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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명실공히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이었다. 그런 만큼 이 전쟁에서 세운 신기록들도 많다. 그 중 하나는 기체 내에 대량의 폭탄을 탑재하고 긴 항속거리로 적국 후방의 표적까지 날아가 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군용기, 즉 폭격기를 이용한 적 후방 전략 폭격이 대규모로 벌어진 사실상 유일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미 개전 이전부터 독일 공군은 스페인 내전에서 전략 폭격의 잠재성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그들은 대전 초기 서유럽 전격전 및 영국 전투에서도 연합국들을 상대로 한 전략 폭격으로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전략 폭격의 매운 맛을 제대로 보여준 나라는 다름아닌 영국과 미국이었다. 이 두 나라의 폭격기 부대는 전쟁 중반 이후부터 추축국 전토를 문자 그대로 폭탄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공군 전략가들의 예견과는 달리, 이러한 대규모의 전략 폭격에도 불구하고 적국 국민의 사기와 전의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국의 전쟁수행능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전투기는 영화를 만들지만, 폭격기는 역사를 만들었던 셈이다.
이러한 전략 폭격전은 공격자측에도 인원과 기재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요구했다. 적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고 폭격기라는 다인승 유인 플랫폼을 적 후방에 들여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대전 중반 미군 폭격기 승무원의 평균 수명이 14소티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때문에 영화 <멤피스 벨>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미군은 폭격기 승무원이 25소티만 출격하면 즉각 전투 임무에서 해제시켜 주는 특혜를 주면서까지 사기를 높여야 했다(전투기 조종사는 전투 임무에서 해제되려면 60소티를 출격해야 했다). 이러한 미군 폭격기 부대의 악전고투는 군사사에 대해 어두운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을 정도다. 그러나 당장 본토가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었던 영국 폭격기 부대의 희생도 미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전사자 수만 보더라도 미국 폭격기 부대의 전사자는 49,000명이었는데 비해, 영국 폭격기 부대의 전사자는 55,000명에 달했다. 부대 정원에 대한 전사자 수의 비율이 500%가 넘는 비행대대도 있었다고 하니 알아볼만 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손실을 입은 영국이, 전간기 내내 군축에 매달리면서 비용이 많이 드는 폭격기 부대에 투자를 많이 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큰 피해의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부단한 신전술과 신장비 개발에 힘입은 영국 공군 폭격기 부대는 여러 난이도 높은 폭격 작전을 훌륭하게 성공시켜, 세계 항공전사에 그 이름을 날렸다. 1943년 5월 16~17일 밤(공교롭게도 17일은, 앞서 말한 미군의 B-17 <멤피스 벨>이 25 소티를 무사히 완료한 날이기도 했다)에 벌어졌던 영국 공군의 독일 댐 공습 작전인 응징 작전의 총지휘관, 가이 펜로즈 깁슨 중령이 해당 작전은 물론, 그 이전의 전쟁 체험을 담아 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폭격기 부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또한 1944년 주간지 <선데이 익스프레스>지의 연재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된 이후(단행본 첫 출간은 1946년) 8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영국 현지에서 꾸준히 인쇄되어 팔리고 있는 스테디 셀러이자, 전쟁 문학의 고전이기도 하다.
내가 응징 작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이던 1993년, <월간 항공> 지에서였다. 식견이 부족하던 그 때는 “참 특이한 작전도 다 있었다.”하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 년 후, 신혼여행지인 런던에서 제국 전쟁 박물관에 간 나는 그 박물관에서도 응징 작전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 전시실에는 랭카스터 폭격기의 기수가 전시되어 있었고, 박물관 구내 매점에는 응징 작전과 랭카스터 폭격기를 소개하는 책이 수십 종이나 팔리고 있었다. 응징 작전과 랭카스터 폭격기, 가이 깁슨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영국인들의 군사적 자부심의 근원들 중 하나로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내가 매우 재미있게 하고 있는, 영국 폭격기 부대를 소재로 한 게임 <봄버 크루(Bomber Crew)>에서도 이 응징 작전은 빠짐 없이 묘사되어 있다.
