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와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이미 번역되어 있는 의학사가 로날트 게르슈테의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은, 이를테면 마이어 프리드먼와 제럴드 W. 프리들랜드의 『의학의 도전』과는 의학을 보는 관점이나 서술하는 방식이 아주 다르다. 『의학의 도전』이 서양의학사에게 가장 중요한 업적 10개를 여러 단계를 통해 추리고, 그에 대해서 조금 확대하여 서술하는 방식으로, 주로 의학사의 ‘빛’을 서술하고 있다. 반면 게르슈테의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는 우리말 제목과는 좀 달리 의학사의 전설적인 인물들을 몇 명으로 한정하여 서술하는 대신 시대와 그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혹은 시대를 앞서간 여러 의학의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는 시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 이야기다. 1840년부터 1914년의 서구다. 이 이야기의 끝인 1914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하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이 시점을 끝으로 (물론 서구의 기준이지만) 낭만의 시대가 끝이 났고, 현대가 시작되었다는 게 바로 게르슈테의 시각이다. 반면 1840년의 의미는 다소 애매하다. 정확히 1840년이라는 한 해라기보다는 1840년대에 이루어진 제멜바이스의 감염 예방을 위한 손씻기 주장, 코닐리어스 또는 다게르의 사진 발명, 윌리엄 모튼의 마취법 발견 등을 의학사의 한 기점을 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말하자면 게르슈테는 이 시기를 서양의학사에서 비로소 과학적 증거에 입각하여 새로운 의학적 발전이 이루어진 가장 역동적인 시기로 판단하고 있고(나도 실제로 그렇다고 본다), 사회의 급격한 흐름에 부응했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두 가지로 좀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제목대로 의학적 성취 자체에 대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그런 의학적 성취의 배경과 관련한 내용이다. 의학적 성취로 크게 다루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감염 예방 윌리엄 모턴과 제임스 심슨의 마취법(에테르 증기와 클로로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간호와 위생 관념 존 스노의 콜레라 예방 지도 조지프 리스터의 소독의 개념 알브레히트 폰 그레페의 안과 수술 코흐와 파스퇴르의 업적들 세포병리학을 시작한 피르호 프로이트의 코카인과 정신의학 외과의사 윌리엄 할스테드를 도운 수술 장갑 빌헬름 뢴트겐의 방사선 사진 에밀 아돌프 베링의 디프테리아 혈청 최초의 매독 치료제를 개발한 파울 에를리히 란스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 혈압계의 발견, 수혈
이렇게 보면 이 시기에 우리의 목숨을 살리고, 수명을 늘려준 많은 성취가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고, 그 성취가 100년도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이 시기의 사회적 배경들도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단지 배경이 아니라 중요한 의학적 성취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의학의 발전이 단지 의학 자체, 혹은 의사나 과학자의 단독 성취가 아니라 사회적 배경을 지닌 것이란 걸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진술의 개발이 가져온 의학적 발전이 그렇고, 근대 의료보험을 최초로 실시한 독일의 비스마르크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그밖에도 남북전쟁을 최초의 현대전임과 동시에 획기적인 의학적 진보를 가져오게 했다는 것이나, 자동차의 등장으로 의학의 또다른 분야, 혹은 트라우마가 시작되었다는 것,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온 인식의 변화, 앙리 뒤낭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적십자 등이 그렇다.
이 책을 통해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진 놀라운 의학적 성취를 시대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그런 사회와 의학 사이의 절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
|
이 책은 '의학지식'이 담겨 있는 역사책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 사실을 낱낱이 드러내면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그리고 '더 알고 싶은 내용'으로 정리하면서 읽으면 충분한 책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의학계에서 획기적인 발견, 또는 발명으로 수많은 인류를 죽음에서 삶으로 바꾼 전설적인 인물들의 삶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꽤나 감동적인 감상으로 읽어도 좋을 역사책이다. 그러나 이러나저러나 '여러 가지 지식의 나열'인 것만은 다른 것이 없다.
