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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으면서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졌던 이야기들이 고전 문학으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투명인간>도 그런 소설 중 하나였다. 이 책이 150년 전, 영국에서 출간되었을 당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었고, 저자 허버트 조지 웰스는 '과학 소설의 창시자'로 불린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 분명한 SF소설들. 지금까지 SF소설들은 내 관심 밖이었는데, <투명 인간>으로 그 세계에 발을 담궈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사람들의 시선을 끊임없이 신경쓰면서 살아가야하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내 기대와는 달리 부정적인 면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투명인간의 비애를 느꼈다고나 할까? 스물두 살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물리학자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에 성공을 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단지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 내게 주는 엄청난 이점을 막 깨우치기 시작하고 있었소. 내 머리는 이미 모든 다양하고 멋진 일들에 대한 계획으로 넘쳐나고 있었소. 이제 내가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말이오. -p 201
하지만, 투명인간이 된 그가 겪게 되는 상황들은 장미빛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가 해야했던 피나는 노력들,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해볼수록,켐프, 나는 더욱 깨닫게 되었소. 투명인간이 되는 게 감당할 수 없을만큼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춥고 사나운 기후와 번잡한 문명 도시 속에서는 말이오. 이 미친 실험을 하기 전에 나는 수천 가지 이점을 꿈꿨었소, 그날 오후 그 모든 게 모두 단점으로 보였소, 나는 사람이 바란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헤아려 보았소. 의심의 여지없이 다른 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들을 얻는 걸 가능하게 만들지만, 그것들을 얻었을 때 그것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게 만들었소. 어딘가를 열망한들 - 거기 나타날 수 없다면 최고의 장소라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소? 여자의 이름이 델릴라가 분명하다면 그 여자의 사랑이 무슨 가치가 있겠소? 나는 정치에도, 명성에도, 박애에도, 스포츠에도 관심이 없었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겠소? 그리고 이 때문에 나는 불가사의에 싸인, 붕대로 휘감은 인간의 캐리커처가 된 거요!. -p237
만약,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다음 선택지는 무엇이어야 했을까? 연구 성과들을 세상에 발표하고, 조력자들을 얻어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든다면 좋았을텐데, 그리핀의 선택은 달랐다. 인간의 캐리커쳐가 되어버렸다고 판단했음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해 '두려움의 통치'를 펼치고자 했다. 결국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 투명인간은 죽은 후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욕망에서 벗어나야지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
투명인간을 대하는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그가 '두려움의 통치'를 하고자 하는 것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만으로 공포를 느꼈다. 물론, 투명인간이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준 면도 있었지만, 그렇게 공격적으로만 대해야했을까? 대중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다면 투명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외에 더 좋은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지않았을까싶었다. 아니나다를까 허버트 조지 웰스는 하나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그리핀의 연구결과가 담겨있는 책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
언젠가 내가 그것들을 끌어내게 되면- 하나님, 저는 그가 했던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정말 제대로 할 겁니다. -p 293
제대로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날뛰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세상으로 만들어간다는 걸까? 아니면 권력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걸까? 묘하게 여운이 남는 결말이었다. 많은 과학자들의 열정과 탐구심으로 세상에 등장한 기술들 덕분에 사람들은 많은 편리함을 누리고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따라서 세상을 파괴하고, 인류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새로운 발견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SF소설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현되어가는는 것을 볼때면, 경이로운 맘도 들지만 불안한 마음도 든다. 인간의 상상력이 언젠가 형체를 띠게 된다면 인류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방향으로 쓰여졌으면 좋겠다. 투명인간의 내용도 궁금했지만 번역에 대한 소개글 때문에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도 강했다. 번역가 이정서의 역자해설을 통해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책이 전하는 바도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번역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투명인간의 죽음을 안타깝게 보느냐? 당연히 죽어야하는 못된 사람으로 보느냐? 번역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다른 번역으로 읽으면 이 책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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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투명 인간 저 자: 허버트 조지 웰스 출판사: 새움
