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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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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통해 크리스천들에게 경종을 울리셨던 옥성호 대표님께서 이번엔 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 편을 통해 다시 한번 강력한 질문을 던집니다.   갑각류 크리스천 레드가 한국 교회 내부의 문제점과 죄들을 지적하고,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이 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겉과 속이 다른 교인들의 상태를 지적했다면, 이번 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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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통해 크리스천들에게 경종을 울리셨던 옥성호 대표님께서 이번엔 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 편을 통해 다시 한번 강력한 질문을 던집니다.
 
갑각류 크리스천 레드가 한국 교회 내부의 문제점과 죄들을 지적하고,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이 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겉과 속이 다른 교인들의 상태를 지적했다면, 이번 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에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고 백지 상태의 신앙을 최고의 믿음으로 여기는 교인들의 상황을 들춰냅니다.
 
우리에겐 도저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이 부분을 파고들어 성도들을 미혹하기도 했고, 사실 천국에 가고 나서야 분명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주일예배 때 떠 먹여주는 메시지만으로 만족하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무지와 회피를 믿음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은 불합리한 것들 투성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메시지에 동의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도저히 이 말씀에 아멘이 나오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나 불공정하고, 이렇게나 원칙 없이 돌아가는 데 어떻게 선이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누군가는 선의 열매를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다가 죽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 책에도 그에 대한 답이 나오진 않습니다. 이 책도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다만 그동안 우리가 바라봤던 방향과는 조금 다른 쪽에서 바라보며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은 어떤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쓰여졌다기 보다는 한 방향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당신이 택한 그 관점이 정말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냐고 되묻는 책입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를 만난 힘든 상황, 그 어느때보다 신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신 그 자체로 위로를 받지만, 누군가는 지적인 해답과 이 상황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전자의 경우를 지향점으로 삼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외쳤고, 이 책처럼 후자의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소수에 그치거나 불경건한 신자로 낙인찍히곤 했습니다.
 
전자를 후자로 바꾸기 위해서, 혹은 후자를 전자로 바꾸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향점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를 그저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결국 한국 교회를 무너뜨리게 될까요? 아니면 더 건강하게 만들까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기존 한국 교회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내는 이 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떤 부분에서 한국 교회가 사람들의 질문을 외면해왔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질문을 포기하고 살아오진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이 실제론 얼마나 신학적으로 포장되고 위장되었던 것인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위선적인 모습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덧씌운 갑옷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남탓이 아닌 내 자신을 돌아보며 좀더 진실된 믿음에 대해 고민해보아야겠습니다. 진짜 믿음은 게으름과 두려움 그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w********0 2022.06.0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갑각류 크리스천』천국에서라도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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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천국에서라도 행복하길     1.   거두절미하고, 이 책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과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가?”에 대한 핵심방점이 찍혀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예수에 대한 다양한 의문을 저자의 의문과 함께 풀어놓았다. 하지만, 명쾌한 해답을 설명해 놓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설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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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천국에서라도 행복하길

 

 

1.

 

거두절미하고, 이 책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과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가?”에 대한 핵심방점이 찍혀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예수에 대한 다양한 의문을 저자의 의문과 함께 풀어놓았다. 하지만, 명쾌한 해답을 설명해 놓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설명하는 대신, 내가 생각한 바로, 다소 잘난 척 하는 리뷰를 써 보려 한다.

 

 

2.

 

죽기 전에 일 초의 시간만 있으면 돼. 그때 믿고 천국 가면 되니까.” - p.267

 

맞는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핵심방점은 아마 이걸 것이다. 그때 믿고 천국 가면 되니까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동의한다.

 

 

3.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때까지 막 살다가 천국에 가면 되겠네요?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과연,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 비록, 순간적 즐거움과 쾌락에 취해, 하루하루 의미없이 즐기는 날들은 많았어도 그 하루하루의 삶의 끝에는 허무함이 있었을 것이고, 후회만 남은 삶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던 삶이 후회스러워서 결국은 죽기 직전에 회개를 하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설명 하나를 더 덧붙인다.

 

 

4.

