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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이 많은 장마다.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오겠지. 산에 가기 힘든 날이 이어지고 있다. 뭐, 누군가는 산 오르기 안 좋은 이런 날씨에도 꿋꿋이 가겠지만. 적어도 난 아니다. 산에 안 가지만, 산을 향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런 날은 등산 에세이로 마음을 달래 본다. 마침 존경하는 블로그 이웃님 수나노 작가님이 두 번째 책을 내셨다. 장르도 등산 에세이.
드미트리가 쓴 『밥보다 등산』과 비슷한 점은, 이 책은 등산 가이드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는 추천 코스, 필요한 등산 장비, 이런 거 없다. 사실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다 나오지 않나. 대신 인터넷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산행하며 느끼는 감정, 산을 향한 사유, 삶과 산에 관한 통찰 등이 담겼다. 등산하며 만난 인연, 등산하는 이유, 그런 내용들 말이다. 그래서 가이드북 느낌의 등산 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땀과 눈물이 뒤섞인 달콤씁쓸한 향을 맡을 수 있다. 『콰이어트』 저자인 수전 케인도 말하지 않았나. 인생은 원래 달콤씁쓸한 거라고. 최근 나온 『비터스위트』라는 책도 냈다.
다시 『노대리의 정상회담』으로 돌아가서.
표지에 적힌 문구를 보자. 회사에나 대리 나부랭이지, 등산 모임에서는 무려 대장이다! 그렇다. 이 책에는 등산 모임을 운영하며 대장으로서의 고충, 보람 등이 담겨 있다. 이미 40대를 코 앞에 둔 드미트리로서는 젊은 분들의 등산 문화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아, 저렇게 모이고 모임이 유지되는구나, 싶었다. 몇 년 전에 책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컨셉으로 꾸리려다 멤버 모으기도 전에 포기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짱이 된다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구나. 보람도 있겠지만.
대신 나는 쫄따구로서 10년 동안 간간이 얼굴을 비추는 모임이 있다. 있다라고 해야 할지, 있었다라고 해야 할지 살짝 망설여지는 게 요즘 그 모임 활동이 뜸하긴 하다. 산에서가 아니라 평지에서는 가끔 만나는데, 한 친구 결혼을 앞두고 며칠 전 시간이 되는 사람끼리 모였다. 설악산, 소백산, 지리산, 백운봉, 천마산 등 지난 산행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내가 간 산행도 있고, 아닌 산행도 있었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그날을 추억하니 달콤씁쓸함이 밀려오더라. 우리 그때 즐거웠지.
다시 다시 『노대리의 정상회담』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산행의 이유로 '함께'를 꼽는다. "산을 타는 많은 이유들을 책에서 나열했지만, 나에게 산을 타는 제일의 이유는 산이 추억을 만들기에 가장 다양한 배경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혼자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무릎을 탁 쳤다. 홀로산행을 마다하지 않는 나지만, 홀로 갈 때보단 누군가와 갈 때 기억할 이야기가 더 많더라. 최근에 다녀온 설악산 서북능선도, 홀로 가긴 했지만 중간에서 몇 명과 짧게라도 대화를 나눴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그밖에 연차 내고 산에 간 에피소드, 산악회에서는 후미 그룹이나 회사 등산에서는 1등 잡은 이야기, 죽음을 앞두고 소백산을 찾았던 사람에 관한 기록, 계양산 소개팅 등등 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다채로운 사건이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담겼다. 연차 산행, 회사 등산 에피소드는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인지 '오 맞쥐, 맞쥐, 개 맞듯이 맞쥐!' 하며 읽었더랬다.
설악산 귀때기청봉 오른 뒤엔, 적어도 두 달 정도는 등산 생각 안 날 줄 알았는데, 이 책 읽으니 바로 산 마렵다. 일단 자야겠다. 산 꿈이라도 꿔야지.
