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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을 보다”
겁쟁이에 소심한 개는 움직이는 모든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몸 안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구 짖는다. 짖다 보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듯하다.
침묵하는 개는 눈에 들어오는 들려오는 소리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인다. 여차하면, 뛰어나가 목줄을 물어버릴 심산으로…. 개의 침묵은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민감하게….
꽤 철학적인 주제, 14꼭지로 침묵을 갈파한다.
이 책은 침묵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죽음 앞의 무력함을 받아들일 힘을, 불안한 마음속의 고요를 찾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 침묵은 따발총같이 입을 여는 순간, 밥을 먹으면서도 반찬 삼아 쉼 없이 말하는, 재잘거리는 것은 은, 동, 아니 흙에도 못 미친다.
자크 라캉은 모리스 블랑쇼의 말을 빌려서 말한다. “말은 사물의 죽음이다.” 생명이 있는 것,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침묵을 즐긴다. 쓸데없이 나불거려, 주의 경계를 흩트린다. 라캉은 ‘말은 사물의 죽음이다’라는 의미 말과 이미지는 사라짐을 만들고 이 사라짐 없이 외양은 절대 등장할 수 없다……. 진정한 언어가 시작되려면 이 언어를 실어 나르는 삶이 반드시 무(없음)를 경험해야만 하며, ‘깊은 곳에서 떨고, 그 안의 고정되고 안정되어 있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려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언어는 빈 곳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소음이 중독돼 침묵하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우리는 왜 침묵을 두려워하면 그것을 피하려 할까? 우리는 왜 소음을 갈망하고, 소음을 필요로 할까? 라는 문제의식, 이에 해당하는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이 책의 흐름이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침묵은 고요함이요. 고요함은 침묵이다. 단순히 소리, 소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침묵은 모든 소리와 메아리 속에서 울리고 퍼지는 고요함이다.
침묵의 두 가지 유형
침묵은 무를 동경한다. 또 다른 침묵은 전부를 동경한다. 전자는 상관물의 숫자이며, 후자는 상관물의 행위다. 이 두 양식은 프로이트가 인간의 삶의 바탕이라고 생각했던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와 에로스(삶의 본능)에 조응한다.
시끄러운 스타일로 침묵을 옹호하는 것은 충만함과 텅 빔의 불안정한 대조에서 비롯된다. 침묵은 감각적이고 황홀하며, 초언어적인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흥분하다가 부정적 침묵의 텅 빔 속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악명이 높다.
침묵은 말에서 소리를 없애는 것이다. 말이란 낱말을 삽입할 수 있는 문장을 당연한 의미하겠지만 조르쥬 바타유는 침묵이라는 말에 한정하려 했다. 독재자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침묵,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꿈틀거리는 혁명의 기운, 모두 침묵이라는 외향을 띄고 있지만, 질에서는 다르다.
우리가 침묵에 천착하고 침묵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침묵의 가치와 무게다. 소리 내서 말을 할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면…. 침묵이다. 내면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마구 떠들어대는 알맹이 없는 소리보다 침묵이 가치가 있을 때,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금언이 나오지 않았던가….
참으로 어려운 개념인 “침묵‘, 우리가 관념하는 침묵은 어떤 것일까, 부정적일까, 긍정적일까, 아니면 새로운 뭔가를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일까? 소음보다 더 시끄러운 침묵….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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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당신이 없는 세상을 듣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종교학자 마크 C. 테일러는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몇 개나 되는 사진 상자를 찾게 된다. 상자에는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이 다 들어 있었는데, 가족의 스냅사진, 제법 격식을 차린 인물 사진, 가족의 휴일이나 여행을 담은 슬라이드 등 매우 다양했다. 게다가 부모님이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가 찍은 출처불명의 사진들도 제법 있었는데, 저자는 그런 오래된 흑백 사진들 속에서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과거의 침묵과 "모든 것의 기원이자 종말인 침묵 너머의 침묵"을 보게 된다. 뭐랄까, '사진예술의 현상학' 혹은 '침묵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각성 체험을 한 셈이다.
