사유와 이성으로 극복하려는 모습을 주인공 율리히를 통해 그려낸 것이겠구나.... 위에서처럼 다시 정리를 한번 더 할 수 있는 것은, 제 1부 일종의 도입부의 1장, 주목할 만하게도, 여기서는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는다. 를 읽고 난 후이다.
그리고, 시간적 약속이 있는 서평을 쓰기로 했다. 책의 분량이 두꺼워서 기한 내 미처 못읽었을 때, 서펴책을 받은 이에게 어느 정도의 조건 하에 서평을 올릴 수 있다는 서평제공측의 글, 일종의 양해각서 하에서처럼 내 의무?는 나와 같은 무질을 잘 접해보지 않는 수평적 연대감이 있을 다른 독자를 위한 선의에 의한 호객행위같은 것일까. 분명 책은 제공받았고, 출판사로부터의 무언의 심리적 결박이 하나도 없지 않겠지만, 대가없이 하는 호객행위라는 것은 밝혀두고 싶다. 그래서 더 읽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내리누르고 새벽에 쓰는 서평이다. 이런 형식의 서평을 써도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지리가 익숙하지 않으니, 내게 이 번역서의 옮긴이 글 앞에 나와있는 지도 첨부는 친절함 그 자체이다. 이런 식의 책이 필요하다. 항상 한계를 느끼는 것은, 세계를 이렇게 글과 말로 넘나들면서, 막상 쪼끄마한 땅덩어리에 발딛고 생활하는 한계로 모르자면 모를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카카니아, 낯선 그 공간의 무대가 지구 어디쯤인지는 알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옮긴 이와 편집인-대체 출판에서 편집의 영역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번역자 이전에 무질 연구자로서 신지영 교수와 나남출판사 편집인께 한 독자로서 감사의 마음도 서평에 적고 싶다.
여기서 번역서로서의 역사를 잠깐 언급하고 싶다. 원저가 독일이기 때문에 영어권에는 영역 ,우리에게는 한역을 통해 무질의 작품이 알려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무질(1880~1942)의 사후 1995년 처음 영역본으로 출간되고, 한국에서는 2010년 이래 거의 최근까지 원본의 3분의 2 가량 정도까지만 번역되어 왔다. 그리고 신지영 역서로는 1930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의 거의 92년만이고, 미국의 영역본이 무질 사후 유고까지 포함하는데 반해 아쉬움이 남는 생전 출간에 국한되지만 완역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소개된다.
그래서 1권이지만, 이 책은 나머지 5권까지..그 방대한 양이 1600여페이지에 이르는 책의 각 부 제목과 각 장의 제목 등이 소개된다. 그 소개되는 제목들만 쭈욱 살펴도...이 책에서 펼쳐질 내용에 대한 의미심장한 무게가 상당하지만, 또 호기심을 부추겨줄만큼 충분하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이라면 꼭 이 부분도 먼저 살펴보시라 권하고 싶다. 그리고 15년에 걸쳐, 그리고 단 한번도 손대지도 못한 연도까지 포함해서, 전문번역가가 아닌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며 이 5권을 펴냈으니... 이런 노력이 독자들의 독서기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참으로 안타까울 것 같다. 나는 별걸 다 걱정하는가... 그게 아니어도 무질, 그리고 이 특성 없는 남자를 5권까찌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충분히 들 것이다. 그런데 미완의 작품인데,,어차피 작가로서 이 이야기의 종결을 낸 적이 없는 책인데,,5권 1600여페이지의 읽기를 해냈을 때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마음도 든다. 그건 그 미종결의 종결까지 가봐야 느낄 것이다.
서평과 독후와 내 일기장과의 차이가 어디서 어떻게 다른지 지금의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쓰면서 꼭 이렇게 내가 무질을 처음 만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면, 서평의 가치로서 조금은 내 마음이 더 잘 표현될 것 같아서다. 양해를 구하고, 구한다고 구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1부의 1장편의 글을 옮겨본다. 이하 인용한다.
