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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숙고하고, 대화하고, 배우고, 일하고, 함께 묶는 것, 이것이 우리 공동체들(교회와 지역, 세계)의 성숙과 번영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서로 연결된 삶이 우리가 창조된 즐겁고 의미가 풍성한 결말이다. 이것이 충만히 살아 있는 인간이다(p179).”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와 6.25 동란을 뛰어넘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에 대해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릅니다. 그야 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 이 민족에게 일어났다는 의미일 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이것은 ‘기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땅에 ‘복음’이 선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선교사님들의 순교와 헌신’이 없었다면, 무엇보다 ‘성경’이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은 없었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독특한 선교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 선교사 보다 먼저 들어온 나라라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성경’이 먼저 들어 왔습니다. 한국 교회는 다른 어떤 세계 기독교 역사와 차별화를 가지는 ‘성경 공동체’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 땅은 ‘서당’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학문하는 체계가 뿌리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을 만나 교회는 ‘읽기 공동체’로 성장하여,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가 세상과 호흡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러하기에 한국 기독교가 세계에 유례없는 짧은 시간에도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내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책 ‘공동선을 위한 독서’를 읽으면서 저는 한국 기독교의 지난 발자취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5장에 ‘이웃과 함께 읽기’의 내용은 이 땅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하셨던 모든 일들이 요약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교회를 통해 학습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것이 학교가 되고,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적 인프라’의 기초가 되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서 결국 한국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정표도 ‘공동선을 위한 독서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보게 됩니다. 9장 ‘독서하는 회중이 되기’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가 성경 이야기에 대해 더 깊고 변혁적인 지식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 원한다면(p163)’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 ‘렉치오 디비나’와 ‘사귐의 독서’를 지향하는 ‘천천히 읽기’에 헌신되어야 합니다. 또한 단순히 성경 읽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사역과 관련된 다른 서적과 연계하여 읽기를 독려해야 할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독서를 통한 ‘나눔과 교제’의 장을 열어줌으로서 진정한 ‘독서와 학습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디자인하고 꿈꿀 때에만 교회의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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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책 읽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것은 독서가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바람과 소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는 많은 부모들은 실제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아이들도 책을 대신하는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공동선을 위한 독서라니~ 독서가 공동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교회에서 책읽기가 가능할까? 책읽기가 과연 이웃의 번영을 도울 수 있을까? 제목에서부터 많은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론에서 저자는 건강하고 번영하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습과 행동이 모두 필요하다고 본다. 배우기 위해 창조된 학습이 본성인 사람들을 위해 지역 교회는 학습하는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또한 진정한 학습은 실천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교회는 함께 읽고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함께 의사결정을 하며 조화를 이루어 지역 사회의 건강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독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소명의 모든 면에 필수라고 한다.
나도 나름 독서가 취미이자 특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책 읽는 아이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방법들을 동원하기도 했었다. 개별적으로 많은 책을 읽히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마라톤이나 학위제와 같은 방법을 쓰기도 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해 같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며 나누는 방법 등을 써보기도 했었다.
독서는 개별적인 행위이지만 또한 사회적이기도 하다. 독서는 개인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사회적 상상력을 변화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독서는 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화(나눔)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의미가 확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함께 읽고 나눔을 통해 우리와 이웃들이 더 깊이 공유하는 삶으로 이끌어주는 사귐의 독서에까지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교회의 건강과 번영에 독서는 필수다. 나아가 독서와 대화는 함께 해야 한다. 가장 유익한 독서는 지역교회에서 단서를 얻어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 교회와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구현하기 위해 꼭 독서가 필요할까? 가뜩이나 책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교회 공동체가 함께 읽기에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러나 개 교회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들에게 책읽기를 권유하고 있다. 성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독교 서적과 고전들을 읽히기 위해 추천도서를 제시하기도 하고 소그룹으로 독서모임을 갖기도 한다. 양육 과정에 필독서를 넣기도 하고 책 읽은 소감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서하는 회중이 되기 위해서는 공유하는 삶 전반에 걸쳐서 독서하고 책 나눔 하는 습관이 들어야 한다. 읽은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는 대화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독서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북 리더, 또는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그들은 함께 읽기 좋은 책을 선정하고, 이야기를 끌어내고, 삶과 관련지으며 모임을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에게는 이런 독서 모임이 몇 군데 있다. 읽고 생각하고 나누고, 대화하는 중에 배우고 그리하여 함께 성숙해가는 것, 그것이 공동선이 아닐까? 그러니 결국 독서는 공동선을 이끌어 가고 교회와 이웃의 번영을 돕는 활동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활동을 원하는 당신이라면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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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요엘 2:28)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가장 하기 힘든 곳 중 하나가 교회가 아닐까? 어느새 교회는 진리를 단단한 화석처럼 굳혀버려 그것을 교리라는 이름으로 절대화 시켰고 시키고 있다. 그 결과 가장 불확실한 것에 도전하고, 보이지 않은 곳을 향해 발을 내디디는 믿음의 모험도 사라지고 있다.
