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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울고 싶은 마음보다 짜증이 나는 횟수가 많다. 물론 아파서 울고 싶은 순간도 있긴 하지만 몸이 아프니 만사가 귀찮고 하던 것도 잘 안되니 짜증이 더 나는 것 같다. 이런 순간이 계속 되니 '이놈의 일 그냥 그만 둘까?'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잠도 안오니 피곤은 자꾸 쌓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다. 그리고 지금 일을 하다보면 분명히 몸 아픈 것도 나아질거란 확신이 있다. 물론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거고 그로인한 힘든 순간들은 여전히 있어 울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을거다. 그럴 땐 참지말고 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울 준비는 늘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울진 않으려고 노력해 보자. 책을 보며...
단편집이다. 총 12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 있는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11번째에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론 이 작품도 괜찮지만 다른 작품들이 더 좋았다.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은 부부의 이야기다. 시어머니의 고양이를 버린 것에 대해 아내가 남편에게 핀잔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런지 버렸다는 부분에서 울컥했다. 난 키우고 싶어도 키우지 못하는데... 하면서 욕을 한바탕 했다. 물론 부부 사이의 다툼이 고양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그들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충분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변할진 모르겠지만... [열대야]는 친구의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한 친구라고 할 순 없는 관계다. 어쨌든 사랑하는 사이니까... 조금 특별하게 사랑을 하는 그들... 의견이 달라도 의견이 같아도 그들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까?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 이번 작품은 소재보다는 대사들이 좋았다. "내내 이대로였으면 좋겠다."p55 일상에 변화가 많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좋았다.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은 한 여자의 이야기다. 모두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어 가는 그녀... 하지만 헤어짐이 있다고 해서 다음 만남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러니 조금 더 그게 누굴진 아직 모르지만..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던 단편이었다. [그 어느 곳도 아닌 장소]는 친구들과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가정을 이루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일을 꿋꿋히 해나가는 상황들이 전개된다. 나름의 사정과 이야기들이 있다. 각자는 각자가 원하는 곳이 있길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다르다는걸 인정하는게 쉽지 않겠지만 그들 각자를 위한 응원의 박수를!!! [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애인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다. 아니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에 휘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무서워하며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관계의 발전이라기 보다 유지를 원하는 듯 하다.. 역시 쉽지 않다 사랑이란 녀석... 살다보면 참 많은 일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글이 된다고 생각진 않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담겨 있는데 그게 이렇게 멋진 글이 되는건 오랜만이다. 부부의 일상, 친구와의 일상, 혼자만의 일상, 그리고 누군가와의 일상... 대단한 사건이 있어야 하고 대단한 일화들이 있어야 글이 되고 소설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그녀의 단편집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도 충분히 소설로 매력적일 수 있다란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물론 일상적인 일들의 나열인 일기가 모두 소설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일상을 글로 소설로 승화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담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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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건 어쩌면 마음만 분주한 상태, 혹은 마음이 어수선하여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일지도 모른다. 최근 며칠이 그랬다. 나는 어느 한 곳에 진득하니 앉아 하나의 일을 마무리 짓고 이어서 해야 할 다른 일로 넘어가는 평범한 과정을 잊은 채 이 일에 조금 손을 대다가 또 다른 일에 잠깐 손을 보태고, 그러다가 갈팡질팡 목표를 잃고 헤매기를 반복하면서 성과도 없는 나날을 보냈었다. 지나고 나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반복했을까' 하는 때 늦은 후회가 밀려오게 마련이지만 사람의 일이란 늘 '지금'보다는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더 관심이 있는 까닭에 자신이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지나고 나면 곧바로 후회 모드로 돌입하면서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무엇 하나 유쾌한 일이 없었다. 아무것도. 아름답지도 푸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늘 생각나는 것은, 그 여름날의 일이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고, 내가 침울한 여자아이였다는 것.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와무라 히로토. 보라색 립스틱. 엉뚱한 것만 믿는 열일곱 살짜리 여자애였다는 것." (p.39 '뒤죽박죽 비스킷' 중에서) 후회와 그리움이 뒤섞인 평범한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한 컷의 스냅사진처럼 보여주는 작가가 있다. 