"사진이 매력적인 이유는 어떤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시간을 고정시키는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지들을 만드는 점진적인 과정에 있다. 기억에 남을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활기차고, 피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만들어 버리는 많은 우연과 모순, 역설이 필요하다. 빛과 어둠, 양과 음, 존재와 부재, 개방과 폐쇄, 근접성과 거리감, 고정성과 유동성, 형태 있음과 형태 없음 사이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28쪽)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발화의 취지는 철학의 언어가 야기한 오염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상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침묵마저도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맛볼 수 있는 그런 객체가 된다. 저자는 침묵이 단순한 무음이나 무성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다성적'이라고 강조한다.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 같은 사상가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 이유도 사진이 가진 우연과 모순과 역설을 포함한 '침묵의 현상학'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저자는 침묵의 두 양식으로 프로이트가 인간의 삶의 근간이라고 생각했던 두 기본적인 욕망인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와 에로스(삶의 본능)를 강조한다. 이합 하산이 말한 침묵의 긍정적인 형식과 부정적인 형식도, 수전 손택이 말한 시끄러운 침묵과 부드러운 침묵도 바로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구분과 서로 맞물린다. 침묵의 두 양식이 타나토스와 에로스라는 점도 의미있는 분석이지만, 나는 일차적으로 소음은 네크로필리아적이고 침묵은 바이오필리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네크로필리아가 파괴성과 죽음의 충동이라면, 바이오필리아는 생명애와 삶의 충동이다.
저자는 철학과 예술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침묵을 분석한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 하나가 바로 소음 중독이다. 현대인의 일상은 하루종일 무수한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 소음 중독을 치유해 줄 유일한 치료약이 바로 침묵의 힘이다.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 그리고 스마트폰은 소음이 디폴트 상태라, 오히려 사용자로 하여금 침묵을 불편해하고 침묵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 기본 능력을 상실케한다. 소음은 네크로필리아적이다. 다시 말해서, 소음은 삶에 대한 사랑과 살아있는 것에 끌리는 마음을 고사시킨다. 반면에 침묵은 바이오필리아적이다. 다시 말해서, 침묵은 파괴적인 것과 죽은 것에 대한 사랑을 해소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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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eing Silence ----- ('침묵을 보다' 표지 일부)
<침묵을 보다>에서 저자 마크 C. 테일러는 '침묵'을 주제로 철학, 종교, 예술 전반을 넘나드는 성찰을 보여준다. 주로 미국 회화 작품들을 분석하고 이해를 돕고 있다.
미술 전공자이거나 미학, 예술 철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정말 흥미로운 신간 소식이다.
('침묵을 보다' 표지) 저자의 철학과 종교에 대한 깊은 사고가 <침묵을 보다>를 깊이 있게 만들었다. 이력을 보면 종교철학자이면서 문화 비평자이고 포스트모던 신학자, 대학 출판부 편집자이기도 하다. 종교와 예술이라는 두 축이 저자의 가장 큰 관심인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차례가 정말 시적이다. " 없이, 전에,부터, ..., 너머, 맞서, 내부에 등등" 저자의 침묵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창의적인 표현이 신선하다. (아래 참조) ('침묵을 보다' 차례 일부)
<침묵을 표현하는 마크 C. 테일러의 글쓰기> 저자가 침묵을 표현하는 말들이 멋지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이고 모호하면서도 본질에 가깝게 표현하려는 저자가 보인다. 평소 철학과 예술, 회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마크는 풍부한 지식들(철학, 종교, 인문, 예술 등의 지식들)을 재료로 삼아서, 한 주제를 두고 여기저기서 지식을 꺼내어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어간다. 즉, 우리가 신변잡기로 대화를 이어가듯이 마크는 철학, 지식과 성찰로 <침묵을 보다>를 완성한다. 저자의 그런 노하우와 학식이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으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헤겔,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니체 ... 등 철학자들을 자유자재로 꺼내서 쓰고 있다.
('침묵을 보다' 표지 일부들) <침묵에 주목하게 된 계기> 어느 날 정리하게 된 부모님의 흑백 사진들을 보며, '침묵'을 떠올렸다고 한다. 책의 처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진들이 '푼크툼'을 경험하게 했다.
