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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사람들의 일상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 확산세가 아직 꺾이지는 않았지만, 치료제의 개발과 백신의 접종 등으로 의료 여건이 좋아지면서 초기보다 그 영향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그동안 ‘거리두기’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규제가 풀리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도 몇 차례 전염병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처럼 광범하고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처음이라도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행스럽게 코로나19가 수그러든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새롭게 출현해 급속하게 확산된다고 하더라도 크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그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바이러스의 발생과 확산은 인간의 생활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록 등 과거의 역사기록이나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다양한 문헌들에는 병에 걸려 고생했던 내용들이 적지 않은데, 특히 우리의 일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전염병은 나라의 기틀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 역사 속 전염병>의 면모를 살펴보고, 그것이 당시에 ‘왕실의 운명과 백성의 인생을 뒤흔든 치명적인 흔적’으로 남아있음을 전해주고 있다. 저자 역시 ‘코로나19의 유행은 역사를 전공하는 필자에게는 우리 역사 속 전염병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실록 등 다양한 역사 기록에 나타난 내용들이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도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의 발생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를 통해 ‘전염병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먼저 1부에서 ‘조선시대 전염병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기록에 남아있는 전염병의 양상과 대응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전염병에 맞섰던 의료기관’이라는 제목의 2부를 통해서는 조선시대의 의료기관의 활동을 소개하고, 3부에서는 실제 환자들의 진료를 떠맡았던 ‘의녀들의 활동’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는 동안 수많은 의료인들의 헌신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며 의료 공백을 메워나갔던 간호사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조선시대 의료기관에서 활동했던 의녀들은 오늘날의 간호사의 역할에 해당하고, 그들의 존재가 의료기관의 활약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겠다.
이어지는 내용들은 각종 의학서와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힘썼던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허준과 <동의보감>’(4부)과 ‘정약용과 <마과회통>’(5부) 그리고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6부)의 활동과 중요성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위세가 수그러들고 있지 않은 지금 의료인들의 헌신 못지않게 치료법이나 백신의 개발이 중요한 만큼, 당시에도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치료법에 매진했던 이들의 역할이 소중했다고 하겠다. 책의 후반부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들었던 다양한 전염병들의 실체를 소개하고 있는데, 7부에서는 먼저 특히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했던 ‘작은 마마, 홍역’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조선 후기 최대의 전염병, 천연두’의 발병과 위세 그리고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이 8부에서 서술되고 있으며, 이어지는 9부에서는 당시에는 치명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19세기 조선을 휩쓴 전염병, 콜레라’의 확산과 구호 대책 등에 대해서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10부에서는 위의 질병들을 포함해서 조선시대 내내 나타났던, ‘시기별 유행병의 유행’의 상황에 대해서 기록에 나타난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들이 지금 겪고 있듯이 전염병의 유행은 일상생활의 영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특히 바이러스로 전파되는 경우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예방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염병의 유행은 비단 현재의 상황만이 아니라, 과거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기록을 통해서 ‘과거 선조들이 전염병을 극복해 나간’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며, 또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문제와 해결책도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기록이야말로 ‘코로나19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며, 앞으로 또 다른 바이러스가 발생할 때 이극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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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2년하고도 반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대륙의 끝에 붙어있는 한반도 역시 세계적인 감염병의 유행을 피해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한반도에서는 어떤 종류의 전염병들이 유행을 해서 얼마나 피해를 입혔으며, 조정에서는 전염병의 유행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하던 차에 만난 <우리 역사 속 전염병>입니다.
의학은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 급속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은 과거의 질병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병명은 물론이고 증상에 대한 기술이 현대의학의 정의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 속 전염병>에서도 이런 한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기획으로 출발한 이 책은 “악병, 온역, 홍역, 천연두, 콜레라 등 시기별 전염병의 유행상황과 함께 이에 대한 조정의 대응, 허준, 유상과 같은 의원과 의녀 등 의료진의 활약 및 <동의보감>과 <마과회통> 등 의학서 간행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6쪽)”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기획의도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남아있는 자료들 가운데 전염병의 유행에 관한 자료들을 충분히 섭렵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왕조의 경우는 그나마 실록을 비롯하여 사대부들이 남긴 문헌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고려왕조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왕조의 경우는 남아있는 자료라 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진단법이나 치료법이 전염병은 힘없는 백성은 물론 왕후장상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 속 전염병>에서는 주로 왕실의 전염병 발생과 치료상황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전염병 등의 심각한 상황이라면 팔도에 장계를 내려 현황을 보고토록 하였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1750년 5월 29일자 <영조실록>을 보면 여러도에서 역질로 사망한 자가 총 1만9,849명이었다는 기록을 인용하였습니다(233쪽). 전국 규모의 역질 발생현황자료로는 유일하게 인용된 것이고, 권역별 발생현황에 대하여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염병의 발생현황도 단편적으로 기록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편적으로 인용한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의 대응체계에 대한 언급도 분명치가 않습니다. 왕족의 전염병 감염에 대하여는 내의원의 의원을 비롯하여 의녀가 나서서 치료에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백성들의 전염병 확산데 대한 대응체계에 대한 언급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1730년(영조6년) 1월에 한양에 홍역이 크게 유행하여 5부의 사망자가 만 명 이상 발생하였을 때 영조는 근시를 보내 여제를 거행하도록 명하였다고만 전합니다.
