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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이상 슬프지 않다는 안나와 아직 그녀를 위해 해줄게 많은 단한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끛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필연적으로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진실에서 말이다. 어찌보면 요즘은 누가 먼저랄것없이 세상을 등지고 떠난다. 그만큼 종잡을수가 없다는 말하고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 이두사람의 이야기는 지금 살고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라 한편으로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이롱시한부, 아프지않다고, 백살까지 살거라고, 누가 이기나 보자는 악바리 안나. 죽음을 이길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런안나에게 단한은 아픈 손가락이다. 하지만 두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얼마나 두사람이 사랑하는지 알수가 있다 안나는 더이상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갈때가 되어서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마지막삶은 피하지 못한다, 아니 피하기보다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고 해야할까?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말이다. 하지만 남겨질 사람과 이제 떠나야만 사람. 남겨질 사람보다 떠나야만 하는 사람이 더 걱정을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다 언젠가 남겨질 사람에게 전하는 안나는 조목조목 설명까지 덧붙인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자신의 삶을 살아라고 한다.그러면서 전신만신에 신경쓰지 말라고 하신다. 사람은 겪어봐야 알고 물은 건너봐야안다고 기가막히게 정확한 말씀이다. 지금 다 겪고 있고 삶의 마지막을 건너중이라고 말이다. 이건 다른게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이다 지나고 다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에 말이다 지나고나면 소용이 없는건 사실이다, 그래서 살아있을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도 잘살고 내일도 잘살아야한다, 아니 잘 살아내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버틴다는거 결코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다 누군가에는 마지막의 아침이고 누군가에는 이제 시작하는 아침을 맞이한다. 시작과 마지막은 이렇게 만난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나는 적당히 게을러야한다고 한다.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면 안된다는 말이다. 부지런한것만이 좋다고는 말할수 없는 까닭이다. 안나가 던져주는 삶의 지혜는 삶을 살아가는데 방법이 너무나 무궁무진 하다는 것을 느끼게된다 해야 할일을 아는것,내가 해야 할일을 알고 제대로 실천 하는것, 해야 할일을 잊지 않는다는것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간다는 일이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그 당연한 것이 너무나 간과되고 있는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할것 같다. 안나와 단한의 주고 받는 삶의 추억과 무던하게 던지는 삶의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분명해 보인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았다고 그리고 하고 싶은거 하고 살아라가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안나의 바램대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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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책 중에서 오래전 부터 읽고 싶었는데, 이 책 저 책에 밀려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에세이를 이제서야 읽어보다니.. 저자가 글을 참 잘 쓰신다. 시한부 인생을 사시는 외할머니와의 아름다운 추억에 저자의 진솔하고 감칠맛 나는 문장들이 더해져, 짠하고 따스하고 먹먹하고 아련한 맛을 선사한다. 어릴 때 엄마 대신 할머니와 살았었기에 저자한테는 외할머니가 엄마 이상의 존재였을 것 같다. 원래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더군다나 손수 키운 손녀이니 안나 할머니의 그 사랑은 오죽할까.. 안나 할머니와 손녀의 알콩달콩 서로를 생각하고 아끼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의지하고 사랑해 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런 할머니가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저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처음 초고를 쓰던 시기에는 할머니의 병세가 그리 깊지 않아 글을 쓰면서, 할머니를 만나고 나서 매번 일기처럼 기록하고 사진찍고 하는 일이 무척이나 재밌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준비할 때 즈음에는 병세가 심해지셨고, 마지막 교정을 보는 날은 안나 할머니의 장례식 마지막 날이었다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과의 추억의 글들을 마주하니 조금 더 슬프고 인생이란 뭔지..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할머니가 떠난 후의 저자의 공허함을 어떻게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아직 곁에 계신 엄마한테 좀 더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좀 더 따스한 말을 건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늦게라도 이 책을 잊지 않고 읽게 되서 참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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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이롱 시한부』는 시한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세상 사람은 부자든 가난하든, 권력자든 노예이든,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김단한의 주장은 억지처럼 들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있는 것이지만, 공평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세계는 불균형하다.’