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 다시 말해 도덕적 진리라 부르는 것에서부터 일상 속에서 행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올바름이라는 믿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자기 신념에 대해 어떤 보편적이고 이성적 기준에 의해 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인식 주체로서 본질, 또는 보편성이라는 것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전제와, 이를 논리적 추론이라는 이성을 통해 타당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구 유럽 사회의 뿌리 깊은 철학적 사유, 즉 ‘이성-논리’에 입각한 비판적 사고는 편견 없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신념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서유럽 사상의 이러한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이 로댕(Rodin)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회 공동체와는 무관하게 홀로 고독하게 독립된 개인의 논리적 추론, 관념적 사유 행위를 통해 진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과연 이 사유가 도달한 최종적 선택이 보편적 진실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이러한 지배적인 지식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통적인 비판적 사고’란 어떤 논증을 비판하고 정당성을 제시하고 무엇이 좋은 추론인지 혹은 옳은 답변인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이성-논리 중심의 사고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이 주류 세계의 비판적 사고 모델은 각 개인을 인식론적 주체로 설명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면 알고 있는 것이 기억에서 나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근거 없는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결코 올바른 앎, 보편적 진실이란 것은 독자적 개인의 관조, 논리적 추론이라는 도구만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지식이 우리 일상과 분리되어 그 자체로 별스럽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바라 세이어-베이컨’은 지식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서구 유럽의 재력 있는 백인 남성들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은 바로 이렇듯 역사적으로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한 진리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깨어나 진리에 대한 인식 방법들을 이성-논리라는 도구 뿐 아니라 직관, 감정, 상상 등을 병렬적으로 인식하는 ‘건설적 사고’로 전환키 위해 전통적인 ‘비판적 사고’가 지니는 우려 지점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하여 현대 실용주의 및 비판 철학, 젠더, 차이, 해체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주의 철학을 통해 독단적 인식 주체로부터 탈피하여, 목소리의 통합, 자아의 재발견, 개인적 지식과 전문적 지식의 통합을 시도하는 사회적 관계 내의 인간으로서 앎을 구축하는 건설적 사고 이론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미덕’이 무엇인가 고민하자는 소크라테스의 제안에 메논이 한 질문이다. 미덕이 무엇인지 자신은 모른다고 주장한 소크라테스의 선언에 대한 모순의 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모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이 독단적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대화>편을 쓴 플라톤이 인간에게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기초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즉 영혼불멸의 지식이 실재하기에 그 정보를 퍼 올리기만 하는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다. 인식 주체가 타인과 관계를 지닌 사회적 존재임을 무시한 독자적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지식이란 인간 영혼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발상이다. 이것이 오늘의 비판적 사고의 뿌리이다.
아마 <대화>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가 타인이 논리에 맞설 기회를 박탈한 채 진행하는 자기 논리의 선택만이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배타적 양자택일의 논리주의라는 이분법적 관점, 이와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라는 언어학적 논리 형식 또한 권위에 의존한 보편적 본질의 개인 내부 탐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인간을 다양한 관계 속에 있는 존재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인간의 오류 가능성이나 한계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지식은 일상과 분리되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물음을 제기한다. 우리가 세계를 보아 아는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정말 그 대상의 실재인가라는 의문이다. 칸트,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실재를 알 수 없다고 하며 표상과 실재의 간극을 말하였다. 즉 칸트의 물자체나,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진실은 현상의 세계와 다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책의 저자인 ‘세이어-베이컨’은 “인간의 의식 밖에 분리되어 존재하는 실재에 대한 견해를 옹호하지 않는(334쪽)” 실용주의자임을 선언한다.
