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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흔적이 비극으로 마무리될 지라도 아랑곳 없이 밀고 나가는 글이다
"관계의 흔적이 비극으로 마무리될 지라도 아랑곳 없이 밀고 나가는 글이다" 내용보기
읽고 싶은 책이 이북으로 출간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살면서 생각이 깊어가는 건 홀로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서라기 보다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에 귀가 더 쫑긋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아닌 타인을 통해 얻게되는 관계의 비극이나 고통을 솔직하게 되내이지 못했던 내 지난 날의 이야기를 곱씹어 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그로 인해 나는 어떻게 변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떠
"관계의 흔적이 비극으로 마무리될 지라도 아랑곳 없이 밀고 나가는 글이다" 내용보기

읽고 싶은 책이 이북으로 출간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살면서 생각이 깊어가는 건 홀로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서라기 보다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에 귀가 더 쫑긋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아닌 타인을 통해 얻게되는 관계의 비극이나 고통을 솔직하게 되내이지 못했던 내 지난 날의 이야기를 곱씹어 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그로 인해 나는 어떻게 변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는지 혹 나도 비슷한 감정의 선을 경험해 본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고 가뜩이나 심란한 요즘 요동치는 심사를 다스릴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으로 인해 내가 달라진 건 없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거, 흔하디 흔한 조작을 통해 돌연변이로 환생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고 할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철저한 자기 기만에 빠졌던 적은 없는지, 혹여 현재도 그리 살고 있는건 아닌 지 점검의 시간도 가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말하여진 고통은 이미 고통이 아니다. 말이나 글을 통해서 자신의 고통 덩어리를 쏟아내면 그 고통은 더 이상 덩어리진채로 내 안에 들어서질 못한다. 자진 해체를 통하여 공기중으로 소멸하거나 타인의 머리와 가슴에 들어와 이제껏 품어보지 못했던 기운으로 내 안에 돌아오게 된다. 내 형편없는 이야기를 아무런 평가없이 들어주는 타인이 있다면 그 타인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다. 내 실존을 존중해주는 타인이 존재할 때 비로소 나는 고통에서 반은 벗어날 수 있다.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실존은 위로를 받는다. 윤대녕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때문이다. 살면서 빗겨가지 못했던 관계의 흔적이 비극으로 마무리되더라도 방관하지 않고 고통의 소용돌이를 모른 체 하지 않으면서 밀고 나가는 힘이 그의 글에서 느껴졌다. 나는 용감하게 바닥까지 긁어주는 그런 글이 좋다. 위선과 허풍없이 일상적 희비극이 말끔한 소나기처럼 감정을 훑고 지나가는 글, 그런 글은 자신의 고통을 주도면밀하게 고백하지 않고선 타인의 고통을  그려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타인을 갖고 있는가. 친구면 더 좋겠지만 사십대 혹은 오십대 심신이 차츰 노화되어가는 시점에 친구는 하늘의 별같은 존재다. 내 고통의 그물을 밤하늘에 던지면 별무더기같은 친구들이 내 가까이 올까. 차츰 나랑 비슷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피하게 된다. 꺼름직하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모두가 과거에 져버렸던 기억때문이다. 나로 인해 재구성된 고통들을 피하려고 멀리하는 건 아닐까.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감정이 매번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타인의 삶에서 발견된 고통으로 나를 위로하는 건 부당할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일상이 있고 그 안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관계에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사랑이었던 것들, 이별이었던 것들, 심지어 사기당했다는 것까지도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알게 되는 삶의 우스꽝스러움들이 이제는 조금씩 보인다. 인간에 대하여 심안을 갖게 되는 것도 다 괜찮은 독서덕분이다. 