라는 말을 어쩌면 제일 잘 대변해 주는 것은 죽음이 아닐까? 공평하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언제 죽어야 공평한 것인가. 저자의 불평일 뿐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도 지금 죽음에 맞닥뜨렸다고 '불공평'이라는 말은 억지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그 때문에 죽음을 앞둔 사람은 물론 죽음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불공정한 죽음에 대하여 저마다의 방법으로 받아들인다. 그 많고 많은 사람의 방법 중 『나이롱 시한부』 속에 등장하는 안나는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반면 안나를 너무 사랑하는 단한은 저항한다. 아직 안나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화사한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것이 모두 안나를 잡아 둘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저자의 생각이 이 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죽는 일에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말하지만 사실은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책을 조금만 더 촘촘하게 읽어보면 저자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이롱'이라는 표현에 방점을 찍어 읽어본다. 나이롱이란 단어는 사실 나일론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무척 많이 들었지만 요즘은 잘 들리지는 않는 단어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줄이고 늘이는 것을 자기 편한 대로 하는 사람에게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일정한 규칙 없이, 정작 죽어가는 당사자의 의사와도 상관없이 죽음은 다가온다는 사실 때문에 저자는 시한부란 의미의 정반대의 개념인 나이롱을 붙였나 싶다. 저자는 독자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나이롱의 의미를 밝힌다. "안나는 가끔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며, 아픈 것도 다 거짓말 같다고 말한다. 통증이 없다고, 오늘은 피를 쏟지 않았다며 웃는다." 이해가 된다. 충분히... 그러면서 저자는 덧붙인다. "나는 나이롱 시한부다. 하나도 안 아픈 시한부다. 안 아프다고 생각하면 안 아프다. 나는 백 살까지 살 거다. 나는 악바리다. 지(죽음)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라지." 짓궂은 목소리는 정말로 안나를 한순간에 나이롱 시한부로 만들어 버린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자칭 ‘나이롱 시한부’인 안나는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죽 안타까우면 그렇게 표현했을까. 환자의 삶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나일론은 탄력성이 좋아 줄였다 늘였다가 뛰어나다. 또 질기디 질긴 대상에 대해 나일론이란 단어를 붙여도 적절하다. 생명을 두고 질기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삶의 의지를 표현하기에는 이처럼 좋은 비유도 드물다. 나일론의 속성이 그렇다. 저자는 할머니 안나의 삶에의 의지가 엿보일 때는 그렇게 마음이 좋은 것 같다. 그러다 비관하거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에는 '그렇지 않다'고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어렵다.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의 전언에는 안나의 정신이 총총할 때는 삶의 의지가 매우 강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나는 남겨질 이에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끝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이냐고. 그러니 한 번 사는 인생, 촘촘히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똑같이 끝이 정해져 있지만 어떤 끝인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고." 안나가 한 말과 행동을 저자는 자신의 삶의 의지에 투영시킨다. "안나가 자신에게 남은 세상의 조각을 나에게 슬며시 꺼내 보여 주곤 했다."고 한다. 어떤 것은 너무 커서 시야를 다 가리고, 어떤 것은 너무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안나와의 대화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안나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세상을 넓히는 것엔 약간의 품이 든다. 아프기도 하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나이롱 시한부』는 죽음을 목전에 둔 할머니와 손녀의 마지막을 그린 단순한 신파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뻔하디뻔한 신파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단한 작가의 문장이다.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로 정제된 단한 작가의 문장은 나를 떠난 사람과 나를 떠나게 될 사람을 떠오르게 하고, 홀로 남겨질 나를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에 『나이롱 시한부』는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자세에 대해서 한 번쯤 환기시킬 수 있는 글이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이지만 안나의 마음을 궤뚫고 있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책을 낸 후 〈채널 예스24〉와 인터뷰를 가졌다. "글 속에 등장하는 '안나'(할머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루하루가 그냥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게 느껴졌기 때문에요. 처음에는 단순한 기록용으로 썼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것이 많아 이 글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안나'가 보낸 시간에 관련하여 가족들은 단순히 제가 말로 건네는 이야기들만 접했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조금 더 색다를 것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안나에게도 읽어주고 싶었고요. 그렇게 쓰다보니까 또 욕심이 생겨서, 브런치에 연재를 하게 되었어요."
