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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분량이 짧으면 더 긴장해야 한다. 이걸 자주 잊는다. 짧은 글은 읽는 시간에 비해 붙잡고 품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눈으로 붙잡든 마음으로 붙잡든 기억으로 붙잡든. 좋은 글일수록 붙잡고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므로 그만큼 더 뿌듯해지고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두 편이 실려 있다. 처음 볼 때는 뭔 이야기지? 여겼다. 단순한 듯 그려져 실려 있는 고양이 그림이 글을 읽는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고양이 이야기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차원의 이야기인가?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고양이가 살고 있는 공간? 둘은 같은가, 다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차원과 믿고 있는 차원은 같은가? 나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이지? 나를 보는 내가 어딘가에 또 있기도 한가?
두 해 전 우리집에 들어온 고양이 두 마리는 어느 차원에서 온 것일까? 그곳과 이곳은 이어져 있는 걸까, 아니면 겹쳐 있는 것일까? 알 듯 모를 듯, 모른다는 느낌이 훨씬 크지만 나는 글을 따라 끝도 없이 혼자 차원 놀이를 하고 있다. 어색하지 않다는 게 오히려 어색해지는 기분이다.
과학자는, 또 소설가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보는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어쩌다가 그곳을 보게 된 것일까.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선천적인 능력으로 볼 수 있게 된 건가? 보여서 과학자나 소설가가 되고, 혹은 보려고 과학자나 소설가가 된 것일까? 왜 그런 걸까? 사명감? 숙명 같은 것? 가지려고 해서 얻은 게 아니라 주어져서 갖게 된 것?
그리하여 나처럼 평범한 이들에게 이 거대한 감각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느껴 보라고 전해 주기 위해서? 평평하게 낮게 좁게 사는 데 만족하지 말고 높게 넓게 겹치는 세상까지 다 헤아릴 수 있도록 저마다의 차원을 확장시켜 보라고?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비루한 현실이 조금은 나아져 보이려나? 내 옆에 있는, 조금 더 멀리에 있는,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향한, 어쩌면 우주라고 알고 있는 차원 그 너머까지에도 내 정신이 열리고 있음을 느끼면서?
두 편의 글은 각각 읽기에 쉽지 않았다. 고양이는 따스했으나 고양이가 인도하는 길은 밝지 않았다. 쉬운 게 없다는 걸 불현듯 깨닫는 순간의 당혹감은 기억 속 자리를 오래 차지한다. 묘하게도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내게 좋은 현상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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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는 왜 하필 고양이를 상자에 넣었을까? 왜 하필? 이란 물음에 답을 주는 것 같은 이야기 두 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는 고양이가 스스로 상자에 들어가고, ‘대가’에서는 고양이가 인간보다 높은 차원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양자의 세계를 제일 잘 넘나드는 생명체일 것이고, 상자 속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일 년이 365일 것은 이해할까 싶은 생명체가 만유인력을 끄적거리는 인간보다 높은 차원을 살아가고 있다니! 소통이 절실한 순간이다. 바벨탑이 무너지며 같은 차원을 사람 사람끼리의 언어가 갈렸듯, 다른 차원을 사는 생명체와도 언어가 갈린 것 또한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2차원에서는 3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고, 3차원에서는 4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듯이, 우리의 감각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고양이를 상자 속에 넣기를 두려워하고, 고양이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다. 책에서는 높은 차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귀여운 두 고양이를 따라 잠깐 차원의 경계를 넘어가 본다. 그러나 경계 너머를 목도함으로 우리는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다시 두려움을 느낀다. 사랑스럽게 울 뿐인 두 고양이를 보는 두 사람을 따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의치 않고, 상자 밖의 세상에 대해, 내가 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마지막에 적힌 ‘궁금하다.’에 공감하게 된다.
