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천히 곱씹어 어젯밤 남은 부분까지 다 읽었다. 와... 오랜만에 너무너무 훌륭한, 죄다 밑줄 긋고 싶게 공감하게 되는 에세이 한 편을 읽었다.
이 책은 '예솔아!'로 유명해진 다섯 살 어린이가 판소리를 선택해 현재는 공연 예술 분야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예술가로 성장한 후, 자신의 일과 일상에 대해 쓴 글이다. 책의 첫 페이지에 등장한 판소리 명인의 일상에는 1시간의 연습 외에는 죄다 우리의 주말과 다를 바 없는 일상뿐이다. 에엥? 할 즈음, 그녀가 창작 판소리로 일군 일련의 성과들이 등장한다. 이런 여유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이룬 성과라기엔 너무도 엄청난 결과물들인데, 그 이면에는 놀라운 결과물들을 이뤄내기 위해 치러야 했던 여러 스트레스와 신체적 증상들이 후유증으로 남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몸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일상과 자기 몸의 소중함을 비로소 느끼게 되고, 그것들은 남이 아닌 자신이 돌봐야 함을 인식하게 된다. 1부는 바로 이러한 그녀의 깨달음에 대한 글이다.
이와 관련하여 후학을 양성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그녀는 사명감에 대해 생각한다. 이 부분 역시 굉장히 공감하며 읽었는데, 나 역시 사명감, 책임감, 의무 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명감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아도 일상에서 가끔 내가 해야 해, 나만 할 수 있어, 라는 식의 희한한 신념(?)으로 나 자신에게 가혹하고 무리한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나를 상하게 할 때가 있다. 30대 초반의 나를 돌이켜볼 때 괜히 뭔가 하지도 못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스스로를 옭아맬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몫이 있을 것이고, 나의 몫이 이렇게 작은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내 몫의 사명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 역시 내 몫의 사명감은 매우 작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ㅋ)
언어는 사회구조나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가치판단이 스며들어 있는 도구(147쪽)이기에 조선 시대에 쓰인 판소리 사설들과 '멱살을 잡고 싸운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의 결혼 제도와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 등에 맞서는 저자의 모습은 조선시대의 판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녀는 앞으로도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 지식의 숲을 탐험하는 걸 멈추지 않겠노라고 말한다. 나 역시 순간적으로 내 입으로 뱉어놓고 후회하는 경우들이 이제 자주, 많이 생기고 있다. 알면 더 즐겁고, 새롭고 재미날 줄 알았는데, 이 세상엔 알게 되었을 때 더 불편해지고 부끄러워지고 창피해지는 일도 많다는 걸 40대가 되어서야 느끼는 중이다. 3부에서 친구나 관계에 대한 내용, 허세에 대한 내용 등은 특히나 내 이야기를 보는 듯 너무 공감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파란스웨터>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자신을 소외시키던 아이와 학급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경험했던 일과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나는 저자처럼 파란 스웨터를 입고 결연한 의지로 교실에 들어서진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저자처럼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교사가 되었다. 지금도 교실 안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도 비일비재하고, 그 일로 아이들은 너무 힘겨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언니에게 박박 우기다가 혼난 적이 많다. 학교에서도 애들에게 티는 안 났으려나 모르겠는데 어마어마한 허세로 중무장하며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읽지도 못할 고전 문학 시리즈 책을 들고 다녔고, 공부 좀 잘 한다고 세상 잘난 척을 해댔다. 그 허세는 고등학교 시절 내가 생각보다 머리가 좋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 조금 약화되었고, 대학 시절 멋지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조금씩 줄어들었으나, 아직도 나에게 허세는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주, 투박하게 튀어나온다. 그런데 허세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 어마어마한 예술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부끄러운 기억을 꺼내다니 이 부분을 읽으며 공감하고 배시시 미소짓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실 이 책을 초반부에 읽을 때는 흠... 예술가가 쓴 거라 그런가 되게 특이하네, 생각하면서 읽어나갔는데, 그녀가 이야기의 배치를 왜 이렇게 했는지 3분의 1 지점쯤 읽으니 바로 이해가 됐다. 그 즈음부터 너무 맹렬하게 하이라이트를 하고, 북 마크를 붙여놔서 책의 곳곳에 표시가 가득해져버렸지만,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뿌듯하고 가슴이 싸한 느낌의 독서는 너무 오랜만이었다. 주변에 마구마구 추천해야겠다. |
|
소리꾼이자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이자람이 쓴 첫번째 에세이 ‘오늘도 자람’을 읽었다. 이 글안에서 창작가이자, 소리꾼으로 자신을 연마하는 이야기가 제일 눈에 들었다. 무엇을 만들어가면서 무형의 시간안에서 단단히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하루의 루틴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최고의 악기로 지속하면서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매일의 노력들말이다. 그중에 한 챕터 '보이지 않는 축적'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런 내용이다.