관념과 사물, 의식과 현실, 주체와 객체 사이에 신뢰할만한 연관성이 없는 ‘관념의 베일’에 갇힌 완전한 주관주의를 지양(止揚)하고, “개념은 생동적 삶과 관련되어 상상 가능한 것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이는 일련의 과정(94쪽)”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써 현실의 관점에 의지하고, 인간 행동의 기능으로써 진리의 관점에 의지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측면 탓에 실용주의는 상대주의로 진리에 무심함이라 비난되곤 하지만, 퍼스, 제임스, 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이를 반박한다. “진리란 실제 상황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관계일 뿐(104쪽)”이라는 주장처럼 반박 불가능한 불변의 절대적 진리란 것은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란 무엇이 우리를 이끄는 방법으로 적절한지, 무엇이 경험적 요구의 집합과 결합하여 어느 것도 빠지지 않는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지 개연성을 점검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절대주의의 관점은 오류 가능성과 과학적 우월성, 인식론적 주관주의와 같은 독단적이고 배타적이며 차별적인 것이라 비판한다. 아마 ‘퍼스(Peirce)’의 데카르트 보편적 회의론 비판은 주관주의적 절대주의, 즉 비판적 사고에 대한 유효한 반박이 될 것이다. 회의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의심할 무엇인가를 상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선 믿음을 전제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이미 믿음이 전제된 것을 회의하는 이 같은 모순의 관념론은 결국 자아와 세계에 대한 논의를 신에 의지하는 것, 혹은 불가지로 끝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설적 사고’의 추구라는 사회적 관계를 지닌 다양한 인간의 지식을 토대로 하는 지식은 ‘진리’라는 개념어 대신에 ‘보증된 주장 가능성’이라는 잠재성을 염두에 둔 용어를 주장한다. “특정 탐구에 대한 모든 특정 결론들이 지속적으로 재 논의되도록 함으로써, 그것이 연구의 대상이 되는 분야의 일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자기수정적 절차를 통해서야만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주장은 잠정적이며 수정 가능해야 할 것이고, 진리에 대한 모든 주장 또한 ‘보증된 주장 가능성’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식의 이러한 유동적이고 유연하며 적응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관점에 동의한다. 오늘의 비판적 사고란 학문적 공동체, 전문가로 구성된 교육받은 엘리트 공동체의 이성적 탐구만이 진실추구 담론 세계를 지배하는 배타성이 무수한 목소리들의 통합을 간과하여 상호 의존적 민주적 공동체의 의지를 반영치 못하는 인식형태를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늘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적 극한 갈등과 혐오는 다양한 관점들을 면밀히 검토하도록 장려하거나 자신의 논점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는 한국식 교육의 조잡함 때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무오류의 절대적 독단론이 판치는 아집의 인간들만이 양육되는 이 땅의 현실은 반성적 사고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인간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랄 수 있다.
교육 철학자 ‘폴’이 지적하듯이 “지적 겸손, 판단의 보류, 지적 용기와 선의, 성실성, 지적 인내. 자신감 신장(135쪽)”은 반성적 사고를 위해 갖추어야 할 기질이자 덕목이다. 우리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며 보수적이고 비이성적이다. 따라서 반성적 사고라는 ‘어려움을 느끼거나 당혹스럽거나 의심을 품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행동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지적한 시스템 2의 뇌를 작동시키는, 즉 노력이 요구되는 사유 작업을 많은 인간이 알지 못한다. 진리는 저절로 논리 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사람들의 무수한 관점과 필요, 추구하는 맥락을 바탕으로 상황을 이해하려는 능동적인 노력으로부터 발견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비판 사고를 건설적 사고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는 이 책의 논지가 실용주의적, 제한적 상대주의적이며, 관계적 인식론, 감정과 배려, 직관이라는 다양한 사고의 도구를 말하는 것은 이성적 추론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독립된 개인들에 초점을 맞춘 비판적 사고의 한계와 오류가능성을 직시하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사회 공동체에 의해 ‘내재되고 체화된 사회적 존재’임을 벗어날 수 없다.
건설적 사고 이론은 앎의 주체를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지식을 구축하는 내재되고 체화된 사회적 존재로 상정한다. 우리의 지식은 사회적 교류와 이성은 물론 직관, 감정, 상상 등 다양한 앎의 도구를 통해 구축되는 것이다. 독립 주체의 주관적 지식, 이 배타적인 비판 사고는 너무도 많은 견해들을 배제시키고 소외시킨다. 정신의 우월성을 신봉하는 논리적 이성에 대한 독단적 믿음은 권위를 토대로 한다. 이것은 타자에게 강요하는 힘으로 발현되곤 한다. 여기에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한 배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재되고 체화된 존재인 인간의 추론 능력에 의해서 보증된 것들이 전지전능한 진리라는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권위에 의해 무언가를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잘못될 가능성이 치솟는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젠더와 차이, 해체 이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성주의적 관점 또한 건설적 사고의 도구들인 직관, 감정, 상상, 배려 등의 지식 참여에 대한 당위성을 입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일례로 정신분석학자인 여성주의 언어철학자인 ‘이리가레이(Iragaray. L.)’ 의 “여성이 됨으로써 스스로 담론의 객체로 종속시키는 것, 남성은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이들 대상에 반동함으로써 남성 자신을 공고히 해왔다는” 주장이나, 리치(Rich. A.), 버틀러(Butler. J.), 해러웨이 등 젠더 해체주의자들의 “남녀의 젠더 성향을 이성애로 규정하는 것을 의심하거나 비판하지 않음을 비판(238쪽)”하는 것은 이 세계의 주류 담론이 주장하는 주체 개념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배제되고 타자화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에 대한 방법적 주체의 요구라 할 수 있다.
