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적으로 사귀고 있는 듯한 중년의 남녀 사이에 나타난 이십 대의 매력적인 청년. 사강의 기존 소설에서도 봤었던 인물 관계라서 이거 또 그런 뻔한 흐름인가 조금 식상해할 시점에 갑자기 소설의 장르가 달라진다. 그런데 여전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맞고.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사랑. 그럼에도 플라토닉의 형태를 유지하는 사랑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사랑하는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실행하거나 요구하지 않아도 빠져나가기 힘든 함정으로 작용하는 사랑의 방식도 존재한다. 여자 주인공 도로시는 인생에 가끔 찾아오는 함정처럼 불현듯 족쇄가 채워지는 스테이지로 진입한다. 결말을 열어 두었기에 도로시와 주변 인물들의 생사에 관한 걱정이 해소되지 않는다. 소설을 다 읽고 바라본 책 제목의 '파수꾼'이라는 단어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도로시의 파수꾼'이 아니라 '마음의 파수꾼'이다. 누구의 마음일까. 도로시의 마음일까, 청년의 마음일까. 1968년에 쓰인 다소 엽기적인 이 소설을 똑같은 내용으로 다른 사람이 썼다면 아마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사강이라 가능한 일들이 있다. |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통속소설 느낌. 그래도 나름 빠르고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내용 자체는 이미 너무 진부해진 플롯이라 딱히 특별할 것 없지만 사강이 그려내는 그 시대의 부유함이나 여유로움, 섬세함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면 읽어볼만할듯. 하지만 사강의 다른 작품들이 훨씬 좋고 훌륭하다그는 모호하면서도 억눌린 표정으로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보고 있지 않았다. 영사실에서 내가 무척 충격을 받았던, 바로 그 맹목적인 시선이었다. 현실에 발을 디딘 이방인의 시선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몇 남자가 내 어깨 위에 쓰러져왔지만, 그 누구도 내게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 야만적이고 급작스러우며 남성적인 슬픔처럼 내게 엄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나를 죽일 뻔한 이 청년의 사랑만큼 상냥한 사랑을 내게 베풀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오래전에 논리라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