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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밀레니엄 피플 저 자: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출판사: 현대문학
밸러드의 작품은 [콘크리트의 섬]으로 알게 되었다. 오래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디스토피아 시리즈 중 한 권 이었고 오늘 다른 도서인 [밀레니엄 피플]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하이에서 포로로 잡혀 생활을 했던 시기가 있었고 이 일로 인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전쟁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무겁고 메세지를 전달하는 의도가 많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 쉽게 읽을 책도 아니었고 책을 곱씹으며 읽어야 했었다.
소설은 주인공 데이비드 마컴이 혁명(?)의 흔적이 남긴 현장에서 자신이 이들과 함께 했던 증거를 없애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 장면에서 시작이 된다. 화재로 몇 몇 집들이 불타 재가 되었고 그곳으로 들어간 데이비드는 '누군가'를 그 현장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가 왜 이 현장에 오게 되었는지 그 시작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데이비드는 심리학자로 학회에 가려다 공항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나 출발을 할 수가 없었다. tv에서는 속보로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었는데 그는 화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전처인 '로라'를 보게 되었다. 이 모습이 도화선이 되었던 것일까?
아내 샐리는 로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데이비드를 설득해 히스로 공항으로 출발하게 되고 그곳에서 로라의 남편인 헨리를 만나게 되면서 데이비드는 누가, 왜, 공항을 공격했는지 '그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로잡혔다. 이것을 시작으로 데이비드는 시위가 일어나는 현장을 두 달이나 쫓아다니면서 작은 실마리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케이 라는 여인과 목사인 덱스터 , 그의 연인인 조앤 창을 알게 되었다. 케이는 혁명을 일으키는 주된 인물로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불만, 동물 보호 등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을 드러내어 시위에 참여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두려움이 없고, 과감하게 행동을 할 줄 아는 여성인데 왠지 케이를 보면 불편함이 느껴지며, 이 전체적인 시위를 주도하는 인물 '리처드 굴드' 박사의 존재는 데이비드에게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 데이비드의 자아를 흔드는 인물이다.
시위 현장이 서서히 거세지는 첼시마리나...신시대의 프롤레타리아라며 혁명을 이끄는 케이의 일행들. 오히려 이 행렬속으로 밀어넣은 샐리 그리고 전처의 남편이었던 헨리가 샐리의 애인이 되고 동시에, 데이비드가 시위에 합류하게 되면서 케이와 연인(?)이 되는 장면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저 밸러드가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이런 관계를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만 들었다. 또한, 앞서 적었듯이 시위를 이끄는 건 케이지만 케이를 조종하는 건 리처드였는데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무의미한 행동을 향한 갈망이 있으며 폭력적일 수록 더욱 좋다'는 말까지 한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던 리처드 였지만 시간이 갈 수록 그의 생각에 동요되는 데이비드.
시위가 격해지면서 첼시마리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집을 떠났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이들을 보면 케이 일행이 그토록 열망하던 혁명은 무엇이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님 처음부터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 일으켰던 반란이었는지...읽는 내내 복잡함이 떠나지 않았는데 이 책으로 토론을 하게 되면 많은 의견이 나올 거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겐 쉽지 않는 도서였지만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하는 도서가 된 [밀레니엄 피플] 그 두번째는 지금보다 좀 더 깊이 알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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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마컴은 아내와 함께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산업심리학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공항에 문제가 생겨서 비행기가 전부 지연됐다는 연락을 받고,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공항의 2번 터미널에 폭탄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화면에 떠오른 잔혹한 영상들 위로 세 명이 사망했고, 스물여섯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자막이 나온다. 그리고 폭발의 충격으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승객들과 경찰과 공항 보안 요원들 사이로 눈에 익은 한 여자가 보인다. 아무래도 그녀가 전부인인 로라같다고 생각한 그들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공항 근처의 병원으로 향한다. 결국 주동자는 물론이고 범행 성명조차 없는 이 테러로 로라는 죽음을 맞이하고, 데이비드는 죽음의 무작위성에 충격을 받는다.
