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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인간사랑 #국화와칼 #문화인류학자 #루스베네딕트 # 역자박종일 책에도 인연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은 이 책 『국화와 칼』이 처음이었다. 2년 전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선물받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몸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서 중간까지 읽다가 멈춰버린 책이었다. 그 뒤로 한 일여 년간 블로그 활동을 중단했다가 작년 8월부터 몸이 조금씩 회복되어,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2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 책의 작가가 일본을 너무 띄워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참 거북스러웠는데, 아마도 이런 내 심리가 신체로 확장되어 몸이 아프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느낌의 결이 완전히 다르게 전해진 것도 이 책이 처음이라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 책의 작가는 일본을 전혀 띄워준 적도 없었는데, 예전의 나는 일본에 대한 연구자료를 토대로 지어진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옹색한 마음으로 이 책을 조우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런 내마음을 알았는지 그당시 이 책은 나를 완강히 거부했다. 마음을 열고 관용과 수용의 마음으로 이 책과 만나니, 책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렇게 책과 사람 간에도 만나는 때가 정해져 있다는 신비한 인연의 시기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일본은 아직도 참회와 사죄를 할 줄 모른다. 지금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철면피한 일본인들에게 아부하는 친일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이 여실히 드러나는 현실이 몹시 역겨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의 이런 인간성의 근본이 어디에 기인했는지를 모르기에 더욱 답답했던 차에 이 책을 읽으니,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손자병법에서 다루고 있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말도 있듯이, 우리는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일본인들의 관점과 관습,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파헤친 이 책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서 우리와 닮은 듯 전혀 다른 이중성을 가진 일본인들을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유형』/루스 베네딕트: 박종일 역/ 도서출판 인간사랑, 2022년 4월 30일이 책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 작가는 배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했다. 우연한 기회에 뉴스쿨 대학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매료되어 34세의 나이에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하여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4년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문화의 패턴』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인종』을 출간함으로써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1943년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였고, 1946년 일본 문화를 심층적으로 파헤친 『국화와 칼』을 출간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그해 미국 인류학회 회장에 선임되었다. 문화인류학의 중요성을 전세계에 알린 루스는 애석하게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1948년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책날개 발췌, 역자 후기 中) "한 민족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어떤 원시 부족사회에서든 선진 문명민족에서든 인류의 행위는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배워온 것이라는 인류학의 전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행위와 견해가 아무리 기이해도 개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은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p.34) 이 책은 작가의 감사의 말로 시작하여 총 13장의 방대한 분량으로 일본인들의 풍속 및 문화와 관습 그리고 가정과 사회생활 등의 생활방식을 통해 그들의 중요한 관점을 살펴보고, 이들의 독특한 인생관과 도덕체계를 통해 일본인들의 이중적인 성격에 대한 원인을 낱낱히 파헤치고 있다. 1장은 연구과제로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인 "국화와 칼"은 일본인들의 이원적인 성격에 대한 상징과 묘사로 대체된다. 일본인들은 국화재배에 심취하는 심미주의를 찬양하면서도 칼로써 위상을 자랑하는 무사의 영광을 동시에 찬양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이런 이중성이 일본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극도로 호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온화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풍속과 관습 등을 알아볼 필요가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2장은 "전쟁 중의 일본인"이라는 주제로 일본인과 서구인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의 차이는 일본인의 인생관과 관점을 이해할 수있는 중요한 자료가 됨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문화와 일본인의 행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목적은 그들의 신조와 우리의 신조의 차이가 군사적인 분야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내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해답을 찾아내야 할 일본인의 성격과 관련된 많은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p.45) 일본은 전쟁의 원인에 관하여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대동아 사상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서양세력들을 몰아내어 동아시아 국가들의 등급질서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일본인들의 구미에 맞는, 일본이 창조해 낸 "일본팽창주의"에 근거한 환상일 뿐이다. 일본인은 계급제에 대한 신앙과 신뢰가 두텁다고 하는데, 이것이 일본인의 고유한 태도이다. 또한 그들은 '세계의 눈'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문화 속에서 뿌리내린 그들의 정신이다. 일본은 투항을 절대 수치로 여긴다. 이것은 일본인의 의식 깊은 곳에 각인된 하나의 주홍글씨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연합군에 투항한 일본군 포로는 사실상 명예를 실추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으로 취급된다. 그러므로 본국 송환을 희망한 일본군 포로는 극히 일부였으며, 그들은 연합군에게 모범적인 포로 그 이상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180도 달라진 일본군 포로들을 통해 일본인은 상황에 따라 태도와 이념이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런 문제는 그들을 제약하는 생활방식 전체, 각종 제도의 작동양식과 그들이 학습해온 사고와 행동의 습관에까지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3장에서는 "각자의 합당한 위치"란 제목으로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관념의 기초가 되는 계층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계층제가 시작된 시기와 함께 봉건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계층제가 갖는 의미와 의의를 고찰한다. 4장은 "메이지유신"이란 제목으로 근대 일본의 형성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메이지정권을 장악한 정치가들에 의해 천황을 신격화시켰으며,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모든 것이다"라는 믿음과 신앙을 고취시켜줄 '국가신도'를 만들어 천황을 이용한 중앙집권적 통치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들은 계층제를 이용하여 군대를 최고의 지위로 올렸으며, <정한론>을 내세워 조선을 침략하여 일제의 손아귀에 넣었다. 일제의 계속되는 수탈과 만행으로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겪어왔다. 메이지유신으로 봉건시대의 막을 내리고 근대 일본으로 발전을 이룬 이토 히로부미가 만약 안중근 의사의 저격에도 죽지 않고 살았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1880년 헌법 기초자인 이토 히로부미는 서구 각국의 헌법을 연구한 뒤에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의 자문을 받아 1889년 헌법을 제정할 정도로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들의 헌법은 백성에게 국가 내부에서의 지위를 정해주고 의회를 설치했다. 따라서 헌법 안에서 이들의 계층제가 더욱 확고한 지위를 얻게 되었고 계층제의 관습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5장에서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채무자"라는 제목으로 일본인의 오래된 전통문화와 관련한 "온(恩)"과 관련한 설명이 이어진다. "일본에서 의(義)란 각자가 서로에게 부채를 지는 큰 네트워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 각자에는 자신의 조상과 자신의 동시대인이 다 포함된다." (p.136) "온"이란 최선을 다해 짐, 부채, 부담을 지는 행위를 뜻한다. 일본인들은 이웃관계와 예부터 뿌리내린 계층관계로부터 온의 특별한 의미를 알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낯선 사람이 베푸는 우발적인 호의는 최고의 기피 대상으로 여긴다. 그들은 온의 결과에 얽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온을 입었을 때 모순된 정서를 보인다. 공인된 사회적, 인적관계에서 온을 입었을 때 일본인이 전력을 다해 온을 상환하려는 동력이 된다고 한다. 6장에서는 "만분의 일의 보은"이란 제목으로 "온"을 채무로 인식하여 갚아야 하는 내용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온"이란 한 번 받아들이면 우선적이며 상존하는 채무로 인식하며, 채무를 지고 있다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그것을 갚는 것이 미덕이라고 본다. 특히 "온"에는 무한하게 갚아야 하는 "기무"가 있으며, 기무에는 부모의 온에 보답하는 "코"와 천황의 "황은"에 보답하는 "추"가 있다. 둘 다 강제성을 띠며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게 되는 것이 "기무"라고 한다. 7세기 이후 중국의 윤리체계를 받아들이면서 충(추)과 효(코)는 받아들였지만, 진(仁)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기무를 제약할 덕목이 없다. 그래서 아무리 악질적인 부모라 할지라도 일본인은 반드시 효도로 보답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일본의 천황은 비록 실권은 없었지만 일본인들의 천황에 대한 "추"의 영향으로 '신성한 추장'으로서 최고 제사장이자 일본통일의 상징으로서의 위상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전세계는 추가 발휘하는 믿을 수 없는 위력에 놀랐다. 전쟁 중에 일본인은 결사항전을 외치며 끝까지 전쟁의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천황이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자 그들은 전쟁을 멈추었다. 7장은 "기리는 가장 감당하기 어렵다"는 제목으로 유한대의 영역인 '기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기리에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사회에 대한 기리"로 상환의 의미를 갖는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로 명예와 유사한 의미로 자신의 이름과 평판에 오점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책임을 뜻한다. 일본인이 기리를 이행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 앞에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무'는 어떻게 하더라도 갚을 수 없는 무한대의 영역이지만, '기리'는 갚을 수 있는 유한대의 영역이다. 