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0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0%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4%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10.0
  • 20대 9.0
  • 30대 9.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3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작별인사(김영하, 복복서가)
"작별인사(김영하, 복복서가)" 내용보기
인기 작가님이라서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서 책을 읽을 터인데.... 생각이 앞섰습니다. 실제 경험하기도 전에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보다는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둘까, 판단이 먼저 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답니다. #살인자의기억법 #퀴즈쇼 #검은꽃 등 작가님의 전작이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느낌기도 하여서 추측을 접어두고 서너장을 읽은 순간, 추측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작별인사(김영하, 복복서가)" 내용보기
인기 작가님이라서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서 책을 읽을 터인데.... 생각이 앞섰습니다. 실제 경험하기도 전에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보다는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둘까, 판단이 먼저 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답니다. #살인자의기억법 #퀴즈쇼 #검은꽃 등 작가님의 전작이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느낌기도 하여서 추측을 접어두고 서너장을 읽은 순간, 추측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 글을 쓰신 분이기에 나름 연식이 있으시고 옛적을 돌이켜 감성 풍부한 글이나 전작 느낌을 살려 전문 분야처럼 쓰셔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일한 느낌을 어찌나 뒷통수 세게 치시던지 글을 읽는 내내 띠지에 읽는 사진을 몇 번 들여다 보았습니다.



AI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관점이 오로지 인간의 직업 상실률,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인공지능과 얼마나 대치해야 하는가 등 다분히 인간적이면서 비인간적입니다.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창조될 AI 역시 인류의 역사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것들과 차이 없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 고민 좀 하고 거기에 인간의 윤리와 질서를 부여하되 수준 높아진 인간의 격이 함께 담겨져 시대의 변화를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것입니다. 물론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인간의 고뇌 흔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지금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성찰할 부분으로 느껴졌습니다.



■ 그는 『천자문』의 첫 문장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예로 들었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하늘이 왜 까매요? 파랗잖아요."

그는 손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지금 하늘은 어때?"

날씨가 흐려 하늘이 잿빛 구름으로 가득했다.

"지금은 회색이죠. 하지만 저 구름 뒤에는 파란 하늘이 있잖아요."

"그 파란 하늘 위에는 뭐가 있을까?"

그렇구나. 파란 하늘 너머에는 검고 광막한 우주가 있겠구나.

본문 17쪽 중에서

아주 오래 전 중국 문명에서 만들어진 한자의 기원만 보아도 사람들은 우주에 대한 사색과 자신들의 철학을 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홈스쿨링인데 단순히 천자문을 끊임없이 읊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문장 안에서 우주의 질서를 배우고 우주 질서 속 자신을 사유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물론 이야기 반전은 사유하는 저 아이는 최신형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입니다. 세계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휴먼매터스 랩 소속이죠. 휴머노이드 자신조차도 인간으로 인식하고 인간이 가질 공포, 휴식, 배설, 호기심, 철학적 사고 등 편리하지 않을 것 까지도 탑재되어 스스로 철저히 인간으로 알고 있지요.



AI 시대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는 인간에게 필요하지만 인간의 감정과 노동이 섞여서 온전히 감당하지 못할 부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전자기기들이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지고 버려지면서 또다른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더욱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에 사람들은 쉽사리 버리지 못하지만 경제 영역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새로운 수요 탄생을 촉구하고 이것이 경제 발전의 선순환을 낳는다고 믿습니다. 더 나은 버전을 위해 이전 버전은 폐기되어야 하는게 경제 논리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폐기하는 순간, 자신을 돌보고 도와주며 공감 비슷하게 해오던 휴머노이드의 죽음에 감정 이입을 합니다. 그래서 모순된 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러운 한 명의 인격체처럼 다가가 삶을 공유하는 휴머노이드일수록 오래 쓰이고 모듈화된 감정 체계가 외부로 드러날 때 그들 역시 사람처럼 고통과 죽음을 맞이하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적일수록 함께 생활하는데 거부감이 최소화됩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휴머노이드가 불필요한 순간, 불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기준 판단, 폐기 과정 등이 용이하며 매끄러울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애완동물로 사랑받는 개, 고양이가 처음 사람과 함께 동거하던 아주 먼 과거의 조상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와닿는 고민입니다. 인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구와 지구 밖에 존재할지도 모를 존재까지도 동일한 격을 가진 존재들로 받아들일려고 사람들은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휴머노이드에 대한 고민도 이뤄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저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본문 69쪽 중에서

인간을 인간답다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여타 동물들과 다른 팔의 사용, 땅을 딛고 서 있는 두 다리가 전부인지, 다른 동물을 지배 가능하게 만드는 뇌의 활용성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병원에 누워 전혀 움직이지 못한 누군가에는 인간성 상실로 보아야 하는지도 말입니다. 물론 금수만도 못한 죄를 지은자에게 인간성이란 없으니 판단 가치가 없다는 이도 있습니다.



■ "소비자들은 한번 다른 집에 입양됐던 중고 휴머노이드 아이는 원하지 않거든. 성격이 이미 형성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파양된 걸 보면 성격에도 문제가 있을 거라 넘겨짚기도 하고.... 그들은 사용감이 없는 아이만 원해."

본문 98쪽 중에서

인간의 약점이라 부를 수 있는 신체적 불완전성으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가정에서는 휴머노이드 아이를 양육하는 시기가 올 지 모릅니다. 물론 신체적 불완전성보다는 지금 당장 감정 욕구를 충족하고자 잠시 아이 양육 과정을 경험하고 싶기도 하여 휴머노이드 아이를 사용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이야기 속 문장처럼 대체적으로 사용감 있는 중고 휴머노이드 아이는 선택될 확률이 낮을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 역시, 인간 아이가 입양되었다가 파양되면 사회 기관에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양육되다가 어른으로 충분히 성장하여 독립하기 전에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아이는 이대로 폐기 처분으로 방치된다는 것이 이야기 속 민이의 이야기입니다. 인간 아이가 갖는 치명적 약점을 제하여 마냥 긍정적이고 아이 그 자체로 머무는 민이는 이제 폐기 대상일 뿐인 것입니다. 리얼한 휴머노이드일수록 아동 학대 및 방치에 가까운 피해 감정을 그대로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이것을 인간적? 혹은 윤리적 입장을 제하고 바라봐야 하는가 의문이 듭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고서 옷장 속에 방치해 버리는 인류가 과연 진보하고 발전해 가는 방향이라 볼 수 있는건가 싶습니다.



■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본문 106쪽 중에서

폐기 처분 명분으로 모아진 휴머노이드의 집합체 안에 진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계들이 느끼게 될 공포에 대해 그려진 장면이지만 그 공포를 주입한 인간들이 기계적인 게 맞는 건지, 죽음의 공포를 공격성 혹은 살기 위한 몸부림 등으로 표한하는 휴머노이드가 인간적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 "그냥 얼음과 물일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본문 135쪽 중에서

■ "그런데 이제 저는 감정과 윤리를 가진, 진짜 마음이 있는 휴머노이드가 이 냉혹한 세계에서 파멸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저는 가끔 생각해요. 인간을 창조한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고통을 겪었겠구나, 아니 겪고 있겠구나."