사실 해러웨이의 젠더 해체를 위한 사이보그를 활용한 성별화 착시에 대한 비판은 실용주의적 현실에 입각할 때 저자의 옹호에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교육철학자 보르도(Bordo)의 지적처럼 실제 우리의 현실적 사회에서 젠더는 특수성과 위상을 지닌 필요한 범주라 할 수 있다. 해러웨이의 포스트모던적 몸의 형상에 대한 책임 거부는 우리의 신체를 더 이상 몸으로 여기기 어렵게 한다. 경계의 완화를 강조하는 ‘형상변형체’ 관점은 분명 젠더의 “위상을 불분명하게 하고 제한적이고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며, 인간의 역사를 통해 자연적으로 부여받은 인격을 항상 모호하게 만든다.(245쪽)”고 비판 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항상 어딘가에 위치하고 제약을 받는 존재이지 않은가
‘왜 성별의 축(軸)만을 해체하려 드는가?(Bordo)’ 비판에 있어서 항상 선택적 입장을 취하는 여성주의 관점의 비판은 인종과 계급과 관련한 논의를 담론세계에서 지워버려 세계의 무수한 제약들을 배제시키려는 독단이자 폭력이라 의심받기도 한다. 만약 인간 경험의 극단적 변이들을 충분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관점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거의 모든 사회 비판이 방법론적으로 부정하고, 관념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혐의가 있다고 말해야만 한다. 이것은 젠더를 해체하여 여성 혐오의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비판적 사고의 비판을 위해 다시금 차별의 폭력을 주장하는 것으로 오인될 이유가 될 수 있다.
물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인종과 계급의 배제라는 차별을 지적한 로데(Lorde)의 “기득권의 도구는 결코 기득권의 집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 그들은 결코 진정한 변화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지만 다르게 인식되는 우리 인간들의 표상에 대한 관대한 포용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우리가 기준 또는 지식이라 여기는 것들은 오류 가능성을 항시 내재하며 제한적이고 맥락의 영향을 믿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남성 중심의 이성-논리에 의한 전통적인 비판적 사고의 오류 가능성과 한계를 넘어 이것의 편향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교육 심리학적, 여성주의적 비판 이론들을 넘나들며 자기성찰과 자기비판, 그리고 타인의 관념과 견해를 수용할 수 있는 건설적 사고의 구축을 위한 빼어난 관계적 인식론에 대한 제언인 이 저술은 이성뿐 아니라 상상, 감정, 직관, 배려 등을 지식 형성의 당위적 도구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갈수록 나만이 진리라고 하는 편협함에 기초한 혐오와 갈등의 세계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고루하며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관계 및 의사소통 기술, 직관과 감정에 전념하는 능력, 상상력의 발달과 추론 능력을 포괄하는 건설적 사고로 전환해야 할 터이다.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양식들과 공통점을 인식할 수 있는 주의력과 능력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체제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획일적인 정답 맞추기식 교육에서 타자와 공감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인지 능력의 확장을 위한 교육처럼 사고방식의 형성, 즉 마음 습관을 형성하는 사고의 장(場)으로서 변화하는 것이다. 건설적 사고는 담론의 세계에서 소외된 인간들을 비롯해 진리의 도구에서 배제된 감정과 직관, 상상까지 확장한 반성적, 비판적 사고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현학적인 사유 도구의 확장을 위한 이론의 장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지식의 인식 주체로서 요구되는 자질, 즉 내적 모순과 모호함에 대한 관대함과 타자에 대한 애정과 공감의 관심이라는 능력을 요구하는 실천적 사유의 제언이다. 타인을 수용하고 자신을 비판한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럽고 힘겨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각자의 다름에 대한 이해와 그에 요구되는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안정적인 자아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 우린 끊임없이 타자와 교류,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퀼팅비(quilting bee)의 은유를 통해 공동체라는 관계적 인식론을 토대로 한 건설적 사고에 대한 이 위대한 저술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결단코 필요한 앎에 대한 방법론적 모델이 되어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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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바바라 J. 세이어 베이컨이라는 미국의 대학에서 교육철학과 교수를 지낸 분이다. 역시나 익숙치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용어나 학자이름도 낯설어서 검색해가며 읽자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해도 부족하고 곡해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전문 학술서가 아닌 사회과학 대중서로 출판된 만큼 일반인이 보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리뷰를 남겨본다.