이들은 상호 간에 오고 간 내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오래된 관습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방명록과 같은 성격일 것이다. 나도 경조사 때 방명록을 보고 축의금 또는 부조금을 내고 있으니, 이 부분은 우리문화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이어지는 8장에서는 "오명 씻기"란 제목으로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사회에 대한 기리'는 선의의 배려에 대한 보답이며,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는 비방 또는 모욕에 대한 보복이다. 일본인은 은혜를 강렬하게 받아들이는 만큼 모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기리'를 지키고 오명을 씻는 일이라면 복수를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빚의 청산일 뿐이다. '이름에 대한 기리'가 위협을 받았을 때 공격의 창끝을 복수가 아닌 자신에게로 향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지만 반드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내면을 향한 공격은 때로는 단순히 우울과 무력감, 권태 등으로 표출된다. 일본인은 군국주의란 목표를 가지고 공격의 창끝을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로 돌렸다. 대외적인 절대주의 침략에서 그들은 자신을 다시 발견했다. 그러나 전쟁의 실패로 그들은 매우 선량한 태도로 패전과 그에 따른 일체의 후과를 받아들였다. 상황적응에 뛰어난 현실주의는 일본인의 '이름에 대한 기리'의 밝은 면이다. 9장은 "인정(인간적인 감정)의 세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계속된다. 일본의 도덕준칙은 극단적인 상환의무와 극적인 자기절제를 요구하며, 개인의 욕구는 마음속에서 뿌리 뽑아야 할 죄악으로 치부해왔다. 그런데 일본의 도덕준칙이 오감의 향락에 대해서는 관용적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놀랍다. 그들은 육체적 향락은 좋은 것이며, 개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향락은 분수를 지켜야 하며 인생의 중대사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도덕준칙은 그들에게 늘 고도의 긴장상태를 요구한다. 일본인은 연애와 결혼이 일치하는 것을 이상적이라 여기지 않는다. 이들의 향락문화는 어이없게도 전쟁 중에도 이어지는데, 그들의 전쟁터에 '위안부'를 설치해 점령지의 어린 처녀들의 인권을 짓밟고 농락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영국 외교관이자 일본연구가였던 조지 샌섬은 "그들의 역사를 통틀어 일본인은 악의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이 결핍되었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는 악의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기를 회피했던 것 같다." (p.259)고 말한다. 일본인은 선과 악의 구분을 따로 두지 않으며, 두 가지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온화한 영혼"과 "거친 영혼"으로 두 영혼은 다른 상황에서 다 같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일본인의 이중적인 성격의 근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10장은 "도덕의 딜레마"란 주제로 일본의 흔들리는 도덕체계에 대해 상세하게 파헤친다. 일본인의 인생관은 추, 고, 기리, 진, 인정 등의 공식에 표현되어 있다. "일본인은 하나의 행위에서 다른 행위로 전환할 때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관 속에 동일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듯이 일본인의 생활에서는 모순이 그들의 인생관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일본인에게는 '악의 세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p.270) 일본인에게는 선행의 시금석으로 작동되는 보편적인 도덕이 없다는 것이 최대의 딜레마이다. "여러 문화에 대한 연구에서 수치심을 바탕으로 한 문화와 죄책감을 바탕으로 한 문화를 구분하는 것은 인류학의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도덕의 절대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의존하여 사람의 양심을 발전시키고자 주장하는 사회는 '죄책감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법죄는 아니지만 온당치 못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 자책감에 더하여 수치심을 느낀다." (p.297) 그러나 "수치심의 문화에서는 고백과 참회의 관습이 없다. 그들에게 행복을 기도하는 의식은 있어도 속죄를 기도하는 의식은 없다." (p.298)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수치심은 도덕이란 중책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인은 이 수치심을 도덕체계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들은 수치를 아는 것이 덕행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11장에서는 "자기수양"이란 제목으로 일본인이 자기감시의 탓으로 돌리는 수치심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중압감으로 작용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일본민족의 인생에 대한 각종 관념을 자기수양의 세계와 빗대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죄책감은 선한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는 양심과 관련이 있는데, 이런 의식이 마비된다면 죄책감을 갖지 않을 것이고, 반사회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의 분석은 다르다. 그들의 철학에 의하면 영혼 깊은 곳에는 선이 존재하며, 그 선의 충동이 직접 행동으로 표출된다면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행을 실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행에 힘쓰며, 무아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자기감시의 수치심을 소멸시키려 한다. 그것은 자아의식과 갈등으로부터 철저한 벗어남이다. 이러한 자기수양의 철학은 일본 문화속에서 개인생활의 경험과 분리되면 부적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될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12장에서는 "아이는 배운다"라는 주제로 일본인들의 육아방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문화에서든 도덕적 규범은 언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자녀에 대한 부모의 태도를 통해 대대로 전해진다. 이방인이 한 나라의 육아방식을 모르면 그 나라 생활 속의 중대한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장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인들의 이중성에 대한 뿌리와 근간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유년기는 비교적 사회적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를 누린다. 특권을 누리는 유아기에는 의무를 이행하게 만드는 두 가지 요인이 있는데, 하나는 생후 3~4개월부터 이어지는 혹독한 배변훈련과 자세 바로잡기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를 내다 버리겠다는 부모의 조롱과 위협이다. 이런 유년시절의 경험을 통해 아이는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고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엄격한 속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들의 "인정(인간적인 감정)"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유년기 경험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일본인들은 성인으로서의 삶 전체를 통해 생활의 자유로운 영역에서는 유년시절을 다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놀라운 연속성이 일본인의 이중생활의 전기와 후기를 연결하고 있다." (p.367) 유년기에 형성된 인격의 한 측면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아이다.' 이러한 측면들이 일본인들의 이중성에 대한 중요한 뿌리가 될 수 있다. 13장에서는 "패전 후의 일본인"이란 제목으로 이 책의 내용을 갈무리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이중성은 양자택일의 윤리를 낳았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합당한 지위를 찾으려고 했고, 결과는 패배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받은 훈련 덕분에 방항을 바꿀 줄 안다. 1930년대 일본은 "군국주의는 세계로부터 존경받기 위한 수단이며, 무력과 약탈로 숭베를 획득하는 것이 군국주의"라는 보편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윤리에 의하면 개인은 자기행위의 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며, 실수의 자연스러운 결과로부터 그들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일본의 사회적 압력을 말하자면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심리적 압박이 심한 생활에 감히 저항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군국주의자에게 이끌려 끝없는 희생이 쌓이는 길을 가야만 했다. 이런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 그들은 독선적으로 변했고, 비교적 관대한 도덕관념을 가진 동방의 다른 민족들을 멸시해왔다. " (p.400) "일본에 가본 적이 없는 문화인류학자가 단지 몇 년 사이에 이처럼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일본민족과 일본인에 관한 깊이 있는 논점을 형성했다는 것에 대해 일본학자들은 찬탄해 마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책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신흥 문화인류학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역자후기 中) 이 책『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참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문화인류학자로서의 위상을 높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제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미국은 그들의 관점과 성격을 파헤치기 위해 루스를 임명해 일본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이 방대한 보고서를 불과 1~2년 사이에 작성했다는 것이 정말 믿겨지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1934년 에 출간된 『문화의 패턴』이란 책에서 '인간은 사회적 산물이며, 관습이 인간을 만든다. 문화는 사상과 행위의 일관된 유형이다. '문화는 하나의 전체이지만 개체의 차이를 배척하지는 않는다'라는 "문화상대주의"를 통해 문화는 인격의 확대판이며, 인격은 문화의 축소판이다."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다. 이 책은 일본인들의 개별적인 행위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전체를 다루는 "문화 상대주의"에 근간을 둔 책이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한 인류의 습성과 관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루스의 일관된 견해이다. 일제의 압박 속에 나라를 빼앗긴 채로 살아야 했던 35년 간의 치욕의 역사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던 우리의 유전자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우리는 부지불식 간에 깨닫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들이 지금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혹자는 이 책에 관하여 몇 십년이 흘렀는데, 과거의 일본인들과 현재의 일본인들이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느냐면서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의 습성과 관습과 전통이 얼마나 뿌리깊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은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아 솔직하게 쓴 개인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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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그동안 잠시 멀리했던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책상 위에 쌓여 순번을 기다리던 책들을 읽고, 신간 중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제 마땅한 책이 없다. 