물론 단편소설을 쓰는 수많은 작가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쿠니 가오리만큼 작가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순간순간의 감정과 표정을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표현함으로써 삶의 덧없음과 비애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 가을날, 감기에 걸린 가족 누군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마치 내가 좋아하는 어느 재즈 가수의 구슬픈 목소리를 닮아 있다고 느꼈던 것도 목소리에 담긴 약간의 습기마저 걷어냈을 때 우리가 느끼는 슬픔의 강도는 더욱 증가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나츠키를 데리고 언젠가 파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밤, 파리에서 걸쭉하고 뜨거운 생선 수프를 먹여 주고 싶다. 바닷속 생물들의 생명 같은 맛이 나고 온갖 향신료의 맛이 섞인, 뼈까지 영양이 녹아드는 생선 수프다. 나는 그 풍요롭고 행복한 음식을 다카시가 아닌 남자에게 배웠다." (p.190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서) 표제작인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포함하여 12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작가가 선별한 12컷의 스냅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의 얇은 책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흘려보낸 수없이 많은 '보통의 순간'들을 떠올리고, 그것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했던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잔잔한 슬픔과 그리움 속에 한동안 휩싸인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애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었겠죠. 과거에 있었던 것과, 그 후에도 죽 있어야 하는 것들의 단편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p.210 '작가의 말' 중에서)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라고 작가는 이 책에 실린 한 단편소설에 쓰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홀로 계시던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지만, 어머니를 묻고 나자 이제 자유, 란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을 꿈꾸는 어떤 대상을 가슴에 품고 있는 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관계의 영속성과 영원한 사랑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이별과 그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게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임을 작가는 이 짧고 건조한 이야기들을 통해 주지시킨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더러 있는 법이라고 나는 작가에게 반박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서러운 봄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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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가 들려주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들"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읽고
2022년 리커버 개정판으로 새롭게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 소설! -사랑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사랑은 사랑할 때는 모르다가 떠나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는 걸까. 결혼이란 사랑의 최종 목적지일까 아니면 사랑의 덫일까. 결혼하면 영원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것일까. 나 또한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키우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과연 나는 진정한 사랑을 이룬 것일까. 이혼율이 높아가는 요즘,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12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항상 사랑의 달콤함, 사랑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온 작가는 이번 책에서 사랑의 상실, 상실 이후의 슬픔, 깨달음 등을 보여준다. 그래서 열 두 편의 이야기들이 제목과 내용들은 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랑의 상실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특히 그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꿈꾸며 이혼을 결심한다. 이렇게 이야기들은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하고 있다. 왜 그들은 사랑을 끝내고 이별, 이혼을 결심한 것일까. 이 책에서 에쿠니 가오리가 보여주는 열 두 편의 다양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의 상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된다. 어쩌면 사랑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처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던 사랑이 끝나고 이젠 '정말 안녕' 이다. 이렇게 사랑이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하고 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울 준비가 되어 있다' 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들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작가는 바라보며 '관계의 끝'을 알았을 때 전해지는 사랑의 상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기억, 각기 다른 모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마음은 비슷해보인다. 작가는 그들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담담하게 보여준다.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
