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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1888~1923)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태어났고, 부유하게 자랐지만 삶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다. 충동적인 결혼과 파탄, 집안에서 반대하는 이와의 사랑, 임신과 유산, 동성애. 그리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결핵에 걸려 서른 네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작가들의 삶이 작품에 어느정도는 녹아들어가기 마련일텐데, 그래서인지 밝게 느껴지는 작품이 없었다. 뭔가 결핍되어있고, 뭔가를 지속적으로 갈구하고 있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들이 편하게만은 다가오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걸까 이해조차 되지않는 작품들도 있었다.
맨스필드의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데 윌라 캐더의 '마법'이라는 단어보다 적절한 것은 없을 듯하다. 그의 작품에는 복잡한 인물의 발달이나 손에 땀을 쥐게하는 플롯은 없지만, 독자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모호한 결말과 함께 이야기가 끝나면 꿈에서 깨어난 듯이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이상하다'라고 (맨스필드의 작품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형용사다)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의 글을 읽고 나니 읽었던 작품들을 조금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1909년작인 <피곤한 아이>로부터 1922년까지 집필한 순서대로 총 15편의 단편과 미완인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피곤한 아이>,<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차 한 잔> 세 작품은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맨스필드라고 하면 가장 먼저 <가든 파티>가 떠오르는데 그 작품은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작품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남자의 시선으로 글은 진행되는데, 쓸쓸하고, 냉정하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가을까지는 그들도 행복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차가운걸까? 미완으로 끝이 났기에 이유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남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늦은 밤에>에는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고는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여자가 등장했다. 내 감정 나도 몰라 어쩔줄 몰라하는 여자의 모습에 공감도 되면서, 독립적이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을거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는 얄미운 여자가.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느껴지는 소설도 있었다. <영원한 사랑>에는 아픈 아내를 따라 여행중인 남편이 있는데, 맨스필드는 자신이 아파서 요양중일때 함께 하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한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남편의 모습을 투영한 것은 아닐까싶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맨스필드는 울고싶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파커 아주머니의 인생>에서 문학가의 집에서 일을 해주고 있는 파커부인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너무나도 고달파서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싶어 찾아나서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울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떠할까? 그런 누군가가 있기는 있는걸까?
오 홀로 숨어서, 누구를 방해하거나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이제라도 실컷 울 수 있는 곳이 이 세상에 한 군데도 없나? -p176
표제작인 <차 한 잔>에서 로즈메리는 차 한 잔 값을 빌려달라는 여자를 만났고, 집으로 데려왔다. 여자에게 차 한 잔은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비춰졌지만, 로즈메리에게 차 한 잔은 허영, 그 자체로 보여졌다.
살다보면 멋진 일이 생긴다는 것을, 요정처럼 나타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또한 부자들도 인정이 있으며 모든 여성은 자매라는 사실을 이 여자에게 보여주리라-p 246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고, 꽤 괜찮은 사람임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그 여자를 예쁘다고 하자 그 마음조차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서둘러 여자를 내보내고, 화장을 고치고, "나 예뻐"라고 남편에게 물었다. '모든 여성은 자매라는 마음은 어느새 멀리 보내버리고, 자존감은 없고, 남편의 부에 편승해 살아나가는 그녀의 미래는 과연 안녕할지 모르겠다. 나는 순수하게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미스 브릴>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을 즐겼다.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평가하며 연극 무대를 보고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미스 브릴은 어떤 대화를 듣게 될지 늘 기대하며 왔기 때문이다. 미스 브릴은 남들 이야기를 안 듣는 척 하면서 듣는 것에, 타인의 삶에 아주 잠시 머무르는 것에 본인이 생각해도 꽤 노련해졌다. -p160
어느 날, 미스 브릴은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듣지 못했다면 좋았을텐데. 누군가가 타인인 내 삶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 커다란 타격이 될 수 있음을 미스 브릴은 알았을까? 우리는 종종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게 되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야하지 않을까? <만에서>라는 작품도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보다도 풍경 묘사, 감정 묘사 부분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장면이 그대로 떠오를듯 섬세한 표현들은 소리내어 읽고싶은 맘이 들게 했다. 16편의 소설은 다양한 색깔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해가 안되는 소설도 있긴했지만, 그런 소설조차도 문장 하나 하나 곱씹어면서 다시 읽어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책에서 맨스필드의 글에 대해 의식의 흐름 기법, 다중 시점, 자유간접화법 도입과 같은 혁신적인 기법으로 관습적 감수성에서 벗어나 사건과 플롯에 갇히지 않고 개인의 감정을 중시했다고 했다. ( 궁리 줄판사 가든 파티 옮긴이의 글 중에서 ) 이 문장을 생각하면서 읽었더니 맨스필드의 글이 가깝게 느껴졌다. 버지니아 울프가 질투한 글솜씨의 매력을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또 만나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더 그의 매력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싶다.