여느 때처럼 놀랍도록 여유로운 유동성을 뽐내며 상자 안으로 폴짝 점프했다. 점프할 때 고양이의 노란 꼬리가 뚜껑 모서리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뚜껑이 부드럽지만 결정적인 딸깍 소리와 함께 떨어져 완전히 닫혔다. P. 28
나는 다시 한번 쌍안경을 올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계단 위에서 허공을 노려보는 블랙캣뿐이었다. P. 56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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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 둘의 협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둘 다 매우 다양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 책에 관한 기대가 정말 컸엇습니다. 게다가 고양이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기대를 하게 되었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동물에 관한 SF 소설이나 대중 소설을 국내에서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요즘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장 먼저 이야기 될 겁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너무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이다 보니 좋은 고전 대접을 받을지는 몰라도 대중성 좋은 편안한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고양이의 경우에는 좀 갈리는 것이, 아무래도 베르베르가 그동안 보여준 이야기에서도 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재미도 있고, 잘 읽히기도 하지만 비슷한 플롯의 이야기를 그냥 반복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비슷한 플롯이 식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사실 지금 이야기 하는 책들 같은 것들이 줄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책에 관해서 본격적인 내용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다양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해서 정말 엄청난 이야기를 진행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상상이 대체 어디까지 가서, 어디에 도달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이런 튺성에 관해서 아무래도 작가들의 힘이 대단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어슐러 K. 르 귄 이라는 작가는 제게는 사실 좀 어렵게 다가오는 작가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을 몇 가지 쓴 작가이긴 하죠. 개인적으로 바람의 열두 방향이라는 책을 정ㅁㄹ 좋아하기도 합니다. 다만, 어스시 시리즈는 참 미묘하긴 한게, 이상하게 잘 읽히지를 않아서 말이죠. 사실 다른 책들 역시 마찬가지인 면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장벽이 느껴지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필립 K. 딕을 나름 잘 읽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 해보면 더더욱 미스터리인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이 작가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게, 본인의 대단한 상상력을 유려한 글로 정리 해서 이를 확대 하는 데에 너무나도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 한 어스시 시리즈 시리즈도 판타지의 이야기인 듯 하면서도 인생의 단면을 일종의 시처럼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삶의 여정을 모험에 빗대서 판타지 소설로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죠. 덕분에 무슨 이야기를 더 만들 것인가에 관해서 더더욱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닐 게이먼은 방향이 좀 다릅니다. 다만 저는 닐 게이먼에 관해서는 좀 생각이 다르긴 한게, 제가 이 작가를 받아들이게 된 첫 번째 시리즈가 샌드맨 이라는 시리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픽노블 시리즈에서 정말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는데, 그 속에서 보여주는 일종의 그리스 신화적인 느낌에 관해서 개인적으로 약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대문입닏. 이에 관한 보정을 테리 프레쳇이 보정을 해줌으로 해서 멋진 징조들이 탄생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제가 닐 게이먼을 낮게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그레이브야드 북 이라는 책이 보여줬던 다양한 면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음험한 면과 모험 테마, 그리고 이 속에서 가져가고자 하는 메시지가 서로 잘 결합 되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일종의 재미와 함께 무게감을 동시에 찾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죠. 그렇기에 닐 게이먼의 책이 나오게 되면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 읽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런 두 작가가 모인다면 사실 리뷰도 필요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그냥 차 한 잔(혹은 커피 한 잔)을 타서 옆에 두신 다음, 그들이 고양이라는 존재에 관해서 어떤 상상을 이야기 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되는 겁니다. 심지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무척 짧기 때문에 그냥 책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조건 가볍게 읽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는 점은 염두에 두셔야 하지만 말입니다.
어슐러 K. 르 귄이 다루는 이야기는 제목부터가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가 존재하는 세계에 사는 주인공은 정말 모든 것(!)에 관해서 양자역학적인 면이 작용하는 세계에 사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벌어질 수 있으며, 이 일들을 전혀 통제 할 수 없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고양이가 상자 안에 들어간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 작가 고유의 특성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으면서도,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이해 불가능한 면을 소설로서 풀어내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의외로 그 정수가 담겨 있는 것이죠.