고전중의 고전이라고 하는 이번 처음 만나는 [투명 인간]. 이 소재로 영화나 판타지 등 다양한 재료로 사용하는데 100년도 전에 벌써부터 과학소설이 소개되었다는 점에 놀랐다. 많은 저서를 남기고 장수했다고 할 수 있는 나이 80세에 생을 마감했는데 단순히 흥미 위주가 아닌 인간에 대한 고찰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다. 사실, SF를 즐겨 읽지 않아 생소했는 데 이번 소설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선을 넘으면서 일어나는 일은 결국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한편으론 비극일 수밖에 없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책은 그동안 번역된 부분에서 오역된 부분을 수정하고, 원작의 의미를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원작대로 번역을 했다. 미국 버젼에서는 없는 문장이 생기기도 하고 의미가 줄여드는 현상도 있었는 데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작품의 배경과 저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가 달라지니 원서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는 특별히 더 작품의 배경에 대해 알아둬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역마차]라는 숙소(저서엔 pub 소개되었다)에 한 남성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독특한 안경과 모자 그리고 온몸을 감싸는 옷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머물게 되면서 숙소를 운영하는 홀 부인은 묘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손님이고 숙박비를 밀리지 않고 내니 이상해도 어떤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홀 부인을 제외한 주위 사람들은 이 손님이 너무 궁금하다.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짐이 도착한 것을 보러 내려 오다가 개에게 손이 물리게 되면서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듯한 피부를 사람들이 목격하게 되면서 소설은 갑작스런 전개를 맞게 된다.
소설 중반까지는 투명인간에 대한 어떤 소개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가(투명인간) 사람들에게 들통나면서 투명인간은 사람들을 피해 도망을 치게 된다. 왜? 그는 도망을 쳐야했을까? 하여튼, 겨우 숙소에서 몸만 빠져나오게 되고 어느 개울가에서 혼자 신세타령을 하는 마블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투명인간은 이 남자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마블 역시 두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의 목숨을 잡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공포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마블 역시 결국 그를 외면하게 되면서 투명인간은 홀로 어느 집에 잠입을 하게 된다.
켐프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하면서 나름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신문에서는 투명인간에 대한 소식이 실렸지만 그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켐프의 집에 투명인간이 머무르게 되면서 평온한 그의 삶에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투명 인간이 우연히 들어간 집은 오래 전 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켐프 박사의 집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롭고 두려웠는데 이제는 그를(투명인간)을 아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환희에 찼을까?
그리고 드디어 투명인간의 이름이 무엇인지 중반에 넘어서야 드러난다. 그의 이름은 그린핀으로 나름 소신을 가지고 연구를 하던 인물이었지만 연구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어버리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연구를 성공이었다 그러나!!! 이를 세상에 공표하는 대신 혼자 알기로 다짐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부터 그의 삶이 차츰 나락으로 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켐프 박사에게 자신이 어떻게 이 마을까지 오게 되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세세한 설명을 하는 장면들은 그가 아직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는 건 생명이 가진 존재라면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아무리 투명인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리핀 역시 이를 이겨낼 방도가 없었다. 도움을 청하지 못한 상태로 이리저리 움직이다보니 때론 물건을 훔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살아야 하는 수단이니 인간의 윤리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서서히 하게 되었다. 요컨데, 이런 생각이 서서히 그를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되는 상황까지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연구를 쓰려고 했던 그린핀...그러나,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광기로 물들어 버린 그의 지성이 결국 그를 인생의 끝으로 내몰리게 한 [투명 인간].