b*******e 2013.11.14. 신고 공감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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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묵혀둔 이야기
"오랫동안 묵혀둔 이야기" 내용보기
어제와 그제의 날씨가 어쩜 그렇게나 다를 수 있었는지. 그제는 비록 바람이 불고 비도 내렸지만 마치 초봄의 날씨처럼 따뜻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침에 입었던 겨울 코트가 낮에는 자못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랬던 날씨가 어제 아침에는 급변했던 것이다. '조변석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침나절에 잠시 뿌옇게 흐린 하늘에서 가루눈이 흩날렸고, 바람에 실린 한기가 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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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그제의 날씨가 어쩜 그렇게나 다를 수 있었는지. 그제는 비록 바람이 불고 비도 내렸지만 마치 초봄의 날씨처럼 따뜻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침에 입었던 겨울 코트가 낮에는 자못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랬던 날씨가 어제 아침에는 급변했던 것이다. '조변석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침나절에 잠시 뿌옇게 흐린 하늘에서 가루눈이 흩날렸고, 바람에 실린 한기가 참으로 매서웠다. 내 몸이 어제의 온기를 기억하는 까닭에 오늘의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몸이 기억하는 과거는 언제나 직선적이다.

 

그렇게 어제는 마치 폭설이라도 내릴 듯 하늘은 온종일 어두웠다. 날씨 때문이었는지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윤대녕의 소설집<대설주의보>. 이상하게도 나는 '윤대녕' 하면 이 책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그가 쓴 다른 책들도 많건만 도통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어제처럼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기세라면 나는 언제나 윤대녕의 <대설주의보>를 떠올리곤 했다. 윤대녕이 떠오른 차에 나는 어제 집 근처의 도서관에 들러 그의 소설집<도자기 박물관>을 빌렸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하나같이 과거의 시간에 저당잡힌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에게 과거 어느 시점의 기억은 자신의 삶 전체를 통제하는 족쇄와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운명은 그들에게 적극적인 긍정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이 떠안게 되는 순응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질긴 운명에 결코 저항하지 않는다.

 

"나는 내 삶에 있어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세계에서 멀어져 어딘가에 격리돼 있던 시간들을. 언제 어디서 나는 잃어버렸던 세계와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그만 까마득한 심정이 되어 나는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p.220)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순순히 따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세월의 조탁과정일 수도 있겠다. <도자기 박물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이미 스러진 사랑을 끝내 잊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편지글 형식의 단편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의 주인공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던 선배에게 20여년 만에 편지를 보낸다. 그것은 단순히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집착이나 갈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의 불꽃을 되살리겠다는 욕망보다는 그 시간에 대한 확인 정도로 그친다.

 

"어쩐지 너무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네, 나는 지금 고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고통은 언어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그 화염 같은 속내를 고작 말로써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27)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과거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소설 속 인물들이 일견 답답하고 어리석다고 여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그런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반달'의 주인공은 입대하기 직전 한동안 반목하며 지내던 어머니와 우연한 여행을 하게 된다. 제대를 하고 다시 혼자가 된 주인공은 섬이 고향이었던 같은 과 동기를 찾아나선다. 동기는 휴학을 하고 새우잡이 어선을 타고 있었다. 그를 따라 새우잡이 어선을 타게 된 주인공은 선상에서 동성 간의 사랑을 나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그 후 주인공도, 동기도, 어머니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삶의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덧없는 꿈이니 고독한 환상이니 화염 같은 고통이니 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었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랑이 가능했고 가까스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알던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말이다."    (p.78)

 

반면 표제작인 '도자기 박물관'은 어려운 환경에서 만나 결혼을 한 두 남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아내와는 달리 도자기에 미친 사내는 아내를 돌보지 않고 도자기만 찾아 헤맨다. 결국 아내는 죽고 혼자 남은 사내는 지난 시절을 후회한다. 그리고 병중에 있는 아버지의 묫자리를 둘러보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 두 형제의 대화로 구성된 '구제역들'의 주인공은 10년 전 헤어진 여성과의 추억을 불러내어 형제간의 반목을 이어나간다. 형이 사랑했던 여인을 동생이 사랑하게 됨으로써 끝내 두 사람과 이별하게 된 여인은 사랑으로 인해 형제의 관계마저 소원하게 만드는 촉매로 작용한다.