 

사람들은 악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또 오래 살기까지 한다고 이 세상은 잘못되었다고 한탄을 한다. 하지만, 이조차 하나님의 넓은 뜻이라면 오해가 더 생기는 걸까? 그들은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다. 이대로 죽는다면, 그들을 좀처럼 천국에 데려갈 수가 없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래서, 회개를 좀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때로는 그들을 오래 살게 내버려 두시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옥에 간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게 나의 논리다.

 

 

5.

 

그렇다. 이 모든 논리의 전제는 모든 사람은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이다. 그리고 회개하는 그 순간, 사람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갑각류 크리스천에서 표현한 다소 모호한 이야기들은 아마도 이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 죽기 전에 조금 더 일찍,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다가 갔다면, 일생 동안 못된 짓만 하다가 간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기에,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을 간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천국에서라도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진정 예수님을 진정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라 생각한다.

 

 

6.

 

우리 삶에서 진정한 행복한 삶이 있어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기를. 그래서,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도의 리뷰를 올립니다.

 

 

- 글의온도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h******o 2022.05.27.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022-49]당신은 포유류입니까? 갑각류입니까?(갑각류 크리스천:화이트편_옥성호/글의온도)
"[2022-49]당신은 포유류입니까? 갑각류입니까?(갑각류 크리스천:화이트편_옥성호/글의온도)" 내용보기
코로나19의 시기를 2년 넘게 지나온 우리다. 그 몇 년이 여태까지 우리가 드렸던 예배, 모임, 구제, 전도 등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안 됐고, 설교하는 목사님의 얼굴은 매체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만날 수도 없으니 복음을 전하는 건 당연히 꿈꿀 수 없었고, 나 자신도 추스르기 힘든 시기에 누군가를 돌아볼 여력이 없던 시기였다.   일상은 더 이상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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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시기를 2년 넘게 지나온 우리다. 그 몇 년이 여태까지 우리가 드렸던 예배, 모임, 구제, 전도 등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안 됐고, 설교하는 목사님의 얼굴은 매체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만날 수도 없으니 복음을 전하는 건 당연히 꿈꿀 수 없었고, 나 자신도 추스르기 힘든 시기에 누군가를 돌아볼 여력이 없던 시기였다.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이상이 되었고, 우리가 꿈꾸는 상상이 되어 머릿속을 떠돌았다. 결국에 우리에게 남은 건 무력함이었고, 무기력함이었다.

 

조금씩 일상으로의 회복을 시도하고 있는 현재는 2022년 6월이다.

우리 교회도 이번 주일부터 모든 모임이 재개됐고, 교회 식당이 이전과 같이 점심을 제공했다. 주일 예배의 주보를 꽉꽉 채웠던 모든 예배가 이제는 우리 주일의 시간을 꽉꽉 채울 차례였다. 그동안 우리가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희망했던 날이 드디어 왔다.

그러나 코로나가 닥쳤을 때, 교회에 가지 않고 멀뚱히 화면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던 우리가 그랬듯이, 지금은 '나오라!'라고 재촉하는 교회의 목소리에 우리의 발은 멀뚱히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기독교적 부흥의 시기를 지나고, 코로나라는 침체와 무력의 시기를 지나며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었다.

교회에서는 무언가 섬기는 자로, 누가 봐도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기도하자!"라고 말하는 모습의 내가 진짜 크리스천의 나일까? 마음속으로는 '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올해까지만 하고 리더는 내려놔야겠다!'하는 마음이 가득한데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찬양을 부르는데 그게 크리스천인 나의 진심인가? 내 속에 여러가지가 뒤섞여 텁텁하고 어색한, 찜찜하게 언행이 불일치한 모습에서 내 진심을 솔직히 보고 싶었다. 내 속을 정직하게 바라보면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시기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 한 걸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옥성호 님의 책을 들었다.