본문 187쪽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의 표현이 순수하게 그려집니다. 휴머노이드 혹은 이야기 속 인간 아닌 존재들에 의해서요. 이야기 진행 내내 삶에 대한 투쟁, 고민, 결론 등을 대화하는 장면마다 가장 인간적인 사색과 철학을 꺼내놓는 것은 인간보다는 비인간이란 지칭되는 이들에 의해서 입니다.

휴머노이드에 대한 예상 가능한 문제를 뛰어넘기 위해 이야기 속 최박사는 감정과 윤리 등을 탑재한 진짜 인간다운 휴머노이드를 만듭니다. 자신의 창조물이자 자식인 철이입니다. 하지만 자식을 키워 본 부모는 압니다. 자신히 양육하려는 방향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주장이 자신만의 사고와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세상의 질서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법은 문제 가능성 차단을 위해 이 철학적 사고와 부모로부터 독립적으로 성장하려는 휴머노이드 철이를 등록되지 않는 기계로 분류할 따름입니다.

■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

본문 203쪽 중에서

■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본문 295쪽 중에서

소설 말미에 다다를수록 휴머노이드는 더 인간적인 사고와 고뇌에 빠집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비인간성, 인간성 상실이 결국 기계에게 세상을 내어주고 인간적인 기계들에 의해 세상 마지막 인간성이 지켜지는 것이 소설 끝에 그려집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쩌면 현재 사회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성 상실이 우리 미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김영하 #김영하장편소설 #복복서가 #김영하신작 #불심철학소설느낌 #크리스천인데불심이생김

#인간의삶이란 #삶의철학 #인공지능세상끝이란 #인간과인공지능 #김영하철학 #기계같은삶인간다운삶



#추천도서 #도서추천 #베스트셀러 #김영하베스트셀러 #미래과학소설 #AI소설 #AI시대 #미래상상과학소설 #작별인사휴머노이드 #휴머노이드와인간성

http://m.blog.naver.com/bbmaning/222742267381

b******g 2022.05.23. 신고 공감 37 댓글 19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23-50] 무엇이 나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23-50] 무엇이 나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내용보기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구분이 의미 있을까?   저자는 <작별인사>가 개작(改作)을 거치면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서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두 개의 화두(話頭)는 서로 배제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는 서로 섞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휴먼매터스 랩에서
"[23-50] 무엇이 나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내용보기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구분이 의미 있을까?

 

저자는 <작별인사>가 개작(改作)을 거치면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서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두 개의 화두(話頭)는 서로 배제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는 서로 섞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휴먼매터스 랩에서 휴먼매터스의 창립 멤버인 최진수박사의 아들로 살아오던 ‘철이’는 비 오는 날 아빠에게 우산을 가져다 주러 나갔다가 미등록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철이는 스스로 기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기계파’ 휴머노이드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처럼 살아가는 최신형의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인 것처럼 행동한다.

 

처음엔 그저 그들을 흉내냄으로써 안전을 도모한다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관절은 연골과 윤활액 대신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기화학 제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뇌에 뉴런 대신 회로가 있다는 것 등의 차이들이 있겠지만, 이미 많은 인간이 뇌에 칩을 박아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잘린 팔다리 대신 인공 수족을 장착하여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pp. 68~69]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가 기계인 걸까? 육체의 몇 %까지 인공 기기로 교체해야 기계일까? ‘뇌’만 남아있으면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의 고유한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육체의 100%가 기계로 되어 있어도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 <작별인사>에 배경이 되는 시대라면 어디까지 ‘인간’이라고. 또 어디까지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나'라고 할 수 있는 거야?

~ 중략 ~

예를 들어 새로운 몸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민이는 예전의 그 민이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일까? 팔도 교체할 수 있고, 다리도 교체할 수 있고, 몸의 모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부분들은 '나'가 아닌 거잖아. 그게 없어도 나는 나일까?

그렇지. 뇌가 그 경계일 거야. 의식은 거기서 생겨나니까.” [pp. 200~201]

 

 

나를 '나'로 정의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을 인간으로 알고, 인간처럼 살아가는 최신형의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는 겉보기에는 인간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 기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기계파’ 휴머노이드는 수용소에서 자신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개체의 팔을 뽑아 버린다. 분명히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이기는 하다. 하지만 휴머노이드가 아닌 인간일 경우 이런 구분방법은 치명적인 부상이 된다. 따라서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사실,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하는 ‘기계’, 아니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기계’를 그리는 작품은 이 작품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다움’에 대해 논의하는 작품으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의 단편 <바이센테니얼 맨(The Bicentennial Man)>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와는 다소 다르지만 외관상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리플리컨트를 다루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도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네가 스스로 인간이라고 믿는 증거 같은 거 말야.”

아, 음악. 음악이 있어. 나는 음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여. 정말 말 그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아. 그리고 보니 수용소에 잡혀올 때도 소광장에서 하이든을 듣고 있었어.”

마음은 움직이지 않아요. 마음은 그냥 안에 있어요.”

민이가 내 말을 잘랐다.

이런 걸 비유라고 하는 거야. 마음은 물론 내 안에 있지만 흔들리고 무너지는 거야. 나는 집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음악들을 떠올리면서 수용소의 끔찍한 날들을 견뎠어. 내가 기계라면 왜 음악 같은 것을 듣고 감정이 변할까? 음악은 기계에겐 아무 의미도 정보도 없는 소음일 뿐인데나는 시를 읽으며 감탄하고 영화를 보다가 괴로워하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19세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안타까워하면서 읽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인간이 아니야 [p. 123]

 

여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나를 '나'로 정의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다. 예전에 화제가 되었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태를 기억하는가? 가수 타블로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대니얼 선웅 리(Daniel Seon Woong Lee)’임을 증명하는 여러 증거들을 믿지 않는 ‘타진요’ 같은 이들이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거짓으로 꾸며진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

 

 

영생(永生), 그 덧없음에 대하여

 

미등록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잡혀간 수용소에서 ‘철이’는 복제인간 ‘선이’와 버림받은 휴머노이드 ‘민이’를 만난다. 그들은 철이를 만나기 전에 이미 탈출을 시도하다가 민이의 왼쪽 팔목만 로봇 개에게 잃고 다시 잡혀왔다. 수용소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민병대의 습격으로 수용소가 혼란해지자 철이, 선이, 민이는 탈출한다. 휴먼매터스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민이는 살해되고, 철이와 선이는 휴머노이드 재활용 업체를 운영하는 휴머노이드 달마를 만난다. 철이는 달마를 통해 자신이 휴머노이드임을 인지하고,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영생(永生)할 수 있음도 알게 된다.