 

건강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를 쓴 '검역'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지쳐버린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이 소설집에서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문어와 만날 때까지'는 계부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주인공 '나'가 삼척 바닷가에 사는 대학 동창의 전화를 받고 동해로 달려가는 이야기이다. 삶은 문어를 안주로 동창과 긴 술자리를 이어가면서 '나'는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문자 메시지를 생각하고 결국 '육 년 전 약속'의 정체와 상대를 기억해낸다. 마지막으로 치명적인 질병을 핑계로 사랑하는 여인 '숙'으로부터 도망쳤던 '통영-홍콩 간'의 주인공 '백'은 그녀와 함께 했던 통영과 홍콩을 마치 순례를 하듯 더듬으며 지난 과거와의 화해를 도모한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숙은 결국 여정의 끝자락에 이르러 백을 용서한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세월에 순화되거나 소화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결국 소설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비극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우리의 삶이 행복하려면 고통의 순간들도 세월 속에 잘 소화시켜야 하는구나' 하는 것도. 세월에 소화되지 않은 가슴 속 응어리들이 결국 소설이 되고 너와 나의 전설이 되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걸 윤대녕의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달의 사락 s*****l 2016.02.15.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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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글 [한국소설-도자기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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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무조건 읽어야 하는 작가의 글. 그리고 뒤따르는 만족과 즐거움.  약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그의 글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시적 감수성에 더해 이야기가 더욱 충실해진 느낌. 글을 읽다가 이청준을 떠올린 것은 어떤 부분 때문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했다.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만들어 보는 답,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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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무조건 읽어야 하는 작가의 글. 그리고 뒤따르는 만족과 즐거움.

 

약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그의 글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시적 감수성에 더해 이야기가 더욱 충실해진 느낌. 글을 읽다가 이청준을 떠올린 것은 어떤 부분 때문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했다.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만들어 보는 답,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나 자신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나의 맨 안쪽, 평상시에는 끄집어 내지 않았던 의식의 가장 안쪽을 만나게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게 만약 불편하거나 아프거나 억울하다면 글을 읽는 일도 불쾌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소 쓸쓸할 때가 많기는 하지만, 내가 나를 만나는 게 좀 아늑하고 아득하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고 싶기도 하면서 내 속의 내가 많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나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한때는 내가 작가의 글솜씨에 빠져 들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모든 말들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지금도 그런 점은 변함 없지만, 이제는 거기에다가 삶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까지 전해 받는다. 참, 치열하게 받아들이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정신적 치열함.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간절함까지.

 

예고도 없이 바로 만난 책. 반가웠다. 

 

10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정녕 허무하고 슬픈 것이로구나

 

11

지금도 그곳은 이십삼 년 전처럼 봄이 되면 여전히, 속속들이 아름다운가요?

 

12-13

어차피 사람이란 서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던가요? 그렇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우리는 서로가 개입된 과거에 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 흔적이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삶 말입니다.

 

14

사람은 결국 고통을 통해서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걸까요?

 

22

아픔은 언제나 뒤에 남겨진 사람의 몫입니다.

 

27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차츰 멀어지게 됩니다.

 

72

나라는 거울을 통해 매 순간 상대를 찾고 그리워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었다. 또한 상대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누구한테나 우주와의 경이로운 일체감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78

삶의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덧없는 꿈이니 고독한 환상이니 화염 같은 고통이니 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었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랑이 가능했고 가까스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알던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말이다.

도자기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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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j***6 2013.09.14. 신고 공감 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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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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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장편소설에 비해 단면적일 수밖에 없는 서사의 부재, 그 낯섬에서 단편소설의 어려움을 찾곤 했다. 은유로 똘똘 뭉쳐진 삶의 모스부호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의지로 가득찬 독자는 아니었나보다. 작가들의 눈부신 필력으로 탄생한 글자 안에 스며든 삶이 쓸쓸하면 할수록 어렵고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무엇이라도 참을 수 있었다. 심장을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는 서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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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장편소설에 비해 단면적일 수밖에 없는 서사의 부재, 그 낯섬에서 단편소설의 어려움을 찾곤 했다. 은유로 똘똘 뭉쳐진 삶의 모스부호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의지로 가득찬 독자는 아니었나보다. 작가들의 눈부신 필력으로 탄생한 글자 안에 스며든 삶이 쓸쓸하면 할수록 어렵고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무엇이라도 참을 수 있었다. 심장을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는 서늘한 느낌이 오랫동안 선연하게 남아있을 때 빼고는. 그건 정말이지 견딜 수도 없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종류의 경험이다. 그러나 앞선 변명들이 내 찬란한 가을을 쏜살같이 통과한 소설집 한 권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한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른 채로 질문 하나 덩그러니 품은 상태에서 시작해버렸다. 보이지 않는 질문은 이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찾아간다.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에게 도자기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나는 달콤한 사과향이 가득한 밭에서 그의 고백을 듣고 있다.