두 부부가 술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서로 함께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속 '나'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서른다섯에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다. 아이는 없고, 애완동물도 기르지 않고 재혼 4년 차에 접어든다. 그녀의 친구 유리는 연애 경험은 많지만 서른일곱이 되도록 독신을 고수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유리가 자신의 남편인 아키히코가 결혼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부하 여직원과 육체 관계를 가졌고, 그 사실을 알고 이혼하자고 말했을 때, 그가 헤어져도 좋다고 말한 거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다. 바람을 피운 남자가 여자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너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자가 헤어지고 싶다고 하면 그래, 너가 원하니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은 과연 여자를 위해서 하는 말일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헤어져도 괜찮다는 뜻일까. 그런 상황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견디기 힘들면 헤어지면 된다고, 이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나 싶어서 좀 충격이었지." -p.69 「담배를 나누어 주는 여자」 중에서
견디기 힘들면 헤어지면 된다. 견디기 힘들어도 헤어져서는 안된다. 어느 선택을 해야할까. 만약 결혼 생활이 힘들면 헤어지면 되는 것일까. 그래도 힘들어도 이혼만은 안 되는 것일까. 어렵고 난감한 선택이다.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결혼도 결혼 생활 얘기도 그만 하고 싶었다.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난감해진다." -p.70 「담배를 나누어 주는 여자」 중에서
<골>
한 부부가 있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조카의 돌잔치 행사에 참여하려고 시댁에 방문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혼을 결심했다. 이미 그들 사이의 사랑은 식어버리고 사랑의 종료를 선언했지만, 아직 시댁 어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듯이 가족 행사에 참여를 한다. 이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한 滑(골)은 '어지럽다' '익살스럽다' 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내 생각엔 감정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 이혼을 하려는 상황에서 가족 행사에 참여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익살스럽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나 저 사람들 정말 싫어." (p.87) 라고 말하면서도 아내인 시호는 아무 일 없는 듯, 그들이 싫지 않은 척한다. 이런 상황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바람 같은 거 안 피워. 피운 적도 없고, 하지만 당신하고는 헤어지고 싶어. 이런 마음, 바람 피우는 것보다 더 잔인하지." -p.82 「골」 중에서
바람은 안 피우지만, 당신하고는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정말 그녀의 말대로 바람 피우는 것보다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의 말 속에는 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알고 있었어? 우리 살기는 같이 살아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알아, 그거?" -p.88 「골」 중에서
이미 그들 사이에 사랑은 끝이 나서 한 집에 살아도 이미 마음은 각자이다. 같이 살기만 할 뿐 그들은 서로 공유하고 나누지 않고 각자 따로 따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한 때는 서로 사랑해서 사랑의 감정에 휩싸였는데, 이젠 서로에게 아무 느낌이 없다고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이것이 사랑의 끝이고 사랑의 상실임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우리 한 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시호가 말했다.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p.89 「골」 중에서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 걸>
이야기 속 주인공 나츠메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한 삶을 산다. 나츠메는 그녀의 시어머니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난다. 이야기는 그녀가 시어머니와 함께 온천 여행을 가면서 일어난 일을 그리면서 작가는 나츠메의 과거의 사랑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끼워넣었다. 시어머니는 온천 여행이 너무 만족스러워 자신의 아들이자 나츠메의 남편인 '요이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그러나 나츠메는 그녀가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인 루이와 함께 멀리 갔다면 좋았을 텐데 (p.123) 하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 요이치와 이혼하고 싶어한다. 이미 반년 전에 루이와 헤어졌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루이가 자리하고 있다. 남편 요이치와 표면적으로 살고 있지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살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괜찮지 않다. 그녀가 그러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지금 시어머니와의 온천 여행도 상당한 노력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나도 아직 시어머니와 단둘이 여행, 그것도 온천 여행을 한 적은 없다.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도,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의 마음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사랑앓이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참 안타깝고 연민의 마음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녀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외롭다.
