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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현혹된 믿음을 재고하다
이 책은 ‘경제’라는 ‘악’의 양면성, 철학적 대응과 경제사상을 통해 톺아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장 피에르 뒤피의 <경제와 미래>는 정치가 경제에 휘둘리는 현상을 날카롭게 짚어내면서 경제에 현혹된 믿음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국가의 모든 문제를 경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 원수는 변질한 정치인일 뿐
그는 경제가 정치를 예속하고 있다는 가장 결정적인 징표는 현대인들이 국가 원수로서 경제 전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경제 전문가로 인정받을수록 선출되거나 임명될 가능성은 더 크다. 경제학자들이 국가의 최고 지위에 올라 있는 것은 우리는 이미 보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 크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 원수는 변질한 정치인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오늘날 우리 경제는 우리 삶을 왜 이토록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을까?
경제가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봄으로써 답을 찾을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변신론은 도덕철학에서 공리주의로 옮아가게 했고- 신은 최선의 세상실현을 위해 약간의 악을 남겨두기로 했다, 또 그의 모나드(단자, 개인)론에서는 개인 시각에서는 악으로 보일지라도 전체 시각에서 보면 큰 선을 위한 희생이라고 본다.- 모다드론은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의 모태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루소는 인간의 악을 자기애와 다른 이기심으로 불렀다. 이기심은 편애를 낳는데 서로 비교하는 상대적 감정인 이기심에 탐닉하게 되면 자신의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타인의 불행에만 만족하려는 순전히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대화: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이 책 30쪽)
에밀 뒤르켐은<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제는 종교와 연관이 있다는 확신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상의 특징인 신성 상실(탈신성)이라는 종교적 과정을 겪으면서 공석이 된 자리를 경제가 차지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 말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국은 ‘경제’= 물신숭배, 모든 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우선한다. 인류의 문화, 인간 존엄, 인권, 불평등, 차별, 혐오 등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경제적 잣대가 은밀하게 드리워지고, 또 작동한다는 말이다. 자, 이렇게 경제는 폭력적이다. 자본주의 특히 소외와 착취에 관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경제는 약인가, 독인가, <폭력과 성스러움>의 두 얼굴,
경제는 마르크스와 오늘날 자본주의 비판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폭력의 원천인가, 아니면 몽테스키외로부터 하이에크에 이르는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 폭력의 치유책인가, 경제는 약인가, 독인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지은이는 새롭게 본다. 경제의 이면성 혹은 양면성은 경제 안에 폭력이 내재해있기도 하지만, 경제에 의해 폭력이 억제될 수 있다고, 즉 폭력과 성스러움이 함께 존재한다는 말이어서 때로는 약이기도 독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루소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애가 아니라 이기심의 발로라고, 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우리가 부를 원하는 것은 물질적 만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로부터 부러움이 가득 담긴 감탄을 사고 싶어서 부를 원한다. 공공연한 번영은 ‘도덕 감정의 오염’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참으로 이 말은 촌철살인이다. 경제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고드는 표현이다. 물질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 본래 가지고 있는 ‘허영심’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들의 수단으로 경제적인 부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마치 동물 수컷이 구애를 하기 위해 갖춘 화려한 외양마냥….
자기 초월성
자본주의 위기는 본질에서 보면 예측의 위기다. 시장경제의 중요한 가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정치가 자기 초월성의 중요한 원천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가끔은 자신을 초월하고 그리하여 미래를 향해 과감히 뛰어들 수 있게 해주지 못해서이고, 그 못해주는 것은 이런 능력을 상실한때문이다. 정치가 이 능력을 찾기 위해서 돌아볼 곳은 바로 정치에 남아 있는 성스러운 영역이다. 눈앞의 미래 외에는 다른 지평이 없는 경제는 위축되어 이제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국민을 가난으로 몰아넣으면서 폭력을 제어하는 능력도 상실하는 등 악몽의 세계로 몰고가고 있으니….
경제는 자기 초월 메커니즘에 따라 미래로 나아가지만, 목적지가 최악인지 최선인지 모른다. 정치가 제공해준 초월성을 가지고 경제가 그 조건을 뛰어넘을 때는 최선이지만, 경제는 정치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면…. 악몽인 것이다.