 

얼핏 '옥한흠'목사님의 아드님이란 소개 글을 보고, 당연히 목사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로 술을 멈추고 살았다고? '예수님'이라는 호칭이 아닌 '예수'라고 제3의 인물을 부르듯 칭하는 책 곳곳에서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불안하고 걱정되었던 게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의 현모습을 이야기하고, 말씀 구절과 간증이 곳곳에 배치되는 구성을 가진 기존의 신앙서적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한국의 기독교 출판 서적들은 그랬으니까.

 

하지만, 창조와 진화, 그리고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많은 필사자들의 손을 거쳐왔던 순간들, 우리가 기독교 최고의 지성이라 불러왔던 C.S. 루이스의 지옥에 대한 관점 등 생각보다 깊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모든 의문과 의심을 거두절미하고 '아멘!'하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렸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했다. 기독교적 지식과 분위기에 해박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가 자라온 환경이 한몫했다. 은혜와 용서라는 거창한 단어로 죄를 회피하고 외면하는 기독교에 'No!'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예리하고 성찰하는 성격이 두 몫 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매 챕터가 우리가 덮어왔던 회피했던 기독교의 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심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7장 '책을 생각한다' 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때 읽고 생각하는 크리스천 지성인이라고 자처했던 IVF(한국기독학생회)에 있었던 나였지만, 대학 때만큼 기독교에 심도 있게 읽고 고민해 보고 싶은 마음이 현재는 제로에 가깝다. 인문학 책을 심층적으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찌 된 것인지 기독교와 철학, 기독교와 문화, 기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는 내게 현실이 아니라 과거이고 뜬구름 잡는 저 먼 세상의 이야기와 같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하나님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닌 걸까? 인문학이 우리 삶의 지혜가 되고 통찰을 던져주지만, 성경은 우리의 삶에 아무것도 던져주지 않는 신화와 같은 책이 되어 버린 걸까?

생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상처와 감정에 전에도 지금도 머물러 도와달라고만 하는 그리스도인, 찬양, 멋진 음악이 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말씀도 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여기서 멈춰야만 하는 걸까?

(기독교 관련) 책을 읽지 않는 나, 그리고 나 같은 그리스도인들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기독교 출판사...

너무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결론짓고 등 돌려 내 삶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나의 뻔한 모습이 씁쓸하고 슬프다. 미안하다. (이 책을 읽었으니 조금은 변화를 기대할만할까?)

 

기존에 우리가 기독교 지성으로 '추앙'하던 C.S. 루이스, 필립 얀시, 존 스토트 등.

그들의 말과 글을 그들의 명성으로 그저 믿고 의지했던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게 됐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 같고, 그들이 주장한 바들이 기독교의 진리인 양 취급하고, 그들의 이름으로 나 또한 인정받고 싶었던 속내들을 인정하고 부끄러워졌다. 요즘의 기독교가 비상식의 선을 걷고, 그것을 진리인 양 (No 의심, No 판단) 극단을 따라가는 모습이 함께 생각났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말씀' 그 자체이지, 어떤 사람이나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독교를 떠나 인문학의 그럴듯한 말과 글을 따라가는 내가,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세상의 책들에서, 유튜브에서 뱀과 같은 지혜만 영리하게 취하는 것이 아닌 삶의 중심까지 세상과 인문학에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옥성호 님이 우리가 아는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니어서 충격을 받았지만, 저자가 기독교인으로 개인의 삶과 교회에 덮여있는 속마음과 실상을 적랄하게 보여주므로 기독교의 실태를 고발한 건 너무나도 환영할만했다. 기독교와 교회의 파렴치하고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은 치를 떨며 혐오하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향한 갈망은 진실하고 간절한 건 당연하고) 한국의 '기독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다는 게 이 책을 통해 전해졌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 중에 가장 끔찍한 경우가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내가 맞는다는 생각에서 단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 내가 옳다는 데에서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의심은 나에게서, 내가 가진 확신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의심하는 사람은 내가 틀릴까봐 두려워하지도, 틀렸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틀림은 결과적으로 옳음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도록 할 뿐이다. 의심은 이처럼 느리지만 결국은 자유로 이끄는 바른 길이다. p.102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죠?' 라는 질문의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가진 사람이 더 읽어봤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사람이고, 잘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잠깐의 시간을 내어 책으로 고민하고, 하나님께 물으며 이 책을 읽었봤으면 좋겠다. 육체가 사는 인생이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존재의 중심이 곧, '영혼' 아닌가?