과거에 노면전차 사고로 인해 다리가 불편한 상태로 살아야 하는 데이비드의 현재 부인 샐리는 그에게 로라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내, 범인을 알아내길 바란다. 그는 샐리를 위해서라도 공항 폭탄 테러의 진실을 알아내겠다고 생각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런던의 호화로운 동네인 첼시마리나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마침내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중산층의 계급투쟁, 혁명의 불길, 20세기를 전복시키려는 급진적인 사상 등이 주요 스토리의 소재이지만, 생각보다 어둡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뒤틀린 군상들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과격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허무하기도 하며,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하기도 하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제정신인 사람들이 얼마나 괴팍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살짝 정신이 나간 사람들 틈에서 길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며 읽어야 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헬로 아메리카>, <콘크리트의 섬>에 이은 'JGB 걸작선' 그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2009년 타계한 밸러드의 10주기를 기리며 2019년부터 시작되었다. 세계문학 단편선을 통해서만 만났던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만나고 싶다면 이 작품들을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다. 단편소설들에 비해 'JGB 걸작선'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은 좀 더 진전된 주제와 작가로서의 자신을 해방시킨 듯한 ‘밸러드풍Ballardian’ 장편소설들이다. <콜린스 영어사전>에 따르면 ‘밸러드풍’은 ‘J. G. 밸러드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서 묘사된 환경―특별히 디스토피아적인 현대성, 암울한 인공 경관, 기술적이고 사회적 혹은 환경적 발전의 심리적인 효과―과 유사하거나 연상시키는’이라고 한다. '지극히 밸러드스러운'이야기들을 일컫는 문학적 특수성이 형용사로 탄생해 사전에 등재되었을 정도이니 작가로서의 위상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J.G.밸러드는 단편집 후기에서 'SF에서 선호하는 만들어진 미래가 아니라, 다가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진짜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뢰가 가득 깔려서 전진하는 사람의 발목을 언제라도 물어뜯을 채비를 마친, 진입하기에 극도로 위험한 영역'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여타의 SF소설이나 디스토피아 문학들과는 다른 지점에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년 전에 쓰인 소설 속 런던의 모습 속에서 2022년 현재의 우리 모습이 엿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특히나 이 책에는 작가 겸 영화감독 이언 싱클레어의 <해제>와 밸러드의 촌철살인이 돋보이는 저널리스트 배너라 베넷과의 「인터뷰>, 작가 트래비스 엘버러가 정리한 <전기적 약력>, 잡지에 게재된 단편소설을 비롯해 밸러드의 저작을 총망라한 <작품 목록>을 수록하고 있어 풍성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21세기의 예언자’라 불리는 밸러드의 명성을 제대로 확인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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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세대 프롤레타리아 『밀레니엄 피플』중
2003년 출간된 『밀레니엄 피플』은 중산층 혁명을 탐색하는 심리학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겉으로 보아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첼시 마리나의 주민들이 어느 순간 각성해 자신들을 억압하는 사회 시스템에 저항한다. 안온한 하루하루에 만족했던 사람들에게 주위를 돌아보라고 삶의 실체에 눈뜨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 중산층의 일상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일깨우기 위해 혁명 주모자들은 '의미없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인공 데이비드 마컴은 전처의 갑작스런 사고 원인을 파헤치던 중에 중산층 혁명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혁명이 갈수록 폭력성을 더해가는 가운데 자신이 그들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밀레니엄 피플』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자 문제는 '중산층 혁명'이라는 개념이다. '혁명'은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을 말한다. 