그래서 난 이런 책을 접하면 고민을 하게 된다. '지식의 나열'에 동참해서 책을 읽지 않고도 책내용의 전반적인 내용을 감 잡을 수 있도록 '친절한 리뷰'를 쓸 것인가? 아니면, 책의 내용보다 더 풍부한 지식을 자랑질하듯 '화려한 리뷰'를 쓸까? 그도 아니면, 글쓴이가 미처 다 담지 못한 몰랐던 정보를 담아 '놀라운 리뷰'를 써낼 것인가? 하고 말이다. 적어도 난 '친절한 리뷰'하고는 담을 쌓았다. 너무 식상하기 때문이다. 간혹 '화려한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글쓴이에게 실례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절필하였다. 그래서 종종 '놀라운 리뷰'를 쓰곤 했지만...이것도 자주 쓰다보니 이 책의 내용을 저 리뷰에, 저 책의 내용을 요 리뷰에 짜깁기하는 느낌이 들어서 자중하고 있는 편이다. 이런 까닭에 요즘에는 '내 생각'에 '충실한 리뷰'를 쓰고자 노력한다. 책을 읽고 난 뒤의 나의 솔직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담론'은 바로 '의학이 바꿔 놓은 인류사'다. 이를 테면, 손씻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산모를 출산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마취제를 발명함으로써 더는 수술장이 비명으로 가득하지 않았으며, 소독제를 사용함으로써 더는 감염으로 인한 죽음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 말이다. 물론, 쌩뚱맞게도 철도의 발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PTSD)'라고 하는 질병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었고, 다윈의 <진화론>이 '유려한 문체'로 쓰여진 탓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었던 데 반해서, 제멜바이스의 책은 너무나도 읽기 힘들 정도로 어렵고, 때로는 광기에 물든 문체로 쓰여져서 의학전문가들조차 읽기 거북한 탓에 '손씻기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강조했음에도 그후로도 오랫동안 '산욕열'로 죽어가는 산모와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 줄지 않았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어쩌면 '기-승-전-의학'이라는 귀결로 쓰여진...어떤 에피소드라도 결국엔 '의학'이라는 우격다짐으로 쓰여진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토록 난삽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의학의 발달'로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 역사적인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 가운데 난 '의학의 전설들'이 하나같이 당대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주목받데 된 점이 눈에 띄었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그의 사후에 '주목'받고 걸작으로 평가받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팬데믹'을 되돌아 보았다. 벌써 대유행이 시작된 지 3년째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인간과 바이러스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이 대결은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주곤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말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삽시간에 퍼져 넓은 지역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난 뒤에 '면역력'을 갖춘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염병이 잦아드는 '기록'이 참 많기 때문이다. 당대의 내놓아라하는 '명의'들도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오늘날에는 달랐다. '의료계'에서 발빠르게 움직였고, '감염관리'를 전담하는 부서에서 긴밀하고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팬데믹' 상황속에서도 버티고 시간을 지연시켜 '대비'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팬데믹과 이번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양상이 많이 달랐다.
물론, 겉잡을 수 없이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응할 수 없었던 국가들은 초기에 많은 희생을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선진국에서조차 말이다. 그동안엔 돈 많은 선진국들은 가난한 후진국처럼 '질병에 의한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곤 했는데, 이번 '팬데믹'에서는 '직접 당사자'가 되어 큰 피해를 보았다. 허나 이렇게 선진국에서 호되게 당하고 나니 좋은 점도 있었다. 거대제약회사들이 앞다퉈서 '백신개발'에 나섰고, 보통 10년 이상이 걸리던 개발기간을 1년이내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한 백신'은 아니어서 추후에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에 처하게 되는 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조치였다. 그만큼 급박한 사태로 번졌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코로나 팬데믹'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손씻기'와 '마스크'였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질병' 자체를 없애거나 '죽음'을 막을 순 없다. 또한, 백신이나 항생제, 그리고 치료제 따위로 완벽하게 막아내고 되살리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백신이나 항생제, 치료제가 너무나도 비싸서 '있어도' 사지 못하고 써보질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손씻기'와 '마스크'는 비교적 저렴한 돈으로 엄청난 혜택을 볼 수 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예방법'이다. 물과 비누, 또는 소독제로 '손'을 씻으면 98%의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고, 마스크로 코와 입을 막는 것만으로도 '호흡기질환'의 99%를 차단할 수 있게 된다. 단돈 천원(1달러 상당)으로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웬만해서는 병원에 갈 일도 없게 해주는 효과적인 '상식'이고 말이다.
현재는 '오미크론'이 대유행을 하면서 마스크조차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니냐? 하는 오해를 불러오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마스크 착용을 꼼꼼이 하면 거의 대부분 걸리지 않는다. 잠시 방심한 틈에 걸리고, 오랜 방역으로 인한 피로도가 증가한 탓에 느슨해진 틈을 타고 번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지나고 나면 선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마스크를 '벗을 자유'보다는 마스크를 '쓰는 배려'가 더 많은 인류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또다시 '팬데믹'이 찾아왔을 땐, 분명해질 것이다. '벗을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이 진짜 '모두를 위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는지, '개인의 이익'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그랬는지 말이다.