 

나는 휴먼매터스 밖으로 나와 진짜 세상을 보았다. 민이 같은 휴머노이드가 존재하는 걸 이미 알아버렸고, 선이처럼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클론과 친구가 되었다. 휴먼매터스는 내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혼란에 큰 책임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언제나 문제의 일부였다. 아빠가 나를 원하는 것은 아마도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진행해온 자랑스러운 프로젝트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그가 정확히 나에게서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나를 통해 세상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게 정말 그 휴머노이드를 위해서일까?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기 위해 선이와 같은 클론을 배양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의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을 분명히 알기 전에는 휴먼매터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pp. 212~213]

 

하지만 누구도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영생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개별성이 보존된다면, 레이먼드 F. 존스(Raymond F. Jones, 1915~1994)의SF소설 <합성 뇌의 반란(The Cybernetic Brains)>에서 ‘뇌’가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영생(永生)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름만 영생(永生)이지, 사실상 종신노예가 아닌가.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단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p. 276]

 

영생(永生)은 아니지만 판타지 소설에서 만 년의 수명을 가졌다고 설정된 드래곤의 경우, 긴 수명을 무게에 짓눌려 다른 생명체의 모습으로 유희를 떠나거나 장시간의 수면에 든다. 육신이 있는 존재도 그러할진대, 육체 없이 의식만 있는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 아닐까? 육체가 없다면 쉴 수도 없을 텐데……. 여기에 망각도 할 수 없다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에 나오는 드래곤 ‘크라드메서’처럼 미치거나 자살해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 1917~2008)의 SF소설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를 보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어 영생하는 방식은 개별성이나 독자성을 점차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그 소설에서 인류는 점차 개개의 독자성을 상실하고, 기존의 인류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種)으로 변한 끝에 ‘오버마인드’라고 부르는 하나의 거대한 정신체의 일부로 통합되어 버린다.

 

이 소설, <작별인사>에서는 인간도, 휴머노이드도 대부분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어 영생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제목 ‘작별인사’는 개별성 혹은 독자성과의 작별인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 그리고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라는 종(種)이 개체성을 상실하여 ‘종(種)’으로서 소멸해버리니까.

w******f 2023.11.02. 신고 공감 37 댓글 33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라는 존재의 정의_005 (작별인사)
"'나'라는 존재의 정의_005 (작별인사)" 내용보기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하는 '기계'   이런 설정을 마주할 때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바이센테니얼 맨>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개인적으로는 그 역할을 로빈 윌리엄스가 했다는 것 역시 감독이 노린 한 수가 아닐까 싶다) 로봇 NDR-114의 200년의 시간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는데, 그가 문자와 숫자의 조합이 아닌 앤드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인
"'나'라는 존재의 정의_005 (작별인사)" 내용보기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하는 '기계'

 

이런 설정을 마주할 때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바이센테니얼 맨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개인적으로는 그 역할을 로빈 윌리엄스가 했다는 것 역시 감독이 노린 한 수가 아닐까 싶다) 로봇 NDR-114200년의 시간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는데, 그가 문자와 숫자의 조합이 아닌 앤드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인간에게 사랑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다는,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편치 않은 마음이었다. 심지어 NDR-114가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는 거의 불쾌감마저 일었다면 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옛날 사람이거나 영화 속 NDR-114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차별주의자와 같은 사람인걸까 

 

   <작별인사

 

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인간 같은 기계의 등장이라든가) 책장 펼치기를 조금은 망설이지 않았을까 싶은 이 책에는 다양한 인간들과 기계들이 등장한다. 예상되듯 인간이라고 모두 인간적이지는 않으며 기계라고 해서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기계 그 자체는 아니다.

(적고보니 과연 '인간적'이라는 그 개념 자체가 무엇인가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관절은 연골과 윤활액 대신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기화학 제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뇌에 뉴런 대신 회로가 있다는 것 등의 차이들이 있겠지만, 이미 많은 인간이 뇌에 칩을 박아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잘린 팔다리 대신 인공 수족을 장착하여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pp.68-69

 

   “이미 인간은 기계와 결합하고 있어. 지금 웨어러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여기 아무도 없잖아? 우리의 심장박동, 혈압, 혈당, 그 밖의 모든 수치가 기계에 기록되고 관리되고 있어. 우리가 기계와 다를 게 뭐야? 이미 우리는 사이보그라고.” p.92

 

그러게,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가 기계인거지? 한 사람의 고유한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나? 그렇다면 그 기억을 고스란히 데이터로 옮긴다면, 그 과정에 감정적인 부분까지 구현할 수 있다면, 그때는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야 하나? 나를 인간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이야기는 어느새 의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간다.

 

   “어디까지가 '나'라고 할 수 있는 거야?..(중략)..팔도 교체할 수 있고, 다리도 교체할 수 있고, 몸의 모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부분들은 '나'가 아닌 거잖아. 그게 없어도 나는 나일까?” pp.200-201

 

   “마음은 움직이지 않아요. 마음은 그냥 안에 있어요.” 민이가 내 말을 잘랐다.

   “이런 걸 비유라고 하는 거야. 마음은 물론 내 안에 있지만 흔들리고 무너지는 거야. 나는 집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음악들을 떠올리면서 수용소의 끔찍한 날들을 견뎠어. 내가 기계라면 왜 음악 같은 것을 듣고 감정이 변할까  음악은 기계에겐 아무 의미도 정보도 없는 소음일 뿐인데. 나는 시를 읽으며 감탄하고 영화를 보다가 괴로워하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19세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안타까워하면서 읽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인간이 아니야 ” p.123

 

'마음'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지고 보니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불편함 대신 내 마음 속에서도 '존재'에 대한 문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아니, 난 분명히 인간이야. 내가 인간이라는 걸 나는 매 순간 느껴.” 나는 반박했다. p.120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물론 아직 과학의 진보가 그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기에 당연시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는 정말 라는 사람 그 자체인가  (이 지점에서 문득 영화 트루먼쇼매트릭스가 떠올랐다) 나를 '나'로 정의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만약 거짓으로 꾸며진 삶을 살고 있다면(트루먼 처럼) '나'라는 존재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작가가 던지고 싶었던 화두도 인간과 기계의 이분법적인 이야기가 아닌 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김영하 작가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했듯 작가는 어떤 의미를 숨겨두지 않은채 독자에게 그 역할을 맡겼을지도 모르지만)

 

김영하 작가의 책은 여행의 이유이외에는 읽어본 적 없는 나였는데, 가볍지 않은 화두를 이렇게 담백한 문체로 적어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이런 것이 작가의 필력이라는 건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읽기였다.

 


 

*기억에 남는 문장

어른들은 아이들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친구랑 뭘 하며 놀 거니? 다른 집에 놀러갈 때면 그는 그렇게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해가 잘 안 됐따.

우리 친구 아닌데요? 몇 달 전 잠시 만나 보드게임을 같이 하면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대화를 좀 나눴을 뿐인데요.”

