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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대에 대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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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렇게 치밀한 기록을 남겼던 선인들(특히 정조)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고, 혹자는 이런 장대한 정치적 시위를 실행한 정조의 정치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덮는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계승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한 시대에 대한 아쉬움이다. 물론 너무 감상적이라 스스로도 생각한다. 얼마전 호암미술관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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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렇게 치밀한 기록을 남겼던 선인들(특히 정조)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고, 혹자는 이런 장대한 정치적 시위를 실행한 정조의 정치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덮는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계승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한 시대에 대한 아쉬움이다. 물론 너무 감상적이라 스스로도 생각한다. 얼마전 호암미술관에 가서 정조대왕 능행도를 실물로 본 적이 있다. 본 책 120쪽에 실려 있는 시흥환어행렬도였다. 반차도에 나와있는 왕의 행렬, 그 행렬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모습이 조감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지은이도 언급했듯이 행렬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모습이 너무나 여유로와 보이고, 심지어 떡팔고, 엿파는 장사치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그림이다. 이 점은 특히 내게도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극, 소설, 역사 등에서 권력자가 지나가면(왕이나 대감 등) 백성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행차가 지나갈 때까지 쥐죽은 듯 있는 장면만을 보아 온 내게 (아니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가) 이런 모습은 오히려 어린시절 TV로 보았던 영국 왕실의 결혼식 행렬을 연상시킬 정도로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혹시 정조는 엘리자베스 왕보다 더 현대적인 군주는 아니었을까? 백성에 다가가려 한 것 자체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는 하나 백성들 자신 스스로가 엿빨면서 지켜볼 정도였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국민학교 시절 위정자를 위해 태극기들고 동원돼 본 적이 있는 나로선 그 시절이야말로 정조 때에 비해 얼마나 퇴보한 시절이었나 하는 다소 뜬금없는 생각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요즘와서 갑자기 화두가 "정조"가 되었다. 몇년 전 매스컴에서 한창 관심이 집중될 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엉뚱하달 만도 하다. 하지만 다 때가 있는 법인 가보다. 가까이 살면서도 관심없던 수원성도 최근 일주해 보았고, 지금은 아마 개장했을 복원된 화성행궁도 가 보았고, 용주사와 융건릉도 견학을 했다. 글도 글이지만 그림이 눈에 밟혀서이다. 반차도, 능행도, 그 밖의 의궤의 그림들이 가슴 한 켠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나는 이 책에서 지금은 사라진 정조의 꿈을 본다. 다른 분들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l****1 2002.10.1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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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보고 또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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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보물을 되찾아왔다.대통령과 군수가 보물이 돌아왔음을 하늘에 고하고 땅에 절하였다.'조선왕조 의궤' 297책.그 중 화성에 관한 의궤가 2가지나 있다.'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조선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라고 한다.전세계사를 통털어 기록이 없었다면 역사는????정조임금의 굳은 의지와 효심과 애민이 절절히 묻어나는 책.그리고 자랑스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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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보물을 되찾아왔다.
대통령과 군수가 보물이 돌아왔음을 하늘에 고하고 땅에 절하였다.
'조선왕조 의궤' 297책.
그 중 화성에 관한 의궤가 2가지나 있다.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
조선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라고 한다.
전세계사를 통털어 기록이 없었다면 역사는????
정조임금의 굳은 의지와 효심과 애민이 절절히 묻어나는 책.
그리고 자랑스러운 책.
참으로 마음이 도타워지고 자꾸만 손이 가는 책이었다.
좋은 책을 만나 참으로 행복한 나날이다.