이런 모험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안에 창조적 상상력이 사라지고 그저 해왔던 대로 하기 때문이다. 80-90년도 교회의 모습, 여러 가지 사역들과 현재 2020년을 비교해 보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은 해주고 있다. 우선 우리의 성경 읽기는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공동체적인 읽기, 공공선을 위한 읽기는 여전히 요원한 지경이다. 개인적 영달과 복을 위한 종교가 되어버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은 원래 공동체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성경을 함께 읽고 공부하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교회 밖에서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학습과 행동’이다. 공동체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이 생기고 이것을 행동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경 학습은 그저 내 개인의 사사로운 것에 집중하게 하고 결국 말씀을 ‘자기화’시켜 버리는 오류가 일어난다.
이 책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 외에 책을 읽는 학습 공동체로서 교회를 묘사한다. 교회에서 다른 책을 읽으려 하다보면 상당한 저항에 부딪친다. 그런 건 세상에서나 하고 교회는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한다. 이 말은 얼핏 맞는 말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세상과 교회의 접점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다른 문학, 역사, 철학등 다른 책들을 읽고 더 풍부한 학습과 행동의 공동체로 발을 디뎌야 한다.
요엘서의 말씀처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삶에서 배우고 행동하며 보이지 않는 길을 믿음으로 걸었다. 이제라도 이런 학습과 행동의 공동체의 모습, 창조적 상상력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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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을 위한 독서- '책은 어떻게 교회와 이웃의 번영을 돕는가' (죠이북스) 왜 한국 교회는 공공연히 개독교라는 오명을 듣고, 사회에서 질타를 당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사회와 분리되어 그간 변변히 '공동선'을 드러내보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 교회가 그동안 사회 구석구석에서 많은 구제활동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으니, 변명 따위는 내려놓고 다시 한번 우리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기 보다는 분리되어 우리 만의 리그에만 만족한 것은 아닐까? 사회를 함께 하는 이웃으로 보기 보다는 구제와 전도의 대상으로만 전락시킨 건 아닐까? 시시로 분리와 배제의 오만한 인식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때에, 이 책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참신한 도전을 불어넣는다. 저자의 잉글우드 교회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함을 통해 지역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상상하고, 꾸준히 실행해 나간다. 이러한 12년 여의 작업을 통해, 슬럼화되 가던 이 지역은 놀라운 변화의 현장이 된다. 너무나 획기적이고 독특한 이러한 변화로 인해 많은 곳에서 탐방 오는 교회가 되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의 번성하라는 명령과, 그리스도의 긍휼과 화해 사역을 교회와 성도의 사명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독서와 토론, 상상력의 발휘, 실행력 등을 무기로 계속 나아갔다. 즉 이들의 비전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 시켜 나간 것이다. 이들에게 교회는 수동적으로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참여하는 공동체로의 삶의 부름인 것이다. 즉 하나님 백성으로서 우리의 소명은 이러한 성육신적 성격의 학습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자도, 곧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의 치유와 화해를 증거하기로 선택하신 길의 핵심이라고 고백한다. 긍휼의 길로 예수를 따르는 것은 우리 교회,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이웃의 고통과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다방면에 걸쳐 조심스럽고 주의 깊은 독서와 토론을 나눈다. 경제와 정치, 교육과 환경 문제 등등. 물론 성경읽기와 교리문답 공부 등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독서 공동체가 되어질 수 있는지 자세한 방법들도 일러준다. 이를 통해 어떻게 지역 사회에 뿌리내려가는 지를 보여준다. 