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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언어가 어깨동무하다 <생각의 축제>를 읽고
"3,000만큼 사랑해!(I love you 3,000!)"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의 딸 모건 스타크가 잠자리에 들기 전 아빠에게 건넨 말이다. 어린 모건이 아는 숫자 중 가장 큰 숫자가 3,000이었기에 그만큼 아빠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 한 아이는 "엄마를 얼마만큼 사랑해?"라는 물음에 "하늘, 땅만큼, 모래알만큼"이라고 답했다. 아이는 물론 어른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래알의 수를 헤아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사랑까지도 숫자로 나타내려고 애쓰는 게 바로 사람 아니던가. 어느날 엄마가 눈대중으로 나눠준 별사탕의 갯수 차이로 아이와 형은 싸움을 벌였다. 엄마가 눈물을 머금고 형제끼리는 셈하는 것이 아니라며 회초리를 내려칠 때마다 그 숫자를 세었다. 형제는 엄마의 화가 누그러지자 집 밖의 어둠 속으로 달렸다. 한참을 서성거리다 아이는 어디선가 들려오던 개구리 우는 소리는 누구도 셀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렸을 적부터 '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가졌던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이어령 선생이다. <생각의 축제>는 저자가 그때의 일을 '수의 비극'으로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앞서의 영화 『어벤져스』시리즈를 제작한 디즈니의 간판 스타는 누구일까? 유치원생인 우리 아이도 다 아는 미키마우스가 아닐까 싶은데, 갑자기 저자가 질문을 던진다.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처음에 5개였던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이 경제적, 과학적, 종교적 이유로 4개가 된 것도 흥미롭지만,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그 이야기 너머에 있다. 순서를 정하고 번호를 매기고 돈을 계산하는 일, 곧 수를 센다는 것의 의미와 그 수가 지닌 여러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근대 이후 수가 우리의 삶 속 깊숙이 자리하여 많은 것들을 관리하고 통제함으로써 개인은 숫자(로 대표되는 집단) 속에 매몰되어 그 개별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엄연한 존재를 누락 혹은 삭제하거나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61쪽)'하는 숫자의 세계에 대한 슈펭글러의 예언(이라 쓰고 '경고'라 읽는다)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저자는 우리가 숫자의 언어성을 회복하고 각기 나눠진 숫자의 세계와 언어의 세계가 뒤섞여 서로 오갈 수 있는 길을 <생각의 축제>에 여러 갈래로 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에 따르면 '인생은 나를 빼앗아가려는 숫자와 나를 지키려는 언어와의 싸움(77쪽)'인 셈(미루어 가정할 때도 '셈'은 호시탐탐 언어의 자리를 엿보는 것일까)이다. 숫자의 세계 맞은 편에 있는 언어의 세계에서 미키마우스를 다시 한 번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말이다. 대개 쥐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단 그 수를 세는 경우가 많은데, 이름 없는 쥐를 미키마우스라고 부르는 순간 숫자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더이상 징그럽고 해로운 쥐가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로서 고유한 역사와 소외된 사람들의 슬픔까지도 간직한 '미키'가 된 것이다. 숫자와 언어의 세계가 대립만 한다면 인생에서 마주하는 숫자의 의미를 온전히 읽어낼 수 없음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문학가들이 두 세계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종종 보여왔다. 이를테면, 『1984』의 조지 오웰과 『아Q정전』의 루쉰 그리고 『1Q84』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숫자를 언어의 세계로 가져왔고, '광야의 시인' 이육사는 수인번호(264)를 이름으로 썼으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시인 이상은 『오감도』의 연작시를 통해 숫자가 주도하는 20세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이처럼 하나된 두 세계는 우리가 보다 참신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생각, 곧 창조력(창의성)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장이 되어준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우주의 달걀, 신비의 우로보로스(그리스어로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인 '0'부터 완전한 조화나 우주적인 힘을 상징하는 '9'까지, 운동장에 놓인 허들을 하나씩 넘어가듯이 숫자마다 품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수포자의 잃어버린 숫자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켜 세워 사방으로 뻗은 수사자의 갈퀴처럼 숫자에 대한 지식이 풍성해진 기분이 든다. 