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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들어온 지 며칠 안 지난 듯한데 이미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스치듯 안녕’을 고하는 월급이 야속할 지경이다. 허나 이는 나의 지출 행위가 있었기에 빚어진 일. 어디에 얼마의 비용 지출이 이루어졌는가를 살피다가 이내 놀란다. 유튜브,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등 주기적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꽤 많았다. 금액이 1만원, 2만원 등으로 자잘하다는 점으로부터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구독 중단을 선언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비용을 납부해야 함에도 그랬다. 만일 이를 단번에 구입하려 들었더라면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다. 도입되는 새로운 업데이트들이 가감없이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새 나는 나의 소비 합리화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와 같은 소비 패턴은 존재하지 않았다. 목돈을 모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소비의 가장 기본이었다. 남들은 지니지 못한 걸 나는 가졌다는 사실이 주는 뿌듯함도 상당했다.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 음악의 경우, CD를 구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나 이상 가입해 이용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갓 개봉한 영화를, 그것도 다수를 볼 수 있다. 정말 작품성이 뛰어나다거나 자신이 사모하는 배우가 등장해 소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더라도 구입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구독, 자유를 팝니다>는 잍처럼 달라진 소비 패턴을 꿰뚫은 책이었다. ‘구독경제’라는, 예전엔 존재치도 않았을 용어가 어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었는지, 책을 읽으면서 차츰 이해할 수 있었다. 구독이라 칭하지만 다 같은 구독이 아니었다. 번들형, 편의제공형, 무제한 접근형, 새로운 경험형, 문제해결형 등 총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저자는 구독의 모델을 정의했다. 용어의 정의만을 살펴서는 다소 난해할 수도 있으나, 이미 나부터가 이 중 여러 유형의 구독을 삶에 들인 터였다. 이를 테면, 아이폰을 사용하는 나는 음악, 영화, 게임 등이 하나로 묶인 애플 사의 구독 서비르를 이용 중인데, 이는 일종의 번들링으로 볼 수 있다. 매우 저렴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제공 받는 모든 서비스를 개별 가입하는 거보다는 확실히 효율적이기 때문에 포기가 안 된다. 정해진 빈도만큼 아침이면 현관 문 앞에 신선한 채소 등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의 경우에는 편의제공형이라 할 수 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장을 봐야 하는 직장인들의 수고를 대신해주는 이와 같은 서비스에 많은 이들은 지갑을 열기 마련이다. 휴대폰으로, 컴퓨터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도 서비스를 이용 가능하다면 이는 무제한 접근형에 속한다. 책에서는 전용 게임기의 버전이 낮아도, 자신이 게임 소프트웨어를 소지하고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례를 소개했는데, 기기 판매 측면에서는 손해일 듯함에도 소비자들의 수요가 상당한 듯했다. 이 외에 새로운 경험형, 문제해결형도 사례들이 마냥 낯설지는 않았다. 외려 이미 충분히 활용 중인 부분의 이론화가 뒤늦게 이루어진 거 같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소비자의 편의 못지않게 공급자의 수익 창출 면에서도 구독 모델은 긍정적이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 많은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봉착하거나 실제로 무너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이를 구입하도록 만들어야지만 금전화가 가능한데, 모든 게 움츠러든 시기인 만큼 소비자들의 지갑 또한 닫혀버린 탓이 컸다. 구독 분야는 오히려 성장했다. 구입에 비한다면 금액이 낮을 수 있으나, 매달 혹은 매년 등의 주기를 갖고 구독자들은 돈을 납부한다. 구독 중단을 선언하기 전까지 이들은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을 돕는 충실한 고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신제품을, 그것도 다량 판매해야만 하는 압박에 그간 시달렸다면, 지금은 개별 구독자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고객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공급자가 늘었다.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구독경제라 하여 전적으로 찬양할 수만은 없다. ott 서비스를 예로 든다면, 적잖은 이들이 비슷한 서비스를 3-4개씩 구독해 이용하고 있다. A사에서 볼 수 있는 영화와 B사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로지 A사만을 이용 중인데, B사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한다면, 그 때마다 A사 구독을 멈추고 B사 구독을 시작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 역도 사정은 같다. 넘치는 ott 서비스가 주는 피로도는 상당하다. 이를 통합해 하나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작업이 어디선가 이루어질 듯도 하지만, 과연 개별 회사들이 소비자 편의를 위해 통합 모델 구축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변화의 중심에서는 실체 파악이 어렵다. 한 때 열풍이었던 많은 시도들을 떠올려본다. 자본주의 사회를 대체할 줄로만 알았던 공유,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등의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아니었으며, 오로지 보조금에만 의존하는 식의 경영으로 일관했다가는 살아남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이들의 성장세를 방해했으며, 정권이 바뀌면서 다른 측면을 중시하기 시작하자 이들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구독경제는 건재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껏 오르막길이었다면 조만간 내리막길이 등장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디 즈음을 걷고 있는지, 우리 중 누구도 정확히 알진 못한다. 그럼에도 구독경제는 매력적이다. 너무나 세련되게 나의 돈을 야금야금 꺼내가는, 지금 나는 “항복”을 외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