할머니의 자랑이자 맹목적인 사랑은 첫째 딸인 자자의 엄마이다. 엄마는 할머니의 엄청난 교육열로 인해 많이 힘들었다. 엄마는 몸도 유약한 편이라 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을 끊임없이 받았다. 때때로 그 사랑과 관심은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다. 누구나 다 그렇다. 그렇게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던 할머니의 첫째 딸은 대학에 입학했고 할머니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5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그중에 첫딸인 엄마를 유독 많이 사랑했나 보다. 저자는 유년 시절을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한테는 외할머니가 나의 최초의 엄마였던 셈이다. 이 책의 안나 할머니는 독자의 어머니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다. 다만 독자의 어머니는 요양병원까지 가지도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다. 옆에서 정성껏 보살펴주지 못한 독자로서는 그 점이 한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독자의 어머니도 자식 걱정만 했다. 자상하지도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대한 것이 지금은 한으로 맺혀 있다. 이 때문인지 저자의 심정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이 책은 에세이다. 안나와의 얘기를 일기처럼 써나가는 것 같지만 충분히 스토리가 있고, 스토리의 전개도 극적인 점이 엿보인다. 차분하게 글을 끌어가면서도 독자에게 눈물 콸콸나게 하는 감정선을 자극하는 표현을 무척이나 쉽게 쓰고 있다. 제목이나 처음 글을 읽어나가면 마치 소설 같기도 하다. 3장으로 구성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할머니와의 추억과 대화 - 남겨진 이들 - 요양병원에서의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독자를 울리기 위한 책이 아닌데, 투박한 할머니의 글씨체가 떠오르면서 저자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이유가 독자의 어머니와 한나 할머니가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도 저자의 애끓고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제일 처음 초고를 쓰던 시기에는 '안나'의 병세가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에 마냥 재미있었어요.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었고, 매번 '안나'를 만나고 난 다음에 일기처럼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죠. 그런데, 한 권으로 묶기 위해서 글을 다시 정리할 때는 앞서 말씀드렸듯 '안나'의 병세가 더 심각해졌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짜가 점점 다가옴을 느끼면서 원고를 정리할 때는 저도 모르게 울게 되더라고요. 지나간 일들이지만 써놓길 잘했다, 맞아 이런 이야기를 나눴지,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우느라 원고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적도 많아요. 불쑥불쑥 떠오르는 '안나'에 대한 그리움들을 제어하면서 너무 감정적이지 않게 글을 쓰려 노력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안나는 짧으면 2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시한부의 삶을 선고를 받았다. 나는 안나에게 찾아온 죽음이 너무나 미웠지만,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나는 아직까지 죽음과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소심함을 탓했지만, 안나는 그 무엇도 탓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안나는 씩씩했다.씩씩한 안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나이롱 시한부’라고 칭한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는 할머니와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르는 손녀는 종일 대화를 나눈다. 대화에는 주제가 없다. 그저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 앞으로 있을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에는 죽음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둘의 대화에 등장하는 죽음은 결코 무거운 존재가 아니다. ‘나이롱 시한부’ 안나 덕분에 죽음은 손녀에게 더더욱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p.6)
저자 : 김단한
가끔 정처없이 떠도는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많이 쓰려 노력하는 중이다. 쓰는 글 중에 사람과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글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랑에 대해 지겹다 말하면서도 이 두 가지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말간 백지를 보며 얼굴이 새하얗게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위안을 받는 사람. 내면에 숨쉬는 다양한 것들을 숨김없이 끄집어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고 싶단 생각을 품고 있다.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너를 앓고』와 『연못 산책』을 독립출판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kim_danhan_delay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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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이롱 시한부 - 김단한 / 처음북스
'이제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안나와 아직 그녀를 위해 해 줄 게 많은 단한의 이야기' 짧으면 2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할머니 안나와,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손녀의 대화.