만약 자신을 알아주는 켐프 박사를 일찍 만났더라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문득, 프랑케슈타인의 괴물이 애정을 받고 자라거나 다른 인간에게 외면을 당하지 않았다면 괴물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속성이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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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해봤다면 투명인간의 삶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상대는 나를 볼 수 없고 나만 상대를 볼 수 있다면 뭐든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과연 그럴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투명인간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할 수 있을까. SF 소설의 고전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은 투명인간의 삶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상상이 아닌 투명인간의 실체라고 할까.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쌌는데, 부드러운 중절모 챙이 반짝이는 그의 코끝을 제외한 얼굴 전부를 빈틈없이 가리고 있었다. (13쪽)
아이핑 마을에 도착한 낯선 이방인. 수상해 보였지만 숙박시설에서 그게 무슨 대수랴. 객실 요금만 밀리지 않고 내주면 그만이었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작은 마을에서 그의 등장은 특별한 관심사였고 붕대를 감은 모습에 의료인 커스는 그를 찾아갔고 이방인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가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을 누가 믿어줄까. 객실 요금이 밀리면서 여관 주인과 사소한 다툼이 시작되고 그 사이 마을에서는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모든 사건의 단서는 이방인을 향했고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에게 수갑을 채우려 한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사람들의 눈에는 악령이 씌어 가구가 움직이고 알 수 없는 힘이 목을 조르는 공포에 휩싸일 뿐이다. 여관에서 나온 이방인은 조력자가 필요했다. 투명인간이지만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입고 자야 할 공간이 필요했으며 여관에 두고 온 자신의 소중한 책과 짐을 가져와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보이지 않는 능력을 악용해 마블이란 남자를 조종한다. 이제 세상은 투명인간의 횡포를 알게 되었고 그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
그 과정에서 운명처럼 과거의 친구 켐프를 만나게 되고 이방인과 투명인간이 아닌 ‘그리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가 어떻게 투명인간의 몸을 갖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과학자로 색소와 굴절을 연구했던 일과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벌어진 일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런 그리핀에게 켐프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리핀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 주위를 돌 수 있는데, 그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건, 시점을 골라 내가 원할 때 타격을 가할 수 있소. 내가 원할 때 피할 수도 있소. 내가 원할 때 달아날 수도 있소. (중략) 우리가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사람들도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점이요. 그래서 그 투명인간이, 켐프, 이제 ‘두려움의 정치’를 펼치는 것이오. 그렇소, 의심의 여지없이 놀랄 거요. 하지만 나는 그걸 의미하는 거요. 두려움의 통치. (243~244쪽)
전도 유망했을 과학자가 한순간 늪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이다.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모든 걸 공개하고 협력했더라면 그리핀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스스로 파괴하는 결말에 이르렀으니까. 반대로 투명인간인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역할도 크다. 혐오나 비난이 아닌 있는 그대로 대하고 그가 원하는 도움을 주려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투명인간인 그를 인정했더라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소설 곳곳에서 그리핀이 세상을 향한 분노는 불신과 절망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아닌 현재 투명인간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아니, 선한 목적으로만 투명인간의 기능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1897년 발표된 소설이지만 대단한 장르소설뿐 아니라 사랑받는 고전인 이유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탐구에 있다. 인간의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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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참 신기했다. <투명인간>이라는 소설. 이야기를 모르는게 아니었는데 이 작가 하버트 조지 웰스가 대단한듯. 이게 얼마전에 읽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에서 젊은 선생이 극찬했던 <세계사 산책>의 작가 H.G.웰스가 이 책 작가. 지금 읽고 있는 <수학, 공부하는 이유>에도 한 마디 나오더라 통계를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워야 된다고...옛날옛날 작간데...
내용은 생각보다 김빠졌다. 투명인간이 어디 시골 여인숙에 나타난다. 첨에는 투명인간인줄 몰랐는데, 어찌저찌 드러난다. 근데 이 천재였던 불운한 과학자는 흑화했다. 대단하게도 투명인간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있었고, 기본적으로 먹고 자고 입고도 제대로 안되니까 괴로워 하다가 나름 살려다가 이런 저런 흔히 말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숨어 다니다가 켐프네 집에 들게 된다. 나름 대학때 인연이 있었던 켐프에게 자기한테 일어난 일, 겪은 일을 털어놓는데 켐프는 그걸 이용해서 그리핀을 잡는다.
역자의 해설이 길다. 미국판과 오리지널 판이 다르다는 데서 출발하는 듯. 의역의 문제 지적을 꼼꼼하게 한다.
