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혼, 1인 가구, 혼밥, 혼술,.... 혼자 뭘 한다는게 익숙하듯 이런 단어들이 일상 용어처럼 자리잡은 듯 하다. 그래도 늘 공동체 안에서 함께 무엇을 해왔던터라 '혼자'는 여전히 낯설고 어설프다. 함께 먹는 밥에 적응되었는데, 홀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난감할 것도 같고. 비단 밥 먹는 것만 그럴까.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뿐 아니라 집 안에 있는 사람도 혼자 밥을 먹는다. 만 3년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혼밥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시간에 학습이 되어 같이 먹는 밥보다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하고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책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이다. 10명의 작가들이 먹은 점심 메뉴를 소개하거나 점심에 대한 짧은 생각과 경험한 이야기다. 점심과는 별개로 그냥 가볍게 읽기에 좋았다. 작가들은 어떻게 점심을 먹을까? 바빠서 시간(때)를 넘겼기에 점심을 못 먹는 작가, 점심 보다 산책을 즐겨하는 작가, 점심 약속이 있는 작가, 늦은 밤 글쓰기로 인해 그냥 아점 먹는 작가,..... 다 나름대로 점심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 생각들을 듣다보면 나의 점심은 어떤가? 점심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침밥을 챙겨먹지 않으니 점심은 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야 저녁은 가볍게 먹을 수 있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확실히 점심을 2% 부족하게 먹으면 저녁을 많이 먹게 된다. 늦은 밤 동안 소화도 잘 안 되고.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다. 급식 메뉴는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음식은 간이 잘 맞아야 된다. 우리 학교는 대체로 음식의 간이 잘 맞다. 반면에 아비토끼네 회사의 점심은 맛 없다고 한다. 간이 안 맞으니까. 사람의 속뜻을 살며시 헤아려 보는 '간-보다'란 용어가 있다. 다른 뜻, 마뜩잖은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이래저래 간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질 좋은 식재료를 간도 안 맞고, 맛 없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밥상 앞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먹는 것의 즐거움이란게 얼마나 큰데.... 아침 안 먹는 사람들의 하루 첫 끼인데. 그래서 날마다 다르게 나오는 어쩌다 마음에 안 드는 점심 메뉴일지라도 다 먹는다. 남은 오후 시간을 위해서^^
일상화되어가는 혼자 점심 먹기와 남은 점심 시간은 공허하지 않기를! 점심을 챙겨먹는다는게 기쁘거나 기대가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억지로 챙겨먹고 한 끼 때워야 될 만큼의 무게감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전과 오후의 딱 절반인 점심 시간, 내 마음과 생각이 건강하도록 잘 챙기는 시간이 되기를! 모든 무기력함으로부터 힘을 내는 시간이 되었으면 차암 좋겠다.
|
|
한동안의 점심은 이랬다. 반찬집에서 사 온 3,000원짜리 반찬 서너 개. 월급 받거나 기분 좋은 날에는 5,000원짜리 반찬도 샀다. 집에서 왕창 해온 밥. 물 한 컵. 묵언수행하는 사람들처럼 밥을 먹었다. 신속하게 먹었다. 10분 이내로. 정말 정말 끔찍했다. 처음엔 무슨 말이라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마저도 쓸모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에너지를 여기에 쓰면 안 되겠구나, 깊은 현타가 찾아왔다.
물건을 챙겨 나오면서 잊지 않고 밥통도 챙겼다. 반찬은 놔두고 왔다. 알아서 하라지. 지금은 이야기를 나눈다. 반찬은 사지 않는다. 반찬을 사려면 그 동네로 가야 한다. 트라우마. 한동안 그쪽으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 오고 심장이 두근댄다. 대신 제일 잘하는 김치볶음밥을 싸 간다. 파리바게뜨에서 샐러드를 사가기도 한다. 같이 먹으려고 맥모닝을 사 오기도 해서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다.