다시 신간을 살펴보아도 딱히 마음을 끄는 책이 없길래 묵혀두었던 책들을 뒤적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국화와 칼]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책이다. 그럼에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책으로까지 읽어가면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본인을 접했고, 적지 않은 일본 출장을 통해 나름대로 일본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궁색한 이유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감정과 선입관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 [국화와 칼]은 2차대전 중 일본 연구에 투입된 저자가 일본에 관한 자료 수집만으로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일본의 종교, 정치, 경제, 또는 그들의 가정을 다룬 책이 아니라 일본인의 생활방식에 관한 그들만의 각종 관점을 연구한 책이라고 말한다. 즉 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무엇이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로 만드는지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다. 전쟁 중이라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었지만, 미국에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일본인들이 많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연구 방법은 문화인류학의 획기적인 도전이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인생관, 개인상호간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에 품고 있는 관념의 기초가 되는 온(恩)과 그 기무(義務)로서의 코(孝)와 추(忠),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등의 공식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설명을 한다. 또한 일본인에 대한 서구인들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각 영역마다 존재하고 있는 행동준칙과 각 영역은 종합되지 않고 각기 다른 기준으로 작동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특히 전쟁 중에 나타난 일본군의 천황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 계층제에 대한 신앙과 신뢰, 물질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의 강조와 같은 심성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 일본인의 심성으로 굳어졌는지를 그들의 근대사를 통해 살펴본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일본인의 심성은 같은 유교 문화권인 동양 다른 나라의 심성과 다르고, 자유와 평등 같은 민주주의 기본이념을 토대로 하는 서구인과는 아주 다른 이유를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책이 봇물처럼 쏟아진 적이 있다. 지금도 간혹 심심찮게 출간되지만 대부분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역사 왜곡이 되풀이될 때마다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며 각기 자신들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들이다. ‘일본은 있다, 혹은 없다’와 같은 자극적인 문구를 제목으로 내건 책이 있었는가 하면,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민성을 토대로 비교한 책, 혹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책들 모두는 일본에서 공부했거나 특파원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즉 자신이 보고 느낀 일본과 일본인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찾아 그들과 그들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와의 비교를 통해 그들을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말하는 일본(인) 이야기는 우리가 일본을 알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와 다른 그들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일례로 일본인의 대인관계를 말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혼네와 다테마에(本音と建前)’를 말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내면화되어 그들의 심성에 자리잡게 되고, 그로 인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분석하기보다는 피상적으로 나타난 모습에 천착하여 설명한다는 느낌 등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에 대해 잘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어이없는 행태가 반복될 때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그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 혹은 개인의 성향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의 ‘예의 바름’뒤에는 성별, 나이, 집안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나아가 개인상호간,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계층의 차이에 대한 믿음과 ‘온’이라는 채무에 얽히고 싶지 않은 희망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혼네와 다테마에’는 결국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보호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자동적으로 주어진다는 기무(義務)를 갚아야 한다는 부채 의식인 ‘기리’가 ‘수치심’과 함께 그들 도덕 체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고, 이것들은 유아기에서부터 끊임없이 교육되어진다고 한다. 결국 어려서부터 그들의 몸과 마음에 체화되는 것은 알려진 영역 안에서 정해진 의무를 다하는 ‘각자의 합당한 위치’라는 계층에 대한 관념이고. 이것이 그들이 느끼는 안전과 안정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언제나 ‘잇쇼겐메이’를 외치고, 끊임없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리’를 행하고, 상대적으로 낯선 사람이 베푸는 호의를 극도로 기피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책을 읽고 나니 많은 사람이 이 책에 대해 찬사를 보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일본을 방문한 적도 없는 저자가 자료 수집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책의 내용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심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 책이 출간된 때가 1946년이라니 지금으로부터 근 80여 년 전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을 할 때 일본인들과 만나고 일하면서 가졌던 많은 의문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잠시 묻어놓고 그들을 제대로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극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통해 일본(인)을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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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의 명작에 속하는 <국화와 칼>은 1944년 미국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인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다. 그는 일본에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는 후평이다. 그는 자료들을 모으고, 그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정신과 행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일본인의 이중성이다. 그게 제목이 되었고 저자가 분석해 나가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밝고 친절한 외양에 비수를 숨기고 있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만나면서 궁구의 길을 열고 있다. 그 특징을 서양인과 비교해서 제시하기에 더욱 잘 다가온다.
미국인들은 일본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 이런 적을 대할 때 기존의 방식으론 안 되었다. 그들은 서양 전통과 전혀 다른 완전히 무장되고 훈련된 국민들과 싸웠다. 그 싸움에는 상대의 이해가 무엇보다도 요긴했다. 즉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는가 방향이 되었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이해불가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제목처럼 국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일본은 <그러나 또한>이라는 말이 지극히 통용되는 민족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진주만 폭격을 당했고 태평양의 많은 섬에서 그들과 조우했다. 미국이 잘 훈련된 그들과 상대하기 위해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 나라에, 그 민족에 이런 방법을 통해 다가갔다. 이 작업은 민족 간에는 차이가 있다는 강인한 신념과 그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성을 함께 필요로 했다. 그리고 습관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전쟁에는 관행이 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관행이 일본인에겐 전혀 맞지가 않다. 그 까닭은 정신적인 문제에 있다. 서구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공존공영, 자유무역을 위반한 것에 대한 응징이다. 하지만 일본이 전쟁을 대하는 것은 달랐다. 일본은 모든 세계가 계층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자는 자신에 맞는 위치를 가져야 한다. 일본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이다. 동양이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또한 전쟁에 대응하는 자세도 너무 다르다. 서구는 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항복을 한다. 그래서 생명을 구한다. 일본은 그것을 비겁한 짓으로 규정한다. 전쟁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고,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으로 항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쟁에서 의무관이 동행하는 경우도 드물다. 전쟁은 죽기로 싸우는 것이라는 관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계층제도가 중시된다. 미국에서는 각국의 불가침, 타국의 내정 불간섭, 국제간의 화해 및 신뢰, 평등 등 기본적으로 존중되는 신념을 보인다. 그러기에 이들 사이의 간극은 좁힐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분노를 가지고 이런 계층제도와 싸운다는 명제다. 이것이 일본과의 전쟁을 하는 그들의 명분이 된다. 하지만 위치에 관한 일본인들의 사고는 확고하다. 고기는 물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장남은 맏형으로 성격을 가져야 한다. 즉 책임감과 특권을 통한 위치 얘기를 한다. 일본은 계급제도가 철저했다. 사무라이, 농, 공, 상 등으로 계급화 되어 있었고 그 정점에 쇼군이 있었다. 쇼군은 무사의 수장이다. 또한 쇼군에게 정치를 일임하는 천황이 있었다. 천황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그 위치에 있으면서 일본 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것은 신앙적인 성격을 지니고 나타난다. 천황이 속세의 일에 관여하고 안 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막부가 개설되고 통치를 해나가면서 이들은 더욱 분명해졌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는 일이 규정되어 있고, 그것은 보호를 받았다. 또 계급간의 이동이 어느 정도 공인되었다. 즉 일본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보호받는 입장이 되었고, 계급간의 충돌 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 용인하면서 필요할 때는 능력에 따라 이동도 가능한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각자의 신분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다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진 신에게 의탁하는 성향을 만들었다. 일본과의 전쟁 시 미국이 어려움을 느꼈던 이유다.
