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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스승이자 한겨레의 큰어른인 소파 방정환(1899~1931)은 비록 33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소년운동가, 아동문학 작가, 독립운동가, 사회개혁자, 문화콘텐츠 개발자, 저널리스트 등 불꽃처럼 열정적인 활동을 선보였다.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경칭을 만들고 어린이날을 제창하고 어린이 운동을 이끈 선구자요 독립투사다. 저자 민윤식에 따르면, "방정환은 진보주의자, 실용적인 생활 감각의 개혁파, 초대형 국제적 행사를 이끈 기획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문화 게릴라, 10개의 잡지를 발행하며 개벽을 꿈꾼 혁명가, 어린이운동으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한 독립운동가"였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어른은 뿌리라면 어린이는 싹입니다. 뿌리가 근본이라고 위에 올라앉아서 싹을 누르면 그 나무는 죽어 버립니다. 뿌리가 원칙상 그 싹을 위해야 그 나무(그 집 운수)는 뻗쳐나갈 것입니다."(313쪽)
소파 선생은 10개의 잡지를 발행하며, 40개가 넘는 필명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잡지 발행은 기실 독립운동의 초석이자 천도교에서 말하는 다시개벽의 실천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잡지《녹성》을 비롯해, 《어린이》《개벽》《신여성》 등 10여 개 잡지를 운영했고, 생애통산 800편 이상의 글을 썼으며, 1000번 이상의 동화구연 순회강연을 다녔고,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운 '안창남 비행사 고국 방문 비행쇼', '세계아동예술전람회' 같은 대형 이벤트를 기획했다. 필명은 소파 외에도 ㅈㅎ생, 잔물, 몽견초, 몽중인, 삼산인, 북극성, 쌍S생, 목성, 윤정, 길동무, 파영 등 다양하다.
"소파 방정환은 1899년 음력 10월 7일, 양력으로는 11월 9일, 광무 3년 기해년 서울 야주개(지금의 당주동)에서 어물전과 싸전을 운영하는 방한용의 아들 방경수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성부 견지동 118번지이다."(16쪽)
될성부른 나무는 역시 떡잎부터 남달랐다. 훗날 소파는 여러 소년 단체, 청년회, 모임 등을 조직하고 그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데, 이미 열 살짜리 철부지 시절에 '소년입지회'라는 토론 모임을, 열아홉 살엔 비밀결사조직인 '경성청년구락부'를 운영할 정도로 조직활동에 탁월한 문화게릴라적 능력을 선보였다. 독립운동 지하단체인 청년구락부는 수시로 회원들이 모여 친목 회합을 갖고 일제 식민지 통치를 비판하는 연극 공연을 하기도 하고, 기관지 성격의 월간 문예잡지 《신청년》을 발행하기도 했다. 또한 3·1운동 때에도 일정한 몫을 담당했다.
소파의 오랜 친구인 유광렬의 회고록 『기자반세기』에 따르면, 청년구락부의 주축 멤버는 방정환, 유광렬, 이복원, 이중각 네사람으로, 유광렬은 이 네 사람을 '청년구락부의 사천왕'에 비유했다. 경성청년구락부 회장 이복원은 무정부주의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흑기연맹'의 멤버이고, 이중각은 의열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그런데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청년구락부의 핵심인사는 소파 방정환과 일해 이중각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소파 방정환의 대중적 이미지는 중절모를 단정히 쓴 풍채좋은 아저씨 인상이다. 하지만 소년 청년기 때에는 가문의 갑작스런 몰락으로, 아침은 콩나물죽으로 때우고 점심과 저녁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생활을 연이어 비쩍 마른 체구였다고 한다. 독실한 천도교도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천도교당에 나가기 시작하고 권병덕의 중매로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따님인 손용화 여사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보약과 충분한 영양섭취 등 처가의 보살핌으로 비만 풍채가 되고 마는데, 끝내는 비만이 부른 신장병과 고혈압으로 소천하게 된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성격을 절친 차상찬은 추모사에서 이렇게 밝힌다.