루이와 헤어진 지 반년이다. 상실감은 나츠메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표면적으로나마 아무 탈 없이 생활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중에서
<울 준비는 되어 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녀와 둘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 다카시는 그녀 곁에 없다. 그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고는 집을 나간지 반년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때로 찾아왔다가 또 떠나버린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아직도 그녀는 그를 좋아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져 귀국하자마자 그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파트에서 그녀 혼자 살고 있다.이제 그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그녀, 그에 대한 사랑의 불꽃은 사그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불꽃이 타고 나면 재가 남듯, 그에 대한 미련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사랑의 불꽃을 다 꺼버리지도 못하고 그 불의 존재만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빛나고 한없이 풍요로웠던 연애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꼬리를 감추었다. - p. 179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
"다른 여자와 잤다며 다카시가 내게 사과했을 때, 나는 어쩌면 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다카시가 나보다 솔직할 뿐, 우리는 같은 유였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다카시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희마하게 웃었다. "아야노는 다 알아버린다니까." 라고 그때 내 심장의 일부는 이미 죽었다. 너무나도 외로워 말라비틀어져. - p. 179~180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
다른 여자와 잤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괜찮아, 다 알고 있어.'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찬다. 외로움과 절망에 이미 그녀의 심장은 죽었고, 그에 대한 사랑의 불꽃도 다 타버렸다.
"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 배는 저주했다" - p. 189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
이제는 사랑보다는 미움과 증오, 그에 대한 저주하는 마음만 남았지만, 그녀는 또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울먹인다. 조카와 외출했다가도 그와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아파트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카가 나중에 커서 연애를 한다면 더 강해지기를 희망한다. 자신처럼 좋아하는 남자가 전화하면 미련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또다시 이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말고 좋아하는 남자가 전화가 걸어 그런 말을 해도, 꿋꿋이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p.189) 말이다. 이 열 두 편의 이야기들은 색깔이나 맛은 다른 알록달록한 사탕같았다. 그러나 다양한 얼굴, 다양한 몸짓, 다양한 상황 속에 그들이 있더라도 그들의 사랑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그 열 두개의 사탕들이 사랑의 상실이라는 모두 하나의 사탕 주머니에 담겨 있는 듯하다. 무슨 사탕을 꺼내서 먹어볼까. 그 중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고 맛있었던 사탕을 꺼내서 이야기를 풀어냈고, 사탕을 먹고 난 후의 내가 느꼈던 맛을 적어보았다.
당신은 이 열 두개의 사탕들 중에서 어떤 사탕을 선택할까. 분명한 건 어떤 사탕을 선택하더라도 그 맛은 한결같이 맛있기도 하겠지만, 씁쓸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랑이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그 끝은 씁쓸한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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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출판사 네이버 카페의 꼼꼼평가단을 하면서, 에쿠니 가오니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책이 열번째 혹은 열다섯번째 그 사이 일것 같은데, 이번 리커버된 책의 책날개에 컬렉션을 보니 아직 읽을 작품이 많이 남아있었다. 이번 책은 12개의 단편을 모든 책. 한편 한편 읽다보니, 이제는 문득 문득 이전에 읽은 그녀의 소설들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그 이야기들의 연장선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 혹은 또 다른 새로운 캐릭터의 이야기 라는 느낌을 오가며, 이렇게 다작을 하는 작가님의 마음속에는 몇명이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듯 다른 캐릭터 한명 한명을 창조하면서, 짧은 이야기든 긴 이야기든 어딘가의 있을 것만 같은, 허구같지 않은 이 인물들을 창작하는 작가님의 능력?!이 이번 책에서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천개의 생각을 오고간다는데, 작가님은 수만개의 생각속에서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내시는 걸까? 작가님과 차한잔 할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느낄수 없이 시간이 무한대로 혹은 정지상태로 더이상 말할수 없이 기운이 빠질때까지 이야기를 나눌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실은, 벌써 오래전부터 삐걱거렸던 것이다. 늘 뻔한 말다툼과 그 후의 화해.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야요이는 슬픈 것은 말다툼이 아니라 화해라는 것을 안다. p17
무엇 하나 유쾌한 일이 없었다. 아무것도. 아름답지도 푸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늘 생각나는 것은, 그 여름날의 일이다. p39
<열대야>라는 단편을 읽으며, 중간쯤에서 다시 앞으로 넘겨갔다. 남녀의 사랑인줄 알았는데, 문장 하나에서 걸렸다. 아, 내가 일본사람의 남녀이름을 알았더라면, 이름에서 처음 부터 구분했을텐데 하는 생각, 나에게 '아키미'와 '치카'는 분위기상 누군가는 남, 다른쪽은 여 이기 때문이다. 이름으로 성별을 나눈다는 게 시대착오적기는 한데- 그래서, 아이 이름을 중성적인 느낌으로 골랐는데 ㅎㅎ - 읽으면서 구분을 짓고 시작하는 내가 문득 음, 그랬다.