 "...어떤 것은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그윽해지고 왠지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러더군. 또 어떤 것은 뭔가 나한테 말을 걸어올 듯 말 듯 애를 태우기도 하고, 한편 기골이 하두 고귀해 보여 내가 몹시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고."

 "오래된 것일수록 고졸한 맛이 우러나게 마련이지만 참으로 꾸밈이란 게 없어. 그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어. 분졸미란 것도 있다지? 우둔한 멋을 지녔다는 뜻이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마음을 끌어당기더라구. 내가 우둔하게 생겨먹은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어김없이 하늘에는 별이 뜨고, 바다는 파도를 몰고 온다. 변하지 않는 자연 앞에서조차 인간은 몸을 떤다. 지도와 나침반을 꽉 쥔 인간들은 제가 쥔 것이 무슨 뜻인줄 모르고 또다시 헤맨다. 지구는 막막한 허공에 뜬 자들의 집합체다. 표제작「도자기 박물관」은 평생 도자기를 모으며 전국 방방곡곡 돌다가 아내를 잃은 남자가 주인공이다. 함께 다니던 어묵공장에서 서로를 만났지만 둘은 한결같이 여기를 떠나기 위해 안달한다. 안간힘을 써도 결국 이 세상에 그들이 머물 곳은 없었나. 남자는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빙빙,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며 인생의 경로를 유예시키고 또 빙빙. 그러다가 남자는 골동품을 싣고 전국을 돌며 파는 한 트럭장수를 만난다. 하필이면 왜 거기 실려있던 도자기에 눈이 멀었을까. 도자기를 향한 수집벽과 방랑벽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다. 그는 자조적이고 불가사의한 사람이었다. 고집센 의지와 넋두리같은 삶이 그를 바깥으로 내몬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 비로소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오지만 아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후회는 너무나 늦다. 삶이 비극일 수밖에 없는 건 그의 삶이 여전히 한줌 더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글을 썼고, 글은 시각일텐데 이 책에서는 왜 유독 강한 짠내와 외로움의 고통이 맡아지는지 궁금하다고 쓰면 반칙이다. 그건 홍콩이 나오는 소설을 읽으면 당장 홍콩에 가고 싶고, 문어가 나오는 소설을 읽다가 문어에 소주 한 잔을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소식이 끊긴 오래된 친구에게 추억을 빌미로 연락을 해볼까, 그래 그때 내가 잘못했어, 하고 말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많은 것들이 나를 떠났고 많은 사람들이 내게서 잊혀졌다. 훌훌 털어내는 데 익숙하지 못한 편이지만 나를 스쳐간 것들에 미련두는 건 지금 내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나는「반달」에 나오는 단 한 번 예외적인 사랑에 빠졌던 남자를 실제로도 알고 있다. 아득할수록 예외는 나를 가리킨다. 어선 위에서의 하룻밤과 하얗게 뜬 반달 그리고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내밀함 때문인지 뜻모를 격리가 가져다준 애틋함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이 책을 넘길 때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맡아지지 않는 바다냄새를 맡고, 관심둔 적 없던 도자기의 형체와 빛깔 그리고 질감을 본다. 괜찮은 경험이다. 닿지 못한 곳으로 시선을 두는 것도. 그렇게 내가 아는 세계를 한 뼘쯤 더 넓히는 것도. 어떤 의미로든, 어떤 의미가 아니든.