이야기를 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듣기와 말하기의 비율을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어디를 가도 똑같다고 말한 그 입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여기는 괜찮다. 똑같지 않고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지금 괴롭고 힘든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참지 말고 버티지 말고 아닌 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면서 나오기를. 처음이라 일을 많이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 업무량은 많아지겠지만 일단 해보는 거다. 이야기가 있는 점심을 위해서.
산문집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은 작가들의 점심 단상을 모아놓았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먹는 점심. 회사 업무를 하다가 먹는 점심. 급하게 먹어야 하는 점심. 산책을 하기 위한 워밍업으로의 점심. 누군가들의 점심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 급하게 밥을 먹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어깨가 무지 아팠다. 등도. 벌칙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던 점심시간이었다. 여유도 온기도 없는 점심시간을 가졌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점심시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구내식당을 사랑하고 집에서 정성 들여 먹기도 한다. 여러 형태의 점심시간의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일을 하기 위해 먹는 밥인데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먹는 밥인데 점심시간은 노동 시간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어떤 곳은 중식비가 나오지 않기도 한다. 분명 둘이 먹는 점심인데 내내 혼자 먹는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이었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을 읽으며 힘이 나길 바랐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했다. 솔직함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 나는 산문집을 주로 읽는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솔직함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기억을 꺼내 놓는 걸 보면서 나의 과거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눈가가 촉촉해지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기대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비비고 전복죽을 용기 내어 끓였다. 다행히 상하지 않았다. 조금 짜서 밥을 더 부었다. 3분의 2는 먹고 나머지는 반찬통에 옮겨 담았다. 다음 주 어느 하루의 점심을 위해서.
밥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찾아온다면. 점심시간인데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시간을 겪고 있다면. 과감히도 아니고 그냥 담담한 마음이 되어 나왔으면 한다. 그곳이 최선이 아니라는 신호를 수신해야 한다. 힘이 나지 않을 땐 힘을 내려고 하지 말고. 영화 《벌새》의 영지쌤 말대로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보기를. 손에 잡히는 리모컨이나 휴대전화에 깔려 있는 배달 앱을 눌러 보기를. 이상하게도 힘이 난다.
|
|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은 스트레스를 풀고자 짠 과자와 초콜릿을 달고 살던 시기에 눈에 들어온 책이다. 뒷날개를 보니 H출판사의 유명 에세이 시리즈에 속한다. 한 명의 작가가 다섯 꼭지씩 쓴 글 모음집이다. 강지희 평론가와는 나만의 연緣이 있다. 그는 최연소 등단 평론가답게 지적이고 세련되게 글을 잘 쓴다. 그 믿음에서 동료를 꼬셔 유명 소설가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그를 보러 갔었다. 시간에 예민한 직업병이 발동하여 자신 없는 눌변이 영 못마땅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경복궁 주변의 어느 평론가와의 만남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내게 깜깜할 때 위치 찾기란 난관이다. 그때 지나가던 강 평론가를 따라 무사히 합석할 수 있었다. 나는 일개 독자이고 그는 선배 평론가를 보러 온 거였지만. 그리고 이제 그도 말을 꽤 잘한다. All’s well that ends well. ‘미나리 할머니와 고사리 할아버지’는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를 작가의 외할아버지의 “크고 따뜻한 품”과 (제주산) 고사리를 연결지으며 아름다운 향미를 피운다. ‘무수히 많은 이별과 산책’에서 그가 연극과 연극 이론에 심취해 소설 평론가가 된 사연을 알게 됐다. 