<1. 없이> 진짜 흥미 있게 읽었던 장이다. 현대 사회는 소음의 시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술가로 루솔로를 소개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음악가이다. 루솔로라는 아방가르드 음악가가 음악으로 이용한 소리는 '금속 긁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천둥소리, 중얼거림....'이다. 이런 소리를 음악으로 분류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다양한 기계제품들과 문명의 이기들로 현대 사회는 엄청난 소음의 시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소리가 안 들리는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 다양한 '백색 소음'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빠른 음악에 식사 시간도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드디어 기업가들은 '침묵을 상품화하는 방법(책 p74)'을 찾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침묵은 소수의 사람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책 p74) 되었다. 디지털화, 개인 요구에 맞춘 앱, 등 소셜 미디어는 오히려 인류를 유아론적 사고에 갇히게 만든다. 왜? 모두 자기 말만 하고 듣지를 않으니까. 수많은 목소리들은 있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는 이런 소리들은 소음이고 결국 '역설적으로 '침묵의 소리'가 되고 만다'(책 84) 왜 그것이 침묵의 소리일까? 극작가 해롤드 핀터가 말했다. 끊임없이 말함으로써 말하지 않는 전략 중 하나이기에 오히려 침묵이라고. 일상에서 이런 경우 가끔씩 있다. 뭔가 숨기려고 일부러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말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 그 순간 진짜 해야 할 말은 '침묵'했던 것이다.
<'빛의 침묵을 듣는 방법' - 제임스 터렐> (책 p89)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빛이 침묵한다니! 빛이 침묵하다면 ... 어둠? '제임스 터렐'은 빛을 탐구하면서 '완전한 침묵과 완벽한 어둠을 결합하는 방법'(책 p90)을 찾아 나갔다. 미국의 유명한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의 예술 작업들을 '빛의 침묵'으로 안내하는 과정들은 과학적이고 종교적이다.
<뉴먼, 라인하르트, 로스코> 미국 화가들이고 우리나라에는 색면 추상화가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세 사람 모두 '검정'이 가지는 정신적, 종교적 느낌을 표현했다. 책은 각 장을 따로 할애해서 세 사람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반복 강박> "수전 손택은 현대 미술의 기본 원리 중 하나가 반복이라고 주장했다. "(책 p199) 프로이트가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엄마의 부재를 물건을 숨기고 찾기를 반복하는 손주를 바라보며 "욕망의 좌절이 주체의 개인화라는 결과"(책 p207)를 가져온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욕망을 욕망하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 그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반복 강박'이라는 것이다. 떠올린 생각이라면, 미술가나 음악가 문학가들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반복하는 이유는 바로 그 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침묵의 공간 ; 사막> "하이드와 저드는 미국만의 고유한 예술을 창조하고 싶어 했고 그런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미국 서부의 사막"(책 p347)을 꼽았다. 이들 예술가가 사막을 예술의 공간으로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침묵을 보다' 내용 일부분)
<엘스워스 켈리> 로스코의 침묵과 켈리의 침묵을 비교하는 내용이 흥미 있었다. 로스코는 키에르케고르에서 의심과 공포 체념을 읽었다면 켈리는 삶을 긍정하는 희망을 읽었다. 색으로 침묵을 표현했는데 켈리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색면이 자유롭고 화려하다. ( 책에도 나오지만 앙리 마티스를 떠올리게 한다.) 침묵이 꼭 검은색일 필요는 없지 않나? "흔한 것의 숭고, 평범함의 아름다움, 세속적인 것의 성스러움, 어둠 속의 빛, 이것이 켈리의 교회가 드러내는 바다." (책 p412)
침묵은 신의 영역이라고들 한다. 예술가가 가진 창조성은 신적인 영역이라고들 한다. 그럼 예술가는 신이다. 세계는 예술 작품이고. "이 창의성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삶의 순간이다" (책 p416) 디오니소스가 가진 '혼돈과 불안'의 에너지를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니체는 보고 있다. -혼돈을 품고 춤을 추는 것 - 그 긍정의 침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아마 켈리의 회화를 사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 생각)
<돌담> 옛날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그 작은 마을 모두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들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마크는 스스로 돌담을 만들고 사진도 실었다. 어릴 적 흔하게 보았던 돌담에 이런 예술적 가치가 있었나? 만약 그 마을이 아직도 있어서 저자가 둘러봤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왜 돌인가? 마이클 하이저의 대지 미술에도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나온다. 우리 지구 환경은 어디서 왔을까? 우주에서 온 암석들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암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생명 즉, 물고기도 나뭇잎도 고양이도 강아지도..... "결국 모든 것이 돌덩이의 문제라면, 우리는 돌덩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책 p461) 고대 암석에는 고대의 깊은 침묵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침묵은 생명 탄생의 비밀 아닐까?
