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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요코가 사랑한 오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더 그리웠을 그녀의 오빠. 사랑하는 오빠와의 추억이 담긴 동화 다섯 편을 엮어 만든 <내가 여동생이었을 때>는 절판되었던 <열 한 살 우리 오빠>가 복간되어 나온 책이다. 홍역, 여우, 관람차, 사슴, 기차의 제목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노요코와 오빠는 매사에 죽이 척척 잘 맞는 남매였다. 그런 오빠가 세상을 떠난 뒤, 오빠와 함께 한 유년시절을 품고 살아 온 요코의 가슴 속엔 아직도 열 두 살 오빠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오빠와 다시 한 번 놀고 싶어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다섯편의 이야기가 모두 상상과 현실을 넘나 들며 펼쳐진다. 오빠와 요코가 어린 시절에 어떻게 놀았는지 책을 읽다 보면 보인다. 요코는 노는 방법을 오빠에게서 배웠다. 상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놀이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남매의 모습이 살짝 기이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엄마의 여우 목도리에 오빠의 코피가 묻은 것이 남매에겐 재미있는 사냥놀이가 되고, 오빠는 개 페스와 함께 언덕 위에서 관람차를 타기도 하며, 목욕하던 요코는 물 속으로 들어가 달리는 기차를 만들어 내고 오빠와 함께 기차를 타기도 한다. 이렇듯 이야기속 두 남매는 현실의 순간에서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 그 속에서 둘만의 놀이를 만들어 낸다. 요코에겐 무엇을 하든지 오빠와 함께 했던 시간이 소중했던 것 같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노요코는 독자들을 각자의 어린 시절로 데려다 준다. 형제 자매들과 함께, 또 친구들과 함께 햇볕에 그을려 새까만 피부가 될 때까지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놀았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소꿉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그리고 때로는 돌아가며 지어낸 옛날 이야기를 들려줬던 그 시절로 돌아가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노요코는 이제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빠를 만났겠다. 오빠와 함께 귀에 돋아난 사슴 뿔을 보고 깔깔거릴까 아니면 벌거숭이가 된 채로 기차를 타고 있을까 무엇을 하든 오빠와 함께라면 요코는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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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로 태어난 저는 동생들이 무척 부러울 때가 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동생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들을 보는 게 무척 흥미로운 일이랍니다. 여기 열한 살 오빠를 영원히 마음 속에 담고 살아가는 여동생의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또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죠. 게다가 작가 사노 요코가 바로 그 여동생이라니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네요. 남매가 함께한 그 소중한 날들의 기록이 별처럼 빛나는 책, <내가 여동생이었을 때>
'영원히 열한 살인 오빠를 위해' 할머니가 된 여동생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오빠는 여전히 해맑게 웃는 열한 살 얼굴 그대로입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늘 여동생의 마음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오빠. 생이 온통 반짝이는 호기심과 상상으로 충만하던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시간은 짧을지언정 그 밀도만큼은 어마어마했겠지요.
그 빛나는 어린시절의 두 아이가 쌓아올린 상상의 세계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답니다. 둘 중 홍역에 걸린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 한 몸 같았던 병원에서의 일을 기록한 '홍역',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다가 자신들의 상상으로 끌어와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한 편의 멋진 연극을 본 듯한 '여우'. 자신만의 상상의 친구가 있는 오빠의 상상을 질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다 결국 인정해주는 '관람차', 그만 꼴깍 삼켜버린 감씨가 몸 속에서 자라 뿔을 갖게 된 두 아이의 환상적인 꿈 이야기 '사슴', 오빠랑 둘이 목욕할 때마다 함께 하는 기차 놀이를 오빠가 떠난 후 혼자 하는 쓸쓸하면서도 그렇게 단단한 하나가 되어가는 여동생의 마음이 코 끝을 찡하게 하는 '기차'까지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를 여동생인 사노 요코 작가의 입장에서 서술해 놓았는데요. 이야기 하나 하나에서 펼쳐 보여주는 아이들의 상상도 놀랍지만 마치 서로 한 몸인 것처럼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 더 놀라웠어요.
