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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어떤 경험을 하면 이토록 고통스러운 글을 쓰는가, 였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거나 주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폭력적인 성향을 안고 살아가는 현재의 여성을 그린 글이었다.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자매 혹은 부모와의 관계도 쉽지 않아 보였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졌음에도 더디 읽혔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고통이 나에게까지 다가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불편했던 소설이었다.
스무 편의 단편이 속해있는 소설에서 가장 오랫동안 나의 마음속에서 부유했던 글은 「이끌림」과 「장기 배달부」 였다. 「이끌림」이 어떤 내용인가 하면, 물속에서 헤엄치는 여자아이는 물이 좋았다. 육지에서는 버거운 호흡이 물은 여자아이의 숨을 막지 못했다. 그런 아이가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 수영하러 가려고 했을 때 부모가 말렸다. 수영하고 싶어 어깨가 욱신거리던 날 수영장에 폭탄이 떨어져 수영하고 있던 친구 두 명이 죽었다. 언니와 둘이서 고국을 떠나는 한 소녀의 가슴 저린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소녀와 쌍벽을 이루는 가슴 저린 이야기로 보이는 게 「장기 배달부」였다. 밀밭을 가르는 콤바인에 들이받아 손이 썰려 나가 한동안 발에 붙이고 다녀야 했던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다. 봉합 수술 후 열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는 먼 친척 아주머니의 집으로 가게 되었던 소녀는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배웠다. 남자아이 키릴이 아나스타샤가 애지중지하는 원숭이 인형 구달의 손목을 잘랐다. 아나스타샤는 키릴을 혐오하게 되고 그가 어떻게든 죽기를 바랐다. 예를 들면, 열다섯 생일에 신장 한쪽을 팔았던 것처럼. 장기 배달을 하던 아나스타샤가 이름을 날리고 어느 날 거금의 수고비를 받게 되는 일을 맡는다. 배달해야 할 위험한 장소에서 뜻밖의 인물과 마주친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나스타샤는 어떤 행동을 할까.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해도 되는가.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장기 밀매를 버젓이 행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선한 모습 뒤에 감춰진 악랄한 모습. 그게 인간의 다른 모습인 거다.
그런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도로가 바다에 막힌 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영원히 가로막을 수 있을 것처럼, 잠자는 것 같기도 하고 내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한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다른 방식의 삶은 그를 앞으로, 결국 죽음으로 나아가게 할 테니까. (278~279페이지, 「‘I’를 잃는 법」 중에서)
배제되고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성 매매를 하는 여성들, 마약에 중독되었던 대학교수가 돈을 주고 집안으로 마약중독자를 들여 그 시간만큼 쉬게 했던 건 작은 위무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내민 작은 손짓에도 누군가는 따뜻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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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뭐라고 평을 해야될 지 모르겠다. 이 책이 내 마음에 드는 책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다(혹은 남들에게 말하기 싫다)는 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보통 앞표지를 보고 작가소개와 전체적인 디자인, 그리고 보통 뒷면이나 띠지에 써있는 평론가(혹은 동료작가)들의 평을 먼저 보고 나서 본문을 읽는 편인데 그렇게 이 책을 쭉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난해함이 본문을 읽으면서 그대로 느껴졌다.
쭉쭉 읽혀지는 시원시원하고 편한 문체 속에 찝찝하고 불쾌하며 목에 턱턱 걸리는 듯한 단어와 소재들이 줄줄이 엮여져 있어서 기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불쾌한 쾌감 이라고 해야되나.
지금의 우리나라 작가라면(특히 작가가 남자라면) 엄청 욕을 먹었을 것 같은 여성, 퀴어, 하층민과 중독자들에 대한 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과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는 묘사들이 가득하다.
