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5%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25%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7.0
리뷰 총점 종이책
잉여들이여 희망의 진군을!
"잉여들이여 희망의 진군을!" 내용보기
사회 전체가 100명으로 구성됐다고 할 때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요한 인원은 고작 20명이라 하였다. 나머지 80명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잉여’로 그들을 위한 건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존재치 않는다 하였다. 과거였으면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경기는 예전처럼 활개를 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 진학률이 놀라울 정도로
"잉여들이여 희망의 진군을!" 내용보기

사회 전체가 100명으로 구성됐다고 할 때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요한 인원은 고작 20명이라 하였다. 나머지 80명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잉여’로 그들을 위한 건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존재치 않는다 하였다. 과거였으면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경기는 예전처럼 활개를 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 진학률이 놀라울 정도로 치솟았다.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나아야만 한다. 그래서 스펙 전쟁이 시작됐다. 높은 학점은 기본이요, 동아리 활동에 어학연수, 인턴 경험까지, 요구하는 사안이 너무도 많다. 충실히 이를 이행했을지라도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역시나, 인력시장에는 나보다 더 낫다는 평을 받는 이들이 널렸다. 심지어 그들은 나보다 젊기까지 하다. 게임은 끝났다.

누구보다도 성실히 살아왔다 자부했건만 스스로를 ‘잉여’로 정의 내리는 게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교육 과정이 종료되었음에도 몇 년씩 학교 도서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백수의 꼬리표를 차마 달 수 없어서 공부에 흥미가 그다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진학키도 한다. 사회는 그런 나에게 눈을 낮추라고 요구하지만 어느 누가 비정규직이 되고 싶겠는가. ‘취업준비생’이라는 하나의 계층은 그렇게 탄생했다.

취업준비생들의 인생은 서글프다. 학교 도서관에 비록 머물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학생이 아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처지가 속쓰리다. 이미 적잖은 금액을 학교에 쏟아부었는데 취업이 안 되어 빚을 갚을 방도가 없는데다 당장에의 생활자금 마련도 여의치 않다. 경제적인 불안감에 시달린다. 일종의 이중고를 경험하며 그들은 자신감을 상실하고 잉여로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 문제가 결코 내 자신의 부족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고에 눈을 뜨는 게 결코 나쁠 리는 없다. 문제는 그렇게 생겨난 반감을 해소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거리로 나서 목 놓아 소리치며 사회 체제의 변혁을 외치는 실천이 필요할 테지만 실상 실천 대오에 합류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직업적인 투사가 되기에 그들은 너무 여리다. 혹 사회에 불만 섞인 제 목소리를 누가 듣고 고자질 하지는 않을까 싶어 전전긍긍한다. 급기야 계속해서 쌓인 불만은 이상한 방향으로 표출되고야 만다.

사이버 공간에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과거처럼 유명 출판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출판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매체를 통해 1인 미디어로 거듭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바다. 그런데 담기는 게 ‘불만’이다 보니 그런 건강함은 추구치 못한다. 오래 전 이해 불가한 언어를 구사하며 거대한 존재감을 보였던 ‘햏자’들을 기억하는지. 그들의 맥락 없는 대화에 많은 기성세대들은 그저 한 방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저러다가 말겠거니’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잉여 역시 진화하기 마련이다. 무의미한 대화에도 창과 방패는 존재했고, 제 칼날을 날카롭게 가다듬은 이들은 역사에 있어 ‘반동’이라는 한 축을 담당키로 작정한 양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폭도들의 격앙된 움직임으로 격하되고, 일제 강점기가 추앙 받아 마땅한 시대로 전락했다. 우려 섞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아직은 많지만, 네오나치즘이나 일본 신군국주의처럼 하나의 정치적인 세력으로 각광 받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 자체도 걱정인데, 문제는 그들이 외치는 구호가 만약 현실이 된다 하여도 그들은 변치 않으리란 사실이다. 역사가 뒤바뀐다 하여 갑자기 그들을 위한 일자리가 생겨나진 않는다.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된 것 마냥 루저에서 위너로 신세가 급변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즉, 그들은 자신의 이해 관계가 전혀 얽히지 않은 요상한 흐름에 제 몸을 맡긴 셈이다. 승리해도 승리가 아니요, 패배해도 패배가 아닌 전투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잉여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에 침잠해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열심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잉여라서 가치 없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이므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말이다. 남들보다 나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므로 그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면모를 풍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저항이다. 세상에 널린 것이 잉여다. 당신만 잉여가 아니라 당신이 이기려 드는 그 누군가도 사실은 잉여다. 잉여로서 잉여를 공격하는 무모한 일보다는 따스한 연대를 꿈꾸어야만 한다. 당신이 변하면 상대도 변한다. 변화가 발생하는 그 순간부터 당신은 인정받는 존재로서 다시 태어난다. 상대 역시 쓸데없이 숨만 쉬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고귀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달의 사락 q*****2 2013.12.07.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잉여사회
"잉여사회" 내용보기
예전에는 대학을 못 가면 잉여인간이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잉여인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잉여인간은 쓸모가 없는 존재인가? 시대가 만들어낸 부산물인가? 잉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권력의 중요한 문제이자 동시에 권력의 가장 큰 존재 이유라고 한다. 삼포 세대에서 이제는 오포세대라 불리우는 세상이다. 우리시대의 잉여는 풍요가 아니라, 양그화로 대변
"잉여사회" 내용보기