척박한 등산 에세이계 - 『밥보다 등산』이 아직 2쇄를 못 간 건, 이 책 탓이라기보단 이 분야 고정 독자가 적다는 데 이유가 있다고 믿는 1인. 왜 등산 인구는 많은데, 등산 책 읽는 독자는 적은 겁니꽈! - 재밌는 책을 내주신 수나노 작가님께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재밌는 등산 에세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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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모임을 안 나가 버리거나 가기로 했던 산행을 그 친구 때문에 취소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다람쥐의 대장으로서 마음대로 내보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명분이 있어야만 했다. (41쪽)
등산 모임에서는 꼴찌를 하고 속도가 느리다고 타박을 받는 구박덩이인데 회사에서는 그래도 1등이다. (58쪽)
내가 부 모임장으로 있는 '숲 속 친구들' 모임은 사람들이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임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람쥐 원정대'가 가식적인 모임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정말 필터를 거치지 않고 19금 드립을 해도, 목적이 애인 사귀기인 사람도, 은둔형 외톨이도, 직업의 고하와 상관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65쪽)
호랑이 패턴의 옷을 입음으로써 동물들이 조금은 경각심을 가지고 나를 대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새가 변을 머리에 뿌리고 가거나 머리를 쪼고 가는 불운한 일이 있어서 더 그랬다. (98쪽)
'어느 산이 좋았다'라기보다는, 그 산을 갔던 '그날'이 좋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113쪽)
누군가에게는 그냥 관광지 혹은 하나의 봉우리에 지나지 않을 산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한 번은 방문해야 하는 장소였다. 인생을 정리하러 소백산을 들렀다는 그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죽음 앞에서 어느 산을 가고 싶을지를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람들과 추억이 가장 많은 계양산을 갈 것 같다. 그러면서 웃음으로 근심을 덜던 순간들, 슬픔도 땀과 함께 배출해 버리던 순간들도 떠올리며 인생을 정리하겠지. (117쪽)
'이 사람의 인격과 성격이 나와 맞는 사람인지를 알려면, 지리산 천왕봉에 함께 가 보아야 한다'는 말은 산쟁이들의 선견지명이다. (132쪽)
일상이라는 스트레스에 찌들어 가끔 연차를 내고 계양산에 갈 때가 있다. '연차를 내고 또 계양산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다. 또 계양산이다. 하지만 평일에 야간 등산으로 하는 것과 연차를 내고 가는 계양산의 숲을 거니는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직장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로움. "세상의 직장인들이 매연을 맡으며 일터로 가는 이 시간, 오늘 하루만큼은 나는 계양산에서 숲 내음을 맡고 있다!" 기분이 째진다. (207쪽)
산을 타는 많은 이유들을 책에서 나열했지만, 나에게 산을 타는 제일의 이유는 산이 추억을 만들기에 가장 다양한 배경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혼자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다. 함께 산을 오르는 혹은 올랐던 사람들은 초콜릿이나 사과 하나를 나누어 먹고 스쳐 지나가버린 인연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이상 보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생길 정도의 소중한 친구들도 생겼다. 어설픈 와플을 구워 그저 그런 사과 잼, 싸구려 커피를 내어주는 홈파티라도 흔쾌히 응해 주는 그런 고마운 사람들 말이다. (2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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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문체가 독특해서 재미있었다. 작가 수나노, 노대리 주인공이 읊어 주는 느낌이라 생동감이 넘쳤다. 잘은 모르지만 산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평소에 산행을 한다면 저런 에피소들들이 생길 것 같다. 뭉뚱그려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나열하고 재미있게 풀어내어 좋았던 것 같다. 제일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Where is Alpha male' 의 후랑크 이야기 이다. 정말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인 것 같다. 어떻게 저리 뻔뻔하고 능구렁이 같은 지.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독특한 것 같다.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내가 너 좋아하면 안되냐' 에서 저자가 착한 아저씨를 오해했던 포인트나, 대모산의 백구 이야기나, 재미있는 포인트가 많아 읽는데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다. |