YES마니아 : 로얄 i*****u 2011.09.1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조의 개혁의지를 화성행차를 통해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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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형적으로, 그리고 조각조각 부서진 채로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근대적 국민국가(그것이 인민에게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력체인지의 논의는 일단 차치하고)의 수립이 이루어질 시기, 즉 근대적인 역사관을 정립할 시기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왜곡된 역사관을 뿌리 깊게 갖게 된 것이 결정적인 각인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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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형적으로, 그리고 조각조각 부서진 채로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근대적 국민국가(그것이 인민에게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력체인지의 논의는 일단 차치하고)의 수립이 이루어질 시기, 즉 근대적인 역사관을 정립할 시기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왜곡된 역사관을 뿌리 깊게 갖게 된 것이 결정적인 각인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도 -무조건적이고 무근거한 한국사의 미화나, 한국사의 세계사로의 억지 편입, 제국주의에의 대항 논리로서 '우리도 제국이 되자'는 민족주의 등등-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어느 정도 역사를 복원했다고 해도 여전히 할 일은 많다. 해방 공간과 그 이후의 좌익의 활동은 아직도 남한에서는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북한에서는 '종파주의'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정리되어 남은 것이 별로 없다. 역대 파쇼 정권에 의한 현대사의 왜곡은 물론이고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도 왜곡된 형태로만 남아 있는 민중의 저항도 다시 발굴하고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크게 보아 지배층의 역사에서 피지배민중의 역사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류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철저하게 역사에서 제외되어 온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도 한국 사학계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의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영정조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유럽에서는 후기봉건제가 위기에 처하면서 근대민족국가로의 이행과정에서 절대주의 국가라는 '이행기 국가'가 등장했다. 부르주아 학자들은 절대주의 국가를 군주권력 내지 군주권력을 중심으로 한 관료권력으로 파악하며, 맑스주의 학자들은 1)봉건적 국가권력의 마지막 형태로 파악하거나 2)자본주의의 발전에 지렛대 역할을 수행하고, 근대국가적 형태성을 대부분 갖춘 근대부르주아국가의 초기형태로 파악하거나 3)봉건세력 대 신흥 부르주아 세력의 팽팽한 힘의 균형 속에서 양대 계급세력이 군주를 지지함으로써 생긴 계급간의 '세력균형국가'라고 파악한다. 영정조 시대는 평가하기에 따라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해당하며, 일시적인 군주권력은 2)의 풀란차스의 의견처럼 근대부르주아국가의 초기형태(비록 그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나 3)의 엥겔스의 의견처럼 붕당의 두 세력(노론과 소론이 계급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이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군주에게 권력이 집중된 형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해석은 세계사의 발전 양식에 한국사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사의 내재적인 발전 동력과 변화 노력을 되살리려는 것이기도 하다. 2.『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마지막 군주권력의 보고서 의궤(儀軌)는 국정보고서이다. 관련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의 1795년의 화성행차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며, 이 책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원본의 양이 워낙 방대해 1/10도 담지 못했다고 한다. 기록문화의 백미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원행정례』(園幸定例)는 정조시대의 수원행차를 전반적으로 정리한 것인데, 정리의궤만큼 자세하지는 못하다. 모든 것을 자료로 남겼으며 모든 것이 실명제이다. 저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정치의 투명성, 책임성에 자신이 있었던 정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정조를 위대한 군주라고 처음부터 못박으며 과연 현재의 최고통치자 중 어느 누가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는지를 묻고 있다. 