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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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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오십을 넘기면 글에서 치열함과 집요함을 느끼기 힘들다는. 삶에 녹아들고 닳아 생기는 관성의 일종일까. 아니면 총량 같은 게 있는 걸까. 비슷한 연배의 평론가의 글은, 십여년의 시간은 치밀했다. 2부에서 ‘다시쓰기, 받아쓰기, 이어쓰기’와 ‘아이러니와 아날로지’는 묵직한 문학 평론으로 추천하고 싶다. 훌륭한 비평은 읽었던 문학을 되살리고 아직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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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오십을 넘기면 글에서 치열함과 집요함을 느끼기 힘들다는. 삶에 녹아들고 닳아 생기는 관성의 일종일까. 아니면 총량 같은 게 있는 걸까. 비슷한 연배의 평론가의 글은, 십여년의 시간은 치밀했다. 2부에서 다시쓰기, 받아쓰기, 이어쓰기아이러니와 아날로지는 묵직한 문학 평론으로 추천하고 싶다. 훌륭한 비평은 읽었던 문학을 되살리고 아직 읽지 못한 문학을 만나게 추동한다. 배수아, 박형서.. 등의 이름을 띄운다.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많다보니 품고 있는 의문들을 건드리는 문장들에 이끌렸다. 2015년 표절과 문학권력을 다룬 글은 지금 민주당이 봉착한 문제들을 곱씹게 한다.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버린 안일한/안온한 민주당은 당원과 국민으로부터 멀어져버린 듯하다. 위기의식은 조금도 없이 자기 밥그릇과 자기정치만 하는 정치꾼들을 보며 민심을 따라잡지 못하는 냉동인간들이 저쪽 이쪽 가릴 것 없이 널려 있음을 실감한다.


 

 이 내러티브의 진행 속에서 고고리섬에서 체험한 거센 바람과 물결들은 그저 추상적인 자연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감각되는 맹렬한 결들과 그 결들의 얽힘이었고 영초롱이의 삶이 그러한 얽힘 속으로 들어가 연결되는 우편망거세게 몰아치는 물결/바람결의 일치가 더 이상 은유에 머물지 않게 했다. (165)

 

 다시쓰기가 아닌 순수한 창조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은 다시쓰기, 다르게 쓰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권력은 삶에 대한 기존의 쓰기를 반복해서 동일하게 받아쓰게 한다... 받아쓰기 자체를 통해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자기 자신에 머물러 멈춰 있는 동안 삶이 언제나 요구하며 선물하는 생성, 변이, 분열, 증식의 흐름이 정체되어 결국 삶 그 자체가 짓이겨지기 때문이다...

 운동가는 특정한 미래,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받아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부터 탄생한다...

 그들은 두려워하기 때문에 낯선 것, 알 수 없는 것들을 끝내 이행하지 못하고 증오하고 파괴하려 드는 것이다...

 반대로 알 수 없는 것, 알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 그러나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읽는 것,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사유의 속성이기 이전에 사랑의 속성이다. 받아쓰기의 바깥을 향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해할 수 없음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사랑의 글쓰기, 그것이 다시쓰기이고 다르게 쓰기이다. (145; 147; 148; 149)

 

 살기 위해서 쓴다는 말은 사실이다. 말은 삶을 앞서서 가며, 그렇게 삶을 발명해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이제 앞으로 텅 빈 시간이라는 형식만 남으리라... 만약 언젠가 이 글이 완성된다면, 우루는 이것을 멀리썼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멀리, 자신으로부터 앞서서. (156)

 

 계속해서 탐험해야 한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대답의 양식이 아니라 질문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스트의 숙명과도 같은 자기 의심은, 오직 낡은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과 유희하는 한에서만 돌파될 수 있다...

 아이러니스트의 진리는 발견되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며 확장하는 것이다...

 내부의 이 긴장과 갈등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 소설이 제시하는 인생론을 형이상학화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롭게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초월적인 실재에 도달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충동에 대해 우연과 덧없음을 수락하는 아이러니스트의 충동이 승리할 때, 영생보다 더한 순간으로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고정된 패턴도 거부하고 모든 것을 끊임없이 변주하며 새롭고 독특한 것들을 생성하기를 원하는 아이러니스트의 이면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방황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스트의 방황을 끝내고 그 혼돈을 안정화하고 질서화하려는 형이상적 충동이 일어날 수 있다...

 ‘궁극의 방정식을 추적하는 평생에 걸친 여정과 그 때문에 놓치고 만 섬세하고 풍요로운 삶의 감각들, 이 두 요소가 서로를 보충해야만 인간의 삶이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재서술의 증식 혹은 끊임없는 재서술의 재서술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며 이어지고 있는 삶 그 자체를 구성한다. (171; 172; 181; 182; 183-184; 186; 189)

 

 여기서 하나의 작품 혹은 문학적인 것의 의미나 가치에 대한 최종 답안이란 존재할 수 없고 그 미묘한 차이들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서로 다른 시각들 사이의 대화만이 존재할 수 있다...

 나쁜 비평은 긍정적인 평가든 부정적인 평가든 문학작품이 함축하는 모든 의미와 가치와 체험을 자신이 독점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혹은 기존의 독점에 자발적으로 굴복하고 그것을 공고하게 하는 데 기여하면서 다른 독해들이 시작하려는 기미를 억압한다. 성실한 비평은 이해 불가능하고 전달 불가능한 영역에 육박해 들어가는 고유한 문학적 체험을, 그러나 함께 그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어렴풋하게라도 느낄 수도 있었을 그 체험을, 이해 가능하고 전달 가능한 문장과 담론으로 번역하기를 시도한다...

 비평은 언제나 비평적 대화 속에 존재하므로, ‘문학적인 것은 어느 한 시각에 의해 독점될 수 없으며 비평적 대화속에서 점점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음미되어 분열, 변이, 전개되는 것이다...

 기존의 독해들을 자신의 새로운 독해로 다시 쓰거나 넘어서면서 새로운 글쓰기를 자극하려 시도하는 대신에 자신과 다른 독해는 곧 상업성을 문학성이라고 거짓되게 포장한 것일 뿐이라고 비난하고 억압하는 사람들, 일반 독자들 저마다의 독서 체험과 호응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베스트셀러일 뿐이라고 낙인찍고 폄하하려는 사람들, 그 자신은 순수하게 문학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지만 자신과 다른 견해를 제출한 자들은 오염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낯설고 새로운 관점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지속해서 분열, 변이, 전개하게 만들지 않는 한, 타성에 젖은 완고함과 문학적 엄정함을 혼동하면서, 누구라도 자신의 관점을 단일한 최종 진리로 선언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문학적인 것을 독점하려 들게 되고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문학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209; 210-212)

 

 다양한 입장들이 소통하는 가운데 기성의 관행에 안주하지 않는, 교조적 사고방식 및 권위의식에 맞서 싸우는 모험과 시도로서의 문학인을 각자의 자기표현을 위한 공간을 앞세우고 있으니까. 변화하는 정치, 사회, 문화의 기류에 대한 성실하고 책임있는 대응을 강조하기를 잊지 않았으니까...

 저 심연에서 일렁이며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삶의 파동들을 알아보고 체험하고 그에 동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해야 할까...

 문학의 말은 개인으로 하여금 그를 기율하고 통제하는 모든 언어적 관성으로부터 깨어나 그의 삶과 약동하는 말을 체험하게 한다... 삶의 정체화, 고정화, 일반화와 싸우는 문학의 효용은 변함없이 살아 있다. (222-223; 224-225)

이달의 사락 s********d 2022.06.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