중세시대였다면 신성모독으로 화형당했을 법한 표현도 거침없이 실려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거나 불쾌하기만 하냐면 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의 소설들은 1900년대의 프랑스나 2000년 초반에는 전세계에 그득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적잖이 찾아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최근에 읽었던 2000년대 초반 젊은 작가 시리즈들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묘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한동안 움직일 수 없게 꽁꽁 묶인 숫소처럼 거세된 표현들만 보다가 이렇게 노골적이고 솔직하며, 인간의 어두운 면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소설을 읽고나니 해방감과 쾌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깊고 어두운 심연 속에 있지만 현실 속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다크 판타지... 아마 장편소설이었다면 조금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가장자리는 단편소설집이라서 한편을 읽고 나서 정신을 환기하고 현실로 돌아왔다가 다시 다음 편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아 그리고 이 책이 여성중심적인, 페미니즘 소설인가? 라고 생각하면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비열하고 악하거나 나약하고 비참하다(혹은 둘 다 이거나) 물론 히어로처럼 등장하는 여성들이 있지만 수퍼맨같은 전통적인 히어로의 이미지라기보다는 그들도 역시 결핍과 상실, 어둠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나도 세상은 부조리와 고통으로 가득하며 인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편이지만 이 책의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훨씬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골적인 섹슈얼한 내용들과 오컬트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어서 평소 들여다보기 힘들었던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어쩔 수 없이 꺼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가장 어두운 때 일수록 빛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어둡고 끈적거리는 흑암의 연못 속에서 스스로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몇 개 발견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도 좋게 평하진 않았겠지)
'부적응자로 사는 삶의 아름다움' 이라는 제목으로 TED강연도 했다는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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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에서 가장자리로 쓸려내려가는 소설. 가장자리의 상처를, 가장자리의 예리하게 선 날 을 무엇보다 잘 표현해낸 단편소설집이었다. 읽다가 처음에는 말이 뭉치고 그 이후에는 구석진 곳의 예리함을 계속 쓸어만지게 하고 그러다가 어딘가에, 얇은 종이의 가장자리에 베어 피나고 마는 그러나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가장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음을 알 것이다. 읽는 내내 가장자리를 부여잡고 베이면서도 끝까지 읽어버리고만다. 단편소설들 곳곳에 보이는 책, 언어에 대한 부여잡음은,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이고 그것이 내 어딘가도 분명 붉게 만들고 있었다. 언어, 책! 나를 살게 만드는 것에 대해 작가는 분명 계속 부르짖은 것 같고 그러한 외침이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이끌어 오게 할 것이다. 책, 세계, 언어에 대한 갈망, 그 감정들. 아는 것들이라 부여잡는 것 이상으로 속으로 소리치게 되었던 말들이 있어서 꼭꼭 속으로 기억하고 같이 부르짖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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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기우듬한 세계 속 가장자리의 몸부림 그럼에도 헤엄쳐 삶에 도달할 것이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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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사회에서 약자와 소외된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삶 속 가장자리. 그 가장자리에 있는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 책..
* * * * * 우리는 전부 균열을 품고 살아간다. 균열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니면 균열이 모든 것을 허물어트리면 켜켜이 쌓인 살갗과 지방과 주택 보유자의 삶이, 깔끔한 머리 모양과 잘 먹은 화장이 남는다. p.64
원래 세상은 그런 법이고, 원래 시간이란 그런 것, 개 같은 것이니까. 지금껏 그는 진창처럼 느릿느릿 흐르며 모든 걸 집어삼키는 이 시간이란 것에 단 한 번도 마음 쓴 적 없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되어버렸지 않은가? p.84
가끔 여자아이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장소에서, 그는 안팎이 뒤집힌 몸이었다. 더 이상 내부를 담아줄 수 없고, 의미가 줄줄 새어나가는 몸. 자신이 거리에 남긴 핏자국 이 일부 행인에게는 분명 불쾌하리라는 것을 인식하며, 여자아이는 얼굴 가장자리를 잘 정리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갔다. p.115