비판적 사고는 서구 유럽 사회에서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그들의 이론을 추론하고 논쟁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해 의존하던 사고의 방식이다 본문 p.27
서구 유럽 사회에서 공정성과 진리는 합리성과 동일시되어 왔으며, 철학이나 수학과 같이 가장 높은 차원의 이성은 직접적인 경험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인 것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 나는 지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서구 유럽 사회에서 과학과 수학과 같은 학문이 갖는 높은 지위에 대조하기 위해 퀼팅비 은유를 사용한다. 본문 p.45
본론에 앞서 저자는 이성, 논리를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가 유럽사회의 주된 인식론이었다고 지적하며 대안으로 퀼팅비로 은유되는 건설적 사고를 제시한다.
본론 Ⅰ부 비판적 사고에 대한 남성주의적 관점 Ⅱ부 여성주의적 관점 구축 Ⅲ부 여성주의적 재조명: 건설적 사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많은 철학자들이 보편적 기준에 대한 환상을 언급하지만, 사실 우리는 단 한번도 보편적 기준을 가져 본 적이 없다. ..... 모든 사람들은 특정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 내재한다. ..... 전통적으로 정의된 비판적 사고는 공존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조와 합의를 통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문 p.87~89
Ⅰ부에서는 이원론적 인식론의 한계를 보이는 서구 유럽 철학을 비판한다. 플라톤 이후 유럽 철학은 지식을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 파악하지 않았다. 유럽 철학자들이 가정해온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이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상징된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은 사회적 진공상태의 백인 남성(책에서는 부유한 그리스 남자라고 소개한다)이다. 성차별적, 엘리트주의적, 계급주의적이다.
길리건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여성들이 책임과 배려의 관점으로 자신들의 도덕성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남성들이 권리와 규칙을 중심으로 도덕성을 발전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길리건은 도덕성에 대한 이 두 가지 관점이 위계적이거나 대조적이기보다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때문에 그는 정의와 배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도덕적 추론과 판단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추구하고자 했다. 본문 p.177
Ⅱ부에서는 기존의 편협한 인식론에서 벗어나려면 다원주의, 특히 여성주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임과 배려, 권리와 규칙은 관점의 차이일 뿐인데, 기존의 비판적 사고는 배려는 여성적, 권리는 남성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차이를 차별로 만들었다. 이 문제는 인종, 민족, 계급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저자는 퀼팅비의 은유를 통해 이러한 부당한 차이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판적 사고의 모델은 학급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의 개별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건설적 사고 모델은 그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 건설적 사고 모델은 관계적 존재론과 관계적 인식론에 기반한다. 본문 p.271
학생들은 만지고,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자료들을 활용한다. ..... 건설적 사고는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는 몸의 인식론적 역할을 인정한다. 본문 p.279
Ⅲ부에서는 비판적 사고의 대안으로 건설적 사고를 제시한다. 책에서는 건설적 사고 이론을 적용한 교육법을 소개한다. 교실에서 얌전히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수업에 익숙한 나에게 이러한 교육법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행동하며 몸으로 배우는 수업을 해야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으며, 평가도 표준화된 성취도 시험이 아닌 개인의 강점과 약점을 찾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쁜 퀼팅 그림이 있는 표지와는 다르게 내용은 쉽지 않았다. 이 분야에 과문한 탓이 가장 크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읽기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자기변명을 해본다.
첫째, 책에는 학자들의 이름이 많이 보이고 그들의 저술도 자주 언급된다. 그런데 처음 들어본 이름이 대부분이다. 도움을 받으려고 검색해봤지만 국내 포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각주로라도 설명을 해주었다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번역체 문장이 불편했다. 길고 부자연스런 번역은 어려운 책을 더 어렵게 했다.
셋째, 용어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care work’라는 단어는 국내에서 ‘돌봄 노동’이라는 말로 주로 쓰이는데, 역자는 굳이 ‘배려 행위’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긴 했지만 ‘돌봄 노동’이라는 단어에서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일’이 연상되는데 비해 ‘배려 행위’는 생산이나 노동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인 에티켓’이나 ‘미덕’처럼 느껴진다. ‘돌봄 노동’이 적당하지 않다면 그냥 ‘care work’라고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그리고 위의 문제와는 별개로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저자가 건설적 사고 이론을 적용해서 가르친 아이들은 저자의 교육법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책에는 학급 운영까지만 나오고 그 뒤의 이야기가 없다. 수업을 받을 당시 아이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시간이 흐른 후 저자의 교육법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구체적인 변화도 궁금하다.
