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진정한 기도란?
"진정한 기도란?" 내용보기
창가로 비치는 눈부신 날의 햇살을 표현한 듯한 책의 표지가 너무 예쁘다. 세례를 받기위해 우리는 많은 주요기도문을 외우곤 한다. 주요기도문을 외우다보면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나의 필요에 의해 기도문을 외우며 마음의 평안을 찾기도 하고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문을 되뇌이며 나 스스로를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신자라면 저마다 좋아하는 기도
"진정한 기도란?" 내용보기

창가로 비치는 눈부신 날의 햇살을 표현한 듯한 책의 표지가 너무 예쁘다. 세례를 받기위해 우리는 많은 주요기도문을 외우곤 한다. 주요기도문을 외우다보면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나의 필요에 의해 기도문을 외우며 마음의 평안을 찾기도 하고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문을 되뇌이며 나 스스로를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신자라면 저마다 좋아하는 기도의 구절이 있을 것이다. 종교를 갖고 기도를 하다보면 이런 부분들이 자연스러워 지기 때문에 책의 첫번째 카테고리의 내용은 굉장히 새로웠다.

책의 저자 루이 에블리는 우리가 늘상 미사를 드릴 때 외우는 기도문에 관해서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지를 꼬집으며 기도문에 관한 의미를 새로이 다시 부여한다. 가장 큰 맥락은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총을 내렸고 사랑이라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기 때문에 기도문에서 나오는 내용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역으로 우리는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저자의 핵심은 굉장히 새로운 시각이었고, 그로 인해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동안 나는 과연 진심으로 기도문의 내용을 알고 되뇌였는지, 기도라는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기도를 하고 있던 것인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 하게 한다.

그럼에도 역시 나의 결론은 어떠한 방식이던 '기도'를 통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주님께 '나'를 내맡기고자 한다는 것은 틀림 없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자 루이 에블리는 의미와 의도에 맞게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우리의 잘못된 기도 습관을 바꿀수 있도록 도와준다.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그동안 답답하거나 막막했던 부분들에 대한 어느정도의 좋은 해답을 안겨주는 책이다.

기도를 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대조할 수 있을 만큼 내게 있어 기도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라는 이 책이 정말로 감사하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나와 내 형제를 위한 삶'으로 가는 여정이 깊은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기를 하느님이 그토록 바라시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자 은총을 내려주신 이유이지 않을까.

"기도는 하느님에게 무엇을 구하고자 간청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 그분은 우리가 받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자 하신다. 진정한 기도는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신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또 그분 자신이 우리를 완전히 점유하셨음을 아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생활은 기도와 같아지고, 하느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어느 신부가 말한 바와 같이 “믿는다는 것은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하느님에게 받은 선물을 알기만 한다면 기도가 감사의 행위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결코 부富를 가르치거나,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측량하는 일이 아니다. 기도는 모두가 감사이며,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을 기쁨에 넘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에게 용서를 청할 때 당신은 알고 있는가? 하느님이 당신을 용서하고자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에 마침내 당신에게 용서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처럼 하느님은 당신을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하느님에게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그분에게는 더 중요하다."

 

 

e******6 2022.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의 신앙이 바른길로 가는 것일까?
"우리의 신앙이 바른길로 가는 것일까?" 내용보기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20)   예전에 얼핏 모임에서 그림 한 장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문앞에 서 있는 예수님 하지만 문고리가 없어서 들어올 수는 없었다. 우리가 문을 열어들어야 들어올 수 있는 그 그림
"우리의 신앙이 바른길로 가는 것일까?" 내용보기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20)

 

예전에 얼핏 모임에서 그림 한 장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문앞에 서 있는 예수님

하지만 문고리가 없어서 들어올 수는 없었다. 우리가 문을 열어들어야 들어올 수 있는 그 그림 한 장이 지금 이 성경말씀으로 내게 다가 온다.

 

하느님은 온전히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지 결정을 하면 된다.

꼭 우리가 성인아니라서 그들보다 덜 사랑받고 은총을 덜 받는게 아니라 우리 옆에 늘 계시는 그 분을 보지 못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하느님을 찾아헤매는게 아니라 그분과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찾아낸 것처럼 우리도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서 주위를 둘려봐야하겠다.

 

기도

우리가 하는 기도를 안들어주시는 게 아니라 먼가를 매번 달라고만 하는 기도..온전히 내 입장에서만 하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에게 무엇을 고하고, 하느님을 설득하고, 하느님을 바꾸려 한다면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서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나가고 봉사를 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기도는 무언가를 호소하는 게 아니라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하고 계신 것이다.