YES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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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단편선,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가 '난 그의 글을 질투했다-내가 유일하게 질투한 글솜씨다'라고 했다고 하니 도대체 무엇이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에 숨어 있기에 그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가 질투를 했을까 하고 몹시 궁금해, 20세기 문학에서 간과 된 진정한 천재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책 [차 한 잔]을 급히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낯설다 못해 크게 한방 먹은 표정의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첫번째 단편 '피곤한 아이'는 맨스필드가 '뉴에이지'에 처음 발표한 작품(1909년) 입니다. 나무와 하얀 오솔길을 걷는 아이를 상상하고 있다가 텅 빈 오솔길을 막 걷기 시작할 때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손이라니. 정신이 번쩍 들어 책의 표지를 다시 보고, 단편 제목을 다시 읽습니다. 피곤한 아이는 귀싸대기를 날린 부인의 아이들 세 명과 한 침대를 쓰고 있고 유일하게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앓이를 하는 아기 두 명, 등교 준비를 시켜야만 하는 아이들 안톤과 한스에 아직은 어린 리나까지 시끌벅적한 이 집안에 또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남자의 말에 '피곤한 아이'는 아기를 침대에 떨어뜨리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부인의 침대에서 가져온 베개와 생글거리며 살금살금 아기에게 다가가는 피곤한 아이와 귀가 찢어지게 비명을 질러대는 아기, 또다시 나오는 텅 빈 오솔길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가식도 없고 이유도 없으며 '피곤한 아이'는 그렇게 현실세계에서 망가졌는지 단지 상상의 세계인지 경계선 없이 치고 들어와 큰 충격을 암시하며 끝이 났습니다. 이후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에 등장하는 스물여섯 살 파리 남자 라울 뒤케트와 '파커 아주머니의 인생'에 등장하는 파커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강펀치를 맞고 표제작인 '차 한 잔'을 책의 끝자락즈음 읽을 땐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거리에서 차 한 잔을 사서 마실 수 있는 돈이 없다고 애원하는 자기 또래의 아가씨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며 '책에서 읽고 연극에서 보는 그런 일을 실제로 해보면 어떨까? 흥미진진할 것이다'(245쪽)라고 상상하는 로즈마리의 사고방식엔 굶주린 사람들은 고분고분하다는 생각과 그런 이들을 위해 차를 대접하고 내 시간을 할애했다는 자긍심 가득한 가식적인 모습이 어뚱하다 싶었는데 막상 남편이 그 여자의 외모가 꽤 예쁘다는 말에 곧바로 온정어린 마음은 사라지고 차 한 잔 할 돈을 줘서 다시 거리로 돌려보냅니다. 세상에 가차 없습니다. 이기적이고 허영 덩어리, 날것의 그 시대를 목도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알려지지 않는 사건사고의 현장에 캐서린 맨스필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충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작가의 인생이 시대의 모습에 투영 된 것은 아닐까, 아무 감정 없이 피곤한 아이가 울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베개로 누르며 꿈을 꾸듯이 그녀의 작품속에 광기는 과연 픽션일까. 많은 의문부호를 그려가며 그럼에도 맨스필드가 작품에서 나타내는 동작 하나하나와 주변 묘사, 심리의 변화 등 이전까지 없던 작가라는 점만은 확신 합니다. [차 한 잔] 드실 준비가 되었다면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선에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차한잔 #캐서린맨스필드 #단편선 #구원_엮고옮김 #코호북스 #독립출판 #버지니아울프 #책추천 #책스타그램 #뉴질랜드 #YES24리뷰어클럽 #YES24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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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 ** 이 책은 소설이다. 정확히는 단편집이다. 그럼에도 어떠한가? 표지 디자인뿐 아니라 제목마저 시집 감성을 풍기며 힐링을 선사할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그렇게 처음 맞이한 글은 작가가 말하고자 한 복잡 미묘한 심리를 반증하는 듯하다.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초반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나 상당히 인상에 남는 단편 중 하나이다. 