"매우 심중하고 매사에 심사숙고하며 고집성이 강하고도 또 책임감이 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너무 지리부단하게 끌어서 가끔 시기를 놓치는 일이 있었으나 한번 결정한 이상에는 또 어떠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자기의 고집대로 하고 책임 있게 하여 밤을 새며 코피를 흘려 가면서도 그 일을 끝내고 말았다."(451쪽)
소파 선생의 학업은 가난으로 인한 중단이 잦았다. 결혼 전 선린상업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토지조사국 사자생으로 잠시 일하다 그만두게 된다. 결혼 후에는 일본 도요 대학교 문화학과에 보통청강생의 신분으로 철학과 아동문학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는데, 소파의 사회개혁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력과 공격적인 사회풍자는 총15편의 '은파리' 시리즈에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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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 lalilu 이 책을 보면서 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그 생각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실행할 수 있는 실행력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주인공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바로 그런 놀라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책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기발한 기획과 초대형 행사를 이끈 문화혁명가’라고 소개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기발한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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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별 하나 보이시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방정환님의 작시인 형제별이다. 세아이를 키우면서 자장가로 많이 불러주던 노래였는데 이 가사를 쓰신분이 난 반달을 쓰신 윤극영님인줄 알았는데 소파 방정환이 쓰신 시이자 지금은 노래로 불러지는 ‘형제별’이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노래는 왜이렇게 슬프지? 하며 눈물이 한번씩 날때가 있었다. 알고보니 이노래는 날 저무는 하늘은 일제 치하 조국의 암울한 상황을 상징하는 거였다. 조국을 빼앗긴후 뿔뿔히 흩어져 눈물을 흘리는 상황을 동요의 가삿말로 풀어쓴거였다. 그래서 나도 부를때마다 너무 슬펐던거 같다.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소파 방정환 할아버지의 잘못된 빛보증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면서 10년간 그에게는 가난이 따라다녔다. 훗날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형편이 크게 나아지긴 했지만 이 소년시절의 궁핍한 체험은 그가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꺼라 저자는 말한다. 책 중간에 방정환은 (은파리)를 연재했을때나 그무렵 외국동화작품 번역에도 손을 대게 되는데 처음 번안한 작품이 오스카 와일드의 왕자와 제비를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발표를 했다. 이내용을 읽어보면 왜 맨 처음으로 번역했는지 알 수있다. 바로 사회주의사상이 담겨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9살부터 소년입지회로 조직활동을 기점으로 일요일마다 친구들과 토론도 벌이고 1919년 3윌1일은 독립선언문을 돌리다 체포되어 풀려나긴 했지만 일본의 감시가 너무 심해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아동문학과 예술,아동심리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1921년 방정환은 어린이 노래 불켜는 이를 발표합니다. 어린이라는 문자가 처음 쓰인 것이다. 올해로 100년 되는 해인 것이다. 그러다 1923년 손진태,윤극영,정순철,고한승,진장섭,강영호,조재호,강병기 등과 같이 최초의 어린이 문화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의 본격적인 아동문학의 출발점이었던 어린이 잡지와 함께 아동문학 작품을 발표하였다. 전통사회에서 천대받고 학대받던 아동인권을 보호 하기위해 어린이 잡지 집필뿐 아니라 동화구연대회,세계아동예술전람회 까지 열어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해주었다. 이렇듯 소파 방정환은 33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전까지도 ‘어린이를 부탁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다. 소파 방정환은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통해 아동문학 육성과 아동문학가 배출에 힘쓰고 몇편의 창작아동 장편소설과 동요를 쓰신 아동문학가 이시다. 그렇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3.1운동 다시 유광열 지사와 독립선언문 배포외에도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대항해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를 조직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월간지 개벽을 발간하셨다. 그이후 일본동경 유학 중에도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를 결성해 활동등 다양한 민족활동과 독립운동 에 힘쓰셨던 소파 방정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어요. 이책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 #어린이인권운동가소파방정환 #소파방정환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스타북스 #민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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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 민윤식 / 스타북스
리딩투데이 북적북적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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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아파트를 거닐다가 놀이터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 해요. '착하게 커야 할 텐데' 급식카드를 부끄럽게 내밀거나 들고 배회하는 어린이들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배고프지 않고, 누구한테 맞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이런 마음은 항상 품어도 이를 반영한 실천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기대하는데, 지금보다 어지럽고 우리 민족에게는 특히 어두웠던 시기에 열정적으로 행동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파 방정환 선생님.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저는 방정환 하면 어린이날 만든 사람으로 밖에 몰랐습니다. 그는 엄연히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이 책은 방정환의 일대기를 그의 행적이나 업적들이 남은 사료와 기록들을 모은 책으로 500페이지 넘는 분량으로 상당히 두껍습니다. 대체 그에 대해 어떤 내용들이 얼마나 실렸을지 고작 어린이날을 만든 사실만으로는 빙산의 일각은커녕 얼음 알갱이조차 안될 정도지요. 그렇다면 그가 오래 살았느냐. 방정환 선생님은 불과 33살의 나이에 요절하셨습니다. 그가 평생에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고 어린이 인권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는지 역설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본 이 책은 전기와 평전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기적인 요소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방정환의 삶과 업적을 낱낱이 소개합니다. 책에 실린 자료들은 상세히 그를 뒷받침하면서, 동시대에 연결고리를 가진 다른 위인들의 행적까지도 드러나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전으로써는 저자가 현재 그에 대해 잘못 평가된 부분을 기록을 근거로 고쳐주고, 전해지지 않는 부분들을 기억될 수 있도록 서술하셨습니다. 단순히 어린이를 예뻐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라서 이 나라의 미래가 되는 만큼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시키고자 했습니다.