미래는 경제 이성과 정치 이성이 수렴될 수 있는 개념이다. 미래를 위한 조정, 사전 조정은 칼뱅주의,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다시 읽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 속에는 많은 이론을 소개한다. 지은이 장 피에르 뒤피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수치심이라고 한다. 정치가 경제에 조롱당하고 권력이 재정 관리인에게 조롱당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수치심. 이미 우리 사회에서 모든 곳에서 보고, 또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차 정몽구 재판에서는 법관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서 해야한다는 원칙을 저버리고, 한 술 아니 두 술 더떠 우국충정을 보탰다. 위대한 경제인의 구속으로 국제적인 경제 파장 우려 운운…. 결국 사회에 얼마간의 돈을 되돌려 놓으라는 선고를 했다. 이도 지켜지지 않아,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니, 우리 사법부의 판단기준은 법과 양심이 아닌, 법+양심+경제= 판단기준이다. 유전무죄를 확정적으로…. 또 보자. 삼성의 이재용이 정치를 가지고 장난하고 통제하고 희롱한 것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세계적인…. 운운으로 결국 교도소 밖으로, 그도 모자라 보너스로 ‘사면복권’까지 경제가 정치를 희롱한다는 말 밖에는 달리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경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알아서경제 앞에 비열하게 무릎 꿇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정당이 정파가 권력을 잡으면 경제의 혼란과 불안정이 깊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 개소리에 덜컥 겁을 집어먹고….
이책의 제목 <경제와 미래>란 경제 제국을 더욱 번창하게 한 경제가 미래를 대하는 남다른 유형을 의미한다. 정치가 스며들어 있어서 경제가 진정 정치경제학이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신념과 결단을 갖고 자신의 길을 열어간다는 의미에서 경제는 미래를 열어주었다고. 그런데 오늘날 그 관계가 위기에 봉착했다. 지금 경제는 미래가 없을지 모른다. 지금은 경제정치학이라고 불러야 제 격일듯하다. 우리는 왜 경제대통령을 외치는가?, 인권대통령, 통일대통령, 복지대통령을 외치면 안 되는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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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미래 (장 피에르 뒤피 著, 김진식 譯, 북캠퍼스, 원제 : L’Avenir de l’economie: Sortir de l’economystification)”를 읽었습니다.
저자인 장 피에르 뒤피 (Jean-Pierre Dupuy)는 사회 철학과 정치학, 과학기술 윤리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 출신 철학자로 에콜폴리테크니크와 스탠퍼드 대학 명예교수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시장이나 경제권력이 세계의 민주주의라는 근본 가치를 훼손시키고 퇴행시키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정치가 경제 앞에 무릎 꿇고 있음을 비판하며, 상대 정파가 서로를 공격할 때 주로 들고나오는 무기가 ‘시장’과 ‘경제’라는 점도 지적합니다. 정치가 시장에 굴복하고 그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재정관리자’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고도 이야기합니다. 특히 저자는 ‘위기’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굴지만 그들의 근시안적 태도로 인해 전 지구적인 위기에 봉착했음을 비판합니다. 많은 경제학자들, 심지어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라 하더라도 이러한 태도를 가진 자들이 많은데, 하나 같이 그들은 경제라는 지고의 선을 추구하는데 있어 걸림돌은 정치라고 주장한다고 저자는 지적하며, 실제 걸림돌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고 반박합니다. 저자 자신이 비판하고 공격하는 대상은 오늘날 현대 사회의 작동 원리에 있어 경제가 차지하는 위상이라 이야기합니다. ‘경제’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넘어서, 세상과 생각을 지배하며 장악해버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문명에 엄청난 파괴력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경고합니다.
이 책, “경제와 미래”는 사회 비평서이자 철학서입니다. ‘규제’를 악이라 규정하는 시장과 맞서 싸워야 하는 권력이 시장의 종복이 되어버린 시대. 이 시대에 문명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가치가 역전된 시대,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사회. 우리는 미디어에서 정치와 행정권력이 시장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으로 추상화되는 경제 권력은 새로운 대제사장이 되어 세상을 지배합니다. ‘경제’는 지상(至上)의 가치가 되었으며 ‘성장’은 지고지선(至高至善)이 되어버린 시대.