<특성 없는 남자 1>
역자는 이 글을 읽기 전에 배치되는 글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한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용상 작품해석이 전제되어 하는 부분이어서라고 제공하는 그 이유는, 우리에게 방대한 분량의 책 읽기에 앞서 자그만 안내표지가 되어준다. 자세히 보니, 1권 1장은, <여기서는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았다>이고,제2부의 타이틀은 <늘 똑같은 일만 일어난다.>이다. 정말 재미있지 않을까?
별권의 책인 4권까지 모두 123장이고, 3부, 4부의 책에서 38장까지 이어진다. 매 장마다 제목이 촘촘히 달려있다. 대충 몇단어 정도가 아니다. 읽어보시라고 하고 싶다. 이것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임을 느끼게 되지 않겠나 싶다. 나는 그랬다. 115장 제목은 당신의 젖꼭지는 양귀비 꽃잎 같다. 거슬러 99장 제목은 다음과 같다 반똑똑이와 풍성한 결실을 맺는 그 다른 반쪽에 대해. 두 시대의 유사성, 제인 이모의 사랑스런 본질과 새 시대라 불리는 허튼소리에 대해. 서평에 ^^ 이런 표시해도 될려나. 읽고 싶지 않을 수가 없다고 길게 늘어쓰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의 편집의 수고가 친절로 느껴지는 것일까. 이 매 장들의 깨알제목이 긑나면,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쭈욱보다가, 여성들을 연인, 친구,,,주요한 지인친구로 많이 두고 있다. 물론 주인공은 율리히이고, 그는 남자지만. 1880년 태생의 무질은 책에서 그가 현실로 겪는 이들을 재현시켜냈을 것이다. 가공을 더해서.
내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한편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끼를 읽고 있어서다. 그의 작품세계가 따로 있어서겠지만, 거의 동시대의 나쓰메 소설에서는 여성이 주인의 수평선상의 상대로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못발견해서일 수도 있지만. 무질의 작품에는 주인공의 연인이 있고 , 친구들이고, 또 동지로서 여성이 등장하고, 그 외 등장인물로서 남자들 몇은 관계의 구심이 위 (어떤면에서 비중이 떨어지지 않는)여성들이지 않았나 싶고.
내 해석이다. 무질이 그런 관점을 조금이라도 견지한건 아닐지라도. 그래서일까 게다가,나츠메소세키에서 느낀 동양의 가라앉은 차분함에 비해 서양 유럽의 20세기 현대 문학에는 좀 더 인류보편성의 특성을 지고, 시대와 공간을 바라보는 힘있는 사유가 느껴진다.
다른 분위기의 책을 접하고 싶었던 차에 만난 로베르토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를 새책으로 받아 손끝을 책장에 닿게 하여 투명 밑줄을 그으가며 읽은 내 느낌을 서평이란 이름으로 남겨본다.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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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사유의 흐름을 벗어나게 하는 책
<특성 없는 남자>는 토마스 만, 카프카와 더불어 20세기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로 전 5권으로 되어있다. 1995년 미국에서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율리시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20세기 문학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작품이라 평가할 정도로 칭송을 받았고, 밀란 쿤데라와 잉에보르크 바흐만 등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준 근대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졌으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그 이유를 소설의 규모가 엄청나고 미완성된 작품이라는데 있다고 한다. 무질 연구자인 '신지영'에 의해 5권을 번역된 작품 중 1권을 읽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고,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점에서 이 소설은 굉장히 흥미로운 책임은 분명하다. 비록 5권 중 1권이라 겨우 소설의 도입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기존 소설과는 다른 문체와 서사는 중간중간 집중을 하지 않으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다시 앞부분부터 펼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굉장히 매력적이다.
각 장의 제목을 살펴보면서 읽어 보기 처음에 읽을때는 각 장의 이야기들이 연결이 되지 않아서 조금 혼란스러웠다. 몇 장쯤 읽으면 줄거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속 일어나갔는데, 아무리 읽어도 줄거리가 잘 이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질은 소설에서의 시간의 차원, 진행의 차원, 시간적인 전개를 의식적을 배제함으로써 전통적인 이야기 기법을 포기하고....독자가 이 소설의 어떤 장을 펼쳐서 읽기 시작해도 무방할 정도로 줄거리의 진행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305쪽, 옮긴이 해제)고 하였다.