대유행의 정점을 지나면 '집단면역'을 형성해 '백신의 효과'와 더불어서 팬데믹을 종식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지금 대유행으로 안타까운 사망자가 늘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종지부를 확실히 찍기 위해서라도 '손씻기'와 '마스크'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의학의 전설들도 복잡한 치료법과 비싼 치료약을 만들었기에 전설이 된 것은 아니다. 의외로 가장 기초적인 방법에서 힌트를 얻어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더 획기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의학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또다시 '손씻기'를 강조한 제멜바이스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련다. 의사들에게 '모든 환자와 접촉하기 전, 반드시 손을 씻을 것! 예외는 없음'이라는 문구를 전하고 실천하라고 했을 때, 당대의 권위 있는 의사들은 '권위'를 앞세워 손씻기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고귀한 의사의 손을 '전염의 도구'로 전락시킨 제멜바이스를 의사들의 권위를 추락시킨 원흉이라고 비난해서가 아니었다. 당시의 손씻는 소독제(염소)가 의사들의 손을 쓰라리고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귀찮아서였다. 아직 세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아 '감염의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손씻기'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던 시절인 탓이었다. 그럼에도 제멜바이스는 '통계'를 이용해서 손씻기를 강조했다. 손씻기를 하지 않은 병동에서는 여전히 산모들이 산욕열로 죽어나갔지만, 손씻기를 한 병동에서는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사들의 손씻기가 일상화 된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사실은 바로, '단순함'과 '예방'이다. 진리를 통찰하는 힘은 '단순함'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고, 건강은 아프고 난 뒤에는 절대로 되찾을 수 없기에 미리미리 건강을 챙겨야 하고, 모든 질병은 치료에 앞서 '예방'이 최선임을 말이다. 복잡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복잡한 것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로 '안다'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의사들이 우주의 기운이 나쁘게 작용해서 산모들이 죽어간다고 했을 때, 제멜바이스는 관찰과 통계로 '손부터 씻으라'고 명령했다. 산모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산욕열'은 '감염'에서 일어나는 질병이니 감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손씻기'라는 예방책을 내놓았다. 단순명쾌한 의학적 발견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코로나 팬데믹' 상황속에서 손씻기와 마스크가 최선이라는 진리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다른 팬데믹이 찾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극복할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고 말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코로나'부터 극복하고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
【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 위대한 의학의 황금기를 이끈 찬란한 발견의 역사 _로날트 D. 게르슈테 / 한빛비즈
의학의 역사가 시작된 최초의 시간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등 초기 선진 문명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사들의 오랜 꿈은 인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고 어디에 증상이 있으며 어떤 기관이 병들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인체의 구조에 대한 의학적 지식은 오랫동안 매우 초보적이거나 요즘의 지식으로 판단할 때 완전히 잘못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해되는 부분은 많은 문화권에서 해부학 연구, 즉 인체의 각 부위에 관한 연구를 꺼리거나 심지어 (특히 종교적으로)죄악시 해왔기 때문이다. 신체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시작은 브뤼셀 태생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가 1543년에 쓴 위대한 저서《인체의 구조에 관하여》이다. 이 책은 다른 유럽의 대학 도시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다 가톨릭교회의 입김이 그리 세지 않았던 까닭에 당시 과학서적 출판의 중심지가 되었던 스위스 도시 바젤에서 출간되었다.
눈으로 보고도 긴가민가했을 시대에 하물며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던 미생물(바이러스)의 존재는 한없이 당당했다. 요즘 전 세계는 COVID-19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손 씻기와 손소독이 습관이 되었다. ‘손 씻기의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19세기 중반으로 돌아 가본다. 출산열이라고도 불리는 산욕열은 고대부터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과 동행해온 인류의 숙명적인 골칫거리였다. 이 무렵 산욕열에 의한 사망은 빈부상태에 따라 차이가 컸다. 집이나 별장에서 분만하는 귀족이나 중상류층에선 100명당 한 명꼴이었다. 반면, 하찮은 부르주아나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빈의 대다수 시민들은 대부분 종합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병원의 의료진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거나, 전문가 집단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원에서 산욕열로 사망하는 임산부들이 무척 많았다. 왜 그랬을까? 요즘의 생각으로는 기가 막힐 일이 무심한 일상으로 반복되었는데, 그것은 그 병원에 시설되었던 부검실에서 시체를 해부한 의사와 의대생들이 그 손 그대로 산부인과 병동으로 가서 출산을 돕거나 막 출산한 산모들의 복부를 검진했다는 사실이다. “임신부와 산모에게 도움과 구원이 되어야 할 의료진이 알고 보니 산모와 신생아에게 죽음의 사신이었다니!” 다른 의료진들은 감염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의사가 있었다. 헝가리 태생의 이그나즈 필리프 제멜바이스이다. “오늘부터는 염화석회액으로 손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분만실과 산부인과 병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단 한명의 예외도 없습니다.” 이 문구를 본 몇몇은 놀라고 몇몇은 분개했다(황당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다수 의료진과 학생들은 속으로는 불합리하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복종했다. 소리 없는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한 때 산욕열로 인한 산모의 사망률은 18.27퍼센트라는 믿기 어려운 수치를 기록했지만, 그 이후로 드러난 통계는 기적에 가까웠다. ‘손 씻기’하나로 산욕열 사망은 0가 된다.