기존의 것을 무너뜨릴만큼 불합리한 무언가가 쌓여야 시작될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 '중산층'은 누릴만큼 누리는 계층을 의미한다. 아주 상층도 아니지만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할 정도도 아닌 전문직 종사들 말이다. 이들이 굳이 '혁명'을 일으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작가는 교육에 의해 순치된 중산층이 자신들의 상태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100년 전의 공장 노동자와 똑같"은 "노예"가 돼간다고 쓰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 필요성이 다할 때면 사회에서 밀려나고 재개발이 시작되면 주거지에서도 쫒겨날 상황이다. 번듯한 중산층의 모습은 겉치레일 뿐이다. 밸러드는 중산층의 허위와 함께 혁명의 당위를 드러내지만 혁명의 주체를 영웅화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고통은 진짜입니다. 많은 가구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케이나 리처드 굴드의 말을 듣고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들은 사립학교가 아이들을 세뇌해서 온순하게 사회에 적응하도록 만들고 소비 자본주의 사회라는 허상을 이끌어 가는 전문가로 개조하는 시설이라 여깁니다." (…) "명확한 악당은 없습니다. 제체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니까요. 우리가 품고 있는 시민의 책임감에 의존해서 말입니다. 그게 사라지면 사회는 무너지겠지요. 사실 벌써 붕괴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pp.171-172
불안한 현실을 일깨우기 위한 소소한 폭력 행동은 갈 수록 격해져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데 혁명의 주모자 리처드 굴드는 점점 더 폭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혁명 세력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고 격화돼 가던 혁명은 경찰의 대대적인 개입으로 진화된다. 소설의 결론은 혁명의 실패를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게 보인다. 애초에 혁명에 접근했던 이유와 별개로 마컴과 그의 아내 샐리가 첼시 마리나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특히 마컴은 자신의 상류층 생활의 토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샐리의 경우도 불합리한 사고의 희생자로 사는 삶을 이해하고 자립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가구는 모두 원래 위치에 있었고, 바뀐 것은 내 시점뿐이었다. 자유를 맛본 나는 세인트존스 우드의 삶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있는지, 얼마나 불합리하게 상류층의 냄새를 풍기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p.313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스티븐 덱스터 목사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부조리한 폭력에 믿음을 잃었던 그는 굴드의 폭력을 자신의 손으로 제압한 후 성직에 대한 "열정과 신실함"을 되찾는다. 비록 그의 행동은 종교적이지 못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막은 피해를 고려한다면 신도 용서하지 하리라는 믿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내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바이저를 들어 올렸던 그 짧은 순간의 스티븐 덱스터였다. 내가 본 얼굴에는 그를 처음 성직으로 이끈 열정과 신실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해자들의 채찍 아래서 잃어버렸고, 자신만의 가혹한 혜인을 가졌지만 자격을 박탈당한 상담사의 격려를 받으며 이 서부 런던의 주택단지에서 찾아 헤맨 그 열정과 신실함이. p.470