왕정복고를 모토로 이루어진 메이지 유신은 서구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보수적인 고립정책을 실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정부가 취한 방침은 반대였다. 다이묘의 과세권을 없애고, 다이묘 및 사무라이들에게 정부에서 봉록을 지급했다. 번의 장벽이 철폐되고 계급 사이의 불평등이 철폐되었다. 이런 개혁은 메이지 정부 수립을 위해 싸웠던 대다수의 소망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선침략>이라는 계획 실행을 지지했고, 봉건제도 회귀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신정부 세력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면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세력은 누구인가? 그들은 사무라이 하층 계급과 상인계급의 <특수한 연합> 세력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일본을 세계열강의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 메이지 정치인들은 번, 사무라이, 농민 등에게 새로운 위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메이지 정치가들은 종교적인 분야의 일은 개인 신앙의 자유에 맡겼다. 단지 <국가 신토>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영역이다. 이는 국기에 경례를 하는 것과 같은 국민적 상징에 정당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했다. 천황 숭배는 이 바탕에 있다. 조금도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국가적으로 충성을 가르치는 일은 지당한 것이었다. 그들의 숭배는 천황과 신사다. 그것은 하나의 생활로 당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사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찾고 즐기는 공간이다. 군 수뇌부는 천황을 직접 배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들은 천황의 이름을 빌어 그들의 방책을 강제할 수 있다. 군부가 내각을 조종할 수 있는 이유다. 고위 현역 장교가 육. 해군 장관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어떤 내각도 성립할 수 없었다. 군부의 독자적인 행동은 이런 힘의 논리에 있다. <만주사변>도 이런 구조 속에서 일어났다. 경제 부분도 먼저 국가가 조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민간에 헐값에 넘겼다. 중공업부터 손을 댄 일본 산업은 종교분야와 마찬가지로 이원성을 가졌다. 귀족제의 필요성이다.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가문을 선택하여 ‘알맞은 지위’를 갖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런 재계의 유력 가문과 연을 맺으며 비호하여 재정적 권리를 가졌고, 재벌은 막대한 이익을 얻는 상호보완적인 형태가 되도록 했다.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요구한 <알맞은 지위 수용>이라는 도덕 체계가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여 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았다. 일본군 장교나 사병은 점령국에서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에게 낮은 지위지만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다른 국가에서 보면 그들 패악한 생각의 진원지가 바로 메이지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호 전쟁에 대한 관점이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이 글은 메이지가 전쟁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전쟁은 일본인의 <위치 정하기>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가, 막부시대가 그런 면면을 잘 이어오고 있다.
전쟁 중 일본인들은 극단적인 자기희생을 보여준다. 또 서구인들이 화낼 필요가 없는 일이라 생각되는 곳에 곧잘 화를 낸다. 이것은 세상에, 조상들에 대한 책무 때문이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의 채무와 책임에 큰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恩(은)의 개념을 중요시 한다. 특히 천황의 恩(은)을 일컫는 경우, 무한한 헌신이란 말로 사용된다.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 자체가 황은이라는 개념의 틀 속에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전쟁 중 그들이 보이는 천황에 대한 경배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 恩(은)은 부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기에 恩(은)을 입혔다는 말은 금기어 비슷하게 인식해도 된다. 그 말에 일본인들이 성을 내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된다. 즉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 일본인들의 <은혜>와 관련되는 일에 성을 내는 일을 수용할 수 있다. 일본인 속담에 “恩(은)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란 말이 있다. 恩(은)에 대한 일본인들의 의식을 잘 인지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의 채무는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은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미국의 채무자들이 계약서대로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태어나면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변제는 미국 채무자들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본에서 받은 은혜(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를 기무라 한다. 기무는 보은인 효와 천황에 대한 충성이 있다. 이 두 기무는 강제성이 있다. 이 두 기무는 무조건적이다. 일본의 효는 경계가 있다. 직계에 해당하는 가족들에게 의무를 부여한다. 즉 부모와 자식, 손자 등으로 그 부양 의무를 지게 된다. 조카에 한해서는 그것이 양자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의무가 없다. 이들의 관계에서 연장자에게 많은 책임이 부과된다. 하지만 아랫사람은 연장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해야 한다. 충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충의 근본은 가까운 사람에게 복종하면서 생명을 바치는 일에 근간이 있다. 사실 메이지유신의 선각자와 지도자들은 쇼군과 싸우면서 자신의 영주를 위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쇼군을 충의 대상자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막부를 무너뜨리면서 존왕의 칭호를 사용했다. 천황을 충의 대상자로 선정하고 싸운 것이다. 결과 천황은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이들은 천황을 정신적 지주, 충의 대상으로, 계층제의 정점에 두는 것으로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전쟁이 끝이 날 때 천황의 항복 선언 한 마디에 모든 싸움이 중지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기리(義理) 일본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충과 효는 동양의 공통적인 덕목이다. 하지만 기리는 일본 특유의 범주다.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갚아야 할 성질이기 때문이다. 기무(義務)는 상대가 곤란한 요구를 하더라도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리를 갚는 것은 내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리는 두 가지로 나뉜다. 세상에 대한 기리(은혜), 이름에 대한 기리(명예) 등이다. 이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기리는 의부, 의모, 의형제 등, 맺어진 관계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강력하다. 의부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위해서 혈연관계도 단죄할 수 있는 것이 기리의 한 요소다. 우리의 이념에 따른 행동으로 봐도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듯하다. 기리의 규칙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갚음의 규칙이다. 기리는 도덕규범이 아니다. 기리에 의해 강요당하면 자신의 정의감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것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는 것도 아니다.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조처만 있을 따름이다. ‘기리의 세계’는 서구의 부채 상환과 비슷한 개념이다. 시간이 흐르면 더욱 가중된다. 그리고 기리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면 파산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을 다니는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노력이든 물건이든 서로 주고받는 복잡한 관계는 장부에 기록하는 상황을 만든다. 조의금의 출납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일본인들은 모욕을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어느 쪽이나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다. 사람이 오명을 씻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빚을 갚는 것이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모욕이 제거되지 않은 뒤집어진 세상은 바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보기엔 복수를 미화하는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경쟁 상태를 피하려 했다. 지게 되는 자의 치욕을 처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치욕을 당한 자가 그것을 정상의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 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미연에 그것을 방지하는 그들의 삶이 양식화 되어 있다.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그러기에 자신을 괴롭히는 경향이 많다. 이런 인물은 그 행위가 권태에 닿아 있다. 배척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부로 돌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자살은 적절한 방법이면 오명을 씻고 평판을 회복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즉 자살은 죽음의 선택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다. 타인에게 존경 받는 것은 필수다. 그들의 침략 근거도 여기에서 가져온다. 세계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서구 열강들에 의해 군축 조약 같은 것은 그들에겐 모욕이었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일이 세계 속의 지위 획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인정의 세계는 타민족들과는 좀 다르다. 극단적인 의무의 변제와 철저한 자기 포기를 요구하는 일본의 도덕률은 개인의 욕망은 금기시한다. 그런데 불교의 금욕과는 다르다. 오관의 쾌락을 허용하는 면에서는 관대하다. 오히려 그것을 권장한다. 온욕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날마다 온욕을 즐기며 몸을 씻는다는 단순한 일보단 그곳에서 탐닉의 예술까지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잠도 또한 애호하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중대한 일이 있을 때에는 과감하게 희생시킨다. 가령 군대교육을 위해서 잠을 희생시키는 것 등이다. 일본인은 연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이상을 내걸지 않는다. 