이 책의 저자 로날트 D. 게르슈터는 의학과 역사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의학, 역사 분야 저널리스트 및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를 구성시킨 의학의 황금시대를 되돌아본다. 감염병, 유행병의 창궐과 감염병과 맞서 싸운 의사들, 에테르에서 클로로폼으로 이어지는 마취의 역사, 소독의 개념을 도입한 현대 의학의 선구자인 조지프 리스터, 안과학의 시조 알브레히트 폰 그레페, 라이벌 관계였던 독일의 코호와 프랑스의 파스퇴르의 연구과정, 기적의 국소마취제인 코카인, 수술용장갑의 탄생 등 의료현장에 얽힌 흥미롭고 격정적인 장면이 계속 이어진다. 사실 의학의 역사는 발명보다는 발견이 더 많다. 현미경, 혈압계는 발명에 속하지만, 빌헬름 뢴트겐의 X-ray, 결핵균, 혈액형의 구분 등은 발견에 속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도 ‘위대한 의학의 황금기를 이끈 찬란한 발견의 역사’라고 되어있다.
의학의 역사를 주제로 했다고 해서 그리 딱딱하지 않다. 의학의 역사 역시 사회적, 시대적 흐름과 같이 가기 때문에 연대순으로 진행되는 역사적 상황을 들여다보는 계기도 된다. 부록으로 실린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건설작업자 이야기(화약 발파 작업 중 길이 1m, 무게 5kg의 철 막대기가 부비강을 통해 안면과 눈을 뚫어버린, 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외상 사건. 그는 사고 후 12년을 더 살았지만, 전두엽 손상으로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되었고, 그는 뇌과학자들과 의사들에게 ‘뇌의 지도’를 작성하게 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미국의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권총 피습을 당했지만, 그의 직접적인 사인은 총알보다도 의료진들이 총알을 찾는답시고, 씻지도 않은 맨 손가락으로 부상 부위를 헤집으면서 생긴 염증으로 인한 것이었다. 아울러 코끼리 인간으로 부르며 동물 취급을 받던 조지프 메릭을 당시 유명한 영국 외과 의사가 그를 쇼룸에서 구해내서 그의 남은 삶을 돌봐주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담겨있다.
#세상을구한 #의학의전설들 #한빛비즈 #쎄인트의책이야기2022
|
|
클로로폼을 사용했던 의사들은 여성이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성경을 들먹이는 성직자와 동료 의사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 그러나 대다수 성직자들과 달리 예민한 남성들은 아내가 출산하는 순간에 고통으로 내지르는 절규를 차마 견디기 힘들어했고 절규의 행동이 신성하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p.104)
출산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고통의 순간'을 지나와야 경이로워질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출산하는 여자'만 대단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출산의 순간'을 겪고 태어난 귀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요즘은 출산하다 산모가 죽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지만, 과거에는 꽤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분명 태아의 평균 신체는 과거보다 커졌을 텐데 왜일까. '의학의 발전'이라는 당연한 걸 왜 묻냐 하겠지. 맞다. 의학의 발전에 의해서다. 그런데 그게 왜 당연해?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익숙해져서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그러나 '당연하지 않았던 때'가 주는 교훈은 몹시 크다. 그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일 테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당연하게 바꾸어준 이들'에 관한 책이다.
'어떤 혁명은 소리 없이 시작되기도 한다. (p.8)'는 말로 문을 연 이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당연하다 생각해온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이 당연해질 때까지 겪어온 시간이 쉽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코로나를 겪으며 더 당연해진 손 씻기 조차 1847년에서야 시작되었다고 하니 놀라움은 당연했다.
