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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야기는 '피터팬'일 것이다.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붕우' 나 헬무트의 외전격인, 순진한 소년과 마법사의 이야기 '마법사의 화장실'도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이지만, 이 '피터팬'이야말로 작가의 뛰어난 동화 재해석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최고의 수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피터와 팅커, 그리고 후크 선장의 이야기는 늙어 간다는 것'의 그윽한 미덕을 가르친다.
맨 처음 형언할 수 없으리만치 순결하고 깨끗한 존재로서 빛을 맞이하는 갓난 아이. 그들은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라 볼 수 있는 사물의 선악을 판단하지 못한다. 그들은 진실로 선한 존재이기도 하고 그리고 동시에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백지와 같은 영혼을 가진 그들은 점점 커가면서,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즉 세상이 주는 일종의 배신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언젠가 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책의 독후감에 쓴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상처투성이였던 것이다. 아픔으로서 성숙해진다는 그럴싸한 말이 있지만 과연 그것이 '인간'으로서 정말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만신창이가 되어가면서 잔혹한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
나는 피터였다. 나는 아픔은 겪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린 마음을 가진 채로, 모든 것을 단순하게만 여기고 행복할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현실 도피에 지나지 않았다.
'피터팬'에서의 '네버랜드'는 나와 같은 바램을 가진 모든 인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망상 속의 도피처와 같은 곳인 것이다. 그곳에 있으면 영원히 아이로 머무를 수 있다. 요정도, 마법도 있으니 허황된 환상을 품고 있어도 된다. 스스로가 '악'이라고 규정한 것과 정정당당히 싸우고, 그 외에는 언제나 즐거운 놀이만 생각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피터... 영원히 아이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강제로 어른이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잔혹한 일일까?
피터는 스스로에게 '아픔'으로 남을 수 있는 기억을 지워 버렸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기억이었지만, 그가 아이로 남아 있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은, 아니 '절대 갖고 있어서는 안될'기억이었기 때문이다. 팅커의 말처럼, 그런 기억을 가지고도 계속 아이로 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말야, 슬픈 일, 기쁜 일..(중략)...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되는 거야.
아이로 남으면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렇게 위화감이 드는 것일까. '행복'이란 말에. 분명 행복이라면 행복이지만, 아이가 느낄 수 있는 단순한 기쁨 그 이상의 행복을 누릴 순 없을 것이다. 슬픔이나 사랑....이런 다른 감정도 마찬가지다 '진짜'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나는 아픔을 겪기 싫어서. 라고 생각하고는 내 안의 네버랜드에 머물기를 원했지만, 사실 그 아픔의 대가로 내가 아직 모르는 기쁨과 환희를 새롭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겪을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많은 세상을 보며 해보지 못했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후크처럼 어른이 되어서, 이렇게 순서를 밟아가며 늙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세상의 많은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과정을 밟혀 주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두려워서, 투정을 부린 것일거다. 아마도. 나는, 나는 아직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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