사실 이전 세대에서도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사회의 심대한 변화를 이끌어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예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교회는 사회와 연대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오히려 사회가 아름답게 변화하는 데 선한 영향력의 기치를 높이 세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의 관심사는 온 세상이다. 또한 교회도 세상과 분리되어 점점 이 세대에 대한 몰이해와 낮선 타인이 되어가거나,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선행에 그치지 않고, 다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격변기인 1987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나름 하나님을 위해 삶을 드리고픈 순수한 믿음의 동기를 가지고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군부독재의 억압과 인권유린의 현장 속에서 사회와 대학가는 연일 피튀기는 투쟁을 하고 있는데, 교회는 너무나 잠잠하고 평온한 것이 심히 의아하고 혼란스러웠다. 하나님은 우리 사회에 아무 관심도 없고 해법도 없으신 분이란 말인가? 사회의 일원인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토록 무관심적이고 무능한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믿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숱한 의문이 내 안에 뭉게구름 처럼 일어났고, 안갯속을 헤메이듯 답답했다. 그러다가 만난 공부가 '기독교 세계관'이다. 당시 나를 구원해 준 것이 이 공부였다. 기독교가 단지 교회와 영혼구원으로만 협소하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향해 열려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게 된 것이다. 사회참여의 당위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공동선을 향한 이 책의 주제는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적 시각과 동일하게 맞물려 있다. 매우 구체적으로 독서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적 공동선을 사회에 안착시켜가는 실행력이 놀라왔다. 물론 모든 교회가 잉글우드 교회 같을 수는 없다. 그러한 수준의 독서와 변화를 일궈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전통교회에서는.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지도자들과 리더자들, 그리고 독서에 관심있는 평신도들부터 교회 안에서 작은 독서모임들을 만들어내는 열의가 있을때, 그 작은 걸음들도 의미있는 변화들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늘 깨어있는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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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를 끊는 방법 - 공공선을 위한 독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같은 자리만 맴돌지 전혀 진전이 없다. 족쇄에라도 묶였는지 나가질 않는다. 열심히 기도하고, 가르쳐도 변함은커녕 내 삶을 바르게 하기도 버겁다. 더 좋은 방향을 위해 함께 대화라도 하려 했으나, 어떤 철학자의 가르침과 같이 그저 "목숨을 건 도약"이 될 뿐이다. 어디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대화 속에 우리는 오히려 길을 잃고, 허기진 배만 더 움켜쥐게 된다. 왜 이렇게 하나 되기도 어렵고 함께 가기도 힘든 것일까. 아니,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무엇엔가에 꽁꽁 묵인 듯 하다.
<공동선을 위한 독서>는 이런 나에게 단비와 같은 책이다. 저자 C. 크리스토퍼 스미스는 자신이 섬기는 '잉글우드교회'의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 공동체의 새로운 목적을 제시한다. "함께 읽고 대화하기." 이 단순한 두 개의 돌로 신앙의 개인주의와 성공의 수레바퀴를 멈추고, 시류를 거스른다. 신학, 역사, 생태학, 경제학, 소설 등 독서 영역뿐 아니라 삶의 영역에도 확장을 이루어 전혀 새로운 신앙의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 한국 독자들은 이미 저자의 <슬로처치>를 통해 교회의 맥도널드식 경영에 대한 선지적 질책을 경험한 바 있다. 이제 이 책은 슬로처치를 향한 조금 더 구체적인 한 걸음을 떼게 하고, 오늘에 교회가 추구해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학습 조직으로서 지역 교회'라는 생소한 전제를 상정하고, 이를 위한 유일하고 안전할 길로서 '독서'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학습'과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생각해서 예수님의 도를 배우고, 그것을 살아내어야 한다. 학습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단순하게 반응하게 되고, 상황에 작용하는 많은 요소를 이해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존재가 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죽게 만든다. 교회는 학습하고, 행동하는 '학습 조직으로서 지역교회'가 되어야 하면, 이를 위해서 독서가 필수이며, 개인의 영역으로 생각하던 독서가 공공의 영역으로 공유될 때 새로운 상상력으로 건강하고 번영하는 공동체를 세워 갈 수 있게 된다.