유럽을 휩쓴 전염병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질병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기도 했고, 클로로폼이나 코카인 같은 마취제에 대한 부분에서는 과하면 독이 되는 많은 것을 떠올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체통을 괴롭히는(?) 종이로 전락해버린 적십자가 초창기 어떤 모습으로 구호 활동을 했었는지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게 되어 “아는 것의 힘”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구겨버린 지로용지에 사과를)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던 부분은 “과학의 나라 독일” 편이었다. 부끄럽지만 해당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암세포의 지나친 성장과 같이 신체 세포의 변화를 질병의 원인으로 보았다”(p.292)라는 본문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아는 의료보험의 시작점이 된 비스마르크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두려움 가운데 하나다. 고대부터 전염병이나 유행병은 시시때때로 도시나 나라 전역을 공포에 밀어 넣었으며 때로 유럽-지중해 문화권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부분에 퍼져 수많은 문명과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전염병은 거의 항상 사회질서와 통치체계, 경제 체계를 뒤흔들었다. 종종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p.158)
최근 몇 년간 코로나라는 무서운 바이러스는 우리를 흔들고, 세상을 바꾸었다. 19세기에도 세상을 흔든 전염병이 종류와 모습이 달라지긴 했지만, 현재를 흔들고 있다. 치료제나 예방제 등의 발달, 모두의 선진의식 등이 이 무서운 사태를 종료시킬 수 있겠지만, 이 사태가 끝난 후의 상황들도 고려해보아야 할 중요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종종 사람들은 지나간 것들을 의미 없는 것들로 취급하지만 과거의 사례에서 현명한 대처법을 찾아볼 수 있을 테다.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와 이 시대에 살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생겨야 할 '내성'들은 고민했다. 과거의 사례들에서 오늘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읽기였다. |
|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로날트 D. 게르슈테 ㅣ 한빛비즈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은 현대 사회의 토대가 마련되고 새로운 지평이 열리던 의학의 황금 시대를 조명한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존재한다. 무지 위에서 발견된 다양한 것들은 때론 시대의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후대에 다시 회자되며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손 씻기와 위생 관념이 19세기에는 캠페인으로 개도해야 하는 행동이었으며, 마취제 없이 진행되는 외과 수술이 환자는 물론 의사에게도 공포의 시간이었음을 보면 의학의 발전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이 책은 1840년에서 1914년 의학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손 씻기'를 통해 산욕열로 죽어나가는 산모들을 살려 낸 '이그나즈 제멜바이스', 마취제를 연구해서 고성이 난무했던 외과 수술에 혁신을 불러온 '윌리엄 모턴'과 '제임스 심슨', 가가호호 집들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하고, 통계적 수치를 통해 콜레라의 전파경로를 밝힌 '존 스노', 진보한 위생 관념으로 수많은 장병들의 목숨을 구한 '나이팅 게일' ....이 밖에도 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이 세계사의 흐름 속에 의학의 발전과 진보를 이루어냈다. 그들의 연구와 발견은 인류의 수명 연장은 물론 삶의 질도 높여주었다.
의학의 황금시대에 이루어 놓은 다양한 발견과 연구가 무색하게 지금 우리는 작은 바이러스로 '팬데믹'의 상태에 빠져있다. 전 세계가 2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생활이 마비되고, 생과 사를 위협받았지만 이만큼 이겨낸 것도 어쩌면 역사 속에서 발견해 낸 의학의 혁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손 씻기, 마스크 착용으로 감염 전파 차단하기, 백신의 개발과 접종 등으로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의학의 황금시대를 통해 얻은 인류의 지혜이다. 흑사병, 콜레라, 천연두, 매독의 시대를 거치며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만 또다시 새로운 전염병과 맞닥뜨리게 된 인류. 우리가 겪은 이 특별한 전염병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도 후대 의학사에 중요한 자료와 지혜가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의사와 과학자 이외에도 그들과 함께 시대의 곳곳에서 다양한 변화를 이끈 인물과 전쟁들도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서술되어 있다. 지식의 확장은 물론 깊은 사유도 가능하게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며, 생소하고 번거로운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또한 그 어떤 변화와 진보, 발전도 '건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하면 오래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19세기 의학의 황금기가 존재했다는 것이 감사하다.
|
|
▣시력 19세기 의학은 내과와 외과, 산과와 부인과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의학도 전문화가 불가피할 만큼 지식이 증가하게 된다. 이런 시기 '안과' 분야에서 '알브레히트 폰 그레페'는 두각을 나타낸다. 그는 검안경을 이용해 녹내장을 발견한다.
▣대대로 원수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발효와 미생물의 존재에 대해 밝혔다. 부패를 억제하기 위한 저온살균법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소독 분야에 도움을 주었다.
독일의 코흐는 탄저균을 연구하였으며, 코흐의 탄저균 발견을 토대로 파스퇴르는 탄저균 백신을 개발한다. 파스퇴르는 코흐의 연구에 감명을 받았으며, 코흐는 이후 결핵균을 찾아내어 인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과학의 나라, 독일 독일의 과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부검 전문의 였으며 병리학 교수로 생의 마지막까지 재직했다. 같은 시기 독일의 정치가 비스마르크와 피르호는 정치적으로는 대립되는 관계였으나 국가의 기본적 의료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여 지금의 '건강보험' 시트템의 초석을 이루게 된다.
|
|
▣죽음의 지도 1854년 8월28일, 영국의 세라 루이스라는 젊은 여성은 딸의 기저귀를 빨고 있었고, 그녀의 딸은 심한 설사로 고생 중인 때였다. 그녀가 빨래했던 더러운 물은 정화조에 버려졌고, 정화조 근처에는 식수 펌프가 있었다.
19세기에 흑사병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이 시대에는 콜레라가 수만 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원인과 전파 경로를 연구하는데,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던 시기엔 전염병의 원인을 '공기' 라고 주장하는 '장기설'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존 스노는 가가호호 집들을 돌며 역학조사를 실행하여 '식수' 가 원인임을 밝혀내고, 런던 시내의 대대적인 하수구 공사를 착수하게 만드는 데 일조 한다. . . ▣세상을 뒤바꾼 책 비글호를 타고 대륙을 항해하던 찰스 다윈은 자신이 경험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책으로 출간하고, 그의 책 [종의 기원]은 창조론의 시대에 진화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은 시대의 파란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된다.
