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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님이 단순한 열정_아니 에르노 글에 공감합니다.' 블로그 알림창에 누군가 내 글에 공감했다는 소식이 올라오면 그때 쓴 글을 열어서 읽어본다. 아니 에르노가 2022년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인터넷 서점을 도배한 그녀의 작품들의 목록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졌다고 생각한 <단순한 열정>을 골라 읽었던 것. 딱 작년 이맘 때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는 시점.
작년 10월에 쓴 <단순한 열정>에 대한 리뷰를 읽고 나서 떠올렸다. 작가의 책이 내게 한 권 더 있다는 사실을. 관심 가는 작가가 생기면 반짝하고 그 작가의 책을 한 권 이상은 보게 돼 있다. 이 책 <집착>은 그렇게 사두고도, 읽지 않은 채 책장에 꽂혀있었다.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읽을 시간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의 글은 70페이지 정도. 책을 집으면 한달음에 읽어지는 양이다. 그렇게 읽기를 미루던 책을 누군가의 공감 덕분에 떠올리게 됐다.
<단순한 열정>에 대한 나의 리뷰는 그 책의 내용을 상기시켰고, 다시 <집착>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이렇게 반짝하고 관심이 갔을 때 얼른 손에 집기를 잘 했다. 책이 읽히는 시점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읽겠지 하고 사둔 책들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다. 언젠가 볼 책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가지고 있는 책들이 제법 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번쩍하고 읽을 기회가 온다. 저절로.
유일하게 진실한 것, 결코 말하지 않을 진실은 "난 너와 섹스하고 싶고, 그 여자를 잊게 만들고 싶어'라는 말이었다. 그 밖의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모두 가짜였다. (53쪽)
지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 상상, 우리 생각, 욕망 그게 무엇이든 우리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모두모두 가짜다. 물론 눈앞에서 일어난다고 다 진짜는 아닐 것이다. 그 가짜들을 실감나게 진짜처럼 써낼수록 작가 자질을 인정받는 것 같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라면 어떻겠는가. 이 책 <집착>을 읽으면서 질투에 휩싸인 존재가 겪는 것들을 이처럼 노골적이고 사실적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이 작가뿐이겠다 싶었다. '질투'가 제목이었어도 좋았겠다.
글쓰기는 더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을, 즉 길거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엄습하던 감각이다가, 제한되고 종결된 시간 동안 '집착'이 되었던 것을 보전하는 방식이었다. (68쪽)
'나 자신을 먹잇감이자 관객으로 삼았던 질투에 휘둘리며 상상이 빚어낸 형상들을 끌어내고,' (69쪽) 스스로 '난 사로잡힌 상태였다.(12쪽), '주술에 걸려있었다'(18쪽)라고 말할 정도로 깊이 빠져든 집착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녹여낸 책이기에 한치의 거슬림이나 의심 없이 작가의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이라 가능하게 해준 몰입의 경험이다. 집착과 질투의 경험이 있었다면 더욱 공감이 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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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이 좋아서 집착도 구매했습니다 사실 단순한 열정과 부끄러움이 좀 더 아니 에르노의 장점이 잘 느껴지긴 했지만 이 책도 질투라는 감정을 세세하게 해부해서 독자가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ㅋㅋ 이런 글을 쓰는 작가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
| 아니에르노 소설은 크게 사랑파트와 가족 파트로 나뉘는듯.. 그 중 사랑파트가 나랑 잘 맞는 것 같아서 구매했다. 집착. 제목 그대로 사랑하는 상대에 집착하는 내용이고, 나는 아니에르노의 그 약간 노골적일정도로 사실적인 서술이 좋다. 누구도 그렇게 솔직하게 쓰기 어려울 것이다. |
| 아니 에르노는 이 책에서 사랑이 끝난 뒤 남겨진 ‘집착’이라는 감정을 날것 그대로, 적나라하게 들여다봅니다. 질투, 상실, 그리고 자존감의 붕괴가 만들어내는 심리의 미로를 단단한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개인적인 고백임에도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과 집착 사이의 경계를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이 책은 불편하지만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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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못할 사정으로 파리에 랍대로 다음으로 그 여자와 함께 있는 그와 마주칠 가능성이 제일 많은 곳인 카르티에라탱에 갈 때면 뭐라고 딱히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 적대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가 사방에서 감시당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감정과 감성이 물질적인 성질을 띤다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알게 되었고 온몸으로 그것들의 밀도와 형태뿐만 아니라 내 의식의 제재를 받지 않는 그들의 독립성돠 완벽하누행동의 자유를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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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소설 집착. 사실은 단순한 열정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이 책의 소개와 디자인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직 책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미친듯이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집착은.. 제 경험을 자극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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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노의 작품 7개(사건, 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카사노바호텔, 얼어붙은 여자, 단순한 열정, 탐닉)를 연달아 읽은 후, 이 책을 마지막에 읽게 되었는데, 내용상 가장 흥미진진했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집착'을 들 수 있겠다. 나의 애인이었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그것도 나이 많은 여자에게 갔다는 사실이 불러 일으키는 질투라는 감정을 이토록 매혹적으로 풀어 쓴 이야기는 보지 못했다. <단순한 열정>과 <탐닉>에서는 한 남자에 대한 충족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거의 이성을 상실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여지는데, <집착>에서 묘사한 한 여자에 대한 질투는 오히려 매우 명석하고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처럼 보인다. 마음속으로야 저주 인형에 수십개의 바늘을 꽂고 심지어 그 질투의 대상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상상까지도 해보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감정의 끝까지 갔다가 차분하게 평정심을 되찾고 명료한 이별로 끝나는 마무리가 깔끔하기까지 하다. 울고 싶을 때는 온 몸의 수분을 다 뽑아낼 것처럼 울어봐야 스스로 회복되는 것처럼 사람에 대한 미움이든 질투든 집착이든 사랑이든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까지 가보는 것도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집착>을 끝으로 에르노의 작품은 당분간 그만 읽을 생각이다. 이토록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자기 밑바닥까지 고스란히 보여준 작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녀의 건강을 기원하며 차후 더 멋진 작품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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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탐닉>에 이어 세 번째로 읽게 된 아니 에르노의 작품이다. 짧은 작품이라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중간중간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처럼 탁탁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자꾸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작품들을 연이어 읽어 나가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러한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글을 쓸 수 있지?', '이것들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허구가 담겨 있을까?', '이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과연 이 작품들을 읽으면 뭐라고 할까?', '이 작품들이 노벨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등등.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아니 에르노는 글쓰기에 열정을 갖고 있고 재능을 갖고 있다. 확실히 그의 글들은 매력적이다. 마치 팜므 파탈과 같은 매력이다. 그의 인간적인 부분들은 (작품에서 표현된 정도 밖에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쓰는 능력만큼은 정말 탁월하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조차도 커버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이것이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어쩌면 보편적일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가져보았을, 해보았을 것일 수도 있기에 더 작품성이 도드라졌을 수도 있다.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어 우리 모두가 결국 마찬가지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작품들이 갖는 효과다. 단지 작가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배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아니 에르노의 작품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몇 작품을 더 읽어보고자 한다. 최종적인 판단은 그 이후에 가능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