"인생은 위험한 거야. 거기에는 시간도 흐르고, 타인도 있어.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아이도 있고." p53
"알았어, 정정할게. 누구랑 함께 사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당신도 틀림없이 즐거울 거라고 말이야." p70
<생쥐 마누라> 를 읽으며, 미요코처럼 백화점을 좋아했던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어릴적에는 백화점에서 셔틀버스가 있어서 집근처에서 타고 백화점에 가서 엄마와 구경하며 시식하고 항상 두손 가득이 돌아왔다. 그래서, 난 뭐든 사려면 백화점에 가야하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마트 보다 백화점이 좋은데, 백화점은 비싸다는 묘한?! 심리적 이유로, 살림을 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으면서, 차츰차츰 안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단편을 읽으며, 백화점에서 자기만의 루틴으로 그 공간을 온전히 즐기는 미요코가 조금 부러웠다. 단지 백화점을 좋아하는 미요코만 그렸다면, 밋밋하고 속물적일수 있었지만, 과거의 사랑했던 누구를 떠올리고, 부모대신 자녀의 손을 잡는다는, 스치듯 지나치는 몇문장들이 이야기답게 만들었다.
백화점에서 걸을 때, 미요코는 자기가 백화점을 좋아한다는 것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것이 괜한 허세라는 것은 알고 있다. p97
한가지 소재도 아니고, 한정된 공간도 아니고, 특정한 직업의 누구도 아닌,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수 있는 이 책.
나의 여행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나 스스로 갈 곳을 고르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모으고, 혼자 여행하면서 끝내는 우울해지고 만다. 추위와 더위에 진저리를 치고, 고독을 고통스러워하고, 이런 곳에는 두번 다시 안 온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일본으로 돌아와 얼마 있지 않으면,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갈 곳을 정하고 돈을 모으고, 필요한 것들만 꾸려서 집을 뛰쳐나간다. p179
사랑과 슬픔이 함께 공존하는 이야기를 가장 잘 하는 작가님의 담담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여름이 왔다.
<<소담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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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에쿠니 가오리의 130회 나오키상을 받은 울 준비는 되어있다
명예의 문제. 남편에게는 그렇게 설명했다_21
* 업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지만 직접 읽어보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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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독특함이 가득하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통해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감정들을 자극한달까. 에쿠니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도 비슷한 느낌이다.