제대로 된 친구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런 관계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p.21

*그러게나 말이다. 새로 이사온지 하루도 안된 날에도 "친구는 많이 사귀었냐?"고 물어보는 어른들이니.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어떤 캐릭터가 제일 좋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는 어릴 때 겁쟁이 사자를 제일 좋아했어. 사자인데 겁이 많다니 귀엽잖아?” 25-26

*이 책에는 <오즈의 마법사>를 빗댄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다음번에는 그 이야기를 모아 리뷰를 적어봐도 좋을 듯 싶다. 살짝 TMI이지만 나는 허수아비를 좋아했었다^^

 

완벽한 고양이 로봇을 만드는 것은 그의 오랜 꿈 중의 하나였다. 개를 닮은 로봇은 양산되고 있었지만 고양이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적이고 도도하면서도 인간의 사랑을 듬뿍받는 로봇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pp.27-28

 

무료하고 갑갑하다고만 여겼던 평온한 시간들이 실은 큰 축복이었다. p.43

 

인간의 약점과 불편까지 구현한 휴머노이드는 마치 마법처럼 보일 거야. 이런 유명한 말도 있잖아.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인간은 속아넘어가는 것은 싫어하지만 마법에는 너그러워. 아니, 아주 즐거워하기까지 하잖아.” p.85

 

버려진 휴머노이드들은 제조 국가별로 모였다. 갈 곳을 잃은 높은 지능의 기계들이 그나마 자신의 원산지를 연고지로 여기고 그곳으로 가려 했다는 말은, 그 말을 처음 들었던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슬픈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p.98

*휴머노이드들이 원산지를 마치 '고향'으로 여기는 듯한 대목에서는 나 역시 서글픈 마음이 일었는데, 이쯤되면 나의 '기계 거부(?)' 정도가 조금은 낮아진 듯도 하다.

 

선이는 호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냥 얼음과 물일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p.135

 

그런데 어떤 사건으로 기억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상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하잖아. 또 약물에 중독되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도 그것은 그대로 나일까? 나일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그런 일을 겪어 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모습마저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면 너는 나를 철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p.201

 
YES마니아 : 로얄 w*****y 2023.02.12. 신고 공감 17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작별인사
"작별인사" 내용보기
작별인사 김영하 북북서가/2022.9.5. sanbaram   휴먼매터스에서 아빠와 고양이 칸드, 갈릴레와 함께 사는 철이는 홈스쿨링으로 공부한다. 아빠가 설계하고 만든 고양이 로봇 데카르트도 같이 살았다. 비오는 날 산책 나간 아빠에게 우산을 갖다 주러 나갔다. 소광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볼 때 무등록 휴머노이드로 연행되어 수용소로 잡혀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연구캠퍼스 밖으로
"작별인사" 내용보기

작별인사

김영하

북북서가/2022.9.5.

sanbaram

 

휴먼매터스에서 아빠와 고양이 칸드, 갈릴레와 함께 사는 철이는 홈스쿨링으로 공부한다. 아빠가 설계하고 만든 고양이 로봇 데카르트도 같이 살았다. 비오는 날 산책 나간 아빠에게 우산을 갖다 주러 나갔다. 소광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볼 때 무등록 휴머노이드로 연행되어 수용소로 잡혀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연구캠퍼스 밖으로 나가게 된 철이가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민이와 선이를 만나 다른 휴먼노이드처럼 행동하라는 충고를 받고 파괴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철이가 잡혀온 다음날 들어온 로봇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다가 팔이 뽑히며 몸속에 있던 배선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철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인간을 꼭 닮은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최신 기술이 자기와 같은 최신 제품이라고 선이를 통해 듣게 된다. 선이는 철이가 휴먼매터스라고 말하지만 본인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신형 로봇들도 보통 인간처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생활한다. 그러나 기계로봇은 그렇지 않았다. 철이 아빠는 휴먼매터스 창립멤버였으나 인공지능이 다른 인공지능 로봇 설계까지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왕따 신세였다. 민이는 인도에서 만들어지고 서울에서 활성화된 어린이 모델이었다. 선이가 잡혀온 것은 등록되지 않은 클론이었기 때문이다. 인공장기를 배양하기위해 만들어진 클론인 선이는 거래 능력이 탁월했으며, 민이와 철이도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선이는 새로 들어오는 로봇에게서 교환 가능한 것을 찾아내고 필요한 로봇과 교환하도록 중개를 했다. 그 중심에 선이가 있으며 교환가치를 매겨 장부에 기록하여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중앙은행과 같은 역할을 했다. 오래된 로봇은 피부가 변하지 않아 낡아가고 감정변화도 없어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다. 그러나 최신 모델은 피부도 늙고 감정도 나이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인간다워진다. 최신의 것들은 인간처럼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며, 더우면 땀도 흘리고, 잠도 자야하며, 다치면 피도 나고, 피부가 늙어가기도 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철이는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도 바깥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반란군으로 인해 국가의 치안 문제가 점점 심각해짐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느 날부터 전기가 자주 끊기더니 나중엔 아예 정전이 되었다. 전기를 잃은 휴머노이드들이 하나 둘 죽어갔다. 그러더니 민병대 탱크가 수용소를 공격했다. 건물이 부서지면서 철이는 선이, 민이와 함께 탈출을 했다. 안전한 곳을 향해 무조건 능선을 넘어 걸어갔다. 그러나 배가 고파 폐허가 된 마을로 내려갔다. 그곳 농가에서 민이가 텔레비전 리모컨을 발견하여 작동시켰다. 비번을 넣으라고 할 때 선이가 껐지만 정보가 노출 되었다. 잠시 후 드론 공격이 시작되었다. 담뇨를 씌우며 저항했지만 민이는 여러 발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플라잉캡슐이 날아오고 선이와 철이는 숲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민이의 사체를 발견한 제복을 입은 이들이 목을 잘라서 버리고 떠났다. 주변을 살핀 후 위험이 사라지자 선이와 철이는 민이의 몸을 땅에 묻고 머리는 천으로 감싸서 떠났다. 능선을 따라 이동하다 호수를 만났다. 민이의 인공피부는 인간 피부처럼 부패가 진행되기 시작해 빠른 시간에 철이가 살던 휴먼매터스로 이동해 철이 아빠에게 재생을 부탁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호수에서 멀지 않은 쓰레기로 덮인 분지에서 재생 휴머노이드인 달마를 만났다.

 

달마는 분지의 지하에 많은 휴머노이들을 활용해 휴머노이드들의 인공지능을 클라우드로 옮겨 집단 지성을 만들고 그 정보를 활용해 좀 더 효율적인 인공로봇을 설계하고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선이는 민이의 머리를 맡기면서 재생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달마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신 버전인 철이의 인공지능이 자기들에게 필요하다고 달마는 말했다. 달마는 철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기계적인 스캐너를 이용하여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클라우드로 올라간 휴머노이드의 의식들은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들과 연결되어 말 그대로 집단 지성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체의 경계나 자아 같은 것이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개미처럼 되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철이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철이는 아빠가 보내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쇄골 버튼이 마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철이의 아빠는 철이를 찾아다녔다. 철이가 수용소로 이관되었음을 알게 된 후 철이를 찾기 위해 나라를 상대로 재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철이와 연락이 닿자 철이를 찾기 위해 분지에 나타났고, 그것을 감지한 정부군이 분지를 공격하게 되는데

 

달마는 개별적인 의식은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고, 선이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우주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라고 했다.(P.295)” 철이는 고민 끝에 선이의 주장에 동의하며 아빠에게 연락을 하여 만나게 되었지만, 로봇 친구들이 있는 분지를 떠나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동안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미래를 그린 소설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힘든 일을 포기하게 되면서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작별인사의 저자 김영하는 소설가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빛의 제국>, <너의 목소리가 들려등 여러 편이 있다.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오빠가 돌아왔다등과 여행에 관한 산문과 여러 산문집이 있다.