s*****d 2013.10.3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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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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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의 가을 태풍이라고 뉴스는 요란하게 말했다. 태풍의 이름은 다나스(DANAS). 필리핀에서 제출했으며 ‘경험’을 의미한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지나갔다. 바람은 선선하고 햇빛은 찬란하다. 태풍에 지레 겁먹고 약속을 잡지 않은 것이 억울할 만큼. 그럼에도 집에서 보내는 모처럼의 조용한 오후는 마음에 든다.   9월의 어느 날, 윤대녕의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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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의 가을 태풍이라고 뉴스는 요란하게 말했다.

태풍의 이름은 다나스(DANAS).

필리핀에서 제출했으며 ‘경험’을 의미한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지나갔다.

바람은 선선하고 햇빛은 찬란하다.

태풍에 지레 겁먹고 약속을 잡지 않은 것이 억울할 만큼.

그럼에도 집에서 보내는 모처럼의 조용한 오후는 마음에 든다.

 

9월의 어느 날, 윤대녕의 소설집 출간소식을 들었다.

그는 내게 한국 남자 작가 중 유일하게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쿵, 내려 앉히는 작가다.

그의 소설을 언제나 읽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도자기 박물관』이란 책의 제목도,

아늑함과 아득함이 동시에 드는 책의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TV문학관>에서 방영했던

지금은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드라마 때문인지,

고교 시절 짝꿍의 집에서 만난 그녀의 도예가 아버지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인생의 한 시절은 도자기를 만들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흙이 불을 만나 아름다운 도자기로 탄생하는 일은 신기했고 신비로웠다.

 

신간을 주문하고 내가 소장한 윤대녕의 소설을 찾아봤다.

한 권의 소설과 산문집, 단편이 실린 수상작품집뿐이었다.

찾지 못했거나 동생의 책으로 읽고 내 책이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기억은 믿음을 배신한다.

「문어와 만날 때까지」는 나의 기억이 믿음을 배신하는 경험을 적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구한테나 고독이고 고통이겠지. 짐승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이 어미도 속으로 저런 소리를 내며 밤새 뒤척일 때가 많단다. 그래도 아까 우리가 보았던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다 좋은 일 아니겠니? 운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바로 운명이고 숙명이란다.”(「반달」, 56쪽)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에서

청춘의 시절 그와 짧은 인연이었던 여자가

지금은 소설가가 된 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그의 따뜻한 말을 통해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통영-홍콩 간」에서 숙이 백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은

그와 함께라면 회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삶의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덧없는 꿈이니 고독한 환상이니 화염 같은 고통이니 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랑이 가능했고 가까스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알던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말이다.(「반달」, 78쪽)

 

"이제 꿈에서 깨어나셨소?“

“그런 것 같소만. 낭패스럽게 여직도 분명치 않소.”

“지금도 몸과 마음이 춥고 아프오?”

“괜찮소이다. 몸이고 마음이고 이제 한껏 놓여난 듯하외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내 뜨거운 꿈을 꾸셨으니, 그걸로 그만 됐다 생각하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꿈이라도 꾸지 않았다면, 이때껏 연명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소?”

“......”

“어떻게 살아왔든 누구한테나 삶은 결국 꿈같은 것이 아니었겠소?”

“...... 그럴듯하군. 하지만 사나운 꿈도 있었지.”

“아직도 가슴에 한이 남은 모양이구려. 그렇다면 여기 불 속에 남은 눈물이나 마저 흘리고 돌아가시구려.”(「도자기 박물관」, 121쪽)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는 말, 그때는 알지 못했다.

「구제역들」의 ‘나’는 나이가 드니

‘삶이 병역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131쪽)고 했다.

시간이 지났어도 삶의 고통은 여전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있다.

길을 잃지 않으면 길을 찾을 일도 없다는 것.