그 가운데 '1'은 "하나의 숫자라기보다 모든 숫자를 포함한 또 모든 숫자가 시작되는 근원점, 중심점(185쪽)"으로, 그 형태가 쭉 뻗어서 자립과 꼿꼿한 자질을 가졌기에 지배적이거나 통솔적인 힘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내 생각을 하나 보태어 숫자를 살며시 눕혀본다면, 그 수직성이 수평성으로 바뀌면서 평등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다. 또한 1 더하기 1 또는 1곱하기 1을 나타내는 기호('+', '×')로도 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연대의 이미지로 발전시켜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책을 넘기면서 생각의 허들을 몇 개 넘었고 또 몇 개를 넘어뜨렸는지 세어보려는 나에게 저자가 그냥 허들을 다 넘은 '셈치고' 서평을 마무리 짓자며 마지막 수(數)신호를 보내오는 것만 같았다. 불합리하거나 답답한 일이 생기면 속는 셈치고, 받은 셈치고 등 '그런 셈치고'라는 말을 자주 쓰는 우리의 문화를 가르켜 '셈 문화'라고 명명한 그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치의 오차나 잠시의 여유도 없이 합리성과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를 향해 비(반)합리주의가 아닌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초합리주의'라는 발칙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그 주춧돌로 셈 문화를 괴어 놓자고 피력했다. 그렇다. 아니, 그런 셈이다. 생각의 축제는 끝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생각의 축제>는 숫자와 언어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세계가 바로 다양하고 창조적인 생각이 넘치는 축제의 장임을 일깨워준다. 숫자와 언어 어느 한 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무시로 경계하며 둘 다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도 날마다 축제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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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축제
책을 다 읽고,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생각의 축제,,,,,,,,축제 왜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 ‘생각’, 그리고 거기에 ‘축제’라는 말을 붙였을까 생각하면서, 생각으로 축제를 벌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생각은 축제의 재료가 된다는 말인데, 그게 가능할까
답은? 가능하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생각으로 축제를 벌일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축제를 벌일 수 있다.
먼저 생각의 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하다. 풍성하다. 어느 한 방향 일변도가 아니라, 다양한 재료가 무궁무진하다. 국내산도 있고, 외국에서 가져온 것도 있다. 해서 여러 사람의 입맛에 맞게 할 수 있다.
어떤 재료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손가락’이란 재료가 있다.
맨처음 맛보기에서, 저자는 미키 마우스를 선보인다.
그 누구도 이런 질문에 얼른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몇 번씩이나 이리 저리 생각해보고, 머리를 굴려보면서 답을 궁리해봐도 역시 뚜렷하게 이거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해서 생각의 축제인 것이다. 답이 금방 나오면, 어디 그게 축제인가? 단순한 유머집에 불과하지.
자, 답을 알아볼 차례다. 답은? 4개다. 왜일까
여기에서 그 답을 알려주면, 너무 싱겁다. 해서 정말 궁금한 분은 이 책 45쪽을 살펴보시라.
또하나 재료를 소개하련다. 이번에는 기억하고 새겨둘만한 명언 하나 소개한다.
숫자가 판치는 세상
서구의 몰락을 쓴 슈펭글러의 말이다. (59쪽)
이런 말에 대해 굳이 설명해야 하나
이런 말로 앞의 말을 보충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요리사가 누구인가 사계의 권위자 아닌가? 그걸 명장, 명인이라 하던가? 그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별미를 만들어내는 요리사 중의 요리사. 그러니 독자는 마음껏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생각으로 요리만 만드는 게 아니다. 재미진 공연도, 신나는 게임도 즐길 수 있다. 공연도 희극도 비극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므로, 단지 인간 삶의 한 면만 보는 게 아니라. 그것 또한 다양하게 접할 수 있으니, 독자들이 인식의 폭을 넓히는데 이만한 책이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럼 앞서 말한 숫자화에 관한 저자의 생각, 더 들어보자.
