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더 테레사 김정희 더이룸출판사/2022.2.10. sanbaram
“알바니아인으로 태어나서 인도인으로 죽은 사람, 마더 테레사. 그는 18세에 집을 떠나 70년을 수녀로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고, 그 70년 중의 50년을 가난한 이들 곁에서 살았다. 50년간을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자기의 모든 시간과 정성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p.203)”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일생을 산 사람의 자서전이 <마더 테레사>다. 행복과 시련의 어린 시절, 첫 서원과 종신서원의 수녀생활, 오직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 소외된 모든 이들의 어머니, 등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더 테레사의 본명은 아그네스 곤자 보야주. 마케도니아의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수녀가 되어 인도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버려진 아이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며 나병환자를 위한 마을을 건설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자 김정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과를 졸업했다. 제2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작고 가벼운 우울>이 당선되었으며 펴낸 책으로는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등이 있다.
“마더 테레사는 1910년 8월 26일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플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p.13)” 부모는 알바니아계 사람들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들은 신앙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했다. 아그네스가 9살 때 아버지가 45세로 죽고, 동업자가 회사 돈을 빼가는 바람에 가난과 싸워야 했다. 어머니는 충격을 털고 일어나 사업을 하면서 세 아이를 키웠다. 18살이 된 아그네스는 신부와 상의 한 후 기도로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께 수녀가 되어 인도로 떠나 힘들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밤새 기도를 한 어머니는 허락해 주셨다. 오빠가 수녀 되는 것을 말렸지만 아그네스의 마음은 확고했다.
1931년 5월 25일 아그네스는 첫 서원을 하며 수도명으로 ‘테레사’를 받게 되었다. 소화 테레사는 프랑스 사람으로 24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수녀였다. 소화 테레사는 매일 일기를 썼는데, 이 일기는 그가 죽은 후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아그네스는 소화 테레사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고, 테레사라는 이름을 받기로 했다. 37일을 여행해 인도에 도착하여 2년간의 수녀교육을 마치고 캘커타의 수도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다. 1937년 종신서원을 하게 되었다. 종신서원은 수도자가 평생을 하느님께 바치고 죽는 날까지 수도자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서약하는, 수도자에게는 가장 뜻 깊은 의식이었다. 그리고 27세의 나이로 성마리아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러나 거리의 가난한 이들을 보고는 거리로 나가길 원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열정적인 청원으로 1년간 이라는 조건을 단 허락을 받게 된다.
거리로 나온 테레사가 첫 번째 한 일은 지역주민을 설득해 5명의 아이를 모아 학교를 시작한 것이다. 점차 학생들 수가 늘어 힘들어지자 후원하는 사람이 생겼고, 봉사하려는 교사들이 힘을 보탰다. 허름한 사리를 입고 탁발을 하고, 여러 곳에 편지를 썼다. 빈민가의 테레사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로레토 수도회 사람들이나 옛 제자들이 모티즈힐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49년 테레사는 활동의 발판이 될 3층짜리 집을 기증받게 되었다. 그곳에 진료소와 학교를 열었다. 어느 날 스바니시 라는 제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부유한 집에서 자란 소녀였지만 테레사 수녀에게 감화를 받아 수녀가 되었다. 이렇게 찾아온 수녀가 열두 명이 함께 살게 되었다. 판 엑셈 신부는 페리에 대주교에게 테레사와 12명 수녀들의 활동을 보고했다. 대주교는 테레사의 모임을 하나의 수녀회로서 인정해 주었다. “이곳의 수녀들은 청빈, 순결, 순명 이외에 네 번째 서원을 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한다는 서원이었다.(p.107)” 이 수녀회의 이름은 ‘사랑의 선교회’라고 정해졌다.
“1952년 마더 테레사는 캘커타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초의 집을 열었다. 이 집의 이름을 ‘니르말 흐리다이’라고 지었는데, 힌디어로 ‘깨끗한 마음의 집’이라는 뜻이었다.(p.112)”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거의 힌두교도들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의 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가난한 이들의 임종의 지키기 위한 집이었다. 1953년에 교구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3층짜리 집을 구했다. ‘마더 하우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사랑의 선교회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1955년 ‘마더 하우스’근처에는 새로운 집이 열렸다. 이름은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집’이라는 뜻의 힌디어 ‘니르말라 시슈 브하반’이라고 지었다. 병들고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는 지이었다.
“수녀님은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대중을 돕기 위해 일한 일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p.140) 사랑은 남는 것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전부를 주는 것이다. 고통이 따를 때까지 자기를 내주는 것이다. 등잔이 자기 심지를 태워 밝은 등불을 밝히는 것처럼, 여러분도 상처받을 때까지 사랑하라고 테레사는 말했다. 1954년 ‘마더 테레사 협력자 국제협회’가 생겼고, 1963년 ‘사랑의 선교회’와 함께 활동하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환자들을 위한 ‘평화의 마을’ 건립에 나섰다. ‘평화의 마을’은 힌디어로 ‘산티 나가르’라고 말했다. 나환자들을 위한 마을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전 세계에서 기부금이 도착했다.
