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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삼십대에게 건네는 따듯한 위로, 묵직한 공감
"흔들리는 삼십대에게 건네는 따듯한 위로, 묵직한 공감" 내용보기
허리가 한번 씩 아플 때면 하게되는 생각이 있었다. 맨 처음 삐끗했던 그 일만 조심었더라면...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내 또래에 허리가 튼튼하다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 원래 30년쯤 썼으면 허리 관절도 근육도 약해져 불편한 허리를 안고 살아햐 하는 거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얻은 병이 하나 더 있다. 삼십대에 찾아온 내 우울증이다. 그 역시 졸업후 사회 초년생이
"흔들리는 삼십대에게 건네는 따듯한 위로, 묵직한 공감" 내용보기
허리가 한번 씩 아플 때면 하게되는 생각이 있었다. 맨 처음 삐끗했던 그 일만 조심었더라면...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내 또래에 허리가 튼튼하다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 원래 30년쯤 썼으면 허리 관절도 근육도 약해져 불편한 허리를 안고 살아햐 하는 거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얻은 병이 하나 더 있다. 삼십대에 찾아온 내 우울증이다. 그 역시 졸업후 사회 초년생이된 내가 필연적으로 마주했을 병마 같은 것일 거다. 바닥을 모르고 가라앉던 기운은 이제는 돌아와 제자리를 찾았지만, 그 상처는 남아서 지금의 내 성격과 생활을 형성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서른, 죽음의 고비,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임에 독자로서 감사하게 된다. 동시에 그 또래인 나에게 전하는 힌없이 깊은 공감의 메세지다. 작가로서의 삶은 아니지만 우리모두 불안한 미래에 떨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찾아온 행복의 순간이 내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때, 나는 작가와 같이 나의 오늘에 포개어진 미래를 본다. 아이야, 아빠는 이제 삶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t*******5 2022.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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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내용보기
. 좋은 구절에는 밑줄을 쫙쫙 거가며 읽었다. 문장들이 그림으로 다가온다. 서정적인 음악처럼 느껴진다. 눈물이 났다.  마음을 때리는 문장에 포스트 잇을 붙인다. 2부는 통째로 모든 문장을 머리에 담아두고싶다.'서른이면 뭐라도 될줄 알았지', '마지막 계단을 알지 못했을 때', '누구나 중심을 일렁인다'우와...제목부터 마음을 붙든다. 그가 인생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여서일까?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내용보기

. 좋은 구절에는 밑줄을 쫙쫙 거가며 읽었다. 문장들이 그림으로 다가온다. 서정적인 음악처럼 느껴진다. 눈물이 났다. 

마음을 때리는 문장에 포스트 잇을 붙인다. 2부는 통째로 모든 문장을 머리에 담아두고싶다.'서른이면 뭐라도 될줄 알았지', '마지막 계단을 알지 못했을 때', '누구나 중심을 일렁인다'우와...제목부터 마음을 붙든다. 그가 인생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여서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 어떤 시간보다 애절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우리는 스무살, 서른, 마흔에 특별한 의미를 보탠다. 나도 그의 서른즈음에를 바라보며 나의 서른 날을 회상했다. 멋모르고 날뛰던 스물을 지나 이제 조금 인생을 알고 실제를 맞닥뜨렸을때의 좌절감이란. 끝내 절망적이었던 삼십대의 끝에는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흔이 남아있었는데, 그땐 그것도 모르고 보이는게 다라고 믿었던 시절. 작가의 서른은 물론 일반적인 서른과 좀 다르긴 하다. 작가는 희귀병인 말단 비대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더 절망적이고 인생의 바닥을 지긋이 눌러본 장본인으로써 서른을 마주하는 감회가 남다를 수 있다. 뭐 꼭 무슨 병을 앓아야 인생을 안다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남들에게 한마니 더 얹어줄 수 있는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의 메세지를 차곡 차곡 접어 마음속에 담았다. 그가 삶의 찰나에서 붙잡았던 순간들을 고이고이 간직해놓으려 한다. 여전히 '왜 나는 이런 구절을 떠올리지 못할까?' 아쉬운 마음까지도.

서른의 나는 그렇지 않다. 자유롭지만, 스물의 자유와 서른의 자유는 다른다. 서른의 자유 속에는 언제 자라났는지 알 수 없는 책임이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치의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스물의 나는 내일이 없어도 상관없지만, 서른의 나는 내일을 걱정한다. p.33

마흔을 넘긴 아직도 내일이 없어도 상관없이 살고 있다. 괜찮다. 서른도...

 

먹는 일이라는 뜻의 식사는 소란스런 느낌 속에서 먹을 때 즐거움이 더해진다. 예컨대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서 먹는냐에 따라서 다르다. 물놀이를 하고 난 뒤 물가에서 먹는 컵라면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맛이다.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군것질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빵빵하다. 그때의 맛있는 기억은 늘 어떤 소란 속에서 갖게 된 것이다. 때문에 나는 혼밥을 좋아하면서도 무의식중에 그런 술렁거림을 원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소란스러운 식사란 게 좀 씁쓸한 말이기도 한데, '혼자'라는 정서적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p.44~45

인간의 욕심이란 끝도 없는 듯. 나도 혼자는 좋지만 술렁거림이 그립다.

어쩌면 '아직'은 이미 도래해 있는데, 우리가 모를 뿐일 수도 있다. p.54

으아...비워둔 한 조각이 딱 맞춰지는 퍼즐조각처럼 마음 자리에 쏙 들어와 앉았다.

함께라는 건 각자가 지닌 괄호와 괄호 가 만나는 것 같아서, 기어코 채울 수 없는 두 괄호 사이의 쓸쓸함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p.80

가끔은 열려진 괄호를 그리워하기도 하는데 말이지. 또 닫히지 않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러나 재능도, 빼어난 실력도 없는 내가 계속 문학을 할 수 있었던 건, 다른 게 아니다.(성실함 같은 건 아니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하는 무모하고 막연한, 어쩌면 무책임하기까지 한 그런 믿음 덕분이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며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달리 말하자면 문학 말고 다른 건 정말 해볼 엄두가 안 난 것도 있고, 그것 말고는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매번 나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대단히 나태한 나를 위한 전략적 대처였다.p.179

나도 그랬다. 물론 작가의 무모함보다 훨씬 더 무책임하지만...

2부는 통째로 옮겨 적고 싶다. 정말 터널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그를 따라 딸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천천히 옮겨적어야지...조금 느려도 괜찮잖아?

w****p 2022.05.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