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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우리는 좋은 친구들이지만 유니폼을 입으면 다 변해요. 전쟁에서는 누가 내 형제인지 몰라요. 전쟁에서는 누구든 야만인이 돼요. 우리 각자의 마음에 뭐가 남을지 누가 알겠어요.
120 그녀 안의 여성이 아이네이아스와 크로이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 사랑의 불꽃이 그녀를 먹어치웠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가라앉은 내 집, 불쌍하여라.
그녀를 비난하는 것은 조금은 성급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사랑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왜 그렇게 적대적입니까? 이 동네가 좀 그래요...... 거짓말과...... 위선과...... 배배 꼬여 있고...... 서로 믿지 못해요...... 좀 침채되어 있어요...... 날씨도 그렇고...... 날씨 좋은 데로 패키지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집에 덜어오면...... 결국 날씨 탓도 아니고...... 우리가 그런 거죠.
213 그녀는 왜 그곳을 걷고 있을까. 아마도 새 코트와 관련된 이유 일 것이다. 피 묻은 낡은 코트를 대신한. 그건 일종의 속죄이자 반항이었다. 그리고 작별 인사였다. 그녀는 다시는 이 거리를 걷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밤처럼 아름답게 걷는다.
254 엄마가 보고 싶니......? 말하면 안 돼요. 종종 얼어붙을 듯 춥긴 했지만, 피델마에게는 이 만남이 삶의 낙이었다. 아이를 만나면 가슨 속의 돌이 말랑해졌다. ~이제 이것이 피델마로 하여금 삶을 버티게 해주었다. 삶에 목적을 부여하고, 진절머리 나게 단조로운 일과 메두사의 짜증과 매일 저녁 출근 카드를 찍으면 만나게 되는 먼지의 바다를 상쇄해 주었다.
313 그 크고 외로운 도시에서 당신은 어떻게 지내요? 거기서는 10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된다면서요? 나는 삶이라는 감옥의 벽을 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더 아름답고 널찍하니까요. 당신도 그렇게 해요. 그리고 누군가는 당신을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요.
362 그 악취 나는 얼룩이 영원히 그녀의 낙인이 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그를 만날 약속을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와의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386 가끔씩 나는 미친놈이 돼요. 그게 전쟁이 하는 일이죠.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아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405 피날레에서는 공연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집이라는 단어를 노래하고 외쳤다. 모두 서른 다섯 개의 언어였다. 집. 집으로. 집으로.
서까래와 벽을 넘어 가로등이 켜진 거리로, 시골의 습지와 들판으로, 묘지와 양들의 우리로, 놀라서 말을 읽은 숲으로, 쓸쓸한 사바나와 악취 흐르는 빈민가로, 바다를 지나 그 너머로, 그리운 곳으로 끝없이 울려 퍼졌다. 순간의 선택으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피델마가 자신의 집을 찾아가는 한 편의 오디세이아다. 집에서 버려진, 집에 갇힌, 집으로부터 떠나온, 집에 돌아가고 싶은,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모르는, 집을 도둑맞은, 집에서 기다리는...... 100개도 넘는 언어로 말하고 말하는 사람들. 피델마의 말 줄임표마다 바튼 숨이 덩어리지고 큰 숨이 몰아 세워진다. 페넬로페는 기다렸고 테세우스는 찾아 나섰다. 오디세우스는 마녀와 자고 돼지를 먹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도 자기 집을 찾아갔다. 왕관을 되찾았다. 세상은 피델마에게 어쩌면 이다지도 가혹한가. 여성의 자기 집 찾기는 명예를 넘어 목숨까지 걸어야 가당한 일인가. 피델마의 귀에 독을 쏟아내는 메두사도 사람이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편지를 건네는 이도 사람이다. 모피를 입고 가족접견실에서 블라드를 만나는 꿈의 한 장면은 진정 압권. 우체국장은 말한다. "어떻게 우리가 모를 수 있었지?" 블라드는 토론에서 디도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바로 알아보지 못할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이 악의인가...라는 물음에 저항한다. 블라드를 만나러 떠나는 피델마의 용기, 법정에서 어머니들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용기. 누가 피델마에게 당당하라고 하는가. 더럽다고 하는가. 아름답다고 하는가. 뉘우치라고 하는가. 치욕을 견디라고 하는가. 용서받으라고 하는가. 용서하라고 하는가. 피델마가 100개의 언어로 만난 상처와 구원의 집들. 함께 머무는 것을 허락한 사람들과 계속 노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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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사라예보의 총성에서 시작해서 사라예보의 포위전에서 끝난다.”(p412) 라는 수잔 손탁의 말이 있는데, 20세기 보스니아 전쟁은 21세기 우크라이나에서 반복되고 있다.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무력감이 일상을 억누르는 요즘, 그러한 참극에서도 평화와 희망의 싹을 찾아내는 소설이 출간되었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작고 빨간 의자". 보스니아 전쟁 동안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46개월동안 도시가 봉쇄되고(사라예보 포위전), 수많은 시민들이 학살되었다. 이 참극을 주도한 사람은 카라자치 당시 스르브스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 블라디미르 드라간 (보스니아의 야수 블라드 박사)의 모델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전쟁범죄자로 수배중 대체의학 신비주의자로 변장하여 10년 넘게 도피했는데 2008년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다. 2012년, 사라예보의 마르샬티토 거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빨간 의자 11,541개가 놓인다. 이 소설은 이 이벤트에서 모티브를 얻는다. 블라드 박사는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클루노일라에 잠입하여 치료소를 차리고, 피델마는 그에게 빠져 임신하게 되나, 블라드가 체포되면서 그녀의 삶은 산산조각 부서진다. 피델마는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도피한다. 갈 곳 없는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여인들, 그들은 자신들도 힘들 때 그런 도움을 받았다고 그녀를 받아들이고 피델마는 그들을 통해 점차 살려는 의지를 되찾고 힘을 얻는다. ‘센터’에서 전쟁 뿐 아니라 수많은 참상으로부터 도피한 피해자들을 만나고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현재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간간히 차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참상들이 보도되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올 수 있는가. 이 소설은 전쟁뿐 아니라 복잡다단한 사회 문제- 소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다보면 한없이 먹먹해지고 그 와중에도 우린 연대하고 함께 한다는 희망도 담고 있지만…화가 난다.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나라간의 반목뿐 아니라, 사회 내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나는 삶이라는 감옥의 벽을 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더 아름답고 널찍하니까요.(p313) 나는 스스로를 제대로 알 지 못하면 집으로 갈 수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p400) 세상에 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으며 거기서 또 얼마나 처절한 음악이 터져나올 수 있는지 알면 여러분은 깜짝 놀랄 것이다.(p405) 출판사로부터 책을 선물받아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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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에 첨부된 작고 빨간 의자 사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거리에 늘어선 작고 빨간 의자들. 전쟁은 그만큼 공포스럽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루된 사람들의 마음을, 삶을 뒤틀리게 만든다. 에나 번스의 작품을 읽을 때도 느꼈던 아일랜드 특유의 폐쇄적인 사회 정서를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피델마를 유혹하는 늑대의 목소리, 블라드 라는 이름에서 블러드라는 피의 색이 연상되었다. 피델마가 영국을 떠돌며 만나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 다양한 연령...다양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 자신의 상처를 상처로 되갚으려는 사람들도 있고 상처가 있기에 위로와 연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인지 결국 피델마 자신이 선택하는 것. 블라드의 법정 장면에서 올라오던 분노가, 함께 연극을 하는 유쾌하고 따뜻한 장면들을 통해 해소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책이 더 번역되어 나오길 기다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