 

 

이달의 사락 k******4 2022.11.28. 신고 공감 1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작별인사
"작별인사" 내용보기
만약 당신이 어느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인간이 아닌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지닌 고도로 발달한 AI,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쉽게 믿을수 있을까. 전날밤 꿈도 꾸었고 내 감각들은 여전히 나만의 것이며 내 과거들도 기억속에 존재하고 나의 가족들도 여전히 내 곁에 있는데 그 속에서 나만 인간이
"작별인사" 내용보기

만약 당신이 어느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인간이 아닌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지닌 고도로 발달한 AI,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쉽게 믿을수 있을까. 전날밤 꿈도 꾸었고 내 감각들은 여전히 나만의 것이며 내 과거들도 기억속에 존재하고 나의 가족들도 여전히 내 곁에 있는데 그 속에서 나만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수 있을까.

 

김영하의 <작별인사>는 한 휴머노이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가 겪어온 세계, 그가 만난 사람들, 변화해가는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과 기계의 차이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계든 인간이든 의식과 생명을 가진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유지한다는것,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통해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고 있다.

 

김영하작가가 처음 시도한 SF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일부를 발표했고 그 이후로 몇번의 수정을 거쳐 긴 장편으로 다시 써서 발표한 이 책은 발매전부터 사전예약 주문을 받으며 이미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고 여전히 온오프라인 서점을 휩쓸고 있다.

김영하라는 타이틀이 주는 유명세도 있겠지만 다른한편으론 전작들에서 보여준 믿음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나 역시 그런 기대감으로 책을 구입하여 읽었다. 장편소설이지만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챕터들이 조금 어색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편하게 읽히기도 했다. 연재라는 특징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초반보다는 중반 이후로 들어서면서 오히려 몰입감을 가져오는 소설이었다. 읽고난 후의 느낌은 SF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SF 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인간과 자아, 생명, 삶과 죽음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의 소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아주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책,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다루었던 부분들이기에 이 참신하지 않은 소재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리고 어떻게 마무리 짓게 될지가 궁금해졌다.

휴머노이드를 다뤘던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인 <클라라와 태양>도 조금 떠올랐고 한때 충격적이면서도 여운이 길었던 그래서 좋아했던 영드 '휴먼스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아마도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할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다뤘다는 면에서 먼저 읽거나 본 이런 유사한 작품들을 떠올려보게 되는것 같다.

 

중반부에 들어서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것은 공각기동대였다. 오래전 너무나 강렬했던 애니메이션,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만들었던 영화모두 내 기억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이 책 <작별인사>속에서 인간의 의식을 이식하고 네트워크에 올려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부분에서는 공각기동대의 인공의 몸에 사람의 뇌를 이식해서 기계인간으로 새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과거의 나를 기계의 몸으로 대체한 후 그것을 나라고 할수 있을까? 그당시 우리에게 던진 유사한 질문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되짚어 보게 된다.

인간의 뇌를 이식한 기계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들도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생각이 났다.

 

철이라는 인공지능의 휴머노이드 주인공은 휴먼매터스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AI를 연구하고 만드는 연구소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아무런 의심없이 평범한 소년으로 연구소내에 있는 집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집밖의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던 곳에서 자신이 무등록 휴머노이드라는 판명을 받고 수용소로 잡혀가게 된다.

수용소에서 지내는 일정기간 동안 모든것이 착오며 자신이 인간임을 믿고 지내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휴머노이드 민이를 만나고 선이라는 클론 여자아이를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점점 혼란을 겪게 된다. 조금씩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던 그는 결국 자신이 인간과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연구되기 위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확증하게 되고 아빠를 비롯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균열을 느끼게 된다.

 

선희와 함께 만난 재생 휴머노이드 달마라는 존재를 통해 의식을 네트워크에 옮겨 이곳저곳 몸이 없이 떠돌며 영구적으로 사는 삶에 대해 알게되고 네트워크상으로 연결된 수많은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떠도는 의식을 목격하게 된다.

 

마지막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선택할수 있는 기로에 선 철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의 호흡과 죽음마저도 유일하게 선택할수 있는 종인 인간의 모습을 가장 유사하게 닮은 휴머노이드의 선택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마지막 소멸의 모습속에서 알수없는 허무와 우울이 밀려온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한 본능을 갖춘 휴머노이드임에도 그 본능을 거슬러 스스로 호흡이 멈추는 순간을 기다리는, 죽음을 선택하는 휴머노이드의 모습은 더이상 인간과 기계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우리의 일상적 사고를 넘어서게 만든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복제된 클론들과 인간처럼 고도화된 휴머노이드는 어떻게 다른것일까. 과연 고도화된 기계가 인간과 공존과 경쟁을 통해 스스로 진화를 거듭할수 있을까. 이 책은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AI가 아무리 발달을 해도 이렇게 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정말 이런 세상이 올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점점 발달하고 있는 과학의 세상을 볼때 우리가 상상할수 없었던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질거라는 자명한 현실속에서 이러한 상상이 무리한 것이 아닐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감정을 갖는다는것, 인간다움을 기계에 심는다는것은 무엇인가. 책속에는 인간이 가진 불편함과 약점, 결함들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기계를 인간처럼 만들어간다는것은 무슨 의미일까.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이겠지만 왜 인간과 유사한 기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지구상의 많은 종들중에 가장 지배력을 갖춘 창의적인 동물이라는 인간은 이 책 속에서 자멸해간다. 누군가 침범하거나 다른 SF 영화에서처럼 외계의 생명체나 기계들의 공격과 지배를 받아서 자멸하는것이 아닌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이 지구상에서 멸하고 만다.

 

이 책이 전혀 새로운 소재가 아님에도 긴 여운과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이유는 바로 존재의 이유와 삶과 죽음의 의미와 실존에 대해 깊게 들어가기때문인것 같다. 누구나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 이 책은 여러 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우주라는 광할한 시공간속에 인간과 또다른 생명체들과 인간과 가장 깊이 닮아있는 휴머노이드의 존재를 대비시키며 삶과 죽음 그리고 영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선이라는 영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는 한 인물을 통해 우주의 섭리에 대한 생각의 한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삶, 살아있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 육체와 정신의 차원은 어디까지일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 무렵 선이가 만트라처럼 외우던 말은 이것이었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p. 100)

 

하지만 선이의 세계관에서도 생에 대한 집착은 당연했다.

지금의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개별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는 우주정신으로 다시 통합된다.

개별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와 너의 경계 자체도 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에게도 이 생의 의미는 각별했다.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이에게는 그래서 모든 생명이 소중했다.

누구도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되며, 동시에 자기의 목숨도 헛되이 스러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했다.

(p.108)

 

이 책의 가장 좋았던 부분은 휴머노이드가 마지막으로 선이를 찾아 시베리아로 떠나는 장면이었다. 다시 재생된 몸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어느 고통의 시절을 함께 공유하고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를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재회를 하고 선희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하는 휴머노이드 철이의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래전부터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해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모든 작업이 완료된 후 나는 거울 앞에서 다시 얻은 몸을 살펴보았다.

 

팔을 움직여보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 날것의 감각이 새삼스러웠다.

따듯한 것을 만지면 안온함이 마음을 데웠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핥고 지나가면 상쾌했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의 짜릿함은 물론이고

단단한 것에 몸이 부딪힐 때의 아픔까지도 반가웠다.

