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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옥타비아 버틀러가 1993년에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배경은 2020년대 미국으로, 기후 위기와 경제 붕괴, 사회 불평등이 극심해진 시대이다. 사람들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동체 안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가지만, 그마저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주인공 로렌은 남의 고통을 자신이 직접 느끼는 ‘공감’ 능력을 가진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기존 제도와 종교가 무너진 사회 속에서 새로운 신념을 세운다. 그것이 바로 “신은 변화다”라는 원리에 기반한 “어스시드”라는 사상이다. 로렌은 생존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 소설은 단순한 생존 기록이 아니다. 변화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버틀러는 디스토피아를 단순히 암울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도 인간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30년 전에 쓰였지만 오늘날에도 놀랍도록 현실적이다. 기후 위기, 사회적 불평등, 공동체의 붕괴라는 문제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게 하는 거울이다. 이 작품은 결국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변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길러야 할 씨앗이다. |
| sf 디스토피아물인데 현실과 닿아있는 부분이 많은 것 겉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은 더욱 그렇게 느끼실 것 같습니다. 추천을 받아 읽어봤는데 생각보다 더 좋았습니다. 시람들이 문제였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도움받는 현실이 생각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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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입니다. 극심한 기후 변화와 잇따른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2024년 미국. 총성과 마약, 방화와 살인이 들끓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열다섯 살 로런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목사인 아빠와 가족, 이웃과 함께 살고 있다. 로런이 보기에 이 세상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로런은 자신이 믿는 것을 글로 기록하고, 장벽 안에서 안주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 로런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느끼는 ‘초공감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바깥세상에서 생존하기는 더욱 힘들겠지만, 로런은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장벽 밖으로 나가겠노라 결심한다. |
| {킨}을 휘몰아치듯 읽은 기분이 있어서, 완결작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한꺼번에 두 권을 구매해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부터 읽는 중이다. 일기 형식처럼 쓰여 있어서 종말을 뚫고 살아남았던 사람의 일지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금의 환경문제나 인종문제같은 게 다를바 없어보여서 작가들은 앞을 얼마나 내다보는 걸까 싶기도 했다. 아직 읽은지 중반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도 어떤 내용일지 정말 궁금해진다. |
|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을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다고 벼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을 선택했다 이 소설이 1993년에 발표됐다고 하는데 정말 놀랍다 거의 30년 전에 쓰여진 소설에 현재의 모습이 있다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2006년에 나온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도 떠오른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도 많다 권력을 조금이나마 가진 사람은 그걸 휘두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라든가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조차 현실을 끈덕지게 부정한다 같은 문장들 아무튼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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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에 대해 , 지구의 미래에 대해 희망은 없는건가? 이책은 1990년대에 씌여진 책인데 2024년부터가 배경이다. 1990년대에 상상했던 인류의 미래는 매우 잔혹하다. 작가가 상상했던 2024년은 아니지만 실제 현실은 잔혹하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사주나 관상따위를 믿지 않는다. 내 미래가 얼굴에, 태어난 날에 모두 정해져있다고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는 바꿀 수 있는만큼 희망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하루 열심히 사는 이유가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그린 미래는 여전히 2차대전 직전의 지구와 다름이 없다. 2편인 '은총을 기다리는 사람의 우화'에서는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상상력이 거기까지인가 싶기도하다. 그럼에도 1편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우화'는 재미있게 읽었다. 어쨌든 잔혹한 현실에서도 자신만의 종교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사랑도 만나고 그와 정착할 곳에 도착되었으므로. (그래서 2편에선 새로운 삶을 일구며 따뜻하게 살아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미래를 그린 책이나 영화를 많이 보게된다. 하나같이 마지막엔 희망을 주려고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미래의 현실은 차갑고 회색빛이다. 지금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나? 기후변화, 환경오염, 전염병, 극한의 이기주의, 미디어중독등의 현실이 가끔은 무섭게 느껴진다. 나열한 모든게 없었다고 다 좋은 날이었나? 하면 그것또한 자신있게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비관적이며 내 미래에 대하여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언제라도 자연스레 멈추었으면 하고 바라니까, 웃기는건 내가 SF와 같은 미래소설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상상으로 빚어진 미래를 보고싶어한다. 그것이 어둡고 막막한 미래의 이야기일때 더 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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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개가 죽는 것을 느꼈다. 그랬으면서도 죽지 않았다. 나는 그 개의 고통을 마치 인간의 고통처럼 느꼈다. 개의 생명이 화르르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것을 느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p.80)
옥타비아 버틀러 Octavia E. Butler / 장성주 역 /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Parable of the Sower) / 비채 / 585쪽 / 2022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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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문장 : 설교에서 한 말이 모두 진실이기를 내가 아무리 간절히 바란들, 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흩어질 것이다. 문제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얼마만큼 뿔뿔이 흩어지느냐일 뿐.
■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책이었고, 기대보단 몰입해서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당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줬고 그 비극을 체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기후변화와 경제위기로 무너진 세계,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 이방인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장벽을 세우는 사람들 등 소설이 그리는 2024년의 풍경은 SF 소설에서 묘사된 모습으로만 치부하기엔 현실과 너무도 흡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