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5%
  • 리뷰 총점8 7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신도의 교제 가운데 거하시는 그리스도
"신도의 교제 가운데 거하시는 그리스도" 내용보기
본회퍼는 잘 아시다시피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1945년에 독일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의해서 처형된 신학자입니다. 그가 한 말 가운데 "운전기사가 미친 사람이어서 전 승객이 위험할 때 누군가는 그 운전기사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말은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 로마서13장에 나타난 "위정자에 대한 굴복"에 대한 종래의 해석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1970-80년대 한국에도 그의 사상의 영향
"신도의 교제 가운데 거하시는 그리스도" 내용보기
본회퍼는 잘 아시다시피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1945년에 독일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의해서 처형된 신학자입니다. 그가 한 말 가운데 "운전기사가 미친 사람이어서 전 승객이 위험할 때 누군가는 그 운전기사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말은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 로마서13장에 나타난 "위정자에 대한 굴복"에 대한 종래의 해석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1970-80년대 한국에도 그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많은 젊은 투사들이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본회퍼 자신도 히틀러의 비밀암살조직에 가입을 했고, 그것이 발각되어서 결국 투옥,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투옥된 가운데에서도 결코 그리스도인으로서, 목사로서, 신학자로서의 면모와 의무를 망각하지 않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삶으로써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계속 집필을 하여 그가 죽은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작품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사상이 이처럼 치열하고, 격렬한 것이라 생각되기 쉽지만 제가 읽은 [신도의 공동생활]은 의외로 매우 차분하고, 정돈된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교제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교제한다는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나와 형제를 모두 사랑하셨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나도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라고 말합니다. 즉, 본회퍼의 교회론은 그리스도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본회퍼의 "그리스도 강조"에 대해서 극단적인 사람은 본회퍼를 "단신론자"라고 일컫기까지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통해서 서로 교제할 때 그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이 책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본회퍼는 "경건을 위한 교제, 섬김"은 결국 이기적인 동기로 귀착된다고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낮아질" 수 있고, "섬김"의 봉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본회퍼는 그 원형을 그리스도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심으로써 낮아지셨고, 사람들의 천대를 받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때 우리도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본회퍼는 말합니다. 본회퍼는 이와 같이 "성도의 교제"의 성격이 심리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임을 말하고는 성도가 함께 하는 하루가 어떠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아침경건회를 통해서 먼저 시편으로 기도하고, 새노래로 찬양하며, 말씀을 함께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일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노동과 식사를 통해서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홀로 지낼 때에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고독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나눔에 있어서 조심해야 하고, 나눔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고독에 있어서 주의하라"고 말하는 그는 이 두 가지가 결코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우리가 익혀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홀로 있음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성도와 함께 "나눔"을 가지면서 그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헨리 나우웬이 "고독, 침묵, 기도"의 영성을 말하는 것과 유사하지만, 나우웬이 크게 강조하지 않는 "성도의 교제"에 대해서 본회퍼는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나우웬이 개인주의적인 영성으로 그칠 위험이 있는 것을 우리는 본회퍼를 통해서 약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k******0 2002.06.29.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함께 또 홀로
"함께 또 홀로" 내용보기
사실 이 책은 대학생때 한 번 읽었었다가 이번에 다시 보게된 책입니다. 철없던,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생 때 읽었을 때랑 지금 읽어보니.. 느낌과 깨닫는 바가 많이 다르네요. 본회퍼는 잘 아시다시피 독일 사람입니다. 특히 세계대전 중 히틀러에게 야합하여 침묵하고, 히틀러를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학을 제공하는 독일 교회에 분개하며....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가
"함께 또 홀로" 내용보기
사실 이 책은 대학생때 한 번 읽었었다가 이번에 다시 보게된 책입니다. 철없던,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생 때 읽었을 때랑 지금 읽어보니.. 느낌과 깨닫는 바가 많이 다르네요. 본회퍼는 잘 아시다시피 독일 사람입니다. 특히 세계대전 중 히틀러에게 야합하여 침묵하고, 히틀러를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학을 제공하는 독일 교회에 분개하며....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는 신앙과 신학 만큼이나, 실천적인 삶을 살았기에 존경받는 사람이죠.... 이 책은 제목 그대로에서 나타나듯이 신도들간의 공동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저자가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함께있는 삶 만큼이나 홀로 있는 삶이 중요하며, 홀로있는 삶 만큼이나, 함께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홀로있음 없이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없고, 함께 살지 않으며, 참된 홀로있음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공동체 생활 가운데, 함께함과 홀로있음의 균형을 이야기 합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제 눈에 들어온 부분은, 형제들, 자매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입니다. 저자는 이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섬겨야 하고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여기며 섬기고 도와야 한다는 것이죠. 지극히 작은 사람 한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가족들을 섬김으로서 예수를 섬기는 것이라는 겁니다. 형제 자매들의 중요성이 단지 여기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를 죄의 용서라는 차원까지 확장시킵니다. 하나님께만 은밀하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죄의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 죄를 잠시 덮어두려는 자기 기만이고 자기 최면이라는 겁니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은 죄 용서에 대한 확신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인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고백하게 그들이 우리를 용서할 때에만 참된 용서의 확신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속에서 보려했다는 시도는 굉장히 새롭고 눈여겨 볼것이 아닌가 합니다. 성경에서도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형제자매들에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처럼.. 사랑의 실천 문제를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용서의 문제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a*******e 2005.03.2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도의 공동생활
"신도의 공동생활" 내용보기
등록일 2009.02.21 01:51   작년 엘더 마감하는 모임할 때, 유재경 목사님께서 주신 책. 유목사님 평소 생각과 신념에 비추어볼 때,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책일거라 생각했다. 울림있는 그의 나눔을 요약함으로 review를 갈음한다.   ========================================================= 사람의 '이웃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사람은 이 사랑으로 굉장한 희생을
"신도의 공동생활" 내용보기