내가 잘못 기도를 하고 있었네. 기도가 감사였는데

 

하느님만 신경쓰다가 하느님께 돌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다가 우리는 주위에 있는 형제들을 잊어버릴 때가 더 많다. 하느님께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과 나누는게 사랑이라고 그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과 겸손의 선물은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i******3 2022.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내용보기
대화에서 중요한 게 뭘까  말하는 것? 듣는 것? 아마 대부분 후자라고 얘기할 거다. 듣는 것 특히, 경청의 중요성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청하는 건, 전문가가 말하지 않아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생활하면서 깨닫게 된다. 대화는 일반적으로 이런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한 호응 또는 다른 의견 등 답변을 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상대방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내용보기

대화에서 중요한 게 뭘까 

말하는 것? 듣는 것? 아마 대부분 후자라고 얘기할 거다. 듣는 것 특히, 경청의 중요성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청하는 건, 전문가가 말하지 않아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생활하면서 깨닫게 된다. 대화는 일반적으로 이런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한 호응 또는 다른 의견 등 답변을 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이런 패턴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 곧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패턴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이야기만 하다 헤어지면 허한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오랜 시간 이야기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라고 한다.

그러면 기도도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함께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아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라고는 하지만, 내가 주로 이야기한다. 왜? 하느님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대화처럼 육성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도할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보겠다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다. 대부분 잡생각이 나기는 하지만, 마음에서 뭔가 쑥하고 올라오기도 한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른다.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게 해결책이 떠오를 때는 정말 너무 흥분돼서 환성을 지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 해결책이 하느님께서 해주신 말씀일까 

그렇다고 믿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확신은 하지만 100%라고 과감하게 말하진 못한다. 매일 아침, 기도할 때도 그렇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인지 내 생각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누군가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믿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기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 책을 만났다.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기도는 사람이 하느님에게 하는 게 아니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기도만 하면 다라고 생각하는 신앙인과 행동하지 않는 신앙인 그리고 잘 안 풀리면 그 이유를 하느님께 돌리는 신앙인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왜 하느님이 사람에게 비시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책을 정독해 볼 것을 권한다.

 

기도는 하느님에게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하루에 여섯 시간, 수도자들은 기도 중에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 번 되뇌면서 그 말씀에 고요히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이윽고 그 말씀이 그들에게 직접 들려오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중에서 p20

 

여러 번 되뇌면서 그 말씀에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것.

이것이 바로, 말씀을 듣는 자세라 생각된다. 그 시간을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하는데 사실 그게 잘되지 않는다. 시간의 여유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잘 듣는데 필요한 자세를 기억해야 한다.

 

기도는 하느님에게 무엇을 구하고자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느님에게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기도를 성취시켜 드리는 일인 것이다. 하느님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하느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하느님에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 스스로를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것을 기쁘게 영접해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바로 자신의 요청, 제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 자신의 바람 등을 내려놓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획에 동의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기도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 중에서 p53

 

마음의 문은 밖에서 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문 앞에 있는데 마음의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내 안에 들어오지 않는 거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열어야 한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을 청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의무라서 주일 미사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신적인 양식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인 양식을 주기 위해 미사가 있는 것이므로 꼭 참례해야 할 의무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 중에서 p75

 

참 많이 공감한 내용이다.

거의 매주 주말 출장을 다닐 때도, 미사 참례를 빠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처음에는 의무라서 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마사 참례를 통해 얻는 것이 크다는 것을 말이다. 일주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기 위해 미사는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다. 삶의 중심에 미사가 있는 거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성당에도 스스럼없이 갈 수 있었다. 천주교 신자로서 가장 큰 혜택(?) 중 하나가 이것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심지어 해외를 가도 미사 양식이 같다는 거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혜택을 놓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아쉬운 일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우리가 생활에서 행하는 일들에 관해 하느님이 암시해 주시는 바를 듣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본다는 것- 중에서 p75

 

기도의 핵심을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이라 생각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해주시는 말씀이 성서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과 생활에서 그 말씀을 듣는 것이 기도라는 말이다. 그래서 기도는 시간과 공간을 별도로 갖는 것도 필요하지만, 생활 안에서 숨을 쉬듯 하는 거다. 기도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기도에 한계를 두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거다.

 

 

신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이다. 신앙은 “알았다, 그것은 이런 의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는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자기에게 타이르는 것이다.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겪은 경험을 통해 사물이 지니는 의미는 나중에 가서야만 알게 된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3,7)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본다는 것- 중에서 p108

 

나도 그랬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좌절했지만, ‘이 또한 어떤 의미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짧게는 바로 깨닫기도 했지만, 몇 년이 지나서 깨닫게 된 것도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도 다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이라 믿는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사랑하시고 기도하고 계신다. 인간이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완전히 점유할 수 있도록 그분을 도와 드리는 것이다. 일단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면, 하느님은 거기서 그분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 일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하시는 일이다.

-기도하고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p174

 

신앙의 궁극적인 이유를 말해준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그 관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 말이다. 나 혼자만 좋고 나 혼자만 누리는 것에서 머문다면, 그것은 신앙의 완성이 아니라 생각된다. 행동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내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이유를 더 떠올린다. 하느님이 일하시도록 열어두는 게 아니라, 내가 문을 걸어 잠가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게 아니다. 문을 열어두는 거다.