안나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끝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이냐고. 그러니, 한 번 사는 인생 촘촘히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똑같이 끝이 정해져 있지만 어떤 끝인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고. "
건강이 좋지 못해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그런지, 손녀와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할머니와의 대화에 많이 공감이 갔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언젠가 세상과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영원한 이별은 언제나 우리들의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영원히 삶을 살아갈 것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지탱해나가고 있죠. 그래서 이번 도서에서 안나가 손녀에게 전하는 말은 곧,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더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지금까지 그래왔듯, 여전히 단단한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려는 안나의 모습에 뭉클하면서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과연 내가 책 속의 안나의 상황에 놓였다면, 과연 나를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우울감에 빠져 의기소침해 있지는 않을까... 책 속의 스토리를 알고 할머니와 손녀가 두 손을 마주하고 벤치에 나란히 걸터 앉아있는 듯한 모습의 표지를 다시 보니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서 또 한번 뭉클했었습니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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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롱 시한부>는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세이 <나이롱 시한부>를 읽으면서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너무 사랑스럽고 정겨운 '안나' 씨의 이야기를 읽어본다. 제목 <나이롱 시한부>를 보면서 어떤 내용일까, 왜 <나이롱 시한부>라고 할까 생각했는데 그건 안나 할머니의 말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흔히 노인분들이 그렇듯 '일찍 죽어야지'라고 하시는 말씀처럼 안나 할머니는 손녀 단한이 '성공하면 가야지'라는 말씀을 자주 한다. 그런 안나 할머니의 말씀이 듣기 싫은 손녀 단한은 '성공하지 말아야지'라는 말로 응수한다.
안나 할머니의 이름은 세례명이다. 안나 할머니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고 당시 무역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가족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기에 안나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이름은 '연이'였다고 한다. 연이라는 한국이름을 그대로 일본에서도 사용했는데 많은 동생들은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이 해방되고 연이는 아홉 살에 가족들은 다시 고향인 남해로 오게 된다. 안나 할머니의 엄마는 여덟 번째 동생을 출산한 후 백일이 지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안나 할머니는 동생들의 큰누나이자 엄마가 되었다. 스물에 돈을 벌기 위해 부산의 신발 공장에 취직한다. 부산에서 안나 할머니는 단한의 외할아버지를 만나 연애를 했고 가정을 꾸렸다. 딸들이 출가하고 난 뒤 단란하게 두 사람이 살게 되었다.
손녀 단한은 안나 할머니가 외할머니이다. 어렸을 때부터 안나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고 지금은 나이든 안나 할머니와의 추억을 책으로 남기고 있다. 안나 할머니가 자신의 할머니이긴 하지만 안나 할머니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안나 할머니는 한글을 잘 못 쓴다. 그래서 손녀 단한에게 쓴 편지는 길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마음만은 전해진다. 안나 할머니는 여든이 넘었다. 그렇다보니 건강이 제일 걱정이기도 했고 귀가 잘 안 들려 전화를 못 받기도 했다. 그래서 집안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녀고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핸드폰이 생겼다. 너무 좋아하시는 안나 할머니를 보며 가족들은 다들 흡족해했다. 귀가 어두워지면서 시력도 많이 떨어졌다. 한편 손녀 단한은 갑자기 사람 많은 곳에서 숨막힘과 이유 없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정신과 병원을 찾게 된다. 그런 단한에게 안나 할머니는 눈이 아프면 안과에 가야하듯 마음이랑 정신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야한다며 치료를 응원하면서도 슬퍼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안나 할머니와 손녀 단한의 이별일 것이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이별의 순간을 맞이한다. 안나 할머니는 나이도 많이 드셨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진다. 그런 할머니의 마지막까지 함께 기억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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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순탄하게 돌아가지도 않고, 갖은 사연과 불행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를 단순히 위로의 시선으로만 볼 것인지, 최근에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위로와 조언, 격려 등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고 어설픈 위로가 주는 역효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침묵하거나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그런 행동들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이 책은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나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와 경험에서 어떤 가치에 공감하거나 때로는 배움의 의미로 승화해 나가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인지, 이 책은 이 의미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한부라는 용어가 주는 먹먹함, 부정적인 의미도 강하며 누구나 회피하고 싶은 그런 가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누구나 경험할 수도 있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믿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이런 