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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시인의 시!집을 옆에 두고 가끔 들여다 보는 독자입니다. 그의 시를 통해 슬픔은 꾹꾹 누르지 않아도 된다 슬픈 마음이 안슬픈 마음이 될 때까지 슬프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기쁨과 슬픔을 꾹꾹 담아 에서 ''우리는 아직 젊고 앞으로도 젊을 거야 그 때문에 고통받을 거야 버는 돈이 적어서 요절 따위를 두려워 해야할 거야 ” 하...심장을 쿵 찍는 게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아립니다. 순간 소중한 지금을 꾹꾹 눌러 살겠다는 결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번 시집도 기대가 됩니다. 내려놓지 않고 묵묵히 시를 써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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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살 만한가, 살 만하지 못한가. 우리는, 나는 살 만한가, 살기 어려운가. 어떻게 보든, 어느 쪽으로 다짐하든 각자의 몫이겠지만, 가끔은, 때로는, 더 자주는, 마음이 아프다. 내가 잘 살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이 시집을 읽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이 시대 젊은이의 삶은 왜 이리도 고단한가. 말하는 이들 가운데 사는 게 녹록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 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괜찮은 이들은 죄다 입을 다물고 사는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본인의 힘이든 부모의 배려든 요행이든 재수든 살 만하다 싶으면 세상 경계에서 뒤로 뒤로 물러나 구경만 하고 있는 듯 여겨지니, 내 자격지심도 깊을 대로 깊어진 것 같고.
시는, 시들은, 제목에서 알려주는 만큼 고달프고 서글프고 절망스럽다. 30대의 시인이 이런 노래를 읊을 수밖에 없다면 30대를 오래 전에 지나온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무어라고 변명이나 위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책임도 못 질 것이면서. 이제는 반성하는 마음도 무색하다. 어지간해야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눈치를 볼 텐데. 막무가내로 뻣뻣해진다. 가장 무서운 일이다. 나는 점점 더 멍텅구리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시의 구절들은 아프다. 찌르지도 않는데 한 행 한 행이 읽는 시선을 멈추게 한다. 시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이를테면 독자를, 일부러 아프게 하려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아프다고, 좀 많이 아프다고, 좀 많이 서럽고 힘들다고, 삶이 왜 이토록 가혹한 것이냐고 투정하고 원망했을 뿐일 텐데, 읽는 이가 고스란히 전해 받고 말았을 뿐. 그게 작가의 힘이든 독자의 역량이든.
고운 구절을 골라 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운 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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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내가 좋아하게 된 뮤지션 이승윤의 노래 중에 '1995년 여름'(이런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922-xdFJQ)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 곡의 가사를 최지인 시인의 시에서 가져왔다는 걸 알고 그 시를 찾아 읽어보았고, 결국엔 이 시집을 구입하게 되었다. 참고로 최지인 시인은 1990년생이고, 그의 기억 속 1995년 여름에 그는 겨우 만으로 다섯 살이었던 셈이다. 겨우 다섯 살짜리 아이가 겪었어야 하는 슬픔과 삶의 무게가 이 시에, 그리고 이승윤의 노래에 고스란히 묻어 있어, 나는 가슴이 아팠다. 몇 톤의 슬픔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그건 내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매맞는 어머니, 우는 어머니의 얼굴. 그게 가족에 대한 거의 최초의 기억이자 유일한 기억이다. 그런데 70년대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90년대의 아버지도 가정폭력의 가해자이고, 그리하여 70년대에 태어난 아이뿐 아니라 90년대에 태어난 아이도 그런 최초의 기억을 가지고 자랐다는 게 못내 가슴 아팠다. 엄마에 대한 또다른 기억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거.
그해 여름 어머니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해서 이룬 게 거의 없었다
일은 많이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룬 건 거의 없는 인생은 내 어머니의 삶과도 닮았다. 그런 어머니를 위하여 '시시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어린 아들을 떠올리면 한편으론 가슴이 아프고 또 한 편으로는 사랑이 느껴진다. 나는 그래서 「1995년 여름」으로 이 시집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내게는 이 시집의 대표시다.