단순히 숫자화가 판을 친다고 결론을 내려버리면 너무 섭섭하지 않은가 해서 저자는 이제 숫자화된 세상에서 그걸 다시 언어의 세계로 가져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일단 숫자가 되면 차가워진다. 숫자는 자비가 없다. 다른말로 인정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 숫자에 상상력을 집어 넣어, 춤추게 하고 영혼의 숨결을 집어 넣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그걸 하는게 바로 문학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를 예로 들어보자.
이 소설 제목을 읽어야 하는데, 과연 처음 볼 때 어떻게 읽었는지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저게 1이야, 아니면 영어 알파벳의 아이(I) 라고 읽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해본 적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책의 저자는 그것을 노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부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열거한 모든 숫자가 이제는 단지 숫자로 읽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무궁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상상력의 보물 창고로 변한 것, 알아 차렸을 것이다.
바로 이게 저자가 시도한 <생각으로 축제하기>인 것이다.
0에서 9까지
또하나 있다. 우리가 항상 접하며, 그것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제도이며 기호인 숫자, 이번에 0에서 9까지 살펴보는 신나는 ‘게임’이 펼쳐지는 장으로 가보자.
특히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덥석 책을 열어재끼는 우는 범하지 말자. 그렇게 열어 내용을 읽어버리면, 일껏 게임을 준비한 저자만 머쓱해 질것이니 차분하게 먼저 각각의 숫자를 붙들고 생각을 한 다음에 저자의 게임 장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그 안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타이틀만 적어본 것이다. 그정도면 소개정도로 스포일러 염려는 없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저자는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어떤 때는 입맛을 사로잡는 요리를 만들고, 어떤 때는 그 생각으로 재미있는 공연도 연출하면서 정말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고 있으니, 독자들은 그저 저자를 따라가며 즐겨보자.
생각들로 만들어낸, 깊은 맛의 요리와 깊고 넓은 지식과 지혜가 어우러진 한판 놀이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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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다른 삶을 주제로 생각의 축제를 펼친 故 이어령 선생의 강연을 옮겼다. 표지를 보며 '고정관념의 창살'을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표현했을까 싶었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창살 속에서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무기수들을 해방시켜서 자유로운 초원의 노마드가 되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겁니다." 9쪽, 책 머리에
상상력을 펼치는 자리, 홍을 'ㅎㅎ'으로 즐거워하거나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오는 걸 아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벅찼다. 내게도 주어진 조금의 상상력이 있을까, 기대된다.
회자되는 숫자의 기억인 엄마의 별사탕은 좁은 집에서 삼 형제가 복작거리며 살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 나는 어떤 숫자를 세고 있었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궁금하다. 선생이 풀어놓는 숫자의 향연에 이리저리 생각이 따라다닌다.
숫자로 풀어내는 생각 끝에 원주율(π)이 있다. 아무리 계산해도 0.01을 넘지 못하는 세계. 아무리 애써도 3.14에서 3.15가 될 수 없다는 느낌은 어떨까.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애잔하게 울렸던 파이송이 떠오른다. 그 장면에서 울컥했었는데.