'학습 조직으로서의 지역 교회'의 핵심 사역은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창조한다. 사회적 상상력은 우리 의사 결정의 이면과 전반에 걸쳐 현실을 형성하는 힘이다. 사고와 경험의 프레임이다. 인간은 이 상상력에 묶여 있다. 언어 구조, 시간 구조(365일, 7일 일주일, 하루 24시간), 교육 구조(초, 중, 고, 대학), 경제 구조, 건축 환경 구조 등 우리를 규정된 길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들이다. '사회적 상상력'은 우리를 빠르고 쉽게 판단하게 하며 안전감 속에 살게 하나, 기반이 된 이론이 정당성을 상실한 후에도 구조는 남는다. 즉, 새로운 시대에도 꼰대와 같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사회적 상상력'을 변혁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변혁의 씨앗은 삶이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가진 공동체(또는 작은 공동체)에 있다(46)"고 주장한다. 월터 브루그만이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우리를 둘러싼 지배적인 문화의 의식과 인식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 의식과 인식을 끌어내고 키우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려왔다"고 강조한다. 즉, 교회가 대안을 제시하고 살아내는 '대조 사회(contrast society)'가 되어야 하며, 독서, 함께 하는 독서가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으로 공동체를 인도할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스티븐 킹은 "독서를 텔레파시"라고 칭했다. 다른 시간, 장소의 사람이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작가의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즉, 독서는 내 영역/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놀라운 행위이다. 인간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위해 하나님이 세계 외부에서 오셨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안에서 스스로를 변혁할 에너지를 찾지 못한다. 따라서 <공동선을 위한 독서>는 변혁을 해야 하나, 한계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평범하지만 분명한 출구가 될 것이다. 꿈을 꾸는 공동체, 꿈이 필요한 공동체라면 함께 일독하기를 권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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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책의 종교다.’ 라는 말이 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 그렇다. 또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글이 있어서 우리의 신앙이 좋은 영향을 받고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신앙과 책은 불가분의 관계다.
저자인 C.크리스토퍼 스미스는 “잉글우드 북리뷰”의 편집자로 잉글우드 교회의 성도다. 저자와 잉글우드교회는 독서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학습하며 성장해 가는 길을 가고 있다. 잉글우드 교회는 지역교회로서 지역의 변화를 위한 일에 참여해 왔고 그것을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 독서를 제시한다. 저자는 교회를 학습하는 조직으로 보면서 독서가 지역 사회의 건강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필수적인 실천임을 말한다. 독서를 통해 예수의 길을 더 깊고 온전히 따르고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화해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어떻게 교회와 이웃의 번영을 돕는가?’ 라는 이 책의 부제이자 핵심 질문을 가지고 저자는 독서의 중요성을 하나 하나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 독서와 대화를 통해 사회적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는 교회와 이웃, 세계 전체에서 번영하는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전개해 나간다.
기본 텍스트인 성경 외에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화해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어야 하고, 이러한 독서, 그리고 함께 하는 대화는 교회의 정체성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소명을 분별하고 성숙시키는 데도 독서는 매우 중요하다.
교회는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갖추고 교육 받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함으로써 교회 밖의 이웃과 대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역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독서를 실천함으로써 지역으로 더 깊이 들어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더 확장되어 피조 세계 전체의 번영을 상상하며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데에도, 경제와 정치체제에 신실하게 참여하는 데에도 독서는 필수적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어떻게 교회에서 독서 습관을 장려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들을 제시하는데 맨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느리고 세심하게 읽기를 권한다. 또한 성경뿐 아니라 직접 부딪히는 삶의 자리와 관련된 독서를 할 것을 제시한다. 저자는 독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말하는데 독서와 대화가 병행되어야 함을 말한다. 각종 모임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 또한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서관, 서점, 큐레이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독서 문화를 만들어갈 것에 대해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회 안에서 독서가 줄 수 있는 유익이 무궁무진함을 보게 된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교회가 단지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또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함으로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명을 갖고 있기에, 지금 우리의 교회 공동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든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 걸음부터 내딛는 것 말이다. 