허튼 꿈이라도 꿈이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나이를 든다는 건 서글픈 일이 아니라 좀 멋진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몰랐던 일을 알게 되니 말이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시래요. 통영에서 기다리겠대요.(「통영-홍콩 간」, 289쪽)

 

이 문장은 「통영-홍콩간」의 마지막 문장이자

소설집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기다리겠다는 말에 괜스레 마음이 울컥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기다리며 살아간다.

‘너’를 떠나는 일도, ‘너’를 기다리는 일도

칼바람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아프다.

 

‘나’의 상처는 ‘너’를 통해, ‘너’의 상처는 ‘나’를 통해 회복된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서, ‘너’는 ‘나’에게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3년 전, 가을이 지기 전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읽었다.

그때 윤대녕의 나이는 마흔아홉이었다.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나에게도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도자기 박물관』을 읽는 동안,

우리의 삶은 고통의 시간임과 동시에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임을 생각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살아있는 일은 아름답다.

 

「통영-홍콩 간」에서 숙은 양녀로 입적한 아이에게 냉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고추냉이의 연둣빛처럼 매콤하게 살아라, 하는 뜻이었다.

겉은 밝게 속은 강하게 살라는 뜻?

매콤하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연둣빛처럼 매콤하게 살아라, 는 말이 마음에 든다.

가을에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3.10.09.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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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 - 윤대녕 단편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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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리뷰를 아름답게 감동적으로 그것도 엄청 많은 이야기들로 잘 쓰는데, 나는 왜 그게 잘 안될까? 감동을 전할 때보다... 비판을 하거나... 투덜거릴때가 더 많다.. 내안에 뭔가 꼬여든 새끼줄이 꽁꽁 동이를 얽어매고 있는지, 그냥 누구나가 같이 말하는 좋다가  ....해지지가 않는다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참,..,. 마음이 서늘하다.. 눈썰미가 참 없는 나는..몇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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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리뷰를 아름답게 감동적으로 그것도 엄청 많은 이야기들로 잘 쓰는데, 나는 왜 그게 잘 안될까?

감동을 전할 때보다... 비판을 하거나... 투덜거릴때가 더 많다..

내안에 뭔가 꼬여든 새끼줄이 꽁꽁 동이를 얽어매고 있는지,

그냥 누구나가 같이 말하는 좋다가  ....해지지가 않는다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참,..,. 마음이 서늘하다..

눈썰미가 참 없는 나는..몇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글이라는것도 읽으면서 알았다.

한편한편이 속이 쓰리다..  뛰어가다 시멘트 바닥에 까진 붉은 생채기가 난  무릎의 상처처럼

쓰리다..그래서 싫다.............

 

대부분의 삶 들이 이러하다는것에 비상구가 없음에, 안절부절해지고

그들의 삶 막바지를 읽고 있는 순간순간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구토가 일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글에서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필체로 태어나 그 상처를 치유해 가고, 갈무리 해가지만

괜히 그 상처 치유의 흔적이 내게 오는것 같아서... 숨막힌다..

어쩌면 내안의 상처도 그렇게 치유받고 싶은게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표면적으로야 난.... 행복한데...왜  그런 삶들이 그다지도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

 

책은 전반적으로 건강과 연결된 글들이 많다... 작가가 아픈가?

건강검진, 병원, 상처, 임종만을 기다리는...뭐 등등.............

 

글은 한문장 한문체가 너무도 아름다우나, 내용은 참............... 쓰다..

g******8 2013.11.01.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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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홍콩간(10.27~11.5)
"통영-홍콩간(10.27~11.5)" 내용보기
2010년 겨울,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읽고 난 후부터 윤대녕의 글이 좋아졌다. 그래서 읽다가 접어두었던 책 <대설주의보>를 다시 처음부터 읽었었다. 다시 읽으니 처음 읽다가 말았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담백하고 따뜻한 소설임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대설주의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이나 여기<<도자기 박물관>>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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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읽고 난 후부터 윤대녕의 글이 좋아졌다.

그래서 읽다가 접어두었던 책 <대설주의보>를 다시 처음부터 읽었었다.

다시 읽으니 처음 읽다가 말았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담백하고 따뜻한 소설임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대설주의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이나 여기<<도자기 박물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길위에서 맺어진 관계들-연인, 친구, 배우자.