가치를 경험하게 된다면 그보다 삶 자체가 힘들고 불행해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행위나 경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나 알아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가볍게 접하지만 어떤 의미의 메시지를 전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지, 이에 대해 공감해 보는 태도와 생각의 전환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비슷한 삶의 모습,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듯 보여도,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과 주관,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과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는 자기계발이나 성장, 변화를 위해서도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일 것이며 나와 다름에 대한 배척보다는 공감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성공과 결과를 남기는 행위, 나아가 개인이 바라는 삶의 지혜와 행복 등에 대해서도 성숙된 자세로 접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하거나 살아가는 용기에 대해 답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도 없고, 어쩌면 흔하디 흔한,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 공감을 강조하는 에세이북으로도 보일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듯,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이나 사람에 대해 어떤 기준과 판단을 통해 평가하거나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 하는지, 이 책은 이런 가치와 인문학적 의미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는 에세이북으로 볼 수 있다. <나이롱 시한부> 좌절과 실패, 불행과 절망 등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그래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받으면서 왜 우리는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결국에는 의미할 수밖에 없는지, 제법 현실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부분을 통해 삶과 죽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책이라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공감해 보게 될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세와 공감의 메시지, 읽으며 판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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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단한의 외할머니 '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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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속담중에 노인이 죽는건 큰 도서관이 하나 불타 없어지는것과 같다는 말이있다. 나는 그런 큰 도서관같은 노인으로 늙고싶다고 항상 생각하는데 안나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안나는 안나의 말처럼 무식하지 않다. 많은 경험과 연륜을 담고있고 고운말들로 남을위해 기도하고 남을 위로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었다.
안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단한의 할머니다. 단한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안나의 손녀이다.
가족 중 누군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는 그 슬픔은 가늠하기도 힘든데, 상상만 해도 아픈 이 감정을 담담히 풀어 내는 단한이 너무 안쓰럽다.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다.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를 뿐. 아직 주변 누군가의 죽음을 본 적은 없지만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을 두 번 맞았다. 남겨진 이에게 남는 건 슬픔과, 후회, 그리움과 같은 것들이다. 큰 사랑을 주고 아끼고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더라도 그 시간들은 한없이 모자라고 모자랄 것이다.
안나는 단한과의 시간들이 1분 1초가 아쉬웠을 것이며 단한은 안나의 시간이 1분 1초가 느리게 흐르길 바랐을 것이다.
안나는 남겨질 이에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끝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이냐고. 그러니, 한 번 사는 인생 촘촘히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똑같이 끝이 정해져 있지만 어떤 끝인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고. 안나는 자신에게 남은 세상의 조각을 나에게 슬며시 꺼내 보여주곤 했다. 어떤 것은 너무 커서 시야를 다 가리고, 어떤 것은 너무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안나와의 대화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안나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세상을 넓히는 것에는 약간의 품이 든다. 아프기도 하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김단한, <나이롱 시한부>, 처음북스, p.6-7 프롤로그
책을 읽는 내내 안나와 단한의 친구 같은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단한과 안나의 일상 대화들 속에는 보이지 않는 슬픔이 묻어나 있었다. 슬프지 않게, 담담하게, 아무 일 없는 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언제 깨질지 모를 얼음판 위를 걸어나아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세상에 어떤 이별이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정해진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까. 단한을 보듬는 안나의 위로들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나의 머릿속에선 휠체어에 올라탄 안나를 안전하게 버스에 태우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어떤 장면은 안전했고, 어떤 장면은 불편했으며, 어떤 장면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식은땀을 뻘뻘 흘렸더랬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저상버스에 수없이 올라탔음에도 한 번도 휠체어에 탄 사람들과 동승한 적이 없었다.