꼭 1만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축적이란 것은 깊이 다가온다. 특히나 이자람씨는 오랜 시간 판소리를 수련해온 사람이기에 더욱더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어오지 않았을까. 지금 하는 일이 힘들고 괴롭고 지칠 때가 있다. “이건 해서 뭐하게”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혼자 탄식으로 하기도 한다. “무슨 영광을 보려고 이 고생인가”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방향이 맞다면 축적의 시간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원망만 하거나, 계획만 세우고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시간은 축적의 시간이라고 믿어보자. 그리고 그것이 벽돌쌓이듯이 휙휙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마치 티슈 한 장씩 쌓이듯 게다가 그 티슈가 조금 쌓이는 듯 하다가 물컵이 엎어지면 다시 푹 가라앉아 납작해져버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긴 시간이 지나 서서히 단단한 기반이 다져진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단 하나의 오점도 없는 방해물도 없이 가기 위해 계획만 세우는 사람은 막상 시간이 지나도 축적이 없다. 축적의 시간은 실행을 할때만 쌓인다. 하루 십분의 실행이라도 말이다. 그 축적들이 쌓일 때 어느 순간이 지나서 갑자기 동산의 꼭대기를 넘어서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수월해지는 걸 경험한다. 보이지 않는 축적은 그래서 신기하고, 마술적이며, 이해하기 어렵다. 그걸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뭔가 막막하고, 내가 뭐하나 싶을 때 놓치지 않아야하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축적의 시간’이 내 안에서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닐까. 오디오클립에서 읽어보았다. |
|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어린시절 자주 들었던 "예솔아~할아버지께서 부르셔~" 그 노래를 부른 이... 그때 노래도 재미있었지만 예솔이라는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던것 같다. 근데 그 아이의 이름이 예솔이가 아니라 이자람이었다는... 웬만한건 다 잘해서 '이잘함'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이자람' 많은것을 잘하기도, 계속 잘 자라고 있는 그녀의 삶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예술가로서, 판소리꾼으로서, 작창가로서, 자신의 무대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자로서 계속 연습하고 도전하고 발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쯤에서 늘 멈추고 안주하는 나를 돌아봤다. 맨날 힘들다고 하지만 힘들기 전에 멈추는 나... 약간 비겁한 나에 대한 혐오기 스물스물 올라오면서 살짝 부끄러워졌다. 빠른걸음으로 나아가다 달릴까말까 고민하다 멈춤... 그게 내 모습인듯... 그녀는 달릴줄도 알고 멈출줄도 안다. 다양한 곳으로 달릴줄도 알고 달리면서 자신의 상태를 읽을 줄도 안다. 멋진사람이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다. 프롤로그가 '50을 기다린다. 어떤기분으로 쉰살을 맞게될까' 라는 말로 시작된다. 나역시도 40을 기다렸고 이제 50을 기다린다. 나이드는게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얼른 나이가 들어 완성된 나를 보고싶어하는 편이다. 그 완성이 성공이나 목표달성..그런 모습이 아니라 무르익음, 생각의 커짐, 여유 이런것으로 꽉찬 완성이다. 그런 완성을 꿈꾸는 나에게 큰 울림이 된 책이다. 난 '오늘도자람'을 통해 오늘도 자랐다^^ |
|
울림이 있는 문장들에서 잠깐씩 멈춰서 생각하고 곱씹으며 읽었어요. 쉽게 읽히는 듯 하지만 속깊은 이야기가 알맹이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아 이자람님의 내공과 멋짐, 깊이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색적이었어요. 같이 받은 예쁜 부채도 올여름 요긴하게 썼답니다. 이 책을 보고 이자람님의 무대가 더 보고싶어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