여러 가지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서 유익한 책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고 그것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에 쓰임 받으려면 깊이 볼 수 있어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이 혼자 책상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공동체인 교회의 구성원들이 성실히 함께 읽고 대화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오랜 기간 쌓여간다면 어느덧 교회도 변화되고 그 교회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변화되어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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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무엇일까? 주일 예배를 드리고, 기도모임에 참여하고, 전도하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교회의 전부일까? 사람들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할까? 성경의 가르침처럼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공동선을 위한 독서’는 학습과 행동을 통해 성경적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교회는 성경을 넘어 다양한 독서로 배움을 확장하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의 잉글우드교회의 성도로 ‘잉글우드 북리뷰’의 편집장을 10여년 째 담당하고 있다. 저자의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모여 진정한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 복음과 구원은 무엇인지, 참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관해 서로 고민하는 모임을 갖고 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성경에만 의존하는 맹목적인 추앙이 아닌 성경을 기반으로 역사, 경제, 생태, 소설 등 다양한 영역의 독서를 통해 교회를 넘어 이웃의 번영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책과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잉글우드 북리뷰를 출간하고 있다. 성도는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르도록 부름 받았다. 저자는 세상 속에서 성도의 역할, 그리고 성도가 모인 교회의 역할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수라고 말한다.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독서가 개인의 영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변화하고 더 나아가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됨을 강조한다. 이러한 방법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질문을 던지셨고, 그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말하게 하셨으며, 알고 있는 내용을 실천하라 하셨다. 자신 역시 그런 삶으로 사람들에게 성도의 길을 본보이셨다. 읽고 생각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요즘 시대 독서만한 방법이 없다. 이 책의 부제는 ‘책은 어떻게 교회와 이웃의 번영을 돕는가’ 이다. 독서는 교회의 진정한 역할인 연민, 정의, 치유로 나아가는 첫 발이 된다. 우리 교회,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고통과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용기가 된다. 성도의 적극적인 독서와 이를 확장하는 노력은 우리가 창조된 이유를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진정한 선을 이뤄가는 독서, 어찌 미룰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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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을위한독서 #C크리스토퍼스미스지음 #스캇맥나이트서문 #홍정환옮김 #죠이북스 #책은어떻게교회와이웃의번영을돕는가 저자는 "잉글우드 북리뷰"의 편집자이며,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지역교회 독서를 장려하고 다양한 책을 추천하며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나라의 이해를 이끌어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읽기록>의 저자 독서운동가이며 교회공동체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서자선작가님이 오버랩되었다. 독서를 지향하며 그리스도인과 대화하며 효과적인 책읽기와 성경공부를 통하여 소통을 하고 모임을 주도하여 이끌어나간다. 이 책은 독서가들이 어떻게 책을 효율적으로 읽고 장점을 소개하여 함께 읽는 방법을 배우고 책에 대한 대화로 이끌어내며 소설, 경제학, 고전등을 통하여 신학을 잘버무려 어떻게 유익하게 흡수할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P.74 기원에 관계없이 참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것을 추구하고 성경이야기에 대해 계속 발전하는 이해를 함께 엮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예수의 십자가 길을 충실하게 구현하려 할 때, 오늘날 우리의 독서에서 이 고대 수도사들에게 배우는 것은 현명한 일일것이다. 독서가 교회의 번영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영역은 바로 정체성이다. 독서를 하며 텍스트로 읽기만 하고 실천은 없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함께 변화하고 지속적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P.95 독서는 또한 개인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소명을 분별하도록 돕는 일에서 필연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나의 소명을 성숙하게 이끌어갈 수 있게 도와주고 의심여지없이 독서는 주된 성경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체화시키고 성령의 깊은 신실함을 우리에게 인도한다. 교회와 독서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정체성을 확립하여 각자의 소명을 끌어낼것인가. 연대를 강화하여 독서를 통해 공동체를 더 깊이있게 성장을 시킬것인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슬로리딩을 장려하여 삶전반에 걸쳐서 독서를 교회와 연계하고 연결하는 역할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그 다양성을 존중하고 연결할 수 있어야 하며 너무 어렵거나 특정한 책을 강요하기보다는 대화가 가능하며 삶에 버무려질 수 있는 책으로 선택해야 한다. 독서와 신앙의 관계를 알고 독서가 어떻게 공동선에서 이웃과 하나님의 세계를 연결하며 교회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성숙과 번영을 이끌어나갈지는 각자의 몫일것이다. 공동선을 위한 독서가 무엇인지 알고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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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적용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공동선을 위한 독서 를 읽고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머리에서 가슴까지, 아니 직접 손으로 책을 들어 읽기까지는 참 쉽지 않다. 더군다나 현대는 책을 들어 읽는 독서보다, 손쉽게 스마트폰이나 태플릿으로 보는 시대다. 유튜브를 보고, 넷플릭스를 본다. 이제는 지하철에서 좌판대에서 판매하는 신문을 보는 이들을 보기가 드물다. 작은 5인치 핸드폰으로 보는 이들이 대다수다. 그나마 신문을 보는 이들보다는 다른 영상과 소셜 미디어를 더 많이 본다.