2부 전염병에 맞섰던 의료기관에서는 내의원, 혜민서, 활인서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데, 전염병 치료를 전담했던 기관은 활인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성에서는 10의 8-9가 살아난데 반하여 지방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각도마다 돌림병을 규휼하는 법이 <원육전>과 <속육전>에 규정되어 있었지만 관리들이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였던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저자는 시대별 전염병의 발생현황과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어느 부서가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에 대하여 자료를 찾아서 제대로 설명을 했어야 할 것입니다. 의원과 의녀제도에 대한 설명만 장황하고, 의원에 명하여 의서를 정리하도록 했다는 왕명이 전염병 관리에 얼마나 기여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왕조별 전염별 발생현황이나 대응체계, 그리고 그 효과 등을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이 되었어야 이 책의 기획의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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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온 인류는 '전염병'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전염병이 대유행한 적은 많았지만, '코로나19'만큼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공포를 남긴 전염병은 없었다고 기록될 전염병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염병의 대유행'속에서 인류가 전염병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백신'과 '마스크', 그리고 '거리두기'로 유의미한 대응을 한 것도 기록에 남겨질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팬데믹 상황'속에서도 그대로 방기하고 전염병이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대응방법이었는데, 이제 인류는 발달한 백신기술과 의료체계로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아낸 것이 '코로나19'가 남긴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는 아직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의 노력도 멈추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전염병에 맞서 싸울 유용한 방법이 반드시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을 거라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우리 조상들이 전염병에 대처한 방법을 돌아보면서 '조선시대의 의학'도 함께 정리한 역사책이다. 그동안 역사분야에서도 '의학'에 관한 내용이 전무하다는 안타까움을 일거에 해소한 책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한편, 현대의학 분야에서조차 '양의학'에 치우쳐서 '한의학'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한의학'에 대해서 새롭게 재조명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을 기대해본다.
허나 우리의 의학을 돌아보는 작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의원'이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높은 직위도 아니었고, 신분이 높은 이들이 꺼리던 '직업'이었던 탓에 '체계적인 의학'을 세우거나 '의술'이나 '치료법'을 자세히 적어놓은 사료마저 태부족한 것이 현실인 탓이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속에서 임금을 비롯해 백성들까지 구제하고 치료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많지는 않지만 사대부들의 '개인문집'속에서 당시 전염병이 돌던 생생한 묘사와 함께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던 나름의 방법 따위를 찾을 수 있었기에 비록 단편적인 내용일지라도 비교적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허준의 <동의보감>, 정약용의 <마과회통> 등과 같은 의학서적들이 상당수 전해져 오고 있는 탓에 이 땅에서 유행하던 '전염병'과 그 치료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은 바로 '질병에 맞서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던 의료인들'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가운데는 임금의 병을 고친 유능한 어의도 있지만, 어의 못지 않은 실력으로 의료혜택을 받기 힘들었던 여인들을 돌보던 '의녀'에 대한 내용도 엿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의녀로는 드라마 <대장금>으로도 널리 알려진 서장금이 있지만, 장덕과 귀금, 선복과 애종, 연생과 송월 등 조선시대에 체계적인 의녀교육 시스템이 있었던 덕분에 남자의원들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여인네들을 위한 의료체계를 일찍부터 갖췄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전염병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홍역과 천연두, 콜레라의 대유행을 비롯해서, 악병(역병), 학질(말라리아), 온역(발진티푸스, 장티푸스와 같이 전염력이 매우 강한 급성유행성 전염병), 그리고 전염병은 아니지만 항생제가 없어서 발생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했던 종기까지 다양했다. 이런 전염병이 돌면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방역시스템'을 가동하곤 했단다. 실력있는 의원을 백방으로 찾았고, 의원들이 치료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독려했으며, 전염력이 강할 경우엔 강력한 봉쇄와 같은 조치와 더불어 상세한 상황보고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였던 탓에 무당의 푸닥거리나, 스님들의 독경소리와 같은 '비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고,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 민간요법, 심지어 유교경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효성(효심)'을 지극정성으로 다하니 하늘이 감동하여 역병이 저절로 물러갔다는 둥 엉뚱한 짓(?)거리를 하여서 도리어 '전염병'이 더욱 창궐하게 만드는 역효과도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허나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의 치료법이라는 것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고 스스로 이겨내서 살아남는 방법이 유일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의원이나 의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그런 까닭에 무지한 백성들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조차 무당의 굿과 같은 푸닥거리와 기도, 점괘 같은 것에 의지하는 모습을 여러 자료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에게 딱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기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허준이고, 그가 쓴 <동의보감>은 조선을 대표하는 의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주된 내용은 '값비싼 중국약재'로 치료하는 대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약재'를 새롭게 찾아서 그 효능과 치료방법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질병에 걸린 뒤에 치료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 '치료보다는 예방'을 더 중시한 내용이 적혀 있단다. 