‘복부인’이라는 멸칭이 보여주듯 한 때는 부동산 투기를 부끄러워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에 한해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물신이 수치심도 잃어버리게 만든 시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이 책을 통해 경제에 몰입된 시선을 들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무엇이 더 중요한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와미래, #장피에르뒤피, #김진식, #북캠퍼스, #책과콩나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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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제와 악의 문제부터 경제의 자기 초월성, 앞으로의 문제로 종말의 경제와 경제의 종말을 살펴보고, 막스 베버와 칼뱅주의를 이용하여 경제 이성 비판을 논한다. 사실 거시경제학의 베이스에서 미래를 전망을 원했다가, 경제의 원론인 철학으로 접근하는 만큼 이 책은 철학적 논의가 태반이다. 지엽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달리니 기대했던 방향과는 멀어졌지만, 경제에도 철학적 사고가 필요함을 다시 확인한 기회였다. 경제에 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고찰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딱 한 마디로 요점을 하면, 이 책의 부제가 유효적절하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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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파르마콘이다. 파르마콘이란 약과 독의 이중적 성질을 모두 가진 무언가다. 파르마콘은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에 의해 크게 조명된 개념인데, 덕분에 파르마콘은 '야누스'의 뒤를 잇는 중의적인 가치를 지닌 또다른 상징어가 되었다.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문자'가 파르마콘이었다면, 프랑스 철학자 장 피에르 뒤피에겐 '경제'가 바로 파르마콘이다. 마르크스를 위시한 좌파경제학이 경제를 주로 독물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하이에크를 위시한 우파경제학은 경제를 주로 치유약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물론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들이 "경제가 해롭고 유독하고 폭력적임을 나름대로 인정"했지만 말이다. 가령 애덤 스미스는 경제가 도덕 감정을 타락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케인스는 경제가 완전고용이라는 균형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 실업과 일자리 위기로 고착되는 메커니즘임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경제의 폭력성과 성스러움 같은 파르마콘적 양면성을 강조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와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같은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소외와 착취와 같은 경제의 폭력적 양상을 조명했다. 반면에 몽테스키외로부터 하이에크에 이르는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에 의해 폭력이 억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경제에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가 폭력을 저지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경제에 의해 폭력이 억제될 수 있어 사회 질서의 붕괴도 막을 수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악에 대한 경제의 양면성은 폭력에 대한 성스러움의 양면성의 관계와 같다."(42쪽)
저자는 흥미롭게도 경제를 '종교, 정치, 경제'의 거대한 삼각구도 안에서 그려보는데, 이는 권력의 역사적 자리 이동과 일치한다. 권력이 종교에서 정치로 넘어갔고, 이제 다시 정치에서 경제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논리다. 그리고 경제는 종교와 연관이 있으며, 근대 이성의 탈신성화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공석이 된 자리(이를테면 '윤리')를 경제가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정치가 경제에 조롱당하고 권력이 재정 관리인에게 조롱당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느낀 수치심"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밝힌 바 있다.
경제의 폭력과 성스러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르네 지라르의 사상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성스러움의 양면성과 폭력과 성스러움이 일치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르네 지라르는 모방의 욕망성을 강조하는데, 저자는 경제야말로 '모방 욕망'이 마음대로 뛰노는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즉 경제는 욕망에 의해 작동하는데, 이 욕망은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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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경제 또한 사람들의 인식의 문제다. 사람들이 많이 알지 못하는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이란 책을 통해서 경제에 대한 자신의 이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단순히 마르크스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기술적으로 기계적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경제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경제 체제는 계속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가 벌어질 수 있었던 것 또한, 주요하게는 절제되지 않았던 신박한 금융가들의 투기가 있었던 것과 별개로, 미국 시민들은 월스트리트를 비판하면서도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그와 같은 일들에 대해서 적절하게 규제를 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지 못했다.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처음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인물처럼 보이기도 했을테지만,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대변할 사람이 아니라, 그 분노 저면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어야 했다. 샌더스처럼 말이다. 이번에 읽은 책 <경제와 미래>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헤게모니를 다룬 책이다. 자동적으로 작동하는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제가 왜 자동으로 작동하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 때문인지 경제라는 것을 충분히 수정 가능한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어쩌면 경제라는 것은 바꾸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을 바꾸는 게 정말 혁명이고 거대한 변화가 아닐까 싶다.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 어떠한 경제적인 질서에 종속돼 살아가는지 고민할 수 있는 능력. 어쩌면 이는 거대 권력이 계속 교체되더라도 시민들의 삶이 바뀌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대선 뒤에 이 책을 읽어보니 정말 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정말이지 궁금하다. 