그들은 적령기가 되면 부모의 선택에 따라 맹목적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에서 매우 완고한 형식을 지킨다. 일본인의 결혼 목적은 집안의 대를 잇는데 있지, 사랑 나눔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에서 다른 목적은 참다운 의미를 왜곡할 뿐이다. 그러기에 일본의 여유 있는 남자들은 정부를 두고 그녀를 가족의 일원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만일 밖에서 아이가 생겨 집에 들이게 되면 본처가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여인은 종이 된다. 일본인은 의무 수행을 인생 최고의 임무로 정해 놓고 있다. 그들은 은혜를 갚는 일이 개인적인 욕망이나 쾌락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행복추구를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상은 그들에겐 놀랄만한 부도덕이다. 행복은 기분 전환용으로 그들에게 인식된다. 그들이 얼마나 생명도 도외시하고 은혜와 충성에 매달리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인생관이 서구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덕이라 생각한다. 또 각각의 세계에서의 법도는 ‘세계’ 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행동기준도 변한다. 즉 일본의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는 자세가 천황의 항복으로 외국인에게 협력하는 양상을 보이는 모습이 예가 된다. 일본인은 자기 수행에 대해서는 특별한 마음이 있다. 그들의 자기 훈련의 개념은 능력 배양과 그 이상의 것(숙달)이다. 어떤 일에 임할 때 이런 수행은 배짱을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맛보는 능력이 되어 간다. 이처럼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 예리한 칼로 만든다. 아이들도 이렇게 양육 받는다. 어른들이 정하고 그것을 따라하도록 규정하고 그렇지 않을 때 벌을 받으면서 소망을 억제하는 힘을 기른다. 아이는 남자에게는 대를 잇게 만드는 요소요, 엄마에게는 지위를 확보하게 만들어 준다. 아이를 통해 어른들의 성격이 규정되기도 하기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무척 협조적이다. 일본인은 전승국이 되었을 때 항복한 적이 일본을 조소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패배한 적에게 모욕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비방, 조소, 모욕, 경멸, 불명예의 징표를 강요할 때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인은 그것에 대해서는 복수를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패배의 당연함과 모욕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연함에는 수긍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하지만 모욕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는 것을 보편적인 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일본인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이중적인 모습이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선호하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속성을 비교적 많은 자료들을 사용해서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다양한 태도에 대한 해석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이 죽을지언정 항복하지 않는 전쟁 중의 상황과 포로가 되었을 때도 기회만 주어지면 자살을 하려고 했던 일,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자 그 기세등등하던 전투 자세에서 바로 고양이 앞에 쥐가 된 듯이 꼬리를 내리던 모습들이 설명되어 진다.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기리(의리), 기무(의무), 온(은혜), 인정, 덕, 자기수양 등의 말들이 사용되어 있다. 이 말들이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것을 살피면 그들의 관념에 잘 다가갈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또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가 그들의 의식에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고, 타인들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명분으로 삼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는 것도 그들이 위치 찾아주기와 관련지우면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글 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인들이 타국에 점령군으로 들어갔을 때 타 국민들이 환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처럼 그들은 전쟁과 점령이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런 사고를 이해하지 않고 일본인을 대한다는 것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은 일본인들을 알게 하고,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인들이 취한 행동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외국인이 쓴 일본인 이해의 고전이 되는 작품이다.
전에 읽었던 내용을 이 번 기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다가간 책이라 여겨진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생사보다는 신념을 우선시했고,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지녔다. 전쟁은 위치 찾아주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점령군으로 그 지역을 갈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의 대응이 무척 놀라웠던 것이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기에. 다시 읽으면서도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가 참으로 위험하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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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일본문화의 유형 루스 베네딕트/박종일 인간사랑 2022.4.30. sanbaram
우리에게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나라가 일본이라 할 수 있다. 36년간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현재의 정치권 또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국화와 칼>은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미국정부의 요구에 의해서 작성한 일본의 문화 및 일본인들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연구보고서다. 문화인류학 보고서는 현지 연구를 통해 작성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책은 적대국인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문헌자료와 미국 이민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여 전체를 13개 장으로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처음이며 내용이 충실하다고 평가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었다. 미국인의 시각이면서 작성된 후 많은 시간이 흘러 현재 그들과는 많은 괴리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저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배서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 인류학 교수로 제직했다. 저서로 <인종>, <국화와 칼> 등이 있다.
<국화와 칼>에 대해 일본인들은 “루스 베네틱트가 쓴 이 책은 이용한 자료가 풍부하면서도 이론적인 분석에서 뛰어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사회학 논지는 흔히 각종 현상의 계량적 분석을 중시하는데 이 책은 사회구조와 그것의 기능, 전체 문화와 문화의 각종 내재적 관계에 대한 연구를 중시하고 있다.(p.412)”고 말하면서 “일본인”을 하나의 전체로서 고찰하고 있어서, 일본인 가운데에 계층, 직업, 지역, 지식수준 등 여러 가지 구체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전시에 쓰였기 때문에 “일본군의 행동과 선전을 일본인의 요구 또는 일본인의 사상으로 보았으며” 일본인을 호전적인 민족으로 판단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시각에서는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다. 그렇기에 일본어 번역본은 1948년에 출판된 뒤로 1996년까지 48년 동안 100차례 넘게 인쇄되었고 총 인쇄 부수는 230만 부를 넘는다고 한다.
“칼과 국화는 다 같이 한 폭의 그림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일본인은 극도로 호전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온화하다. 그들은 전투적이면서 심미적이고, 오만하면서도 예의 바르며, 완고하면서도 쉽게 적응하고, 순종하면서도 조종당하기를 싫어하며, 충직하면서도 쉽게 반역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이 많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생활방식에 호의적이다.(p.24)”고 일본인에 대해 서술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 극도로 신경을 쓰지만 타인이 알지 못할 때는 쉽게 잘못된 행위에 빠져든다. 일본의 병사들은 철저하게 훈련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반항심이 강하다고 저자는 평한다. 이 책은 일본인에게서 예견되는 일본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관습에 관한 책이라고 말한다. 일본인의 자신에 대한 요구가 무엇인지, 일본인은 어떤 경우에 예의바르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지, 어떤 경우에 당혹감을 느끼는지에 관해 서술한 것이라고 한다.
“명예는 죽을 때까지 싸우는 병사에게만 주어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본군의 병사라면 당연히 마지막 수류탄으로 자살하거나 빈손으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집단 자살 식의 공격을 해야 한다. 투항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p.65)” 만약 부상당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포로가 되었더라도 “귀국해서는 얼굴을 들 수 없게 된다.” 그는 명예를 상실하고 이전의 삶 속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취급된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까지도 전쟁의 결과에 관계없이 본국으로의 송환을 희망한 일본군 포로는 극소수였다. 일부는 자신을 처형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만약 당신들의 관습이 그것일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는 모범적인 포로가 되겠다.”고 말했다.
“모든 일본인은 처음에는 가족의 품 안에서 계층제의 습관을 배우고 이렇게 배운 것을 경제생활과 정치 등 보다 넓은 영역에서 적용한다. 일본인은 합당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에게는 존경을 표시하도록 훈련받는다.(p.86)” 아내의 지배를 받는 남편, 또는 아우의 지배를 받는 형이라도 공식관계에서는 여전히 아내와 아우로부터 존경받는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계층은 세심하게 분할되며 상하를 불문하고 계층 간의 특권을 침해했을 때는 징벌이 가해진다. 그러나 “합당한 위치”가 지켜지는 한 일본인은 아무런 불만 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안전을 느낀다.