이야기에서 차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후에 차 한 잔이란 단편이 나오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 나오는 장면이 도서의 제목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다른 단편들에서도 차 마시는 장면은 종종 등장합니다. 작가의 추억이 녹아 있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일까? 따스한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상을 펼치면서 가족 구성원 각자의 감정을 그립니다. 아이들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다음 챕터인 #인형의 집도 이 소녀들이 등장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인형전시를 즐기던 인간이라 Doll House도 감탄하며 감상했었죠. 그런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형의 집에 대한 섬세한 묘사만으로도 감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야기가 인상적인 건 지극히 현실적인 부조리함을.. 아름답게 묘사한 인형의 집과 대비되는 절절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대사가 전하는 그 강렬함은 아마도 엘스의 상황에 공감할수록 쓰리게 다가올 것입니다. 현실은 쓰리지만 엘스가 느꼈을 벅차오름은 그보다 강렬했으리라!
도서는 곱씹을수록 깊이 우러나는 차와 같은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모금의 차로 맛을 음미할 순 없겠죠. 적어도 찻잔에 채워진 것을 모두 마셨을 때에야 그 차에 관해 한 마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파리(곤충이었으나 프랑스를 떠올린 1인)에서의 과정과 결말은 왠지 방사능 치료도 무의미하단 걸 알게 된 후의 그녀의 삶을 담은 듯합니다. 이어서 한 잔 더 우려내 볼까 합니다. 옮긴이가 남긴 말처럼 이상하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더군요.(미처 깨닫지 못했음) 바로 그 묘함이 매력인 도서랍니다. 글로 설명하기 힘든 까닭에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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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봤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유일하게 질투한 글솜씨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일었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 내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묘사가 드러나는 책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캐서린 맨스필드를 찬양하는 듯한 여러 서평들을 읽었지만, 나에게 맞는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단편들로 이루어 진 책이라 금세 완독할 줄 알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다지 그녀의 글에 빠져들지 못해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차 한 잔 이라는 책의 이름처럼 여우롭게 차를 한 잔 마시며 읽을 책으로 생각했지만 그다지 유쾌한 내용들도 아닌지라... 사람마다 느끼는 바와 취향이 다를테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은 피곤한 아이라는 단편에 실린 '멍으로 얼룩진 듯한 하늘이 음울한 땅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하나로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장면이나 배경에 대한 묘사나 표현이 뛰어난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추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다를까? 다음에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모조리 찾아 읽어보고 싶은 느낌은 아니었다. 책을 통해 독자에게 무언의 메세지를 준다거나 어떠한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보다 그냥 책 자체에 녹아들어 감상을 느끼고 여운을 가질 수 있는 책을 즐기는 사람에게 잘 맞는 책이 아닐까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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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고전문학도 마찬가지로 여성이 쓴 글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고전 작가로는 버지니아 울프, 제인 오스틴, 이디스 워튼, 메리 셸리 등이 있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언어를 얻기 위해 애썼다. 무의식 속에서 남성으로 대표되는 '작가'라는 직업에, 시대착오적이나마 '여류'라는 말을 덧붙여서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글쓰기를 지속했다. 그들의 글은 섬세하며 불편함을 주지 않고도 전개를 이어나가는 힘이 있다. 『차 한 잔』은 34세에 요절한 작가이자 대표적인 여성작가인 버지니아 울프가 글솜씨를 유독 질투했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이다.