『밀레니엄 피플』의 중산층 혁명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어 보이면서도 모든 것이 변한 그야말로 '대혁명'이었다. 생각이 변한 이후엔 아무 것도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서모임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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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혔다...마지막 장을 덮고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들...중산층, 혁명, 테러, 무작위, 불특정, 샤워, 카푸치노, 계급, 거주지, 불안정, 종말, 소비, 문화, 허무주의 등등 수많은 단어들만 나열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불편한 심기에 가로막혀 정작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왜, 이 책은 나에게 이런 기분을 선사했던 것일까? 다른 사람의 애기를 읽으며 순간 내 모습이 연상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갑작스런 폭탄 테러에 왜곡된 언론 보도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브라이턴 록>에서 헤일의 타살을 자연사로 보도하는 매스컴의 민낯같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 히스로 공항을 방문했을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영국항공 기내 방송에서 착륙 직전에 보았던 I thought you were pretty good yourself! 의미는 서로가 존중하는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란 느낌이 들었다. ‘보라색’이 우아함과 품위 그리고 화려함속에 관용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다가왔다. 그런데, 소설 속 히스로 공항에서는 성격장애 굴드박사의 관종 이벤트로 무작위 사상자들이 발생한 공항2번 터미널 폭찬 테러를 세간의 안목을 집중 시킬 수 있는 가교 역할로서 언론이 동조한다. 중산층들의 속내가 여가 없이 드러나는 첼시마리나 사람들의 현실 문제에 교묘히 파고드는 특정 테러 세력들이 펼치는 혁명의 목소리는 ‘그 모든 것이... 20세기의 탓’(229p)이라고 치부한다. 대상이 불특정이란 사실만으로 외부에서 탓의 대상을 찾는 억지 논리와도 같았다. 그렇게 중산층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지도자에 의해 선도되어 자신들의 사회적 목소리를 높힌다. ”우리, 그대로 살게 해주세요...“ 21세기에 들어서며, 전 세계를 경악으로 몰고 간 테러하면 당연히 두 대의 항공기에 충돌된 9.11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 사건일 것이다. 테러의 참혹상과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와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흔적을 남겼던 시대적 비극을 런던 히스로공항으로 옮겨둔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생한 피해자 중에 데이비드에게는 이혼한 ‘로라’가 포함된다. 작가는 이미 새 보금자리를 찾아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작가 밸러드는 ‘중간관리직의 정신건강문제’ 전문 심리학자 데이비드가 TV 속보방송 중 알게 된 ‘로라의 사건’을 풀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이 주변 세계에 빠져드는 심리묘사로 독자를 유도한다. 그는 첼시마리나라는 가상공간(실제 첼시지역에는 정박지(마리나)가 없다)을 설정하여 그곳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피할 수 없는 국가 안에서 위치를 해부한다. 소설<밀레니엄 피플>은 작가의 허구 세계 안에 실제로 작가의 모습이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반영되어 보인다. 작가 밸러드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영국인으로서 중국 상하이 치외법권 지역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누리는 삶’을 살았었던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치외법권의 혁명, 의미가 없는 테러’가 이 곳 ‘첼시미리나의 중산층 혁명’으로 연결되어 외적으로 나타나는 ’주차문제, 관리비, 거주지에서 밀려 날 불확실한 미래, 계급구조가 빚어낸 부동산 문제‘들이 ’조명이 훤히 밝혀져 있지만 내면에 어둠이 깃들어 있는 거지요.(490p)‘처럼 보인다. 셰퍼턴(M25 국도 근교의 영국 서리주 셰퍼던 스튜디오(영상제작소: 불필요한 접촉을 배제하고 수도사처럼 텍스트를 생산해 내기 위한 전략적 후퇴...490p)의 현자가 그려낼 수 있는 영상 속 세상처럼 밸러드는 소설<헬로 아메리카>와 <밀레니엄 피플>는 사회문제에 도발적인 시선으로 그만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21세기의 우리 시각에 비친 그가 만들어낸 세계관을 2022년 독자들에게 친숙한 것은 그의 미래 예지적이 관점이 돋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요?" "당신과 저 말입니다." 굴드는 이제 자신이 돌보는 죽어 가는 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속삭이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는 내 팔을 붙들고 나를 진정시켰다.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해요. 당신이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란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실망시켜요? 