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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감동이 있는 소설집 - 세상의 B급 인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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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세상의 B급 인생들에게」라니? 왜 하필이면 B급 인생일까, 하는 의문에 이어 어떤 인생이 B급 인생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A급과 C급의 중간인 B급일까? 아니면 S급과 A급 다음의 마지막인 B급일까?(내가 다니는 직장의 성과급 등급이 S, A, B다.) 중간 등급이든 마지막 등급이든 B급이 최상의 등급, 곧 잘나가는 인생이 아닌 건 분명하다. 달리 표현하면 ‘갑’이
"재미와 감동이 있는 소설집 - 세상의 B급 인생들에게" 내용보기

책 제목이 세상의 B급 인생들에게라니?

왜 하필이면 B급 인생일까, 하는 의문에 이어 어떤 인생이 B급 인생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A급과 C급의 중간인 B급일까? 아니면 S급과 A급 다음의 마지막인 B급일까?(내가 다니는 직장의 성과급 등급이 S, A, B.)

중간 등급이든 마지막 등급이든 B급이 최상의 등급, 곧 잘나가는 인생이 아닌 건 분명하다. 달리 표현하면 이 아니고, 따라서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갑질을 당할 수 있는, 살다 보면 종종 속 터지는 일을 겪어야만 하는 의 인생이 B급이 아닐까? 이런 식의 짐작을 하며 책을 펼쳤다.

‘B에 대한 의문은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세상에 책을 펴내며에서 풀 수 있었다.

 

오래전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책이 필요했다.

 

당시 내 딸은 초등학생이었는데, 딸의 학교에 가족 소개서를 보낼 때마다 아버지의 직업란을 어떻게 채울지 늘 고민해야 했다. 과연 나의 직업은 무엇일까? 사실, 나는 많은 직업을 갖고 있었다. 광고 카피를 만들었고,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며, 자유기고가라는 명목으로 여기저기에 글을 싣기도 했다. 또 한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분야에서도 ‘A이 아니었다. ‘B이었다. 만약 한 분야에서 버젓한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내 직업으로 삼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직업을 적는 란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에둘러 작가라고 써넣곤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작가는 나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위장포였던 셈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딸의 담임선생님은 정말 내가 작가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딸에게 아빠가 쓴 책이 뭐냐고 물었고, 딸은 당연히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대답했을 턱이 없다. 그때까지 내가 쓴 책은 대필한 것 말고는 단 한 권도 없었으니까. 나는 딸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부랴부랴 책을 펴내기로 했다. 다행히 한 보험회사 사외보에 몇 년간 격월로 200자 원고지 약 40매 분량으로 콩트를 써왔던 터라, 그 졸고를 짧은 소설로 묶어 출판하면 내 딸도 우리 아빠 책 이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7~8p)

 

이렇게 해서 바로 책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나오게 된 하나의 계기라고 한다. 계기가 소설 같다. 재미있으면서 짠하다.

작가는 자신을 어느 한 분야에서도 버젓한 능력을 갖지 못한 B급 인생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썼던 글에 대해서 B인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콩트 혹은 작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B의 시선으로 옮겨놓은 것(9p)이라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어차피 세상은 나 같은 ‘B이 태반 아닌가. 어차피 세상은 이런 ‘B들이 우리가 되어 만들어 가는 것 아닌가. 하여, 그 책 속의 글들이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감히 상상해 보았다. (중략) 책으로 만들어 세상의 ‘B인생들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B답지 않은 용기를 내본 것(9p)이라고.

 

이런 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책이 세상의 B급 인생들에게이다.

이 책에는 6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6편이 모두 짤막하고 쉽게 읽을 수 있다. 한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책을 내려놓기 힘들 만큼 재미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작가가 세상에 책을 펴내며에서 밝힌 것처럼 소설 속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혹은 주변 이웃의 이야기 같아서, 남 일 같지 않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나 할까.

 

가장 재미있었던 한 편을 고르라면,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꼽겠다.

<K의 뮤직토크라는 라디오방송을 진행하는 DJ의 토크 형식으로 서술된 이야기다. “여러분, 한 주 동안 안녕하셨어요? K의 뮤직토크 K입니다.”로 시작해서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세요.”로 끝난다.

주인공은 푼수 같으면서도, 거리낌이 없는 수다가 애틋하면서도 정겨운, 그래서 푸근하게 느껴져 사랑하고 싶어지는, 40대 중반의 아줌마 라방 DJ이다. 이 여자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대입에 실패한 재수 시절, 무도장에서 만난 대학생 남자에게 여대생인 것처럼 신분을 속이고 만난 이야기, 대학 때 꿈이 방송국 아나운서였고, DJ가 되어 FM 방송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 29살에 다시 만난 재수 시절의 그 남자에게 먼저 청혼한 이야기, 남편이 회사 사표 낸 후 집 담보로 벌인 사업에서 실패한 이야기, 자랑스럽게 내세울 게 되지 못하는, 그러나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몇 명일지도 알 수 없는, 많지 않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뮤직토크를 진행하는 내용이다.