흔들리고 부딪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두려움으로 피하지 않고, 때로는 부딪혀보고 흔들려봄으로 기존의 기독교를 의심하고 더욱 굳건해지는 크리스챤이 많아지길 소망해본다.

 

**옥성호님의 비유와 표현은 분명 어려울 수 보일 수 있는 기독교적 사실과 지식을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책에 대해 수정하고 싶다는 발언(p.175),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p.101)'라는 식의 표현은 책의 전문성이나 무게감이 떨어지게 하는 듯 보여 아쉬웠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s********7 2022.06.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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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화이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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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교 칼럼집이라기 보다는 글의 길이가 좀 더 긴 기독교 비평 에세이집 (중수필)정도라고 보면 될듯 싶은 책이다,   글의 문체 스타일이 자유 분방하며 때론 오늘날 상황에 빗대어 적절한 유머가 엿보이고 실랄한 풍자, 논증적 비교 비평이 가득하여 가독성이 뛰어나면서 특히 작가의 해박하고도 방대한 기독교 관련 서적 독서량(수많은 인용과 참고 도서 소개를 통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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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교 칼럼집이라기 보다는 글의 길이가 좀 더 긴 기독교 비평 에세이집

(중수필)정도라고 보면 될듯 싶은 책이다,

 

글의 문체 스타일이 자유 분방하며 때론 오늘날 상황에 빗대어 적절한 유머가

엿보이고 실랄한 풍자, 논증적 비교 비평이 가득하여 가독성이 뛰어나면서

특히 작가의 해박하고도 방대한 기독교 관련 서적 독서량(수많은 인용과 참고 도서

소개를 통해)에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서초의 모 대형교회 개척 유명 목사의

자제분으로 미국 유학파이면서 기독교 출판 전문가로도 잘 알려진, 이른바

'기독교 돌직구 작가' 이기 때문이다,

 

책은 한국 기독교계에 관한 비평과 더불어 기독교 바이블의 교리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독교 출판에 관련한 문제점, 그리고 인류 최대의 난제로도 꼽히는

다양한 바이블 딜레마 등에 관해서도 심도있는 질문을 던지며 논증적 서술을

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구약시대처럼 다른 이를 정죄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만

옳다고 하며 다른이에게 충고하는 것이 마치 우월적 특권인양 누리는 사람들,

즉 요즘 말로 '내로남불'에 익숙한 이중잣대 크리스천을 언급하며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자신'이라는 껍질을 벗지 못하는

성도로서,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른바 '갑각류 크리스천'(화이트편)으로

명명되는 작금의 현실을 실랄하면서 논증적 필력으로 서술하고 있다,

 

책은 도덕적 수준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는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계를

바라보며 특히 죄책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오히려 힘이 된다는 기독교를

다시 되돌아보며 생각하게 만드는 챕터들의 연속이다,

 

기독교 작가인 저자가 한국 기독교계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얼마나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글의 온도가 느껴진다,

 

믿음과 의심이 교차한다는 기독교는 과연 생각의 종교인가 느낌의 종교인가?

 

 