응징 작전을 실시하던 당시, 저자 깁슨은 불과 만 24세의 새파란 청년이었다. 평시 같았으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의 막내에 불과했을 나이였지만,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은 그런 젊은이에게도 부하 장병 수백 명의 생명과 고가의 전투 장비(폭격기) 수십 대를 책임지는 대대장이라는 중책을 부여했다. 물론 깁슨의 뛰어난 능력, 그리고 영국 폭격기 부대의 엄청난 사상률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겠지만, 그 와중에서 아직 어린 깁슨이 얼마만큼 큰 압박감을 느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압박감은 이 책의 행간 곳곳에도 배어 있다. 그런 압박감을 느낀 것은 깁슨 혼자만이 아니었다. 영국 폭격기 부대원들, 더 나아가서 영국인들 모두였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수렁을 헤쳐나간 영국인들의 모습을 당사자의 시점에서 소개한 귀중한 자료다. 또한 개전시부터 1943년까지의 영국 폭격기 부대의 처절한 사투의 기록이기도 하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 사투는 수많은 생명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스러진 사람들 중에는 저자 깁슨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나서, 전략폭격기의 운명에도 황혼이 드리워졌다. 더욱 저렴하고 효율적이며, 사람이 타지 않아 이론상 공격자의 생명의 위험이 없는 새로운 플랫폼 ICBM(대륙간 탄도탄)과 최종 병기 핵의 조합은, 한때 한 나라의 존립마저도 위태롭게 하던 전략폭격기의 위엄과 입지를 인정사정 없이 갉아먹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연합국 5개국의 전략폭격기 전력은 갈수록 줄어들어만 갔다. 그 중 2022년 현재 전략폭격기 전력을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뿐이다. 그나마도 항공기 대수로만 보면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비해 한 줌도 안 된다. 프랑스는 모든 전략폭격기를 퇴역시켰다. 저자의 나라 영국도 마찬가지다. 원래 폭격기가 강국만이 가질 수 있는 공세용 무기체계이기는 했지만, 이쯤 되면 ‘최’강국만이 가질 수 있는 ‘매우 비싼 사치품’으로까지 격상된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폭격기’라는 단어에서 다른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항공기 승무가 가능한 고급 인재들이 날개 달린 관(棺)에 바글바글 끼어 타고, 맑고 푸른 하늘을 새까맣게 메우며 적국 후방으로 날아가 도시 하나를 초토화 시키고, 그 자신들도 적의 전투기와 대공포에 떼거지로 몰살당해야 했던, 당대의 최첨단 항공기술과 인간 깊숙한 곳의 야만성과 비합리성이 극한으로 발휘된 장렬하고도 끔찍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를 말이다.
영국은 폭격기 승무원들을 포함한 각계의 고급 인재들을 아낌 없이 총알받이로 내모는 희생을 치른 끝에, 결국 본토를 방어하고 나치 독일을 붕괴시킨다는 전쟁 목표는 달성했다. 그러나 국력의 소진으로 인해 한때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던 대영제국은 전후 붕괴되고 말았다. 미국 역시 영국과 비슷한 인명 희생을 치렀지만 그들에게는 그 희생을 충분히 감당할만한 많은 인구와 전화를 입지 않은 방대한 본토,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강력한 생산력이 있었다. 대영제국이 사라진 이후, 미국은 세계를 주무르는 사실상의 최강 제국으로 부상했다. 걸작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퍼시픽>을 만들었던 헐리우드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톰 행크스 콤비는 현재 그 후속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미국 폭격기 승무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2022년 공개 예상)를 제작하고 있다. 반면 오늘날 영국 폭격기 부대를 소재로 한 새 영상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싸움을 하고, 같은 규모의 피해를 입고, 같은 승리를 얻어냈더라도, 조국의 몰락을 늦추었을 뿐인 군대와 조국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군대에 대한 세상의 시각은 결코 같지 않다. 이 책은 그러한 부분에까지도 저절로 생각이 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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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에 대한 책이 뜸하다 싶었는데 중요한 참전기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저고도 침투 폭격을 성공하여 독일 루르공업지대의 중요 댐들을 파괴한 가이 펜로즈 깁슨 중령의 회고록입니다.
아주 예전에는 댐버스터라는 영화를 통해서 국내에 많이 알려진 작전이지만
저자의 회고록이 번역되어 다시 이러한 전사가 알려져서 다행이지만
출판사가 강조한 저 '무삭제 완역본'이라는 의미는 중요 정보 보호나 본인 명예에 연관되어서
책의 분량은 작지 않네요. 후반부에서 응징 작전과 댐 공격작전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스피트파이어와 전투기 조종사에 많이 집중하는 바람에
깁슨 중령 본인 자체도 20대였지만 당시 영국 공군 주요 전투원들은 대단히 젊었으며
초기 치열한 혈전을 벌이면서도 전력을 확대하던 영국 폭격기 부대의 모습을
아무래도 공군은 전투 임무 수행히 본국의 비행장에 복귀한 탓에
지금 보면 PTSD에 시달렸던 폭격기 부대원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전쟁에 참여한 주요 전투원의 생생한 증언이기에 국내에 덜 알려진 폭격기 부대와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