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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너머 아하! -오강남. 성소은 기성 종교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종교 너머, 아하!>는 현시대 종교의 문제를 직시하고 종교 간 울타리를 넘어 본연의 역할과 의미를 되찾고자 한목소리를 내는 10인의 외침이다. <지금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오강남. <'하나'의 철학>-김성곤. <종교적 관심에서 한국을 보다>-윤대규. <무엇을 위한 믿음인가>-이영환. <공자는 죽어야 하는가>-노영찬. <처음에도가있으되>-민영진. <'작은 교회'가 그리스도교의 미래다>-김진호.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신앙의 모습을 찾다>-박충구. <이제 다시 동학을 '할' 때>-김용휘. <지금 당장 붓다로 살자>-도법 스님. 이 책에 실린 10인의 글은 주제와 접근 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기존의 종교가 지닌 문제를 인정하고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지금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오강남 교수님의 말씀 중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진리를 깨침으로 얻을 수 있는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르는 자유'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를 종교 전통에 따라 나누고 연구하지만 오강남 교수님은 '표층'과 '심층'으로 구분하였다. 표층 종교는 현세적인 이익이나 기복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종교, 변화하지 않은 지금의 나,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집착하고 욕심이 많은 등등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표층 종교는 대체로 자기 종교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심층 종교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심층 종교는 이런 나를 부정하거나 극복하고 비우고 넘어설 때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나, 자유로운 나, 참나, 진아 등이다. 심층은 '이해'나 '깨달음'을 강조한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결국, '구원' '해탈'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다. 의식의 전환은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때 새로운 삶, 해방과 자유의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신 속에 있고 신이 내 속에 있으며 신과 내가 '하나'임을 강조한다. 내 속에 있는 신 적인 요소야말로 참나라고 믿는다. 세상 만물이 동체同體임을 강조한다.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에 심층 차원의 신앙을 가질 때 이웃에 대한 참된 사랑이 저절로 나온다. 종교의 핵심은 '진리를 '깨침으로 변화를 얻고, 거기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자유'이다. 좀 더 평범한 말로 하면, '가능한 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어 자유를 누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쓴 <'종교를 넘어서>에서 '사람들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분명 종교가 도움을 줄 순 있지만 종교 또한 잘못 이용될 때는 갈등과 분열의 근원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이런 종교를 뛰어넘어 인류 보편적인 '내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하나'의 철학>-김성곤 의원님의 말씀 중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종교에서 유일신, 브라흐만, 범아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깨달음을 통해 참된 나와 하나 되는 것이다. 역사학을 전공할 때 수많은 역사적 사실 뒤에 이를 꿰뚫는 하나의 법칙이나 일관된 섭리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수많은 자연 현상 뒤에 보편적 법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종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모든 종교에 존재하는 공통 메시지 혹은 절대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정치를 하면서도 모든 정치적 이념, 결제적 원리와 인류 보편적 원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법칙, 하나의 원리가 무엇일까? 인류사의 각기 다른 종교 문화는 결국은 '하나'이나 역사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구원은 결국 '하나'와 내가 하나 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모든 생명체와 인류를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는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 안의 무한한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며 포용하는 것이다. '하나'를 모든 구성원이 깨닫고 '하나'의 가르침을 각 분야에서 실천하고 구현하는 일이다. <무엇을 위한 믿음인가>-이영환 교수님 말씀 중에서 조선 시대 유교사상의 '사농공상 士農工商'은 물질적 가치를 사회가 추구해야 할 순위의 가장 밑에 있어 천박한 가치로 여겼다. 오랜 세월을 물질적 빈곤 속에서 살다 보니 그 결과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자리를 잡았다. 우리 사회는 물질과 정신 혹은 지식과 믿음의 조화에 의해 유지된다. 상호의존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자의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깨달음. 깨우침이 바로 의식이 크게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과 종교, 기르고 여러 종교 간의 진정한 대화가 필요하다. 종교와 과학은 모두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진정한 진리에 도달하도록 도움을 주는 소통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어떤 종교적 믿음도 이미 확고하게 정립된 과학적 지식이나 사실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공자는 죽어야 하는가>-노영찬 교수님 말씀 중에서 동아시아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유교'. 공자의 유교는 인간이 선비의 정신으로 배움의 길을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 공자는 바로 이러한 길을 따르기 위한 일생을 보냈다. 따라서 유교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인간 됨의 길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그의 가르침은 인간의 보편적 진리에 입각해 있었다. 철저한 인간 됨의 길을 가르친 것이 바로 공자다. 유교는 종교적 기능보다는 인간의 윤리 혹은 도덕, 철학, 정치 이념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유교적 인간 이해는 인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출발한다. '인간 본성은 원래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단산한 '인간'세계를 벗어나서 '하늘'과 닿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인간'만으로는 참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유교가 가지고 있는 경(敬)이나 성(誠)의 경험이 근본적으로 종교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유교의 종교성은 인간의 내적 경험의 차원에서 찾고, 평범한 세상의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 공자는 죽었지만 유(儒)가 살아있는 유교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가 아니겠는가?
그 외 다른 분들의 말씀을 모두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종교인, 학자, 정치인 등 각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실 종교를 진단하고 '종교'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다양한 논의 속에서 대안은 하나로 귀결된다. 기존 종교의 형식과 체계에서 벗어나 실천하고 행동하는 종교, 포용하고 소통하는 종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 열 편의 글은 종교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켜 믿음의 본질, 신앙의 발견을 새롭게 할 것이다. 각자 자신들이 처한 위치에서 종교의 궁극적 역할을 고민하는 이 책은 편협하고 배타적인 종교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영성과 진리, 인간과 삶에 맞닿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를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