몇 가지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더 많았다. 관계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건설적 사고를 퀼트 만들기로 표현한 것은 매우 적확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퀼팅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린 표지그림은 공동체가 어떻게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아우를 것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비판적 사고에 대해 의문을 갖고 대안을 찾고자 평생 노력한 저자의 태도다.
저자 자신은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철학, 제도가 다수의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현상을 부당하게 여겨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평생을 연구하며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애쓴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좋은 책을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신 역자 분께도 감사드린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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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비판적'이란 단어가 곧바로 빨려 들었고.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했다. 보통 사사건건 비판을 일삼으면 염세주의자나 회의론자나 불평불만 가득한 투덜이 스머프 정도로 취급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 나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 정도의 긍정 요소를 치트 키로 장착하고 살아가려 애쓰는지라 더 궁금할밖에.
저자는 인식론을 기반하여 타인과의 상호 교류를 통한 건설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데 시작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퀼팅비 은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자의 설명을 토대로 정의해 보자면, 퀼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조각보는 생각, 사고, 직관, 상상, 믿음, 목소리 등으로, 함께 작업하는 퀼터들의 다양성에서 성별, 나이, 민족, 인종, 종교, 사회적 계급 등의 비교를 통해 퀼팅은 '건설적 사고'의 지식공동체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3부에 걸쳐 비판적 사고의 전환을 위한 논의를 제시한다. 1부는 서양사에서 강력한 영향을 끼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남성 중심의 비판적 사고를 철학적 관점의 오류를 지적한다. 2부는 앞선 전통적 교육에서 배제되었던 여성 중심의 사고를 제시하며 젠더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 3부는 현대사회의 여성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함을 명확히 한다.
'미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인식을 통해 고대 사회에서의 여성의 존재에 대한 남성 관점의 질문이자 여성을 정의해 온 백인 여성주의자들의 여성에 대한 범주까지 지적한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런 고대 철학자들의 인간 본성에 대한 담론을 퀼팅비 은유와 비교하며 이견을 제시하는데 이해는 달나라 이야기고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빠져든다.
"플라톤은 인간의 육체가 지식의 원천이 아니라 지식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73쪽,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과 정신의 우월성
영혼과 육체에 대한 플라톤의 정의로 보자면, 영혼은 불멸하고 육체는 영혼에 종속된 것으로 열등하다 보았다. 또 인간의 앎(지식)은 이미 영혼은 알고 있는 것이지만 영혼이 육체와 합쳐지는 순간 육체가 지식을 송두리째 잊게 만들고 그래서 삶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기억해 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유사하게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성이 가장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이란 가정을 펼친 반면 이와 관련해 저자는 '지능을 행복에 도달하는 길로서 보는 관점은 많은 학생들을 잠재적으로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77쪽)'라며 반박한다. 얼마나 소름 돋는 정의인지, 철학이란 학문은 진심 매력적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는 빛보다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여기에 고대 철학이 제시하는 학문적 논의에서 다양성이 배제된 의견 개진은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퀼팅비 은유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협업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통해 그동안 여성은 '비이성적'으로 치부되었던 것에서 사유하는 모든 사람이 인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인식적 교육 철학이 매우 높아 완독이 쉽진 않다. 들어가는 길부터 멀고 험하달까. 장문의 추천사에 저자, 역자 서문을 지났는데 또 프롤로그라니. 논문에 가까운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본문에 닿기도 전에 지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빽빽하게 채운 활자로 가독성이 떨어져 몰입하지 못하는 게 좀 아쉬웠다. 그럼에도 책을 쉽게 덮지 않길 바란다. 이후 엄청난 철학적 사유의 맛이 기다리고 있으니.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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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는 일단 계몽이성에 기반한 객관적 사고다. 따라서, 논리적, 분석적, 합리적 사유를 중시한다. 하지만 이성과논리, 추론을 너무나 중시한 나머지, 상상, 감정, 직관 등의 주관적 영역을 상대적으로 홀시한 것은 단점이다. 비판적 사고는 또한 권력과 주류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정치적 사고다. 따라서 지배적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패러다임, 전통, 상식 등에 비판적인 의심을 품는 저항정신이 투철하다. 하지만 세계와 사회구조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세계와 구조를 변혁하는 실천적 측면을 소홀히 한 면이 있다.