칼 폴라니를 생각하며 얼마 전 칼 폴라니라는 경제학자를 알게 됐다. 헝가리 출신이고 유대인이었으며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의 혼란스러웠던 유럽의 모습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미국으로 간 경제학자다. 그리고 그 위대하지만 난해해 이해하는 사람이 극히 적은 책 <거대한 전환>의 저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칼 폴라니의 간단한 생애와 그가 쓴 <거대한 전환>이 엑기스만을 요약한 책을 본 일이 있는데, 폴라니의 주장 중 하나가 시장이 사회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다. 경제는 시장으로 환원됐고, 시장으로 환원된 경제가 이제는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장 피에르 뒤피의 책 <경제와 미래>는 사회를 압도하게 된 경제의 모습을 비판한 책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경제의 전망과 같은 것이 아니다. 또한 경제가 계속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아니다. 사회라는 것을 지우고 있느 경제, 그리고 그 경제라는 것을 전부가 돼 버린 시장이 만들어갈 미래가 어떤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저자는 치열하게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저자가 이야기한 미래의 어느 한 순가에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저자가 이 책을 구상하고, 프랑스에서 이 책이 나오고, 그 책을 우리나라에게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한 출판사가, 이 책을 내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내가 다시 이 책을 다시 잡고 읽는데 까지의 기간을 생각하면, 저자가 생각한 경제로 모든 것이 화원된 미래 디스토피아의 한 순간 중 하나에 나는 지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024년 현재 내 주변의 경제 그리고 세계의 경제의 모습은 과거 내가 처음으로 교과서를 통해서 경제를 배웠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있다. 표면적으로만 자유무역의 기치아래에서 결쟁을 할 뿐 전략 산업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보호무역이 강세다. 거시적인 경제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안에서 시민들은 더 이상 금융에 대한 지식 혹은 뒷받침이 없다면 앵간한 현금부자이지 않은 이상 버티기 힘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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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거나 전망을 하는 건 좋은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정치, 사회, 경제 어디에나 근거없는 낙관론이 득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위험하다고 본다. 모든 상황이 항상 긍정적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맹목적인 낙관론도 우리의 생각을 잠식할 수 있을 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인 문제로 더 커질 수 있다. 경제학에 있어서 비관론은 경기를 한껏 어둡게 전망하면서도 종합적이거나 합리적인 근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고 본다. 보통 예측을 함에 있어서 요소나 수치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투자,소비,물가 등등. 그런데 간혹 전례없는, 몇 년만에 이런 구절이 나오거나 자주 보이는데, 이는 경제 전망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같지않을까? 그렇게 나는 본다. 비관론자든 낙관론자든 경제 관련 수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지 그들만의 직감, 직관으로 미래를 자기마음대로 그린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하는 소리인가? 이 책의 저자는 장 피에르 뒤피 파리 공과대학 및 스탠퍼드 대학 명예교수다. 프랑스의 대표 철학자시다.
목차를 알면 이 책의 내용과 컨셉 그리고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1장 경제와 악의 문제 / 2장 자기 초월성 / 3장 종말의 경제와 경제의 종말 / 4장 경제 이성 비판 총 4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경제학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이 아니라, 경제와 경제학 그리고 미래적인 측면이 결합된 내용이라서 더 흥미있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 분이 철학자이시면서 워낙 전문가셔서 내용을 보는데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만큼 심층분석을 하셨기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코로나와 대내외적 상황으로 경제가 좋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폭풍 전야, 오일의 공포, 절벽, 충격, 두 번째 금융위기, 일본화, 美 금리 인상, 저유가, 저성장, 가계부채 등등. 여러가지 단어가 나온다. 솔직히 이 단어만 듣거나 보기만해도 당장 내일 파국이 올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완전히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비관론적으로 볼 것까지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나라 경제가 확실히 좋아진다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올해는 말할 것도 없고 내년도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과도한 비관론하고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비관론자들의 내심은 선의일 게다. 잘못될 것이라고 예언한 점괘는 틀려도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잘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잘못된 점괘는 그 죄가 용서되지 않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동원해야한다. 지능, 결단력, 상상력 등등. 합리적인 비관론이나 낙관론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미래를 예상하고 이끌어가야한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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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믿거나 판단하게 되는 절대적 가치에 대해선 누구나 쉽게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더 나은 미래가치를 위해서 우리는 경제현상이나 경제라는 자체적인 의미에 대해 어디까지 해석하거나 어떤 판단 등을 통해 사회라는 부분에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경제와 미래>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한 경제논리나 지표에 대한 언급이 아닌 경제 철학적인 부분에 대해 다루면서 누구나 겪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주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이라는 서구 사회의 현실과 기준을 바탕으로 경제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오며 물론 우리의 정서나 문화와는 상이한 면이 있지만, 이를 통해 인간이라서 느낄 수 있는 경제를 바라보는 논리나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는 정도, 그리고 경제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현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경제사의 주요 흐름이나 변화상, 그리고 어떤 부침과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이 거대한 영역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책을 통해 판단해 보게 된다.