안창호 선생님 등 다른 비폭력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방정환 선생님이 왜 이토록 알려지지 않았을까? 우리의 무관심도 있었겠지만, 사회주의에 발 들였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저평가 받은 탓도 있었습니다. 그에 물든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치여서 왜곡되고 축소된 기억으로 남는 것 자체가 비운으로 여겨졌습니다.
올해 돌아가신지 90주기를 기념해서 나온 이 책을 통해 그저 어린이날 만든 사람으로서만이 아닌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어린이 인권운동가로서의 방정환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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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힘든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 우리에게 단순한 공휴일 정도로 여겨지는 어린이날에 대한 의미, 5월 그리고 가정의 달을 맞아 이 책은 다양한 의미부여와 방정환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가며 당시에 척박했던 어린이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방정환이라는 인물이 단순히 어린이 날의 창시자가 아닌 독립운동가, 편집자, 인문학자, 문화예술인, 혁명가, 문화혁명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획일화 된 가치로 방정환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피어난 편견과도 같을 것이다.
책에서 방정환은 바쁜 나날을 보냈고, 다양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하며 조국은 근대화, 식민지배, 산업화의 과정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지만 막상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노동환경이나 인권문제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었다. 이에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선진적인 의식을 널리 알리려 노력했고 행동하는 진보주의자가 무엇인지, 그의 흔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그래도 조선왕조의 영향으로 불평등과 차별, 여전히 남아있는 계급의식이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기에, 누구나 공감했지만 방정환처럼 행동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그가 나섰던 것이다. ![]()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입장에서 청년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조성, 교육의 필요성을 통해 다양한 인재를 만들어야겠다는 강한 의지, 결국 어린이를 비롯한 청년들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조국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나 변화의 흐름속에서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문제가 되는 다양한 사회문제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남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계속해서 알리면서 관련 주제에 관한 공감대 형성이나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했던 것이다.
책을 통해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시대상을 알아보며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를 마주했는지, 결국 방정환의 뜻대로 어린이 날이 탄생하였고, 어린이 인권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다른 분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했다는 점에 공감하며, 방정환이란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깊이있게 만나봤으면 한다. 나라를 위해, 그리고 사람을 위해 행동했던 인문학자 소파 방정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며 어떤 의도로 삶을 살아갔는지, 이 책을 통해 읽으며 자세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많은 분들이 읽으며,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정신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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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어린이를 내리 누르지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소파 방정환의 대표적 업적은 ‘어린이날’의 창시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가 어린이인권운동가뿐만이 아니라 이벤트 기획자, 생활 개혁파, 문화혁명가, 독립운동가, 교육자 등으로서 33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무수히 많은 공과 업적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위대한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후 평가 작업이 소홀하게 취급되어 진면목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하물며 현재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정환의 모습도 중절모를 눌러쓰고 짙은 눈썹에 볼살이 많은 무표정의 흑백 사진이 유일하다.
후손의 입장에서 보자면 짧지만 굵직했던 방정환의 일생과 살아온 자취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역사의 페이지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놓는데 진력을 다 한 이 책의 저자 민윤식 작가에게도 감사해야할 일이다. 이 책은 소파 방정환의 서거 90주년을 맞아 평전 초판을 보완하여 개정한 것인데 저자에 의하면 방정환에 관련한 사료가 풍족하지 않고 증언이나 증명을 해줄 주변 인물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타계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을 낱낱이 밝혀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작가가 전기와 평전 작업을 하는 동안 자료를 찾고 연구하면서 느끼고 크게 감탄했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방정환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생애를 상세히 들여다보니 작가가 ‘작은 거인’이라고 표현한 대로 소파 방정환은 과연 작은 체구에 큰 인물이었다. 33세라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그는 아동문학계에 큰 문화유산을 남겼고, 《개벽》, 《어린이》, 《신여성》, 《녹성》 등 10개의 잡지를 직접 운영하며 탁월한 저널리스트로서 활약했으며, 특히 「은파리」 라는 풍자소설을 연재하여 권세가와 위선자들로부터 생겨나는 인간 세상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시대 상으론 총독부의 탄압과 감시도 피해갈 수 없는 장애물이었으나 그는 동요, 동화극, 동화, 번안 동화, 논문, 탐사기, 수필 등 800편에 이르는 글을 쓰고 1,000번 이상의 동화 구연과 순회강연을 했다. 또한 잡지 일을 하는 틈틈이 전문학교에 나가 학생들에게 ‘아동 유희’를 가르치는 한편 색동회를 결성하고 전국의 소년운동 단체를 규합해서 조선소년운동협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한다. 전 세계 20여국이 참가한 초대형 국제 행사인 ‘세계아동예술전람회’와 온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한 ‘비행사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쇼’ 등을 개최하여 기획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에 대해서는 그를 ‘풍부한 콘텐츠를 가진 벤처형 문화 사업가’이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문화 게릴라’라고 칭하고 있다.
