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집엔 숱한 슬픔과 죽음들이 들어 있다. 아예 '슬픔과 죽음이 책'이라고 단정해도 될 만큼 산적해 있다.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죽음에 짓눌리지 않고, 산책하듯 읽게 된다. 왜일까? 익사할 듯 그렁그렁 차오르는 슬픔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왜 시인은, 왜 나는, 죽지 않나?
가령, 이런 것이다. 이 시집의 제목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보자.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예일 뿐, 이 시집의 시들, 특히 표제작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과는 무관하다. 이건 그냥 나의 예이고, 나의 감상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죽을 만큼 힘든 일을 겪고 있거나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그 사람이 밤에 잠자리에 들며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건 이 밤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거나, 이 밤이 끝이길 바라는 마음과도 비슷할텐데, 더 이상 생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절망스러움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내일 아침이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깊은 밤이 지나면 좋겠다는 마음, 비록 매일 매일 계속되는 일상이지만, 내일은 다를 수도 있을 거라는 실낱 같은 희망이 내포된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 시집은 전자보다는 후자다. 이 시집 속에 지배적인 죽음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이 시들에 질식하거나 짓눌리거나 익사하지 않는 까닭은 그 속에 있는 실낱 같은 어떤 것들 때문일 것이다. 아주 작고 미세하지만, 분위기와 공기를 바꿔 놓는 것들. 가령 시 속의 '화자'에게는 '너'나 '딸'같은 존재들. 그들과 함께 하는 식탁 앞, 산책, 잡은 손, 함께 나누는 이야기 같은 것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은 '시' 속에 있다는 것이다.
시 속에서 회복하고 시 속에서 위로 받는, 무한히 계속될 그 시간의 극히 일부를 붙잡아둔 것이 바로 '이 시집'이라고 시인 김중일은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시집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이름은』이나 『스즈메의 문단속』이 고통이나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달하는 방식과 유사하달까. 빛과 색으로 전달했던 그것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장 힘들었을 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게 시를 읽는 것이었다. 음악을 듣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힘들 때 미음을 먹듯 유일하게 가능했던 게 시 읽기였는데, 그때의 나도 시 속에서 조금씩 회복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팬데믹으로 집안에 갇혀 지내게 됐을 때 제일 먼저 한 게 시집들을 한 곳에 모으는 일이었다. 일명 '천 권의 시집 책장.' 미국집은 나무로 만드어져서 행여 집이 무너져 내릴까봐 2층엔 절대 책을 안 올렸는데, 이건 정리하던 첫 날에 찍은 사진인데, 사흘 동안 백 번 넘게 오르락 내리락 해서 결국 책장을 가득 채웠다.
잠이 안 오는 불면의 밤이면 가끔 이 책장 앞을 서성이기도 하는데, 이 책장을 만든 나도, 깊은 밤 이 책장 앞에서 시집의 책등을 쓰다듬는 나도, 어쩌면 시인과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24시간 지구의 절반은 검게 멍들고 물이 찬 무릎처럼 지구의 안쪽이 온통 검은 멍으로 가득 차도 하루에 한 번은 무릎 짚고 일어선다. 시커멓게 멍든 무릎으로 툭툭 털고 일어서면 하늘 땅 바다가 온통 다 검은 멍 빛이다. 양수처럼 고요한 멍들 속에 둥둥 떠 있는 죽은 사람들. 죽은 사람들 걱정 그만 시키게 오늘은 부디 넘어지지 말고 넘어가자 당부하며 우리는 메신저를 닫고 각자의 자리에서 퇴근을 준비한다.
- 김중일, 「유독 무릎에 멍이 잘 드는 너와 산책하는 일」 부분
키에 비해 발이 작은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잘 넘어졌다. 어렸을 때 넘어져서 울면서 엄마한테 가면 엄마가 '빨간 약'을 상처에 발라줬다. 아프지 말라고 호-호- 불면서 약으로 꽃도 그려주고 나비도 그려줬다. 그냥 아무렇게나 발라줘도 상처는 낫겠지만, 어린 딸의 아픈 마음까지 헤아린 엄마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한바탕 눈물을 쏟은 후 훌쩍 대는 딸에게 '이젠 안 아플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해주던 그 엄마가 이젠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건, 엄마가 내 '시 속'에 있기 때문이겠지. 시인에게 '너'가 있듯이.
|
|
한 사람의 죽음이 가져오는 파장 또는 물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