지금도 한의학은 치료보다는 '보약'과 같이 평상시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몸의 기운이 흐트러져 균형을 잃으면 병에 걸리기 쉽다고 보았기에 부족한 기운은 북돋우고 넘치는 기운은 사그라들게 하는 조화로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우리 조상들의 의학의 기본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조선시대 의학'을 다 언급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찔끔, 저 책에서 쬐끔, 겨우 맛보기로 찾을 수 있었던 '의학의 역사'를 한 권으로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책이 분명하다. '서양의학의 역사'는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에 '우리의학의 역사'는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참으로 뜻 깊은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yes24 리뷰어클럽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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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도 당연히 전염병이 있었다. 그리고 전염병에 대한 대책은 왕조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역사학자 신병주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우리 역사의 기록 속에서 전염병을 찾아내 어떤 양상으로 전파되고, 그에 대한 대책은 어떠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COVID-19이 계기가 된 책임에 분명하다. 그것 자체가 어떤 흠이 될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 과거에는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니까. 그리고 역사라는 학문의 덕목에는 그러한 것이 있으니까. 얼마나 그 작업을 충실히 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역사 속의 전염병’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이 책 속의 ‘우리 역사’는 주로(전부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다. 그리고 전염병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녀들의 활동이나, 허준의 『동의보감』, 정약용의 『마과회통』, 종두법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지석영 등에 대한 얘기들은 넓게 보면 전염병에 관한 얘기이긴 하지만 조금은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제한되어 포함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구체저인 전염병에 대한 얘기 전에 이 얘기들부터 있어서 조금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이 책이 원래 의도했던 바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7부부터 10부까지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구분하기 힘들었던 홍역과 천연두가 우리 역사, 특히 왕실과 민간에 어떤 상처를 냈는지를 역사 속의 기록을 찾아내고 있고, 19세기 조선을 휩쓸었던 콜레라와 온역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중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왕실에서 이런 전염병들로 꽤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민간에서의 희생이 더 컸겠지만(민간의 희생은 단순한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의료 혜택을 볼 수 있었던 왕실의 희생은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것은 전염병의 정체에 대한 이해 결여(그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미신에 의존한 대처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왕실이 어떤 이가 전염병에 걸렸다고 하면 격리 조치 등이 이뤄지곤 했지만 그것 역시 철저하지 못했던 실정이었다.
한 가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병자호란의 강화가 천연두 때문에 일찍 이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화파의 득세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에 들끓던 천연두에 대한 위협 때문에 우리 정부도 굉장히 곤란했고, 홍타이지도 섣불리 조선 땅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서둘러 강화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석영 전에 정약용이 먼저 우두법을 제안했다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정약용이 보급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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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우리 역사 속 전염병 저 자: 신병주 출판사: 매일경제신문사
코로나 19로 인해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바이러스에 대해 생각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바이러스는 인류가 생긴 이래 같이 살아왔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존재도 있어 때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역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다시 삶을 시작했다. 스페인 독감에서 페스트 등 역사에 기록된 전염병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 과거 바이러스에 종식선언을 했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사에 존재 할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은 이제는 의식해야만 할 거 같다.
그리고 오늘 역사 속에서 발생했던 전염병에 관한 책을 읽었다. 병의 증상은 잘 모르면서도 어릴 적 마마와 홍역이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광고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어려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섭다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백신이 없었으니 무서움을 넘어 공포의 대상이었을 테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역사는 어떻게서든 이겨 내기 위해 방법을 찾았다. <조선왕족실록>2천여 건이 넘는 전염병의 흔적이 기록이 되어있다. <영조실록>에서는 '죽은 자는 방법을 다하여 거두어 묻어주고 산 사람은 특별히 구원하여 살려내라'고 할 정도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구휼 정책을 강구할 정도였다.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없는 건 굿을 시도 했지만 여기에 직접 의료기관을 만들면서 왕을 시작으로 백성까지 모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각각 기관을 만들었다. 왕실 의료기관인 내의원, 관리들의 진료를 받은 전의감, 그리고 백성들을 치료해주는 헤민서가 존재했다. 그리고 전염병 치료를 전담했던 곳이 있는 데 바로 동활인서와 서활인서로 두 활인서를 전염병이 유행 할 때 격리시설로 활용한 곳이었다. 허준을 비롯한 의녀 장금이의 활약도 소개하는 데 때론 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의원이나 의녀 역시 처벌을 받기도 했고, 반대로 차도가 있으면 포상을 주었다. 이어, 근대식 병원이 제중원이 설립이 되고 서양 의술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1894년 갑오개혁으로 국립병원으로 진료 활동을 하던 제중원은 역사에 묻히게 되었다. 즉, 국립의료기관으로서의 제중원이 폐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만약, 제중원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운 생각을 해 본다.