이 시집의 제목은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인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는, 가난하고 가난해서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 삶,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인생. 그 팍팍한 인생의 구원이 되어주었던 게 사랑이라는 것이 이 시집이 갖는 주된 정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비정규직 청년 세대의 일과 사랑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보자면 시집의 제목에는 '슬픔'이 빠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시집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슬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의 제목에서 '슬픔'이 빠진 건
시인이 '슬픈 마음이 안 슬픈 마음이 될 때까지/ 나는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했'(「1995년 여름」) 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시인은 겉으로는 안 슬픈 마음이 되었기에 슬픔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아주 슬픈 마음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시집의 제목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나의 다섯 살을 닮은 시인이, 나의 서른 살과도 닮은 시인이(나를 서른을 넘어 유학을 갔고,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타국에서 새로 시작한 생활은 지금의 비정규직 청년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불투명하고 불안한 미래까지도 말이다), 지금보다는 덜 슬프고 더 평안해지면 좋겠다. 사랑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지금의 시인에게도, 그의 마음 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을 다섯 살의 어린 아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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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 -최지인 아내의 전화다 나는 받지 않고 메시지를 보낸다 있잖아 나 그만둘까 해 공과금 고지서를 씹어 먹는 염소처럼 재계약을 앞두고 별의별 생각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면 아낄 수 있는 교통비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내와 나의 도시락을 싸고 집에 쌓인 책들을 박스에 담고 어떤 책은 넣었다 빼기도 하며 가늠해 본다 호프 한 잔 감자튀김 작은 거 네가 좋아하는 카레 해 뒀어 내일은 제일 아끼는 옷을 입고 출근해야지 이 시간에 미용실이 열었을까 궁지에 몰린 사람들 빈 접시에 남은 갈색 소스 이사를 해야 할 때 책을 상자에 넣으면 안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책의 무게에 못 이겨 상자가 찢어진다고 하더군요. 노끈에 묶고 용달차를 알아보고 가스 회사에 전화합니다. 알아요. 우리의 짐의 무게는 버려도 늘 총량을 유지한다는 것을요. 그만둘까 해, 라는 말에 담긴 망설임. 카레 해 뒀어, 라고 말하는 위로. 개와 돼지의 시간 -최지인 야훼 품에서 몸부림친다 활처럼 붉은 얼굴들 자꾸만 쉿 쉿 검지를 입술에 대고 * 세입자는 갓난아이를 키웠다 이곳에서 나 너와 살 수 있을까 바람 통하지 않고 너희 집에서 살면 좋겠지 거실에 놓인 벤자민을 가꾸면서 햇빛이 우릴 즐겁게 할 텐데 * 라멕 방아쇠 당기고 탄환들 우수수 박힌다 나무토막 쓰러진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메시질 보내는 세계다 * 죽지 않았다면 날 보러 올래 우리 집엔 책이 많고 마음껏 담배를 태워도 된다 슬플 거다 쉬지 않고 일해서 부모는 나에게 헌신했다 나는 그러질 못하고 밖에서 잘 순 없으니까 짐들은 버릴 수밖에 유명해지고 싶었다 * 좁은 화장실에서 우리 깨끗이 목욕하고 밥을 먹고 밥을 먹고 잤다 아무도 구할 수 없었지만 이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개와 돼지가 뛰노는 시간. 우리 집에는 책이 많고 냉장고에는 초코 음료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볕이 들지 않을까봐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묵은 냄새를 밖으로 보냅니다. 화장실에 앉아 표정을 매만지고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봅니다. 한 사람이 떠나고 번호는 다른 이에게 전달됩니다. 우리를 구할수 없어 책이 내려왔고 종이를 힘겹게 넘겨 다음을 읽습니다. 나는 슬퍼요. 나는 웃기도 하지요. 나는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독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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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뒷면에 실린 문학 평론가 이 경수는 말한다. 최 지인 시는 1. 자기 세대의 성장담과 삼십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성장 서사를 쓰고 있는 듯한 비정규직 청년 세대의 일과 사랑과 슬픔을 노래한다.