작자의 말에 따르면 주인공은 B급 인생이다.

인상적인 부분 몇 군데를 옮겨보면,

 

내일모레면 마흔 중턱인데 남사스럽게 추억이라니요. 하지만 아줌마라고 지나온 시간을 되새김질하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여러분들도 괜히 창피하게 여기지 말고 남편 몰래 감춰둔 첫사랑의 추억을 끄집어내보세요. 이런 상상의 불륜은 추하지 않고 순수하며, 때로는 무료한 중년의 삶을 자극하는 활력소가 된답니다. (41~42p. 오프닝 멘트의 일부)

 

아이고, 또 실수를 했네요. 노래 나가는 도중에 휴대폰 벨 소리가 너무 컸죠? 그래요, 평소엔 절대 오지 않는 전화가 이럴 땐 꼭 걸려오죠. 딸아이 학원 선생님인데, 저번 달 학원비가 밀렸다고 하네요. , 이상하네. K가 그런 걸 빼먹을 성격이 아니거든요. 방송 끝나면 가계부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겠네요. 거듭 죄송하고요, 얘기 계속할게요. (50p. 음악이 나가는 도중에 잡음이 끼어든 상황으로 거기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는 게 애틋하면서도 정겹다.)

 

실수투성이이지만 여러분들과 이렇게 얘기도 하고 노래도 같이 듣고 있는 거죠. 방송국 DJDJ인가요? 라방 DJDJ이지요. 그래요,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은 멀리 있겠지만, 꿈을 찾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아요. (중략) , 이제 K의 이름을 밝혀야겠죠? 마흔 중턱에 존재와 꿈을 다시 찾은 아줌마 저 K의 이름은 대한민국 여성들 이름의 클리셰 김말순이에요. , 김말순 여러분에게 이 말을 마지막으로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이 순간 조금 힘든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인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고 이렇게, 지금 여기에 살아있으니까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입니다. (56p. 엔딩 멘트)

 

자전거 도둑은 소심하면서 인정 많은 B급 아빠에 관한 이야기이다. 앞에서 알아본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도 주인공이 사업에 실패한 남편에게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따뜻한 작품을 들라면 자전거 도둑을 꼽겠다. 참고로, 자전거 도둑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이전에 많은 소설가가 썼던 제목이다. 얼핏 떠오르는 작가로 박완서, 김소진 작가가 있다. 그 이전에 2차 대전 후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도 있다.

매사에 대강 대강한다고 대강 대강 아빠로 불리는 아빠는, 어느 날 딸과 외출했다가 딸의 자전거를 잃어버린다. 그러다가 자전거를 훔친 범인을 잡게 되는데 도둑의 거짓말을 듣고 놓아주고 온다. 자전거를 훔친 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그 아이가 받을 상처를 걱정해서 도둑인 줄 알면서 놓아줬다는 변명을 하는 아빠. 당연히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화를 낸다. 여기까지라면 이 소설은 하나도 재미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묘미는 반전에 있다.

 

, 거참, 별일도 다 있다. 아빠는 엄마한테 앞으로 절대 대강 대강안 살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엄마가 되려 대강 대강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희소식이 있다. 엄마가 네 자전거 다시 찾아왔다.

구제 불능 아빠 대신 엄마가 만화책을 대신 반납하러 갔는데, 우리가 아까 잃어버렸던 자리에 자전거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편지 한 통과 함께. 물론 그 편지는 네가 미워하게 된 할머니가 쓴 것이다. (73p)

 

할머니는 자전거를 훔친 아이의 할머니인데, 편지에서 자전거를 결코 훔친 게 아니라 한 번 손자에게 태워주고 가져다 놓으려 했다는 사정과, 훔친 게 아니라 자기 자전거라고 거짓말을 하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며 미안한 마음을 밝힌 것이다. 도둑질한(사실은 오해지만) 아이를 배려하는 아빠,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할머니, 모두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이루어진다면 근친상간이 될, 첫사랑 갑희 고모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가피고모.

같은 직장 내에서 위계 관계에 있는 세 사람이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직장 내 서열이 가정으로까지 이어지며 그 과정에서 사표를 내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결국은 회사를 계속 다닌다는 내용의 ‘502’, ‘803’, ‘501’도 재미있었다.

 

사실 세상에 책을 펴내며를 읽으며 이미 감지했었다. 이 책 재미있을 거라고.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나도 B급 인생인가 봐, 너무 재미있다. 완전 꿀잼이다. 이 소설가, 이런 소설 계속 쓰면 팔릴 것 같은데 왜 스스로 B급이라 낮추며 책을 더 안 내는 거지?’ 이런 생각도 했다.

(문학평론가들이 말하는) 문학성? 이런 거는 모르겠다그렇지만 이 소설들 정말 재미와 감동이 있다는 것,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t*******1 2022.07.07. 신고 공감 4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