픽션과 “연애”하며 혼자 하는 이별 의식, 즉 긴 산책과 음악 듣기의 리듬타기가 낯설지 않다. “그 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과정은 마치 누군가를 속속들이 알아가는 연애와 유사한 바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 위에 그 사람이 알고 이해하는 세상을 겹쳐놓고 ‘두 동그라미가 교차’되면서 만드는 궤적을 바라보는 일(19)”에 매혹되는 자들의 마음은 같다. 뜻밖에 아래 인용에서 내가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점심이 없던 날들’은 대학강사 시절을 호출한다. 나는 대학 진학 전까지는 집밖과 학교가 넘나 좋은 사람이었다. 외부의 변화에 떠밀리는 것을 꺼리는 유형이라, 수능1세대 부적응과 입학과 동시 CC 경험은 나를 책의 “고립과 고요함” 속으로 숨게 했다. 사진 찍히는 것도 시선 응시Eyes로 불편해하는 터라, 강의도 박사학위를 받고 반년 쉬고 겨우 시작했다. 강의 전 긴장하고, 시끄러운 식당에선 멘탈이 털리고, 얘기를 하면 밥을 못 먹는 스타일이라 대부분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나중에는 식당파가 아닌 군것질 그룹이 생겼지만. 목요일까지만 강의 스케줄을 짜던 내가, 퇴근길에 하도 기뻐해 따라 금요일에 강의를 잡지 않는다는 동료 선생님까지 생겼다. 키우던 반려견도 목요일 밤에는 거실에서 나를 기다렸다. 티브이 보면서 교촌 레드윙 뜯는 시간인 걸 알고(미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피하는 음식이 되었..). 그리고 수업 전후 준비와 정리 시간을 조용히 따로 갖는 내가 신기해, 또 항상 읽을거리를 말해 친해지기로 했다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나는 지인들에게 늘 말했다. 강의실을 나오는 순간 나는 그냥 000이고 “내 공부가 더 중요해. 그거면 된다.” 수업 중 농담도 없고 소화할 분량에 집착하는 팍팍한 선생이었던 탓에 ‘내가 편해야 상대도 편해’라는 주문으로, 다음 문구를 여러 번 되뇐다. “어쩌다 아프더라도 괜찮다고, 조금 느리거나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27).” ‘베이징과 불발된 연애’도 추억을 되감는다. 영어를 전공한 학생들은 대체로 외국인과의 교제에 열려 있는 편인데, 나는 모국어로도 안 통할 때가 많은데 할 말을 못해 속병이 걸릴 것 같아 싫었다. 짧은 어학연수를 다녀왔을 때 누군가 그랬다. “다녀 와서 가장 달라진 게 너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으나 나는 지독한 정박 욕구와 귀소 본능에 시달린다. 귀국 했을 때 외국에서 날아와 있던 엽서들과 바이크 타고 바다 보러 가자던 녀석이 생각나, 젊은 날에는 삶을 망가뜨리지만 않는 선에서 썸을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데에 생각이 이른다. 라잇 어 플라워웍~ㅎ ‘엄마, 스시, 눈물’은 심경을 복잡하게 비튼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산 적이 없는데 미혼인 게 맞을까. 내 주장이지만 가족과 반백년 같이 살면 부부와 마찬가지로 쳐줘야 한다(졸혼과 이혼도 인정되어야^^). “엄마의 가지치기”, 그 희생과 헌신이 어느 순간 “사랑하는 자의 독선”이 되기도 한다. 내 꿈의 시작을 더듬다보면 스무 살 리바트 회색 사무용 책상과 책장을 선물했던 엄마가 있지만, 삼년 전 배신감에 힘들어 멍 때리는 내 방을 뒤집은 건 배려도, 사랑도 아니다. 미니멀리스트인데 굳이 산더미 문서와 책들을 건드려 억지로 정리한 후 몸이 고장 났으니까(세 번의 수술). 살 곳을 자유롭게 바꾸는 큰조카에게 “넌 참 쉽다!”고 했던가…. |
|
나는 오늘도 점심을 먹었고 내일도 먹을 것이며 모레도 먹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먹어야만 하는 밥은 싫다. 진정으로마음이 동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삐 놀리고 싶다. 식사가 즐거워지고 음식을 감사히 여겼으면 좋겠다. 끼니를 때우는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포만감을 진심으로 만끽했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 모두가. (원도, 마음이 동하는 한 숟갈 p.191-192)
10명의 작가가 점심시간에 쓴 글을 엮은 산문집이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에 비해 작품을 읽어 본 작가와이름을 아는 작가가 있어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매달 말 ‘점심 산문’ 한 편씩 마감해야 했다는 걸 엄지혜 작가의 글에서알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일어난 에피소드와 점심에 대한 여러 작가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회사로 출근하는 작가는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매번 비슷한 메뉴 중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어딘가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작가는 어떤 요리를할지 글 쓸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한다. 어떤 작가는 점심에 밥을 먹으면 오후에 졸려서 간단하게 해결하고, 또 어떤 작가는 오후에 쓸 에너지를 위해 든든한 점심을 선호한다.