그 관계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서로 점점 어긋나고 멀어지는 설정은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두 책이 갖는 분위기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대설주의보>>는,

비록 한겨울이지만 처마밑으로 기울어드는 오후 햇살에 고드름이 스르르 녹아 물이 똑.똑. 떨어져내리는-푹하면서도 따뜻한 겨울풍경이 연상되지만.

<<도자기박물관>>은,

한 겨울 추위만큼 드세지 않으면서도 옷속을 파고 드는 바람결이 을씨년스럽게 여겨지는 늦가을 풍경처럼 마냥 스산하고 으스스하다.

 

작가는.

"젊음과 늙음의 경계인 오십대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 같고"

이 책 <<도자기 박물관>>이  "그러한 시간의 집적이자 흔적"이라고 했는데.

고통에 대한 사유가 너무 깊었는지,

일곱 편의 얼개에 담겨진 사연들이 대부분 쓸쓸하게 읽혔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반달

도자기 박물관

구제역들 

검역

문어와 만날 때까지

통영-홍콩 간

 

위의 일곱편의 글들중,

<도자기 박물관>을 책의 제목으로 올려둔 것은 작가 스스로 보기에 가장 수작으로 여겨졌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 마음속에 가장 여운이 남았던 소설은 <통영- 홍콩간>이었다.

<<대설주의보>>의 계보를 잇는 따뜻함이 조금은 남아있다.

백과 숙의 사랑, 

백은 숙을 사랑하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숙에게 아픔을 주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오히려 그 배려가, 

일정거리로 가까와지면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하고 밀어내는 같은 극의 자석처럼 되고 만다.

백과 숙의 사랑을 읽던 내 마음도 "비록 상처가 되더라도 만나서 서로 고통을 나누는 편이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생각해"라며 백에게 충고하던 친구의 마음처럼 안타까움으로 그득해졌지만.

그들의 은근한 사랑이 좋았다. 

통영-홍콩간.

통영이라는 곳은 나에게도 간직하고픈 예쁜 추억들이 깃들어 있는 도시다. 아름다운 도시다.

"통영과 홍콩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숙의 말에 따라 나도.

홍콩에 가보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c*******7 2013.11.20.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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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설의 아름다움과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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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로 고통은 언어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그 화염 같은 속내를 고작 말로써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됩니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27쪽     내 삶이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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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로 고통은 언어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그 화염 같은 속내를 고작 말로써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됩니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27쪽

 