예술가가 이런 생각을 하려면 깊은 과학 지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예술가들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어떻게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는지도 알 수 있었다.
<불행한 사람> 현존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다고 한다. 자신으로부터 부재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자신으로부터 불행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도 흔히 말하는 '나답게'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동의한 나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언제나 다른 곳에 있는 가장 불행한 사람은 이 세계 어디에서도 편안할 수 없다."(책 p224) 침묵이 현존하는 나를 일깨우는 시간이 되어 지금 여기 내가 행복할 수 있게 예술 작품들이 자꾸 시비를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묵을 보다' 표지)
침묵은 신적인 것이면서 일상의 것이고,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고, 이성의 한계 그 끝에 있는 것이다. 침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예술은 진정한 침묵의 상태를 체험하게 하고 침묵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수다나 노동이 침묵이 되기도 한다.
<침묵을 보다>를 읽으면서, 마크와 함께 예술을 통해 침묵을 보는 시간들을 보냈다. 역시! 예술가들이란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인류의 한 부분이라서 다행이다. 예술가들이 아니면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해 볼 수 있을까? 해봤다고 해도 그냥 지나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먹고살기 바빠서.
예술가들이 시도한 다양한 표현방식을 살펴보는 일은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져 보는 일이다. 안 하던 생각을 해보는 경험도 중요하다. 평소 못했던 생각들을 따라가보는 낯설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체험을 <침묵을 보다>는 제공한다.
낯설고 용어가 생소하더라도 쉽게 그만두지 말고 그냥저냥 읽어 나가면 좋겠다. 예술과 회화를 통한 명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침묵을 보다' 표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침묵을보다#침묵의순간#예문아카이브#마크C테일러#예술철학#예술#미학#색면추상#미국화가#추상표현주의#추천책#침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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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며 북한산으로 매일 산책을 하게 되었다. 하루 세 번의 산책 후 마무리는 항상 해먹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으로 한다. 반려견은 조용히 숲의 소리를 듣고 나는 무언의 침묵, 또는 숲의 소리를 벗삼아 책을 읽는다. 『침묵을 보다』는 소음보다 침묵을 좋아하는 내가 그 시간에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된 책이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숲의 청량한 기운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며 그 정적을 즐길때 이 책과 함께라면 그 침묵의 시간이 더욱 값질 것 같았다.
보통 책을 고를때 책의 소개글을 참고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책의 표지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쁜 초록빛의 색과 빛나는 제목과 그림, 책의 표지만 보고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평소에도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북적북적한 곳은 피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소래포구나 시장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북적북적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렸을때부터 난 한적한 곳을 찾아 다녔다. 물론 부모님의 영향이지만 어려서부터 산을 즐겨 찾았고 지금도 집에 있으면 TV를 틀지 않는다. 오히려 반려견에게 소음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 클래식채널을 가끔 틀어줬을 뿐이다.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며 아침에 울리는 핸드폰 알람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찬 곳에서 하루 하루를 지냈다. 스트레스와 피로는 결국 저주파성난청 진단을 받게 하기도 하였다. 무언가 계속 불안하고 초조했다. 회사를 관두자 바로 침묵이 주가되는 삶이 찾아왔다. 반려견 입양으로 시끄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하루에도 몇 번씩 숲을 만나게 되었다. 침묵이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침묵을 보다』를 통해 그간 내가 느껴왔던 침묵을 눈으로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책의 처음을 시작하는 것은 '0'이다. 첫 번째 장이 아닌 숫자 '0', 무,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문장이 갖는 운율에 가슴이 뛰었다.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며 두번째 페이지까지 계속 같은 장을 반복해서 읽었다. 읽고 지시대로 눈을 감고 책이 지시하는대로 따르길 여러 번 그렇게 책의 한 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항상 빠르게 읽고 넘어갔던 독서 습관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같은 페이지에서 그렇게 한참을 머물렀다.