캐서린은 실험적이고 모험적 성향의 모더니즘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글은 자아가 세고 거침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조금 혼란스러운 글들도 더러 있었다. 난해하다기보다 어지럽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고전 소설을 읽을 때 이와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런 소설일수록 번역의 힘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번역까지 무질서를 가하면 글은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글자만 읽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역자의 글은 원작의 어지럼증을 얼마간 해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4쪽 분량의 매우 짧은 단편부터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장편에 가까운 단편까지, 캐서린은 그야말로 단편에 특화된 작가다. 그는 순간의 감정과 모습을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호흡이 길어 오래 두고 쓰는 장편과 달리 순간에 느낀 감정을 빠르게 쏟아낼 수 있는 단편이 그에게 더 맞았을 거라 본다. 감정에 솔직하고 과감하게 표현한다. 차마 말로 또는 글로는 부끄러워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도 그의 글에서 읽음으로써 해소가 되기도 한다.
초반에 나온 단편작들이 특히 강렬했다. 강렬함은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책 속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피곤한 아이」 속 아이의 피로함이 책 밖의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광인(살인자)의 광기와 살기가 전해져 읽는 동안 무섬증이 가시지 않던 「올드 언더우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린 가정교사」는 앞서 말한 작품만큼이나 공포감을 느꼈다. 이 단편작을 읽는 여성이라면 분명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공포 끝에는 매스꺼움을 동반한다. 끝내 마무리하지 못하고 요절한 캐서린의 장편(아닌 장편)인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의 뒷이야기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단편에 강했던 캐서린은 생전에 자신이 존경했던 안톤 체호프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체호프 또한 단편으로 워낙 잘 알려진 남성 작가였기 때문에 어쩌면 캐서린에게는 그와 비견되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여자 체호프'로 기억되기보다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길 바란다. 책 곁에 두고 마시는 '차 한 잔'이 모여 여러 잔이 될 만큼 많이 읽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양장본이 아닌 데다 흰색이라 때가 잘 탈까 봐 걱정이다. 표지가 작가와 작품에 참 잘 어울리는데.)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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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편 '피곤한 아이' 읽고 있습니다. 책 제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 괴리감이 밀려 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난 그의 글을 질투했다 - 내가 유일하게 질투한 글솜씨다'라고 극찬을 했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들 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아이가 또 나온다고! 인제 그만 낳을 때도 되지 않았나?' 아이는 생각했다. (9쪽) #차한잔 #캐서린맨스필드 #단편선 #구원_엮고옮김 #코호북스 #책추천 #오늘읽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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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우리는 시간은 아주 짧은데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차를 빨리 마시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차가 우러나고 있는 티팟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바심이 난다. 그렇게 우려낸 향긋한 차를 찻잔에 따르고, 한 모금을 마신 후 이 책 [차 한 잔]을 펼쳤다. 차가 식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몇 편의 소설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버지니아 울프가 질투했다는 말은 그저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각기 다른 향기와 맛을 가진 차처럼 캐서린 맨스필드는 소녀부터 노파까지, 가난한 여인부터 부유한 여자까지, 그녀의 단편 한 작품, 작품마다 각기 다른 시선과 매력, 반전을 담아내고 있었다.
단편이라는 찗은 분량 속에서도 맨스필드는 독자들이 결말을 향해 매끄러져 가는 것처럼 이야기의 길을 정신없이 걷다가 어느 순간에 멈출 수 있도록 그녀만의 반전을 준비해두어 매 편을 읽을 때마다 두근거림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인물과 장면, 감정에 대한 정밀한 스케치 같은 묘사였다. 마치 내가 지나왔으니 기억하지 못 했던 어느 한 시절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 때 느꼈던 주변의 냄새와 온도, 기분까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섬세하면서도 정확한 묘사는 최근 읽은 소설 중 최고였다.
