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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시인의 예전 시들을 읽다보면 과연 시인이 이 세계와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과연 시를 계속 쓸 수 있을까 생각 들게 된다. 세계의 부정성을 끝간데까지 밀고 나가 자신의 삶의 부정성의 끝까지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 시를 써 나갔다. 작년에 펴낸 네번째 시집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는 세번째 시집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좀 더 차분해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시인 자신의 무력함을 곳곳에서 호소하고 있다. 가령, "걸어갈 길이 안보인다/걸어온 길이 안 보인다"([성환에서 2]에서)와 같은 진술이 그것이다. 이런 무력함은 '무표정으로 무장'([거울의 거울에 비친 창문 저편]에서)하며 살아나가도록 할 것이다. 그러니까 네번째 시집의 차분함이란 주조는 이 무표정과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 시가 보여주었던, 페허 속에 살면서 저 벌려져 있는, 그리고 빨아들일 듯한 구멍을 바라보려는 시의 기획에 어느 정도 시인이 지쳐 있다는 것을 이 네번째 시집은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꽃을 다시 피워내는 대추나무를 보면서 경탄하는 모습도 보여주는 시도 찾을 수 있다. 어떤 생명의 경이가 시인을 다른 길로 이끌지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시인의 후속 시편들을 보아야 이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인상깊은구절] 사방으로 찢어지는 고통의 연속이 생인 것을, 악몽의 연속이 생인 것을, 새겨주고 심어주는 대추나무. 아직도 모자라, 뒤늦게 눈곱만한 꽃들을 다닥다닥 피워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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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윤학의 신작 시집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를 손에 잡았습니다. 전에 어느 계간지에서 이 시인의 시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시집을 사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시는 일상의 많은 사소한, 그러나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관찰과 연민의 정서로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꼭지들>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말합니다. "이파리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감나무 가지에/ 무슨 흉터마냥 꼭지들이 붙어 있다// 먹성 좋은 열매들의 입이/ 실컷 빨아먹은 감나무의 젖꼭지// 세차게 흔드는 가지를/ 떠나지 않는 젖꼭지들// 나무는,/ 아무도 만지지 않는/ 쪼그라진 젖무덤들을/ 흔들어댄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저 짝사랑의 흔적들을"
대체 어떤 눈으로 보길래 감나무 가지에 붙어 있는 감꼭지들을 감나무의 젖꼭지로 볼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보낸 인간의 짝사랑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건지. 저는 그러한 시인의 눈이 신기하리만치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봄>이라는 작품에서의 시선도 대단하지요. "인사동 거리를 지나간다/ 긴 머리 퍼머한 흑인 여자. 아이를 안고 유물들을 구경한다. 갓난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 준다. 아이에게 물린 젖꼭지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시선을, 엄마가 보는 풍경을. 아이가 꾹꾹 빨아 먹는다." 지난 겨울에 처음 인사동에 가보았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 있거든요. 말로만 듣던 <귀천>찻집에도 들러보고, 고가구점에도 기웃거리곤 했지요. 시인은 거기에서 흑인 여자가 아이에게 젖꼭지를 자연스레 물린 채 구경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던가 봅니다. 이미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그 아이는 젖을 빨아 먹는게 아니라 엄마의 시선을, 엄마가 보는 풍경을 꾹꾹 빨아먹고 있다고 시인의 눈에 보여졌던 게지요.
<아버지>라는 작품의 마지막 구절도 압권이지요. "...지게를 지고 걸어가시는 아버지/ 뒤를/ 지게 끈이 졸졸 따른다" 평생 고된 노동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신산한 그러나 성실한 삶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가 바라보고 아파하는 곳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분명 다른이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인상깊은구절] 들깻잎에 벌레가/ 일회용 우물을 파놓았다// 그 우물 점점 깊어졌다/그 우물 점점 넓어졌다//언젠가,/ 누군가의 여린 가슴에/ 저런 우물을 팠었다// 그 사람 얼굴을 잊었다// 누렇게 쇤 들깻대/지독한 냄새 진동한다아버지>귀천>봄>꼭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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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내내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짝사랑에 대한 아픔을, 시에 대한 아픔을, 삶에 대한 아픔을. 전 시집보다 더 깔끔한 이미지와 딱딱 떨어지는 시적전개가 이윤학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상처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시문장이 '묘사'보다는 설명적 문장에 가깝지만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묘사인지 설명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독자들은 (확 다가온)이미지를 느끼게 되므로.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라는 정말 애타는 제목인만큼 시 한 편 한 편이 정말 애타는, 그런 시집이다.
"시는 쓰는게 아니라 옮기는 것입니다." 라던 이윤학 시인은 아픈 곳을 긁으며 어떻게 이 시들을 옮겼을까. 이윤학 시인이 시한테 가지고 있는 '애끓는 짝사랑'은 아마 더 나중까지 지속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눈 검은 웅덩이에 눈이 내린다/검은 웅덩이에 눈이 덮이지 않는다/검은 웅덩이에 눈이 불어난다/눈은 어쩌자는 것이 아니다/눈은 검은 웅덩이를 무시한다/눈은 검은 웅덩이를 저주한다/눈은 검은 웅덩이에 자신을 버린다/눈은 검은 웅덩이에 자신을 섞는다 |
| [첫사랑] - 이윤학의 시집"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중에서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라는 시를 읽고 나의 첫사랑을 생각한다. 나, 지금도 시든 꽃이 다시 피길 기다리는지? 아주 오래전 그가 내게 꽃을 줬었지. 아주 잠깐 그 꽃 보며 더없이 행복했고 그 기쁨은 꽃의 시듦처럼 너무도 짧았어. 그리고 긴 고통의 시간들... 시간의 길이에 비례해 점점 기억과 감정은 무뎌져 이제는 담담하다고,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왠지 여전히 내 앞에 시든 꽃 아른거리는 것 같아. 미련함이여... [눈보라] - 이윤학의 시집"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중에서 상상은 끝났다, 버림받는 순간, 그걸 깨닫기 무섭게 끝없는 벼랑만 남았다. 눈보라는 벌판 한가운데 끝없이 나 있는 좁은 길바닥, 내 맘을 따라온 발자국들, 흩어지고 흩어지고 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나는 나를 버리려고 헤매고 있을 뿐! 나를 따라온 발자국들, 예전에도 나를 떠났던 것, 나는 나를 지우지 못한다. 나는 내가 아니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고 있었던가 길가에 쳐진 버드나무 가지들, 그 길고 가느다란 꼬랑지들 쉴새없이, 사방팔방으로 찢기려고 발광을 하고 있다. 내가 아니기를 바랐던 긴 고통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희미해진 기억과 많이 무뎌진 감정의 켜 속에서 어렴풋이 흔들리는 것들이 있다. 다행이다. 잊혀진다는 것. 무뎌진다는 것. 세월의 흐름에 축복받음을 감사해야겠다.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는 그와 나 사이에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제법 가까운 공간이 무색할만큼 아주 멀어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를 지우지 못했듯 그 또한 완전히 지우진 못했다. 이젠 아무것도 지울 필요가 없어졌고, 그 때 나를 지우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 숨을 쉰다. 하지만 지금도 내 속에선 실오라기같은 버드나무 가지들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