“일본인은 스승과 주인에 대해서도 특수한 ‘온’을 빚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성장시켜 준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온’을 빚진 사람에게 장래에 자신이 곤란에 빠졌을 때 자신의 요청에 응답하거나 자신의 후손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p.140)”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이런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시간이 흘러도 부채는 경감되지 않고 오히려 이자가 붙듯 증가된다. 일본에서 효도는 부모가 악행과 불의를 저질러도 묵인하고 이행해야 할 의무가 되었다. 천황에 대한 의무와 충돌할 때만 배제할 수 있을 뿐 그 밖의 경우에는 부모가 존경받을 만한지, 자신의 행복을 파괴하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받들지 않을 수 없는 의무였다. “일본인의 관점에 따르면 법령준수는 최고의 ‘온’인 ‘코온(황은)’에 대한 보답이다.(p.170)” 이것은 미국의 풍습과 가장 강렬한 대비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은 전투력이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을 때 무조건 항복이란 거대한 대가를 ‘추(忠)’로서 자신에게 요구할 줄 아는 고유의 역량을 사용했다.(p.173)” 일본인은 복수를 찬양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건 충성도 찬양했다. 두 가지는 다 같이 ‘기리(의리)’였다. 충성을 다하는 것은 주군에 대한 ‘기리’이고 모욕을 받았을 때 복수하는 것도 자신의 명예에 대한 ‘기리’이다. 일본에서 이것은 방패의 앞뒷면이었다.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는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의무이다. 이런 ‘기리’는 일련의 덕행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일부는 서구인이 볼 때는 상호 모순되는 것이지만 일본인의 관점으로는 완전히 단일체이다. 이런 종류의 의무는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기 때문에 “‘온’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지난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와는 관련이 없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행위라고 말한다.
“일본인이 추구하는 항구적인 목표는 명예이다. 명예는 보편적인 존경을 획득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p.218)” 사무라이는 죽음 앞에서 고통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 “사회에 대한 기리”는 선의의 배려에 대한 보답이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는 보복을 포함한다는 식의 구분은 없다. 왜냐하면 덕행이 타인의 선의에 대한 반응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악의 또는 모욕에 대한 반응일 수 있는가? 일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올바른 사람이라면 은혜를 강렬하게 받아들이는 만큼 모욕에 대해서도 똑같이 진지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인생관은 “추(忠)”, “고(孝)”, “기리(義理)”. “진(仁)”, 인정 등의 공식에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지도 위에서 세력 범위를 나누듯 사람의 의무 전체를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눈다. (p.267)” 일본을 대표하는 민족적 서사시는 <47인의 낭인>이다. 이 얘기는 세계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높지는 않지만 일본인의 심금을 울리는 얘기로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다. <47인의 낭인>의 주제는 주군을 향한 ‘기리’가 핵심이다. 이 얘기가 일본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기리”와 “추”, “기리”와 “정의”의 충돌(당연히 기리가 승리한다), “단순한 기리”와 무한한 ‘기리’의 충돌이다. 47인의 용사는 “기리”를 위해 부모, 처자식, 형제자매, 정의 등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마지막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추”를 드높였다는 내용이다.
“정치가들은 천황을 정점에 두고 쇼군과 봉건영주들을 배제하여 단순화된 계층제도를 만들었듯이 도덕의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차원의 덕목은 모두 “추”의 범주 아래로 배치함으로써 의무와 체계를 단순화했다.(p.282)” 이런 방법을 통해 그들은 전국을 “천황숭배”체제로 통일할 뿐만 아니라 원자처럼 분산된 일본의 도덕체계도 단순화하려 했다. 그들은 일본인에게 “추”를 실현하면 그 밖의 모든 의무도 완성된다고 힘써 가르쳤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기리’를 모르는 사람이란 말은 가장 엄격한 비판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의 관습에 따르면 혈통을 잇기 위해 남편은 양자를 들일 수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 아내는 패배자의 처지를 면할 수 없다. 일본 여성은 많은 자녀를 낳기를 원한다.(p.335)” 가정 내부의 계층제도에서 각자의 자리는 명확하다. 아이는 연장자에게, 여자에 비해 남자에게, 동생에 비해 형에게 특권이 있다고 배웠다. 돈의 여유가 있다면 일본 남자는 정부를 둔다. 중국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미련을 둔 여자를 가족의 일원으로서 집으로 데려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남자의 집으로 들어온 뒤부터는 이 여성은 첩이 아니라 하인이 된다. 아이들은 정식 부인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생모와 아이의 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 스키모토 부인은 국화꽃을 속박하는 철사 틀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느낀 행복감과 자유 때문에 흥분상태에 빠졌다. 분재된 국화 꽃송이가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아오다가 자연스러운 모습을 회복하자 그녀는 마음 가득히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일본인의 논리에 의하면 개인이나 나라는 어떤 사람 또는 어떤 나라가 비방, 조롱, 멸시, 불명예의 폭로 등의 수단을 통해 타인 또는 타국을 모욕했을 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모욕을 당했을 때 복수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이다.(p.392)” 그러면서도 힘에 의해 굴복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 배신을 하고 그것을 정당하게 인식한다. 그 이면에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군림하는 사무라이 전통이 뿌리 깊게 자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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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칼과 국화 이 책은 국화와 칼이라고 읽어야 할까, 아니면 칼과 국화라고 읽어야 할까, 여전히 망설여진다.
루스 베네딕트의 이 책<국화와 칼>은 미국 내에서 쓴 일본에 관한 이야기다. 즉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일본을 탐구한 것인데, 그 배경은 세계 2차 대전의 삼국동맹의 멤버인 “일본”에 대한 이해가 무지에 가까웠다. 당대의 일본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농촌사회 탐구 정도였다. 이 책은 베네딕트가 미국의 전쟁 승리를 위해 만든 군사행동을 탐구하는 그룹의 일본 책임자로 일하면서 1944년에 작성했던 보고서를 손질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란 손자병법과도 통한다. 적을 제대로 알고 움직이면 적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예측 가능한 것처럼,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의 습관을 포함한 행동의 특성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언제든지 손안에 든 생쥐 꼴이다. 베네딕트의 일본에 관한 이해를 엿볼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서술보다는 만세 일가의 ‘천황’의 일본 사회에서의 위치다. 천왕을 전범으로 세워 전쟁의 책임을 묻는 것이 대(對)일본 정책에 결코 유리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구름 속에 사는 천황을 현인신으로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 국체를 입헌군주제로….꽤 정확히 일본을 꿰뚫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비에 쌓인 일본, 신도 그리고 천왕, 일본군대는 천왕군?
신도(神道)와 천황, 그리고 종교, 메이지유신을 통해 그간 바쿠후(막부)가 갖고 있던 실질적인 권력을 상징적인 신도의 수장 천황에게 반납한다. 전국시대(분권주의)의 일본을 하나로 통일, 중앙집권을 가져가기 위해 메이지의 친황파들은 신도를 국가종교로 만들었다. 절 법당 앞뒤로 위치했던 신당의 위상이 확실하게 자리매김한다. 베네딕트는 치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의 문화 하나하나를 허투루 봐넘기지 않고, 깊숙한 곳까지 닿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일본 국민의 의식 속에는 천황이란 상징적인 존재로 단결의 중심이며, 이 모든 전쟁은 군인들이 천황을 등에 업고- 마치 사무라이들이 천왕가를 좌지우지하던 것처럼- 저지른 것이어서 천황 또한 이용당한 바가 없지 않다는 인식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적국을 잘 알기 위해 물론 문화인류학이 때때로 침략을 위한 사전 조사-연구자의 본의든 아니든 간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대목은 애초 베네딕트 자신이 서두에서 밝히고 있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어떤 이는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으면서도 마치 오로지 연구만을 위한 연구인 것처럼 꾸미기도 하기에 말이다.
<국화와 칼> 참으로 촌철살인이다. 일본인의 습속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문화도 정치도 그들의 사고방식도, 가치체계도, 무사도, 하쿠쇼라 불리는 백성들의 양가감정조차도…. 일본어는 특이하다. 사역의 표현, 누군가가 나에게 직접 소리 내 어떤 행동을 하도록 명령한 적은 없지만, 마치 그런 명령을 받은 것처럼 언어표현을 한다.