*YES24의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했습니다,

j***5 2022.06.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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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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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써 작가님의 이름을 접하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과 관련(?)이 되시는 분이었다.  옥한흠목사님의 장남으로 태어난 작가님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독교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 접하면서 자라왔던터라. 기독교를 누구보다 잘알고 계실터이다.  그런 작가님이 코로나시국을 지나오면서 느낀 크리스천의 나가가야 할 바를 정리한 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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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써 작가님의 이름을 접하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과 관련(?)이 되시는 분이었다. 
옥한흠목사님의 장남으로 태어난 작가님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독교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 접하면서 자라왔던터라. 기독교를 누구보다 잘알고 계실터이다. 
그런 작가님이 코로나시국을 지나오면서 느낀 크리스천의 나가가야 할 바를 정리한 책이라고 봐도 무난할 듯 하다. 
작가님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왜?"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로 시작한 마음은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지로 질문이 바뀌면서 한 단계 성숙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등껍질 단단한 갑각류라 왠만한 외부 충격으로는 그 속살을 보호할 만큼 단단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자칫 그 갑각이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연한 속살을 그대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할 수도 있으니... 단단한 껍질 속 속살도 단련하고 또 단련하여 단단한 근육을 키워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백번 공감하는 바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대면 예배도 어려움을 겪고, 대안책으로 나온 온라인예배가 익숙해지면서 막상 대면예배가 다시 시작되었음에도 편한(?) 온라인예배를 우선 하려는 내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부끄러움은 책의 끝으로 가면서 의지로 바뀌는 건 이 책의 힘이다. 
다시 나의 믿음에 확신을 갖고, 그 믿음을 위해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어려워도 그 신앙을 단련하기 위한 과정임을 믿고 지켜야 할 것 같다. 
마침, 코로나로 잊혀졌던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기 시작하는 이 쯤 크리스천이라면 한 번 쯤 꼭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YES24의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부족하지만 솔직한 리뷰 작성했습니다.

s******9 2022.06.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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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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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이지만 목회자의 길이 아닌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의 모순을 지적하는 글을 가감없이 쓰고 있다.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 레드가 이미 출판되었고 화이트가 다른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블루여야 할 책이 화이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블루도 나온다는 얘기다. 그럼 블루로 내고 다음책을 화이트로 하면 어땠을까? 아님 화이트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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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이지만 목회자의 길이 아닌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의 모순을 지적하는 글을 가감없이 쓰고 있다.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 레드가 이미 출판되었고 화이트가 다른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블루여야 할 책이 화이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블루도 나온다는 얘기다. 그럼 블루로 내고 다음책을 화이트로 하면 어땠을까? 아님 화이트로 내려던 글을 다른 책으로 내지 않았으면~ 중요하지 않은 얘길 너무 길게 했네요.

 

갑각류는 외골격이라고 한다. 겉을 딱딱한 껍데기로 감싸고 있으며 그 안은 연한 살이 있다. 약점을 꽁꽁 감추고 지키기 위한 형태이다. 탈피라는 과정을 거쳐야 크기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의미의 제목일 것이라고 감히 예단해봅니다.

 

이 책을 읽을 대상은 본인이 기독교 골수라고 생각하는 분들. 아직 믿음이 강하지 않은 분들은 쉽게 휩쓸릴 책이다. 반면 골수 기독교인들이 이 책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의문도 생긴다.

 

“그냥 믿습니다.”하면 끝이라는 기독교. Really?

 

행동으로 은혜를 베풀 수 있다. ‘왜?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 가?’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기독교인. ‘왜’라는 질문 속에는 변화를 향한 갈망이 담겨있다. 반면에, ‘어떻게’ 라는 질문의 목적은 잘해야 현상유지다. (p6) <진리해부>라는 책을 같이 읽길 권해주고 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확신의 중독, 종교와 정치. 이성이 아닌 감정. 확신이라는 감정이 옮음을 보장할까? 누구도 복음의 능력을 고민하지 않는다.

 

현실 기독교인, 마음의 위안을 주는 천국을 믿을지언정 불편하게 만드는 지옥은 믿지 않는다. 천국을 갈망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 때문이 아니라 갈망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괴로워서 몸부림쳤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태어나기 전 상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죽고 나서도 다를 거 하나 없다. 죽으면 그냥 거기서 끝날 뿐이다. 당신에게 신을 향한 갈망이 있다면 당신에게 신은 살아있는 존재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주춧돌(원죄와 속죄)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해석의 목적은 진실이 아니라 위로다.

 

진화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치명적인 거부감을 주지 않고 단숨에 아담의 역사성을 허물고 있다. 호모 디비누스, 영적인 사람.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창조와 진화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가 있으며 새로운 각도에서 논의되고 있다.

 

믿음-기독교의 역린-을 건드린 도마가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예수의 제자이다.