또한, 의료하면 대부분 남성을 떠오른다. 물론, 의녀 대장금도 존재하지만 이 두 사람 못지않게 활약 한 사람들도 있다. 나라에서도 여성 환자를 봐야하는 부분이 있으니 의녀를 뽑기도 했으며 꾸준히 공부를 가르치고 시험을 통해 낙제가 되면 혜민국의 '다모'로 좌천 되기도 했다. 여기에, 60세가 넘어서까지 왕실의 의녀로 있던 송월이라는 인물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 데 이들은 시험을 통해 의녀라는(통합해서) 호칭을 받기도 했지만 사대부가의 여인들 역시 민간요법으로 사람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가장 무서웠던 천연두에 대한 지식 없던 시기다. 우리 나라엔 옛적에 천연두가 없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나타났으니 그 병의 증세가 기이하니 두렵고 막막했을까? 전염병은 어느 시기든 휩쓸지 않았던 적이 없다. 정약용 마저도 전염병를 연구했고 그 뒤를 이어 지석영이 근대식 방법으로 퇴치하기 위해 배웠으니 말이다.
청결하기만 해도 피해갈 수 있었던 콜레라는 1822년 서울을 중심으로 제주도까지 기승을 떨쳤고 그때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고 기록 되었다. 손씻기만 해도 걸리지 않았던 것을 그 존재(모든 전염병)에 대해 전혀 모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한 부분을 읽었다. 이를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전파 되는 것을 확인하고 방안까지 내세운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대는 어떤 경로로 전파되는지 확인 방법이 빠르기에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시행착오(역사에 기록된 부분들)는 있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역사 에서도 전염병을 두고 어떻게서든 이겨내려는 흔적을 봤다. 인간의 힘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때론, 신분과 무관하게 의료를 펼친 이들이 있어 의학이 발전할 토대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 해 본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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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의 넷째주 주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밖으로 외출하는게 어색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팬데믹을 통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비롯해서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진 상태로 2년을 보냈다. 전국민의 35%가까운 인원이 이 병에 걸린 지금에 와서 바이러스도 약해지고, 인류도 이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실 21세기 하고도 20여년이 지난 현대과학이 나날이 발전하는 과정에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이 땅에서 살다간 우리 조상들은 수많은 전염병의 유행과 고통을 지나면서 이 땅을 지켜왔고,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강산과 소중한 역사를 전해주었다. 옛 사람들이 전염병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사실 팬데믹 시대에 이런 책이 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오늘날 과학이 발전해서 과거와 전통에서 해결책을 찾는다기보다는 결국 과학 외적ㅇ로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협심해서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의 유대 관계를 회복하고 아픈 백성들을 어루만졌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에 의의가 있을 수 있다고 하겠다.
책은 크게 10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사 속 전염병이 어떤 의미로 우리 선조들에게 다가왔는지를 먼저 들여다본다. 특히 양아록에 남아있는 이문건의 기록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히 들여다보고 있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크게보면 객관적인 국가 역사 기록인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비롯해서 오늘날 전해지는 수 많은 개인문집과 일기를 통해 그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문건은 성주이씨 이조년의 후손으로 명문가였음에도 조광조의 사화에 연루되어 관직생활에서 큰 광영을 보지 못한 탓에 은거하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특히 후손이 귀해서 아들이 모두 부모보다 먼저 갔고, 유일하게 남은 아들 한 명도 장애가 있었고, 손자도 귀했기에 조선시대 사대부임에도 불구하고 시시콜콜한 기록으로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는 손자가 커가는 기록을 남겨놓는 애착을 보여준다. 전염병은 지금도 사실 무서운데 의료 기술과 진료 체계가 현대적이지 않은 과거에는 정말로 무서울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역사속에서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약 2천여 건의 전염병의 흔적이 있다. 같은 시기, 다른 지역 등의 복수의 기록을 제하더라도 엄청난 건수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역병을 나타내는 용어는 여역, 두역, 학질, 홍역, 악병, 염병, 온역, 호열자 등 60여 종 이상 기록이 되어 있다. 사실 조선은 건국부터 위화도 회군의 4불가론에서 '전염병의 유행'이었을 정도로 당시에는 역사를 바꿀만한 큰 사건이었다. 백성들이 전염병을 전쟁보다 더 무서워했다는 것은 <현종실록>의 기록에서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다.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였는데 삼남이 더욱 심하였다. 그리고 물에 빠지고 불에 타서 죽고 범에 물려 죽은자도 많았다. 늙은이들 말로는 이런 상황은 태어난 뒤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서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 더하다고 하였다. 임란 이후 70여 년이 지난 기록이라 노인들은 기억을 할 수도 있는 인물들이 남아있어서 그 비교가 가능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기본적으로 격리가 우선이었다.
2부는 전염병에 맞섰던 의료기관으로 내의원과 혜민서, 활인서 등 조선 전기 부터 후기까지 국가가 운영한 의료기관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조선 최초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조선 시대 의술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인 동의보감 허준이나 마의 등을 보면 의원들이 선망한 부서가 바로 내의원이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전담 병원이거나 또는 대통령과 고위직 전담 의료기관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드라마속에서 청포나 녹포를 입고 고되게 전염병과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역할로 많이 나오는 혜민서 등이 나온다. 지방은 주로 사적인 의원 등의 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심한 경우는 나라에서 도체찰사 등 임시로 국가적 재난을 처리할 인원을 내려보내고는 하였다.