47인의 낭인과 의리- 목숨을 초개처럼-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 ‘기리(義理)’를 적시하고 있다. 원체 유명한 이야기라서 TV 드라마 단골 소재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바쿠후의 우에사마(우리나라의 금상, 임금처럼 상전의 의미다) 알현은 상례의 도였는데, 행사 집전을 맡은 지방의 다이묘 두 사람 중 한 명 아사노가 47인의 낭인의 주군이었다. 세상 물정을 몰라 이를 코치하는 가노 기라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에 행사에서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아사노는 기라를 베었다. 이후, 어전에서 칼을 휘둘렀다는 죄목으로 할복을 하게 된다. 47인의 낭인은 주군을 잃고, 복수를 다짐, 준비의 세월 온갖 소문 속에서도 꿋꿋하게 주군의 복수 일념으로 가족도 버리고, 초개처럼. 복수가 끝난 후 이들은 죽음의 길을 택한다. 이를 서양인의 합리적인 사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쓴 베네딕트, 이 역사적 사건 하나로 일본의 사무라이 세계를 구현했다. 아마도 일본인의 의리에 대한 태도, 이것이 전쟁에서 죽음을 불사한 행동 양식으로 천왕 폐하 만세를 외치며 불벼락 속으로 단기필마의 돌진을…. 명예를 중시하던 사무라이의 세계, 주군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사무라이들….
이렇게 일본을 속속들이 파헤친 이 책에 관한 일본학자들의 평가는 어떠했을까,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미국의 대(對)일본 전략은 이렇게 일본인의 습속과 문화, 그리고 가치체계까지 속속들이 파고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국화와 칼>이 출간된 후, 1949년 잡지 ‘지성’의 초청좌담회가, 50년 “민족학연구‘에 다섯 명의 학자가, 그리고 51년에는 잡지 ‘전망’에 츠다(쓰다) 소키치가 평론을 실었다.
좌담회에 참가했던 다섯 명 중 세 명(가와시마 다케요시, 와츠지(와쓰지) 데츠로, 츠다 (쓰다)소키치의 평론의 요지는 베네딕트가 일본에 단 한 번도 와보지도 않고 평범하지만 중요한 자료를 대량으로 수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인의 정신생활과 일본문화의 전모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기본적이며 총체적으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일본문화의 특징을 잘 포착해냈으며 관찰과 해석에서 부분적 오류, 분석이 충분하지 않은 면이 없지는 않으나, 저자의 학술적 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제점으로 일본인을 하나의 전체로서 고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좀 더 나아가 일본인 가운데 계층, 직업, 지역, 지식수준 등 여러 구체적인 차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으로서는 정성을 다해 열심히 했다고 평하면서도, 일본의 사회 구석구석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그리고 사료 취사에서도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일본 군인의 행동과 사고의 유형, 일본 국수주의 군인의 행동과 사고유형일 뿐, 과잉 일반화로 일본문화의 유형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학자들은 어디에 방점을 찍었을까?
일본학자들이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군의 사고와 행동유형이 곧바로 일본의 사고와 행동유형은 아니라는 것이며, 역사는 발전하며 특히 어느 한 대목을 정태적으로 분석 파악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비판은 유효하다. 하지만, 이 책이 오늘날 베스트 셀러가 되고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돼 수십 년 동안 읽힌 진짜 이유는 루스 베네딕트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전쟁의 상대국 이른바 적국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단순히 전쟁을 유리한 국면 나아가서는 승전을 하기 위한 정보라 할지라도, 학문적 접근과 태도로 충실하게 분석하려 했던 그 자체가 이 책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일본학자들도 베네딕트의 이 책을 톺아보고, 해석하고 스스로 그런가 하고 자문도 해봤을 것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저 문맥파악에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영어판을 일본어로 번역했는데,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일본문화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없이 그저 글자로만 번역했던 탓이었을까- 참으로 읽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국화와 칼>이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살벌하게 칼을 휘두르지만, 국화를 기르고 이를 감상할 줄 아는 심미안을 가진 이들, 순종하는 듯 보이다가도 어느덧 반항의 기질을 드러내는 백성들, 도대체가 이해 안 되는 것들뿐이라는 베네딕트의 푸념 어린 이야기들이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다.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이들의 글보다는 백배 낫다.
다행히 "인간사랑"의 번역본은 이전의 것들보다 낫지만, 여전히, 물론 편집 때의 실수 정도로 여겨지는 대목이 보이나, 전체적으로 무난해 보인다. 2쪽 화보 사이고 타카모리- 사이고 다카모리다. 제목에는 타카모리로 본문에는 다카모리로 적혀있다. 국립국어원의 일본어의 우리말 표기법에 따라서 쓰는 게….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책이다. 오늘도 눈이 호강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국화와칼#루스베네딕트#인간사랑#일본에관한문화인류학적연구#세계2차대전#일본인을연구하라#일본문화의유형#YES24리뷰어클럽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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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은 외국인, 특히 서구인의 시각으로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된 연구서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작품일 뿐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애독되어 왔다는 점에서도 일본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나의 경우는 『국화와 칼』을 대단히 늦게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약간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인문학 서적 출판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여러 유익한 작품들을 꾸준히 출간하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에서 이번에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간행한 『국화와 칼』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대단히 기쁘고 개인적으로 다행스럽게 여긴다.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가장 뚜렷한 인상을 받은 부분은 무엇보다 저자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추구하는 방법론이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기가 가진 기본적인 신념, 철학,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등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 또는 다른 대상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평가하려면 그것을 평가하기 위한 잣대나 기준이 필요한데 대다수 사람의 경우는 자신에게 친숙하거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하므로 이런 경향을 굳이 부정적인 것으로 단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화와 칼』의 저자는 심지어 적국인 일본과 일본인의 특성과 성격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서구인’, ‘미국인’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일단 보류한 상태로 자신에게 주어진 자료에 입각해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려 시도한다.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이런 자세가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선호되고 지향되어야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저자는 우리처럼 상식적인 일반인이 일본, 일본인이라는 완전한 미지의 대상을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의 주관적 잣대를 잠시 잊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저자의 말을 따르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많은 편견, 선입관, 상식이 얼마나 부적절하며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장애와 걸림돌이 되는지를 뚜렷이 알게 된다. 가령, 저자가 일본의 가장 심층적 양식으로 파악하는 ‘합당한 위치’(곧 모든 대상, 사회 구성원, 심지어 국제 사회에서의 여러 국가도 각자가 속한 계층제에서 자신이 지켜야 하거나 유지해야 하는 합당한 위치가 있으며 이 합당한 위치는 불찬성의 경계를 넘는 문제로 특권이며 심지어 대중 의지에까지도 적용된다는 개념)를 이해하면 일단 일본인의 행동 방식에 대한 분석과 파악이 용이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합당한 위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일본과 일본인의 습성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개념인 온(恩), 추(忠), 코(孝), 기리(義理), 기무(義務)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은 개념들이 비록 같은 동양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개념이 존재하더라도 실제로 우리가 한국에서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과 상당히 달라서 우리의 상식적인 이해로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렇게 할 경우, 우리는 일본을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은 앞서 말한 대로 저자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취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요약하면, 저자는 자문화 중심주의를 지양하고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하는 방법론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려 시도할 때 비교적 객관성을 담보한 상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소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건설적인 미래를 위해 서로 상생하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중요한 기본 전제와 단서가 된다.
물론 저자가 노출하는 한계가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시대적인 제약으로 평가하는 편이 더 바람직할 텐데, 저자가 『국화와 칼』을 저술한 시기가 일본 패망 직후라는 점과 저자가 활용한 자료도 일본을 실제 방문하지 않은 저자의 저작 활동에 일종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은 인간사랑의 『국화와 칼』에 부록으로 첨부된 일본 학자들의 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 역시 자신이 가진 전제와 자신이 속한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물론 일본 학자들의 비판이 자기 문화나 민족성과 관련해 이방인에게 정곡이 찔린 것에 대한 반작용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저자가 자신의 연구 방식과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언하는 내용은 암시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연구과정에서 연구자는 얼마간의 조사 자료를 더 확보한다고 해서 확실성이 더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일치감치 깨달았다. 예컨대, 누가 언제 누구에게 절을 하는지를 알기 위해 전체 일본인을 상대로 통계조사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습관성 행위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든 당신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고 몇 가지 증거만으로 충분한 것이지 수많은 일본인으로부터 동일한 결론을 얻어내야 할 필요는 없다.”(p. 39)
물론 여기에도 진리의 일면은 있다. 하지만 저자가 연구하는 영역이 단순한 ‘습관성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단순 통계가 필요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구별은 분명히 필요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과 범위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저자는 일종의 범주 오류(category fallacy)를 범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단편적인 것을 일반화, 보편화하는 치명적 오류에 추가로 빠지는 위험도 있다. 따라서 『국화와 칼』은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생하는 변화나 발전을 고려하면 뚜렷한 한계가 있는 작품이어서 읽는 사람의 주의가 필요하다.