점심은 읽기의 시간이 돼주었다. 가장 귀중한 시간이 된 거다. 점심에 주어지는 한 시간을 쪼개 10분에서 15분 정도 낮잠을 자고 남은 40분은 점심을 먹으며 읽고 싶은 글을 읽었다. 달콤했다. (이훤, 어느 개인의 점심 변천사 p.203-204)
누군가는 식사를 챙기고 몸 관리를 하는 것 역시 사소하지만 성실한 자기관리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식사 메뉴만을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강지희, 점심이 없던 날들 p.26)
점심 산문을 읽다가 문득 저녁 시간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밥 짓는 냄새가 부러웠던 날들이 생각났다. 바쁘면 저녁을먹지 못한 채 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아침식사는 자주 건너뛰었고 그래서 점심 식사는 소중한 한 끼였다. 출근길에 점심메뉴를 미리 골라보고 애써 고른 메뉴가 맛이 없을 때 울적했다.
작가들의 점심시간은 글을 쓴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대략 1시간을 정말 다양하게 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은 10인의 작가님의 짧은 5개의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는데. 가족과의 추억도 음식 이야기들도 다양하게 들어가있다. 때론 애틋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글들이 한편씩 읽기 좋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한편씩 두편씩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싶은 책이다. 단편 드라마를 감상하는것 같아. 결말이 궁금해 뒷장을 몰래 볼 필요도 없다 ㅎㅎ . .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오른다. 나도 어릴 땐 엄청나게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단둘이. 누구랑 밥을 먹는 다는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얼굴이 엄청나게 빨개져.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웠고. 소화도 되지 않아 체하기 일쑤 ㅋㅋㅋ 지금도 편하지 않은 자리에 나갈 땐 소화제 같은걸 먹고 나가는데. 이런 성격은 나이가 들어도 남아 있다 ㅎㅎㅎ 아. 그리고 나이가 드니 입맛도 변하는데. 저도 그렇게 고사리가 맛있네요. ㅎㅎㅎ . #도서협찬 |
|
밖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 산문집을 읽기 전까지 혼자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아무렇지 않아 지는 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면, 이 산문집을 읽고 나서는 어쩐지 꼭 (밖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싶어졌다. 총 열 분의 작가님들이 쓰신 산문을 엮은 책으로 처음에는 '점심'에 관한 산문으로 구성된 책이라고 생각을 하고 읽어서 '응? 이건 점심이랑 무슨 상관이지?' 하다가 책 소개를 다시 찾아보니 '진짜 점심에 관한 글'과 '점심에 쓴 글'과 '점심에 읽기 좋은 글'을 엮은 책이었다. 책 표지의 디자인과 느낌이 너무 좋았고, 기획의도도 좋았다. 특히 강지희, 김신회, 심너울, 원도 이렇게 네 분 작가님의 글이 좋았는데 강지희 작가님의 글들은 뭐랄까, 문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글의 소재부터 글을 쓰시는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너무 내 취향이라 읽으면서 마음이 벅차 오르는 느낌이었다. 특히 어느 한 문장을 꼽을 수 없이 글 전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어디에 플래그를 붙여야 할지 몰라 계속 망설이며 몇 번 다시 읽기도. 김신회 작가님의 글은 나혼자 계속 남자분으로 생각을 하고 읽어서 마지막에 아니란 것을 알고 완전 당황했다. 유머코드 완전 내 취향이라 계속 깔깔깔. 유머를 타고나신 분인듯. 마찬가지로 글이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이라 어디에, 어떤 문장에 플래그를 할지 엄청 고민. 