모든 관계는 언젠가는 끝이 난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소설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관계의 유한성에 다다른 사람들이다. 그래서 위태롭고 애처롭게 보인다. 그러나 소설은 매우 덤덤하게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다. 시어머니가 입원하자 시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를 남편이 바다에 버린 사실을 알고 남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무너진 야요이.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제 그들은 그 균열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균열을 메꾸고 없던 일처럼 할 것인가. 무너트릴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와닿았다. 손에 꼭 맞던 반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거나 혹은 커져 더 이상 손가락에 맞지 않게 되는 것. 관계도 이런 것이 아닐까.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와는 어울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느껴지는 것. 그런 기분이 들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반지를 줄이거나 키워 손가락에 다시 맞출 수도 있고, 더 이상 반지를 끼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책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영원히 이어지는 관계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설령 인연이 끊어진다 한들. 내 삶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울고 싶다면 한바탕 울어버리자. 그리고 그 다음을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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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들의 책들을 종종 읽곤 하는데 대부분은 추리소설 계열이라 일반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아마도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이 가장 많지 않나 싶다. 최근에 에쿠니 가오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이 재간되면서 예전에 읽지 못했던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있는데 이 책은 제13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사실 장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단편소설들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총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에쿠리 가오리 소설의 주된 소재로 할 수 있는 관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남녀 사이의 관계는 원만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남자와의 관계가 삐거덕거리는 상태이다. 시어머니 입원으로 시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를 남편이 바다에 버렸다고 하자 자신이 알던 남편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야요이(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좋아하지도 않았던 남자아이와 어설픈 데이트를 하던 17살 시절을 회상하는 부짱이라 불렸던 여자(뒤죽박죽 비스킷), 3년이 지나 뭔가 어긋남을 느끼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치카(열대야) 등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남자들과 뭔가 문제가 있지만 후련하게 해결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혼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시댁을 마지못해 방문한 시호(골)나 남편에게 생쥐 마누라로 불리는 현모양처의 삶에 만족해하면서도 잠시 백화점에서 일탈(?)을 즐기는 미요코(생쥐 마누라), 연례행사로 시어머니와 온천여행을 하면서 헤어진 불륜남을 생각하는 나츠메(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바람 피는 남편을 둔 마리코(주택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인 남자를 둔 여자(손), 바람을 피는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야노(울 준비는 되어 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기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잃다)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 원만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살아가는 모습도 사랑하는 모습도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거기서 거기라고도 할 수 있다. 한순간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언젠가 식게 되고 각자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여자 주인공들이 겪는 여러 문제들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나름 위안을 얻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게 바로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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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공주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모든 동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냥.. 동화는 거기에서 끝나버린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십 대에는 그랬다.. 삼십 대의 여자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더욱더 어느에 선가 존재할 거 같은.. 주인공... 읽다 보면 무미건조한 삶에 숨이 막힐 거 같다가도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딱히 슬프다거나 외로워하지는 않아서 계속 읽게 된다.
뭔가 회색빛 사진을 계속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랬다...
"왜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p19