방정환의 생애 마지막 순간도 이 책에서는 비교적 자세히 그리고 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직접적인 원인은 의학적으로 신장병과 고혈압으로 추측이 되지만, 그의 가까운 지인들은 당시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던 동아일보의 《신동아》 창간 공세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충격으로 급서했다고 증언했다. 유년시절 토지조사국에 취직하여 사자(寫字)생으로 지내던 시절 그의 동료이자 평생 마음을 나눈 유광렬의 회고기에 의하면 방정환이 병상에서 그에게 뱉은 말이 “내가 이렇게 간다니 창피해.”라고 하는데 평소 일제와 싸워 피를 흘리고 죽겠다고 했던 그의 말에 비춰보면 ‘억울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일생을 바쳐 어린이들의 미래와 조국을 위해 힘쓴 그의 정신력은 독립운동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소파 방정환, 그의 반짝이게 빛났던 삶의 성정은 후대에 남겨준 위대한 문화유산이며 그것을 계승해 나가는 것은 우리가 평생의 숙제처럼 무겁게 느껴야 할 책임이다. 더불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더욱 이 책을 통한 마음의 처방과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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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7 어제, 잠시 혼미한 정신이 되돌아왔을 때 친지들에게 몇 마디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남겨 놓은 말이 그대로 유언이 되고 말았다. 동료들에게는 “일 많이 하라”고 했고, 장남 운용에게는 “공부 잘하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어린이를 부탁해...”하고 꺼져 가는 말로 끝맺으며, 마치 만세 삼창을 하는 듯이 두 손을 서너 번 올리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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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은 만드신 분 이라는 것 외에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많은 업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이나 31세의 짧은 나이에 단명하신 분
민족주의자이며 독립운동가로 많은 일들을 하셨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분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 의암 손병희 선생의 사위이며 독립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라고 한다.
10살 무렵 소년입지회를 만들어 토론회를 열였다고 한다.
워런버핏도 11살에 투자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큰 인물들은 어릴때부터 남다르구나.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
아이들을 위한 호칭이 없어 비속어로 불리던 그 시대에 어린이라는 호칭을 만든 분인데
어린사람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린사람 ... 어른과 동일한 인격체의 단지 어린사람..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생각. 행동. 지식의 폭력을 쓰는 어른들이 많은데...
어려운 그 시대에도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어린사람 으로 대했다는 그 마음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시대에 어린이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어린이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당시에 이런 생각도 이런 실행도 하기 어려웠으리라...
33세에 단명하셨다.. 더 오래 사셨으면 얼마나 큰 업적을 이루셨을까...
마지막 유언은 어린이들을 두고 떠나니 잘 부탁한다는 마지막 메세지였다.
책을 통해 알게된 정말 귀하고 대단한 인물...
매일 뉴스에 보도되는 아이들 학대 사건들이 반복되는 현대 사회에..
어린이의 인권이 보호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이 나라의 미래이며 사회와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품고 교육하고 바르게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대 독립운동과정등이 묘사되어 있고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모든 자료룰 수집한 귀한 책이라고 한다.
어린이날을 만든 그 위대한 뜻과 의미를 알기에 좋은 책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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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었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날'을 어떤 의미로서 생각하기보다는 '쉬는 날'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어렸을때는 '방정환'에 대해 배우고 어린이 날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런데 그럼에도 사실 어린이날의 의미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아, 이번이 방정환 90주기 특별판이있었다. 그리고 방정환 90주기 특별판 이기에 이 책보다 방정환에 대해 잘 담은 책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한 인물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순히 어리이를 사랑하고 문학적 일을 한 분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과 노력을 하신 분이셨고 무엇보다 독립운동가였기에
방정환이라는 인물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대어ㅔ 대한 내용이 나오고 독립 운동의 과정과 다른 독립운동가에 대한 내용도 함께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어린이 날과 방정환이라는 이 책을 만날 때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을 넘어서 이 책은 역사`사회적 지식으로도 도움이 되는 유익한 책이다.