리처드, 당신은 제 아내를 죽였어요.” “이해하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 성향을 거스르는 일이니까요. 적어도 아직은......”(427p) ’전 아내 로라의 죽음(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히스로 공항 폭발사고)의 원인(굴드박사&폭탄제조 베라)을 알면서도 지켜봤던 정직한 성향의 데이비드가 보여 준 모습은 자신의 신념이나 주어진 환경에 지배적으로 순응하는 모습이 중산층 지식인이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를 보여 주는 듯하다. 혁명의 행동들은 지지자들의 공감을 얻어 나가는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가 테러 대상이라는 발상은 원론적인 오류를 품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소설 속에서 소신을 접고 적당한 타협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첼시 마리나를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혁명가로서 데이비드가 결국 ‘비밀요원’이라는 신분으로 다시 첼시마리나에서 샐리를 만나는 장면으로 연결되어 혁명 안에서 소소한 개인주의가 틈을 내듯, 세상은 ’시간이 파멸과 구원이라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중산층의 목소리가 사회에 얼마나 반영이 되었을까? 데이비드의 목소리는? 상처를 내야 조금 귀를 기울어 주는 공권력의 모습을 보며 ’평화로운 항쟁‘을 바라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다시 시작하는 구원의 메시지처럼 굳건한 내일이 기다려 줄 것이다. 이게 바로 카오스에서 유니버스로 혼란을 겪고 일어서는 질서가 된다는 자연의 이치가 아닐는지. 대중매체에 매몰되며 어수선한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라는 경고문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 지역을 역발상적으로 묘사한 첼시마리나와 트위크넘 사람들의 차이를 보며, ‘중산층’ 이란 정의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기준이 보편적이다. 반면에 나라마다 상이한 문화 차이로 공동체 안에서 개인적인 가치발굴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어느 부류의 계층인가?” “우리는 신시대의 프롤레타리아” 중산층의 혁명과 목적 없는 테러의 시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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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수십 년을 내가 뛰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러닝머신의 벨트 위에 올라탄 것처럼 살아왔다. 중산층이라는 월수입 기준을 한참이나 미달한 채로. 일자리를 잃었다가는 존재 자체가 휘청거릴 것 같은 불안감을 안고. 그러다 급격한 주택가격 상승세를 타고 상상도 못한 실거래가를 보이는 아파트에서 언제든 따뜻한 온수로 “샤워”를 하고 중산층이라는 풍선 열기구를 탄 것처럼 기분을 내며 “라지 사이즈 카푸치노”를 선선히 주문한다. 저자는 ‘이 정도면 나도 중산층이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혁명을 선동한다. 이 자본주의 체제가 준 공평무사함에 “순종적이고 도덕적이고 사회의 규율을 지키는 종족”으로 남지 말라고 한다. “정장을 걸친 프롤레타리아”, “봉급을 받는 노예” 라는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사기극의 익살꾼이 되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문을 잠그도록 도왔으니까요. 우리는 과거 세대의 수감자들이 지은 유화적인 정권의 교도소에 살고 있는 겁니다. 때론 탈옥을 할 필요가 있지요.....”(229쪽)
“....이곳 사람들은 중산층의 꿈이라는 강렬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어요. 삶의 목적이 그거죠. 자유주의적 교육, 시민의 도리, 법규 준수 따위요. 자기네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사로잡혀서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거예요. .... 이곳 사람들은 놀라우리만큼 강요된 삶을 살아요. 가능성으로 가득한 충만한 삶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죠. 결국 사회구조가 만든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는 거예요. ....”(140~141쪽)
작품에서는 중산층 혁명이 여러 번에 걸쳐 애써 “무의미한 테러 행위”나 “동기 없는 폭력”이라고 웅변하지만 저자는 샤워 후의 나른함, 안이함에 “발연탄”을 던지고 있다. 그 중산층 혁명이 성공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투쟁의 경험은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고 언제든 도발의 유전자를 간직하게 하기 때문이다. 말갛고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에 지루해진 아이는 물수재비를 떠 물결을 일으키던 추억을 더 오래 기억하는 법이니까.
