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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창고』부터 이수명 시인의 변화가 감지되었다면, 『도시가스』는 그 기미가 확장되고 더욱 확고해졌다고 봐야 할 것같다. 굳이 '시어'가 일반어와 구분되거나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가스'나 '물류창고'를 시의 제목으로 삼거나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건 시인의 다분한 의도라고 생각하고, 두 시집은 그래서 어떤 공통점을 가진, 시인의 시 세계에서 특정한 연장선상에 함께 위치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들은 결코 어렵게 읽히지 않는다. 일상적인 언어로 쓰여진 일상들처럼, 쉽게 읽힌다. 그렇다고 그 시들이 쉽다거나 쉽게 이해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잘 읽힌다는 것과 이해가 쉽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때쯤 갓 결혼한 고모의 신혼집에 간 적이 있다. 친가쪽 친적들이 모두 모여서 매우 북적였다. 그 당시엔 '신축'이었던 빨간 연립주택들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싫었던 건지 오랜만에 두둑하게 받은 용돈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건지, 나는 혼자 슈퍼마켓에 갔다. 나름 야무지고 똑똑했던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대문 옆에 붙어 있던 문패의 이름까지 외웠다. 고모네에 가기 전 슈퍼에 들러 선물할 생필품들을 샀고, 슈퍼에서 고모네 집까지 엄마 아빠와 갔던 길이었으니, 갔다 올 자신이 있었고, 문패의 이름까지 외웠으니 나름 그 집을 찾아올 모든 방책을 세웠던 셈이다. 슈퍼까지 사는 건 쉬웠고, 거기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는 것까지도 계획대로 됐다. 그러나 내가맞다고 생각하고 돌아온 집의 문패는 내가 알던 그 이름이 아니었다. 순간 당황이 됐다. 이 골목이 아닌가 싶어 다른 골목으로 갔지만, 거기에도 그런 문패를 단 집은 없었다. 골목을 헤매면 헤맬수록 혼란을 더욱 가중됐다. 집들은 모두 붕어빵으로 찍어낸 듯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 골목도 저 골목도 똑같은 집들이 줄줄이 서 있기만 할 뿐, 그 어디에도 '고모네 집'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내가 사라졌던 걸 알고 나를 찾아나섰던 어른들이 나를 발견함으로써 해프닝을 그렇게 끝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원초적 공포로 남아 있다.
『도시가스』라는 제목을 단 이 시집엔 '도시가스'와 '물류창고'라는 제목을 단 시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데, 그 시들을 구별할 만한 어떤 특징도 어떤 차별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시인이 다분히 의도한 걸로 보이는데, 시인이 생각하기에 우리를 둘러싼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특징이 바로 그러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차이점도 존재하지 않는, 다세대주택들이 늘어선 동네와 같은. 특색 없는.
그런데 바로 그러한 점이 우리가 사는 도시와 세계의 특징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 세계에 살며서 느끼게 되는 모든 (부정적) 감정들의 원인이자 이유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속에서 '익명적 주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강동호는 질 들뢰즈를 빌려 이들을 '소진된 인간'으로 명명한다. "무얼 해도 피로를 풀 수가 없다"(「빛을 세워도 좋을까」)는 점에서 소진된 인간은 소외된 인간의 무능을 한참 심화시킨 존재라는 게 그의 견해다. 소외된 인간이 개성을 상실한 존재, 자기 자신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정당한 존재, 그래서 아직은 여전히 가능성의 존재(p.138)라면, 소진된 인간에게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오히려 지나치게 활성화된 가능성으로 인해 더 이상 가능한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존재가 소진된 인간(p.139)이다.
『물류창고』에 이어 『도시가스』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라면, '소진된 인간'으로서의 '익명적 주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고, 대체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중지시키는 거 외엔 없다는 점에서 답답함이 커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부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이러한 시들과는 별개로 「최후의 산책」같은 시들도 시집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강동호는 「흑맥주 마시러 가는 오후」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글을 맺는데, 그가 발견한 것은, 소진된 인간들이 세계 자체 내에서, 세계에 의해 오전하게 장악되지 않는 장소를 발견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다음 시집은 이 부분에 집중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게 3부작이 완성된다면, 물류창고와 도시가스에 이어 세번째 시집은 산책에 대한 것이면 좋겠다. 이것인 일종의 바람이자 희망이다. 시인을 향한 혹은 나를 비롯하여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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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발표된 시집 ‘물류창고’ 제목에서 어떤 강렬함이 느껴졌는데, 올해 발표된 시집 ‘도시가스’ 역시 네글자 제목이 강렬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 수명 시인의 시집은 어떤 마약처럼 그랬다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갔다. 그래서... 구매하고 말았다.
매일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첫페이지에 실린 ‘시인의 말’은 섬뜩했다.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도시 그런 도시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가스관
가스관이 노출되어 있다. 가스관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그게 좋겠다. 아름다운 경관이 좋겠다. 수직으로 수평으로 가스관은 대열을 이루고 기어가고 있다. 기계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외벽을 덮고 있다. 순수한 가스관 일상생활이라는 테마가 좋겠다. 버려진 다세대 주택가는 붉은 가스관으로 뒤덮여 있다. 주택 전체가 팔려서 마을 전체가 팔려버려서 우거진 잡초 속 가스관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가스관에 들러붙은 것처럼 보인다. 노후한 가스관을 타고 내려간 사람들이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가고 있다.
위태위태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버려진 다세대 주택가 붉은 가스관, 잡초 속에 가려진 가스관 위를 걷는 우리들이,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가고 있단다.
파리 목숨 같은 우리를 시인은 슬프게, 아프게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시인만의 ‘밀도 높은 시적 실험성’의 시가 나를 강하게 당긴다. 이해할 수 없는 시적 표현들이지만 그냥 마약처럼, 한 잔 술처럼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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