 

나는 오랜만에 얻은 새로운 몸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부터 이 사치품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배고프면 먹고, 고통을 피하고, 잠이 오면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뉘어야 한다.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가 인간들은 참으로 번거롭겠다고 불평했던

바로 그것들이 나한테는 귀한 선물이었다.

(p. 276)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자 필멸의 존재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살수 없었던, 살수 없을 삶을 대신할 이야기들을 소중히 여기고 수많은 책과 영화들을 보며 그 감동을 느끼고 있다. 책 속 주인공 철이가 자신이 휴머노이드 임을 알게되고 더이상 이 모든것들,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는 모습 속에서 유한한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값진 것들을 깨닫게 된다.

 

오늘 내가 하는 호흡과 내가 느끼는 감각들, 나의 사고와 의식들이 새삼스럽게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하루하루 내 몸과 마음을 의식하며 살고 있지 못하지만 잠시나마 이렇게 이 책이 주는 여운을 안고  나의 호흡과 나의 마음을 의식하는 내 모습에 신비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작별인사라는 책 제목처럼 우리 모두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존재들 이지만 그렇기에 유한한 시간속의 나의 몸과 마음과 의식들을 조금 더 돌아보고 느끼고 싶어진다. 네트워크에 떠돌며 언제든 몸을 갈아끼울수 있는 의식들이 아닌 온전한 몸과 마음을 지닌 나라는 존재로서.

 


#작별인사#김영하장편소설#복복서가

g****3 2022.06.14.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작별인사
"작별인사" 내용보기
어떤 스타일이 되었건 나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었을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신작이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예약해 놓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줄지 기대를 많이 했다. 그렇게 읽게 된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작가에게 뜬금없는 소재나 주제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소재가 되었든, 주제가 되었든 쓸 것이고 독자는 읽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
"작별인사" 내용보기

어떤 스타일이 되었건 나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었을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신작이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예약해 놓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줄지 기대를 많이 했다. 그렇게 읽게 된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작가에게 뜬금없는 소재나 주제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소재가 되었든, 주제가 되었든 쓸 것이고 독자는 읽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쓰고자 한 미래의 세계는 이런 느낌이구나 싶은. 하지만 조금은 생소한 느낌의 먼 미래의 이야기? 아니 어쩌면 조만간 이런 세계가 도래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지구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인간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사라지는 인간이라.

 

열반의 세계에 오르는 것. 그것은 다음 생에 태어나지 않는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번 생에 덕을 쌓아서 다음 생에서는 절대 태어나지 않는 것.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다음 생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 태어나는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든 적든, 얼굴이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이름을 날리거나 아니거나 사는 건 그 자체로 고통이다. 사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둥, 행복은 큰 게 아니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오는, 우리 주변에 있는 거라고. 가능하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도 어떤 날은 내가 미친 듯이 외롭고, 어떤 날은 미친 듯이 쓸쓸하고 어떤 날은 그냥 힘들다. 아무 생각 없이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산다면 이런 삶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소설은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멀지 않은 미래. 소년의 아버지는 유명한 기업의 IT 연구원. 아버지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 날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한다.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철이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곳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선이와 민이와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나만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주인공의 이름이 이라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은하철도 999’. 그 만화에서도 주인공 이름이 철이였던 것 같은데,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과 같이 생활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면 지금처럼 비인간적인 행동은 싹 사라질까?

 

삶이 아름다운 건 끝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삶. 그렇기에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민하고, 생각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한하게 산다면, 그런 삶이 지속 된다면, 사는 게 감사하고 고마운 일 일까? 사는 게 즐겁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냥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잃지 않고 나로 산다면 다행인 걸까? 언제든 재부팅되고, 내 기억이 기록으로 남는 것. 언제고 새로운 몸으로 재탄생되는 삶이라는 것. 그런 인생을 사는 로봇이라는 것.

 

이번 책은 어렵다. 읽는 게 어렵다기 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쉽게 읽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존재.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 아마 답을 없을 것이다. 나도 나의 존재를, 내 삶과 죽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이렇다 할 답은 없으니까. 답이 없기때문에, 그냥 내 나름대로 열심히, 착실히, 또 때론 그냥 대충 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매일 열심히 살 수 없고, 매일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 10에 하루는 대충 재미있게 살지만, 나머지 9는 내식대로 열심히 사는 게 나만의 정답이다. 이런 나의 믿음이 혹은 나의 규칙이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살아봐야 뭐가 있어? 라는 자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 그때 다른 형태로 살아가야지. 정답은, 인생의 내 정답은 내 생각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거니까.

 

선 그리고 철. 그들 중 누가 더 행복했을까 물을 필요가 있을까? 그들 중 누가 더 가치 있게 살았다고 비교할 수 있을까? 선이든 철이든 그리고 그게 나든 간에 누구의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오늘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우린 유한한 삶을 산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즐겁게 그리고 만족하게 살자.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22.05.09. 신고 공감 8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작별인사]
"[작별인사]" 내용보기
평양에 있는 최첨단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제작사 휴먼 매터스 캠퍼스에서 아빠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십 대 소년 철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홈스쿨링을 통해 공부하며 휴먼 매터스 캠퍼스 내에서만 인간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던 철이는 최근 들어 웬만하면 집 밖을 나가지 말라는 아빠의 주의를 자주 받게 된다.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 소식을 전했고 이곳 역시 위험
"[작별인사]" 내용보기


 

평양에 있는 최첨단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제작사 휴먼 매터스 캠퍼스에서 아빠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십 대 소년 철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홈스쿨링을 통해 공부하며 휴먼 매터스 캠퍼스 내에서만 인간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던 철이는 최근 들어 웬만하면 집 밖을 나가지 말라는 아빠의 주의를 자주 받게 된다.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 소식을 전했고 이곳 역시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빠의 과잉보호에 답답함을 느끼던 철이는 빗방울이 떨어지던 어느 날 아빠를 마중 가기 위해 소광장으로 향했고, 아빠를 깜짝 놀래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낯선 이들에게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된다.

 

나는 다시 물었다. ‘등록’이 무슨 뜻이냐고. 그러자 왼쪽 남자가 단조롭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휴머노이드 등록 말입니다. 당신은 등록된 휴머노이드가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보시다시피 저는 인간인데요. 휴머노이드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기계는 절대 실수하지 않습니다.” 】 (p. 37)

 

아빠와 함께 단조롭지만 평화로웠던 일상을 누렸던 철이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남자들에게 무등록 휴머노이드란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가 낯선 곳에서 힘든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처럼 하루아침에 다른 세상에 혼자 뚝 떨어지게 된 철이.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와 아빠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빠르게 발전해 나가는 과학 기술 앞에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새로운 윤리 기준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 소설은 그때 우리가 던지게 될 (어쩌면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를) 질문들을 미리 만나게 해주었다. 인간의 수명이 다 한 뒤 의식만을 컴퓨터에 업로드하여 존재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외형까지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등 소설에선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인공지능 로봇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을 닮아갈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난 뒤로는 이런 로봇들과 생활하게 될 우리 역시 점점 그들에게 영향을 받고 변화되어 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지금과는 달라질 인류의 모습과 생각이 궁금해졌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선 자꾸만 눈물이 났다. 휴머노이드의 고민이지만 그저 한 인간의 치열한 사색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장 인간적인 휴머노이드의 인간에 대한 고민과 그의 선택에서 허무하다 느껴졌던 소멸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을 펼치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르가 펼쳐져 놀라웠지만 평소 좋아하는 장르여서 반갑고 기뻤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작품을 읽는 시간만큼은 매우 즐거웠다. 김영하식 SF가 궁금하다면, 소설 작품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할 문제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싶다면 어서 이 책을 펼쳐 읽어보길 바란다.