인생의 어느 지점에 있든, 어떤 성공과 실패를 겪었든, 속으로 자신만만하든 두려워 죽겠든 시선은 그저 땅에만 고정해야 하는 기분. 우리는 한참 동안 그렇게 멀거니 서 있었고, 결국에는 여자가 조금 진정하더군요. p.192
겨울에는 나무에도 멍이 든다. 아스팔트의 잿빛, 울타리 기둥의 잿빛, 자라나는 생명이 동면 중인 들판의 잿빛. 나뭇가지와 줄기 끝부분의 잿빛, 엷어지는 언덕의 잿빛, 흰 잿빛 하늘을 뾰족하게 찌르는 사물 가장자리의 잿빛. 색채에 멍이 생긴 듯, 색채가 구타당한 듯, 죽어버린 듯. p.243
이제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내가 막 이해하게 된 사실은, 우리는 전부 누군가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이라는 것이다. p.246
한 짝씩 차례대로 깊숙히 손을 넣고 손가락을 힘껏 벌려 올 나간 곳이 있는지 살펴본다. 발끝을 뾰족하게 세워 스타킹에 넣고 천천히, 발목에서 종아리로 무릎으로 허벅지로 끌어올리고, 잠시 휴식. 반대편 다리도 똑같이 신고, 또 잠시 휴식. 손에 뭉쳐 쥐고 있던 스타킹이 조금씩 늘어나며, 허벅지를 덮고 회음부 쪽으로 눌러놓은 고환을 덮고 다리 사이에 끈팬티로 고정해놓은 성기를 덮고 골반까지 펼쳐진다. p.254
결국에는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는 이 흰 방에 갇혀 생명없는 눈과 참을 수 없는 자기 자신과 현재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한 움큼의 기억을 견뎌내고 있다. p.275
그런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도로가 바다에 막힌 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영원히 가로막을 수 있을 것처럼, 잠자는 것 같기도 하고 내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한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다른 방식의 삶은 그를 앞으로, 결국 죽음으로 나아가게 할테니까. p.279
* * * * *
충격적이였다. 저자는 장기밀매,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 중독 등 불행한 삶에 대해 소외된 사회계층의 삶과 희망, 그리고 절망도 이야기 한다. 그것들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상처, 그리고 내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아픔을 느껴본다.
이 책을 읽고 나는 한 동안 충격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약하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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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지음)/ 든 (펴냄)
책의 마지막 문장까지 새겨읽은 후, 그날 밤엔 잠이 오지 않았다. 이 글은 생존의 글이자, 살아남은 자들을 애도하며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단순 감동을 넘어 저자의 생존으로써의 글쓰기를 응원하고 나또한 몹시 갈망한다.
'둘레'나 '끝'을 의미하는 '가장자리' 왜 책의 제목이 《가장자리》 일까? 책을 덮으며 생각해 봤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중심에서 벗어난, 자의든 타의든 중심에서 밀려난 변두리 사람들이다. '나'이자 '너'일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제2의 언어》 《거부하는 여자》 《구타》 《T를 잃는 법》등 각 단편의 제목도 예사롭지 않았다. 수영선수로의 삶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될 뻔했으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사망했고 이후 약물 중독자, 노숙자가 되어버린 사람. 잊혀진 사람 바로 책의 저자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이야기다. 완독 후, 저자의 TED 강연을 찾아봤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책을 쓴 사람들 혹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자랑하기 바쁘다. 자기의 장점만 내세워도 알아줄까 말까 한 이 세상에 자신의 치부를 완전히 드러내는 저자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긴 울림이 있었다.
작가의 배경에서 이미 작품이 태어나는 진실의 배경을 읽을 수 있다는데... 이 책의 작가 역시 이런 작품이 탄생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을 가졌다고 본다. 문학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아가 열달간 엄마의 뱃속에서 인간이 될 준비를 하듯이, 문학으로 태어날 자양분을 작가의 삶을 통해 머금기 때문이다.
성에 중독된 아이, 약물에 의존하는 아이,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소녀, 장기매매에서 장기 배달하는 일을 하는 소년들,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들, 퀴어, 부랑자, 어린아이들, 사회 부적응자... 이런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다지도 삶이 혹독한 것일까?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
이 책은 결코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다. 몇 번을 끊어 읽고 숨을 고르고, 다음 챕터를 넘기며 용기를 내야 했다. 읽느라 힘을 쓰고 용을 쓰는 이런 책이 좋다... 편한 것만 찾는 세상, 좋은 것만 보고 들으려는 세상에서 그래도 누군가는 읽고 듣고 느끼고 알아야 하기에 그것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스무 편의 짤막한 소설들이 주는 울림은 여느 장편보다 길고 묵직했다.