대게의 철학서가 그러하듯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을 갖고 음미하듯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을 가슴으로 느낀다면 침묵의 의미를 서서히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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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펼쳤을 때, 우선 목차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Without, Before, Beyond, Within, Between, Around, In… ‘없이, 전에, 너머, 사이에, 함께, 주변에, 안에’ 같은 이런 말들은 생각에 잠시 틈을 두고 일련의 상념에 빠지게 한다. 그런가 하면 사물이건 사람이건 감정이건 어떤 대상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말들이기도 하다. 즉, ‘OO없이, OO너머, OO와 함께’라는 말의 개념에는 대상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이런 심오하고 철학적인 목차라니... 나이가 들수록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가만히 있어도 온갖 소리와 소음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다. 소음을 피해 자연을 찾아갈 때도 우리는 전화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틀어놓는 등 청각적 자극을 멈추지 않는다. 소리나 소음은 일상생활을 유지해주는 중요한 요소지만, 청각적 자극에 늘 노출되어 있다 보면 본래의 모습을 바라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만다.
이 책은 우리가 자의반 타의반 잊고 지냈던 ‘침묵’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종교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부모님의 죽음 뒤에 집안과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한 사진을 시작으로 암실(빛과 어둠), 죽음에서 탄생, 침묵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는 다락방에서 발견한 옛날 사진에서 시작해 언어, 철학, 음악, 미술, 건축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며 다양한 형태의 ‘침묵’에 대해 이야기한다.
형식이 없는 것에서 형식이 등장하고, 분화되지 않던 것이 분화되고, 불분명했던 것이 명확해진다. 바로 이 순간, 말은 결국 침묵할 수 없는 침묵(의 바다)을 깬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다락방에 숨겨져 있었던 사진에서 보았던 침묵이다.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이 침묵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새로운 말(세계)을 들을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p.28)
할 말이 없으면 침묵을 지키는 편이 현명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침묵을 말하게 하고 침묵을 듣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케이지의 주장에 따라 계속해서 말하는 게 필요하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은 언어의 실패 안에서, 실패를 통해서 말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떤 것’은 ‘무에 관한 헛소동’으로 판명된다. (p.47)
이 책은 읽기에 쉽지 않다. 빠르고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다. 하지만 ‘침묵=고요=내면’의 중요성을 알고, 침묵의 철학적, 예술적 의미를 이해하고 싶고, 침묵의 바다에 제대로 빠져들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관심 깊게 읽을 책이다. 자기만의 예술 작품, 자기만의 세계를 완성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무척 의미있는 책이 될 것 같다. -------------------------- *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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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Seeing Silence
/ 마크 C. 테일러 / 임상훈 옮김
침묵은 고요함이며 고요함은 침묵이다. 침묵은 소음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말의 소리와 메아리에서 들리고 울려 퍼지는 고요함이다. 침묵 없이는 말도 없으며, 말없이는 침묵도 없다. 침묵은 끝없이 후퇴하는 말의 지평이다. 침묵은 자신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을 할 수 있다.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배반하는 것이다. -13페이지 중에서-
without없이/Before전에/From부터 Beyond너머/Against맞서/Within내부에 Between사이에/Toward향하여/Around주변에With함께/In안에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당신이 없는 세상을 듣는 것이다
목차가 이리도 철학적인 책이 또 어디 있을까요. 침묵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철학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처음 이야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 정리를 하던 중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물건 중에서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발견합니다. 아울러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이름도 모를 얼굴들이 담긴 수많은 사진 속에서 침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한때는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과거의 침묵뿐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과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의 기원이자 종말인 침묵 너머의 침묵을 발견합니다. 즉,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당신이 없는 세상을 듣는 것입니다.