# 이 글은 현대 문학 출판사의 지원으로 독서한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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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함에 질린 중산층의 혁명"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혁명이라는 단어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즉, 가진 것이라곤 자식밖에 없다는 빈민층의 울분,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극단적 자기 표현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문구이다. "정치적 통제수단으로 이용되는 중산층을 억제해서 얌전히 굴종시키는(p.140)"체제에 중산층의 꿈이라는 허울을 쓰고 그들은 "강열한 환상"에 사로 잡혀있다는 것이다. 몇년전에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가 생각나는 내용이다. 그러나 유쾌하게 읽었던 <남쪽으로 튀어>와 다르게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음울한 느낌을 준다. 히스로 공항에서의 폭발로 전처 로라를 잃는 데이비드 마컴은 무작위적인 폭발로 인한 로라의 죽음을 파헤치게 위해 일련의 시위에 가담하고, 그 과정에서 소설 속 가상의 공간 첼시마리나의 중산층의 반란과 혁명에 관여하게 된다. "중산층은 신시대의 프롤레타리아(p.106)"라고 규정하는 이 혁명의 동지들은 국가를 위해 이용되는 시민으로의 역할을 거부한다. 단지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기 위해 테러의 중심부 첼시마리나로 잠입한 마컴은 그들을 이끄는 리처드 굴드, 케이 처칠등을 만나면서 점점 그들의 사상에 이끌리게 된다. 반란의 무리를 이끄는 리처드 굴드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작위적인 테러에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중산층이 반란의 기치로 내세우는 명분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건 이 책이 쓰여진 2003년의 런던과 2022년의 서울의 사회현상들이 묘하게 닮아 있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곳 이웃들은 신시대의 빈곤 계층이에요.(중략) 죄다 중간 관리직, 저널리스트, 케이 같은 강사, 대형 법인에서 일하는 건축가예요. 전문직이라는 군대의 가난하고 비참한 보병인 거죠." "충분히 윤택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거든요. 급여는 고정되어 있죠. 조기 퇴직의 위협도 등장했고요. 일단 마흔 살만 돼도 막 나온 졸업장을 손에 쥐고 눈을 반짝이는 졸업생을 고용하는 쪽이 훨씬 싸게 먹히니까요."(중략) "이 동네는 똥통이라고요. 보수정비는 거의 하지도 않는데 관리비는 끝없이 오르기만 하죠. 이 아파트는 우리 아버지가 평생 벌어들인 것보다 더 비싸게 먹히죠." (중략) "이사가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갈 수가 없으니까요."(중략)"세상에,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첼시마리나에 처박았다고요. 다들 엄청난 주택 융자금에 묶여 있어요. 학교 수업료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은행은 사람들 목을 부러트리고 있죠. 게다가 가면 또 어디로 가겠어요? 서리의 숲속으로 들어갈까요? 통근에 두 시간이 걸리는 레딩이나 길퍼드로 가라는 건가요?" (p.128~131) 그들은 "BBC는 국가의 지배하는 문화를 규정했고 중산층은 그 속임수에 넘어가서 절제와 시민 도덕이 전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p.246)"이라는 주문에 세뇌당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도 권력을 지닌 소수의 세력들이 다수의 민중을 손쉽게 지배하려는 이데올로기이지 않은가. "자연의 법칙이 중산층을 순종적이고 도덕적이고 사회의 규율을 지키는 종족으로 만들었다.(p478)" 하지만 혁명은 그 자연의 법칙이라는 쇠사슬을 끊고 한걸음 내딛는 것으로 시작하는 법이다. 책의 말미를 읽어갈 무렵, 이를 거부하는 첼시마리나의 주민들을 어느새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첼시마리나의 주민들은 다시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아예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첼시마리나의 저항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그 무의미성이야말로 애초에 반란을 시작할 가장 정당한 이유였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걸까? 주민들은 그들의 반란이 국립영화극장 방화처럼 여러면에서 무의미한 테러 행위나 다름없음을 알았다. 도주를 중단하고 단지로 돌아오는 행위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혁명이 실재로 무의미했으며, 터무니없는 희생을 치르고 보잘 것 없는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웅적인 실패는 성공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 첼시마리나는 미래의 사회 저항운동의, 무의한 무력봉기와 실패가 예정된 혁명의, 동기 없는 폭력과 터무니없는 시위의 청사진이 될 것이다. 리처드 굴드가 언젠가 말했듯이, 폭력은 항상 불필요한 것이어야 하며, 제대로 된 혁명이라면 항상 목표를 이루지 못해야 한다.(p.479)" 밸러드가 그리고 있는 밀레니엄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이해하기 것이 이 책의 독서를 힘들게 한다면, 재미있는 SF소설로 읽어보시길. "테러범의 폭탄은 사람을 죽일 뿐 아니라 시공간을 걱렬하게 비틀어 균열을 만들고 세계를 하나로 붙들어 두던 논리를 부수어 버린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상상력은 2022년 서울을 배경으로 중산층의 반란이 일어나는 또다른 세계 속 서울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현대문학 #도서지원 #내생각대로작성한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