 

책은 잘 읽힌다.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저자의 깊이도 느껴진다. 그 깊이가 믿음의 깊이라 기 보다는 분석하여 그름을 보여주기 위한 깊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각 기독교 연합회, 기독교 연구, 학술단체에서 읽고 평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검색으로 확인해보니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으며 반론이라고 하는 것도 우습다 정도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록1.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의 초고 머리말

이런 나는 오스틴 조엘의 <긍정의 힘>을 읽었는데,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라는 단어가 5번, 그래도 많이 나온 단어 중 하나가 하나님.

 

부록2. <목사 장세현>에서 발췌

‘예수님이 틀렸다.’ 다시 분석적으로 읽어볼 부분이다.

 

이 리뷰는 서평이벤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c*****2 2022.05.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편(옥성호, 글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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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리뷰어클럽 #예스24 #옥성호 #갑각류크리스천 #글의온도 #옥성호갑각류크리스천 #글의온도갑각류크리스천 #갑각류크리스천글의온도제목에서 전개될 이야기를 예상하건대, 신앙 생활에 전심을 다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결이 다른 일침이지만 신앙의 문제가 믿음의 영역이지만 생각없는 믿음이 과연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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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리뷰어클럽 #예스24 #옥성호 #갑각류크리스천 #글의온도 #옥성호갑각류크리스천 #글의온도갑각류크리스천 #갑각류크리스천글의온도



제목에서 전개될 이야기를 예상하건대, 신앙 생활에 전심을 다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결이 다른 일침이지만 신앙의 문제가 믿음의 영역이지만 생각없는 믿음이 과연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자 소개를 읽기는 하였지만 전작을 읽어보거나 저자의 전작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가까운 비난 글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읽고 덮으면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건간에 지금까지 신앙생활 바탕에 두었던 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머릿속 의문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유리하거나 덜 귀찮은 방향으로 자의적 해석을 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섬기고 있는 교회 역시 제자훈련에 대해서 열심을 다하고 감성 보다는 말씀, 설교가 중심이 되어서 바로 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물론 기성세대 성도들께서는 찬양의 비율이 적고 기복적 설교가 덜하여 목회자님께 훈계가 아닌 훈계를 하시지만 한국교회도 이제 변화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동의를 얹어가고 있습니다. 저자의 글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 점이 왜 불편하였는지 곱씹어 보게 되고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신이 존재할까? 굳이 밖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애쓸 필요 없다. 답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당신 속에 신을 향한 갈망이 있다면, 당신에게 신은 살아있는 존재다. 신의 실존을 위해 다른 누구의 증거와 변증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나 신의 존재 여부는 갈망으로 증명된다.

본문 30쪽 중에서

건강을 위해 유산균을 매일 섭취하고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공기청정기 기능을 정확히 모르지만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불안감을 가라앉기 위해 집에 몇 대씩 들여놓는, 딱 그 정도에 막연한 믿음이 신을 찾는 누군가의 믿음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는 날카롭고 비난에 가깝게 지적하여 받아들이는 마음이 움츠러들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마음 어딘가 밑바닥에는 그 지적에 당당하냐고 되묻게 됩니다.

■ 하지만 '지옥'의 실재만 드러나지 않으면, 불편한 현실 정도는 얼마든지 '해석'으로 감추고 왜곡할 수 있다. 어차피 해석의 목적인 진실이 아니라 위로니까. 다 내 맘 편하자고 하는 거니까. 바로 이런 이들에게 '지옥'은 비수를 날린다.

본문 52쪽 중에서

드라마 <지옥> 이야기를 통해,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지옥에 대해 생각하고 실감하고 실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냐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에게 편한 대로 받아들이고 두루뭉술하게 해석했다는 것은 그 자체를 진실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옥의 실재 유뮤 등을 떠나서 크리스천의 믿음에 대한 실체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편한대로 받아들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덮어두고 이를 알려주거나 이끄는 이 역시 없었다는 것입니다.