3부는 의녀의 대명사로 유명한 대장금으로 기억되는 의녀들의 활동이다. 요즘으로 치면 내의원이나 혜민서의 의원이 의사 정도라 할 수 있고 의녀는 간호사 정도의 역할로 볼 수 있겠다. 물론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의녀 제도의 시작과 체계적이었던 의녀 교육과 시스템, 의녀의 전문 분야와 활동 및 유명한 의녀인 귀금, 애종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의학의 발전이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양반가는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의서를 읽었고, 의학적 소양을 지닌 사대부 여인들이 가정의학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적절한 사료의 인용, 시각 자료 등을 보여주면서 읽는 재미를 주고, 그 모습을 잘 보여줘서 읽으면서 역사를 알아가는, 공부하게 만드는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4부~6부는 우리가 조선의 의학 기술 하면 생각나는 3명의 대 위인에 대한 이야기다. <동의보감>의 허준은 너무나 유명한 전설적인 어의로 일컬어지는 인물이기에 더 말할 필요없겠다. 선조~광해군 시대 본격 활약한 허준은 임진왜란 전부터 국가적 사업의 의서편찬에 매달려서 처음에는 내의원에서 실력있는 의관들과 분업체계속에 의서를 편찬했다. 그러다가 전란이 터지고 결국 혼자서 그 대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동의보감>의 구성과 우리 한국 실정에 맞는 제대로 된 의서를 갖췄다는 것에서 우리의 역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소중한 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허준 하면 그 스승 유이태(유의태라고도 한다)를 해부해서 오장육부를 훤하게 들여다 봐서 신의에 가까운 의원이 됐다고 하는데 이는 후시대 유명한 의관과 섞인 이야기로 허구라는 것이 거의 통설에 가깝다.
정약용의 <마과회통>을 통해서 삼미로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서 흉터가 남은 양반이 유배생활동안 백성에게 도움되는 의서 마과회통을 짓는 과정이 나온다. 당시 조선은 정조부터 의술에 심취했고 일가견이 있었고, 많은 양반들이 유의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팔방미인이라 할 수 있는 정약용 역시 기본 의학 지식에 유배생활의 고달픔과 남는 시간을 통해 <마과회통>의 의서를 남기게 된다.
6부는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이다. 흔히 우두법으로 잘 알려진 종두법을 보급해서 당시까지는 무서운 질병으로 어린아이 사망률을 높인 천연두를 막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중인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후에 공로를 인정받아 형조참의, 동래부사 등을 지내고 갑오개혁 이후 의학교 초대 교장으로까지 임명되어 우리나라 근대 의학기술 발달에 이바지한다.
7부~9부는 조선에서 크게 유행하고 무서웠던 질병은 직은 마마 홍역과 천연두, 19세기 조선을 휩쓴 질병인 콜레라에 대해서 나온다. 특히 19세기 조선에 유입되어 원래 이름은 호열랄을 잘못 번역해 호열자라 불린 콜레라는 조선 후기 민란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파괴력을 보여준 전염병이었다. 호랑이가 몸을 찢는 것처럼 아픈 것으로 알려진 병이기도 했다. 마지막 10부는 시기별 전염병의 유행을 돌아본다. 또한 우리말에 많이 남아있는 학을 떼다의 그 학질과 염병한다의 염병 등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결국 우리의 의식을 반영하는 언어에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을까. 특히 조선시대 흔한 질병은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과 잘 씻지 못하는 어려움(서양이나 동양이나 상하수도의 보급이 많은 질병을 자연스레 해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복의 통풍성 등의 문제로 종기는 흔한 질병이었다. 특히 종기는 많은 왕들을 괴로움에 떨게 만든 질병이었다. 종기가 직접적 원인이 되어 승하한 왕만 해도 문종, 성종, 효종, 현종, 그리고 정조까지 5명이나 된다. 또한 종기로 고생한 태종, 세종, 세조, 중종, 숙종 등은 이 종기로 인해 정사를 돌보지 못한 적이 많고 온천 등으로 휴양을 갈 정도였다. 심지어 갑작스런 종기의 악화로 왕이 급사하면서 역사를 바꿨다고 할 수 있다.
<향약집성방>, <동의보감>, <마과회통> 등 조선시대 대표적 의서의 편찬 계기를 돌아보고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등 관찬 역사서와 <양아록>, <미암일기>, <히향견문혹> 등 개인적인 삶이 묻어 있는 다양한 일기와 문집 등을 통해 우리 역사 곳곳에 흔적이 남은 전염병의 역사를 들여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통찰력과 혜안, 준비하는 자세 등을 배울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신 교수님 책이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많이 나오는데 다른 책보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오탈자가 많다. 정종을 정조라 하거나 심지어 인용서인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등을 잘못 쓴 것이 많은데 책을 출간하기에 앞서 꼼꼼한 교정이 필요하다. 교정이 잘못 된 책을 보면 처음 한 두번은 이해하다가도 너무 잦으면 실망감이 들거나 책에 신뢰성을 의심하게 되는데, 매일경제신문사에 나온 책이 유달리 오탈자가 많은 편이다.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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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또 다시 신박한 책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펜데믹은 있었다.. 백성들은 크고 작은 전염병을 극복하며 끈질기게 삶을 이어왔다.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떤 전염병들이 유행했을까
“코로나19의 유행은 역사를 전공하는 필자에게는 전염병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고, 학질, 홍역, 천연두에 대한 몇 편의 칼럼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연대기 자료는 물론이고 개인의 일기나 문집 등에 조선시대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염병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 또한 사회적 격리, 의학적인 방법의 동원, 의료인 양성, 전염병 발생 지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 등 현재의 모습과도 유사하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 ‘들어가는 말’에서
신 교수는 《향약집성방》, 《동의보감》, 《마과회통》 등 조선시대 의서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사서, 《양아록》, 《미암일기》, 《이향견문록》 등 개인이 남긴 일기와 문집에서 전염병의 흔적을 촘촘하게 살핀다.