어딘가 길을 떠났다가 혹은 일상에서도 무겁고 우울한 공기의 맛이 느껴지려 하면 근처에 있는 카페로 달려간다. 거기에는 익숙한 전구의 색깔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 알맞게 친절한 점원이 있다. 나무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마음이 놓인다.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100년도 전에 태어난 작가가 대신 써준 것을 읽으며, 반갑고 슬프고, 기뻤다.
그녀의 소설 속 여자들은 때론 사랑을, 때론 삶과 죽음을, 때론 여성으로 겪어야 하는 슬픔을, 혹은 기쁨을 말한다. 그 이야기들은 역시 지금을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피곤한 아이]와 [인형의 집], [미스 브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인형의 집에서 작은 램프를 본 아이들의 소곤거리는 대화와 피곤한 아이가 드디어 잠이 들 수 있게 되는 장면, 미스 브릴이 들리던 가게를 스쳐지나갈 때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돌아보게 되었다. “온갖 종류의 삶을 살아보고 싶지 않니? 하나는 너무 부족해. 바로 그래서 글 쓰는 것이 즐거워. 수많은 사람이 되어볼 수 있거든.” (1906년 사촌 실비아에게 보낸 편주에서) -p283 옮긴이의 말 중
1888년, 여성에게 너무나 많은 제약이 있던 시대에 태어나 안타깝게도 34살에 세상을 떠난 캐서린 맨스필드는 편지에 쓴 바람처럼 소설 속에서 수많은 삶을 살았다. 그녀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20세기 문학에서 자주 간과되지만 진정한 천재였던 작가’라고 평했던데 책을 덮으며 전적으로 그 의견에 공감한다.
이 서평은 yes24의 제공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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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단편 문학은 캐서린 맨스필드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난 그의 글을 질투했다- 내가 유일하게 질투한 글 솜씨다.”라고 극찬을 했고…해서 무조건 읽어보고 싶었던 책. 이 단편선에는 34세에 병으로 요절하기까지 처음 발표한 ‘피곤한 아이’를 시작으로 미완으로 남긴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까지, 십 년 남짓한 시간에 그가 이룬 발전과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 16편이 실려있다. 코호북스에서 펴낸 “그녀들의 이야기”(2020) 에 실린 단편-행복 (이 책에는 ‘환희’라는 제목으로)-도 담겨있다. 우와..버지니아 울프(친구이면서 동시에 라이벌이었던)가 왜 그렇게 평했는지, 앨리 스미스가 “그의 이야기들이 연출하는 섬세함은 터지기 일보 직전의 전구처럼 강렬하게 빛을 발한다”고 평한 것처럼, 일면 자연을,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듯 하면서 등장 인물의 심리가 멋들어지게 어울어지고, 결말을 향해 뻗어 나간다. 각 소설의 마지막 문장, 마지막 대사가 압권. 16편의 단편 중에, 나는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환희( 원작대로 제목을 ‘축복’으로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집의 타이틀로 선택된 “차 한 잔”이 참 좋았다. 특히 ‘차 한 잔’은 부르조아 여인의 선택적, 과시적 자선 행위가 어떻게 방어적으로 돌아서는지, 읽는 내내 내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날카로움에 움찔하면서 읽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면성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간의 신뢰는 어찌보면 지극히 자의적이고, 지극히 상대적이고, 민감하고 깨지기 쉽다. 이렇다 할 큰 사건이 아니라도, 어떤이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될 만한 디테일에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 그래서 우리 개개인은 스페셜한 게 아닌가 싶다. 짧은 스토리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인간 본성을 관찰하고 건드린 소설들이었다. 지나치게 짧은 생애가 너무나 아깝구나. 그리고 그 옛날, 그 시대에 정말 불꽃처럼 살다 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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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햇살 가득한 곳, 이 호수 앞에서 읽어봅니다. 책 표지도 티백같이 잔잔한 느낌입니다. 오랜만에 커피가 아니라 차 한 잔이 땡기네요.^^
영국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는 첫번째 결혼이 며칠 만에 깨어지자 남성에게 버림받은 고독한 여성을 그린 《독일의 하숙에서》를 첫 발표했으며 ‘의식의 흐름’ 수법을 쓰는 단편 소설의 명수라 하여 자주 A.체호프와 비교되었다고 합니다. 문체는 여성다운 감성에 바탕을 둔 시적 산문입니다.