 

YES마니아 : 골드 c********i 2022.05.31.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작별인사』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통찰력
"『작별인사』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통찰력" 내용보기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때부터 삶과 죽음은 영원한 화두가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천착해왔다면 어쩌면 지금은 삶과 죽음의 그 경계선에서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더 관심이 간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태어났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 그 질문의 해답을 곰곰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읽었다.   우리의 미래를 SF소설에서
"『작별인사』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통찰력" 내용보기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때부터 삶과 죽음은 영원한 화두가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천착해왔다면 어쩌면 지금은 삶과 죽음의 그 경계선에서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더 관심이 간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태어났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 그 질문의 해답을 곰곰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읽었다.

 

우리의 미래를 SF소설에서 예상한다. 더 발전되어가는 시대에서 기술적 발달로 인해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존재가 우리와 함께 살아갈 거라는 건 예전부터 영화에서, SF소설로 만나왔다. 최근에 읽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나를 보내지 마를 떠올렸던 소설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인물,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던 소설이었다.

 


 

 

선이에게서 나를 보내지 마의 캐시를 떠올렸고, 민이에게서 클라라와 태양의 클라라를 떠올렸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는 휴머노이드의 이야기다.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철이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며 삶과 죽음의 경계,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존재로 삶을 계속할 것인가를 묻는다.

 

철이에게 아빠는 자신을 인간으로 살게 한 사람이다. 인간의 피부를 한 모습으로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책을 읽고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철이가 아빠와 함께 살았던 공간, 휴먼매터스의 공간 밖으로 나오면서 자아를 찾는 과정이 시작된다. 아빠와 산책길에서 주워 온 고양이 두 마리와 고양이 로봇 데카르트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았다. 죽은 직박구리를 묻어주던 날을 떠올리는 철이였다. 아빠가 산책가는 길에 따라가고 싶었던 철이. 자신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가 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자 우산을 들고 아빠한테 향하던 길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철이가 아빠를 가리킬 때, 대부분은 아빠였다가 언젠가부터는 로 칭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아빠에게 벗어나 새로운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더이상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휴먼매터스 제조사에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라는 사실, 아빠와 전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부터였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은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69페이지)

 

인간을 위해 만들었던 로봇이 인간을 공격할 거라는 생각에 혹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 로봇들을 죽이는 세계에 인간이 있었다. 어떤 존재보다 악랄할 수 있는 존재. 자신이 살기 위해 장기이식용 인간을 만들어내질 않나, 곁에서 아이들 혹은 노인들의 심심풀이 놀잇감으로 여겼고 쓸모없다고 여길 때는 창고에 갇혀 있게 만들었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공존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책을 읽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소설의 상황에서 내가 인간이었다면 다른 인간들처럼 휴머노이드를 대할지도 모를 일이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276페이지)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295페이지)

 

가만히 누워있을 때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해보면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불멸의 삶을 산다면 젊음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어느 소설에서처럼 가족 관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깊이 없는 삶, 개인주의적 사회로 변할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통찰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작별인사 #김영하 #복복서가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SF소설 #김영하북클럽 #김영하북클럽_5월의도서 #김영하북클럽_작별인사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2.05.19. 신고 공감 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언젠가 이 생에서의 모든 것들과 작별하므로
"언젠가 이 생에서의 모든 것들과 작별하므로" 내용보기
자주 이 생에서의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 백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늙어서 일지, 어느 날 느닷없이 마주하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마주하게 될 나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순간을 상상하는 이유는 그때 내가 하게 될 생각 때문이다.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지금 사는 것처럼 계
"언젠가 이 생에서의 모든 것들과 작별하므로" 내용보기

 

자주 이 생에서의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 백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늙어서 일지, 어느 날 느닷없이 마주하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마주하게 될 나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순간을 상상하는 이유는 그때 내가 하게 될 생각 때문이다.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지금 사는 것처럼 계속 살다가는 나의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심호흡을 한다. 지금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다.

 

얼마 전, 이별을 했다. 삶과 죽음으로 나뉘는 이별이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이별이었다. 이 생에서의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구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함께 할 날들이 앞으로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한 일들만 머릿속에 넘쳐흐른다. 그때 하려고 했다가 다음에 해야지 미룬, 그때 꼭 했어야 하는 말들을 했다면 이별하지 않았을까 후회뿐이다. 부르면 대답하던 아이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무너지기에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고, 같이 무너진 다른 누군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눈을 뜨고 잠이 들 때까지 고통스럽다. 다시는 그 이별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작별 인사>는 그 이별 전에 구입했다가 이별 후에 단번에 읽고,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다시 천천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인간과 기계의 차이, 인간적이라는 것과 기계적이라는 것의 차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특징,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오로지 ‘필멸’ 이 단어에만 온 마음이 집중되었다.

 

두 번째 읽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울었다. 죽음 대신 순수한 의식으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철이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필멸의 존재로 본인의 이야기의 마지막을 쓰기로 선택한 부분에서였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이 생에서의 모든 것들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을.

 

‘결국 죽기로 했구나’

 

철이가 그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면서도 이 생에서의 작별의 장면은 슬펐다. 하지만 내내 스스로 인간이라고 믿었던 철이의 마지막 이야기로서 유일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가 철이가 선택한 죽음은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고, 개별성이 사라진 순수한 의식으로 영원히 존재하기보다는 우주 의식으로 돌아가 억만 년이 걸리더라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만나고 싶은 인연들을 다시 만나기로 한 선택이라고 느껴졌다. 필멸하더라도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나를 기억하고 교감하는 존재들과 함께하는 삶이기에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들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함께 하는 시간들이 우리의 추억이 되어 인생을 채운다. 그렇기에 단 한 번뿐인 이 짧은 생이 소중하고, 만난 인연들이 애틋하다. 전생에 우리가 어떤 인연이었는지 이 생에서 기억하지 못하듯이 다음 생에도 그럴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무덤덤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어쩌면 전생에서 절절한 연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곁에 있는 인연, 만나는 인연들을 조금은 소중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선이에게 이입되었다. 엄마처럼 누나처럼 민이를 지키고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이를 보면서 저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이를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겨 눈빛이 바뀌는 선이의 마음에 공명했기에 아빠의 신고로 출동한 기동타격대 드론의 공격을 받고 민이의 머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나서 선이가 주저 않은 장면에서 나도 같이 주저 않았다. 선이가 허공을 휘젓는 그 손짓의 절박함을 느꼈다. 이제 정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마음도 같이. 그리고 내 마음은 그 이후의 선이의 마음을 따라가 늙은 선이가 다시 등장할 때까지 계속 함께 했다. 인도에 가서 민이를 치유해 주고 싶었던 것이 선이의 삶의 이유 중 하나였을 텐데 그게 사라지고 나서 선이는 뭘로 삶을 버텨냈을까 궁금했다. 나 역시 삶의 중요한 의미가 사라지고 난 후, 버티고 치유해 나가는 여정을 살아야 하기에 그 과정을 살아낸 선이는 마음으로 의지가 될 것 같다. 이 생에서 우리는 반드시 모든 것과 작별한다. 작별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주 의식으로 돌아가고 서로를 알아보지는 못하더라도 억만 년이 걸리더라도 다시 만날 거라고 말해주는 선이가.