이어서 심너울 작가님의 글들도 현웃을 불러오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해서 좋았고, 원도 작가님의 글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이면서 알것 같기도 한 세계의 글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내겐 평일 근무시간에 밖에서 혼자 먹는 점심이나, 책을 읽으며 점심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저 이런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흐믓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작가님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시리즈 출간 계획 없으신가요!! -그 고사리를 먹을 때면 내 삶도 조금은 부드럽게 풀리는 듯했고, 크고 따뜻한 품에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막 태어나 빨갛고 작은 몸으로 가늘게 숨을 쉬고 있는 동안 누군가 내 몸의 일부를 소중하게 품고 산을 오르고 언 땅을 팠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p.15) 강지희 -왜 먹고 싶지도 않은 메뉴를 쏘겠다며 나대는가. (p.45) 김신회 -무엇인가를 행하고 그 결과로 반드시 더 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더 다양한 가짓수의 즐거움으로 내게 화답해올까. (p.153) 이세라 -먹고 사는 일은 끝도 없이 단순하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자기만족이라서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천자만별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방점은 어디 있는 걸까. (p.189) 원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하니포터 2기> |
|
그런 가운데 아예 책 제목부터가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이란 책을 만났다.
책은 실제로 작가님들이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게 해보길 바라는 것인지 독자들이 직접 글을 써볼 수 있는 미니 노트가 함께 제공된다.
무엇을 슬지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뭔가 거창한걸 써야 하나 싶은 마음에 부담스러워하기 보다는 그날 그날의 감상을 써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점심을 먹으면서 느낀 감상, 그날의 생각 정리, 아니면 주변의 풍경을 보며 글을 남겨도 좋을듯 하다.무엇을 쓰든 그건 이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의 자유이리라.
살아있는 것들을 책임질 자신이 없음에도 지나치는 꽃집에서 다시금 화분 하나를 들이고 키우는 일상을 마주하기도 하고 부동산 사이트를 돌아보며 하우스메이트와 먹는 점심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누구나 해봄직한 생각들, 또 누군가는 조금 특별하게 보내는 시간들... 그들의 공통점에 점심 시간이라는 것이 있지만 제각각의 삶이 녹아들어 개성있는 글을 마주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였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
|
20대까지는 혼밥이란 자의반 타의 반하고 싶어도 못하는 환경 덕분에 생각도 못 했지만, 지금은 혼자 내 맘대로 차리고 먹는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좋아하는 지인들 그리고 가족과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하루에 한 끼 정도는 혼자 내 마음대로 아무 신경 쓰지 않고 기분 따라 즐기고 싶다는 것을 아이가 3살 되던 해 알게 되었다. 작가님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산문집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감탄했다. 점심 혼밥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다양하고 공감되는 이야기들을 맛깔나게 쓰시다니 좋아하는 문장이 내가 좋아하는 줄줄이 소시지 반찬처럼 계속 나왔다. 참 맛있는 글들을 읽는 시간은 혼자 즐기는 점심만큼이나 행복했다. 좋은문장을 다 쓰려다가... 맛있는 글들을 꼭 직접 읽어보시길 하는 마음에 줄였다. 혼자라서좋은점도 또는 읽는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느끼는 '기쁨 채집'을 하는 시간이 되실 거여요. (한겨레출판서평단 하니포터로 도서를 협찬 받았지만 직접읽고 쓴 솔직한 후기입니다)
|
|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
|