1859년,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증거로 저서를 집필 중인 또 다른 이가 있었고, 그는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였다. 제멜바이스는 산욕열의 원인을 연구하여 손 씻기 규칙을 엄격하게 도입해 많은 산모의 목숨을 구한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저서를 남기지만 투박한 언어들로 쓰인 그의 문장들은 전문가들 조차 읽기 어려워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였다. . . ▣적십자 19세기 크림전쟁은 폭력적인 유럽의 전쟁이었다. 전쟁의 비참함을 목격했던 '앙리 뒤낭' 은 제네바의 부촌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비참함 앞에서 한 개인은 무력하며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인류 전체가 나서야 한다" 라는 모토로 연대의 힘을 주장하여 1864년 '국제적십자'의 탄생을 이끌었다. . . ▣남북전쟁 미국의 남북전쟁은 철도의 발달과 전쟁경제체제, 직업군인 등으로 현대전의 시작이었다. 신식 무기들은 군인들에게 다양한 외상을 입혔고, 단순한 봉합술 외에는 대부분의 수술은 절단술이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대학 강의실에서 간단하게 훈련을 받은 후 군 병원에 투입되어 실습을 하는 것으로 배움을 이어나갔다. 보수적인 이 시기에 엄청난 명성을 누린 여성 외과의 '에드워즈 워커'는 미국 최초의 여성 군의관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남북전쟁도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전염병에 의해 죽어나간 병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주로 장티퓨스, 말라리아, 임질과 매독으로 전투가 아닌 질병으로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 . ▣소독제 1451년 11살의 제임스 그린리스는 길을 건너다 마차에 치였고, 왼쪽 다리가 골절되며 정강이뼈가 부스러진다. 당시 큰 상처는 염증을 동반하며 괴사되어 목숨을 위협했다. 따라서 상처부위를 절단하여 목숨을 살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통상대로라면 제임스의 다리도 절단되어야 했다. 하지만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는 미생물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박했기에 콜로로폼으로 제임스를 마취시킨 후 작은 메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석탄산을 흠뻑 전식 면을 붕대처럼 둘러 상처 부위를 소독하였다. 이 수술로 제임스는 다리 절단은 물론 합병증도 없이 자기 발로 걸어서 병원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수술은 소독제의 탄생을 알리며, 환자들을 괴저의 위험에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
지금은 너무나 상식이 되어버린 일들이 상식이 아니었던 시대, 뻔히 눈에 보이는 의사들의 비위생적인 행동 하나로 환자들이 수없이 죽어나갔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해 환자들은 분명한 인재人災임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결코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손 씻기'가 있다. 출산열이라고도 불리는 산욕열은 고대부터 모든 어머니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나마 부와 권력을 누리던 계층은 집이나 별장에서 아이를 낳음으로써 죽음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지만 하찮은 부르주아나 하층민들은 대부분 종합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산욕열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산욕열은 보통 출산 후 첫 24시간 안에 시작되는데, 산모는 몸에 열이 오르고 복통을 호소했고 산모의 배를 만져보면 복부의 벽이 딱딱해져 있었다. 당시의 의사들은 산욕열의 원인도 알지 못했고 그것을 통제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그에 대한 의학계의 설명 또한 신통치 않은 추측들뿐이었다.
1847년 이그나즈 필리프 제멜바이스라는 산부인과 의사는 자신의 손에 죽어가는 산욕열 환자들을 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골몰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는 산욕열 환자의 수가 여전히 줄지 않는다는 좌절감으로 잠시 일을 쉬기로 했다. 그러나 3주의 휴가 후에 돌아온 병원에서는 자신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는 친구였던 의사 야코프 콜레치카가 부검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멜바이스의 휴가 기간 동안 한 학생이 실수로 콜레치카의 검지를 베었고, 그로 인해 염증이 온몸에 퍼져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슬픔을 억누르고 그를 해부해 복막염, 가슴막염, 심장막염의 증상을 발견했고 그것이 산욕열로 사망한 여자들의 증상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으로 제멜바이스는 부검실에서 곧장 산부인과 병동으로 가 부검했던 손으로 막 출산한 산모들의 복부를 검진했던 의사들의 손이 문제의 죽음의 손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하여 제멜바이스는 병적으로 손 씻기를 강조했고, 손 씻기 만으로 사망률이 완전히 줄지 않자 염화석회 용액에 손을 담그는 급진적인 방법까지 시행해 산욕열로 인한 사망자 수를 제로로 만든다.