인간사랑에서 새롭게 출판한 『국화와 칼』은 기존에 출판된 여러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노력 덕분에 여러 면에서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크게 역점을 둔다는 인상을 준다. 우선 역자가 책의 많은 곳에 추가하고 있는 각주는 가장 크게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역자는 독자들이 『국화와 칼』의 내용(특히 처음 발표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서)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중요한 개념, 인물, 사건 등에 역사적 배경과 구체적 정보를 소개하는 각주를 풍부하게 수록한다. 특히 역자는 이 책의 저자가 『국화와 칼』의 저술 과정에서 오해했거나 착각한 부분까지도 각주를 통해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국화와 칼』의 한계를 상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간사랑의 『국화와 칼』은 풍부한 사진 자료를 첨부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40여 페이지가 넘는 이 사진 자료는 비록 책을 구성하는 내용 자체는 아니더라도 이 책의 내용과 관련된 시대적 사료를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이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출판사의 배려가 크게 돋보인다.
『국화와 칼』은 일본을 전혀 모르거나 일본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읽어야 하는 작품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할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적 제한과 한계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지적하면서 서평을 마무리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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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본문 삽화자료중에~ #본문삽화 자료중에~ #본문삽화자료 중에~ 본문에서 삽화자료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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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의 나는 수많은 일본 만화들을 보았다. 철이 없던 시절이고 그 당시는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잘나가던, 지금의 1020분들은 상상도 못할 그런 시기였기에 일본을 선망하던... 그런 흑역사도 있는 나다. 일단 일본은 건국신화부터가 근본이 없다. 한국이나 기타 외국의 건국신화는 설령 신화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파고 보면 어느 정도 실제 역사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일본의 건국신화는 박경리 작가님의 저서 일본 산고에서도 나와있듯이 초인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는다. 이렇듯 실제 건국 역사에서도 실제 역사가 없기에 이들은 지금도 반성 없이 역사를 왜곡만 하는 것일까 싶다.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너무 요약했나 싶지만 결국 일본인의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의 원인은 그들에겐 튼튼한 근본, 토대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도 왜곡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이것이 나의 총평이다. 일본 작품을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일본인은 세계에 사랑받는 일본에 병적이게 집착한다는 것을. 그것을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1946년에 파악했다. 내가 참 놀란 것은 일본은 이런 성향을 전시 중에도 보였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으므로 일본 남아의 참모습을 보여주도록 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본 순간 영화 핵소 고지의 그 미련하고 어리석은 그 할복 장면이 생각났다. 내가 그 영화의 감독이 아니라 확신할 순 없지만 이건 정말 당시 저들의 미련한 모습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쓸데없이 장엄한 배경음악을 깔았다. 또 하나 너무 미련해서 놀란 것은 폭격기와 전투기에 구조장비를 비치하면 "겁쟁이"라고 손가락질한다는 부분과 구호반과 회복 병원 같은 의료시설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일본이 기본적으로 해적질을 일삼는 나라라 낙오자는 버리는 것이 그들의 유전자에 박혀있기 때문인 것일까? 이런 성향 때문에 일본에서 기독교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싶다. 일본인의 인정, 작가는 낭만적인 연애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릇된 성문화(근데 사실 성문화 이건 전 세계가 남자만 우쭈쭈하는 가부장제 사회이다 보니 여자만 손해 보는 구조이긴 하다.)에 대한 분석을 보며 일본 올림픽 때인지 월드컵 때인지 외국인들이 많이 올 것이란 이유로 편의점에 파는 여자만 노출시킨 일본의 여자만 착취하는 그릇된 성문화를 대놓고 보여주는 그라비아 잡지들을 매대에서 내리게 했던 것이 생각났다. 자기들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걸 알면서도 왜 없애질 않나 했더니.. 이들은 오래전부터 외국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떤 법적인 통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그릇된 성문화를 없애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부터 없애지 못한 그릇된 연애관으로는 일본은 연애와 결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 일본에서 부부관계는 가부장의 명령을 좇을 뿐 남녀 사이의 사랑은 볼 수 없다고 1946년대에 살던 저자는 분석했다. 그런데 이것을 비교적 현대인 예전에 이것을(지금 시점에선 이것도 과거일이지만) 볼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 극의 후계자와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바람 상대에게도 잘 부탁드린다고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결혼 전에는 그 둘도 여느 여남과 다를 바 없이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나약해서 사랑이 금방 꺾였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버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남편과 바람난 상대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낸다? 여기서도 어이구? 싶은데 일본은 또 가부키 가문에 시집간 여자가 남자의 바람을 눈 감아 주지 않고 반격하면 오히려 더 비난을 해대니... 뭐 이런 이상하고 기괴하고 여자만 착취하는 문화가 다 있나 했더니 그런 문화(라고 불러주기도 싫은)가 꽤 오래전부터 있어서 그것이 지금도 쭉 내려져 오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책이라 처음엔 읽기가 겁이 났고, 조금 어렵다 싶은 부분들도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때 일본 문화를 접하며 느꼈던 의구심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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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불리며 여전히 냉랭한 관계인 일본에 대해선 여러 책들이 다룬 적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인 '국화와 칼'일 것이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책인데 그동안 기회가 없다가 이번에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는데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 있었다.
먼저 이 책이 미국 정부의 연구용역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점에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같은 서양권 국가인 독일과 달리 일본은 뭔가 독특한 면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처리방법에 대한 접근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당시 각광받기 시작하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그 임무를 맡게 되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전쟁 중인 상황이어서 현지조사가 불가능한 가운데 미국 내 일본인들을 통해 이를 대신하고, 일본에 관한 각종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이 책을 내놓게 된다. 먼저 전쟁 중에 보여준 일본인들의 모습, 가마카제특공대처럼 죽음도 불사하는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일본군이 있는가 하면 포로가 된 후 적극 협력하는 모순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각자의 합당한 위치'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계층제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 맞는 행동을 요구받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일본인에게 이와 다른 상황은 견디기 어렵고 특히 '온(恩)'을 입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고 본다. 이 책에선 한자어를 일본식으로 표현하여 고유 명사처럼 사용하는데, 공인된 사회적, 인적 관계에서 '온'이 내포하고 있는 거대한 채무감이 일본인이 전력을 다해 '온'을 상환하려는 동력이 되는 한편 채무자가 되는 건 힘든 일이어서 반감도 생긴다고 한다. 나츠메 소세키의 '보짱(도련님)'의 일부분을 인용하고 있는데 '온'에 대한 일본인의 모순된 감정을 잘 보여줬다. 여기서 '기리(의리)'라는 중요한 단어가 등장하는데 '기리'는 시혜자로부터 받은 만큼만 상환해도 되고 시간적인 제한도 있는 부채로, 사회에 대한 '기리'와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로 나눠진다. 특히 '추(충성)'나 '코(효)'와 달리 '기리'는 일본인이 가장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중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는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의무로 모욕을 당하면 이를 받드시 벗어야 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일본인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파고들어가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는데 직접 일본에서 생활해보지도 않은 서양인이 일본인을 이렇게 자세히 파악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책이 나오자 일본에서도 큰 반향이 일어났는데 일본 군인 등을 일본인 전체로 성급하게 일반화했다는 비판 등이 있기는 했지만 여러 제약 속에서 일본인의 모습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분석 했다는 찬사가 많았다. 이 책에서 그린 일본과 일본인의 모습이 일본의 실제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일본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책임은 분명한 것 같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일관계를 보면 왜 일본이 저러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나름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