우리 집 토스터 고장 났어, 알아? 나 어제 이 뽑았어... 알고 있었어? 우리 살기는 같이 살아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알아, 그거? p88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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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기보다는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찾아 읽는 터라 특정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작가의 책이라면 하는 작가가 딱 두 사람 있는데 에쿠니 가오리와 히가시노 게이고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은 워낙 선호하는 장르이다 보니 작가보다는 장르를 찾아 읽는다는 게 맞는 표현이고, 개인적으로 작가를 찾아읽는 작품은 에쿠니 가오리가 유일하다. 뭐랄까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고나 할까,,, 아무튼 좋다. ^^;; 2004년 발간되었던 에쿠니 가우리의 단편집 ‘울 준비는 되어있다’가 리커버 개정판으로 다시 발간됐다. 이전 책이 감성 가득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저자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면, 이번 개정판은 넓은 벌판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가득 담고 있다. 같은 책이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바보처럼 괜히 뿌듯해 하고 있다. 12편의 단편은 여전히 짙은 감성을 호소하고 있다. 누군가와 늘 함께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없음에 여전히 외롭고, 깊은 외로움으로 말미암아 언제든 펑펑 울 준비가 되어 있는 담백한 감성. 그녀의 표현처럼 뒤죽박죽 섞어놓은 비스킷 같은 이야기가 다르지만 같은 맛을 내고 있는 사탕 주머니 같은 글들이다. '우리 한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열렬히 사랑했지만 거짓말처럼 무감해지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처음 책을 읽고 이렇듯 무감한 모습이 일상에서 흥미를 찾을 수 없는, 생기를 잃어버린 중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의 감성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에너지가 넘치진 않지만 나른한 무료함을 버티며 살아내는 것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감성이 아닐까 싶다.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더 이상 내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들과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사랑으로 메말라가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이처럼 정확하게 표현 ? 물론, 소설 속에서 자유롭다는 표현은 다소 부적절한 만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 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을 것 같은 외로움과 함께 갑자기 느껴지는 시간이 서글퍼진다. [ 네이버카페 소담북스 꼼꼼평가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울준비는되어있다 #에쿠리가오리 #소담 #꼼꼼평가단 #단편집 #서평단 #소담북스 #리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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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를 만난 건 <반짝반짝 빛나는>에서였다. 감성 넘치던 여고생인 나는 여성작가들의 소설들을 즐겨 읽었다. 그리고 독특한 그녀의 문장에 빠져들었다. 짧은 단어들이 나열된 느낌. 무한한 상징과 생략. 행간에서 느껴지는 감각.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가는데 무언가 비어있는 슬픔과 그 속에 반짝거리는 한 줌의 감성. 지금 생각해보면 삶에 대해 정말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갓 성인이 된 대학생 때였는데 64년 생 작가의 삶에 녹아들어가려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18년만에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개정판이 나왔다. 신간 정보를 들여다보다가 몸이 감각적으로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20대 떄 에쿠니 가오리 신작이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봤던 것처럼. 과연 18년만에 만나는 에쿠니 가오리는 어떤 느낌일까. 아침, 다카시가 전화를 걸어 내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둘이서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는 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트리가 좀 이상했어. 나무가 아니고 알전구만 달려 있는데, 파란색, 콩알만하고 예쁜 전구였어." 라고, 표제작 <울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서 대체 이 꿈은 무엇을 암시하고 있길래, 화자가 가슴벅차하며 울뻔했다고 하는가. 더 황당스러운 건 저 말을 했다는 다카시가 반년 전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집을 나갔는데, 그래도 화자를 각별히 여겨 가끔씩 찾아온다는 것.
그러면서도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화자가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고 머리야. 7살 짜리 조카를 데리고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니, 너. 그러니까 호적에 올리라고 했잖니. 자유로운 사랑은 무슨. 결혼은 그냥 계약이야. 그냥 빨리 잊어라, 잊어. 이런 말들이 막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이십대의 나는 이 글을 보고 대체 뭐라고 생각했을까. 사랑은 원래 슬프고 아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 잘 했던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어느 문장에서 눈물을 삼켰을지도 모르겠다. 개정판이라고 해도 작품이 바뀐 건 아니고 표지나 단편들의 구성이 좀 바뀌었을텐데 바뀐 건 아마 나일 것이다. 소설을 안 읽은지도 참 오래됐다. 감성도 무뎌졌다. 현실 결혼과 육아와 집안일에 치여 소설은 커녕 육아서나 자기개발서 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지내왔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았던 스물 몇 살의 나와 두 아이를 데리고 한 가정을 경영해야 하는 서른 몇 살의 나는 분명 달랐다.
그럼에도 역시 좋은 문학은 몇 살에 읽어도 감동이나 꺠달음을 준다. 그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서른 몇 살의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책장을 덮으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는 작가의 말이었다. 아마 스물 몇 살에는 이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조금 알겠다. 내가 소유한 것,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
아이가 생기지 않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달라 속상했던 적도 있고,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속앓이를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의 시기 이전에 분명 내가 행복을 소유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작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집 안을 꾸민다는 것이 주인공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행복한 일상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나무'가 없다. 크리스마스 트리인데 '트리'가 없다니. 다카시는 간혹 찾아오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반짝거리는 전구만 남아있을 뿐 정작 중요한 나무가 없는 것이다. 분명 두 사람은 사랑했던 시간이 있었다. 나 역시 그랬을 것이었다. 사랑을 잃은 것 같은 고독한 시간도 있었지만, 남편과 서로 사랑하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이 나를 다시 사랑하게 했다. 아이가 내 맘 같지 않다 하더라도 분명 내가 간절히 아이를 원할 때 나에게 찾아와준 선물 같은 소중한 아이임에는 틀림 없다. 그리고 지금은 행복하다. (+) 40대나 50대가 되어 이 작품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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