정조는 붕당정치의 폐단으로 희생된 아버지의 한을 깊이 새기며 자랐고 영조의 탕평정책과 왕조중흥을 마무리하는 정책을 펴 나갔다. 정조는 좀 더 진전되고 왕권이 강화된 형태의 탕평정책을 시행했다. 저자는 정조의 왕조중흥을 근대를 향한 전진으로 평가하며 그 증거로써 중앙집권화, 사회통합강화, 사민국가(士民國家) 확립, 농업과 상공업의 병진 발전 등을 꼽고 있다. 또한 세련된 문치(文治)로 민인(民人)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려 노력했다. 규장각(奎章閣)을 개혁정치의 선도적 중신기구로 발전시켰고 초계문신(抄啓文臣)이라는 제도로 기성관료를 재교육하여 젊고 재주있는 신하를 의정부에서 추천해 규장각에 위탁교육했다. 별시문과(別試文科)로 각도의 인재를 현지에서 발탁하는 정책을 썼다. 또한 즉위하자마자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켰고 효과적 통치를 위해 군권을 장악했다. 정조가 즉위한 시기는 이미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고 화폐경제도 발달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광역수도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실학 운동이 일어났고 근대를 향한 움직임들이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정조는 이런 시대 상황을 적절히 파악하여, 서울시전상인(市廛商人)들에게 부여했던 난전금지권(亂廛禁止權), 즉 금난전권(禁難廛權)을 혁파하는 신해통공(辛亥通共)을 시행했다. 이것은 사상(私商), 즉 난전(亂廛)의 활동을 보장하는 것으로 독점에서 자유경쟁체제로 이행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정조의 이러한 통치 스타일이 마치 대기업 총수 같다(p.88)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조는 과학기술과 고급학문을 융통성 있게 수용하는 한편, 주자성리학을 정학(正學)으로 정립해서 부정적인 상업·대중 문화를 배제하여 학문의 발전에도 힘썼다. 이 같은 정조에 대한 평가 위에서 정조의 화성행차를 바라본다면 앞 뒤 맥락 속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정조는 왜 화성(華城)을 건설하였는가? 화성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고 어머니 회갑을 기념하는 화성 행차를 기획한 것은 상당히 큰 사업이었다. 화성을 군사 요지에 있는 군사 도시로 키우고 부수도(副首都)로 만들며 대도회(大都會)로 키워 유수부(留守府)로 승격시키려는 의도는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나 '황제'의 나라로 승격하겠다는 야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성은 여러 모로 치밀하게 기획된 계획도시였는데, 우선 경제적으로는 자급자족, 이용후생(利用厚生)하는 실학 도시였고, 도덕적으로는 성인의 도시였으며, 행정적으로는 수도의 역할을 분담하는 부수도였고 군사적으로는 서울 남쪽을 방비하는 요새 도시였다. 도시 공사하면서도 노동자의 이름, 주소, 근무일수, 품값 등을 일일이 기록하는 등 민을 최대한 배려하려 했다. 정조는 화성을 자주 방문했다. 가는 도중 상언(上言)이나 격쟁(擊錚)을 처리하고 지방 경제를 활성화하는 등의 부수적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특히 1795(정조 1

[인상깊은구절]
"당시의 정치, 행정, 군사, 재정, 교통, 문학, 건축, 예술, 수공업 기술 등은 물론이요, 궁중의 의식주 문화‥‥‥ 일반 백성들의 생활‥‥‥ 수원을 비롯한 서울 외곽지역의 지역사회의 실상‥‥‥ " "정조가 초월적 군주상(君主像)을 업고 마무리하려는 왕조중흥은‥‥‥ 말하자면 근대를 향한 전진이다"
YES마니아 : 로얄 r****t 2000.05.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조가 내린 수원화성의 미학
"정조가 내린 수원화성의 미학" 내용보기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우리나라의 문화재, 석굴암과 수원화성 그 중에 수원화성의 옛적을 책으로 재연한 책이 바로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이다. 풍부한 역사적 고증과, 사진, 그림등의 자료들을 토대로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수원화성의 모습과 멋을 글로 풀어 놓았다. 조선시대 유명한 왕들이 많지만 조선후기 하면 영,정조를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그 네들의 삶
"정조가 내린 수원화성의 미학" 내용보기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우리나라의 문화재, 석굴암과 수원화성 그 중에 수원화성의 옛적을 책으로 재연한 책이 바로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이다. 풍부한 역사적 고증과, 사진, 그림등의 자료들을 토대로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수원화성의 모습과 멋을 글로 풀어 놓았다. 조선시대 유명한 왕들이 많지만 조선후기 하면 영,정조를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그 네들의 삶이 기구하였지만, 그만큼 왕으로서 문화와 미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정조의 안목과 미학이 가장 잘 반영된 곳 수원화성에서 정조를 따라 8일간의 여행을 해보자.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에 나오는 그 곳을 찾아 가족들 손을 잡고 같이 가보는 것도 좋은 현장학습이 될듯, 방학을 맞은 자녀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YES마니아 : 골드 c*****n 2003.12.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