닐 게이먼의 이야기는 대가 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간단하게 말 해서 자신도 모르는, 하지만 매일 다치는 고양이입니다. 이 고양이를 치료 해주면서도 왜 다치는지에 관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이 실제의 단편을 발견하면서 진행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닐 게이먼의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이나 공포 소설을 좀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를 얼마나 간결하게 비틀어버렸는지에 관해서 감탄을 할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선의에 관한 지점과 음산함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는 요즘 사람들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리고 글에 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없고, 두꺼운 책을 읽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은 정말 최고의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가벼운 글, 특히나 너무 간단한 단어들로만 이뤄진 글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글을 읽고 싶으면서도 그걸 최대한 간결하게 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너무나도 멋지게 다가올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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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하면 양자역학이 먼저 떠오른다.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을 비판하기 위해 설계된 고양이를 상자 안에 넣는 실험이 문학과 만나 차원을 넘어선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두 고양이」이다.
어슐러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첫장부터 실험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분명 사람을 묘사하고 있는데 원자핵의 붕괴를 떠오르게 하고 손을 댈 수 없을만큼 뜨거워진 모든 것들은 원자핵이 붕괴하며 만들어낸 뜨겁다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고양이와 슈뢰딩거의 상자가 만나 슈뢰딩거의 실험을 재현하는 부분에서는 불확실성이 가져오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 현재라는 시점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확실성에 목이 말라 쫓지만 결국 불확실성의 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확률로서 존재하는 양자역학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닐 게이먼의 '대가'에서는 거시세계의 고양이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대립을 통해 인간이 볼 수 있는 세계의 유한함과 차원의 한계를 느꼈다. 대립 과정을 지켜보는 제3의 시선으로 전달되는 이야기 너머의 무한한 세계를 상상하게도 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역학의 이중성에서 시작된 「두 고양이」는 차원을 넘어선 이야기 속에서 한정된 차원과 세계만 볼 수 있는 우리가 과연 봤다고 할 수 있으며,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지금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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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체험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면,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일 것이다. 어슐러 K. 르 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닐 게이먼의 [대가]는 이 두 고양이에 대한 재기발랄한 재해석을 담고 있다. 에코백에 쏙 들어가다 못해 주머니에 쏙 들어갈 것 같은 작고 가벼운 책이라 부담없이 들고 다니며 출퇴근 지하철에서 짬내어 읽기가 좋았다. 왕복 2시간 출근길, 하루만에 후루룩 뚝딱 읽어버렸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유튜브 쇼츠, 트위터 슥뽕에 중독되어 장편소설은 커녕 2시간짜리 영화도 잘 보지 못하는, 집중력이라는 것이 사라져버린 나같은 현대인에게 딱 좋은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을 가장 잘 영업하고 계신, 역자 후기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옮겨본다.
두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 물론 여기서 두 고양이는 다행스럽게도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는 아니고 (내 눈에는 어느 소설 속 고양이보다 특별하지만) 남들 눈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스트리트 출신의 코리안숏헤어 치즈태비 두 마리다. 아무튼, 경력직 집사는 역자 후기에 인용된 고양이에 관한 문장들을 보며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자 후기를 조금 더 읽어보자.
양자역학이 뭔지 뉴턴의 고전역학이 뭔지. 물리세계, 거시세계, 미시세계는 대관절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 문과형 인간조차도 친절한 역자 후기의 해석을 읽으면, 느낌적인 느낌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내 경우에는 한국소설을 읽다가 김초엽과 천선란, 정세랑의 인도를 따라 SF소설에 입문했다. 이후로 어슐러 K. 르 귄이라는 이름을 몇 번이고 들었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뭔가 엄청 장엄하고 거대할 것 같은, 본격 SF에 발을 담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고양이>를 읽으면서 나는 수직공간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는 고양이처럼 르 귄과 게이먼의 세계로 안전하게 착지하는 데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양자역학도 모르고 SF도 모르지만 고양이 눈꼽 만큼의 호기심을 가진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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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이 여성인지도, 불과 얼마전까지 생존작가였는지도, SF 소설 거장인지도 몰랐다면... 나를 일컫겠다. 또 계시랴?
덕분에 알게 되어서 너무 기뻤고, 얇고 인상적인 디자인과 편집까지 갖춰서 소장의 즐거움은 이런거겠구나 싶은 책이었다. 닐 게이먼의 대가([대까]/ price) 와 함께 두 편이 실려있는 귀한 책임을.