책은 10부로 구성됐다. 1부 ‘조선시대에 전염병은 무엇이었을까’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이문건의 육아일기 《양아록》 등 기록에서 역사 속 전염병에 대해 알아본다. 2부 ‘전염병에 맞섰던 의료기관’에서는 왕실 직속 내의원, 백성을 위한 혜민서, 전염병을 전담한 활인서, 조선 최초 근대식 병원 제중원 등 전염병에 맞섰던 의료기관들에 대해 들려준다. 3부 ‘의녀들의 활동’은 의녀 제도와 교육, 대장금·장덕 등 조선 시대 의녀들의 활약상을 담았다.
4부 ‘허준과 《동의보감》’, 5부 ‘정약용과 《마과회통》’과 6부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에서 허준, 다산, 지석영 등 당대 지식인들이 백성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펼쳤는지 살펴본다.
7부 ‘작은 마마, 홍역’, 8부 ‘조선 후기 최대의 전염병, 천연두’와 9부 ‘19세기 조선을 휩쓴 전염병, 콜레라’에서 조선 후기 대유행한 홍역, 천연두와 콜레라가 어떠했는지 들여다본다. 마지막 10부 ‘시기별 전염병의 유행’에서 악병, 학질, 온역, 종기 등 조선시대 백성들을 괴롭혔던 여러 전염병에 대해 정리한다.
전염병은 오래전부터 널리 유행하는 병이라는 의미의 역(疫과)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의 여(○)로, 역려·역질·여역 등으로 불렸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귀신의 조화로 여겨 의학에 의존하기 보다 제사를 지내고 굿을 통해 원통하게 죽은 귀신을 달래기도 했다.
조선 왕조와 지식인들은전염병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여러 의서를 편찬했다. 가령 《향약집성방》은 우리 산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약재를 활용한 치료법을 수집했고, 《침경요결》은 구하기 어려운 약제보다 침/뜸을 이용해 손쉽게 치료하도록 했다.
특히 정약용의 《마과회통》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마과회통(麻科會通)’은 마과(麻科), 즉 마진(痲疹, 홍역) 계통의 병과 그 치료법을 모두 모아(會) 잘 통(通)하도록 정리했다는 뜻이다.
자신도 천연두를 앓았고 슬하 6남 3녀 중 4남 2녀를 홍역과 같은 전염병으로 잃었다. 1802 막내 아들 농아를 잃었을 때 쓴 <농아의 광지>에는 “죽은 애들이 산 애들의 두 배다. 아아,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잔혹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할 것인가”라고 탄식했다.
1797년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의 부사로 나갔다. 당시 전염병이 유행하여 백성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본 다산은 의학서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에 홍역을 이해하고 이겨내기 위한 《마과회통》의 저술에 착수, 1798년 8편 6권 3책으로 완성했다. 《마과회통》은 당대 지식인 사이에서 지대한 학문적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홍석주는 1802년 《마과회통》을 그대로 베끼고 일부 권차를 바꾸어 《마방통휘》를 펴냈다.
한편 다산은 어린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어머니의 나쁜 기운을 물려받아서 마진에 걸린다는 태독설을 비판했고, 그만큼 운기에 의존하는 운기설의 실체 또한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당시 의사들은 홍역 치료에 무관심했다. 백성들은 귀신의 원한으로 집안에 역병이 든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별신굿을 치르기 십상이었다. 의사들은 마마귀신을 거슬려서는 안 된다는 풍속 때문에 특히 치료를 꺼렸다.
다산은 백성을 위한 일념으로 당대 홍역에 관한 지식과 의술을 정리하는 한편, 비과학적인 인식에 대해선 과감히 물리치는 단호함을 보였다. 과연 학자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
이외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한양에 전염병이 발생하면 환자는 어떻게 다루었는지, 허준이 《동의보감》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의녀들은 어떻게 교육받았는지 등등 읽을거리가 빼곡하다.
그간 조선시대 역병들, 가령 천연두, 콜레라(호열자) 그리고 동의보감 등에 대해선 신동원 교수가 쓴 역사책이 있었다. 신병주 교수의 신간은 앞 책의 최신 확장판이라고 보면 어떨까.