흔한 나쁜 놈이 아니고 중간의 살인과 폭행등의 사건은 그가 처한 곤경에 의한 것이다. 불행한 천재였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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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가시성은 사실 단 두 가지 경우에만 가치가 있소. 달아나는 데 유용하다는 것과 접근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요. 따라서 사람을 죽이는 데는 특히 유리하오. 나는 사람 주위를 돌 수 있는데, 그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건, 시점을 골라 내가 원할 때 타격을 가할 수 있소. 내가 원할 때 피할 수도 있소. 내가 원할 때 달아날 수도 있소.”
투명인간은 불가시성을 획득한 존재로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도 어떠한 제재나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 속에서나 친구들과 대화 속에서 했던 질문이 있다. 만약 투명인간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냐. 그때는 평소에 해볼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 마구 떠들었다. 싫어하는 아이를 몰래 때리거나 목욕탕에 몰래 들어가거나 은행에 가서 돈을 가져오거나 좋아하는 과자나 장난감을 훔쳐온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체로 ‘몰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투명인간의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몰래 하면 어떤 책임도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투명인간으로 하는 일들은 모두 불법적이고 나쁜 일밖에 없었다. 몰래 때리고 훔쳐보고 훔치는 일들. 인간의 본성은 악해서 그런 것들만 떠오르는 것이었을까.
나이가 든 지금은 투명인간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르다. 투명인간이 되어서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을 결국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의 힘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과 범위는 굉장히 제한적일 것이다. 더구나 모든 것이 스마트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직접 만나지 않고 많은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요즘은 실제 모습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데 굳이 투명해질 필요까지 있겠는가 싶다. 오히려 불가시성을 지닌 몸 때문에 겪게 될 사고나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 클 것 같다. 차라리 순간이동이 훨씬 이득이지 않을까. 복잡한 절차와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고도 순식간에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 그런 것이 있다면 현실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정작 투명해지고 싶은 것은 몸이 아니라 번잡스러운 생각으로 가득한 지치고 무거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투명인간> 속 주인공 그리핀은 오랜 연구 끝에 투명한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천 조각이었고 그 다음은 고양이었다. 하지만 고양이 뇌실벽관이 사라지지 않아서 “눈이 두 개의 작은 영령처럼 남아” 있었다. 실패로 끝난 실험체가 되어버린 고양이는 그리핀의 방에서 계속 울어댔다. 마침내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내야겠다고 결정하고 불을 켰을 때 그리핀은 “단지 녹색으로 빛나는 눈”만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리핀은 나중에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을 때 고양이가 극심한 고통으로 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밤이 지나갔고 그리핀은 마침내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그리핀은 생각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단지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 내게 주는 엄청난 이점을 막 깨우치기 시작하고 있었소. 내 머리는 이미 모든 다양하고 멋진 일들에 대한 계획으로 넘쳐나고 있었소. 이제 내가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말이오.”
처음에 그리핀은 투명인간으로서 특권을 누렸다. 몰래 할 수 있는 일들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절은 겨울이었고 투명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걸칠 수 없었다. 옷을 걸치는 순간 그리핀은 기이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투명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야했다. 투명인간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얻은 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는 쇼핑몰에서 훔쳐입은 옷과 신발마저 벗어던지고 도망가야 했다. 권력을 지기 위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는 그것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그리핀은 고립되었다. 누구와도 비밀을 나눌 수 없어서 고립된 투명인간은 점점 궁지로 내몰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꿈꿨던 그는 맨몸뚱이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리핀이 극단으로 내달렸던 모든 행위의 중심에는 고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립된 상태에 내던져진 사람은 모든 일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 막다른 길밖에 없으니 휘두르거나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우리 사회는 투명인간을 용인하지 않는다. 