좋은 사고는 언제나 질적 성장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비판적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비판적 사고의 질적 성장의 계기는 페미니즘(여성주의)과 사회적 구성주의 덕분이다. 교육철학자 바바라 세이어베이컨은 비판적 이론의 허점을 레디컬 페미니즘과 구성주의, 다문화주의를 통해 보완하고, 이를 '건설적 사고'라고 부른다. 즉, 건설적 사고는 기존의 비판적 사고의 질적 업그레이드라 하겠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저자는 건설적 사고를 직물을 짜는 공동 작업인 '퀼팅비'에 비유한다.
퀼팅비 은유에 따르면, 직물을 짜는 퀼터는 건설적 사고의 주체를 말하고, 퀼팅비는 건설적 사고를 수행하는 지식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퀼팅에 사용되는 줄자, 가위, 색실, 침핀 등의 도구처럼, 건설적 사고에 사용되는 도구로 이성, 논리, 분석은 물론 상상, 감정, 직관 등이 모두 활용된다. 그리고 공방의 관계적이며 공적인 작업은 지식 구축 과정의 사회정치적 측면과 공적인 성격을 부각시킨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사회적, 언어적, 담론적 관행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퀼팅비 공동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사회적, 언어적, 담론적 관행을 재검토하고 재평가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가 구성원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늘 지향해왔던 다원적이고 근본적인 민주주의 공동체를 꿈꿀 수 있게 된다."(330, 331쪽)
거칠게 말하면, 기존의 비판적 사고는 유럽식 구조주의 관점과 남성주의적 관점이 강하다. 다시 말해서 가부장제적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저자는 관계적 인식론과 사회적 구성주의, 그리고 레디컬 페미니즘(근본적 여성주의)을 도입해 기존의 비판적 사고를 재구성한다. 관계적 인식론은 모든 사람이 내재되고 체화된 사회적 존재라는 가정에서 시작하고, 사회적 존재의 상호적 연계성을 중시한다.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르면, 비판적 사유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주체의 사유하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스스로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행위다. 페미니즘은 개인의 목소리, 주체성, 관계적 자아, 젠더 관점을 부각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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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는 이성 중심 사고, 논리적 사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 기반 추론 등으로 여겨지는 사고 행위에요. 쉽게 말하면 그것은 건전한 회의주의로 정확성, 타당성,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어떤 주장, 신념, 정보의 출처를 정밀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에요. 이 책에서는 세이어베이컨이 배려윤리의 논의를 비판적 사고의 논의까지 확장시키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어요.
이 책의 저자는 테네시대학교의 교육철학과 교수로 21년 은퇴 후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있어요. 그는 교육의 철학과 역사, 사회철학과 문화적 다양성과 인식론, 비판적건설적 사고에 대한 강좌를 운영하고 교육철학, 실용주의, 여성주의 교육이론, 교육문화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해요. 대표적인 저서로 <관계적 인식론>, <민주주의는 계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등이 있어요. 1부는 비판적 사고에 대한 철학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을 담아내고 있고 고대 그리스인들에서 시작하여 근대 철학자, 그리고 비판적 사고 이론에 기여하고 있는 현대 철학자들의 입장을 담아내고 있어요. 또한, 이러한 입장에 기반해서 주요 문제점과 이슈를 살펴보고 있어요. 2부는 유럽과 서구의 전통 비판적 사고 방식의 문제점을 인식 후 비판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걸 인정하도록 젠더이론, 차이이론, 근본적 여성주의 이론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어요. 3부에서는 건설적 사고를 논의하며 비판적 사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담아내고 있어요. 또한, 퀄팅비은유를 건설적 사고의 개념을 확장시키기 위해 활용하고 있어요. 또한, 건설적 사고의 주체로 퀄터가 지식을 구성하고 사고를 건설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와 기술에 대해서도 담아내고 있어요. 퀼팅비는 한 곳에 모여 하나의 퀼트 작업을 수행하는 공동체에요. 이 책은 읽는 내내 어려워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반복적으로 이해 될 때까지 읽었어요. 철학적인 이야기도 담겨 있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다양한 철학가에 대해 찾아가면서 공부하며 읽었어요. 이 책은 비판적 사고 강좌의 중심 교재로 학생들의 개별 연구를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 과제에 활용할 수도 있어 도움이 많이 되실거에요. 그리고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의 과제, 교수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어요. 상상, 감정, 직관을 활용하는 건설적 사고에 관련된 부분을 공부하시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이 책을 읽으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거라고 생각이 되요.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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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철학이나 교육학, 여성학, 사회학, 심리학 등 해당 분야의 최소한 전공자 이거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비전공자나 이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집중하여 완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지만 어렵긴 하다. 비판적 사고라 함은 기원전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 텔레스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서구 유럽사회에서 철학자들이 그들의 이론을 추론하고 논쟁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해 의존하던 사고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논증을 비판하고 정당성을 제시하고 무엇이 옳은 추론인지 혹은 옳은 답인지를 판단 하는데 사용되는 특수한 형태의 사고라 할 수 있다. 이성기반 추론에 의존하며 사유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사고 이다.