예전에는 대학을 못 가면 잉여인간이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잉여인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잉여인간은 쓸모가 없는 존재인가? 시대가 만들어낸 부산물인가? 잉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권력의 중요한 문제이자 동시에 권력의 가장 큰 존재 이유라고 한다. 삼포 세대에서 이제는 오포세대라 불리우는 세상이다. 우리시대의 잉여는 풍요가 아니라, 양그화로 대변되는 격차와 집중의 산물이고, 무너지고 있는 중간층의 잔해 속에서 태어났으며, 좌절한 이상주의자는커녕 이상이라는 것이 사라진 시대에 나타났다고 한다.

 

잉여들은 네트워크에서 활동한다. 가상세계가 유일한 도피처라 한다.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만화, 음악, 합성사진, 동영상을 만들어 낸다. '병맛세계' 라고 한다. 병맛의 세계 속에도 번갯불처럼 나타나고 사라지는 진실의 파편들이 있다. 잉여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존재 방식이 있는데, 유령과 좀비이다. 유령들은 허공을 멤돈다. 좀비는 자본을 위해 봉사하지만 동시에 자본의 공포 대상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것은 모두 악으로 치부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유용하지 않는 것. 자본주의 체제의 구멍일 수도 있다.   

 

잉여들은 사이버세계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꽃피웠다. '아햏햏' 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햏자들이 나타났다. 밤낮으로 컴퓨터에 빠져 부모님의 눈총을 한 몸에 받는 청소년들. 이들은 그 부정성을 기묘한 놀이로 바꾸었다. 인터넷은 돈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놀이터이자, 광장이자, 배설구이자, 현실이 되어갔다. 디시인사이드 막장갤러기가 유행했다. 이후에는 병맛 웹툰이 유행했고, 일부는 데뷔를 했다. 'ㅋㅋㅋ' 군집을 통해 만들어낸 것은 참으로 보잘것 없고 쓸모도 없지만 어쨌거나 동류의식, 일종의 연대감이라 한다.

 

2002년 월드컵과 소파 반대 집회, 촛불집회를 통해 느낀 것 중 하나가 집단의 힘이다. 이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조직된 거대한 군중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자경단과 십자군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모든 존재는 적으로 또 거짓과 불의의 존재로 낙인 찍는다. 이들에게는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논증이나 토론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사건에서 팩트가 중요하며, 휴머니즘에 호소하는 감성팔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일베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일베는 민주화를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산업화를 치켜세운다. 전라도인을 홍어라 비하하고, 광주에 대해 악담을 늘어 놓는다. 이들은 광주를 욕하면, 적들이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뛰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한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힘에 도취되어 인정욕망에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본에도 극우집단인 '재특회'가 있다. 혐한을 주장하고 재일을 폄하한다. 지역사회에서 겉도는 사람, 지역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특회에 모인다고한다. 일장기를 손에 든 것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잉여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생존하고 성장하고 만나면서 자신안에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d******m 2015.04.10.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잉여사호
"잉여사호" 내용보기
N포세대, 잉여인간, 열정페이 등 우리나라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표현하는 유행어들은 쏟아지고 있지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냉소와 비아냥으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과 실천, 담대한 용기는 기성세대의 타박이나 얄팍한 격려보다 더 힘이 될 것이다. 청년에게 매혹적인 일은 대개 기성세대에게는 무모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청춘들이여! 그대들의 마음
"잉여사호" 내용보기