그러나 이렇게 환자의 목숨을 살려낸 손 씻기는 의사나 간호사, 의대생들에게는 고문이었다. 그들의 손은 항상 벌겋게 달아오르고 쓰리고 가려운 증세를 보였다. 시간이 흘러 손 씻기 위생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후에는 더욱 심해졌는데, 1889년 당시에는 제멜바이스가 보기에도 손 씻기 규정이 다소 과격했다. 의료진은 우선 비누로 손을 씻은 후 과망가니즈산칼륨 용액에 다시 손을 세척한 다음 뜨거운 옥살산에 손을 담근 후, 독성 염화수은 용액에 또다시 세척을 해야 했다. 당시 존스 홉킨스 병원의 외과 수석 간호사였던 캐럴라인 햄프턴은 이런 손 씻기 과정 때문에 손 피부가 피부암에 걸린 것처럼 붉게 변했고 껍질이 벗겨지는 심각한 피부 트러블을 겪으며 외과 간호사를 포기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에 수석 외과 의사이자 그녀를 연모하고 있던 윌리엄 스튜어드 할스테드가 그녀를 걱정해 그녀의 손과 팔뚝 모형을 본떠 뉴욕의 굿이어 고무 회사로 보내 돈이 얼마가 들건 그녀의 손에 맞는 얇고 정교한 수술 장갑을 만들어 낼 것을 요구했다. 이 획기적 수술용 고무장갑의 발명은 외과 수술 환자들의 감염률을 확연하게 낮춰줬을 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손을 독한 화학약품들로부터 보호하는 획기적인 일이 되었다.
이 밖에도 외과 수술의 고통과 공포에서 환자들을 구원해 준 마취제 에테르를 발명한 윌리엄 모턴, 이후 에테르 마취의 부작용으로 인해 그것을 대체할 마취약으로 클로로폼을 발견해 임상실험을 통해 마취 효과를 발견한 제임스 영 심슨, 지그문트 프로이트로부터 소량의 코카인을 건네받으며 들은 약의 효과 중 혀를 마비시킨다는 효과에 집중해 국소마취제로서의 코카인의 기능을 발견한 카를 콜러 등의 이야기가 일반인들이 읽어도 아주 쉽게 이해가 잘 가도록 흐름이 끊기지 않게 잘 이어지며 재미있는 소설처럼 펼쳐진다.
또한 제멜바이스의 논문을 통해 청결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전염병과 감염으로부터 크림전쟁의 부상자들을 지켜낸 '등불을 든 여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솔페리노 전쟁을 겪은 지역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끔찍한 전쟁의 피해에 대한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저술한 후 그러한 전쟁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원조 기구인 적십자사를 설립한 앙리 뒤낭의 이야기 등 무려 23가지에 달하는 세상을 구한 의학 이야기가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어른이 아닌 청소년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에 소개된 의학의 획기적 발명이나 발견을 보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획기적 치료제의 개발로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낸 이야기도 책에 쓰여질 날이 곧 오기를 희망한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손 씻기 등의 기본적 공중보건에 더욱 신경 쓰며 이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의학의 역사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우리는 분명 이 상황들을 통제하고 극복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
|
COVID-19가 발생했던 2020년에는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포하고, 하늘길은 막히고, 사람들은 자택에 격리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가슴 아픈 상황을 전 세계가 다 함께 경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초고속으로 백신이 개발·보급되는 것도 놀라웠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은 지금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저자는 위대한 의학의 황금기로 1840년대부터 1914년까지를 보고 있다. 1846년과 1847년에 이루어진 마취 성공과 손 씻기 운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의학적 발전은 꿈꿀 수조차 없다고 말하고 있다. 19세기 의사들이 수술 전에 손을 안 씻었다는 사실을 생각만 해도 후덜덜!
지금의 팬데믹 상황이 공포스럽지만 그래도 의학의 발전으로 이전 사람들은 생각도 못 했던 방법으로 우리는 헤쳐나가고 있다. 지금은 손 씻기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의학의 역사로 볼 때 손 씻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불과 19세기 중반의 봄이었다고 한다. 의학적 예방 목적의 손 씻기가 시작된 것은 175년 전인 1847년에 부검실에서 검지를 베었던 친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친구의 부검 보고서를 보고 산욕열로 사망한 사람들과 똑같은 증상을 보고 미생물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손을 씻으라는 규칙이 생겼고 그 효과는 많은 산모와 아이를 살리게 되었다. 친구의 죽음으로 슬퍼만 하고 있지 않고 직접 그 궁금증을 풀어 낸 제멜바이스!