저는 오빠가 없지만 오빠 껌딱지라는 말이 정말 딱 그대로인 저희 집 둘째를 보면 이야깃속 남매가 어떠했을지 눈 앞에 보이는 것 같네요. 오빠를 따라다니며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흉내내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그 특별하고 소중한 이 시간들을 이제는 어른이 된 여동생이 추억해 가는 <내가 여동생이었을 때> 들을 수만 있다면 나중에 제 아이들이 기억하는 둘만의 놀이와 상상의 시간들을 꼭 듣고 싶습니다. 책 속의 두 남매처럼 이렇게 기발하고 사랑스럽겠지요. ^^
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제 어린시절을 떠올려 보게도 되는데요. 동생들과 했던 놀이 그리고 나눴던 상상의 이야기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며 내게도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음에 흥분이 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네요. 동생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보고나니 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기더군요. 우리가 서로의 어린시절에 존재했음을, 그 일부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고맙다고요. 제 품 안의 오빠인 1호와 여동생인 2호도 서로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가 오기를 바라봅니다. 네가 있어서 즐거웠다고, 외롭지 않았다고 말이에요. 언젠가 훗날 서로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서로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는 두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게 그저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엄마도 모르는 둘만의 서로가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데요. 이 책의 남매를 보며 혼자만의 상상도 즐겁지만 둘의 상상이 더해진 세계는 더 크고 단단한 힘을 가진 게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그런 둘만의 상상을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그때를 추억하는 애틋한 그림움이 이야기가 되어 가득 밀려옵니다. 그 이야기의 물결에 마음을 살짝 담가 보세요. 마음을 간지럽히는 상상의 출렁임에 미소짓게 되실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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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내가 여동생이었을 때>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제목이 왜 '여동생이었을 때' 일까 궁금했다. 여동생이었을 때? 그럼 지금은 여동생이 아니라는 건가?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그런데 책을 보고 알게 됐다. 아...그렇구나... 그랬구나... "오빠와 함께한 나의 유년 시절, 그 추억을 나눌 오빠가 세상에 없어요. 그래서 나의 어린 오빠는 언제까지나 어린 채로 내 안에 살아 있어요. 나는 한 번 더 오빠와 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도 몰라요. 어린 나의 오빠와 함께 놀아 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노 요코 . 어린 시절 오빠와 놀던 사노 요코 작가님의 이야기가 담겨져있다.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작가님이 오빠와 어떤 놀이를 하며 놀았을지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피가 묻은 여우털 목도리로부터 사냥 놀이가 시작되고, 꿀꺽 삼킨 감 씨로 인해 사슴이 되기도 하고... 현실인 듯 상상인 듯 그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 안에서 무엇이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님이 그려낸 그 순간에 빠져들어보는건 어떨까? 오빠와 함께한 순간들을 기억하며 추억하고 그 안에 담긴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그리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동생과의 어린시절 추억들이 떠오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을 데리러 매일 유치원에 갔었다. 동생을 데리고 오면서 추운 겨울엔 자판기에서 코코아도 뽑아 먹고, 슈퍼에 들러 간식도 사고, 과자를 사오면 집에서 같이 소꿉놀이도 했었다. 그때 우리도 수없이 많은 상상을 하며 현실과 상상을 오갔던 기억이 난다. 몸은 집에 있지만 도시락을 싸서 넓은 잔디밭으로 소풍을 떠나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난 맘먹으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형제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어쩜 저런 생각을 하는지 감탄할 때가 있다. 자기들만의 놀이를 만들어 기가 막히게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아이들이 힘든 순간에 꺼내보면 힘이 되어줄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하길 바라본다. -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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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이 차이가 적게 나는 형제자매는 마치 친구와도 같다. 항상 같이 있고, 놀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작가도 어린 시절 3살 차이 나는 오빠가 유일한 놀이상대였고, 그 후 동생들이 태어나도 오빠랑만 놀았다고 한다.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는 것 같은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그런지 현실과 상상이 섞여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첫 번째 이야기 홍역에서는 오빠가 홍역에 걸렸던 것인지 내가 홍역에 걸렸던 것인지 알 수 없단 이야기에서 작가가 오빠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몰래 엄마의 여우목도리를 가지고 놀다 그것으로 오빠의 코피를 닦아주었는데 여우가 그 피를 핥아 먹는다던지, 오빠의 강아지가 사람처럼 옷을 입는다던지 추억은 상상과 결합되어 어디까지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꿈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오빠의 강아지가 입었던 옷이 검은 옷이라 강아지가 저승사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형제가 세상을 떠난 느낌은 어떨까? 작가의 오빠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데 그 때 당시 작가의 나이가 우리 아이의 나이와 같을 때여서 왠지 더 안쓰러웠다. 책에는 오빠가 세상을 떠난 후 오빠를 상상에서 만나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오빠를 잃은 슬픔을 담담히 표현한 것 같다. 이 책은 작가의 오빠를 추억하며 오빠를 위해 쓴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유당 #내가여동생이었울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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