먼저 읽으신 분들이 너무 충격이었다. 놀랍다는 반응들이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은 작품들이다. 소설 속 화자들의 삶은 비참하고 가혹했지만 사실, 세상은 소설보다 훨씬 더 지독하니까... 살아남아줘서 고마웠다.... 그래도 살아줘서.....
저자의 테트 강연의 주제는 '부적응자'였다. 저자 본인은 이 사회의 부적응자였다면서.... '부적응자'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 친근하다. 나 역시 어느 영역의 부적응자이고 부적응 상태가 두렵지 않다. '부적응자'라는 단어가 어딘가 너무 낯익다 싶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습작으로 쓴 청소년 소설 어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부적응자'였다. 정말 수년 만에 다시 꺼내봤다. 너무 허접하고 미숙해서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폴더 속에 감금당한 작품들, 꾸역꾸역 세상으로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폴더로 밀어 넣으며 눈물이 났다. '부적응자'들 언젠가는 세상에 나오겠지.... 나올 수 있을까....
오늘도 중시이 아니라 가장자리(변두리)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 역시 가장자리 정주민이라 생각한다....
출판사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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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유크나비치 단편집 <가장자리> 장기 밀매, 성매매를 강요받는 여자아이, 성에 중독된 십 대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 약물 중독자. 이런 삶들이 ‘가장자리’에게 있어서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은 등장하는 날 것 그대로의 자연과 야생의 메타포는 그 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을 대변한다 <숨을 참던 나날> 을 즐겨 읽었지만 유독 ‘가장자리’는 나에게 신선하고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장자리는 나에게 끝없이 매혹적이다. 나는 늘 중앙이나 주류보다 바깥쪽 가장자리를 응시한다.” 그렇게 그는 학대와 성폭력, 가난, 중독, 자기파괴와 함께 가장자리를 걸어온 자신의 삶을 투영하듯, 세상의 변두리 혹은 어느 경계에 걸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을 써냈다. 아나스타샤가 사고로 손이 짤려나가 발목에 붙이고 감각이 없는 손을 갖게 되고, 어떤 원숭이들은 보살핌을 많이 받아 학대 방임 보육원으로 몰려 세상 어린이들의 삶을 뒤흔들고 죽음으로 내몬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여자아이의 몸 무게는 없고 균열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가장자리가 저마다의 이유로 슬픔과 상실, 사랑과 어떤 무언가의 회복, 여러가지 이유들의 사건과 함께 경계에 선 이들. 나 역시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선 이들을 눈여겨 보며 메세지와 의미들을 찾곤 했다 역시 사회적 모순이 포착해 욕설과 학대 성폭력이 난무하는건 조금씩 불편한건 사실이다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를 뽑자면 ‘장기 배달부’가 아닐까? 아나스타샤는 죽음을 떨치고 삶을 얻기위한 노력. 사회적으로 소외된 곳에서 살아가는 여성과 부적응자들의 고통,힘든 삶??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아무리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선다고 한들 저자의 위치보다 내 위치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버린 존재로 느꼈으며 아픈 내면을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하고 용기내어 스스로에게 관대 해지는게 좋겠다고 느꼈다 자극적이고 하여금 눈쌀을 찌뿌리겠지만 작가의 의도가 담긴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랬으면 하는 마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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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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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모든 것에 값이 있었다." 아나스타샤가 배달 중에 신장을 마사지했다는 이야기는 마법처럼 세상을 매혹했다. 사람들은 인간의 장기를 다루는 일에 신성한 행운을 타고난 여자아이를 지목해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키릴은 흉터를 내보이며 자기 신장을 내준 이야기를 반복했으나 그것은 전처럼 흥미롭지 않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기증 수혜자에게 사랑을 담아 장기를 배달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에 빛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역에서 좋은 기운을 얻고자 행운의 장기 배달부 여자아이를 찾았다. 여자아이는 어둠 속은 작은 희망이었다. 36 아나스타샤는 사고로 손이 팔에서 썰려 나가 왼손을 발목에 붙이고 몇 차례 수술을 거쳐 감각이 거의 없는 손을 갖게 된다. 농장에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먼 친척 집에서 열일곱 명의 아이들과 한집에서 살면서 장기 배달부를 하게 되는데... 어떤 원숭이는 구조되어 보호지로 가고 어떤 원숭이들은 맞고 고문당하는 것처럼 든든한 가족이 있어 보살핌을 받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학대나 방임에 몰리거나 보육원에 맡겨지는 아이들이 있다. 나쁜 어른들이 세상의 아이들의 삶을 뒤흔든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책은 저마다의 이유로 경계에 선 이들의 슬픔과 상실, 회복과 사랑을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가난과 중독. 