<차 한 잔> 은 16편의 단편을 발표 연도별로 구원 번역가가 엮은 책입니다. 12페이지의 책속에 상류층 부르주아 한 여성의 선의와 위선을 아주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돈이 많아 일상속에서도 비싼 소비를 즐기다가 만난 <차 한 잔>을 달라는 아주 가난한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차 한 잔을 대접하기 위해...이 여성에게 여러가지 선의를 베풀다가 우연히 깨닫게 된 사실에 바로 여성을 내보내는 위선을 보입니다.
짧지만 재치있는 작가의 스토리에 마음에 동요가 일고, 작은 탄성도 나옵니다. 긴 호흡으로 읽어내야하는 장편소설과는 또 다른 맛, 오랜만에 단편선에 빠져봅니다.
봄날, 이 책과 함께 감성에 젖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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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단편소설의 매력인가. 자기소개도 없이 시작하는 이야기에, 오직 작가가 내미는 조각들만 순서대로 받아 가며, 인물을 그리고 상황을 추측해야 한다. 수많은 일상 중, 그 일부분을 떼어온 듯, 친숙하지만, 어느 부분을 떼어온 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거리며 읽어야 할 만큼 독단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낭창하고, 발랄해서 재잘거리는 사춘기 소녀들의 일상을 듣는 것처럼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관계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며 작가를 쫓아가면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오고, 그 모습에 작가는 칭찬하듯, 깜짝 선물처럼 이야기의 마지막 조각을 쥐여준다. 시작은 명랑하고 생기발랄한 감성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결말이....? 잘 따라온 착한 아이에게 주는 선물 치고는 좀 많이 충격적인데, 어디서나 볼 수 없는 선물에 마음이 빼앗기는 심정이다. 충격을 받으며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고, 전체를 돌아보며 다시금 감탄을 내뱉었다. 오, 이것이 캐서린 맨스필드의 매력인가!
불친절한 전개 방식이 이렇게 설렐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알려주는 친절한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무심하게 하나씩 툭 던져주는 이야기에 적응하긴 만만치 않았지만, 적응하는 과정마저 흥분되고, 적응하고 나니 얇은 책 두께에 야속해진다. 나 이제 이 불친절한 바다에 몸 맡길 준비를 다했는데...?
차 한 잔이 절실한 이야기이다. 내가 아니라 인물들이. 불안하고 심란한 순간, 따뜻한 온기와 포근한 향을 머금으며 심신의 안정을 찾고, 기분을 환기 시키듯. 모두에게 차 한 잔을 권해주고 싶다.
난 사람들이 여향가방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내용물로 채워진 뒤에 출발해서 던져지고 떠밀리고 떨어지고 분실되었다가 발견되고, 갑자기 반쯤 비워지거나 터질 듯이 꽉꽉 채워지고, 그러다 마침내 궁극의 짐꾼이 궁극의 열차에 던져 넣으며 덜컹덜컹 실려 가는.... P. 49
하여간 난 무언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매달리는 사람들을 질색합니다. 떠난 것은 떠난 거예요. 다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잊어버려요! 무시해요. 혹여 위로가 필요하면, 한번 잃어버린 것은 어차피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여요. 모든 것은 늘 새롭게 변합니다. 당신 곁을 떠나는 순간 변해요. P.55
오, 홀로 숨어서, 누구를 방해하거나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머루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이제라도-실컷 울 수 있는 곳이 이 세상에 한 군데도 없나? P. 176
내 삶과 일반적인 죄수의 삶이 어떻게 다릅니까? 유일한 차이는, 나는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갔고 아무도 나를 꺼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P.22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