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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어에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어떤 종류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때 언어에 어떤 행위능력,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힘을 귀속시키고, 우리 자신을 언어가 상처를 주게 되는 그 궤적의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우리는 언어가 행위한다고 주장하고, 언어가 우리에 맞서 행위한다고 주장하며, 우리가 하는 이 주장은 지나가 버린 사례의 힘을 저지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추가적인 언어의 사례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의 힘에 저항하고자 할 때조차 언어의 힘을 행사하게 된다. 어떠한 검열로도 돌이킬 수 없는 곤경에 휘말리면서 말이다...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언어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즉 존재하기 위해 언어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언어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우리가 언어에 취약하다는 것은 우리가 언어의 용어들 내에서 구성된 그 결과 때문인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가 언어로 형성된다면, 그 형성적인 권력은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어떤 결정에도 선행하고 그것에 조건을 부여하며, 자신의 과거의 권력을 통해 우리를 처음부터 모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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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상 속에서도 상대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발언들이 증가하고 그로 인한 자살 참사도 많은 가운데, 이러한 혐오발언을 혐오의 피해자 입장에서 새롭게 재전유하는 것이 가능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니 몇가지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기준으로 줄세우며 '빻았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여성은 이를 재전유하여, 여성의 외모를 두고 줄을 세우며 성적 희롱을 일삼는 그런 이들에게 '빻았다'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지금은 '빻았다'라는 주된 의미가 후자의 의미로 바뀌지 않았는가. 항상 그렇듯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은 전복적이고 급진적이지만, 가만보면 우리 세상을 적확하게 읽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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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격분시키는 말(exitable speechs)>인 이 책은 버틀러가 소위 혐오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의 문제점, 그렇다면 어떻게 혐오발언에 대항할 수 있으며, 행위성(agency)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화용론'의 관점에서 혐오발언에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은 <젠더 트러블>과 같은 기존 저작들의 문제를 언어의 무대위로 가져오고 있다. 버틀러는 국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하고, 오히려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법적 규제도 제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혐오발언의 문제에서 핵심은 '발화'를 재의미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양가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혐오발언과 관련된 젠더 정치의 문제들을 사고해볼 수 있고 더 나아가 버틀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적극적으로 주체의 양가성을 고려할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