이렇게 숫자는 수를 세기 위한 도구에서 이름을 갖고 정체성이 부여됨과 동시에 이야기를 얹고 의미가 부여되는 역사로 전환된다. 자본주의 상징인 맨해튼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9월 11일과 이념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1월 9일의 오묘한 숫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꼬리를 물어가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인 빵(0)이나 알파나 뫼비우스의 띠로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는 팔(8) 그리고 실제 자연의 숫자 사(4)와 창조와 변화인 오(5), 완성과 신비의 숫자 구(9), 분열과 통합의 수 이(2), 절대 유일의 수 일(1), 균형과 힘의 수 삼(3), 완전한 조화와 융합의 수 육(6), 영적인 힘의 상징인 칠(7)을 다시 생각하면서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숫자가 보여줄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끌어내라며 강연은 이어진다. 근데 우리가 알고 있는 줄 세우기 숫자가 아니라 뒤죽박죽된 의미가 있을까? 이제 별게 다 궁금하다.
미키 마우스 손가락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여덟 번째 허들을 넘고 나서 자크 플레베르의 작문 노트를 만나는 것으로 숫자에서 벗어나 상상력은 나무에서 숲이 되고 바다와 새와 음악이 되는 상상력의 세계를 응원하며 끝을 맺는다.
하나하나의 챕터를 선생은 '허들'로 구분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넘어 상상력을 펼치라는 뜻일까. 어쨌거나 젊은 청춘들에게 팍팍한 현실에서 셈으로만 쓸모를 구분하는 '수'가 아니라 보다 넓은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나누는 이 책은 8020이어령 학당의 강연을 정리해 놓아 단단하게 굳어있는 사고를 말랑하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방과 후 교실을 통해 선생의 생각을 더하고 있다. 수를 통해 인문을 만나게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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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정해진 세상에서 남과 다른 대답을 하면 따돌림 당하고, 소외되는 젊은 영혼들을 위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삶에 위한 이어령 선생님의 흥겨운 추임새가 담긴 《생각의 축제》는 표지부터 활기차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창살 속에서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무기수들을 해방시켜서 자유로운 초원의 노마드가 되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이어령 선생님께서 직접 축제의 판을 벌이셨다. 책은 엄격하고 싸늘하게 고정되어 있는 숫자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판이 아니라, 숫자의 흔적 너머 영혼을 볼 수 있도록 생각을 열고, 축제의 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만든다.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이 몇 개인가라는 화두로 축제의 서막이 오르고, 수의 탄생을 설명하면서 더 흥이 오른다. 공평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여긴 숫자에 기반한 사고로 인해 잊혀져 가는 것들을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숫자의 언어성을 회복하는 것. 우리가 잃어버린 감성의 세계, 아날로그의 세계를 회복해야 하는' (p.64) 이 축제의 목표를 밝히고, 숫자의 감옥에서 나와서 나의 존재를 빼앗아가려는 숫자와 대항해 나의 언어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이기도록 도와준다. 이어령 선생님은 0을 빵이라 부르고, '한 두 서너 개'라는 대답을 이해하고, 불행이나 화를 당하더라도 '~한 셈치고' 넘어가고, 도량형이 도입되었음에도 덤을 얹어 줄 수 있는 정서를 가진 한국인이 서구의 합리주의를 따르며 셈에 밝은 민족이 되었음을 안타까워 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창조력과 상상력으로 수학적 사고와 언어적 사고를 결합시키고 통합하고 조화를 일으키는 '초합리주의'적 능력을 지닌 문화의 민족임에 기대를 거셨기에 유작으로 이 책을 남기셨으리라 생각한다. 차갑고 싸늘하고 중립적인 숫자에 익숙해 숫자에 의미를 더하고 언어를 발견하는 과정이 낯설어 어색해하던 것도 잠시, 곧 생각의 축제의 리듬 속에 어우러져 즐길수 있게 되었다. 이윽고 독자를 들었다놨다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스토리텔링에 덩달아 신명이 나서 책을 읽는 내내 ‘내적 신남’으로 화답했다. 이어령 선생님과 여덟개의 허들을 넘으며 나의 생각 속 숫자와 언어 사이를 가로막고있던 막이 허물어진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 책 덕분에 아이의 창조적 상상력을 지지해주고 아이가 가진 미래의 힘을 볼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에게도 자유로운 노마드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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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이어령 선생님쯤 되는 분이라면 더 많은 돌아봄이 미디어와 대중들 사이에서 일어나야만 할 것 같은데,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워낙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그런지, 그래도 세상에 어느 정도 눈에 띄는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빠르게 소비되고 마는 느낌이 들 지경이다.