바야흐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 1개월만에 전면 해제됐다. 언제 다시 새로운 팬데믹이 우리에게 불어닥칠지 모른다. 우리는 과거 선조들이 전염병을 극복한 역사를 되돌아보매 새로운 팬데믹을 이겨낼 통찰과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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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는 꽤 지났으나 리뷰가 늦어진 것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코로나19 국면 속에서 이 책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꽤 길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역사 도서는 보통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그 시간대 하나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곤 하는데요. 이번에 읽은 <우리 역사 속 전염병(신병주 저)>은 조선왕조 500년간의 전염병 기록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병을 인식하였고 어떻게 치료하고자 했는지, 전염병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사극이나 역사적 사료에서 전면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정말 끊임없이 병의 기록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어떻게 보면 우리 역사는 ‘전염병과의 사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 <우리 역사 속 전염병>에서 배운 것은.. 1. 조선시대부터 강조된 보편적 의료 복지의 중요성! 현대 대한민국의 질병 및 전염병을 책임지는, 특히 코로나19 상황 속 확산 방지 최전선 역할을 하는 질병관리청처럼 조선시대에도 혜민서(재생서)와 활인서라는 기관이 있었는데요. 철저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도 백성을 구환하기 위한 전문 의료 기관이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오늘날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들의 전신이 혜민서-활인서의 뜻을 이은 제중원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코로나19 예방 및 치료 행위는 결국 과거부터 강조되어온 보편적 의료 복지라고 볼 수 있겠네요.
2. 예나 지금이나 의료는 전문가의 일!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일인 만큼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의료 분야 종사자는 최고의 전문직으로 손꼽히는데요. 과거 조선시대에서도 약을 짓고 처방을 내리는 의원(의관)의 역할은 신분이 중인이었을 뿐 별도의 시험을 통해 선발된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과거에도 의료 분야는 전문성을 가장 중요시했다는 것이겠죠
3. 기록은 생명이다! 전염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록의 필요성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 당대의 많은 인물들은 전염병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의서 편찬은 국가적 사업으로 여겨졌고, 그 결과 그 기록이 현대까지 이어지게 되었지요. 과거 어떤 전염병이 돌았고, 어떻게 치료했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를 기록한 사료는 당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통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주었던 기록 덕분이지요.
# 이 책의 좋은 점은.. 한 줄의 기록으로 남은 ‘의녀’를 조명하는 챕터!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의녀 역시 단순히 남자 의관의 일을 보조하는 데에 그친 게 아닌, 한 명 한 명이 굉장히 체계적인 교육, 관리를 받고 침/맥/뜸/약 등 종사하는 전문 분야도 다를 정도로 전문적인 직종이었다고 해요. 의녀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 공부를 할 때도 자세히 접하지 못한 내용이라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사실은 옛 사람들이 처음 맞닥뜨린 전염병과 치료 방법을 알지 못해 미신적인 행위-기도나 굿 등-에 의존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운 좋게 여러 조건이 맞아 병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많은 희생자를 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니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질병은 비약적으로 발달한 의과학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미지의 전염병을 맞닥뜨리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두려운 일이지만, 선조들이 남긴 의지와 지혜를 통해 우리는 이 위기를 잘 헤쳐 나가고 있으며,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껏 역사가 보여준 것 처럼요.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모두가 안전하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해 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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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 전염병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신병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매뉴얼의 힘, 조선 왕실 의궤’, ‘조선시대의 전염병과 리더십’, ‘연산군과 광해군’ 편에 출연했다. 현재 KBS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왕비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왕으로 산다는 것》,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56개의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조선 왕실의 보물, 의궤》, 《조선평전》,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어느덧 만 2년이 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독히도 힘든 시간을 보내오면서 혼돈 속에서 희망을 붙들고자 여러 형태로 많은 애를 썼다.
팬데믹을 겪게 되면서 질병에 대한 위협과 공포, 이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보면서 인류의 절멸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끊이질 않는다.
환경이 주는 폐쇄감으로 인해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고 재앙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람과의 대면 관계가 더 어려워지고 마음은 각박해져 가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옛날 역병이 창궐하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더듬어 살펴보며 지금의 팬데믹 상황과도 비교해보고 싶어 책장을 펼쳤다.
1707년에 이어 1708년에도 홍역이 조선 내에서 유행했고 특히 호남 지역에서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양이나 평안도 지역의 홍역이 확산되어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파되어 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홍역과 염병을 구분하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데, 염병은 장티푸스일 가능성이 높다. 3월 3일의 기록에는 "한양과 지방을 통틀어 홍역, 어역으로 죽은 자가 거의 수만 명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보인다. 전국적으로 홍역이 전파되어 이에 따른 사망자도 수만 명에 이른 것이다. p223
조선 후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홍역.
이 주된 요인이 한양의 인구 증가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한중록>에도 사도세자가 이로 고생한 사례가 있었고, <숙종실록>에는 왕자의 홍역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다.
<영조왕조실록>에는 홍진이 두루 번져 한양이나 지방에 앓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조 대에 홍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대유행하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또한 홍역의 회복 주기가 12~15일이라는 걸 인원왕후와 경종이 회복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에는 조선을 가장 위협한 전염병이 홍역이었다.
오늘날 코로나19 예방 및 치료 수칙처럼 정조 대에도 홍역이 유행하였는데 이 때 의약을 관장하는 관청에서 홍진을 치료할 절목을 만들어 올린다.
현종, 숙종, 영조에 이르는 왕실도 피해갈 수 없었던 전염병의 치명적이고 참혹한 일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때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죽는 자가 잇달았는데, 천연두와 홍역으로 죽은 자가 더욱 많았다. 서울의 5부에서 보고한 사망자가 900며 명이었는데, 실제로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죽었다.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가지고 가서 구원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p276
두창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감염병 천연두.