■ 인류는 언제나 의심을 토대로 발전했다. 만약에 북한에 무슨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분명 북한이 지상천국이라는 정권의 거짓말에 누군가 의심을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심하지 않는 건,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게으르고 두렵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의심이 안전을 보장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에서 의심은 자유를 약속한다.

본문 101쪽 중에서



■ 신이 없다는 러셀이나 날개 없인 날 수 없다는 사람이나, 선택을 한 게 아니라 '결론'에 다다랐을 뿐이다. ...(중략)...... 믿음은, 신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중략)..... 마음은 억지로 선택하지 않는다. 설득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다.

본문 114-115쪽 중에서

의심없이 보고 들은대로 믿고 있는 이에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크리스천에게 뼈아픈 지적을 주는 저자의 질문에 스스로 내린 결론이 무엇이었나 생각합니다. 지옥에 대한 의문, 공생애 기간 행적들 중 모순이나 역사적 배경과 대치되는 점들에 대한 의문 등 스스로 어떤 답과 결론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 몇 년 전 어느 목사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2013)를 선물한 적 있다. 목사라면 주인공 다자키가 겪은 출구 없는 외로움을 읽고 교인들 속에 숨은 다자키를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꼭 읽고 짧은 독후감이라도 보내달라고 했지만, 그 후로 그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목사라면, 사람도 만나야 하겠지만, 그만큼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야 할 거 같은데, 교계는 도무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본문 159쪽 중에서

한국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단면일 겁니다. 매해 제자훈련을 새롭게 준비하고 교육을 진행되는 목회자 분이 개척하고나서 성경공부 및 제자훈련을 계획하자 교회 내 직분이 높은 분이 그런 것으로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던 사례가 기억났습니다. 한국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뼈 아픈 지적에 동의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의 불편함,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지만 다음에 대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어려운 가운데, 그래서 하나님을 부정하는가? 예수의 존재는 역사적으로 잘못 쓰였다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덮어두고 받아들이지 말고 듣고 보는 것이 삶에서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거 정치적인 의도로 거짓 여론을 믿는 아둔한 이들고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접근하고 절대적인 틀 안에서 생각하는 것도 삼가야겠다 싶었어요.



■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변하고 발전할 수 있다. 그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첫 단계이다.

본문 301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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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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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 2022.06.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하지만 할 수 없었던 종교에 대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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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원래는 꽤 괜찮은 오프닝을 썼었습니다. 이 책을 일게 된 이유에 관해서 말이죠. 하지만 쓰고 나니 갑자기 오류가 대박 터지면서 글을 날려버렸죠. 간간히 나는 일이긴 하지만, 정말 쓰는 사람이 당황스럽게 하는 묘한 면이 있긴 하네요.    어쨌거나 리뷰 시작합니다.                기독교에 관해서, 특히나 오랫동안 기독교를 믿으면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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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원래는 꽤 괜찮은 오프닝을 썼었습니다. 이 책을 일게 된 이유에 관해서 말이죠. 하지만 쓰고 나니 갑자기 오류가 대박 터지면서 글을 날려버렸죠. 간간히 나는 일이긴 하지만, 정말 쓰는 사람이 당황스럽게 하는 묘한 면이 있긴 하네요.

 

 어쨌거나 리뷰 시작합니다.

 

 

 


 

 

 

 