 

2*****9 2022.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내용보기
가톨릭에는 [성무일도]라는 시간 전례 기도가 있습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아침, 점심, 저녁마다 바치는 기도로, 하느님의 업적과 베푸심을 찬미하는 시편의 기도가 주를 이루는 기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기도서를 말하듯 음성으로 읽기도 하지만, 정식적으로는 찬미가(노래하는 기도)가 원칙입니다. 찬미의 기도는 24시간 동안 그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므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내용보기

가톨릭에는 [성무일도]라는 시간 전례 기도가 있습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아침, 점심, 저녁마다 바치는 기도로, 하느님의 업적과 베푸심을 찬미하는 시편의 기도가 주를 이루는 기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기도서를 말하듯 음성으로 읽기도 하지만, 정식적으로는 찬미가(노래하는 기도)가 원칙입니다. 찬미의 기도는 24시간 동안 그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므로 성직자 및 수도자께서는 불침번을 청하면서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저는 평신도로서 [성무일도] 기도를 가장 좋아합니다. 기도는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처럼, 순종하는 자녀들의 수동적인 신앙생활에 대해서 끊임없는 생각과 함께 교만과 회심, 그리고 회개의 상태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께 수동적인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과 방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성경에 적힌 그대로 살며, 십계명 그대로 살며, 때로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사용해서 일을 마친 후,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이 수동적인 신앙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수동적 신앙]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부르심]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르심이란 [김 베드로 님! 이 엘리사벳 님!]이라고 이름을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여해 주시는 사명에 대한 이끌림]을 더러 부르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주님께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생각해서 하느님께 등을 지는 분들도 계실 거라 예상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께서는 진심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가지고 계셔서 남부러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타인의 눈에는 잘 보이는데, 나만 자각 못할 은총이 있음을. 정말로 모르실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냐. 그저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고 말하며 각성하지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일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 내가 아닌 하느님이라고?"라며 성을 내고, "이치와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헛소리!"라면서 화가 나는 자동적 사고의 과정을 저도 압니다. 내면에 분노와 알 수 없음의 감정을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수동적인 신앙생활에 대해 매일 의식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하게 되셨다면, 애초부터 나는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소명의 소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토록 들리지 않았던 자신의 소명(부르심)을 제대로 알아듣는 방법을 바로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라는 이 도서가 큰 도움이 되실 거라며 추천을 권해드립니다.

 

영화 [사일런스]처럼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지만, 이미 성경 속에 여러 인물의 사건과 대화를 통해서 세기를 넘는 우리의 운명이 그려져 있지요. 그 말씀이 내 것인가?라고 망설이고, 주저하시고 계신다면 반드시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성령]이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불타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선 가톨릭 신앙의 가장 큰 행사인 기쁜 부활절을 맞음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는 성령의 은총을 한 아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에 자신이 물려받은 은총의 은총이 무언지 모르겠다 하실 때에는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을 통해서 신앙을 성찰하는 기회를 잡으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전례를 통해서 성가를 부르시더라도 받으신 소명에 감사함을 가득 부여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YES마니아 : 로얄 h*******1 2022.04.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 책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 책" 내용보기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빌고 있다?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충분히 그럴 것 같은 느낌.마음이 뭉클하면서 짠해지는 느낌으로 이 책을 골랐다.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마음이 사랑임을 좀 더 확신할 수 있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목차를 보면, 이 책의 구성은 먼저 ‘기도’란 어떤 것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의한다. 그리고 나서 하느님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 책" 내용보기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빌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충분히 그럴 것 같은 느낌.
마음이 뭉클하면서 짠해지는 느낌으로 이 책을 골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마음이 사랑임을 좀 더 확신할 수 있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의 구성은 먼저 ‘기도’란 어떤 것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의한다. 그리고 나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셨던가를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다짐하도록 이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구성이 조금 달라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하느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되새기고, 기도란 무엇인가를 생각한 다음, 내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떨까 싶다. 내 마음에는 그렇게 와 닿았기 때문에.
그래서 내 관점의 순서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너무나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람이 되셨다. 그 분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태어나시고, 사랑 때문에 죽으신 분이다. 하느님은 곧 사랑이라 할 만큼 그 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것 또한 사랑임을 역설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이것을 전제로 저자는 하느님께서 당연하게도 언제나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계시며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청할 것이 없다. 우리가 할 것은 오직 감사이며,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직접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며,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일할 수 없으시다고 말한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 더욱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저자의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서기를, 스스로 올바른 길을 걸어가기를, 이래라저래라 억지로 잡아끌지 않고, 바라고 원하며 지켜보고 응원하는 그런 성숙한 부모의 모습이 곧 하느님의 모습이라는 묵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부모가 원하는 최고의 선물은 단 하나, 자식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 이 책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준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바쳐야하는지가 나와있다. 이 내용은 꼭 직접 찾아보시기를 바라며 옮기지 않겠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사람에게비는하느님 #가톨릭출판사 #루이에블리 #사랑의하느님 #사랑하는삶 #하느님아버지 #진정한기도 #캐스리더스 #캐스리더스5기
YES마니아 : 플래티넘 m*******g 2022.05.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