N포세대, 잉여인간, 열정페이 등 우리나라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표현하는 유행어들은 쏟아지고 있지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냉소와 비아냥으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과 실천, 담대한 용기는 기성세대의 타박이나 얄팍한 격려보다 더 힘이 될 것이다. 청년에게 매혹적인 일은 대개 기성세대에게는 무모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청춘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꽂히는 일에 당당하게 미치고, 뜨겁게 몰입하라. 후회할 청춘은 단 한번 뿐...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n****3 2015.09.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잉여사회 - 최태섭
"잉여사회 - 최태섭" 내용보기
예전에는 학생회장 출신의 운동권이라도 대기업에서 줄서서 모셔가던 때가 있었더란다. 물론 IMF세대 이전인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정도 되겠다. 그 때는 공무원은 처우가 낮아서 별로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대학물 먹었다고 하면 대부분이 대기업 여러 곳을 지원해서 골라갔던 시절이란다. 좀 좋은 대학들은 1,2학년 때부터 기업에서 그 학교 출신의 인쿠루터들을 보내서 회사 견학도
"잉여사회 - 최태섭" 내용보기

예전에는 학생회장 출신의 운동권이라도 대기업에서 줄서서 모셔가던 때가 있었더란다. 물론 IMF세대 이전인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정도 되겠다. 그 때는 공무원은 처우가 낮아서 별로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대학물 먹었다고 하면 대부분이 대기업 여러 곳을 지원해서 골라갔던 시절이란다. 좀 좋은 대학들은 1,2학년 때부터 기업에서 그 학교 출신의 인쿠루터들을 보내서 회사 견학도 시켜주고 선물도 주고, 자기네 기업에 입사를 약속하면 학비도 보태주고 했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때는 도서관에서 토익, 토플 공부하지 않고도, 해외연수 다녀오지 않아도 대학생이면 운동하고, 연애하고,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그런 여유가 있었던가 보다.

 

그 때는 생계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삶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고,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리라고 믿었던 역동적인 시절이었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먹고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것이 당연했다. 386세대들이 그 시절의 혜택을 받아 지금은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위치에 다들 안착해있다. 많은 운동했던 선배들이 극렬 보수로 배를 갈아탔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그 당시 의식을 공유했던 많은 386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소극적이면서 간접적으로 보수를 비판하고 진보를 지지하는 대열에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면서 얘기한다. “그 당시 우리가 투쟁으로 쟁취했던 민주화의 혜택을 입은 젊은 세대들이 정작 지금의 민주화된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상이 불의할 때 가장 먼저 거리로 나와 정의를 외쳤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대학생은 투쟁은커녕 투표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xxx들 아닌가?”라는 20대 개새끼론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과거 민주세력이었던 먹고살만한 386들이 하는 말이 맞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스펙으로 무장을 해도 지금은 대기업에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세상이다. 당장 몇 년 위의 선배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부모, 친척들은 40대에 명퇴당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학비로 대출했던 학자금은 겹겹이 쌓여서 당장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판이다. 먹고사니즘은 발아래 떨어진 불인데, 대의와 연대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청춘세대들은 잉여로 명명된다. 지금의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당연한 현상이고, 누구도 잉여가 될 수 있다. 노동의 유연성이 과도하게 허용되고, 정년은 우스갯소리로 도둑놈만 채우게 되는 사회가 됐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조차도 구조조정에 맘에 안 드는 직원은 어떻게 해서라도 찍어내고야 마는 사회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예전에 백 명이 할 일을 지금은 열 명이 한다. 제품의 가격은 별반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일하는 열 명의 임금이 예전의 열배가 된 건 아니다. 그 잉여가치는 자본가에게 귀속되고 구십 명의 일자리만 사라지게 된거다.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고 일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줄어든다. 그래서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잉여가 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뭐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어떡하겠나. 그렇다고 다 실업자 신세로 골방에나 처박혀서 히키코모리가 되면 안되지 않겠나.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철학자는 지금으로부터 7~80년 전에 쓴‘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그는 벌써 이런 흐름을 꿰뚫어 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 철학자의 의견에 공감하며, 그의 글을 잠깐 인용해 본다.

 

“인류의 과학기술은 만인을 위한 생활 필수품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을 엄청나게 줄였다. (중략) 만일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호기심을 맘껏 탐닉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든 배곯지 않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중략)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행복과 환의가 충만할 것이다.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증 대신에 말이다.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중략)

그러나 여가의 좋은 점은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게 된 평범한 남녀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모두가 장시간의 가혹한 노동을 해야 할 것이므로 전쟁 취미도 사라질 것이다.(중략)

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게는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뭐 이와 비슷한 대안은 많이들 언급되어 있다. 다만, 사람들이 이걸 먼나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은 절대 실현될 수 없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한다면, 언제인가는 현실이 되는 날이 오지 않겠나. 경제적 안정이 이루어지고 노동의 수고를 어느 정도 부담하고 나머지는 향유와 여유를 즐기는데 쓴다면, 천박하고 저렴한 사고를 넘어 보다 좀 고차원적으로 문명화된 인류에 맞게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생각을 안 하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c****s 2013.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