어슐러 르 귄은, 어스시(Earthsea), 헤인 시리즈 등으로 SF , 판타지 고전 문학 작가로 유명하다는데, 정말이지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 이유는 판타지, 소위 말하는 SF 장르라는 덕분일까.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나는 후자쪽이었다.
뭐 무지했는데 변명의 이유를 찾을 명분이 사실 따로 안선다.
어슐러 르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첫문장은, 서술과 곁들여진 그림으로 유추만 해본 불이 난 상황, 그 곳에서 비껴난 곳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첫문장의 서술 주체가 사람인지, 고양이인지, 사람도 고양이도 아닌 누구인지, 내 이해의 진입장벽이 처음부터 너무 높았다. 그래서 이 짧은 소설을 두번하고도 반을 읽었다. 반은 뒤적거리며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앞뒤를 뒤적거려 필요한 부분 위주로 거듭읽기를 한, 온전한 처음과 끝까지의 완독이 아닌 상태를 그리 표현해본다( 읽었으면서도 읽지않은 중첩의 상태인가?). 아무튼 두번째 읽기에서는 좀 더 가닥이 잡혔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태에서 일단 리뷰를 해보기로....아. 내 능력이여.
핵심 인물은 서술자의 무릎위에 올라앉은 고양이다. 그를 관찰대상으로 두고 서술자와 강아지인듯한 우편집배원이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이들 대화는 사실 실제 사건-양자역학 VS. 슈뢰딩거의 과학적 입장에서 제안된 실험을 모티브로 차용된 것이다. 강아지 집배원이 마침 자신이 들고 들어온 상자와 , 서술자의 집에 들어와서 맞닥뜨린 고양이 덕분에 절묘하게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시켜 서술자에게 슈뢰딩거 실험을 해보자며 종용한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술자와 자기독백과 강아지와의 대화가 묘미인 것 같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명화 속 유다 이야기를 하며, 지옥(저승)을 보지 못하면 지옥(저승)은 없는것인가? 이것은 양자역학에 슈뢰딩거와 함께 반대 입장에 서있으면서도 그 반대의 근거가 조금 다른 아인슈타인의 표현의 다른 버전이다. (달을 관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달의 존재는 부정되는가?의 다른 버전인듯)
슈뢰딩거 고양이를 만났으니 사고실험을 한번 해보겠다고 조바심내는 강아지에게, "확실해?" 라고 서술자가 반문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다. 실험을 제안한 이유가 이들의 지적 대결인데, 어쩌면 그것은 사물원리, 세계관에 관한 분명한 태도차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실험 제안의 배경은 확실성과 불확실성, 예측가능성과 예측불가의 대립에 있다. 슈뢰딩거는 확실성을, 양자역학은 불확실성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고양이 실험을 해보자는 강아지집배원은 양자역학쪽에 있다. 사실 제안은 슈뢰딩거가 하였지만, 그래서 서술자가 확실하냐고 묻는 것은 불확실성을 주장하는 양자역학측에다가 그 실험과 실험자의 확실성을 추궁하는 격이 된다. 사실 이 제안이 처음 의도대로 슈뢰딩거에 의한 것이라서 강아지집배원은 슈뢰딩거(측)일 수도 있다만, 현재 내 이해로선 그렇지 않은 것이 흥미롭고, 좀 더 그럴듯해보인다.
그리고 서술자와 강아지 집배원 사이에서 실험을 하게 될지말지 말이 오고 가는 사이 이들 실험주체(관측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들 개입없이 실험대상인 고양이가 제 발로 상자안에 들어가 주는 상황이 연출된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 실험은 이후 철학적인 논쟁으로 자유의지에까지 이어진다는데...아....내 한계다. 판단의 주체는 누군가. (이렇게까지 르귄은 건건이 의미부여를 했을까? 내가 너무 건드리려는걸까 소심해서 작가의 숨겨낸 의도를 의식적으로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까.)
결국, 상자안의 실험이 다시 그 상자를 에워싸고 관측자를 포함하는 실험체계가 되어버리면? 즉 서술자와 강아지 역시 다른 상자 안의 관측자들에 불과하다면, 그렇게 서술자가 강아지집배원의 확정적인 실험 신념에 심리적으로 위협한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을 땐 고양이가 사라지고 없고, 아마 첫문장으로 돌아간 장면일까..