많은 비정규직이 점심을 거르기 일쑤고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 누군가는 식사를 챙기고 몸 관리를 하는 것 역시 사소하지만 성실한 자기 관리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식사 메뉴만을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점심을 거르는 건 그 사람이 나약한 의지나 낮은 자존감으로 자기 관리를 놓쳐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상황의 문제일 때가 많다.p26 ..... 요즘 사소한 주문에도 건마다 별점 매기길 요청하는 플랫폼 앱들이 부담스럽다. 모두를 위해 서비스는 개선되어나가야겠지만, 플랫폼에 전시되는 별점과 평가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가장 큰 자산인 서비스 노동자거나 작은 규모의 자영업자니까. 모두에게 점심이 편안하고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점심을 거르게 되고 어쩌다 아프더라도 괜찮다고, 조금 느리거나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p27 -강지희 점심이 없는 날들 中- 평일의 점심은 어쩐지 쓸쓸하다. 아무리 맛있는 메뉴를 선택해도 속도를 내서 먹어야 한다. 속을 터놓고 회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는 없어진 지 오래. 내가 좋아하고 신뢰했던 이들은 모두 떠났다. 가끔 찾아와주는 전 동료, 기꺼이 속내를 드러내도 두렵지 않은 몇몇의 사람, 일로 만났지만 친구가 된 선후배들을 만나지 않는 한, 나의 점심은 여전히 외로울 전망이다.p98 -엄지혜 외로우니까 점심이다 中- 사실 회사에서 먹는 점심 식사는 가장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때로는 입안 가득 떠 넣는 한 숟갈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진다. 어떠한 목적 없이, 저마다의 밥벌이를 위해 좁고도 넓은 대한민국을 돌고 돌아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끼리 취향 따위 고려하지 않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먹는 식사는 얼마나 애석한가. p178 -원도 다짜고짜 뭐 먹을 거냐니中- . . 문학평론가, 분야별 작가, 시인, 전 기상캐스터, 현직 경찰관이자 작가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이들이 점심을 주제 쓴 산문들을 담았다. 점심에 대한 단상들과 짧은 점심시간이 부여하는 의미,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감정들을 표현했다. 우리는 촉박한 시간에 때론 식사를 거르기도 하고, '먹는다'기 보다는 '때운다'에 가깝게 허기만 채우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소박한 점심을 먹기도 하고, 때때로 누군가와 함께 화려하고 푸짐한 한끼를 먹기도 한다. 나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달고 살며, 한끼 식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떼운다'가 아니라 '먹는다'와 '즐긴다'가 어울리는 식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의 전 직장에서 점심을 함께 하던 회사 사람들은 차츰 비싼 밥값이 부담스러워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혼자 먹게 된 나는 매일 어떤 점심을 먹을까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며 먹고 싶은 메뉴를 먹었다. 그런데 내 눈에만 이상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도시락을 싸오는 회사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같이 먹지 않고 각자 다른 룸으로 들어가 따로 먹고, 대표라는 사람은 김치냄새를 풀풀 풍기며 사무실 안에서 도시락을 먹곤 했는데, 사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음식의 역한 냄새 때문에 불쾌했다.(그 무례를 아직도 본인만 모르고 있으니 문제지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각자 다른 사회생활을 했으니 개개인의 취향과 성향,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한건데도, 나는 그 모습이 못내 낯설고 불편했다. 10년전만해도 나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식사는 함께 먹으며, 수다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기에, 혼자 휴대폰을 보거나 음식이나 TV, 벽을 보며 먹는건 너무나 어색하고 내게는 서툰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누구보다 혼밥을 즐기고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고 먹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직장인에게 부여되는 1시간의 짧고 짧은 휴식시간. 그게 바로 점심시간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점심에 대한 단상들이 솔직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산문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