  내 삶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아직 오지 않은 고통에 대해 두려움에 떨게 되는 날들이 많아진다. 소중한 것이 생길수록 그런 걱정이 더 잦아지는데 그래서인지 아무 일없이 지나가는 일상이 지속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스스로 만들고 해소하는 과정일수도 있으나 닥치지도 않은 고통에서 나를 강하게 단련하려 한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마무리 짓곤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문장을 봤을 때 뭔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구나 가슴에 말 못할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과연 그것을 쉽게 언어화 시켜 타인에게 말할 수 있을까? 아픔을 토로하기만 해도 치유가 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런 말을 할 기회와 용기가 함께 내재되어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난 뒤에는 상황이 좀 달라진다. 큰 고통을 격고나면 타인이 나와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이해하려 하고 위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자기 박물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통을 감히 이해했노라고 말은 못하겠다. 이해하려는 단계에도 나아가지 못한 데는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고통을 오히려 덤덤히 드러내고 있는 차분함이었다. 고통을 중심에 놓고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면 오히려 진부했을 터인데 추억 속에 갇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남 이야기 하듯 툭 던져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나와 밀접한 것도 있지만 동떨어지거나 상상 속에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나와 밀접한, 그렇기에 더 애잔하고 절절한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기이한 사연이 있다면서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 같았다. 주변에서 일어날법한 일들이지만 누군가의 추억 속에 묻혀 있는 이야기들. 해설에서는 “윤대녕의 주인공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일상의 활력’이나 ‘구원의 여신’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의 오롯한 ‘재생’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주인공들이 추억하는 장면과 비슷한 혹은 상관없는 나의 추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하룻밤의 인연으로 끝나버린 여인의 모습에서 헤어진 연인을 밤새도록 기다렸던 일,「반달」노래를 부를 때는 별자리 찾겠다고 고개가 꺾이도록 밤하늘을 쳐다봤던 일들 같은 나의 추억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다. 누구하나 평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도 없었다. 과거의 ‘나’의 모습을 뚝 떼어다 보여주며 비탄에 빠져있는 현재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들이 우울하지 않게 다가온 것은 저자의 절제력 때문이었다. 멈출 때 멈춰서고 철저히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 때론 냉정하고 무관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런 절제 속에 유유히 흘려가는 문체에 빠져들고 말았다. 밝고 명랑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독자를 우울함으로 빠뜨리지 않는 능력. 온갖 고통을 안은 주인공들을 보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을 수 있어서 그 부분이 무엇보다 좋았다. 삶의 애환도 애환이지만 글 속에 녹아있는 유려하고 아련한 문장들이 상처어린 추억이 더 이상 덧나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글을 읽은 것 같다. 해외소설을 좋아해 번역체에 길들여져 있다 이렇게 우리 문장으로 된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면 마치 개안한듯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다. 윤대녕 작가의 글은 처음인데 이렇게 첫 작품부터 좋아하게 되었으니 그간 만나지 못했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그 작품들 속에서는 또 어떤 인물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s****m 2014.12.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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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자기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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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을 보고 윤대녕 작가의 소설이 더 읽고 싶어졌다제목도 윤대녕 작가의 문체도 건조하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소설이다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 문학동네19살 무렵 처음 윤대녕 작가를 알았으면서도 왜 이제야 나는 이 작가의 소설에 빠져들었을까문체와 소설은 건조하고 담담하다더 이상 내가 20살 때 읽었던 윤대녕 작가의 어려운 책이 아니었다앞으로 더 윤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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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을 보고 윤대녕 작가의 소설이 더 읽고 싶어졌다

제목도 윤대녕 작가의 문체도 건조하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소설이다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 문학동네

19살 무렵 처음 윤대녕 작가를 알았으면서도 왜 이제야 나는 이 작가의 소설에 빠져들었을까

문체와 소설은 건조하고 담담하다

더 이상 내가 20살 때 읽었던 윤대녕 작가의 어려운 책이 아니었다

앞으로 더 윤대녕 작가의 소설을 읽고싶어진다

s****e 2017.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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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마지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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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육 마지막 날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그리고 움직이는 지하철 안에서 읽은 윤대녕 선생님의 "도자기 박물관."   하루종일 앉아서 교육을 들으니 배울 것이 많았지만, 오후5시가 넘으니 점점 체력은 떨어지고. 그럴때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읽는 "도자기 박물관"이 내 마음만이라도 건물밖으로, 이 서울 밖으로 나를 데리고 떠나는듯 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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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육 마지막 날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그리고 움직이는 지하철 안에서 읽은 윤대녕 선생님의 "도자기 박물관."

 

하루종일 앉아서 교육을 들으니 배울 것이 많았지만, 오후5시가 넘으니 점점 체력은 떨어지고.

그럴때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읽는 "도자기 박물관"이 내 마음만이라도 건물밖으로, 이 서울 밖으로 나를 데리고 떠나는듯 했다.

 

 이 책도 요즘 날씨와 참 잘어울리는 것이,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 나라안에서 참 못가본 곳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어찌나 묘사를 사실적으로 해놓으셨는지. 아마도 선생님은 전부 직접 다녀오신듯 실감나는 장면들.

 

특히 밤바다와 흐르는 별에 대한 부분이 정말 좋았다. 게다가 군데군데 맛있는 음식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이번 겨울에는 떠나야할듯 하다.

 

 

 

 

 

열아홉에 처음 읽었던 선생님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더욱 반갑고 행복한 기분이었다.

 

선생님 책은 항상 재미있고, 읽고나면 작은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다.

 

 

 

 

 

 

n*****p 2013.1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