2, 비인간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p101 벽에 있던 자리
마흔이 되던 해에 회사를 그만두고 고용센터 민원 대기실에 앉아 손에 쥔 번호가 불리길 기다리는 선배에게 지나온 삶은 행복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크래커
인간은 외 죽을힘을 다해 일하는 걸까
함께 일했던 동료 두명은 쓸모없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대체할 수 있는 것들
포개져 있는
무해한 사람들
p69 나는 곧 잘릴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슬픔은 없다
그동안 무얼 했는데?
시라기엔 너무 솔직한 일기 같은, 한 인간의 고백처럼 다가온다. 최 지인 시인의 시는 쉽게 읽어지는 게 매력일까.
p95 전세로 얻은 다섯평짜리 주거용 오피스텔 계약이 한달 남았다 이년 전 이 동네는 큰길 따라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옆을 걷다가 녹슨 못이 운동화 밑창을 뚫고 뒤꿈치에 박혔을 때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내가 자격 없는 사람이란 걸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나서 알았다
마치 나의 이야기고 친구의 아픔이고 이웃의 슬픔처럼 다가온다. 최 지인의 시는... |
| 요즘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처음 시작한 책은 이 책이었고 한 구절 한 구절 읽을 때마다 덜컹대는 지하철처럼 내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누구와 함께 웃고 누구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무엇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는가. 살아있는 자의 비겁함, 무기력함,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희망 같은 것들. 참 복합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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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책을 읽고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하고 있을 쯤에 사랑을 할까. 사랑하는 시간보다 일하는게 우선인듯 싶었다. 사람들마다 생각차이이겠지만, 늘 살아온 방식이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책 보면 왠지 모르게 재미있고 와 닿는 느낌이 든다. 난 언제쯤 사랑을 할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약인듯 싶다. 지난 일은 다 잊고 싶을 때도 많다. 사랑을 하면서 일하는 것보다 일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가 많았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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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의 일: ······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돈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다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인데 다 늙어버린 것 같다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 이것은 모두 이번 여름의 일/ 기대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과 얼마나 멀어진 걸까/ 폭우가 계속되는 시절/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하는 걸까 몇 가지 요구: ······ 어느 여대 교수가 술자리에서 얘기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너희가 하는 거 다 의미 없어/ 해봤자 헛수고라고/ 딱하기도 하지/ 종착역이 뒤덮여 있었다/ 구름 속처럼/ 안개로/ 십자가 네온사인 희미하고/ 나란히 걷는 세 사람의 뒷모습 희미하고/ 세상이 희미하고/ 꿈만 같아서/ 선명한 건/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 담배꽁초 가로수 갈라진 뒤꿈치 상자로 집을 짓는 웅크리고 웅크리다 공이 되어버린 사람들 비상등을 켜고 서행하는 자동차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가만 서서 이렇게 희미하다면 생활: 아픈 사람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진료실 바깥에서/ 환자들 서로 힐끔거리며/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믿음이 안 간다/ 언젠가 내 곁을 떠나더라도/ 경건히/ 벌써 몇 해가 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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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독서리듬 찾는 데엔 시만한 게 없고, 세상 시름 잊는 데도 시만한 게 없다. 어쩌다 요즘 최애장르. 젊은 시인이 리얼하게 청년의 삶을 노래한다. 그의 노동시가 "고생한, 아니 고상한 이야기"여서 더 와닿았다. "슬픈 마음이 안 슬픈 마음이 될 때까지"(1부 소제목) "...... 죽지 말자 제발 살아 있"(2부 소제목)재서, 그러기로 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우리 <세상이 끝날 때까지> <도시 한가운데>에 살아 있자,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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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겨울, 싱어게인을 통해서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 이승윤. 그리고 그의 노래 중 "1995년 여름" 이라는 곡. 이 곡은 최지인 시인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것이라고 들어서 구매하게 되었다. 곡을 들었을 때 너무 슬펐다. 가사도 슬펐고 슬픈 가사를 노래하는 목소리도 슬펐다. 화자의 이야기라면 가정폭력의 피해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을 것이다. ........ 점점 암울해져 가는 이 세대가.....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그런 슬픈 가정들은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