또한 경제가 정치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순간 또 다른 사회문제가 발생하거나 사회적 약자나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책의 저자는 경제가 갖고 있는 절대성이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계속해서 강조하며 우리가 이를 막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의 설계를 위해선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도 잘 표현하고 있다. <경제와 미래> 무조건 잘 될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나 일반화를 저지르게 될 경우 어떤 잘못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경제와 정치, 사회라는 분야가 어떤 형태로 작동하게 되며 이를 힘의 원천으로 사용하게 되는 또 다른 사람들이나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면 어떤 부정적인 요인과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지도 책을 통해 읽으며 느끼게 된다.
<경제와 미래> 미래가치나 더 나은 사회를 바라거나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우리는 경제를 바라보는 기준이나 방식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서도 안되지만 더 중요한 가치는 경제를 바라보며 사회변화나 각 요소에 부합되는 문제에 대한 진단, 또한 사람들이 경제로 인해 현실에서나 심리적인 요인으로 어떤 부분에 주목하며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도 책을 통해 더 나은 형태로 판단해 보자. 다소 어렵고 철학적인 느낌이 강한 저자가 말하는 <경제와 미래> 책을 통해 읽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나 경제를 바라보는 기준 등은 무엇인지, 배움의 의미로 접하며 활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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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미래
이 책은 모든 현대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제는 악이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과 함께 세뇌수준에 믿음을 포함한 위험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장 피에르 뒤피 저자는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도 어쩌면 그 위험을 느낀 것에 대한 설명들을 해주어 사회적인 주위들을 환기시켜준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 사람인지라 경제에 대한 외침들을 줄곧 들으며 살아왔다. 다시말해 누군가의 말투처럼 갱제를 살리겠습니다. 라는 구호는 우리 모두의 잠재의식속에 깊히 뿌리박아왔다. 사실 경제는 지금도 정치인들의 구식 구호로 몇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외쳐대고 있다.
과연 경제는 진리인가? 저자는 이 책의 핵심인 합리적 비관론이 있어야 함을 말하며 그 전제를 두고 경제에 대한 외침의 경고성을 비판한다. 저자는 경제와 악의 문제를 대두 시키며 경제에 의한 윤리의 타락을 말해주고 경제 이성 비판을 통한 지배 전략의 문제점들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정치를 뉴스 뿐 아니라 어디에서도 접할 수가 있다. 그것은 나라의 운명이 마치 경제에 달려있음을 매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과 같다. 경제에 대한 어떤 합리적인 설명들이 주어지지 않을만큼 말이다. 이것은 맹목적인 믿음을 심고 그것을 받아들여 사람들이 당연하듯이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한몫한다.
이러한 것들이 나중에는 큰 위협이 되어 최악의 순간을 가정한 경고들을 저자는 말해준다. 무엇이 사회물줄기를 지나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어도 붙잡고 이용하고 인간성과 사회를 파괴하듯이 경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동물들의 습성들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경제와 미래는 매우 적절한 제목이다. 하지만 미래에 오늘날과 같은 무소불위가 되어선 안된다. 이 책을 현대인들이 정독해야만 하는 아주 강력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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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현혹된 믿음을 재고하다.