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논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답을 추론해 내기위해 비판적 사고가 요구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고 다원화 사회가 되 감에 따라 비판적 사고 논의에 성차별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배경이 묵인 되어온 경향에 대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 되고 있다. 즉 비판적 사고가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고찰되어 왔다면 이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의 재조명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안으로 사회적 상호 작용과 배려행위를 강조한 비판적 사고의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 하며 기존의 사유의 도구인 추론에 상상, 감정, 직관등을 활용한 건설적 사고를 제시한다. 이를 총체적으로 잘 하기 위한 방안으로 퀼팅비의 은유를 든다. 이성적 중심 사고를 다원적 사회에서 실용주의와 일부 여성주의 등 확장된 사고를 가지고 민주 공동체로서의 퀼팅비를 기우는 것이 건설적 사고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설적 사고는 지식을 사적이면서 공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기는 관점을 가지고 있고 지식은 인간이 창조한 무언가라는 것을 강조하며 많은 사람들의 상호적 교류를 중요시 한다. 끝으로 의사소통과 관계맺음, 배려 관계에 대한 기술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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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다양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사실 뭐 평범한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해 볼 기회는 없겠지만. 중요하다고 하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중요하다고 하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건 좋은 기회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가치 있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연구하는 학부생들, 대학원들에게 연구 주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만한 책인 것 같다.
아마도 비판적 사고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한 책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책이 무엇보다 가치있는 이유는 여성주의적 재해석으로 재해석하고, 건설적 사고를 제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판적 사고에 대한 연구자료들의 학자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생각해보면 다른 성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는 것 자체가 시사할만하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비판적 사고 이론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제기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서 시작해 근대의 철학자, 그리고 현대의 철학자까지 다양한 입장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주요문제점과 이슈를 다루었다.
2부에서는 비판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게만든 젠더이론, 차이 이론, 근본적 여성주의 이론에 대해 다루며, 문제의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3부에서는 건설적 사고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며 비판적 사고에 대한 인식을 다시한번 정리하고 강조한다. 특히 3부의 8장과 9장에서는 지식을 구성하고 건설적 사고를 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와 기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앞으로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빽빽하게 다양한 이론과 설명이 가득한 책이지만 꼭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에 대해 자세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려고 해준 정성이 느껴지는 책이다. 특히 옮긴이의 경험과 사례가 책을 편하게 읽는데,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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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가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판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인지, 비판적 사고가 문제해결력 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지, 비판적 사고는 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교육해야할 것인지, 비판적 사고는 평가가 가능한지에 대해 궁금했다. 이 책의 저자인 세이어베이컨은 비판적 사고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중에서 성차별적, 인종차별적인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관점에서 논의를 한 연구 결과를 담은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여성주의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간의 연구가 비판적 사고를 인간의 몸과 문화적 맥락, 젠더, 인종, 계급 등의 요소를 간과한 채 진행된 결과라면 세이어베이컨의 연구는 이런 요인을 다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한 점으로 삼고 연구를 진행했다. 1부에서는 비판적 사고 이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 20세기 근대 철학자, 현대 철학자들에 아우르기까지 이들의 논의에 대한 결과와 문제점 들을 살펴보고 있다. 2부에서는 유럽과 서구의 전통적인 비판적 사고 방식에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젠더 이론이나 차이 이론, 근본적 여성주의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 후 왜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부에서는 건설적 사고를 논의한다. 비판적 사고에 대한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7장에서는 건설적 사고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확장시키기 위해 퀼팅비 은유라고 하는 것을 가져온다. 나는 교육학 관련 분야를 나름 긴 시간동안 연구하며 여러 논문을 참고해왔었기에 퀼팅비 은유라고 하는 개념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비판적 사고에 대한 전환적 시각이라고 할만하다. 