어렸을 때 위인전이나 교과서틀 통해 '방정환'에 대해 읽고 배웠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지금까지 기억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이 '방정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어린이들만의 배움이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린이 날에 대해 배우는 것이 단지 너어희가 아이들이기 때문이야 하고 말하지 않는 것 처럼, 른들도 쉬는 날이라는 생각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과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그 날의 의미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방정환'을 아는 것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방정환'이라는 인물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표현이 솔직히 많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지식의 부족이지 실제로 '방정환'을 말하는 수식어는 정말 많았다.
'진보주의자. 실용적인 생활 감각의 개혁파, 초대형 국제적 행사를 이끈 기획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문화 게릴라, 10개의 잡지를 발행하며 개벽을 꿈꾼 혁명가. 어린이 운동으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한 독립 운동가' 등등
읽으며 정말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방정환이 색동회 창립 멤버였던 것도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 제 1회 어린이날 선전문이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선전문 안에 어린이날의 약속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또한 책을 읽다가 알았는데, 내가 어렸을 때 불렀던 어린이날 노래와 1971년 당시 어린이날 모습을 담은 스케치에서 읽게되는 어린이날 노래를 달랐다.
마지막 까지도 어린이를 부탁한 정말 어린이들을 사랑한 방정환..
그리고 소파 방정환에 대해 다시 정리해서 알 고 싶다면 책의 뒷부분에 있는 '소파 방정환 연보'를 살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어린이날에는 아이와 어린이날에 대해 이야기 할때 쉬는 날 이상의 의미를 말해줄 수 있도록, 그리고 생각 외로 그 이유와 과정에 대해 궁금해 하는 똘똘이 어린이들에게 미루지 않고 바로 대답해 주기 위해 이 책을 부모님께서 먼저 읽어보신다면 부모님께도, 아이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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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지 100년. 세상을 하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어린이를 부탁해...”라고 말하며 떠난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고 어린이를 사랑한 민족의 스승이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서거90주년과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쓴 100년의 해를 맞아 뜻깊게 출간된 책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신 분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기발한 기획과 초대형 행사를 이끈 문화혁명가이며 신문보다 훨씬 많은 부수가 팔린 잡지를 만들어 낸 편집자이고 발행정지와 폐간 속에 40개 넘는 필명으로 글을 쓴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잡지(어린이)는 1923년 3월20일 소파의 나이 스물다섯 살 때 창간된다. 이로써 소파는 어린이운동 최선선에 나선다. 동경에서 색동회 발회를 논의하기 위해 첫 화합을 가진 것이 3월16일이니까 그로부터 나흘 뒤었다. 창간호는 46배판 12면에 푸른색 잉크로 박았다. 판형은 크고 부피는 얇았다. 매달1일과 15일 두 번 발행하는 격주간이며, 정가는 5전이었다. 애초에 창간 일자는 3월1일로 정했었다. 그러나 3월20일이 되어서야 나왔다. 소위 원고 검열하는 절차가 어떻게 까다로웠던지 <어린이>는 태어나자마자 검열과 삭제라는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어린이>지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에는 대가족제도·식사 준비·전통 의복과 주택의 개선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천한 실용주의자 방정환, 사회를 개혁하고자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으나 사상에 구속당하지 않은 진보주의자 방정환, 남녀가 다르지 않으며 계급에 따라 인간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평등주의자 방정환, 계급주의의 모순으로 희생당하는 민중을 염려하고 나약한 위치에 있던 여자와 아이들을 위하고자 애쓴 박애주의자 방정환 등 하나의 주의로 담을 수 없는 소파 인생의 장대한 감동 스토리가 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조선인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또 의암 손병희선생과 만해 한용운성생을 스승으로 만나 큰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습니다. 불우한 시대를 사는 소년들에게 희망을 되찾게 해주고 어린이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준 위인이었습니다.
동료들에게는 “일 많이 하라”고 장남 운용에게는 “공부 잘하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어린이를 부탁해…” 하고 꺼져 가는 말로 끝맺으며, 마치 만세 삼창을 하는 듯이 두 손을 서너 번 올리려고 했다. 그동안 너무도 몰랐던 위인 방정환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연해 집니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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