이런 시대에 저자는 공동선 (Commong Good)을 위해 독서를 권장한다. 왜 독서가 필요한가. 점점 더 개인화 되어 가는 이 시대 가운데 읽기는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독서를 개인의 실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독서는 대부분 필연적으로 홀로 하는 행위지만, 내가 여기서 마음으로 그리는 사회적 독서 방법은 공동체, 특히 우리교회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된 책과 기타 읽기 자료를 선택하는 길로 안내한다. 우리 모두 예수께서 걸어가신 긍휼의 길을 따르도록 부름 받았다. 그 부르심의 중심은 예수께서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 성경 속 이야기들을 주의 깊게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24쪽)”
저자가 말한 것 처럼 우리는 예수의 제자다. 그러기에 그분의 말씀을 읽고 살아간다. 그 삶의 자리는 우리의 자리이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날 수 없다. 저자가 속한 잉글우드교회는 독서를 통해 자신들이 속한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취하는지를 나누고 있다.
저자가 미국인이며, 배경이 미국인만큼 우리 한국의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 한국은 문맹율은 높지 않지만, 독서율은 낮다. 성경조차도 1년에 1독 하는 성도들이 교회에 절반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자의 도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독서 공동체를 만들어 쉬운 책부터, 혹은 관심사가 같은 이들을 모아 독서를 시작할 수 있도록 권하는 동기부여가 먼저 한국에는 필요해 보인다. 더 나아가 지금은 ‘보는 시대’다.
이 책들과 비슷한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채널들을 찾아 보는 것도 한국 상황에는 더 적절해 보인다.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지만, 우선적으로는 교회의 리더들,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뒤에 부록의 책 목록은 보물과도 같다. 감사하게도 ‘부록3’에는 한국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해 준다. 여기에 있는 책들을 바탕으로 대학부, 혹은 청년부 이상부터는 함께 북 쉐어링을 해봐도 좋을 듯 하다.
미국의 정서를 감안하고 읽는다면 덜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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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의 특징(혹은 사명)을 두 가지로 말하라고 한다면 첫째는 ‘철저한 개인 구원’이고, 둘째는 ‘외적인 교회 성장’이다. 전자는 구원을 지극히 개인의 문제로 전락 시켰고, 후자는 지역 사회와 단절된 게토화된 ‘그들만의 교회’를 만들었다. 이것을 사회적인 맥락으로 표현을 바꾸면 ‘개인 구원’은 ‘자기 개발’이이 되고, ‘교회 성장’은 ‘세속적인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목표이고, 이 세상은 죄로 인해 완전히 망가졌으며(회생 불가능), 창조 신앙을 강조하긴 하지만 이 세상은 예수의 재림과 동시에 불타서 없어질 것이라고 가르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함몰되어 있다면, 이 책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깨어진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화해’나 ‘소명’, ‘제자도’와 ‘번영’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분에게는 너무 심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문제점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이런 관점이 없다면 이 책에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혹시나 책의 부제에 들어간 유혹적인 단어 - ‘번영’ 때문에 이 책을 펼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번영은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과연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이런 책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성경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서들을 읽음으로서 개인을 뛰어넘어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대안적인 공동체로 지역사회 속에서 화해와 번영을 이루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코로나 이후 붕괴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며, 교회 공동체는 ’왜’ 그리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사람에게, 신선하면서도 묵직한 도전과 제안을 던지는 책이다. 단순히 어떤 프로그램으로 이해하지 말고, 저자가 오랜 몸부림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책의 구성을 간단히 소개하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장과 2장, 마지막 9장은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3장과 4장은 독서와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나머지 5장, 6장, 7장, 8장은 독서하는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서 배움과 실천을 이루어갈 수 있는를 소개하고 있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곳곳에서 ‘아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