최근 볼 수 있었던 많은 이어령 선생님의 관련 프로그램들이나 책들을 보면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하나의 개념이 바로 ‘상상력’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상상력조차 어떤 내용이 채워지기도 전에 소비된 다음 또 다시 다른 포장지를 뒤집어쓴 빈껍데기의 상상력들이 치킨이 되기 위해 목이 절단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닭들마냥 혼란스러운 일직선 줄을 서고 있는 것 같다.
이름에서 성으로 쓰이는 ‘홍’이라는 글자에서 ‘ㅎㅎ’라는 웃음소리를 보고, 녹는 얼음에서 봄의 소리를 듣는 아이들의 제한없는 상상력이 아직 우리사회에서 어떤 가능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마지막까지 풀지 못하고 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경직되어 있다. 자유로운 생각, 발상의 전환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이어령 선생님은 숫자를 세는 문화에서 비인간성을 읽어냈다. 모든 것을 이해타산으로 바라보게 하는 숫자의 문화에 위기감을 느끼신 것 같다. 사람의 감정이나 감수성, 추억 같은 것들까지 숫자는 치환하는 세상은 사람을 계산적이고 냉정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숫자라는 것은 문자 언어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정신적 자유의 수단, 또 다른 세계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우려는 숫자의 의미와 용도를 제한적으로 가르치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돌려 비판하신 것처럼도 들린다.
숫자로 풀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숫자가 재탄생하는 세계를 찾는 것은 이어령 선생님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의식인데, 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데 있어 하나의 열쇠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숫자가 인간을 대상화하고 동일한 특성을 가진 개체군으로 묶어버리는 데 반해, 이름은 개개의 가치와 개성, 그러니까 개체의 고유성을 확보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했던 숫자의 편향된 개념화와 활용이라는 문제에 이름의 세계를 잇대어 두 세계가 혼용되는, 다시 말해 숫자의 세계가 잃어버린 다양성과 조화, 균형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되찾아주는 역할을 이름의 세계가 한다는 것이다. 보통 수학 교육에서 스토리텔링이 접목되어 아이들에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좋겠다. 물론 이마저도 어떤 틀에 갇힌 것 같아 본래의 의도가 흐려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축제란 여러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의식이다. 생각의 다양성이 도외시되고 획일화된 관념으로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새로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단서는 이전에 필요없다고 여기던 것을 다시 떠올리고 회복하는 데 있다. 잊혀지고 버려진 비효율의 가치들이 이제는 우리를 먹여 살릴 자원으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정량적 가치와 정성적 가치를 자유롭게 혼용할 수 있는 역량이 새 시대에서의 생존을 보증하는 기준이라면, 이어령 선생님의 아이디어가 다시 한번 축약된 이 책의 내용은 미래를 내다보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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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분의 책을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한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정량적 의미의 수를 말그대로 우리의 언어와 연결지어 그 의미와 상징성을 재탄생 시키는 사고를 말하고 있었다.
그 형제가 다퉜던 2개, 5개의 별사탕의 수 중 2는 어떤 사물이나 형상을 두개로 나누는 수로 이해될 수로 낮과 밤, 선과 악 , 여름과 겨울의 대립으로 볼수도 있지만, 이것을 연결시키면 결국 아침이 가면 저녁이 오고,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듯 그 자체의 연속성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수이다. 우리의 태극기의 중간인 태극은 빨강과 파랑으로 나뉘었다고 생각하지만, 태극의 문양은 통합된 세계를 뜻하는 의미인것을 보면, 2라는 수는 통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수이다.