퀼팅이라고 하는 이름에서부터 이 사고가 여성주의적이며 비판적 사고의 재해석이란 측면에서 의미있는 연구라고 생각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비판적 사고의 훌륭한 표상이다. 이 남성에 대해 플라톤은 자신의 불멸의 영혼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을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 아리스토텔레스는 결론에 요구되는 필연적 원인에 논리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현대 비판적 사고의 연구자들 대다수는 이 그림을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표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퀼팅비 표상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퀼팅비는 여러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이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의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저자는 생각하는 사람이 비판적 사고를 고독한 행위로 영속시킨다고 보고 퀼팅비는 사고의 과정을 사회적, 다문화적 시도로 해석하게 한다고 본다. 퀼팅비에는 다양한 퀼터들이 참여하며 퀼팅비 은유는 미적, 실용적 특성들을 제시하고 있고 건설적 사고의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을 강조할 여지를 만든다고 본다. 그래서 상상, 감정, 직관 등의 도구가 탐구의 수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의사소통과 상호간의 이해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관계적 인식론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대 사회는 이미 다양한 젠더, 나이, 인종, 계급의 사람들이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고 이러한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연구는 가위, 색실, 침핀 등 퀼팅에 이용되는 도구들을 상상, 감정, 직관 등 다양한 인간 기능에 비유하여 이들을 비판적 사고 과정에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연구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그동안 지나치게 이성중심, 이원론, 절대주의적 이론을 바탕에 깔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비판적 사고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즐거웠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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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의 전환』
Barbara J. Thayer-Bacon(지음)/ 글로벌 콘텐츠(펴냄)
비판적 사고를 떠올리면 먼저 '이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년간 학생들을 만난 저자 세시어 베이컨 교수가 비판적 사고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이유는 뭘까?
책은 이성과 비이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비판적 사고의 전환을 말했다. 그 핵심 키워드에는 젠터, 차이 이론, 근본적 여성주의 이론 등을 설명하여 비판적 사고와의 관계를 밝히는 학술서다. 남성중심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사고와 책 후반에 여성주의적 재조명을 비교해 보면서 어떤 점을 개선할지 무엇이 합리적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고전의 철학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한 분량을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퀼트를 만드는 과정을 은유해서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의 조각을 연결하듯 나이, 성별, 인종, 정치 성향, 사회적 지위 등을 통합하는 과정을.... 퀼팅은 건설적 사고의 지식공동체라고.
유수의 철학자들을 시작으로 비판적 사고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 인식론을 거쳐 현대적 비판주의에 이르기까지 여성학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여성주의의 재조명을 언급하면서 건설적 사고를 강조한다. 과거 비판적 사고하면 이성적인 것 외에는 모두 배제되었던 것에 비해 저자는 사유하는 모든 것의 가치를 언급하며 상상, 감정, 직관의 기능을 중요시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건설적 사고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책은 말한다.
책을 덮으며 은유와 통찰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 협찬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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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후회하였다. 내가 섣불리 이 어려운 책에 감히 서평을 쓰겠다고 나섰구나. 큰일 났다. 그렇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독서의 산을 하나 건넌 느낌이었다. 학부 시절에 들었던 전공과목에서 이와 비슷한 책 한 권이 수업의 주교재였던 적이 있는데, 딱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비판적 사고의 전환」은 이전까지 논의되었던 '비판적 사고'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인간의 입체적인 면모를 반영하여 새로운 개념인 '건설적 사고'를 제안한다. Ⅰ부에서는 비판적 사고에 대한 전반적인 역사를 훑어보며 비판적 사고 이론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Ⅱ부에서는 비판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한 다른 이론(특히 젠더나 여성주의 이론)들을 소개하며,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Ⅲ부에서는 비판적 사고 이론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건설적 사고를 논의하며, 이를 위한 도구와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은 백인 남성 중심으로 연구되었던 비판적 사고 이론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목소리를 참여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저자는 인종, 민족, 사회 계급, 성적 지향 등을 포괄하여 인간이 매우 입체적이며, 남들과 협력하고 동행하는 존재라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인간이 타인과의 차이를 꺼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함께 협동하고 계속해서 깨어있기 위해 힘쓴다면, 좋은 재료들이 더 좋은 퀼트를 만드는 것처럼, 더 아름답고 다문화적인 지식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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