2권을 읽어보지 않아서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사건이 진행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1권을 소설의 도입이라 볼 때 각 장의 소제목에 맞추어 등장 인물들이 소개되는 느낌이다. 제 1부까지는 각 장의 이야기들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에 각 장들간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그래서 앞 쪽의 등장인물의 소개와 함께 읽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은 제 2부정도에 가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독특한 문체 살펴보며 읽기 작가인 무질이 군인과 공학도였던 것과 같이 주인공인 울리히도 군인, 공학도를 거쳐 수학자가 되었다. 작가나 주인공과 같이 서술에서도 과학적인 설명과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특히, 첫 장의 첫 시작은 이 소설이 '사유소설'이라는 설명보다는 '과학 교과서'의 한 부분을 읽는 듯 했다.
"그녀는 이 일을 해 주고 그녀의 약점을 이용한 남자를 고상한 신조라고는 조금도 없다고 비난했지만 그녀가 그 남자에게 '경도(傾倒)되면', 그녀는 과학적 거리를 취하며 이를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76쪽)
'특성 없다'가 의미하는 것은? 제목의 '특성 없는 남자'는 주인공인 울리히를 의미한다. 즉, 주인공은 특성 없는 사람이고, 그의 아버지나 친구인 발터는 특성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특성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어떤 차이일까? 개성이 없다는 말일까? 특성을 소유한다는 현실에서 오는 기쁨을 아는 것이고, 특성을 소유하지 못하다는 것은 현실감각이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면 개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에서 인정받는 그 무엇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특성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특성의 현실성에서 오는 일정한 기쁨을 전제하므로, 이는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현실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를 특성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36쪽) 주인공인 율리히의 학창시절의 친구인 발터와 클라리세의 대화에서 율리히를 특성없는 남자라 말하고 있다. 수학자이면서도 수학자처럼 보이지 않은 것으로 특성이 없다고 한다. 즉, 현실에서 수학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수학자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특성이 없다는 말인 것 같다. "정말 옳은 말을 했어! 수학자는 그 무엇처럼도 보이지 않지. 즉, 그는 단 하나의 특정한 내용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보편적으로 지적으로 보여! 로마가톨릭 성직자를 제외하면 오늘날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이 아니야. 우리가 손보다 머리를 더 비개인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수학자, 이건 정점이야. 수학자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게 너무나 없어. 인간이 머지않아 고기와 빵 대신 알약을 먹고 살게 되어 초원, 어린 암소, 닭에 대해 몰라도 되는 것과 같아."(109쪽) 그러면, 울리히가 특성없는 남자라는 뜻은 현실적이지 않고, 현실에서 누구나 그러하다고 여기는 보편적인 모습을 지니지 않는 남자라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굉장히 개성적인 사람이라는 뜻이지 않나 싶다.
제 2부의 중심사건은 평행운동이다. 창시자인 라인스도르프 백작과 시민계급 출신 공무원인 투치 국장의 아내인 에르멜린다 투치(디오티마)가 그녀의 집에서 대회의를 열어서 조직을 갖춘다. '평행운동'은 분열된 카카니아를 통일시키는 하나의 위대한 이념을 찾으려는 카카니아의 애국사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직을 갖추면서 내부에서도 무언가 어긋난 듯한 모습과 회의를 몰래 엿보는 디오티마의 몸종인 라헬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흥분하는 모습에서 2권에서 펼쳐질 이야기를 짐작해 본다. 5권이라는 방대한 분량 중에서 겨우 1권을 어렴풋이 읽어서 아직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1913년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이라는 점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배경을 통해서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이성적이고 냉정함을 지닌 매력적인 주인공과 개성적인 주변 인물들, 독특한 서술과 용어들로 인해 관심이 가는 소설임이 틀림없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