소음을 피해 숲으로 들어가지만
소음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소음을 피한다고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 음악을 듣고,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스마트폰과 아이팟의 장비는 이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침묵을 찾아 월든 호숫가로 들어갑니다. 숲에 자신만의 오두막 월든을 만들고 2년동안 노동과 묵상을 했지요. 우리에게도 수많은 소음들 속에서 나만의 월든이 필요합니다.
침묵을 듣는 다는 것은 죽음 앞의 무력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불안한 마음속의 고요를 찾는 것이다.
존 케이지의 [ 4분 33초 ]와 같이 음악 없는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백지와도 같은 하얀 악보를 넘기면서 침묵의 4분 33초를 보여줍니다. 존 케이지의 [ 4분 33초 ]는 20세기 음악계와 문화예술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온 작품인데요. 1악장에서는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 2악장에서는 빗방울 소리가, 3악장에서는 웅성대는 청중의 소리가 곡 전체가 가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어떤 형태의 음악은 침묵을 들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음악 뿐 아니라 예술품,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침묵의 개념을 풀어냅니다. 예를 들어, 정원의 돌을 통해서 얻는 깨달음과 료안지 바위정원의 신성함을 이야기 합니다. 정원의 미적 효과를 위해 승려들은 매일 흰색 자갈을 갈퀴질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율동과 침묵 속에서 수행되는 묵상의 한 형식이 됩니다. 소음은 끝나고 진정한 침묵이 찾아오는 순간들이 료안지 바위정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 침묵을 듣다 ]는 읽는 내내 책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침묵에 대해서 이렇게 철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니! 철학자 칸트, 하이데거, 메를리퐁티, 니체, 마지막에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까지. 저자의 철학의 폭과 깊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있습니다. 침묵이 필요한 당신에게 철학적 책 [ 침묵을 보다 ]를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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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마크 C. 테일러 미국 컬럼비아 대학 종교학과 교수. 종교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이며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신학자. 시카고 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종교와 포스트모더니즘’ 시리즈의 창간 편집자이며, 《키르케고르의 가명: 시간과 자아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이탈: 포스트모던 무/신론》, 《속도 제한: 시간이 어디로 갔으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왜 거의 없는가》 등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했다.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블룸버그 뉴스〉 등에도 기고하고 있으며 구겐하임 펠로십 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침묵을 보다》는 인간의 경험, 예술, 언어의 기원에 대한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명상에 관한 이야기로, 여러 철학자나 문학가, 예술가, 작가 및 작곡가들의 작업을 인용해 침묵의 다양한 형태를 탐미했다.
역자 : 임상훈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료 번역가들과 ‘번역인’이라는 작업실을 꾸려 활동 중이다. 《재즈로 시작하는 음악여행》을 집필했고, 옮긴 책으로는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더 어글리: 추의 문화사》, 《10% 적은 민주주의》, 《트라우마 사전》, 《자본주의 대전환》, 《건축 다시 읽기》(공역)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고 느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굉장히 감각적으로 집중해서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동요되지 않는 마음으로 듣고 봐야 한다.
침묵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상으로 접해서 알고 있는 케이지의 <4분 33초>가 떠오른다.
그 의도와 목적이 아직도 불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작품 안에서 여러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세상에 침묵이라는 것은 없다."
의도되지 않은 소리로 가득 채운 우연성을 보면 침묵의 불가능성을 이해시키려 한것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어쨌든 이 책 안에서 여러 형태 속에서의 침묵을 보고 느끼면서 실체가 없는 무형의 존재를 내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회화는 '침묵의 말'이다. 뉴먼의 가장 중요한 작품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표현은 없다. 숭고는 형식이 없고, 비결정적이고, 비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말하기 불가능한 것을 맗고, 분절될 수 없는 것을 분절하는 불가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아주 낯선 방식으로, 뉴먼의 작품이 거둔 성공은 그 실패다. 그 실패가 바로 침묵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p143
뉴먼의 마지막 조각 <짐줌>이라는 드러나는 공간을 보면 내부 공간에 들어서면, 주변 세계가 확장하는 동시에 수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헤스는 작품의 해석 중에 현관을 빛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과 '창조된 첫날' 사이에 일어난 걸 재연한다고 말했다.