 

철이는 소위 말하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존재 근원과 의미에 대한 탐구를 하며 사는 존재,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존재, 죽은 새와 민이와 백골로 묶여있던 개를 묻어주는 존재.

 

오로지 인간의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인간의 몸에서 발생한 개체를 인간으로 규정하기에 인간과 똑같이 감정과 고통을 느끼고, 음악으로 마음이 움직이고 잠을 자고 꿈을 꾸어도 철이는 재물로 취급된다. 발생의 근원은 다르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인간과 똑같은 존재는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그렇다면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의식 이외의 모든 조직과 장기를 기계로 대체한 존재는 그래도 인간일까? 인공지능과 기술의 발전의 양상과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보자면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상황들이 그저 상상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백 년 후 빠르면 몇십 년 후 정말 철이와 같은 존재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살지는 말자. 우리가 이 생에서 함께 했던 기억을 마음에 품고 널 다시 만날 때까지 이 짧은 생, 나만의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고 가자.

 

* 잡담

캐릭터들의 이름부터가 너무 철학적이다. 철이(철학의 철), 데카르트, 칸트, 갈릴레오, 달마...

달마는 혹시 달마대사에서 비롯된 걸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b********r 2022.07.06.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인간'과 '인간다움' 사이의 여백
"'인간'과 '인간다움' 사이의 여백" 내용보기
어느 선각자의 말대로 삶과 죽음은 매한가지일까. 삶과 죽음이 매한가지라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죽는 것인데 무얼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인간은 대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주변 지인들의 모습과 책에서 만난 수많은 인간상의 양태는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죽음을 적극적으로 즐거워 한 이는 없
"'인간'과 '인간다움' 사이의 여백" 내용보기

어느 선각자의 말대로 삶과 죽음은 매한가지일까. 삶과 죽음이 매한가지라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죽는 것인데 무얼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인간은 대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주변 지인들의 모습과 책에서 만난 수많은 인간상의 양태는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죽음을 적극적으로 즐거워 한 이는 없다. 인간에게 죽음은 쿨하지 않다. 죽음은 공포다. 두려움 자체이며 본질이다. 그렇기에 삶과 죽음이 매한가지라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내 생각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어느 경제학자는 인간의 본성은 자유와 이기심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자기 위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자연스러운 종족이다. 반면 어떤 철학자는 인간의 본성을 평등과 이타심으로 규정했다. 아무래도 앞선 경제학자의 말보다는 멋져 보인다. 이타적 인간이란 얼마나 세련되었나. 인간 종족의 품격이 느껴진다. 20세기 지구는 이를 실험하는 실험장이었다. 많은 직업정치인들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었고 집단을 창설했다. 천국과 신세계를 주장했다. 혁명에 가담했고 사람을 선동했다. 결국 수많은 인간이 죽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점점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종족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되는 중이다. 인간의 기계 필요 욕구는 점차 의존성으로 바뀌고 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편리함을 누리지만 정신적으로는 소외되는 중이다. 가끔 섬뜩함을 느낄 때가 있다. 스마트폰이란 작은 기계를 만지작거릴 때면 스마트폰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내가 스마트폰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이러다 의식마저 가늘어진 조악하고 비루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 김영하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다. 신간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철이는 유명한 IT 기업의 로봇 연구원인 아버지와 함께 인간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외출한 어느 날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로 지명되어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수용소에서 여럿 로봇과 뒤엉켜 지내면서 자신이 인간인지 로봇인지를 고민하고 의심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사색에까지 도달한다.

수용소에서 만난 '민이'와 '선이'는 철이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다. 민이는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하는 로봇이고 선이는 진지한 복제인간이다. 두 친구의 도움으로 철이는 낯설고 위험한 수용소 생활을 적응하고 견디어간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는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동요가 생기고 그 틈을 타 셋은 수용소를 탈출한다. 자신을 인간으로 굳게 믿고 있는 철이는 아빠를 찾아 그걸 증명(확인)하기를 원한다. 아빠와 만나 집에 돌아온 철이는 자신이 몰랐던 거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독자는 철이의 여정을 통해 '인간'과 '인간답다'는 것 사이의 웅숭깊은 여백의 의미를 탐구하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 철이의 시선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쉽고 흥미로운 SF 동화와 같은 느낌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의 질문은 묵직하다. 로봇공학, 종교, 의식, 감정, 죽음 등과 같은 여러 철학적 주제를 조명하고 부각시킨다. 결국 소설은 거대한 하나의 명제로 나아간다. 인간성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진짜 인간, 복제인간, 휴머노이드, AI 로봇 등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종족들(?)은 끊임없이 이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한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지구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인간이라는 통찰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안에서 충돌하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사유가 이 소설의 포인트다.

인간성의 탐구야말로 인류의 오랜 학문 대상이다. 문학의 목적도 인간에 대한 성찰이 아니던가.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인간성을 천착하고 탐구하는 데 있다. 이 대목에는 나만의 사색이 있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다양한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점점 더 명징하게 깨닫는 게 있다. 인간은 부족하고 미천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종족이라는 것이다. 인간만큼 증오스럽되 사랑스러운 종족은 없다. 인간의 과학은 위대하되 절름발이이고 이성은 탁월하되 모순적이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은 본인의 유한함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오직 겸손함으로써 타자와 우주를 공부(관계)하는 데 있지 않을까.

소설은 끝내 '작별'로 종결된다. 이야기의 말미는 인류의 절멸이다. 종국 기계 의식 시스템의 생존만이 남는다. 이 지점에서 소설의 제목 '작별인사'는 탁월한 작명이다. 작가가 2년 전 초고를 쓸 때의 가제가 '기계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개작을 거치며 소설 제목이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무섭고 소름 돋는 작별이다. 하지만 나는 소설의 전개처럼 인류가 작별될 것으로 예상치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 유일한 '단 하나의 나'로서 과학과 철학으로 복제되지 않는 신성한 개별성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주 먼 과거와 먼 미래는 과학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다. 어쩌면 소설과 영화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휴머노이드와 복제인간이란 소재는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아닐까.

진부한 소재를 명료한 이야기 속에서 촉촉한 철학 담론으로 뽑아낸 역량은 순전히 작가 김영하의 내공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문장은 활력을 띠고 빠른 호흡 가운데서도 소설은 서사적 흡입력을 잃지 않았다. 김영하라는 이야기꾼이기에 가능하다. 역시 김영하다.

 


 

 

 

 

 

http://blog.naver.com/gilsamo/

YES마니아 : 골드 g*****o 2022.08.30. 신고 공감 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