등록일 2009.02.21 01:51

 

작년 엘더 마감하는 모임할 때,

유재경 목사님께서 주신 책.

유목사님 평소 생각과 신념에 비추어볼 때,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책일거라 생각했다.

울림있는 그의 나눔을 요약함으로 review를 갈음한다.

 

=========================================================

사람의 '이웃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사람은 이 사랑으로 굉장한 희생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웃사랑은 그 열렬한 헌신으로 보나 나타나는 결과로 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능가하는 일이 많고, 그 사용하는 용어는 그리스도교적인 용어로 사람을 압도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런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비록 나의 전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내 몸을 불사르게 한다 하더라도" - 다시말해 내가 최대의 헌신과 함께 최대의 사랑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 사랑(곧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고전 13:3).

 사람의 자연적인 사랑은 자신을 위해 남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영적인 사랑은 그리스도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연적인 사랑은 남과 직접 접촉하려고 합니다. 그 사랑은 남을 자유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매인 사람으로서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어떻게든 상대방을 소유하려고 하고 정복하려고 합니다. 그 사랑은 남을 압도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사람의 자연적인 사랑은 진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오히려 진리를 상대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까닭인즉 사람의 사랑과 그 사랑을 받는 사람과의 사이에는 아무것도, 심지어 진리마저도 끼어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랑이 갈망하는 것은 상대방이요, 그와의 사귐이요, 그에게서 돌아오는 사랑일 뿐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 사랑은 남을 섬기는 것같이 보이는 때에도 오히려 자기의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 두 가지 점에서 영적 사랑과 사람의 사랑이 구별됩니다.

.............

그리스도가 나와 남 사이에 서 계시기 때문에, 나는 남과 직접적으로 사귀는 것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내가 내 사랑으로 남을 이래라 저래라 휘두르려고 한다든가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노력을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나에게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그를 위해서 사람이 되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고, 그를 위해서 죄사함을 먼저 받으셨고, 영생을 마련해 주신 그런 사람으로서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

x*****5 2014.11.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본 회퍼
"본 회퍼" 내용보기
사신신학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그를 사신신학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런 말들을 들을지라도 그가 행하는 그리스도인, 행함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주창한 것은 실로 후예들이 겸허히 받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로서, 우리는 그 현실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본 회퍼" 내용보기
사신신학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그를 사신신학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런 말들을 들을지라도 그가 행하는 그리스도인, 행함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주창한 것은 실로 후예들이 겸허히 받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로서, 우리는 그 현실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은 사귐의 사람들이다. 이는 이상의 아니라 현실이다. 거청한 구호가 아니라 삶의 정황에서, 삶의 자리에서 행해야 할 삶이다. 이유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우리에게 친히 보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자연적인 사랑은 자신을 위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영적인 사랑은 그리스도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사랑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참된 사랑을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형식과 의식과 과식적인 사랑을 하는 현 시대에 던지는 저자의 질문이다. 영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까닭에 원수를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형제 사랑을 의무가 아니라 주 예수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우리가 주 예수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사랑하는 자이다. 사랑은 성도의 의미가 아니라 사실은 본질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사귐이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과 만나는 자이다. 섬김은 성도의 근본이다.
k****e 2005.11.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