북캠퍼스에서 출판한 장 피에르 뒤피 교수의 <경제와 미래>는 정치와 경제의 역학 구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장 피에르 뒤피는 파리 공과대학(에콜폴리테크니크)과 스탠퍼드 대학의 명예교수이다.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1941년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주로 사회 철학과 정치학, 과학기술 윤리를 강의했다. [ 경제와 미래 책날개 중 ]
종교적 신념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기를 지나 경제는 도덕과 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학문과 신념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개인은 자신의 미래를 경제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자신도 모르게 ‘경제인’이 되어버린 시민들이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것에 경제에서 동떨어진 시선을 가진 사람은 경악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 문제의 핵심은 경제다. 저자는 사회의 작동과 개인적 삶에서 경제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의심을 보낸다. 경제는 세상과 우리 생각에 침범하여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여긴다.
경제는 미래에 대해 풍요로움을 제공하며 위치를 다졌다. 정치가 경제에 스며들었던 정치 경제학이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신념과 결단을 갖고 자신의 길을 열어나간다는 의미에서 경제는 자신의 길을 열었다. 이제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위기에 처했다.
애초에 경제학을 창시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전 저작인 <도덕감정론>을 모태로 한다. <도덕감정론>은 사회 철학에 관한 철학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이다. 애덤 스미스에게 부는 타인의 시선을 끄는 것이며 그 때문에 사람들은 부를 욕망한다고 했다.
경제의 의미가 ‘절약’이라는 애초의 의미에서 무한 성장을 욕망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무한 성장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사회의 온갖 재앙이 제기하는 위협은 그 재앙이 도덕적이든 자연적이든 산업과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든 간에 그 잠재적 희생자들인 현대인은 재앙이 임박해 있음을 믿기 힘들어한다.
사회에 변동을 가져오는 위기가 등장할 때면 경제학자들은 ‘위기’를 언급할 권리를 독점하고 있다. 모든 문제는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으며 정치는 경제를 보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과연 경제 체제는 자연과 같이 인간의 간섭 없이 작동하는 것인가?
저자는 <경제와 미래>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정치를 외면하고 경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점에 주목한다.
나 역시 신문 지면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다 정치인들의 이전투구의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체념과 함께 외면해 버린다. 정치는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기 위한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철저하게 외면받는 학문으로 전락해 버렸다.
저자는 경제 위주의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초래하고 있는 미래를 걱정한다. 정치는 예언적 차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정치를 경제의 하인으로 만들고 있는 경제적 속임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사람의 정치가 물자의 거버넌스에 자리를 내주고, 정치의 이성이 경제의 이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시장’의 추구하는 미래에 감시의 눈길을 보내야 한다.
<경제와 미래>는 철학과 정치학을 강조한 저자의 글이라 현대인의 공감을 받을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경제에 매몰되는 세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점에선 주목할 만하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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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뒤피는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로, 그의 책 <경제와 미래>는 경제의 노예로 전락한 정치와 경제가 그 강력함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와 사회의 미래에 대해 경계를 촉구하는 철학서이다.
책은 프랑스인 저자의 저술을 번역한데다 작가의 철학적 성찰을 담았기 때문에 난해한 부분이 있는 반면 경제를 바라보는 깊이있는 시각 또한 확인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저술이 경제를 향한 ‘관념적 포고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범위의 강력함과 그 강력함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한다는 절실함을 담고 있다. 경제라는 정체를 진단하고, 그 폭력적인 특성들을 서술하는 책은 그가 영향을 받은 르네 지라르 등의 다른 철학적 관념들과 사상들이 담겨 있으니 철학서적의 책읽기를 즐겨하는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책읽기가 될 수도 있겠다. 로보트 스키델스키가 그의 책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을 통해 경제학의 문제와 그 변화방향을 제시했다면, 장 피에르 뒤피는 좀 더 무겁게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경계와 이에 맞서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하겠다.
타인의 욕구를 모방하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이나 성스러움 등의 철학적 내용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이런 철학적 내용들을 독자 주변의 삶과 사회의 모습으로 직접 투영해 볼 수 있다면 훨씬 더 삶에 녹아든 장 피에르 뒤피의 철학을 경험해 보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부를 얼마나 가져야 만족할 것인가’같은 문제는 ‘남보다 많이’같은 결론을 생각해낼 수 있지만 애초에 ‘부에 집착하고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올드미디어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남의 욕구를 모방하는 현대인의 행동을 떠올려볼 때 그 유사성을 발견하기 쉽다.
철학책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일부 난해한 부분이 집중하기 어려운 면도 있겠으나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들에 대한 설명을 함께 경험할 수 있고 경제가 지닌 힘과 사회안에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무척 흥미있는 책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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