김단한, <나이롱 시한부>, 처음북스, p.76
저상버스를 이용하면서 정말로 단 한 번도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을 본 적이 없었다. 작동을 하기는 하는 걸까. 더 좋은 교통수단이 있기에 이용을 안 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습을 달리할 수 있었다. 밥은 잘 챙겨 먹었냐는, 날씨가 이러한데 옷은 단단히 입고 나갔냐는, 길이 어두우니 조심하라는 안부로. 안나는 평생 그렇게 사랑을 이야기해 왔다. 어쩌면 여태 안나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밥은 먹었는지, 아프진 않은지, 약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늘 안나는 나에게 묻고 있었으니까.
김단한, <나이롱 시한부>, 처음북스, p.88
사랑한다고 말로 내뱉어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자주 여러 번 많이 표현하다 보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사랑의 의미가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안나는 모든 말과 대화에 애정과 걱정 그리고 사랑을 담아 단한에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뭐해, 밥은 먹었니, 오늘 하루 어땠어, 재밌었어?라고 묻는 친구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서도 나는 이제 사랑을 느낀다.
최근 할머니가 허리를 다치셔서 치료의 마지막 자락쯤 두 번 같이 병원을 다녀왔다. 두 번째 병원을 갔을 때 뼈가 잘 붙어서 이제 병원에는 오시지 않으셔도 된다 하였다. 할머니는 물리치료를 받으면 시원하니까 물리치료가 받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은 한 달 치 약을 주셨고, 물리치료는 절대 금하셨다.
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할머니께 물리치료는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고, 아침 약은 네 알 저녁 약은 세알 할머니가 알고 계셨어도 다시 알려드렸고 할머니 집에서 나서는 길에서도 할머니 약 꼭꼭 챙겨 드셔야 되고 물리치료는 절대 안 돼요!! 하며 나왔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께 사랑을 잔뜩 표현하고 온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단락의 맺음말들이 나의 마음을 간지렀다. 단한 작가님의 글에는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안나와의 이야기들의 나의 마음을 간지른 건지 작가님의 말들이 나의 마음을 간지른건지는 알 수 없지만 책 자체가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왠지 200페이지가 넘어 갈쯔음부터는 또 공감능력이 폭발해 버린것인지 마음에 돌덩이가 하나 들어 앉은것처럼 힘들어서 울기도하고 잠시 쉬기도하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글을 쓰는 내내, 책을 엮는 내내 안나와의 추억이 떠올라 행복하기도 했겠지만 힘든 부분도 많았을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안나와 단한의 시간도 흐르고 있었고 안나의 남은 시간도 점점 짧아져가고 있었다. 담담하게 시간을 보내는 안나도 안나도 안쓰럽지만 남아서 그 시간을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단한이 더 안쓰러웠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책을 엄지로 책장을 문지르며 단한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허전함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기록들과 기억들로 안나를 추억하며 너무 오래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나의 마지막이 너무 아프지 않기를. 남은 단한의 마음이 오래도록 아프지 않기를. 잘 했고, 잘 해왔으니 너무 오래 후회하지 않기를. 더 많은 사랑으로 마음이 가득 차기를.
http://ch.yes24.com/Article/View/47132 단한 작가님의 인터뷰. 리뷰 남기러 왔다가 우연히 봤는데
책 내용중에서 누가 단한작가님 외모지적하고 그로인해 남들 기준에 맞춰 생각하다, 안나에게 위로받고 안나를 위로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인터뷰 보자마자 엥?? 했다.
단한작가님 이렇게 예쁜데 누가 외모 지적했냐;; 진짜 나와 다 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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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라는 지극히 단절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개념이 우리의 삶에 끼어들어 나, 우리의 지속가능한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생명 역시 탄생과 소멸의 자연법칙을 따름을 생각하면 시한부 라는 개념이 그리 틀리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죽음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 우리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