 기독교에 관해서, 특히나 오랫동안 기독교를 믿으면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공게로 넘어가게 되면 점점 더 기묘한 상황이 되죠. 생물학 내에서도 온갖 논쟁이 휩쓸고 지나가고 있는 판인데, 이에 관해서 기독교까지 끼어들게 되면 피곤한 일이 벌어지게 되고 말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종교인은 이제 바보 취급 당하는 수준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만, 그렇기에 이제는 더더욱 극렬하고 근본적인 주장만이 넘실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침묵 하게 되고, 같은 것만 강조하는 데에서는 마음이 떠날 수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하는 정말 기막힌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으라" 는 구절이죠. 이 구절은 정말 만능으로 사용됩니다. 무언가를 설명 하기 힘들 때, 그리고 심지어는 기독교에서는 계속해서 참이라 주장하는 거짓을 전달 할 때 논리적인 설명이 힘들어지면 외치는 말이죠. 성경에 써 있는 문구이기에 이 문구 앞에서는 기독교를 조금이라도 믿는 사람은 결국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 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저 희한한 말을 믿게 되면 종교에 미친 사람들과 같은 반열에 들게 되지만, 적어도 종교는 지키게 되고, 그냥 떠나버리면 그간 쌓아왔던, 참이라 생각했던 믿음이 모두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라는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서 결국에는 그냥 그 들을 귀를 유지하는 쪽으로 선택을 해버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걸 계속 들어오게 되고, 그걸 믿어버리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그냥 받아들이게 되어버리는 지경까지 이르는 경우도 심심치않게 발견 됩니다. 사실상 그냥 있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죠. 여기에 성경 무오설까지 가져가게 되면 결국 질문하는 사람을 나쁜놈 취급 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고, 어렸을 적 부터 당해온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바로 그 대부에서 싹트는 질문 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하게 되는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며, 이 질문들에 관해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질문에 대한 답이 준비 되어 있다고 생각 하지만, 정작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그런 질문들 말입니다. 물론 그 질문은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도 일부만 다루게 됩니다. 물론 그 질문들은 실질적으로 현재 기독교 자체에 대한 질문들이죠.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진화론이나 창조론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아닙닏. 물론 파생 되어 나온 몇몇 지점들에 관한 언급은 있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 직접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화론 이상으로 도발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 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아담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 해야 성경을 유지할 수 있는가 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죠. 여기에서 정말 다양한 기독교의 연구 시도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는 것을 같이 이야기 하면서 문제의 질문들로 이야기를 시작 합니다.

 

 위의 질문과 함께 같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결국 성경을 단순 해석 할 때 나오는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선한 면와 악한 면, 천국과 지옥에 가는 이유에 관한 일종의 질문들이 연속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믿음을 쉽게 가를 수 없는 문제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하면서 점점 더 기독교가 단순하게 뭔가를 가를 수 없는 것을 가르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리고 여기에서는 현재의 대답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단순히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동작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들 역시 기독교인들이 그간 거부해온 의심과 질문들의 연속 입니다. 성경 무오설에 관한 의심도 등장 하고, 동시에 성경 자체의 의도에 대한 이야기 역시 같이 다루게 됩니다. 심지어는 단순히 성경의 문제를 떠나, 이 성경을 쉽게 이야기 한 너무 다양한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들을 너무 쉽게 받아들여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 역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외에도 정말 좋은 저작이라고 출간 된 경우에 확인 해보면 정작 번역이 잘 못 되어 있거나 하는 일들 역시 같이 다루게 됩니다. 그 누구라도 그냥 무심코 들여다보나 오류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죠.

 

 이 모든 것들에 관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 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에 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지성을 통한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하며, 여기에는 그동안 회피 해왔던 엄청난 고민들이 동시에 따라붙을 수 있음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해결 하지 않으면 여전히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이야기만을 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를 겪어야 하는 면을 계속해서 설명 해주고 있습니다.

 

 책에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해답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앞선 이야기를 다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일부러 입 닫고, 눈 가리고 있었기에, 그리고 단순하게 신성성으로 처리 해버리면 된다고 생각을 했기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갑자기 다시 눈 앞에 드러난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저자가 내려 보려고 하는 시도가 있기는 합니다만, 단순히 문제가 있다 라는 결론 이상으로 나아가진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와 논쟁이 필요한 주제들일 수 밖에 없으니 단순히 한 사람이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모습이죠.

 

 대답이 있는 책은 아닙니다.애초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답 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나와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들어온 문제들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항상 모든 것들이 그렇듯, 가장 첫 단계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 하고, 그 문제가 무엇인가에 관하여 제대로 알아보는 단계"를 매우 성실하게 수행하는 책입니다. 한 종교의 내부인으로서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질문들에 관하여 굉장히 쉽게 꺼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너도 이런 질문을 해봤거나 하게 될 거야, 하지만 괜찮아" 라고 다독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d********h 2022.05.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