보편에서 벗어난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투명한 몸을 가진 사회는 투명한 몸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그리핀은 ‘두려움의 통치’를 떠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에는 ‘있지만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때의 불가시성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이는 편협한 상식이 가져온 착시 현상. <투명인간>을 읽고는 우리가 만들어낸 투명인간들에 대해 생각이 이어졌다. 씁쓸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을 읽을 때 ‘전혀 새로운 번역’이라는 문구를 보고 문장을 천천히 읽어갔다. 책 중간중간 단어나 문장이 원작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시대적 상황에 맞춰서 해설을 하고 있어서 <투명인간>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역자후기에서 이정서 번역가는 허버트조지 웰스가 썼던 원작이 다른 나라로 번역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비교하면서 읽어보니 정말 원작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로스트는 “시란 번역하는 과정에서 잃게 되는 그 무엇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는 “번역이란 배신행위”라고 했다. 언어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처음 작가가 썼던 언어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바벨탑을 쌓아올리려고 했던 인간들의 시도는 언어가 이질적으로 흩어지면서 무산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언어를 옮기는 과정은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언어의 등가성을 찾는 일의 어려움. 원작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직역으로 고스란히 작품을 살린 번역이 더욱 빛이 났던 <투명인간>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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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의 창시자라 불리는 허버트 조지 웰스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였다. 그는 네 번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니 그의 작품들의 문학성 또한 남달랐을 것이다. 1897년 출간된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은 당시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투명인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내가 만일 투명인간이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 보았으리라. 투명인간의 모습과 그 힘은 고전 문학에서도 이미 여러 번 등장한 바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서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반지를 얻은 순진한 목동 기게스의 이야기, 우리나라 전래동화 속 도깨비감투를 쓴 사람, 셰익스피어 작품 <템페스트> 속 공기의 정령 아리엘의 인간을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 괴테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박사와 투명인간이 되어 바티칸을 활보하는 것 등의 이야기가 있다. 근현대에서는 앞서 말한 마법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의 힘으로 인간을 투명화 시키고 있는데, 바로 조지 웰스가 창조해 낸 <투명인간>의 그리핀 이라는 과학자가 그 시초라고 한다.
그러나 그에 관한 그의 생각이 무엇이었든, 아이핑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그를 싫어한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중략..... 사람들은 그가 마을을 지나칠 때면 옆으로 비켜섰고, 어린 장난꾼들은 코트 깃을 세우고 모자챙을 내리고, 그의 비밀스러운 행동거지를 흉내 내며 그 뒤에서 불안하게 보폭을 유지하며 걷곤 했다. p. 48-49
이 책의 비운의 주인공인 그리핀은 빛의 굴절에 의한 연구를 통해 투명인간의 탄생을 가능케 했지만 타인으로부터의 차갑고 날카로운 혐오의 시선들을 감내해야 했다. 투명인간으로의 완벽한 변환을 이루었지만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그 추운 날 몽뚱아리에 실오라기 하나 걸칠 수 없었고, 오랜 연구로 인해 소진된 돈을 구하기 위해 사제관을 털기도 하고 자신의 연구가 탄로 날까 봐 머무르던 주막(숙박 가능한)을 태우기도 한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그리핀은 도주하다가 우연히 대학시절 친구였던 켐프의 집에 숨어들게 된다. 켐프에게 그리핀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 호소하는 부분은 너무나 인간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리핀은 그런 친구에게 배신 당하고 만다.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그리핀은 그가 가진 절대 권력을 도구로 삼아 점점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이 책의 역자 후기에는 '투명인간'의 의미에 대한 표준국어 대사전과 영국 오리지널 판본 뒤표지의 글을 비교하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던 '투명인간'은 그저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래 알고 있던 바로는 '투명인간'이란 보이지 않는 힘을 악용하다 궁지에 몰려 죽게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후자는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자신의 광기가 더해져 몰락하는 과학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서평을 쓰기 전 발췌독을 하면서 자문해 본 것은 독자들이 주인공 그리핀 만을 향해 질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핀을 마냥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말해 둔다. 왜냐하면 사건이 하나씩 전개됨에 따라 그의 이성과 인간성은 급격히 하강선을 그리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켐프 박사의 선동과 아이핑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투명인간에 대한 무성한 소문에 의해 그리핀은 일말의 변명조차 한마디 내뱉지 못한 채, 동네 사람들의 혹독한 발길질과 손찌검에 의해 잔인하게 맞아 죽었다. 이 대목에서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서 표류된 소년들의 만행이 떠올랐다. 