1965년 7월, 남미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지역에 ‘사랑의 선교회’ 수도회가 세워졌다. 1970년부터 시작된 집짓기는 훗날 95개 나라의 200개가 넘는 도시로 확대되었다. 마더 테레사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1975년 영국의 제약회사로부터 기증받은 건물에 ‘프렘 단’이라는 노인들을 위한 집을 지었다. 프렘 단은 ‘사랑의 선물’이란 뜻이었다. 일종의 양로원이었다. “1979년 12월 10일, 69세가 되던 그해 마더 테레사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p.186)” 마더 테레사는 주요한 국제회의에 나가 가난한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고, 각국의 정상들과 만나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흰 사리를 입은 수녀를 언론을 통해 언제든지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더 테레사는 한국에도 세 차례 방문했다. 1981년, 1982년, 1985년의 일이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면담을 했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의 빈민들과 고아들을 직접 만났다. 그 결과 한국에 ‘사랑의 선교회’가 세워졌다. 한국에서도 마더 테레사의 사리를 입은 수녀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7년 9월 5일 마더 테레사는 87세의 일기로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심장병에 말라리아와 폐렴까지 겹쳤던 것이다.(p.199)” 150cm의 작은 체구를 가지고 인류의 가난한 사람을 품는데 일생을 바친 마터 테레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사랑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함께 봉사하는 삶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마더 테레사 김정희 더이룸출판사/2022.2.10.
“알바니아인으로 태어나서 인도인으로 죽은 사람, 마더 테레사. 그는 18세에 집을 떠나 70년을 수녀로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고, 그 70년 중의 50년을 가난한 이들 곁에서 살았다. 50년간을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자기의 모든 시간과 정성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p.203)”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일생을 산 사람의 자서전이 <마더 테레사>다. 행복과 시련의 어린 시절, 첫 서원과 종신서원의 수녀생활, 오직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 소외된 모든 이들의 어머니, 등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더 테레사의 본명은 아그네스 곤자 보야주. 마케도니아의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수녀가 되어 인도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버려진 아이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며 나병환자를 위한 마을을 건설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자 김정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과를 졸업했다. 제2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작고 가벼운 우울>이 당선되었으며 펴낸 책으로는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등이 있다.
“마더 테레사는 1910년 8월 26일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플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p.13)” 부모는 알바니아계 사람들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들은 신앙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했다. 아그네스가 9살 때 아버지가 45세로 죽고, 동업자가 회사 돈을 빼가는 바람에 가난과 싸워야 했다. 어머니는 충격을 털고 일어나 사업을 하면서 세 아이를 키웠다. 18살이 된 아그네스는 신부와 상의 한 후 기도로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께 수녀가 되어 인도로 떠나 힘들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밤새 기도를 한 어머니는 허락해 주셨다. 오빠가 수녀 되는 것을 말렸지만 아그네스의 마음은 확고했다.
1931년 5월 25일 아그네스는 첫 서원을 하며 수도명으로 ‘테레사’를 받게 되었다. 소화 테레사는 프랑스 사람으로 24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수녀였다. 소화 테레사는 매일 일기를 썼는데, 이 일기는 그가 죽은 후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아그네스는 소화 테레사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고, 테레사라는 이름을 받기로 했다. 37일을 여행해 인도에 도착하여 2년간의 수녀교육을 마치고 캘커타의 수도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다. 1937년 종신서원을 하게 되었다. 종신서원은 수도자가 평생을 하느님께 바치고 죽는 날까지 수도자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서약하는, 수도자에게는 가장 뜻 깊은 의식이었다. 그리고 27세의 나이로 성마리아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러나 거리의 가난한 이들을 보고는 거리로 나가길 원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열정적인 청원으로 1년간 이라는 조건을 단 허락을 받게 된다.
거리로 나온 테레사가 첫 번째 한 일은 지역주민을 설득해 5명의 아이를 모아 학교를 시작한 것이다. 점차 학생들 수가 늘어 힘들어지자 후원하는 사람이 생겼고, 봉사하려는 교사들이 힘을 보탰다. 허름한 사리를 입고 탁발을 하고, 여러 곳에 편지를 썼다. 빈민가의 테레사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로레토 수도회 사람들이나 옛 제자들이 모티즈힐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49년 테레사는 활동의 발판이 될 3층짜리 집을 기증받게 되었다. 그곳에 진료소와 학교를 열었다. 어느 날 스바니시 라는 제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부유한 집에서 자란 소녀였지만 테레사 수녀에게 감화를 받아 수녀가 되었다. 이렇게 찾아온 수녀가 열두 명이 함께 살게 되었다. 판 엑셈 신부는 페리에 대주교에게 테레사와 12명 수녀들의 활동을 보고했다. 대주교는 테레사의 모임을 하나의 수녀회로서 인정해 주었다. “이곳의 수녀들은 청빈, 순결, 순명 이외에 네 번째 서원을 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한다는 서원이었다.(p.107)” 이 수녀회의 이름은 ‘사랑의 선교회’라고 정해졌다.