책은 수와 사람을 연결하여, 우리가 그저 삶 속에서 내것과 남의것을 나누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수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더이상 수가 그 정량적 의미의 수가 아님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마치 ‘쥐’라는 대상은 우리에게 더럽고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존재지만, 쥐라는 대상에 미키마우스라는 이름을 더하는 순간은 나의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친구, 나와 나의 아이들이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듯. 미키마우스의 의미 역시 미국에서 차별받던 아일랜드인을 천시하는 단어 였다고 한다. 하지만 미키는 더이상 우리에게 그런 의미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의 삶에 수는 그러해야 한다고 저자 이어령은 말하고 있다.
이어령이라는 분의 책을 처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낯익은 단어를 발견했고, 오래전에 이분의 책을 한권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 책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의 변곡점에서 그 둘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책이였던 것 같은데,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개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이 책을 덮는 순간 떠올랐다. 책을 읽는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즉, 셀수 없는 세계를 셀수 있는 세계로 나타내느냐. 이 숫자와 언어가 서로 오고가는 또 하나의 길. 숫자세계와 언어세계가 둘로 딱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또 뒤범벅이 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는 것입니다.” p.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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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표지에 귀여운 미키마우스가 떡 하니 그려져있는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제목이 생각의 축제라니 뭔가 상상력이나 창의력에 관한 책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작고하신 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다. 이 책은 다른 책과는 다르게 챕터라거나 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허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무래도 우리가 뛰어넘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현실을 뛰어넘어 창의적인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하였다. 총 8개의 허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정말 육성으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히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약간 파격적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다양한 부분에서 그동안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던 부분을 두드려준다. 숫자와 언어의 부분이 그러한데, 우리가 그간 수에 너무 집착하며 사는지도 모르게 살고 있다는 현실을 일깨우며 이 숫자가 어떻게 해서 건조한 수가 아닌 의미로 남을 수 있는지 다양한 예시를 통해 접근하고 있다. 시인 이육사, 샤넬 넘버5부터 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어 잊고있던 부분을 상기시켜준다. 생전에 강의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참 아쉬울 뿐이며 이 책을 두고 두고 아껴읽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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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람을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으로 나누고 학문을 배울 때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숫자로 나누어 또다시 다르게 하며 구분 짓고 나누는 것에 익숙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과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잠재력을 깨우치고 발전시키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도서 생각의 축제의 저자는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나누고 어느 한 쪽의 판단 기준으로 다른 한쪽을 소외시키는 행위는 창살 속에 살아가는 무기수와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 하는 질문에는 언제나 숫자가 들어있다. "너는 몇 살 먹었니?" , "형제는 몇이나 되지?" 이제는 "너희 집은 몇 평이야?"라는 물음이 자신의 소개하는 일부로 전락하기도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숫자로 이야기가 되는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에 있어서는 숫자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하늘만큼 땅만큼, 혹은 땅과 모래알만큼 엄마도 널 사랑한단다.'라는 말과 같이 사랑과 그 감정에 있어서는 숫자로 표현하지 않는다. 꽃잎의 개수도 이파리의 수도 셀 수 있지만 사랑은 세어볼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수를 세어보려는 버릇이 엉뚱한 싸움을 벌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형과 아우의 관계에 있어서도 숫자가 들어가면 그 양을 정확하게 구체적인 계산에 의해서 나눠져야 한다. 어머니의 마음은 별사탕을 한 움큼씩 잡아 똑같이 나눠준다 하여도 형제는 그 나눔 받은 한 움큼을 방바닥에 흩어놓고 제 몫을 세어버리고 마음을 셈하는 버릇이 싸움과 분쟁의 시작인 것이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몫이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으면 자신을 덜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는 자식의 마음에 덩달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형제의 주먹다짐 후로는 어머니는 편치 않은 마음을 쪼개듯 작은 별사탕을 하나하나 세고 나누어 똑같은 수로 쪼개 주셨다고 한다. 저자는 생각한다. 숫자는 정말 평화를 조정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별사탕을 똑같이 쪼개 나눠가졌다고 공평하게 사랑하느냐를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사랑을 별사탕의 숫자로 셈할 수 있냐는 말이다.