내게 애매했던 서술인 첫문장은, 고양이 실험과 연관있을까..고양이 실험으로 사라진 ...대피한 곳인가. 고양이 실험 상자를 에워싼 또 하나의 상자안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 고양이의 실험은,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사고(생각의 사고가 아닌 사건사고의 사고인가? 그런듯) 실험이 아니라 가상으로서 사고(그러니까 실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사유적인) 실험이라면? 그리고 르 귄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이런 실험속 등장인물이 고양이인것 자체가 거북스러웠던걸까. 아님 누가누가 옳고 어느 입장에 더 자신의 입장이 가깝고..하는 과학적 견지는 전혀 없고, 판타지적 상황으로서 순수한 문학적 소재며 이야기 장치일 뿐이었을까.
아무튼, 전혀 경험치 못한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준 도전류의 소설이었다. 판타지와 과학과 철학의 절묘한 조합!
*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 슈뢰딩거는 자신의 파동방정식이 양자역학측에서 확률적으로 설명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상태가 중첩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상자는 고양이를 폭파시키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 고양이를 함께 넣는다. 일정 시간 뒤에는 고양이가 죽어있거나 살아있거나 상황(상태의 중첩상황)이라는게 가능하냐고 되묻기 위해 고양이를 사고에 처하는(죽음에 이르게 하여 죽었는지 안죽었는지를 관측하는 순간까지가 실험인) 가상실험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 실험이 오히려 양자역학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로 전도되어 사용되게 된다. 르 귄의 소설은 이 사고실험을 서술 및 대화 소재로 차용하고 있다.
양자역학은 상태의 중첩 가능성, 관측자의 관측 이전의 불확정성 등을 주장하고 있었고, 슈뢰딩거는 그에 반한 입장이었다. 아인스타인도 그에 반한 입장에 있고, 다만 그는 관측자가 관측하기 전에는 확정할 수 없다는 논거로 양자역학에 반대한 것 같고, 슈뢰딩거는 중첩가능하지 않은 물질의 상태를 성립되는 것으로 주장하는 양자역학 입장에 반대의 초점을 더 둔 것 같다. 이는 나의 이해부분이니 확인 검증이 필요하다.
< 도서지원을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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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문학의 두 거장과 역자, 그린 이가 완벽한 콜라보를 이룬 멋진 책이다. 고양이를 소재로 담담하게 이끌고 가는 짧고 강렬한 이야기 속에 우리 인간이 지금껏 구축해 온 과학, 철학, 종교 등 수많은 질문과 미완의 답에 대해 생각 거리를 던진다. 읽고 난 뒤에 더 많은 이야기를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역자 후기에도 밝힌 것처럼 두 이야기 모두 ‘궁금하다(I wonder)’로 끝난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뒷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천재적인 두 작가의 사고체계에 감히 다다를 수 없지만 작가의 사고체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슐러 K. 르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현대 양자물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빅뱅 이후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팽창을 멈추면 수축의 과정을 겪을 것이다. 수축하면서 뜨거워진 지구는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분해되고 해체될 것이다. 내 나름으로 이해한 이야기의 배경이다. 처음 시작은 슬픔과 신의 주사위 게임에 놀아나는 세상에 대한 비탄이 깔려 있다. <슈뢰딩거 고양이>실험에서 작가는 정설인 대상에 대한 관측 행위가 대상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코펜하겐 해석보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살아있는 세계와 죽어 있는 세계가 모두 존재하며 관측하는 순간 어떤 한쪽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다중세계 해석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판도라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 인간의 규칙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인간의 대상화에 쉽게 붕괴하지 않는 고양이, 역자의 말대로 양자역학적인 고양이. 작가가 고양이를 소재로 사용한 이유다. 이런 이유로 이오덕 선생님은 고양이를 좋아했을 것이다. 역자의 후기가 인상적이다.
닐 게이먼의 <대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고양이, ‘블랙켓’의 이야기를 통해 초자연적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면들이 그림과 어우러져 만화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동화처럼 순진하지만 블랫켓의 희생이 짠하고 먹먹하다.
초월적 구원에 대해 숙고하고 싶은 이야기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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