“1952년 마더 테레사는 캘커타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초의 집을 열었다. 이 집의 이름을 ‘니르말 흐리다이’라고 지었는데, 힌디어로 ‘깨끗한 마음의 집’이라는 뜻이었다.(p.112)”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거의 힌두교도들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의 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가난한 이들의 임종의 지키기 위한 집이었다. 1953년에 교구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3층짜리 집을 구했다. ‘마더 하우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사랑의 선교회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1955년 ‘마더 하우스’근처에는 새로운 집이 열렸다. 이름은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집’이라는 뜻의 힌디어 ‘니르말라 시슈 브하반’이라고 지었다. 병들고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는 지이었다.
|
|
마음의 정화를 위해 인문학 서적 그중 누구나 알고 있는 20세기 성녀 테레사 평전을 선택하였다. 역시 나쁜 생각은 전혀 안 드는 감사의 책이었다.
단 이 책은 종교 색이 너무 강해서~~ 예수님에 반감이 있으신 분들은. 이 책을 보지 말고 다른 저자의 책을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평전이 아니라.. 종교 사상으로 얼룩진 일대기로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책은 테레사의 어린 시절부터 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초기에 험난했던 과정들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평전이 이어져 있습니다. 뻔한 내용 일수 있으나
사실 우리의 인생과 빗대어 적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인도에 수없이 많은 가난한 자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한 사람 한 사람 도와줘야 무슨 소용이 있냐고~
지금 돈도 없이 성공의 길로 걷지도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하루하루 책 읽고 아침에 확언을 한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냐? 는 것이죠.
하지만 달라집니다. 테레사 수녀의 헌신이 인도의 빈민가 거리를 바꾸고 세계의 소외된 자들의 인생을 바꾸면서 처음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저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처음엔 보잘 거 없고 무엇 하나 바뀌는 것이 없지만. 하루 하루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게 해나가면.
그리고 그 방법이 이제까지의 롤 모델들의 방법이라면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가 목표했던 그 이상의 것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테레사가 빈민의 아이들을 처음 가르칠 때 했던 말이 많은 영감을 줍니다.
자기개발서의 수없이 나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단순히 기도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기도하는 행동가였습니다. 기도로만 하늘에서 뚝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듣고 마음만 먹는 사람이랑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행동으로 옮길때 그에따른 변화가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기 질투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자비를 팔다]라는 책에선 테레사를 상인으로 묘사합니다. 단지 정치와 세상 물정에 너무 무지하였던 테레사의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테레사 수녀를 이용 한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아 뭐라고 이야기하긴 애매하지만. 비판하기전에 그럼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라고 묻고 싶습니다.
비판하는 동안 테레사 수녀는 무엇이건 간에 가난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앉아서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니면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행동하는 사람이 될지. 그에 따른 미래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꽃봉오리 안에 인도를 풀고 신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기만 하다. 마더 테레사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나중에는 평생 인도인이 되어 인도의 가장 어려운 빈민들을 위해 헌신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40여년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신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가 대표적이다. 어렸을 때 이름이 아그네스 곤자(꽃봉오리)였던 마가렛 수녀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나님, 저는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삶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보살피는 데 헌신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일한 능력을 주시고 저를 하느님의 도구로 써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린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네 갈 길을 가거라, 너의 손을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과 함께 끝까지 걸어가거라."
* 부르심 속의 부름심 전쟁과 배고픔의 땅 인도에 도착해 종신서원을 한 테레사 수녀는 수도원 원장이 되어 최선을 다하지만 그건 진정 수녀님이 원하는 삶아 아니었다. "신부님,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세 그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8월, 드디어 교황청으로부터 허가서가 나왔다, '수도원 외 임시거주 허가증'
* 마더 테레사 마더 데레사는 하수구에서 한 사람을 구해 냈다. 검게 말라붙은 그의 몸에는 벌레가 우굴거리고 있었다. 기운이 없어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분명 숨을 내쉬고 있었다. 마더 테레사와 수녀들은 벌레를 떨어 내고 그의 몸을 깨끗하게 씻겨 주었다. 젊은 수녀들도 벌레가 징그럽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세 시간이니 걸리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듯 최선을 다했다.
"수녀님 저는 짐승과 다를 것 없이 살아왔습니다. 짐심으로 살다가 천사처럼 죽게 되다니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나는 목이 마르다.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과 동정을 다하여 음료수를 주는 것은 목이 마른 하느님께 음료수를 드리는 것과 같다.
"나는 한순간도 기도를 떠나 살 수 없어요. 기도가 없다면 나와 수녀들은 힘든 일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사랑은 바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
"병자를 심판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병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돕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했던 마더 테레사 수녀님, 그리고 지금도 그 유지를 받들고 있는 사랑의 수도회에 하느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기원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