짐줌이란 공간이 그 기원을 말해주는데 기원은 말의 침묵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한다.
뉴먼의 집이나 카발라의 짐줌과 같은 예술 작품의 기원이 침묵을 울리는 말하기를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침묵과 언어와의 관계를 놓고서 하이데거는 "언어는 침묵에 기반을 둔다"라고 주장했다.
침묵은 특수한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언어나 말에 시간적으로 선행되지 않기에 언어는 침묵을 잠잠하게 만들 수 없기도 하다.
"말이 현존하고 있을 당시의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수 없다. 침묵은 말의 목소리로 말하고, 자신의 타자성 속 안에 있는 자신을 구현하는 자기부정의 타자성 속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p157
침묵으로서의 침묵은 말에서는 부재한다고 한다.
침묵은 말의 '타자'로 현존한다고 말한다.
좀 더 심오한 침묵은 자발적인 침묵의 무언의 장과 그 침묵이 열림을 만들어내는 말이라고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철학적인 메시지가 침묵을 둘러싼 행방들을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이해하기가 좀 난해하긴 했다.
단순히 침묵의 실체를 대면하고자 했던 마음과는 달리 말이다.
스노우가 돌담을 쌓는 것이 노동의 일이라기 보다는 묵상의 한 형태라고 본다면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예술적 행위가 될 수 있겠다라는 점에서 흥미로워보였다.
돌담이 묵상으로 초대하는 공간이라고 했다면 내가 일상의 소음을 멈추고 집중하고 침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은 무얼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 역시 그 고요를 찾아서 너머의 세상에 이르는 기쁨의 길을 걷고 싶다.
침묵.. 이토록 심오하고 매혹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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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그저 소리/소음의 부재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말없음의 상태도 아닌가 봅니다. 잠에서 깨면 혹은 소음과 함께 잠에서 깨고, 하루 종일 수많은 소리와 음성을 듣고, 종종 꿈속도 시끄러우니, 어쩌면 침묵을 아주 드물게 경험하고 사는가 싶습니다.
자극도 소리도 가득한 외부 공간에서 그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생각 없이 산책을 나서고, 내 발걸음에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의식 밖으로 멀어집니다. 몰두를 통해 어떤 유형의 침묵을 그렇게 경험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명상을 기반으로 둔 침묵에 관한 이야기라서 두려움도 기대도 컸습니다. 필요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할 테니까요. 하루만 혼자서 침묵 말고 더 필요한 게 없는 시공간을 살고 싶기도 합니다. 심심하다, 지루하다... 이런 걸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 왜 우리는 소음에 중독된 걸까 - 왜 우리는 침묵을 듣는 방법을 까맣게 잊게 되었을까 - 왜 우리는 침묵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들까 - 왜 침묵은 매력적이지 않고 위협적일까 - 왜 우리는 소음을 갈망하며 필요로 하는 것일까 - 왜 우리는 소음을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책에서 멀어지는 하소연으로 흐르네요. ‘보다’란 행위가 오싹할 만큼 인상적인 내용들을 만났습니다. 침묵이란 짐작보다 연속성이 있고 지속성도 가졌다는 걸 처음 배웠습니다. 여러 방식의 예술을 통해 침묵을 보고, 봄으로써 침묵을 듣는 행위... 깊이도 넓이도 상당합니다.
침묵의 종류도 다양하고 침묵을 통해 들리게 하려는 내용도 다양합니다. 잠시만 집중력이 약해지면 흐름을 놓치거나 헤매게 되네요. 철학, 종교학, 인문학, 예술... 뭐든 기초 지식과 독서량이 많은 독자들이 좀 더 많은 내용을 즐길 수 있는 깊고 묵직한 책입니다.
