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생애의 역작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을 접하게 된 건 그리 큰 기대를 품고 책자를 검색해 나가는 설레이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책의 텍스트에 참고되어있는 그녀의 작품을 보고는 언젠가 한번쯤 읽어봄직하면 조금이나마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는게 알맞겠군요. 하지만 그녀는 마음의 양식이 스며든 듯한 세밀하고도 고통이 머문 글을 통해 하드리아누스의 사랑과 스쳐간 수많은 인연, 그리고 인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열정------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감흥이라고 하면 딱 알맞은 표현일까요? 하드리아누스의 인생은 그 자체가 열정이었습니다. 마치 불을 향해 날아가는..... 그리고 거침없는 그의 모습을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역시 그와 함께 걸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화가 되어버린 하드리아누스와 농익은 필체로 그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저자를 보며 나 역시 그들의 열정에 동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셋은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무언의 느낌으로 서로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앞으로 변치않을 현실이 될 수 밖에 없는 그 절대적인 사실에 동감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도 그 절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겠지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증오하고 집착했던 것 마져도 제 손에서 놓아야 할 것입니다. 하드리아누스의 그 고통스러운 삶의 집착이 제겐 연민과 두려움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그가 순응했듯이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신이 주신 마지막 선물인 하나의 안식이라는 것을 제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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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현제(五賢帝)시대의 세 번째 황제인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손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전해주는, 자신의 통치시절에 대한 모든 내용을 고백형식으로 회상(回想)하는 소설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로마제국은 왕정시대와 공화정을 거친 이후 제정시기로 들어서는 정치구조의 변화를 겪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 제정시대, 로마제국 최대영토를 관리했던 한 인물에 관한 얘기다.
로마제국 역사에 있어 최대, 최고의 평화시기는 오현제시대로 압축되는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시대라 불리는 시기다. 5대 현제의 첫 번째 황제인 네르바, 로마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혀 놓은 트라이아누스, 그 영토의 기반위에서 내치에 힘쓴 하드리아누스, 준비된 제국을 이어 받아 평화시대를 구가한 안토니누스, 게르만족의 남하를 막던 중 다뉴브강변의 한 진지에서 병사한,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 인물들이다.
하드리아누스황제는 전대 황제인 트라이아누스가 넓혀 놓은 영토를 기반으로 더 이상의 정복전쟁을 지양하고 제국 시민들에게 평화를 강요(?)했다. 그는 전대 황제의 사망원인이기도 했던 파르티아제국과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화의를 체결하고 통치기구를 정비했으며, 제국의 행정제도와 속주의 통치제도를 개혁했다. 관료제도를 정비했으며 군대 규율과 군사제도 정비를 단행해 군 내부 개혁도 완료했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지금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계부근, 영국 동해안과 서해안 120㎞를 방어벽으로 만들었다.)과 게르마니아 방벽(라인강과 다뉴브강 사이에 있었던 ‘슈바르츠발트’란 엄청난 숲 지역에서 게르만인들이 자주 침략을 하자 몽땅 점령하여 방벽을 세움)을 건설하였다. 그는 특히 학문을 좋아해 로마법과 예술 전반에 걸친 각종 학문연구에 매진해 적잖은 업적을 쌓았다.
이 소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음에 임박한 시기,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된 안토니누스의 양자인 마르쿠스에게,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온갖 경험과 제국 운영에 관한 비밀들을 전해주는 듯 하다. 더군다나 자신이 사랑했던 미소년들(안티노우스, 루키우스)과의 애정행각이라든지, 궁중암투와 적나라한 권력쟁취에 관한 내밀한 얘기까지도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가 느꼈던 삶의 애환과 인생의 교훈, 황제로서의 책무와 변방 제민족들과의 전쟁, 내부의 사회개혁과 속주들의 통치를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기록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대기록, 예컨대 단편적인 의미만을 짐작케하는 설화, 서사시, 산문등의 글과 기념비의 문구등을 광범위한 지역에서 조사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뼈대와 앞으로의 전개 방향을 세부적으로 설정한다. 또한 황제가 통치했던 당대의 기록들, 그 후대 작가들의 논문과 저작물들을 종합한 후 황제의 행동반경과 그 시대에 벌어진 실제상황을 연대기별로 연출해 놓은 것이다.
황제는 3번에 걸쳐 제국의 변방과 접경지대, 특히 브리타니아(영국), 라인강변에 위치한 게르만족과의 접경지대, 다뉴브강 상류지역의 타키아왕국, 흑해연안, 그리스 및 소아시아(터키),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이집트, 북아프리카, 에스파냐(스페인), 갈리아(프랑스)를 순방하면서 제국를 통치했는데 황제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모든 영토의 끝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즐겼다.
그는 통치기간의 마지막 몇 년을 유태지역에서 보냈다. 그곳의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도들은 ‘바르 코르바(별의 아들)’란 이름으로 불리던 ‘시몬’이라는 지도자가 이끄는 ‘열심당’을 중심으로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킨다. 황제는 예루살렘에 유태지역 상주군단인 제10군단(프레텐시스)을 투입했으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자 이집트 지역의 제22군단(데요타리아나)을 긴급히 파견했다. 그러나 반란군에 의해 풍비박산이 나자 제12군단(풀미나타)과 제6군단(페르라타)을 전선에 투입한 뒤에야 탈환할 수 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간은 꼬박 3년이나 걸렸다. 황제는 예루살렘을 불태워 흔적도 없이 파괴한 다음('통곡의 벽'이 그렇게 해서 생겼다.), 자신의 방식대로 재건에 나섰다. 그리고 ‘유태지역’이란 단어를 없애고 그곳에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이란 명칭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후계자(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지명하면서 그 후계자의 후계자까지 지명하는 은혜로움(?)을 하사한다. 그렇게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는 공동황제로서의 통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양자 입양의 승계는 여기까지였다. 후기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아들이었던 콤모두스(리들리 스콧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배경)에게 황위를 물려주는데 그 이후 로마 제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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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중 ‘현제의 세기’ 편에 있는, 로마의 황금 시대를 이끈 황제들 중의 한 명인 하드리아누스를 읽다가, 오래전 내게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주었던 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을 떠올렸다. 마침 좀더 선별된 텍스트를 읽고 싶다는 마음과도 부합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선을 앞둔 지금, 로마 제국을 이끌었던 하드리아누스를 읽는 일이 또한 의미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이십여년전에 발간된 책을 그대로 읽다보니 문체의 어색함으로 고생하였고, 가벼운 글들에 잠식당한 사고 회로가 난무하는 추상어와 마침표 찍기를 주저하는 긴 문장 탓에 번번히 멈추었지만 대선일 전에 다 읽을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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