발진과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 조선전기부터 시작된 것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알 수 있다.
태종을 시작으로 세종도 아들을 천연두로 잃게 되는 비극을 겪는다.
천연두의 유행이 병자호란의 종식에 큰 변수가 되기도 했다.
조선 침략 시 천염두의 위험성을 고려하는 점에서 보았을 때 충분히 그런 수 있다는 것이 <청태종실록>에서 청나라에도 천연두가 전파된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본격적인 유행은 조선 후기였는데 현종 대는 유독 질병과 기근이 극심했다.
조선 전국에 천연두, 홍역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 위력은 조선 왕실도 피할 수 없었다.
이 무서운 전염병은 당시 공포의 대상이으나 정약용의 선구적 연구에 이어 지석영에 의해 종두법이 보급되어 극복할 수 있었다.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비슷하게 닮아있는 전염병으로 인한 혼란한 시국의 모습들을 되짚어보며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전염병을 다루고 있는 이 책 안에서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길 희망하며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지금의 팬데믹도 잘 극복할 수 있길 소망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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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비난이 강렬했다. 개개인의 일탈을 왜 온 사회가 나서서 책임져야 하는지를 묻고 타박했다. 실체 없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한 이조차도 이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대개가 면역력이 약하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였지만, 예방을 위한 백신이 도리어 생명을 앗아갔다는 이야기고 들려왔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 중엔 나의 가족도 있었으므로, 난 이 문제를 무의미한 소모전이나 지나간 과거로 치부할 자신이 없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이 흐릿해지더라도 ‘그땐 그랬지’라며 가벼이 웃어 넘기진 못하지 싶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전염병도 역사의 법칙에 얽매인 무언가였다. 저자는 인류가 기록한 역사를 파헤쳐가며 전염병의 흔적을 되짚었다. 과거에 문자는 이른바 지배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문자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 문자에 의해 기록된 이 모두가 권력자였다. 자연스레 이 책의 초점은 사회의 최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왕실에 맞추어지게 됐다. 특히 조선은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찬찬히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에는 영광의 순간 못지 않게 많은 과오도 포함됐다. 과연 왕실이 전염병과 어떠한 관계(?)를 맺었을지. 현대적인 의학은 기대할 수 없었다. 지금과는 형태가 다를 터이나 의술을 익히고 행하는 이들이 존재하긴 했다. 그들의 신분은 높지가 않았다. 일부는 중인이었고, 그보다도 더 아래에 해당하는 이들도 있었다. 신분 고하만을 놓고 보자면 그들을 사회는 푸대접했을 거 같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배제하자니 과연 왕실이 굴러 갔을지 미심쩍을 만큼 이 집단은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어마어마한 인기 반열에 오른 인물 중 하나가 대장금이다. 마냥 가상의 인물 같았으나 장금에 얽힌 많은 일화가 역사 속에 등장했다. ‘대’는 장금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인 일종의 접두사와도 같았다. 장금을 비롯한 의녀들은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맥의녀, 침의녀, 뜸의녀, 약의녀 등 자신의 전문 분야가 확실했다. 그들은 파견 의료진이었으며 수행원이기도 하였다. 확실한 인수인계는 필수였으나 자신이 익힌 의술을 후대에 전수하는 일을 소홀히 한 경우도 있었다. 왕실 식구들의 안녕 여부에 따라 의료진의 안위도 결정됐다. 왕이 승하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의료진에게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당연했다. 역시나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허준’ 또한 그러한 일을 겪었다. 모난 돌이 정 맞은 대표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부필녀는 모두 이름 없이 사라지던 때이므로 차라리 이 편이 나은가 싶기도 했다. 허준과 그의 스승에 관한 사례들의 사실 여부를 따져 묻는 부분이 있어 흥미로웠다. 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는 일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개개인의 공을 언급한 부분도 물론 재미있었으나, 유독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아무리 의학이 미천한 수준이었다고 하여도 이토록 많은 전염병이 국토를 휩쓸고 가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지금이야 예방접종 한두 방으로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나 당시로서는 병의 원인조차 알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으로 휘청이던 나라가 그나마 허리를 펴고 살만했을 시기마저도 전염병이 숱하게 찾아왔다. 천연두로 왕비와 어머니를 잃었으며 자신 또한 사경을 헤매다시피 한 숙종의 삶은 왠지 안쓰러웠다. 실학의 대가였던 정약용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가 상에 내놓은 마과회통’은 개인적인 아픔을 승화시킨 결과물이라 칭할 법했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전염병의 역사도 이어질 것임을 알고 있어서인지, 저자는 책의 어디에도 ‘종식’이란 단어를 사용치 않았다. 병에 걸린 이들을 격리하고, 손씻기 등 위생 관리에 철저를 기하는 등 오늘날 전염병 관리의 기본이라 할 법한 많은 방법들이 조선 시대에도 행해졌다는 사실이 주는 느낌이 매우 묘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던데, 다음에는 또 무엇이 찾아올까. 홍역, 천연두, 콜레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이 귓가에 울리는 듯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