인간 내면의 악과 무소불위의 권력이 만들어 내는 허상의 뒷면이란 이런 것일까 싶더라는.... <투명인간>이란 작품 속에서 악이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가는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들 중 누구와 가장 흡사한 인물일까? 투명인간은 익명성이 담보되어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권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있어 윤리와 도덕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찰해 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거기엔 모든 인간 중 처음으로 자신을 눈에 안 보이게 만들었던 그리핀이, 불도 켜지 않은 침실의 지저분하고 허름한 침대 위에, 무지하고 흥분한 가람들 무리에 둘러싸여, 깨어지고 상처 입고, 배신당하고 동정받지 못한 채로 놓여 있었다.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가장 재능 있는 물리학자 그리핀은 자신의 이상하고 가공할 생애를 끝없는 불행으로 끝마쳤던 것이다. p. 289
마지막 챕터 후기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기도 했는데 독자로 하여금 속편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일말의 여지를 주려 했던 웰스의 '모호한 여백의 미' 라 칭하고 싶다. 이 책은 각 장마다 흥미로운 사건이 등장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전개도 빨라 지루할 틈이 전혀 없는 작품이었다. 간혹 직역에 충실한 점 때문에 두어 번씩 되풀이해서 읽어야 하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역자의 해설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투명인간>은 영국 오리지널 판본과 미국 판본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번역이 된 것은 미국판을 번역한 것이었고 이정서님께서 처음으로 영국판으로 번역을 해 주신 것이다. 영국판을 미국판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상당 분량의 중요한 부분을 빼 버렸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웠다. 또 역자의 의역에 의해 어떤 작품이든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조만간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들도 함께 비교해 보고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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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투명인간의 모습은 참 낯익다. 투명인간하면 푹 눌러쓴 모자, 붕대를 친친 감은 얼굴, 긴 외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한다. 이렇게 투명인간이라는 외모와 이름은 익숙하면서 그 이야기는 잘 모르고 있었다니 참 부끄럽다. 1897년에 나온 소설로 네 차례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세계적 베스트셀러라는 점에 늦게라도 읽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다. 더불어 새로 번역된 새움의 투명인간은 기존에 잘못된 번역을 다시 고쳐 원작에 충실한 책이라 하니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간의 몸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도록 하는 약을 발명한 사나이가 그것을 악용하여 온갖 나쁜 짓을 하다가 궁지에 몰려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발췌)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투명인가의 정의이면서 이 책의 줄거리이다.
투명인간, 그리핀은 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피해 들어간 집에서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는 켐프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해서 투명인간이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색소와 굴절에 관한 원리를 이용해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이 무척 과학적이다. 공기의 수준까지 물질의 굴절률을 낮추게 만들면 투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언젠가 물속에 유리 조각을 넣으면 보이지 않는 실험을 본 적이 있다. 과학적 실험의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투명인간이 허무맹랑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유리 조각이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정말일까? 세포는 색을 가지고 있지 않고 투명할까? 분명 현대의 과학은 정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투명인간이라는 것이 실현 가능한가 등 많은 질문과 궁금증을 주는 책이었다.
그런데 투명인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투명인간이 되고자 했던 그리핀에게 그것은 신비로운 능력, 자유로움으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능력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 자유로움이 악용되면 사람들을 해칠 수 있게 된다. 보이지 않기에 방어가 힘들고 언제 위협을 받을 줄 몰라 두려워하게 된다. 어린 시절 귀신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던 이유도 똑같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지 않음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어 버린다. 그걸 철저히 이용하여 사람들을 통치할 생각을 한다. 분명 투명인간, 그리핀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소설에는 단순히 두려움으로 통치를 한다고 하지만 지금에는 투명 망토라 해서 군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그리핀의 두려움의 통치가 전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핀의 생각은 인간의 가지는 군림하고 통치하려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신비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은 한계가 있었다.