지금 마취 없는 수술을 상상할 수 있을까? 치과치료도 그렇고 꿰매야 할 정도의 상처를 치료할 때조차 그냥 생으로 찢고 꿰맨다고 상상만 해도 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취제가 발명되기 전까지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들은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수술대 위에서 발버둥 치는 환자들을 간호사들이 힘으로 제압한다고 해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힘을 버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정신이 있는 환자의 배를 가르고 수술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 윌리엄 모턴에게 박수를~~~
A. V. 그레페 박사는 안과 치료가 필요한 불쌍한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광고를 낼 정도로 부유한 의사 집안사람으로 현대 안과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백내장 수술이 대부분이었으나 허옇게 눈에 불투명한 막이 생기면 아마도 다들 시각을 상실한 채로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할 시대였다. 1850년 그레페는 헤르만 헬름홀츠가 발명한 작은 광학 장치로 살아 있는 사람의 망막과 시신경의 결합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녹내장을 발견하고 망막의 동맥과 정맥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게 되자 홍채 절제술을 발명하게 된다. 불투명한 막으로 덮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었던 맹인이었던 사람들이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일은 안과 의학계의 전설이 되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처럼 빨리 마스크에서 벗어나서 마음껏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소망한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세상을구한의학의전설들 #로날트D게르슈테 #한빛비즈 #문명사 #의학 #손씻기 |
|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로날트D.게르슈테(지음)/ 한빛비즈
'죽음'은 권력자의 집 대문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한 시대를 운명지었던 지도자들도 결국은 죽는다. 코로나19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이나 '질병' 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학과 역사를 전공한 저널리스트 겸 작가님,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학의 발달사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를 겪으며 일부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국민적 책임감을 느껴 자발적으로 외출을 삼가한 나라도 있다. 코로나 시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손 씻기의 역사는 1847년 이전 제멜바이스 이전에는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헤택들이 과거를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목숨 값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 초반에서 의학의 황금기 그 서막에 산업혁명의 시기를 조명한다. 이 책은 주로 '의학'을 중심으로 과학의 근대성을 설명하지만, 나아가 다양한 영역에서 '진보'와 '발전'을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특히, 의학의 황금기를 1846년 보스턴에서의 첫 마취의 순간부터 시작하여 1914년 제 1차세계대전까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고있다.
열악한 환경으로 산모의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 출산은 목숨을 거는 행위였을 것이다. 단지 '손을 씻으라' 라는 한 마디로 인해 전 세계 산모들의 목숨을 구하게 된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일화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또한 마취 없이 수술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인데 당시, 유능한 외과 의사란 수술 속도가 빠른 사람이라고 한다. 손이 느린 외과의사가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로 수술을 하던 중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환자를 상상해 보면 끔찍하다. 에휴~~
의료의 발달사에서 나이팅게일을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근대전으로 여겨지는 크림전쟁. 무기 기술이 발달했고 더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그러나 사상자의 대부분은 총알과 포격이 아니라 '전염병'과 '감염'으로 인해 발생했다. 영국 원정군 공식 사망자 1만 9584명 중 실제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은 10%라고 한다. 나이팅게일의 헌신이 아니었으면 더 많은 죽음이 있었을 것이다.
육체적 질병을 잊게 한 위대한 다윈을 거쳐 앙리 뒤낭의 적십자가 탄생한다.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수많은 전쟁을 치를 때마다 의학은 한 발 더 발전한다는 아이러니다. 남북전쟁을 거쳐 1860년대가 되어서야 소독제가 발견된 점도 놀라웠다. 그럼 이전에는 소독을 안 했다는 말인가?
책에 많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그중 윌리엄 할스테드가 간호사인 연인을 위해 만든 의료 장갑이 눈에 쏙 들어 온다. 그가 집중한 것은 외과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무균 상태의 의사의 손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가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당시의 의료시설 부족에 눈을 돌린 부분 인상 깊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새벽 2시에 자기 식탁 위에서 수술했고 출산 당시 과다출혈로 위태로운 여동생에게 수혈을 하고 수술로 살렸다. 그러나 자신처럼 유능한 외과의사를 만나지 못한 그는 코카인 중독으로 생을 마감했다니 마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다.
혈액형을 구분하고 혈압을 재는 등의 의료지식이 최근의 일임을 알게 되었고 상당히 놀랍다. 이렇게 발달한 의학의 시대에 살고 있음이 또한 감사하다. 만약, 이 책이 의학을 소재로 역사만 나열했다면 정말 어려웠을지 모른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각 시대마다 눈에 쏙 들어오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서술한 점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순간이다 보니 어떤 일화를 읽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또한 이 책은 찰스 디킨스의 문장, 당대의 위대한 지도자들, 루이 파스퇴르,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의 일화가 재미있게 소개 되어서 마치 소설을 읽듯 흥미로웠다. 성인 뿐 아니라 청소년 독자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그 시대 의학의 전설들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다.
#세상을구한의학의전설들, #로날트D게르슈테, #이덕임옮김, #한빛비즈,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사랑해유, #의학적진보, #인류생존의해법, #의학교양서, ##책리뷰, #북리뷰, #신간리뷰, #bookreview, #bookstr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