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영화는 못 보면서 공포 소설은 그럭저럭 잘 읽는 편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보면 여주인공들이 고딕 소설에 빠져드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엘리자베스 게스켈의 고딕이야기를 읽으며 왜 그들이 그토록 소름끼치고 오싹한 소설에 열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남과북을 볼때도 느꼈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 자신이 관찰을 보여줄 때마다 이 작가의 작품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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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세계문학에세시리즈 4권. 제목이 '고딕이야기'라서 '고딕'이라는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보고서야 '고딕'의 의미를 알았다. 문학에서 '고딕'은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경이로움, 떠도는 유령의 두려움, 현재를 엄습하는 과거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라고 설명되어 있다. 암울하고 무시무시한 시기로 간주됐던 중세시대의 고딕 건축물이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데서 유래됐으며,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이 고딕 장르에 속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실종>, <늙은 보모 이야기>, <대지주 이야기>, <빈자 클라라 수녀회>,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 <굽은 나뭇가지>, <궁금하다 사실인지>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고딕이야기답게 유령(우리나라로 따지면 귀신), 저주 같은 미스테리한 소재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의한 공포라기보다는 그것을 매개로 일상 생활에서 불현듯 느끼는 불안과 섬뜩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로 여성의 입장에서 느낄만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얼마전 읽었던 여성주의 공포소설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과 결이 비슷하다.
<실종>, <빈자 클라라 수녀회>에서는 통신수단이나 과학이 지금과 같지 않던 시대에 지인(가족일수도 있고)의 아무런 예고도 없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라짐의 직접적인 원인이 피살일 수도, 스스로 택한 잠적일 수도, 또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도주일 수도 있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했던 주변 사람의 부존재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 사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거나, 사라짐이 본의 아니게 자신과 연관된다면 두말 할 것도 없다. <늙은 보모 이야기>는 바람기 많은 남자와의 결혼과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광기, <대지주 이야기>는 호감가는 겉치레 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의 결혼,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는 계급사회에서 신분 차이(남편의 신분이 더 높은)가 나는 결혼, <굽은 나뭇가지>는 허영심만 가득찼지 별볼일 없으면서 방탕한 남자에 대한 희생적인 뒷바라지라는 남녀의 관계가 한 여성의 삶을 비틀어 버리는 이야기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도 여성은 주도적이지 못한 체, 그저 남편 또는 아버지라는 타인 남성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누나도, 여동생도 그 어느 누구도 피해가지 못했고 피할 생각도 못한 체 그저 마음 속에 응어리로만 남아 그것이 한이 되어 전해지는 옛날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꽤 많다.
남녀를 떠나 우리는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가. 간헐적으로 경제적 어려움, 일의 실패, 승부의 패배 같은 오롯이 나에게만 해당 되는 것들이 두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 공포감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있으면 50을 바라보는 적지 않은 삶을 살아보니 결국 가장 두려운 건 사람과의 관계다. 남녀 관계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사실주의적 작품활동을 많이 한 작가도 그걸 알기에 이런 고딕이야기를 집필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부딪혔던 수 많은 관계들 중엔 서로 혐오하고 증오하는 관계가 없다고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런 것들은 평상시에 별탈 없다가 뜬금없는 이유로 사건사고로 발전하는 경우를 많이 봤으니, 그런 관계야 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제 좀 내려놓고 살아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