척박한 일기는 투명인간을 보호할 수 없었다. 또한 눈이 아닌 소리나 냄새는 거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그 능력에도 한계는 드러났다. 그리고 결국 투명인간의 능력은 한순간의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능력은 대단한 능력이지만 보이지 않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더군다나 투명한 그리핀을 사람들은 능력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괴물, 위협하는 두려움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그의 연구의 결과는 그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사람들을 두려움의 통치를 하겠다는 생각도 연구 전의 가졌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니 존재로서 인정받기 위한 하나의 방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투명인간의 결말은 참 아쉽다.
이 부분은 다른 번역서와 다른 부분이다. 타 번역서에는 대부분 ‘사악한 실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라고 나온다고 한다. 철저히 투명인간이 악행으로 벌을 받은 것처럼 끝나버려 원작에서 말하려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버린 것 같다.
새 번역을 통해 투명인간의 악행의 잘못보다 투명인간을 제대로 몰라봤던 사람들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기술과 발견을 대부분 사람은 낯설고 몰라서 무조건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모른다. 결국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적으로 그를 취급했다. 결국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지는 새로운 과학의 발전을 사장 시켜 버린 것이다.
투명인간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 인간의 지나친 욕망이 불행한 결과를 보여주는 면도 있다. 하지만 욕망의 좌절보다 당시 과학의 연구에 대해 몰이해와 거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며 재밌게 읽은 책이다. 특히 원전에 충실한 새로운 번역본은 번역의 중요성도 알게 해주었다. 원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번역에 달린 것 같다. 번역자의 연구와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좋은 번역자들이 원전을 충실히 번역해 주어 다양한 고전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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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 안 읽어보았더라도 제목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다 대강 어떤 내용의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굳이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지 웰스의 책보다는 쥘 베른의 책을 주로 읽는 편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작가들이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정기 역의 <투명인간>은 미국 판본이 아닌 영국판본을 번역한 책이라고 한다. 기존 번역본을 읽어본 것이 아니라서 두 번역본의 차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책의 뒷편에 번역에서 차이가 있는 부분을 따로 설명을 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설명을 읽고나니 우리가 번역에서 생기는 사소한 오역이 전체 작품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정기 번역의 <투명인간>에서는 과학자로서의 그리핀의 고뇌와 감정, 성정들이 더 잘 표현되었다. 특히 'Reign of Terror' 공포정치를 번역함에 있어서 그리핀의 법을 뛰어넘은 살인의 욕구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고의 의미를 더 부여하는 정치방식을 도입하려는 그리핀의 모습을 더 강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알비노 증상을 가진 그리핀이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던 중 주변의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어떤 광기를 가지게 되는가에 대한 책이었다. 어린시절에 꿈이 '투명인간'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투명인간이 좋은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먹는 것, 입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더러 먼지, 비, 안개에도 취약한 투명인간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투명망토처럼 일순간 만을 투명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면 투명한 존재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존재인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이 사라진 사람은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기도 하다. 과학소설이긴 하나 윤리성을 잃어버린 과학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이나 <타임머신>도 읽어보고 싶다. 또 어떤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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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 주로 영화에서 접하고 처음 출판된 책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이 1897년에 출간된 것을 알고는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자면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이러한 창의적인 책이라니! 내 머릿속에서 투명인간이 크게 기억에 남은 것은 '할로우 맨'이라는 영화였는데 그 영화에서도 투명인간은 따지자면 '악'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어린시절에도 약간의 측은한 감정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기존에 있던 책들은 읽어보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지만 번역에 공을 들인 책이라 더 그랬는지도. (오역된 책을 읽었었다면 이 책도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바라면서도 어떠한 기준을 넘는 특별함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낀다. 이 책의 그리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특별함을 제외하고는 일반 사람들과 같은 '인간'임이 분명하지만 누구도 그 점을 인정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백색증을 앓고 있던 그리핀은 그러한 인간의 양면성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욱 빠르게 비관적으로 변한 건 아니었을까. 이미 오래전에 쓰인 책이지만 여전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고, 이 책이 처음 나온 그 시대와 지금이 결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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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주당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