! 침묵을 보다 ! 침묵을 듣다
“한때는 기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과거의 침묵뿐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과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의 기원이자 종말인 침묵 너머의 침묵을 말이다. 사진의 얼굴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조만간 나 자신의 것이 되고야 말 침묵을 보았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침묵은 다성적polyphonic이다.”
“한 종류의 침묵에서 언어는 무nothing를 동경하며, 다른 침묵에서는 전부all를 동경한다. 전자는 상과물은 숫자이며, 후자의 상관물은 행위이다.” 이합 하산Ihab Hassan
“시끄러운 스타일로 침묵을 옹호하는 것은 ‘충만함plenum’과 ‘텅빔void’의 불안정한 대조에서 비롯된다. 침묵이 감각적이고, 황홀하며, 초언어적인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흥분하다가 부정적 침묵의 텅 빔 속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악명이 높다. (...) 시끄러운 침묵의 옹호는 광신적이고 과도한 일반화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다. (...) 온갖 묵시론적 사유의 수모를 참고 견뎌야 한다.” 수잔 손택 <침묵의 미학The Aesthetics of Silence>
“‘소음’이라는 낱말은 라틴어 ‘nausea’('배멀미'라는 의미이지만, ‘불쾌한 상황’ 혹은 ‘시끄러운 혼란’과 같은 부가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와 그리스어 ‘nausea’(배라는 의미의 ‘naus’에서 왔다)에서 왔고, 도중에 프랑스 고어 ‘noyse’를 거쳤다. 어원만 보더라도 소음은 역겹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수없이 많은 질병은 언제 침묵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는 데에서, 다시 말해 비비고 긁어대는 말들의 단단한 껍질 내부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데에서부터 온다.”
“근대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침묵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 금융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소음은 바뀌었고 점점 증폭되었다. 이 소음은 청각적일 뿐 아니라 시각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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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말로 먹고 사는 일을 한 적이 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말하는 일이다보니 퇴근하고 나면 말하는 게 그 어떤 일보다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말이 점점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이 줄어들자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침묵이 주는 의미를 생각했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의도하지 않게 다시 침묵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침묵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 경험한 침묵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침묵이라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의 시간이 쌓이면서 침묵에도 여러 의미가 담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종교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마크 C. 테일러는 그의 저서 <침묵을 보다>에서 침묵에 다양한 종류가 있음을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침묵의 다양성이 내가 경험한 다양한 침묵의 의미와 똑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침묵에는 서로 다른 의미를 쏟아내는 다양한 침묵이 있다.
침묵의 의미를 설명한 이 책은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책 첫머리에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게 된 옛 사진들에서 침묵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장면까지만 해도 가볍게 읽겠구나 생각했지만 그 이후 하이데거를 필두로 다양한 철학자들의 침묵에 대한 정의를 끌어오면서 점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더뎌졌다.
저자는 침묵의 의미를 없이(without), 전에(before), 함께(with), 안에(in) 등 전치사를 이용해 14개의 파트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내가 경험한 침묵과 유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발적인 의지력을 동원해 억제하고 있는 ‘말하지 않는 것’과 절대로 표현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구별이다(p.40)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침묵의 의미가 내가 경험한 침묵과 100프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저자가 어떤 의미로 이 문장을 썼는지는 어렴풋이나마 공감하게 된다.
오늘도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게 저자가 설명한 침묵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삶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침묵이 주는 고요함의 한없이 깊은 맛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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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라는 단어 뜻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공백 상태일까요 어떤 뜻인지 문득 궁금해지는데요.
책속으로 떠나 같이 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날 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침묵
넘치는 소음시대에 정말로 필요한건 침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은 14장에 걸쳐 침묵에 대해서 저자의 견해가 적혀져 있다.
저자는 종교학과 교수이자 죵교철학자이며 문화비평가입니다.
침묵은 치유다. 언어 수준이 완전히 저하되고 말이 소음이 될 때 저항을 위한 그리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최고의 전략이 침묵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생각도 중간 중간 녹아져 있어서 좋은책
침묵에 대한 의미가 궁금하거나 마음의 치료가 필요하신분들에게 추천드리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