특히 강요된 성 노동, 불행한 결혼 생활에 여성의 삶의 고통을 알게 해준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여자가 돈을 벌고 삶을 얻기 위해 간 곳은 성매매이다. 돈으로 희망과 시간을 돈을 사고 더 나은 삶을 희망하지만 빠른 속도로 죽음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겠다. 삶을 던져버리고 싶지만 이겨내고 힘들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여자아이의 몸은 무게가 없다. 수영장의 푸르름이 그의 귀를 채우고 몸을 잡아주고 세상을 차단한다. 그는 무엇보다 물속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육지에서는, 호흡도 버겁다.13 우리는 전부 균열을 품고 살아간다. 균열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니면 균열이 모든 것을 허물어트리면 켜켜이 쌓인 살갗과 지방과 주택 보유자 삶이, 깔끔한 머리 모양과 잘 먹은 화장이 남는다. 64 내 말을 유념할 것. 그곳에는 절대 가지 말도록. 절대 그 주변에 얼쩡거리지 말라. 지금은 회색 늑대들이 그 땅을 지키고 있으니까. 내장에서 여자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으니까 세상 밖으로 뻗어나갈 정도의 몸과 언어를 길러내고 있으니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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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는 둘레나 끝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눈에 띄지 않고 굳이 보려고도 하지 않은 부분을 뜻한다. 내가 독립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저자는 가장자리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가운데로 시선을 모아 이야기를 펼치는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떠한 순간에도 개입하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만으로도 모순된 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때까지 외면하고 또 은폐해왔던 사실 밑의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분된 단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어진 등장인물들을 통해 중앙에 쏠려 끊임없이 가장자리의 이야기를 외면했던 우리들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한다. 가장자리의 이야기이지만 중앙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조금은 어려운 이 책은 끊임없이 설명하며 외면하고 살아왔던 우리를 끝끝내 자각하게 한다. 그렇게 중앙에 있는 이들은 현재의 범위에서 끊임없이 중앙을 넓히며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더 좁은 가장자리로 밀어내며 ‘기득권’이 되어가고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같은 굴레에 가둠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가장자리로 밀어낼수록 또 다른 약자의 모습으로서 더욱더 가까워지는 그들에게 과연 선택지가 있었을까. 그들의 굴레가 같은 세계에 살아가지만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모를 그 누군가에게 단 하나의 선택만을 쥐여 주었던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자신에게 독이든 아니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장자리의 사람들은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잔혹하고 처절하게 망가진 삶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여 끊임없이 헤엄친다. 책 표지의 눈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볼 때와 책을 읽고 나서 표지를 볼 때가 다르게 느껴져서 여운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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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살다 보면 이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가장자리>는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결코 가볍게 읽을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전반적인 내용은 무겁고 우울하며, 읽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거칠고 직설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문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힘들었다. 하지만 비로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느낀 감정은 소외된 이들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외면했던 자신의 무지에 대한 불편함이었다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소외된 세계인 가장자리는 다른 세계가 아니다. 오늘까지만 버티고 내일부터는 버티지 못할 것처럼 위태로운 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견뎌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보면 도착하는 곳은 또 다른 가장자리다. 삶의 목적지가 중심도, 중심의 주변도 아닌 가장자리인 사람들은 처절한 삶의 몸부림 속에서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길들여진 고통은 순종적이다. 요란하게 찾아온 불행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만, 벼랑으로 떠밀려 온 그때 그들이 알지 못했던 숨겨진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이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