'~셈 치고'의 문명 어림잡아 ~셈 치고 하는 말이 있었다. 명확하게 떨어지는 것 없이 불분 명확한 말이지만 이 ~셈 치고의 문명에는 정이 있었다. 고추 한 됫박, 쌀 한 됫박, 깨 한 됫박을 사도 그 됫박 위를 자로 밀어내 그 셈을 치르는 것이 아닌 수북하게 올려진 그 한 됫박의 셈으로 계산을 하던 ~셈 치고의 시절 말이다. 저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을 때 고추를 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상인은 고추를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데 고추가 많이 올라갔는지 눈금이 조금 오르자 한 개를 뺏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금이 내려와 무게가 모자라게 되었다. 그때 상인은 가위를 들고 와 고추 한 개를 자르더니 반 개를 만들어 저울 위에 올려놔 정확하게 셈을 세어 고추를 팔았더랬다. 반 토막 난 한 개의 고추를 보며 '셈 치고'의 세상에서 살다 온 저자는 어딘지 야박하다는 인상과 섭섭함을 느꼈다. 한국의 시골길에서는 먼 길도 10리 밖에 안 남았다고 이야기하며 가찹다(가깝다)고 표현한다. 이는 길을 걷는 이의 기분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한참 걸어야 한다는 말보다 거의 다 왔다는 말이 나그네에게 있어 조금 더 힘을 내고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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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인이 되어 더욱 아깝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책, '생각의 축제'를 읽었다. 이 책은 숫자에 관한 이야기 이다. 이어령님은 소재거리 하나를 정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형식으로 책을 썼다. 얼마전 읽었던 젓가락과 관련한 이야기에 이어 이번엔 숫자다.
이어령님이 항상 강조를 하는 것은 창의적인 생각이다.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것의 중요성. 알지만 이미 굳어버린 머리를 굴린다는 건 쉽지 않았고, 처음 이어령님의 책을 접했을 땐 사실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 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이제 그의 집필 스타일을 알고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사고가 확장되는 기분이 들어 흐뭇하다.
8020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때, 기껏해야 80세와 20세 밖에 떠올릴 줄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숫자 하나를 이렇게 다각도로 바라 볼 수 있음에 감탄이 절로 났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독 데이터로 결과물을 산출해 내는 것을 좋아하고 신뢰한다. 사실 데이터 만큼 정확한 입증자료가 있을까도 싶은데, 그런 습관(!)이 굳이 숫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영역에 까지 숫자로 나타내려 애쓰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숫자에 집착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숫자가 과학적이라 믿는 것 또한 맹신임을 알려준다. 숫자와 언어는 이분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워 본다. 고인의 유작을 통해 다시금 고인의 참 뜻을 받들 기회를 갖게 되어 뜻 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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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인가 그의 강의를 또는 간증을 시청 한 적이 있다. 처음에 그가 기독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이 의아했으나 그가 하는 간증을 듣다보니 여러 가지 사정과 계기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이 책 생각의 축제는 숫자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이 축제처럼 펼쳐지는 책이다. 그가 늘 주장해 왔던 데로 기존의 생각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제일 것이다. 수에 얽매여 그 숫자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과학이 종교와 다른 점은 그것은 증명되고 논증되며 실체를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모호하고 알 수 없어 믿음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종교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일텐데 그 너머를 보다보면 아마 과학과 종교는 만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에서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사랑이나 마음 정의 같은 것의 귀중함을 더 깨닫게 된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모두가 한방향으로 달리면 한명만 1등이지만 360도의 제각기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이 모두 일등을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울림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말과 글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지금 현재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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